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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연재]한국인은 왜 가난해졌을까?
[기획연재]한국인은 왜 가난해졌을까?
  • 한상익 민주정책연구원 연구위원
  • 승인 2013.05.06 17:22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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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상익 박사의 ‘통계가 있는 정책 이야기’

2007년 연봉 5000만원에 사인한 A팀장은 지난 5년간 연봉이 꾸준히 2%씩 올라 2012년 5500만원을 찍었다. 그런데 참 이상한 일이다. 5년 전에 비해 특별히 씀씀이가 늘어난 것이 전혀 없는데 어째 더 가난해진 느낌이 든다. 분명 통장에 찍히는 숫자는 더 커졌는데 말이다. 기분이 그런 것일까? 혹시 진짜로 가난해진 것은 아닐까?

 

▲ 한상익 연구위원

유감스럽지만 A팀장의 경우, 연봉은 늘어났지만 더 가난해진 것이 맞다. 이 묘한 수수께끼의 비밀은 바로 소비자 물가에 있다. 사실 돈이란 한국은행이 발행한 재화 또는 용역 교환 쿠폰일 뿐이다. 따라서 돈을 더 벌었어도 그 돈으로 교환할 수 있는 재화나 용역이 줄어들었다면 사실상 수입은 줄어든 것이다.

 

다시 A팀장 연봉을 생각해 보자. 지난 5년간 소비자 물가가 18.16% 올랐다는 것을 생각할 때, A팀장은 2007년과 같은 수준으로 소비하려면 5908만원을 벌어야 한다. 그런데 연봉이 5500만원이니 오히려 408만원 깎인 셈이고, A팀장의 5년간 실질 임금 상승률은 평균 마이너스 1.6%이다. 소득이 마이너스가 되었으니 당연히 가난해질 수밖에 없지 않은가.

지난 5년간 평균적인 한국인이라면 사실 누구나 가난해졌다. 그동안 한국인의 1인당 GNI(국민순소득)은 4.97% 늘어 연평균 0.99% 정도 소득이 오른 반면, 소비자 물가는 무려 18.16%, 연평균 3.63%가 올랐다. 기는 소득 위에 나는 물가까지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뛰는 물가쯤은 된다.

A팀장은 연봉이 10%라도 올랐지만, 국민 전체로 보면 그 절반밖에 오르지 않았으니, 8%쯤 가난해진 A팀장은 그나마 남들보다는 낫다고 해야겠다. 평균적인 국민은 13.19%나 가난해진 셈이니 말이다.

한국인이 이전보다 가난해진 일이 처음은 아니다. 15년 전, 그러니까 속칭 IMF 환란이 터졌을 때 한국인들은 정말로 ‘왕창’ 가난해졌다. 1996년과 1998년을 비교해보면 물가는 12.28% 올랐고 1인당 GNI는 무려 39.2%나 줄었다. 그 격차가 51.38%이니 한마디로 반토막이 난 것이다. 물론 GNI를 따질 때는 달러 기준이니 원화를 기준으로 하면 체감도는 많이 다르겠지만, 이 ‘글로벌’한 세계에서 국격이든 소득이든 좀 ‘글로벌’하게 따져야 하지 않겠는가.

어쨌든 반토막이 났다고 하지만, 그래도 그 때는 변명거리가 좀 있었다. 50년간 누적되어온 정경유착과 토건 중심 경제의 문제점의 폭발이 일어난 시기에 마침 동아시아를 초토화시킨 국제 금융 자본의 난리가 겹쳐버렸기 때문이다. 물론 김영삼 정부의 무사안일 한 외환 관리는 백번 욕먹어도 싸다.

하지만 우리의 특수성과 다른 나라의 사정을 감안할 때 결국 박정희 시대부터 쌓여온 구조적 문제와 신자유주의적 금융질서에 기인한 외부 환경의 문제가 겹쳐서 일어날 일이 일어났다고 스스로 자위라도 할 수 있었다. 즉, 김영삼 정부에만 전적으로 책임을 물을 일은 아니라는 이야기다. 하지만 지난 5년간의 일은 이명박 정부의 정책 방향에 좀 더 책임을 돌릴 필요가 있다.

 

 

<표1>의 통계는 IMF 외환위기는 일국의 문제가 아닌 전반적인 문제였음을 보여준다. 미국을 제외한 주요국들의 소득 상승률이 마이너스를 기록하고 있는 것에서 보듯이 정말 글로벌한 사태였던 것이다. 더구나 외환위기의 주 지역이 동아시아였고, 그 중에서도 한국이었으니 한국이 쑥대밭이 된 것도 너그럽게 이해해줄 수 있겠다. 최소한 함께 가난해졌으니 배라도 좀 덜 아프지 않겠는가.

