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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 수레만 요란’ 물 건너간 재벌개혁
"빈 수레만 요란’ 물 건너간 재벌개혁
  • 김진방 인하대 교수·경제학부
  • 승인 2013.09.26 11:2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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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단소송제, 지주회사 규제 등 당선 후 모두 후퇴, 경제력 집중억제와 소유지배괴리 개선은 아예 부정적

<커버스토리⑤> 근혜노믹스논쟁-경제민주화1

2012년의 총선과 대선은 우리나라의 정치경제사에서 획기적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의 의미를 갖는다. 경제민주화가 우리 시대 우리 사회의 지상과제로 부각되고 인식되었기 때문이다. ‘경제민주화 5대 분야 35개 실천과제’를 제시했던 대통령 후보가 당선된 뒤에는 ‘경제민주화’를 『박근혜정부 국정과제』에서 애써 지우긴 했지만 국민의 생각에서 지우지는 못할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동의할 수 있도록 경제민주화를 분명하게 정의하기란, ‘창조경제’를 그렇게 정의하는 것만큼은 아닐지라도 매우 어렵다. 정의는 내포와 외연을 분명히 밝히는 것이다. 내포를 분명히 밝히기 어려울 때는 외연이라도 분명히 밝히려 애쓸 수 있다. 외연도 분명히 밝히기 어려우면 일부 요소를 나열하는 게 도움이 될 수 있다. 귀납적으로 접근하는 것이다.

창조경제의 일환으로 전락한 재벌정책

경제민주화의 한 요소 또는 수단이 재벌개혁이라는 데 많은 사람들이 동의할 것이다. 그래서 새 대통령이 후보 시절에 ‘경제민주화’의 일부로 ‘총수일가의 사익편취행위 근절’을 약속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약속은 당선 후 작성된 『국정비전 및 국정과제』에 들어있다. 비록 ‘일자리 중심의 창조경제’를 위한 여러 전략적 과제들 중 하나로서 들어있지만 어쨌든 경제민주화처럼 지워지지는 않았다.

‘총수일가의 사익편취행위 근절’이 재벌개혁 또는 경제민주화와 어떤 논리적, 실천적 관계를 가지는지를 따지는 일은 각각의 의미와 의의를 분명히 밝히기 위해서도 필요하다. 우리는 종종 수단을 보고서야 목적을 이해할 수 있고, 목적을 듣고서야 수단을 평가할 수 있다. 그러나 대통령 후보나 그 주변에서 그 둘의 관계에 대한 발언이 거의 없었기에 그에 대한 그들의 생각을 알기 어려웠다.

새 대통령의 후보 시절 공약집에는 경제민주화라는 표제 아래 ‘총수일가의 사익편취행위 근절’만 아니라 ‘기업지배구조 개선’과 ‘금산분리 강화’도 들어있다. 그리고 그 셋은 모두 『국정비전 및 국정과제』에서도 나란히 ‘일자리 중심의 창조경제’를 위한 전략적 과제로 포함되었다. 그렇지만 그 과제는 더 이상 경제민주화를 위한 것이 아니다. 그래서 그 세 약속 또는 과제와 경제민주화의 관계에 대한 새 대통령과 그 주변의 생각은 이제 더욱 알기 어렵게 되었다.

새 대통령이 정부에 부여한 이 세 과제는 경제민주화가 부각되기 이전에는 재벌개혁의 요소로서 논의되던 것들이다. 새 대통령의 후보 시절 공약집에서는 재벌이라는 말이 한 번도 사용되지 않았다. 당연히 ‘재벌개혁’도 사용되지 않았다. 사실 ‘재벌개혁’은 그다지 적절한 말이 아니다. 개혁의 대상은 재벌이 아니라 재벌체제이어야 한다. 물론 새 대통령과 그 주변에서는 ‘재벌체제’가 더 부담스런 말일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재벌개혁 또는 재벌체제개혁으로 불릴 만한 것은 하려 하지 않는다.

50년대 이후 재벌정책의 시작과 변모

『박근혜정부 국정과제』에도 포함된 재벌 관련 세 과제의 내용을 지금까지의 재벌정책과 비교해 검토해보자.

