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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커스] 다된 밥에 코 빠뜨릴라
[포커스] 다된 밥에 코 빠뜨릴라
  • 이원재 연구기자
  • 승인 2000.11.29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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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경부 ‘코스닥위원회 독립안’ 확정에 증협 노조 시한부 파업…공공성 강화에 초점 맞춰야
‘한국의 월스트리트’라는 여의도의 점심시간이 시끄러워졌다.
점심시간마다 노동가요가 우렁차게 울려퍼지고, 머리에 붉은 띠를 두른 노동자들이 구호를 외치는 모습이 눈에 띈다.
월스트리트에 노동가요라니, 이 낯선 광경은 왜 벌어졌을까?

낯선 광경의 주인공들은 증권업협회 노동조합원들. 붉은 머리띠엔 ‘코스닥위원회 분리 반대’ ‘신관치금융 재경부 반대’라는 문구가 선명하다.
증권업협회 1층에서 농성을 벌이기 시작하더니, 건물에 대형 플래카드를 걸고 11월20일에는 시한부 파업까지 감행했다.
사뭇 비장한 모습이다.


코스닥위원회 독립안에 증협노조 발끈 ‘월스트리트 노동가요’의 발단은 재정경제부가 11월1일 내놓은 증권거래법 개정안이었다.
재경부는 이 안에서 코스닥위원회의 설치근거와 업무를 법률로 명시하고 코스닥시장이 코스닥위원회 중심으로 운영될 수 있도록 인사·예산에서 독립성을 제고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또 이를 위해 코스닥시장 운영과 관련된 수입 일부는 코스닥위원회 수입으로 계상하도록 하고, 위원회에 사무국을 설치하고 위원장이 사무국을 통할하도록 하겠다고 덧붙였다.
기업들의 코스닥 등록여부와 코스닥시장 관련 제도 제·개정의 최종결정권한을 갖고 있는 코스닥위원회는 현재 증권업협회 산하기관으로 돼 있다.
11명의 위원 가운데 위원장은 상근이지만 나머지 위원들은 한달에 두번 꼴로 열리는 위원회 때만 참석하는 비상근이다.
따라서 위원회는 최종결정만 내릴 뿐, 코스닥 기업등록·제도관련 실무는 증권업협회 직원들이 맡고 있는 실정이다.
물론 예산이나 인사권은 증권업협회 쪽에 있다.
재경부의 법률개정안은 이런 체제를 근본적으로 바꾸겠다는 뜻으로 받아들여진다.
즉 코스닥위원회에 상근조직인 사무국을 만들어, 증권업협회에서 코스닥시장 관련 업무를 맡고 있는 코스닥관리부와 감리부를 여기에 소속되도록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코스닥시장의 거래수수료 수입 가운데 일부를 코스닥위원회 예산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하고, 코스닥위원장이 사무국 소속직원들에 대한 인사권까지 갖도록 해 증권업협회에서 완전히 독립되도록 하겠다는 얘기다.
여기에 증권업협회 노동조합이 ‘발끈’한 것이다.
재경부의 이번 개정안은 사실 오래 전부터 벤처캐피털이나 벤처기업 쪽에서 주장했던 ‘코스닥시장 관련 업무의 증권업협회로부터의 분리’를 받아들인 것이다.
특히 벤처캐피털 쪽에서는 코스닥 관련 업무를 증권업계의 이해대변자인 증협이 관장하게 돼 있어, 증권사 투신사 등의 증협회원 기관투자가들만 보호받고 벤처캐피털은 피해를 입는 쪽으로 일방적 운영을 해왔다고 주장해왔다.
벤처캐피털협회 이부호 이사는 “코스닥위원회가 독립돼 있지 못했기 때문에 다른 기관투자가는 놓아두고 벤처캐피털만 6개월간 보유지분 매각제한조처를 도입하는 등 제도가 편향적으로 바뀌어왔다”고 말했다.
재경부 쪽에서도 “벤처업계 요구사항을 수용했을 뿐”이라고 법 개정요구를 설명한다.
코스닥증권시장 강정호 사장은 조금 다른 관점에서 분리독립론을 제기한다.
강 사장은 “증권사들의 이익을 대변하는 증권업협회가 회원증권사들이 부당한 거래를 하지 않는지를 감시한다는 것은 사리에 맞지 않다”고 말했다.
코스닥시장에서 불공정거래를 감시해서 투자자를 보호하는 ‘시장 감리’ 기능을 증권사 대표단체가 맡게 되면 회원사들에 대한 감리는 그 칼날이 약해질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하지만 증권업협회 노동조합의 상황인식은 초점이 완전히 다르다.
코스닥 역사는 재경부의 간섭의 역사라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다.
김영춘 노조위원장은 “정의동 코스닥위원장과 강정호 코스닥증권시장 사장이 둘다 재경부 국장 출신이라는 점을 주목하라”고 말한다.