그러나 지난 5년은 다르다.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금융위기가 촉발되었고 그래서 힘들다고 아무리 떠들어 봐야 사실 미국 일국의 문제에 가깝다. 미국 경제의 경색으로 각국이 타격을 받기는 했지만, 97년과 같이 전 세계가 손에 손잡고 깨강정이 날 정도로 심각한 위기였다고는 농담으로라도 하기 어렵다.

 

 

<표2>에서 보듯이 한국과 미국을 제외한 다른 국가들은 전혀 ‘가난해지지’ 않았다. 이것만으로도 배가 아플 일인데, 더 짜증나는 것은 위기의 본고장인 미국보다 한국이 더 타격을 받았다는 것이다.

한국 경제의 취약성이 어떻고 한국과 미국 간의 관계가 어떻고 하는 이야기는 집어치우자. 한국 경제의 대외의존도가 워낙 높다 보니 대외 요인에 취약한 것이야 어제오늘 일이 아니고, 한국만큼은 아니더라도 일본이나 독일, 대만의 대외의존도도 만만치 않다. 미국과의 특수관계를 논하는 것도 쉽지 않다. 이미 미국이 중국과 EU에게 한국의 1, 2위 교역국 자리 내준 것이 벌써 십년이다.

더구나 우리에게는 그 무지막지한 성공신화에 감동해서 국민이 잘 살게 해달라고 뽑아준 대통령, 안해본 것이 없으셔서 ‘내가 하면 다른’ 대통령이 이끄는 정부도 있었지 않은가. 그런데 도대체 IMF때는 같이 가난해진 나라들은 다 살림이 나아졌는데, 왜 우리만 가난해졌는지 참으로 분통터지는 일이 아닐 수 없다. 뭐가 문제였을까?

다른 여러 요인들도 있겠지만 그중 핵심적인 이유는 내수, 특히 가계의 내수 역량에 있다. 한국은 가계 소비에 뒷받침되는 내수가 너무 취약하기 때문에 조그만 외부 충격에도 더 큰 타격을 받는다.

사실 이 이야기는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니다. 내수 강화 타령은 10년도 더 된 이야기고 최근에는 맥킨지도 제2차 한국보고서에서 한국경제의 신성장공식의 첫 번째 미션으로 중산층 재정건전성 제고를 통한 내수 신장을 제안하고 있다. 이처럼 내남없이 다 알고 있는 문제인데, 왜 이 취약한 내수를 보완하지 못할까? 혹시 국민들이 개미처럼 벌기만 하고 쓰지를 않아서? 원 천만의 말씀이다.

올해 초 발표된 한국은행의 통계를 보면 한국 가계는 소득의 97.3%를 쓰고 있다. 독일이 기록한 91.3%야 아득한 얘기고 OECD 평균인 95.4%보다 높다. 아니, 이른바 온 국민이 소비 애니멀이라고 생각하는 미국의 96%도 가뿐이 앞선다. 한마디로 버는 족족 쓰고 있다고 말해도 지나치지 않다.

가계부채 때문이라는 것도 말이 안된다. 한국은행 자료에 따르면 한국인의 GDP 가계 부채 비율은 2010년 기준으로 볼 때 72%로 일본의 81%보다 낮고 미국의 96%에 비해서는 족탈불급이다. 가계부채가 문제이고 앞으로 문제가 될 가능성이 높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내수 문제를 다루며 부채 탓만 하는 것은 전혀 정확한 얘기가 아니란 말이다.

한국의 가계 내수가 약한 가장 큰 이유는 가계 소득의 절대치가 낮기 때문이다. 즉, 한국인은 다른 나라 국민에 비해 자기가 생산한 몫에서 받는 돈이 적다. 한국 GDP에서 가계 소비가 차지하는 비중은 59.8%로 OECD 평균인 68.5%보다는 9% 낮고, 미국의 77%나 일본의 70.6%, 독일의 69.7%에 비하면 10~17%나 낮다. 이처럼 국내 총생산을 책임지는 한국 가계는 국내 총생산에서 받는 몫 자체가 적다. 그러니 버는 족족 써도 내수가 당연히 취약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한국에서 내수를 강화하려면 가계 소득을 늘려야 한다. 그것도 고소득층보다 소비 성향이 높은 중상층 이하의 소득을 높이는 정책, 일반 국민을 부자로 만들어 내수를 튼튼히 하는 부민경제(富民經濟) 정책을 써야 한다.