한국에서 재벌이라는 단어가 회자되기 시작한 것이 1950년대 중반인데, 이 무렵 재벌 관련, 주로 제기된 문제는 ‘정경유착’이다. 1960년대에는 하나 더해졌다. 독과점으로 인한 높은 가격이 그것이다. 특히 1964년에 드러난 ‘삼분폭리사건’은 큰 반향을 일으켰다. 1970년대에는 소유집중문제가 언론과 대중의 비판적 관심을 끌기 시작했다. 일부 선택된 기업이 국가의 지원과 보호를 받으면서 빠르게 성장했는데, 국민들은 그 성장의 과실을 나눠 갖기를 요구했다. 그래서「기업공개촉진법」이 제정되고, 대통령의「기업공개 특별지시」가 내려졌다.

재벌정책이 소유 집중을 넘어 재벌그룹의 확장에 초점을 맞추기 시작한 것은 1970년대 중반이다. 이 무렵 ‘문어발 확장’ 이라는 말 등장했는데, 두 가지 의미로 사용되었다. 하나는 지나친 사업다각화고, 다른 하나는 중소기업 영역침해다. 그리고 이에 대한 정부의 대책들 중 하나가 1974년부터 시행된 여신관리제도다. 이 제도에 의해 ‘동일인’이 지배하는 ‘계열기업군’이 지정되고, 이들에 대한 여신편중을 막기 위한 조처가 취해졌다.

재벌그룹의 확장은 계열회사 사이의 출자에 의존했는데, 본격적으로 문제가 제기된 때는 1980년대 전후다. 경제력집중이라는 말이 공식적인 지위를 갖게 된 것도 이때다. 1980년 말에 제정된 「공정거래법」이 ‘과도한 경제력집중의 방지’를 목적으로 규정한 것이다. 그러나 이때도 이 목적에 부합하는 수단을 규정하지는 않았다. 그런 수단이 「공정거래법」에 규정된 것은 1986년 개정을 통해서다. 출자총액 제한, 상호출자 금지, 지주회사 설립 금지, 금융보험사 의결권 제한 등의 규제가 한꺼번에 도입된 것이다. 그리고 이 무렵부터 재벌정책과 경제력집중 억제시책이 거의 같은 것으로 간주되었다고 할 수 있다.

▲ 경제민주화국민본부 등 시민단체가 5월 16일 오후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대리점주 죽음 추모 및 남양유업 사태와 CJ대한통운 택배 파업 사태 등 '슈퍼갑' 횡포 문제의 즉각적인 해결과 입법을 호소하는 기자회견을 갖고 있다. 제공=뉴시스
1997년 경제위기를 거치면서 경제력집중보다 더 많이 회자된 단어들 중 하나가 기업지배구조다. 특히 기업경영의 책임성과 투명성을 제고하기 위한 기업지배구조 개선이 강조되었다. 그리고 그 방안으로 「상법」, 「증권거래법」, 「외부감사법」 개정과 「집단소송법」 제정이 추진되었다. 이러한 법률 개정이나 제정은 주로 기업의 이해당사자, 특히 소수 주주의 이익을 보호하고 그들에 의한 규율을 강화하는 방안이라 할 수 있다. 재벌정책에 새 차원이 더해진 것이다.

그리고 최근에는 여기에 동반성장과 경제민주화가 더해졌고, 그 핵심으로 대기업과 중소기업 또는 영세상인 사이의 거래 및 경쟁 관계가 부각되었다. 그리하여 「하도급법」의 개정으로 3배 손해배상제도가 도입되었고(2011. 3. 29), 동반성장위원회에 의해 중소기업 적합 업종이 다시 지정되었고(2011. 9. 27), 「유통산업발전법」의 개정으로 대규모 점포의 영업시간 제한이 가능해졌다(2012. 1. 17). 이에 비해 일감 몰아주기에 대한 과세를 명시하는 「상속증여세법」 개정이나 지배주주에 의한 회사기회유용 등을 어렵게 하는 「상법」 개정은 경제위기 이후 재벌개혁의 일환으로 추진한 입법의 연장이라고도 할 수 있다.

부족하고 어긋난 박근혜 정부의 재벌정책 내용들

이처럼 우리나라에서 재벌은 시간이 지나면서 다른 이유로 다른 측면이 주목을 받게 된다. 80년대 경제력집중 억제와 1997년 외환위기 이후 기업지배구조 개선에 이어, 최근에는 일감 몰아주기라는 특정 행태가 주목을 받았다. 새 대통령의 후보 시절 공약이나 정부에 부여한 재벌 관련 정책 과제도 이런 흐름에 부합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 내용을 들여다보면 부족하거나 어긋난 부분이 눈에 띈다.

