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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에 대한 ‘평등한 법치’가 재벌 규제 해결책
기업에 대한 ‘평등한 법치’가 재벌 규제 해결책
  • 임영재 KDI교수·국제정책대학원
  • 승인 2013.09.27 1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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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개혁은 경제정책에 대한 정치적 접근법…일감 몰아주기, 순환출자 등 강력한 법 집행으로 충분

커버스토리⑥-근혜노믹스 논쟁-재벌개혁2

21세기 이후 한국 경제·사회 저변을 뿌리째 흔들고 있는 도전들 중 하나는 경제양극화가 지속적으로 심화되고 앞으로도 더욱 심각해지리라는 사실이다. 1997년 IMF 경제위기 이전까지 절반이 넘는 국민들이 기업들이 제공했던 안정적이며 괜찮은 일자리들 덕분에 스스로를 중산층이라고 자부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그런 일자리들이 대폭 줄어들면서 중산층에 속했던 상당수의 국민들이 상대적 빈곤층으로 전락해가고 있다.

중산층의 상대적 빈곤층 전락이 경제민주화 요구동력

이러한 양극화 과정은 크게 두 가지 현상으로 나타나고 있다. 그 첫 번째는 괜찮은 일자리들이, 2000년대 이후 상시 기업구조조정의 결과 과거 안정성을 상실하면서 조기 퇴직자들을 양산하게 되는 현상이다. 이로 인한 더욱 큰 비극은 그 퇴직자들이 제로섬 게임의 법칙이 적용되는 자영업에 몰려들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다. 이들 자영업은 진입 문턱이 낮아 수많은 사업자들이 쉽게 몰리는 반면, 그 신규 자영업자들은 변함없는 총수요를 나누어 가져야 하므로 대부분이 머지않아 퇴출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 바로 제로섬 게임의 법칙이다. 양극화 과정의 두 번째 현상은 그나마 자영업의 함정에 빠져들지 않은 또 다른 상당수의 국민들이 도산위험이 큰 중소기업에 괜찮지 못한 일자리를 갖고 있어, 중산층에서 빈곤층으로 빠르게 전락해가고 있는 것이다.

이 위기는 2012년 총선과 대선 과정에서 경제민주화에 대한 정치적 욕구로 폭발했다. 흔히 1987년 개정된 헌법의 제119조 2항과 연관되어지는 경제민주화라는 정치적 슬로건은, 앞서 언급한 한국 경제·사회 저변의 큰 격류들이 부딪치면서 생겨난 긴장과 갈등이 그 분출구를 찾는 과정에 다름 아니다.

과거에는 재벌 대기업들이 우리나라 다수 국민들을 중산층으로 도약하게 만들어 준 상징적 역할을 수행하였다. 하지만 이제는 총 취업자의 고작 10%에게만 일자리를 제공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나마도 조기퇴직의 위험이 매우 높은 일자리들이다. 반면 총 취업자의 90%에게 자리를 제공하고 있는 중소기업들은 급변하고 있는 국내외 환경들의 무게에 눌려서 언제 도산할지 모르는 상태이다. 이러한 사실들을 종합해 볼때 양극화를 향해 치닫고 있는 격류의 흐름이 곧 완화되리라고 기대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지금의 경제민주화 정책들 중 재벌정책들 또는 동반성장 정책들은 적지 않는 경우에 있어서 양극화 위기라는 문제의 구조적 원인들에 초점을 맞추기 보다는 드러난 증상들에 때 늦게 집착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양극화의 결과가 정치적으로 표출된 모습이니 그럴 수밖에 없다고 위안해 볼 수도 있으나, 문제의 심각성은 이러한 정책들이 양극화 흐름을 완화시키고 한국경제발전의 잠재력을 이끌어 내기는 커녕, 상황을 더욱 악화시킬 가능성이 크다는 데 있다.

경제문제에 대한 정치적 접근해결책은 비효율적

우리나라의 수많은 중소기업들 중 2/3는 대기업과 하도급관계에 있고 이들은 독립 중소기업들보다 그나마 평균적으로 나은 경쟁력을 보유하고 있다. 2000년대 이후 누적되어 온 우리나라 중소기업 정책의 가장 큰 문제 중 하나는 경쟁력이 없는 다수의 중소기업들을 정치적인 이유로 연명시켜준 수단이 되었다는 사실이다. 그 결과 중소기업 지원에 투입한 많은 예산들은 경쟁력 있는 중소기업들에 대한 지원수단이 되지 못하고 마치 밑 빠진 독에 쏟아 부은 물처럼 되고 말았다.

