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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소기업 육성, 충분조건은 맞춤형 지원
중소기업 육성, 충분조건은 맞춤형 지원
  • 박재성 중소기업연구원 연구위원
  • 승인 2013.09.25 14:1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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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민주화와 ‘고용없는 성장’ 극복위한 중소기업지원은 필수

<커버스토리③>  근혜노믹스 논쟁-중소기업살리기1

“가난한 땅으로 이주한 가난한 민족으로서 우리는 빈곤 속에서 풍요로움을 찾아내야만 했습니다. 우리 마음대로 이용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사람뿐이었습니다.… 그들은 꿈을 꾸고 혁신해가며 창조하는 것을 잊지 않았습니다.” (『창업국가』중 시몬 페레스의 메시지)

창업국가의 모범, 이스라엘의 성공 필요충분조건

최근 창업국가의 모범으로 꼽히고 있는 이스라엘의 창업성공과 관련하여 노벨평화상 수상자이며 이스라엘 대통령인 시몬 페레스가 비결을 묘사한 글이다. ‘결핍’, ‘생존욕구’, ‘무에서 유를 창조해야 한다는 절박함’, 이런 것들이 초기 산업의 시발점이 되었고 성공을 이루었다는 것이다. 키부츠, 모샤브와 같은 집단 농장에서 사막을 초지로 개간하고 사막에서 양식을 성공시키는 신화를 탄생시킨 것도 궁극적으로는 ‘할 수 있고, 해내고 말겠다는 의지’에서 비롯되었던 것이다. 이 같은 의지와 열정은 모든 창업의 성공요인이자 비결이라고 할 수 있으며 중소기업성공의 필요조건으로 간주되어야 한다.

또한 건국 직후 이스라엘의 성장모델은 정부가 산업성장을 주도하고 빈약한 자원을 최대한 동원하며 정부가 자원배분을 통제하는 등 우리나라와 다르지 않았다. 1970년대까지만 해도 이스라엘 정부와 중앙은행은 기업들마다 각기 상이한 환율을 적용하기도 하였고 기업의 매출과 전력소모량 등을 일일이 점검, 관리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1970년대 이후 정부주도형 경제성장은 곧바로 한계에 직면한다. 정부주도의 산업정책이 더 이상 가치있는 투자대상을 찾지 못하고 유가상승에 따른 인플레이션 충격마저 더해지자 이스라엘 경제는 1970년대 중반에서 1980년대 중반까지 이스라엘 판 ‘잃어버린 10년’에 접어든다. 무엇이 잘못된 것이었을까?

이스라엘은 건국 직후의 경제성장과 1970~1980년대의 정체를 두 차례의 전쟁에 비유한다. 첫째는 아랍세계를 일거에 제압했던 1967년의 ‘6일 전쟁’이고, 둘째는 비록 이겼으나 국가의 동원시스템과 운영효율성에 심각한 회의를 초래했던 1973년의 ‘욤 키퍼(Yom Kipper)’ 전쟁이다. 전자가 “생존할 것인가”의 문제였다면 후자는 “어떻게 키울 것인가”의 문제였고, 바꾸어 말하면 건국 직후의 성과가 반드시 1970년대 이후의 성공을 보장하지는 않는다는 것을 실감한 것이다.

이스라엘은 1990년대 대대적인 방향전환을 시도한다.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고 새로운 산업을 육성하기 위해서는 민간의 자발적인 투자가 중요하다는 것을 인식한 것이다. 이에 정부는 손실위험을 감수하되, 사업이 성공한 경우에는 정부지분을 과감하게 민간에 양도하는 방식을 도입하였다. 즉 초기지원 외에는 정부간섭을 없애고, 민간의 자발적인 시장참여를 유도하는 방식으로 지원체계를 재구축한 셈이다. 창업국가(start-up nation)로서 이스라엘 성공 신화가 시작된 것이다.