01 경제력 집중 대 경제력 남용 새 대통령이 후보 시절에 상대 후보와 비교하여 뚜렷한 차이를 드러낸 것은 경제력 집중에 대한 인식이다. 박근혜 후보는 공약집에서 ‘공정하고 투명한 시장경제 확립’을 경제민주화를 위한 핵심과제로 제시했으며, 그에 앞서 다른 여러 기회에 경제력 남용 방지를 강조했다. 그리고 경제력의 남용이 경제력의 집중에서 비롯된다는 지적과 경제력의 집중을 야기하는 구조의 개혁이 필요하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직접적인 대응을 피하면서, 그런 개혁으로 인해 발생할 수도 있는 비용을 강조하거나 제시되는 수단의 실효성을 부인했다. 경제민주화가 피해야 할 것으로 ‘국민경제에 줄 수 있는 큰 부담’과 ‘부작용’을 언급하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02 순환출자 금지 구체적 사안에 대한 발언에서도 경제력집중 억제에 대한 새 대통령의 부정적 견해가 잘 드러나는데, 대표적인 것이 순환출자에 대한 발언이다. 박근혜 후보는 신규 순환출자 금지를 공약하면서도 기존 순환출자 유지를 허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재벌그룹의 기존 소유구조에 조금이라도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제도는 도입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이런 방향에 못지않게 의미 있는 박근혜 후보의 발언은 기존 순환출자 해소의 ‘비용’에 관한 것이다. 재벌그룹의 순환출자 해소는 일부 계열사가 갖고 있는 일부 계열사 주식을 매각하는 것이며, 이 경우 해당 기업으로 주식 매각 자금이 유입된다. 그리고 이때 모든 계열사의 내부 지분율을 예전처럼 유지하려면 총수 일가가 개인 자금으로 그만큼의 주식을 매수해야 한다. 기업으로 유입되는 자금이 총수 일가에게서 나와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박근혜 후보는 순환출자 해소를 위해서는 기업이 ‘비용’을 지출해야 하는 듯이 말하면서 기존 순환출자에 대한 규제에 반대한다. 오해에서 나온 발언일 수도 있으나 재벌총수와 재벌기업을 동일시하는 생각을 드러낸 것일 수도 있다. 그리고 이때 재벌그룹에 대한 총수의 지배력은 보장되어야 한다는 생각도 함께 드러내었다.

03 지주회사 규제 우리는 종종 무엇을 하겠다는 누군가의 발언에서보다는, 무엇을 하지 않겠다는 발언이나 아예 언급을 하지 않으려는 태도에서 더 많은 것을 알게 된다. 그런 예가 지주회사 규제에 대한 박근혜 후보의 태도다. 1997년 경제위기 이후 진행된 재벌기업의 대규모 유상증자와 2세 내지 3세로의 승계 및 분할은 총수 일가의 지배력 약화로 이어질 수 있었다. 이를 피하기 위해 재벌이 동원한 수단은 두 가지인데, 하나가 순환출자고 다른 하나가 지주회사 전환이다. 지주회사에 대한 행위 규제가 완화되면서 지주회사 전환은 총수일가의 지배력 강화 및 세습을 위한 편리한 수단이 되었다. 이에 대해 박근혜 후보는 아무런 방안을 내놓지 않았다. 언급조차 하지 않았다. 이런 태도는 새 대통령이 총수일가의 지배력 강화와 세습을 오히려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지 않는가라는 의심을 갖게 한다.

04 금융보험회사 의결권 행사 제한 박근혜 후보가 실행하겠다고 약속한 것들 중에서도 이상한 점이 발견된다. 금융보험사의 의결권 행사를 ‘단독금융회사 기준으로 5%’로 제한하겠다고 말하면서 그것을 금산분리 강화 방안으로 규정한다. 그런데 현행 공정거래법은 금융보험회사로 하여금 지배주주, 계열사 등 특수관계인과 합하여 15% 이내로만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게 하고 있다. 이 현행 규제가 공약대로 바뀌면 특수관계인과 합하여 15%보다 많은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고, 실제로 그렇게 될 가능성이 크다. 그런데도 박근혜 후보는 ‘단독금융회사 기준 5%’를 금산분리 강화 방안이라고 부른다. 금산분리 강화가 금융의 건전한 발전과 경제력집중 억제를 위해 필요하지만, 박근혜 후보가 내놓은 방안은 금산분리가 아닌 금산결합의 강화를 가져오기 쉽다. 그런 사실을 인지했는지 『박근혜정부 국정과제』에서는 방안을 명시하지 않은 채, 금융보험회사의 ‘의결권 제한 강화’라는 방향만을 제시했다. 그러나 요즘 논의되고 있는 방안대로 시행된다면 기껏해야 의결권 제한이 완화되지 않는 수준에 그칠 것이다.