이는 더 큰 정치적 시각에서 보자면, 아직 미비한 사회보장시스템 하에서 (한계 중소기업들을 구조조정할 경우 나타날) 대량실업의 충격을 피하기 위해 중소기업정책을 사회정책 수단으로 사용한 셈이다. 그러나 중소기업정책을 본래의 목적이 아닌 사회정책 수단으로 전용한 것은 사회적 목적의 효율적 달성에도 실패했을 뿐 아니라 문제의 소지를 더욱 키웠다는 점에서 매우 비효율적이다.

재벌대기업의 하청기업들에 대한 낙수효과를 키우기 위한 재벌정책들(대표적으로 공정거래위원회의 하도급정책 등)의 효과가 유의미하게 나타나기 위한 필수 전제조건의 하나도 바로 한계중소기업 구조조정이다. 그렇지 않을 경우 낙수효과는 대기업과 1,2차 하청관계에 있는 소수의 중소기업들에게 국한될 뿐이며, 그 아래의 그나마 경쟁력 가능성 있는 중소기업들은 정부의 정책지원을 받는 한계중소기업들과 소모전의 늪에 빠져 버릴 것이다. 현재의 동반성장 정책들도 크게 보면 이러한 정책지원 범주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대기업의 계열사 물량 몰아주기는 중소기업 침탈행위

하도급정책에 이어, 현재 재벌정책 논의 중 일반의 큰 관심을 받고 있는 물량 몰아주기 관련 정책, 환상형 순환출자 정책 등을 살펴보자. 재벌계열사들 간 내부거래가 당초 IMF 경제위기 직후에는 우량계열사의 부실계열사에 대한 지원이라는 형태를 띠었으나, 2000년대 이후에는 현대 글로비스 사례에서 보듯이 재벌이 자녀들에게 아주 작은 비용으로 계열사 경영권 또는 부를 넘겨주는 수단으로 변모하였다. 이는 우리나라 재벌들이 2세 경영에서 3세 경영으로 넘어가는 과도기 시점에서 (수적으로 많아진) 3세들에게 해당 몫을 배분해주기 위한 매우 비용효과적인 수단들로 작동하였다. 그런데 경제양극화 위기 속에서 이러한 물량 몰아주기는 한정된 총량의 내수 서비스시장을 놓고 중견기업들과 재벌대기업들이 제로섬 게임을 벌인 셈이었고, 따라서 경제양극화의 부정적 체감효과를 크게 만든 결과를 초래하였다. 재벌들이 물량몰아주기라는 계열사 간 내부거래의 주요 수단으로 삼은 것이 물류, 광고, MRO(maintenance, repair and operation; 사무용품 등의 소모성 자재) 등 핵심사업의 지원을 위한 서비스들이었고 이는 그 이전에는 중소·중견 기업들이 공급하고 있던 내수시장이었기 때문이다.

정부는 공정거래법, 세법, 회사법 등의 다양한 정책수단들을 동원하고 있으나 우리 사회 저변의 경제양극화 격류의 흐름을 고려한다면 때늦은 감이다. 그런데 이러한 정부의 정책대응들 중에 특기할 것은 회사법을 통한 정책대응이다. 앞서 언급한 현대 글로비스 사례를 들어 회사법을 통한 정책대응의 핵심을 살펴보자.

현대자동차는 (자동차산업의 특성상 커다란 비중을 차지하는) 부품·완성품의 물류 사업들을 글로비스라는 지배 대주주 100% 소유의 아주 작은 개인회사에게 몰아준다. 이러한 물량 몰아주기의 결과, 글로비스는 불과 몇 년내에 물류 서비스 시장에서 우리나라 1위의 기업이 되고 글로비스의 기업 가치는 당초의 100배가 넘게 된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가장 직접적으로 피해를 입은 자들은 현대자동차의 소수 주주들이다. 왜냐하면 글로비스라는 회사를 처음에 현대자동차의 100% 자회사로 설립했었다면 100배가 넘는 글로비스 기업 가치의 상승분은 고스란히 현대자동차 주주들에게 그 지분 비율대로 배분될 것이기 때문이다. 현대자동차 지배 대주주는 자신의 지분비율 만큼만 이익을 가져갈 것이며 나머지 소수 주주들도 마찬가지로 자신들의 지분비율만큼 이익을 가져갈 것이다. 이러한 인식하에 회사법을 통한 정책대응은 현대자동차의 이사회 이사들에게 소수 주주들의 이익이 물량 몰아주기를 통해 지배주주에게 넘어가는 것을 감시하게 하고 그러한 거래들이 이사회에서 통과되지 못하도록 하는 문지기(gatekeeper) 역할을 부여하는 것이다. 만일 이사들이 자신의 의무를 수행하지 못했을 경우에는 소수 주주들이 대표소송 등을 통해 이사들에게 현대자동차가 입은 피해를 배상하도록 하는 소송을 제기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다.

