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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농정, ‘식량안보 위기의식’은 있는가?
박근혜 농정, ‘식량안보 위기의식’은 있는가?
  • 박신용철 기자
  • 승인 2013.10.14 11:0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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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 목표가격 4천원 인상, 쌀 직불금 2017년까지 단계적 인상, 농업예산 4년간 5조 2천억 감축, 허울 뿐인 농민정책 반발 크다

작년 대선 당시 박근혜후보는 “지금 우리 농촌은 희망과 활력을 점점 더 잃어가고 있다. 농가부채는 늘어가고, 도시와 농촌의 격차도 커져가고 있다. 저 박근혜가 농촌을 살리기 위한 확실한 비전과 정책으로 농업에 활력을 불어 넣겠다.”고 말했다. “농업은 안보산업, 직접 챙기겠다”고도 약속했다.

그리고 농업분야의 3대 핵심 축으로 ▲농민 소득 증대 ▲농촌 복지 확대 ▲농업 경쟁력 확보를 제시했다. ‘행복농업 5대 공약’으로 ▲직불금 인상을 통한 농가소득 안정기여 ▲농자재 가격 안정과 담합 근절 ▲농어민 ‘안전재해보장’제도 도입 및 농어업 ‘재해보험’ 확대 ▲농축산물 유통구조 개선 ▲첨단과학기술 접목을 통한 농업 경쟁력 향상을 발표했다.

쌀 직불금 100만원 인상 ‘공중분해’

박근혜정부는 취임 후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에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이동필 원장을 임명했고, 이동필 장관은 취임 일성으로 ‘국민농업’을 제기했다. 새로운 농업 패러다임을 시도하겠다는 것이었다. 다음은 3월 11일 이장관 취임사의 일부분이다. “우리 농업과 농촌의 해법을 더 넓은 시각에서, 국민의 기대와 눈높이에서 찾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농업 · 농촌정책의 고객도 농업인은 물론 소비자를 포함한 국민들이다. 농식품부가 과거 안정적 식량공급에 주력해왔다면 앞으로는 농촌이 국민에게 행복을 주는 공간으로, 농업은 국민의 건강을 챙기는 산업으로 바꿔야 한다.” 이 장관은 농촌을 국민의 삶터이자 농촌 및 도시민이 함께 하는 공간으로 만드는 ‘농촌 활력 찾기 운동’을 전개하겠다고 밝혔다.

▲ 한중 FTA 6차 실무협상이 시작된 부산에서 7월 2일 농축산인 7000여 명이 결의대회를 열고 협상 중단을 촉구했다. 제공=뉴시스
박대통령이 후보 시절 농민의 마음을 사로잡은 대표적인 공약은 ‘쌀 직불금 100만원 인상’이었다. 쌀 직불금은 쌀 소득 보전정책이다. 쌀 소득 보전 정책에서 중요한 것은 3년마다 정해지는 쌀 목표가격이다. 현행 제도에서 쌀 직불금은 이때 정해진 목표가격을 유지하기 위한 것이다.

쌀 목표가격도 농민요구와 큰 차이

2005년도에 도입된 쌀 목표가격은 쌀값의 급격한 하락을 막고 적정한 수준의 농가 소득을 보전하기 위한 취지로 도입됐지만, 결과적으로는 물가 상승률과 무관하게 산지 쌀값을 80kg에 ‘17만원’으로 묶어두는 역할을 해왔다. 쌀값 보전을 위해 농민들에게 지급되는 쌀 고정직불금은 1ha(1만㎡)당 70만원이었다.

농민들은 ‘한 끼 쌀값이 껌 값보다 못한 지경이고, 도시가구 대비 농가소득 비율이 점점 떨어지는데도 쌀값은 왜 오르면 안 되는 것이냐?’며 항의해 왔다. 농민들은 8년째 17만원으로 고정돼 있는 쌀 목표가격을 물가상승률과 생산비 인상 등을 반영해 현실화하고, 고정직불금을 1ha에 140만원으로 하자고 요구했었다. 이런 상황에서 박근혜후보의 쌀 직불금 100만원은 농민들에게 큰 반향을 불러왔다. 아쉬운 부분이 없지 않았지만 ‘5년 동안 한 푼도 안 올린 사람도 있는데’ 하는 심정으로 반길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지난 5월 정부는 쌀 가격 목표를 17만원에서 4천원 올린 17만4천원으로 인상하는 안을 내놓았다. 농민회 등에서는 23만원을 주장하는 상황이었고, 국회는 쌀 목표가격으로 80kg에 21만원으로 인상하는 ‘쌀 소득 등의 보전에 관한 법률 일부개정법률’안을 발의한 상태였다. 8년 만에 처음 인상한 쌀 목표가격이 물가상승률에도 미치지 못하는 4천원 인상이니, 농민들의 반발은 예견된 것이었다.