05 사외이사 선임에서 지배주주 배제 새 대통령은 기업지배구조 개선에 대해 소극적이긴 했지만 경제력집중 억제에 대해서처럼 부정적이지는 않았다. 박근혜 후보는 공약집에서 ‘경제민주화’라는 큰 제목 아래 ‘기업지배구조 개선’을 작은 제목으로 두고 그 밑에서 네 가지를 약속했는데, 그 중 하나가 ‘소액주주 등 비지배 주주들이 독립적으로 사외이사를 선임할 수 있는 시스템 구축’이다. 30대 재벌 총수일가가 계열사와 함께 소유하는 주식지분이 평균 40%를 상회하는 현실에서 이런 시스템을 어떻게 구축하겠다는 것인지 의심스럽긴 하지만, 그 약속이 온전히 지켜지기만 한다면 재벌체제에 적잖은 변화가 생길 것이다. 그런데 이 약속이 『박근혜정부 국정과제』에서는 그것의 파기와 다름없는 내용으로 대체된다. ‘감사위원을 맡을 사외이사는 다른 이사와 분리 선출하는 방안을 마련’하겠다는 것이다. 분리 선출이 독립적 선임일 수 없음을 모르지 않았을 텐데 그에 대한 어떤 해명도 없었다.

06 다중투표제와 집중투표제 도입 새 대통령이 후보 시절에 기업지배구조 개선과 관련하여 내건 약속 중에는 ‘집중투표제, 전자투표제 및 다중 대표소송의 단계적 도입’도 있다. 우리나라 재벌그룹의 가장 중요한 특징이 다단계 출자이고, 이런 다단계 출자에서 주주 대표소송이 가지는 의의는 매우 제한적이다. 재벌의 부적절한 거래가 주로 비상장회사를 통해 이뤄지고, 그런 부적절한 거래로 인한 손해가 결국에는 그 비상장회사의 대주주인 상장회사 및 일반 주주들에게 넘겨지지만, 주주 대표소송은 이 문제의 해결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런 경우에는 다중 대표소송이 얼마간 도움이 될 수 있다. 그런데 이 다중 대표소송이 『박근혜정부 국정과제』에서는 언급조차 되지 않는다.

다중 대표소송의 실종이 집중투표제의 미래가 아닐지 의심하는 것은 당연하다. 집중투표제가 이미 도입되어 있는데도 다시 도입하겠다는 말은 「상법」 제382조의2 제1항에서 ‘정관에서 달리 정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이라는 문구를 삭제하겠다는 뜻일 테다. 대부분의 상장회사가 집중투표제를 정관으로 배제하고 있는 현실에서 이 문구의 삭제는 커다란 의미를 가질 수 있다. 집중투표제를 도입하겠다는 약속이나마 제대로 지켜지기를 기대해 본다.

07 집단소송제 새 대통령이 후보 시절에 기업지배구조 개선과 관련하여 언급하지 않음으로써 반대한 것들이 여럿 있는데, 집단소송제가 그들 중 하나다. 박근혜 후보가 집단소송제 도입을 약속하긴 했다. 그러나 그 도입은 ‘공정거래 관련법의 집행체계 개선’의 일환이며, 오로지 공정거래법 위반에 대해서만 적용된다. 현행 「증권관련 집단소송법」을 개정하여 지배주주와 경영진의 배임에 대해 주주들이 집단소송을 제기할 수 있게 하겠다는 것이 아니다. 더 정확히 말하면, 그런 법 개정이나 제정은 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여기서 기업지배구조 개선에 대한 새 대통령의 소극성이 가장 잘 드러난다고 하겠다.