주주 대표소송 등 회사법 통한 사전감시 효과적

이러한 회사법 대응은 정부의 행정력을 동원한 사후적 개입이 아니라, 피해를 입게 되는 이해관계자들에게 사전적으로 불법행위를 감시하고 사후적으로 손해 배상을 청구할 수 있는 메커니즘을 만들어 제공해 주는 것이다. 정부의 행정규제들은 대부분 일이 터진 이후에 벌어지는 사후적 수습의 성격을 띠기 때문에 사전적인 억지력 측면에서는 그 효력이 제한적이고, 나아가서 정부기관의 피규제자에 의한 포획 현상이 빈번하게 발생하는 단점이 있다. 여기에서 포획 현상이라고 할 때에는 피규제자가 규제자에게 규제회피 또는 규제무산의 반대급부로서 혜택을 제공하는 것 뿐 아니라, 규제자가 피규제자가 속한 상황논리에 심정적으로 동화되는 경우까지도 포함한다. 경기순환 사이클에 대한 고려로 인해 규제 내용이 왜곡되는 사례도 그 중 하나이다.

사실 앞서 설명한 바, 물량 몰아주기 관련 회사법 개정안은 2006년에 이미 만들어졌으나 반대론자들에 의해 사장될 위기에 처했다가, 2010년과 2011년의 경제양극화에 대한 우리 사회의 위기 분위기의 도움을 받아 세상에 나오게 되었다. 앞으로 물량 몰아주기 관련 회사법 조항이 실제 소기의 효과를 발휘하려면 이사회 내의 사외이사 시스템, 소송 관련 인프라 등이 하나 둘씩 차례로 정비되어야 할 것이다.

본질을 놓친 환상형 순환출자 정책

마지막으로 환상형 순환출자 정책을 둘러싼 우리 사회의 논의를 보면, 문제의 본질을 놓치는 재벌정책의 모습이 가장 잘 나타나고 있다. 여기에서 문제의 본질은 ‘가공자본 창출’ 및 ‘소유권과 의결권간 괴리(부분적 가공의결권)’가 아니라, 동일 기업집단소속 계열회사들이 자기주식규제(회사법상 자기주식에는 의결권이 없음)를 우회하여 (의결권이 불법적으로 부활된) 자사주들을 서로 보유해주면서 결과적으로 지배주주의 기업집단에 대한 지배력을 올려주는 명백한 불법행위인 것이다. 이는 우리나라에서 재벌그룹들뿐 아니라 중소·중견 그룹들에게서도 볼 수 있는 현상이다.

세계 대부분 나라들의 회사법과 마찬가지로, 우리 회사법(상법 회사편)은 제369조(의결권)에서 ‘회사가 가진 자기주식 및 그 우회 형태들인 직접 상호주 및 간접 상호주(기업집단의 순환출자)에는 의결권이 없다’라고 규정하고 있고, 제342조의2(자회사에 의한 모회사주식의 취득)에서는 그 원칙을 기업집단의 순환출자에 대해 적용하고 있다(회사법 369조와 342조의 2항 내용은 박스 <용어설명> 참조).

다만 우리 회사법은 수십만 개에 달하는 우리나라의 모든 주식회사들을 규율해야 하는 기본법이기 때문에, 모회사의 자회사에 대한 지배기준을 ‘자회사 발행주식 총수의 100분의 50 초과’라는 가장 넓은 정의를 도입하고 있을 따름인 것이다(상법 제342조의2). 그런데 사실 우리나라 중소·중견 기업들도 상당수가 기업집단을 형성하고 있기 때문에 회사법에서 기업집단에 대한 정의를 현실에 맞추어 확대할 필요가 있다. 만일 회사법의 이러한 정비 작업에 많은 시간이 소요된다면, 우리는 회사법 원칙을 재벌에 대해 적용하는 역할을 공정거래법이 회사법과 분담할 수 있을 것이다. 이는 공정거래법이 우리나라 현실에서 통용되고 있는 계열사간 지배의 개념을 가장 효과적으로 법 체계에 반영시켜왔기 때문이다.