이미 2010년에 647조원이 넘는 사내유보금을 쌓아놓고 있으면서 매년 최대 실적을 경신하고 있는 대기업을 도와줄 것이 아니라 당장 마이너스를 쌓고 있는 국민의 주머니를 불려줘야 내수가 확대된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는 5년 내내 고환율 정책을 유지하고 임금 상승을 억제하며 일자리를 만드는 중소기업 대신 대기업 부양 위주의 경제 정책을 썼다.

부민경제와는 정반대의 방향으로 나아간 것이다. 따라서 지난 5년간 한국인이 가난해진 책임의 전부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정책적 부분의 책임은 분명히 이명박 정부에 있다. 그리고 이제라도 정책적 방향을 바꿀 필요가 있다.

부민경제를 향한 정책적 방향은 다양하겠지만 현재 가능한 것으로는 첫째, 근로 소득을 늘리는 방법, 둘째 정부의 이전 소득을 높이는 방법, 마지막으로 물가를 낮게 유지하는 방법이 있을 것이다. 근로 소득을 늘리는 방법에 가장 일차적인 것은 일자리를 만드는 것이다. 하지만 일자리라는 것이 그렇게 단기적으로 느는 것도 아니고 또 공공 근로처럼 무작정 늘린다고 해서 목표한 성과가 나오는 것도 아니다. 따라서 지금 쓸 수 있는 정책은 소비와 일자리의 순환적 관계의 고리에서 소비를 늘려 일자리를 자극하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우선 단기적으로 임금을 높일 필요가 있으며 또 그만한 여력도 있다. 예컨대 91년부터 2000년까지 임금 소득은 11.7%가 늘고 법인의 영업이익은 12.8%가 늘어 양자의 격차가 1.1% 정도였다. 하지만 2001년부터 2011년까지 영업이익은 10.2% 늘은 반면 임금은 7.2%밖에 증가하지 않았다. 격차가 3%로 늘어난 것이다. 이런 통계를 놓고 볼 때 현재 한국에서 법인 기업 노동자로 국한시켜도 기업이 임금을 늘릴 여지는 충분히 존재한다.

가계에 대한 이전 소득을 높이는 방법은 주로 복지의 확대로 나타난다. 다만 최근 기초노령연금의 인상이라든가 무상보육 실시라든가 하는 제도들이 도입되고 있는 현실에서 추가로 또 다른 제도를 도입하는 것은 가뜩이나 부채가 늘어나고 있는 재정에 너무 부담을 줄 수 있다. 따라서 현 시점에서는 이 제도들을 안착시킴으로써 이전 소득을 늘리는 효과를 노리는 것이 낫다.

셋째 방법인 물가 안정의 핵심은 환율이다. 에너지를 전량 수입하고 각종 사료와 육류 등 농축산물 뿐만 아니라 각종 소비재의 원자재를 해외에 의존하고 있는 한국에서 높은 환율은 결국 소비자 물가에 압박을 주게 된다. 수출을 위해 고환율을 유지할 필요가 있다는 대기업들의 주장을 받아들여 -요즈음 일본의 아베가 이 짓을 하고 있다.- 이명박 정부는 환율을 높게 유지했다. 그 결과 국민은 가난해졌지만 수출 대기업은 사상 최고의 실적을 올려 더욱 부자가 되었었다. 결국 이명박 정부는 가뜩이나 가난한 가계에서 돈을 갹출해서 부자인 대기업에 얹어주는 일을 한 셈이다.

국가가 부자가 된다고 국민이 부자가 되는 것은 아니지만, 국민이 부자가 되면 국가는 당연히 부자가 된다. 기업도 생각을 바꿔야 한다. 물건을 살 능력이 있는 사람이 많아야 기업도 물건을 더 많이 팔 것 아닌가. 원체 가진 것이 없었던 시대에는 아랫목 효과니 트리클다운 효과를 운운하면서 누가 벌든 우선 벌고 보자는 경제 정책이 일말의 진실을 담고 있었지만, 맨날 그놈의 국격 타령에 세계 10위권 부자 국가를 운운하면서 이를 답습했었고 또 만약 앞으로도 하려고 한다면 둘 중 하나다. 머리가 나쁘든가, 양심이 나쁘든가.

지금 한국 경제의 침체를 돌파하려면 소수가 아주 더 많이 버는 경제 정책이 아닌 다수가 조금씩 더 버는 경제 정책, 국가 경제의 성장보다는 국민 개개인의 소득 증대를 목표로 두는 경제 정책으로의 전환이 필요하다. 혹시 너무 빠르거나 늦은 것 아닐까라고? 국민을 위한 정책에 빠르거나 늦는 것은 없다. 실천에 옮길 때가 가장 적합한 때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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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부 2013-05-17 15:12:14
글 잘 읽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