08 일감 몰아주기 하나만 더 지적하기로 한다. 박근혜 후보의 공약집에서 ‘경제민주화’라는 큰 제목 아래에 놓인 다섯 개의 작은 제목 중 넷째가 ‘대기업집단 총수일가의 불법 및 사익편취행위 근절’이고, 그와 관련된 세 약속 중 하나가 ‘일감 몰아주기 등 총수일가의 부당내부거래 금지규정을 더욱 강화하고 부당 내부거래로 인한 부당이익은 환수’하겠다는 것이다. 문제는 이 약속에 결여된 구체성이다. 이에 비해 『박근혜정부 국정과제』는 조금은 더 구체화된 방안을 제시한다. 그렇지만 그 방안만으로 총수 일가의 사익편취행위 근절을 기대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공정거래법」 3장에 신설하겠다는 ‘총수 일가의 사익편취행위 금지규정’이 선언적인 내용에 불과할 가능성이 크며, 부당지원행위의 위법성 성립요건을 현행 ‘현저히 유리한 조건’에서 ‘상당히 유리한 조건’으로 바꾼다고 해서 법원 판결이 달라질 것 같지는 않다. 경제력집중 억제에 대해 부정적일 뿐만 아니라 기업지배구조 개선에 대해서도 소극적인 새 대통령이 달리 어떻게 총수 일가의 사익편취행위를 근절하려 할런지 짐작되는 게 없진 않지만 그 효과가 얼마나 클지 그리고 얼마나 오래갈지 의심스럽다.

대통령 선거 후 실종된 재벌개혁 방안

우리나라에서는 소수의 개인 또는 가족이 상대적으로 적은 주식 지분을 소유하고서도 많은 대기업을 절대적·배타적으로 지배하는데, 이런 재벌체제의 부정적 측면을 경제력집중과 소유지배괴리로 나눌 수 있다.

경제력집중은 소수의 개인 또는 가족이 많은 대기업을 절대적·배타적으로 지배하는 상황을 가리킨다. 집중된 경제력은 기업과 시장을 넘어 사회 여러 영역에서 행사되고, 국민경제의 왜곡을 넘어 민주주의에 대한 위협이 되고 있다. 소유지배괴리는 소수의 개인 또는 가족이 상대적으로 적은 주식 지분을 소유하고서도 절대적·배타적으로 기업을 지배하는 상황을 말한다. 이 경우 지배주주가 사적 이익을 위해 기업의 이익을 침해할 동기와 가능성이 크다.

새 대통령은 후보 시절에 경제민주화를 핵심 공약으로 내세우면서 재벌문제와 관련해서도 여러 가지 방안을 제시했었다. 그러나 그 방안들은 대부분 재벌의 행위를 규제 내지 규율하는 것이고, 재벌의 소유지배구조에는 영향을 미치지 않는 것이었다. 특히 경제력집중 억제에 대한 새 대통령의 견해는 매우 부정적이다. 기존 순환출자 유지를 허용해야 한다는 주장에서 이런 견해가 잘 드러낸다.

예상되긴 했으나 그래도 놀라운 변화가 대통령 선거 후에 일어났다. 『박근혜정부 국정과제』 에서 ‘경제민주화’가 실종된 것이다. 140대 과제 중 재벌 관련 과제가 예닐곱 개인데, 이들이 모두 ‘일자리 중심의 창조경제’로 명명된 국정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과제로 분류되었다. 그나마 그 내용은 후보 시절의 공약이나 후보 측 인사의 발언에 비하면 많이 후퇴한 것이며, 일부는 아예 빠져버렸다. 예컨대 “소액주주 등 비지배 주주들이 독립적으로 사외이사를 선임할 수 있는 시스템 구축”이라는 공약이 “감사위원을 맡을 사외이사는 다른 이사와 분리·선출하는 방안 마련”이라는 과제로 바뀌었다. 후보 시절에 그렇게 강조했던 일감몰아주기 등의 부당내부거래에 대해서는 기껏 현행 공정거래법에 규정된 위법성 성립 요건을 “현저히 유리한 조건”에서 “상당히 유리한 조건”으로 바꾸는 데 그치고 있다. 비록 “총수 일가의 사익편취행위 금지규정 추가 신설”을 추진계획에 포함시키지만 구체적이지 않다.

재벌체제를 고치는 게 아니라 재벌의 행동을 바꾸려는 박근혜정부의 시도는 비록 성공하더라도 그 효과가 제한적이고 일시적이기 쉽다. 그런 효과나마 기대할 수 있으려면 그 시도가 적극적이고 지속적이어야 한다. 그러나 5대 국정목표나 140대 국정과제가 그런 적극성을 보여주지 않는다. 그리고 이제는 재벌이 나서서 박근혜정부의 (재벌개혁에 대한) 소극적 태도를 부정적 자세로 바꾸려 하고 있다. E21

본 기사는 <이코노미21> 8월호 커버스토리 '근혜노믹스 논쟁'에 게재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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