이처럼 “어떻게 키울 것인가”는 “생존할 것인가”와 사뭇 다른 과제이다. “생존할 것인가”가 중요했던 초기의 성장단계와 달리 “어떻게 키울 것인가”가 중요했던 1970년대 이후에는 자발성이나 개별성에 근거한 맞춤형 지원이 필요했던 것이다. 이것이 바로 중소기업성공의 충분조건이다.

의지와 열정이라는 필요조건과 맞춤형 지원이라는 충분조건이 더해질 때 중소기업성공을 위한 필요충분조건은 비로소 충족될 수 있다. 이스라엘이 바로 그것을 찾아낸 것이다.

▲ 5월 24일 ‘끝장토론, 일감 몰아주기 핵심 쟁점’이 열린 서울 여의도 국회 귀빈식당에서 박민식 의원이 개회사를 하고 있다. 새누리당 김기현(왼쪽부터) 정책위의장, 최경환 원내대표, 박민식 의원, 공정거래위원회 노대래 위원장. 제공=뉴시스

대기업의 수직적 지배로 중소기업의 유연성 실종된 한국

충분조건의 측면에서 국내 중소기업의 현황을 국제적 수준과 비교해 보면 아직 갈 길이 멀다. 세계은행에서 집계한 중소기업의 노동생산성은 미국, 덴마크, 아일랜드 등의 절반 수준이다. 또한 정부의 공식 사업체 통계에 포함되지 않는 비공식부문의 비중도 선진국의 2배 수준에 이르고 있다. 기술 창업을 지원하기 위한 연구개발(R&D) 투자규모는 2010년 기준 세계 5위권에 이르고 있으나, 연구개발 성과의 상용화 비중은 31%로 미국이나 영국의 70% 수준과 비교해 절반에 그치고 있다.

그나마 국제 간 비교에서 창업 의지는 여전히 선진국보다도 더 높은 수준을 보이고 있다는 점이 고무적이다. 그러나 창업 기회에 대한 체감, 창업 능력에 대한 확신, 실패에 대한 부담 등은 일본을 제외하고는 다른 국가와 비교하여 크게 취약하다. 즉, 중소기업 성공의 필요조건은 여전히 건재하나 충분조건은 충분하지 않다.

이는 산업 정책이 소수의 대기업과 부품 중소기업의 계열화를 통해 생산 효율로 경쟁력을 확보하는 외형 추구형 성장 경로에 치중하면서 다수 중소기업의 생태계를 살리고 중소기업의 자생적 성장 환경을 조성하는 데는 미흡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단적인 예로 유사한 조건의 중소기업이라 하더라도 대기업 계열사와 비계열 중소기업간 성과의 차이는 크다. 산업연구원에 따르면 자동차 산업의 계열사와 비계열 1차 협력사간의 평균 영업이익률은 2000년대 중반 3%p에서 2000년대말 5%p로 확대되었고, 가전 및 일반기계 분야에서도 두 그룹의 영업이익률 격차는 각각 -1%p에서 3%p, 1%p에서 3%p로 확대되었다.

대기업 주도의 소수에 의존하는 성장 전략은 대기업과 중소기업, 수출기업과 내수기업, 발주기업과 하청기업 등의 형태로 산업 생태계의 양극화를 초래하였다. 이로써 중소기업의 자활적 토양은 척박해지고 경영, 자본, 기술 등이 대기업에 종속되면서 중소기업만의 유연성이 실종된 것이다. 더욱이 대기업이 계열화를 통해 연관 산업의 중소기업을 수직적으로 지배하고, 2009년 4월 출자총액제한제도 폐지 이후 중소기업의 사업 영역을 수평적으로 침식하면서 이같은 경향은 더욱 가속화되었다. 중소기업의 설 자리가 점점 취약해진 것이다.

비창조적인 다수의 한계중소기업 중시해야

‘9988’은 이미 국민경제에서 중소기업의 중요성을 상징하는 말로 정착된 지 오래다. 2010년말 기준 중소기업은 전체 사업체의 99%, 전체 고용의 86.8%를 차지하고 있다. 더욱이 수출 대기업의 낙수 효과(trickle down effect)를 기대했던 경제 성장이 ‘고용 없는 성장’으로 고착화되면서 고용 창출을 위해서는 중소기업 육성이 필수적이라는 인식이 강화되었다.