형식상 코스닥위원장은 증협 회원총회에서, 코스닥증권시장 사장은 증협이 대주주인 주주총회에서 뽑기는 하지만, 사실상 재경부 입김이 결정적으로 작용하는 인사라는 게 그의 얘기다.
이미 증권업협회든 코스닥위원회든 재경부 입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조직인데 분리 운운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는 것이다.
그는 “코스닥위원회 분리독립은 조직의 확대와 중복화·비효율화를 가져올 것이며, 재경부 퇴역 관료들만 더 많은 자리를 확보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 위원장은 “코스닥위원회의 분리독립 여부가 문제의 핵심이 아니라, 오히려 증권업협회의 공공성을 강화하는 것이 벤처캐피털 등 일부에서 제기하는 문제에 대한 근본 해결책이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정부가 퇴역관료를 위한 자리 늘리기에 관심이 있는 것이 아니라 정말로 문제해결에 관심이 있는 것이라면, 코스닥위원회 사무국 설치 같은 조직확대 방안 마련에 골몰할 것이 아니라 증협이사회에서 증권사 소속이 아닌 공익이사의 숫자를 늘리는 등 공공성 강화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얘기다.
‘공공성 강화’에 초점 맞춰야 물론 벤처캐피털 쪽은 이런 방안에 대해서도 “아무리 공공성을 강화한다고 해도 증협은 결국 증권업계 이익을 대변할 것”이라는 불신어린 반응을 보인다.
현재 제출된 재경부 개정안도 부족하며, 코스닥위원회를 아예 증협에서 떼어내 완전독립체제로 가야 한다는 것이 이들 주장이다.
재경부, 증권업협회, 증권업협회 노동조합, 벤처캐피털 사이의 거친 입씨름은 이어지고 있다.
각자의 ‘밥그릇’이 달려 있는 문제라 모두 눈에 쌍심지를 켜고 양보할 틈을 주지 않는 모습이다.
하지만 이번에도 역시 정작 코스닥의 주인공들인 벤처기업과 투자자들은 논의과정에서 쏙 빠져 있는 느낌이다.
각 단체들은 저마다 재경부와 국회의원실을 들락거리면서 로비전을 시작했다.
그 잘나가던 코스닥시장이 작전과 급등락이 판치는 천덕꾸러기 신세로 전락할 판인데, 밥그릇 싸움만 거세지는 통에 다 된 밥까지 쏟아지는 것은 아닌지 ‘진짜 주인공’들의 걱정은 커가기만 한다.
코스닥시장은 한국 경제의 희망이라는 벤처기업들의 ‘희망’이고, 코스닥위원회는 결국 코스닥 투자자들의 주머니에서 나온 거래수수료로 운영된다.
지금이라도 코스닥의 진짜 주인들을 불러모아 ‘진짜 공공성’은 어떻게 찾아야 하는지 머리를 맞대야 하지 않을까.
나스닥시장도 구조조정한다
미국 나스닥시장도 지배구조를 조정하는 중이다.
나스닥시장은 원래 한국의 코스닥증권시장과 마찬가지로 미국 증권업협회(NASD)가 100% 지분을 갖는 독립법인으로 돼 있었다.
그런데 미국 증권업협회는 지난 4월 나스닥시장의 지분 78%를 투자자들에게 매각하고 나스닥시장 자체를 주식시장에 공개한다는 내용의 구조조정안을 회원증권사들의 압도적 지지로 결의했다.
그리고 지난 5월에는 지분 40%를 2800여명의 투자자들에게 3억3천만달러에 팔아넘기면서 1차 지분매각에 성공했다.
애초 일정대로라면 올해 가을까지 2차 지분매각을 마쳤어야 하지만, 최근 유럽 증시와 제휴논의 등이 일면서 다소 지연되고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궁극적으로 나스닥시장이 투자자들 손에 넘어가는 공개기업이 되리라는 구도는 유지되고 있다.
나스닥시장은 한국의 증권업협회와 코스닥위원회가 맡고 있는 등록관련 업무를 직접 맡고 있다.
장중 실시간 시장감시, 거래 관련 규정개발 및 채택, 공시업무 등도 마찬가지로 맡고 있다.
한국의 경우 매매체결, 상장기업 유치를 위한 마케팅활동, 공시업무는 코스닥증권시장이 맡는다.
그리고 시장감시, 거래 관련 규정, 상장업무와 관련해서 실무는 증권업협회가, 최종결정은 코스닥위원회가 담당하고 있는데, 재경부의 증권거래법 개정안이 통과되면 코스닥위원회가 이들 실무까지 하게 된다.
한편 미국 증권업협회에는 회원사에 대한 감독규정 제정, 해석, 분쟁조정, 매매심리 등을 맡는 자회사 NASD레귤레이션을 따로 두고 있다.
증권업협회 자체에는 자회사 이사선출 등 자회사 관리기능만 남겨두고 있는 것이다.
NASD레귤레이션은 지난 96년 구조조정 결과로 탄생했다.
이것 역시 증권업협회에서 회원사 관련 업무를 모두 맡고 있는 한국과 다른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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