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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형외과 말로만 '주 5일 근무'제
성형외과 말로만 '주 5일 근무'제
  • 박선영 기자
  • 승인 2013.02.02 11: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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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휴일엔 '자발적 근무'회람'…성수기엔 휴가금지

▲ 일부 성형외과는 취업정보에 주 5일근무라고 표시한뒤, 병원 사정이라며 주 6일근무를 시키거나 공휴일에도 반강제로 자발적 근무를 요구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남들 쉬는 날, 좋아서 출근하는 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압구정의 한 성형외과에서 2년째 코디네이터 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K씨의 이야기다. 병원으로 자리를 옮기기 전에는 이벤트대행사의 인포메이션(안내) 업무를 했었다는 K씨는 급여조건이나 비전이 좋다는 말에 병원으로 자리를 옮겼다.

성형외과 면접을 준비하면서 대부분의 성형외과들이 주6일 근무를 한다는 사실에 고민했다. 낮은 급여와 불안정한 미래 때문에 이직을 결정했지만 주5일 근무에서 다시 주6일 근무의 환경에 적응할 수 있을까 걱정이 되었기 때문이다.

취업포털사이트에서 ‘주5일제’라는 근무조건을 내건 성형외과를 찾았고, 다른 조건을 검토한 후 입사지원을 했다. 나이가 많은 편이라 걱정했지만 다행히 서류전형에 합격했다. 면접을 보면서 인사담당자에게 주5일 근무가 맞느냐고 재차 물었다. 인사담당자는 ‘솔직히 지금은 아니다. 이쪽(성형외과 업계)에서 주5일 근무하는 병원이 어디 있나, 그렇지만 우리는 곧 주5일 근무를 시행할 예정이니 걱정하지 말라’고 안심시켰다.

▲ 수습기간을 마치고 휴가를 신청하니 성수기에는 휴가사용이 금지라는 얘기만 돌아왔다.
취업정보가 달라서 속은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코디네이터 학원을 같이 다녔던 친구들도 대부분 강남권의 성형외과·피부과에 자리를 잡았고, 그들 역시 주6일 근무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K씨가 성형외과에 입사한 시기는 9월로 성형외과는 손님들이 없는 비수기 시즌이다. 주말을 제외하고는 크게 붐비지 않을 만큼 한산했기 때문에 병원 일에 적응하기도 쉬웠다. 휴가일수가 많은 직원들은 휴가를 내고 여행을 다녀오기도 했다.

휴가가 없던 K씨는 내년 휴가를 당겨서 사용하는 형식으로 1일의 연차휴가를 낼 수 있느냐고 인사팀에 문의했다. 돌아온 답변은 ‘사용은 가능하지만 수습기간 3개월이 지난 후에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수습기간 지나니 성수기’, 연·월차 사용 안 돼!

3개월의 수습기간이 끝나고 정직원이 됐다. 이제 정식으로 고용 계약서를 쓰고 일할 수 있겠구나 생각했지만 인사팀에서는 아무런 연락이 없었다.

다만, 주5일 근무를 포기하고 주6일 근무를 선택한 것도 자신의 의지라는 동의서에 서명했다. 대신 5일의 휴가를 추가로 지급한다는 것이 조건이었다. 미처 사용하지 못한 휴가일 수만큼 연말에 상여금으로 지급한다고 쓰여 있었다.

인사팀에 고용계약서는 언제 쓰냐고 물었지만 차일피일 미루기만 했다. 하지만 사정하지 않아도 제때 입금되는 급여 덕분에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이제 주6일 근무에도 익숙해진 상황이라 그럭저럭 지낼만했다. 문제는 휴가계를 제출하면서 시작됐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가족여행을 가려고 예약했어요. 숙박·항공까지 다 끝냈는데, 휴가를 못 쓴다는 거예요. 내년 연차휴가 당겨서 쓰는 건 문제가 아닌데, 성수기에는 ‘원칙적’으로 휴가를 쓸 수 없다더라고요.”

졸지에 성수기에 휴가를 쓰겠다고 했던 자신이 이상한 사람이 된 듯한 느낌을 받았다. 위약금을 지불하고 여행을 포기했다.

▲ 대통령 선거일에도 '자진해서 출근하는 것'이라는 자발근무신청서를 회람으로 돌려 반강제적으로 요구하고 있다.
지난해 12월 19일은 대한민국 18대 대통령 선거가 있던 날이었다. 임시공휴일이었지만 강제사항이 아니었던 탓에 K씨가 근무하는 성형외과는 당연히 ‘정상근무’였다.

선거 며칠 전, 회람이 돌았다. ‘선거일에 자진해서 출근하는 것이며, 대신 추가 1일의 연차휴가를 사용하겠다’는 것이 요지다. 황당하긴 했지만 이의제기를 하면 또 자신만 삐딱하다고 생각할까봐 말도 꺼내지 못했다.

압구정성형외과에서는 흔한 풍경이다.

근로자를 위한 고용계약서는 쓰지 않으면서 근로법상 문제가 될 소지가 있는 부분들에 대해서는 서약서 내지 동의서에 서명하도록 하고 있다. 주5일근무가 일반화된 지금도 성형외과는 주말 저녁까지도 성형 환자로 가득하다. 그 이면에서 의료서비스 직원들의 남모르는 고충이 자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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