고용 증가는 창출된 일자리에서 소멸된 일자리를 차감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이 중 일자리 창출은 창업과 같이 새로운 업체가 설립되거나 기존의 업체가 고용을 늘리는 경우 발생하며, 일자리 소멸은 기존의 기업이 시장에서 사라지거나 기존의 업체가 고용 규모를 줄이는 경우 나타난다. 따라서 고용 측면에서 중요한 것은 성장 가능성이 크고 사업 확장 속도가 빠른 기업이다. 99%의 중소기업 가운데 이런 기업은 7% 정도인 것으로 조사되고 있다. 영미권에서는 이를 점프력이 뛰어난 초원의 야생 동물에 빗대 ‘가젤(Gazelles)'이라고 지칭한다.

이를 의식한 것이 새 정부의 ‘창조경제’이다. “창의성을 경제의 핵심 가치로 두고 과학기술과 정보통신기술(ICT)의 융합을 통해 산업과 산업이 융합하고, 산업과 문화가 융합해 새 부가가치를 창출하고, 새 일자리를 만들어내는 것”이라는 창조경제의 정의는 창조성이 유도할 새로운 산업의 부상과 이에 따른 고용 효과를 강조하고 있다.

이 같은 창조경제의 인용이 어디에서 유래했는가에 대해서는 추측이 분분하나, 그 중 하나로 지리경제학자 리처드 플로리다의 ‘창조도시’론이 꼽히고 있다. 그가 제시하는 샌프란시스코, 보스턴, 워싱턴DC, 오스틴, 시애틀 등 창조도시의 특성은 예술가, 음악가, 동성애자와 첨단기술산업 종사자들이 어울려 살며, 기술(technology)과 인재(talent), 관용성(tolerance) 등 ‘3T’가 지배한다. 이 같은 창조도시의 주요 산업은 과학과 엔지니어링, 연구개발, 기술산업, 디자인, 음악, 보건, 금융, 법률 등의 전문직 산업이며, 이 창조 부문의 일자리가 미국 내 일자리의 30%를 차지하고 이들 일자리의 임금이 미국 전체 임금의 47%를 차지한다.

창조경제가 이에 근거한다면 창조경제란 다양성을 집적화(clustering)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집적화된 다양성의 상호작용을 통해 새로운 산업이 정의되고 고부가가치 창출이 가능하다.

그러나 이것이 정책의 명제로 부상할 경우 매력적인 시대적 호소력으로 말미암아 다양성의 집적과 달리 비창조적인 것을 외면하는 다양성의 제한을 초래할 가능성도 크다. 312만 개에 이르는 중소기업 사업체를 단일한 기준으로 인식하기는 힘들다. 그 중에는 7%에 불과한 가젤형 고성장 기업도 있으나, 사업자의 이익이 기초생계비에도 못 미치는 한계 기업도 존재한다. 따라서 모든 중소기업이 창조경제형 기업일 수는 없다.

더욱이 창조가 성장의 논리와 결합하여 창조경제형 성장과 고용창출이 전면에 부상할 경우 대-중소기업 간의 불공정 거래, 대기업의 중소기업 사업 잠식, 대기업의 일감 몰아주기 등 규제와 감시, 정부 개입이 필요한 공정 거래를 위한 환경 조성의 중요성이 퇴색할 수 있다.

중소기업 육성을 위한 ‘창조’는 유형이 상이한 중소기업 각각에 대해 적합한 성장전략을 제시하고 자발적인 성장을 위한 환경을 조성하고 기반을 제공하는 데 주력해야 한다. ‘창조’라는 이름이 중소기업 성공을 위한 기반이 아니라 깃발이 될 경우 중소기업 성공의 충분조건은 지나치게 단순화될 수 있다.