요약하자면, 환상형 순환출자 현상의 본질은 재벌에 고유한 문제가 아니고, 중소그룹이든 재벌그룹이든 불법적으로 자사주들의 의결권을 부활시켜서 지배주주의 지배력을 불법적으로 창출하는 데 있는 것이다. 그리고 여기에서 반드시 지적하고 넘어가야 사실은, 환상형 순환출자 현상의 본질을 재벌의 소유권과 의결권간 괴리 현상으로 보는 잘못된 주장은 정책대응의 무력함을 미리 예정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소유권과 의결권간 괴리는 오늘날 전 세계의 표준적 회사제도인 주식회사제도 하에서는 거의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현상이고 부작용이기 때문이다. 즉 이 주장에 따르면 환상형 순환출자 현상에 대한 정책대응은 (우리가 유용하게 사용하고 있는) 주식회사 제도 자체를 부정하는 셈인 것이다.

평등한 법치의 구현이 효과적인 재벌정책 수단

환상형 순환출자 문제의 논의가 시사하고 있는 바는, 세계 공통의 法的 原則과 正義(Justice)를 이제부터라도 재벌을 포함한 우리 사회 구성원 모두에 평등하게 적용하는 것이 너무나 중요하다는 점이다. 사실 이러한 법 앞의 평등, 법치의 구현이야말로 가장 강력한 재벌정책 수단이다. 최근에 바뀌기는 했지만 사법부가 재벌 지배주주들의 불법행위에 대해 예외 없이 법을 집행하지 못했었다는 점은 우리 사회에서 재벌들에 대해 부정적 여론이 확산되는 데 일조했다는 점을 부인할 수 없다. 재벌 지배주주의 건강문제나 경제발전에 대한 기여 등의 이유로 집행유예 판결이 내려지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는데, 일반 시민이 같은 내용의 불법행위에 대해 받았을 판결과 비교해본다면 법치의 구현이 효과적인 재벌정책 수단이라는 것은 분명하다. E21

 

용어설명

상법 제369조(의결권)

① 의결권은 1주마다 1개로 한다.

② 회사가 가진 자기주식은 의결권이 없다.

③ 회사, 모회사 및 자회사 또는 자회사가 다른 회사의 발행주식의 총수의 10분의 1을 초과하는 주식을 가지고 있는 경우 그 다른 회사가 가지고 있는 회사 또는 모회사의 주식은 의결권이 없다. <신설 1984.4.10>

(상법 제369조제3항은 다음 두 부분으로 분리할 수 있는데, 전자는 직접 상호주, 후자는 간접상호주(기업집단의 순환출자)에 해당함.)

③-1: 회사가 다른 회사의 발행주식의 총수의 10분의 1을 초과하는 주식을 가지고 있는 경우 그 다른 회사가 가지고 있는 회사 주식은 의결권이 없다.

③-2: 모회사 및 자회사 또는 자회사가 다른 회사의 발행주식의 총수의 10분의 1을 초과하는 주식을 가지고 있는 경우 그 다른 회사가 가지고 있는 모회사의 주식은 의결권이 없다.

상법 제342조의2 (자회사에 의한 모회사주식의 취득)

① 다른 회사의 발행주식의 총수의 100분의 50을 초과하는 주식을 가진 회사(이하 "모회사"라 한다)의 주식은 다음의 경우를 제외하고는 그 다른 회사(이하 "자회사"라 한다)가 이를 취득할 수 없다. <개정 2001.7.24>

1. 주식의 포괄적 교환, 주식의 포괄적 이전, 회사의 합병 또는 다른 회사의 영업전부의 양수로 인한 때

2. 회사의 권리를 실행함에 있어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필요한 때

② 제1항 각호의 경우 자회사는 그 주식을 취득한 날로부터 6월 이내에 모회사의 주식을 처분하여야 한다.

③ 다른 회사의 발행주식의 총수의 100분의 50을 초과하는 주식을 모회사 및 자회사 또는 자회사가 가지고 있는 경우 그 다른 회사는 이 법의 적용에 있어 그 모회사의 자회사로 본다. <개정 2001.7.24> [본조신설 1984.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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