UPDATED. 2024-03-29 17:18 (금)
[단독]'블라인드닥터'를 아십니까?
[단독]'블라인드닥터'를 아십니까?
  • 박선영 기자
  • 승인 2013.01.29 13:5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유명 성형의사는 상담만 하고 수술은 페이닥터가 시술

▲ 스타의사는 환자가 수면상태가 되면 수술실을 나간다. 진짜 성형수술은 페이닥터가 담당한다. 사진=뉴시스

“당연히 원장님한테 수술을 받았다고 생각했어요.”

지난 여름, 압구정 소재의 한 성형외과에서 양악수술을 받은 김세경(가명)씨의 이야기다. 삼심대 초반의 세경씨는 부정교합으로 인해 남모르는 스트레스를 받아오다 성형수술을 결심했다. 이직을 준비하고 있었고, 퇴사 후 새 직장으로 출근하기 직전 잠깐 동안의 공백을 이용해 수술을 받을 생각이었다.

오랫동안 고민했던 성형을 결심하니, 다음은 ‘병원’에 대한 고민이 되더란다. 성형수술에 대해 고민하는 많은 사람들이 그러하듯 세경씨 역시 ‘수술 잘 하는 원장님’에게 수술을 받고 싶었다.

TV출연, 성형칼럼 등 유명한 스타 의사 알고 보니…

여기저기 인터넷을 뒤지고, 성형수술과 관련한 기사를 찾아 읽었다. 알음알음 소개받은 성형외과에서 상담과 견적도 여러 차례 받았다. 그래도 선뜻 결정하기는 쉽지 않았다. 상담을 받을수록 더 혼란스러웠다. 그러던 중 한 TV 프로그램에 출연한 성형외과 의사를 보고, ‘아, 저 원장님한테 수술을 받으면 안심할 수 있을 것 같아!’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방송에서는 병원의 이니셜과 원장의 이름만 소개됐지만, 해당 성형외과를 찾는 일은 어렵지 않았다. 원장의 이름만 검색해도 출연정보와 관련 자료가 무수히 쏟아졌기 때문이다. 상담을 위해 전화예약을 하고 이튿날 바로 병원을 찾았다. 첫 번째 상담은 상담실장과 이루어졌다. 워낙 바쁜 원장이기 때문에 1차 상담 때는 만날 수 없다고 했다. 대신 수술 전 ‘스타원장이 상담부터 디자인, 수술까지 직접 집도한다’는 것이 상담실장의 설명이다.

여러 번 상담을 진행하는 동안 대표 원장은 만나지도 못했고, 성형외과는 방학시즌이 최고의 성수기라는 말을 실감할 수 있을 정도로 많은 사람들로 발 디딜 틈 없었다.

그 무렵 양악수술의 위험성에 대한 기사들이 쏟아져 나왔다. 양악수술을 미용적인 측면보다는 치료를 위한 선택이 목적이어야 한다는 것이 요지였다. 수술에 대한 두려움이 두 배로 커졌지만 ‘임상경험이 풍부한 스타의사’를 믿었다.

TV에서만 보던 스타의사를 처음 만난 건 수술 당일이었다. 상담실에서 10분 이내의 상담과 디자인을 마치고 수술실로 이동했다. 수술실에 누웠고, 세경씨는 잠이 들었다.

세경씨는 한 달 가까운 시간을 집 밖에 나서지 못했다. 물론, 수술이 잘못된 것은 아니었다. 상담실장은 부기가 빠지는 시간은 개인차가 있으니 조금 더 기다려 보자고만 했다. 빠질 것 같지 않았던 부기도 조금씩 빠졌고, 어느새 몰라보게 예뻐진 자신을 발견했다. ‘역시 스타의사는 뭐가 달라도 다른가보다’ 했다. 얼마 후, 상담실장은 카페에 후기를 올리면 상품권울 주겠다며 연락을 해왔다.

수술은 만족, 그러나 속았다는 배신감에 부르르

수술 사진을 카페에 공개하는 것에 대한 걱정이 앞서기도 했지만 예뻐진 얼굴을 사람들과 공유하고 공감 받고 싶었다. 사진과 후기를 올리자마자 예쁘다는 댓글이 하나둘 달리기 시작했다. 세경씨는 ‘예쁘다’는 말에, 누가 시키지 않았는데도 뷰티카페 활동이 즐거웠다. 며칠 전에는 카페 정모에도 참여했다.

“카페 정모에서 우연히 만난 회원과 같은 병원에서 ‘같은 날, 같은 시간’에 수술했다는 것을 알게 됐어요. 그런데 우리를 수술해준 원장님이 같았어요. 어떻게 동시에 두 명을 수술 할 수 있죠?”

두 사람의 집도의는 TV 출연으로 유명해진 그 스타의사였다. 누군가는 스타의사가 아닌 다른 사람에게 수술을 받은 것이었고, 어쩌면 모두 그 에게 수술을 받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화가 난 세경씨는 담당 상담실장에게 전화해 항의했지만, 제대로 된 사과조차 받지 못했다. 첫 통화 이후로는 제대로 연결이 되지도 않았다. 이만큼 예뻐지기도 쉽지 않다는 상담실장의 당당함 앞에서 할 말을 잃을 뿐이었다.

강남권 성형외과, ‘블라인드 닥터’는 공공연한 비밀

익명을 요구한 한 성형외과 관계자는 “블라인드 닥터라는 정확한 명칭이 쓰이는 건 아니지만 대표원장과 수술을 집도하는 원장이 다른 건 공공연한 비밀”이라고 설명했다. 심지어 스타의사로 직결되는 대표원장은 수술은 전혀 집도하지 않은 채 상담과 수술 전 디자인, 수술 후 진료 등에만 나선다고 했다.

기만당한 의료소비자, 구제받을 수는 없을까?

복지부 관계자는 법적인 처벌이 가능하냐는 기자의 질문에는 대답하기 곤란하다는 입장을 보였다. 다만, “의사와 환자는 환자위임계약을 통해서 진료가 이루어진다. 이때 환자 동의 없이 의사가 바뀌었다면 명백한 계약위반이 성립된다. 문제제기가 가능한 부분”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문제제기를 위해서는 ‘사실관계’를 밝혀야 한다는 전제가 따랐다.

우리나라 성형술은 세계 최고의 수준을 자랑한다. 이는 당연히 자랑스러운 사실임에도 불구하고 지나친 상술과 환자 유인행위, 일부 몰지각한 의사들의 도덕적 헤이 등의 뻔뻔한 꼼수로 인해, ‘성형 권하는 나라’라는 오명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