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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능교육 해고자 잊지 말아요"
"재능교육 해고자 잊지 말아요"
  • 박선영 기자
  • 승인 2013.02.14 12: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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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로 연극인들,24일까지 '아름다운동행'단막극 공연

▲ '아름다운 동행’ 페스티벌은 배우·작가·연출·기획자등 50여 명 모두 재능기부로 동참했다.

2008년 10월 첫 서리가 내릴 즈음, 12명의 노동자는 하루아침에 거리로 나앉게 된다. 

그들은 그 길로 그 자리에 천막을 세우고 농성을 시작했다. 이 부당한 탄압에 대해 알려야 했고, 바로 잡아야 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5년. 우리 모두의 시간이 흘렀지만 그들은 그날 그 자리에 그대로다. 달라진 건 아무것도 없었다.

재능교육 학습지 교사들은 지난 2007년 노조를 구성해 ‘집단교섭’을 요구했지만 사측은 ‘학습지 교사는 노조를 결성할 수 없는 특수고용직’이라는 이유를 들어 그들을 거리로 내몰았다.

법원은 지난해 11월 “학습지 교사를 노동조합법상 노동자로 인정하고, 재능교육이 학습지 교사들에게 계약해지를 통보한 것은 부당 노동 행위이므로 무효”라는 판결을 내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의  투쟁은 아직도 현재진행형이다.

외롭고 쓸쓸했던 투쟁이었지만 이제 그들은 더 이상 혼자가 아니다. 대학로 연극인들로 구성된 ‘연극실험실 혜화동1번지’ 동인들과 예비사회적기업인 ‘드림아트펀드’가 함께 마련한 페스티벌 ‘아름다운 동행’이 이들의 아픔을 달래주고 있기 때문이다.

대학로 연극인들과 드림아트펀드 ‘무대에서 위로를 노래해’

▲ 단만극 페스티벌 '아름다운 동행'은 24일까지 대학로 소극장 '혜화동1번지'에서 상연된다.
14일부터 24일까지 대학로 소극장 혜화동1번지에서 일곱 개의 단막극으로 이뤄진 옴니버스 연극이 상연된다.

‘한밤의 천막극장(오세혁 작·김한내 연출)’은 농성현장인 천막 안에서의 암전된 현실을 가감 없이 보여준다. 세상의 모든 소리에 감각의 촉수가 곤두서는 나날들이 1883일간 계속된 ‘재능교육 해고노동자’들의 직접적인 이야기가 담겨있다.

‘다시 오적(五賊)(김은성 작·김수희 연출)’은 김지하 시인의 ‘오적’을 원작으로 한국 노동계의 전반적인 현실을 조명한다. 원작의 해학을 고스란히 희곡으로 옮겨 세웠다. 신명나는 판소리 완창이 거방지게 벌어진다.

‘이건 노래가 아니래요(김슬기 작·부새롬 연출)’는 1인극으로, 자작가수(싱어송라이터)가 주인공이다. 동자에게 ‘너는 노동자가 아니다’라고 이야기 하는 ‘특수고용노동자’인 별종의 개념을 우회적으로 이야기한다.

‘혜화동 로타리(김윤희 작·이양구 연출)’는 재능교육 천막농성이 이루어지는 현장의 이야기다. 혜화동 로타리를 중심으로 한쪽 어귀에 재능교육이 자리 잡고 있다. 누군가는 대학로로 진입하기 위해 그 길목을 지나쳐야 했을 것이다. ‘외면’된 현실에 대한 부끄러운 자화상이 그려진다.

‘살인자의 수트케이스를 열면(이여진 작·김재민 연출)’ 은 기묘한 여인이 들고 다니는 수트케이스에는 무엇이 들어 있을까.

‘잉여인간(공동창작·김관 연출)’ 은 오늘날의 이야기다. 지하철 안에서 성추행을 당했던 한 여대생의 현장 경험(?)을 토대로 다듬어졌다.

‘비밀친구(정소정 작·윤한솔 연출)’ 는 어린 시절 방문교사와의 특별한 추억을 가졌던 소년이 어른이 됐다. 방문교사가 만들어준 비밀공간을 잊지 못한 청년은 다시 방문교사를 찾는다.

‘노동자에 대한 부당해고, 투쟁’을 이야기 하는 연극이라고 하면 무겁고 침울하지 않을까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을 듯싶다. 하지만 이런 걱정은 기우에 불과하다. 암울한 현실을 관통하면서도 해학과 풍자의 미학을 잊지 않았기 때문이다.

드림아트펀드와 공연에 참여한 동인들은 이 기획을 거창한 투쟁이라고 이야기 하는 대신 ‘페스티벌’이라 이름 지었다.

‘잉여인간’의 김관 연출자는 “재능교육 사태가 해고 노동자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는 이야기가 하고 싶었다"며 "그들이 왜 그렇게 되었는지에 대한 물음표에서 시작하게 됐다"고 연출배경을 설명했다.

김 연출자는 또 "그렇다고 우울하게 이야기 하지 않는다며 우리가 즐겁게 준비한 만큼 관객들도 즐겁게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다른 모든 배우·작가·연출자들과 마찬가지로 이 페스티벌에 무료로 동참했다. 5년 동안 매일같이 대학로를 드나들면서 재능교육 해고 노동자들을 외면했던 심정적 부채감을 조금이나마 덜기 위해서다.

‘아름다운 동행’ 페스티벌에 참여한 50여명은 모두 재능기부를 한 셈이다. 그들은 한 목소리로 ‘내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방법’으로 이야기 하고 싶었다고 입을 모았다.

▲ '한밤의 천막극장'의 두 배우. 재능교육 해고노동자들이 천막 안에서 느꼈을 고통을 생생하게 그려낸다.

 이들이 세상을 향해 띄운 화두는 ‘기억’

프로젝트를 기획안 예비사회적기업인 ‘드림아트펀드’의 한윤선씨는 “우리는 그들의 사연이 궁금했고- 그들의 이야기를 더 많은 이들과 나누고 기억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갈수록 세상의 시선에서 빗겨나며 희미해지는 재능교육 노동자들이 가장 두려워했던 건 ‘잊힘’이었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잊지 않고 ‘기억’하고 있다는 위안을 선물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공연 준비에 앞서 이들은 ‘공부’했다. 가령 ‘단결권·단체교섭권·단체행동권’등에 대해서 말이다. 그들 스스로가 온전히 마음을 보태고 기억하고자 했던 것이다.

14일 현재 1883일의 투쟁. 다섯 번의 겨울이 지나갔고, 네 번의 봄과 다시 다섯 번째 봄이 오는 길목에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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