중소기업의 세 가지 유형별 성장 전략 필요

개별 중소기업의 특성을 고려한 성장을 위해서는 크게 세 가지 범주에서 중소기업의 유형을 구분하고 각각 적합한 중소기업의 성장 전략을 모색하는 것이 방안일 수 있다. 세 가지 유형의 구분은 종사자수에 따라 일괄적으로 범주화된 중소기업 내 기업 간 차이를 인식하고, 이 차이에 따라 중소기업의 문제를 유형화함으로써 중소기업 육성 전략의 적합성을 제고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첫째, 생산성 개선이 필요한 산업의 지원이다. 이는 전체 사업체 중 83%를 차지하고 있는 영세사업체(종사자수 5인 미만 사업체)의 생산성 향상 및 구조조정과 관련된다. ‘도소매업’, ‘숙박 및 음식점업’, ‘개인서비스업’ 등의 과도한 진입 조정과 업종 전환 유도 등을 포함한 구조정 지원, 사회 구조 변화에 따라 수요가 증가하고 있는 ‘전문, 과학 및 기술 서비스업’, ‘교육서비스업’, ‘보건 및 사회복지’ 등 서비스업 분야의 진입규제 완화 및 경쟁력 강화 등이 포함된다.

둘째, 상용화 지원이 필요한 산업의 지원이다. 창조경제의 구현과 밀접히 관련된 분야로 연구 개발의 상용화 수준 제고, 기술 벤처의 글로벌 네트워크와의 연계 지원, 지적 재산권의 상품화 및 유동화 등을 들 수 있다. 최근 주목 받는 이스라엘 벤처의 성공 비결도 미국을 중심으로 하는 글로벌 기술 생태계로의 성공적인 편입 결과임을 참고할 수 있다.

셋째, 경쟁력 강화가 필요한 산업, 즉 글로벌 경쟁에 노출된 산업의 지원이다. 부품, 소재, 기계 등 제조업 부문 중소기업을 포함한다. 이 유형에서는 중국, 동남아 국가 등 후발국의 추격을 일축하면서 일본, 독일 등 선진국과의 기술 격차를 축소해야 하는 과제에 직면해 있다. 중소기업이 글로벌 경쟁에서 자신감을 획득하고 경쟁 우위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품질관리, 기술개발, 시장개척 등 경영 각 분야에서 체계적 지원이 필요하며 우수 인력의 확충이 중요하다.

중소기업의 성공적인 육성을 위해서는 이 같은 유형별 특성을 기초로 유형별 특성을 반영한 장기적인 성장 전략이 정책의 이정표로 확립되어야 한다. 중소기업 성장을 위한 유형별 충분조건이다.

중소기업에 대한 맞춤화된 창조적 접근 요구돼

일반적으로 중소기업(small and medium-sized enterprises)이란 그 단어의 의미대로 대기업과 비교하여 상대적으로 작은 기업을 가리킨다. 그러나 ‘작다’는 것은 종사자 수나 매출 등에 따른 외형적 구분일 뿐, 중소기업이 국민경제에서 차지하는 중요성은 한층 부각되고 있다. 대기업이 강력한 독과점적 시장 지배와 고착화된 시장질서에 안주한다면 중소기업은 끊임없이 혁신하고 도전함으로써 산업을 재해석하고 성장과 고용을 촉진한다는 기대 때문이다. 새 정부의 창조경제가 중소기업 성장을 역설하는 것도 이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같은 중소기업의 성장을 구체화하기 위해서는 중소기업은 이질적이며 다원화된 집합체라는 인식이 필요하다. 어느 하나의 기준으로 중소기업을 설명하기는 힘들며 어느 하나의 방향으로 중소기업을 독려하기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사람은 같은 크기의 옷을 입을 수 없다(One size does not fit all)”. 창조경제가 시대정신이라면 중소기업 정책도 창조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그것은 중소기업의 다양성을 고려한 성장 기반을 조성하는 것, 즉 중소기업의 상이한 유형에 상응하는 맞춤화된 충분조건을 제공하는 것이다. 이로써 성공에 대한 열망이라는 중소기업 성공의 필요조건이 움을 트도록 하는 것이다. E21

 

 

 

본 기사는 <이코노미21> 8월호 커버스토리 '근혜노믹스 논쟁'에 게재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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