또 다시 농업을 희생양 삼은 정치놀음

박근혜정부는 지난 5월 31일 대선공약과 관련한 140개 국정과제 추진에 필요한 재원, 소위 ‘공약가계부 예산’을 발표했다. 이 내용 중 특기할만한 것이 농식품부에서 4년간 5조 2천억원을 감축하겠다고 한 것이다. 구체적으로 2014년 8천억원, 2015년 1조 3천억원, 2016년 1조 3천억원, 2017년 1조 8천억원이다.

세출 감축이란 명목으로 농업정책의 우선순위를 재조정하고 유사 · 중복사업을 정비해 예산을 아끼겠다는 계획이다. 또 융자사업으로 시행하던 것들을 이자보전 방식으로 시중은행권에 사업비용 관리를 넘기는 방법도 동원하기로 했다. 여기에다 성과 목표를 이미 달성했거나 실적이 저조한 농업보조사업 등은 일몰제를 도입해 재원 확보용으로 활용하겠다는 것이다. 정부가 예산을 편성하면서 부정적이거나 비판의 여지를 둔 사업들로 거론되는 것은 다음과 같다.

종자개발사업인 골든시드 프로젝트, 논 소득 기반 다양화 사업, 글로벌 K-푸드 프로젝트, 한식세계화 지원사업, 축산물 수급관리사업, 쌀 소득보전 변동직불금 사업, 축사시설 현대화 사업, 농산물 브랜드 육성사업 등이다.

그러나 축사시설 현대화사업만 해도 한미FTA 이후 예상되는 피해를 지원하는 성격인 만큼 축산업계에는 중차대한 문제다. 노후 시설로 고민이 가득한 축산농가의 숙원과제이기 때문이다. 축산업계는 산업의 특수성을 무시한 채 축산분야의 보호와 육성을 위한 투자는 물론 기존에 시행되던 사업마저 중단될 것이 자명하다고 반발하고 있다.

한편 올해 342조원 규모의 우리나라 전체 예산과 기금운용액 중 농식품부 소관 예산과 기금운용 규모를 살펴보자.

농식품부 소관 예산 및 기금운영 규모는 총 15조 4,118억원이다. 당초 정부가 국회에 제출했던 15조 4,102억원 대비 16억원이 증가한 것이고, 작년 대비로는 35억원이 증가했다. 정부 안에서 제대로 고려하지 못했던 것으로 알려진 수확기 쌀값 상승 등과 예비비 성격의 시책사업비 5,088억원을 감액하는 대신, 직불금과 재해 대응, 농어촌 복지 등 농어업인의 삶의 질 향상과 실질적인 소득안정 등을 위해 5,014억원을 증액한 결과이다. 그러나 박대통령의 공약별 2013년 예산 증액 내용을 살려보면 농어업인 및 농어촌과 직결되는 예산은 눈에 띄지 않는다.

거꾸로 고령 농업인이 많은 농어촌에서 가장 필요한 건강보험료 및 저소득층 의료비 지원 예산을 삭감하는 대신, 여야 지도부 실세 의원들은 자기 지역구에 수십~수백억원을 증액했다. 소위 ‘쪽지예산’으로 편성된 액수가 5천억원 규모에 달한다.

정부는 국가 전체 예산을 매년 전년대비 5% 정도의 증액 예산을 편성한다. 하지만 농식품부 예산은 물가상승률을 감안하면 매년 실질적으로 감소하고 있다. 또한 농업진흥청과 산림청의 관련 예산을 다 합쳐도 전체 예산 및 기금운용 규모가 19조원이 되지 않는다. 이래서는 FTA와 기후변화에 대한 대응을 제대로 할 수 없다는 지적을 피하기 어렵다. 농업을 홀대하는 정책기조라는 지적도 피하기 어렵다.

대기업의 농업 진출이 농촌 살리기?

지난 3월 14일 저녁 농림축산식품부 소회의실에서 고성이 터져 나왔다. 동부그룹 자회사인 영농기업 동부팜화옹과 토마토 재배 농민들이 모인 자리였다. 동부팜화옹은 2012년 말 경기도 화성시 화옹간척지에 15만㎡ 규모의 첨단농업단지를 완공하고 본격적인 토마토 출시를 시작했다. 토마토 재배 농가들은 “대기업이 농민들의 먹을거리를 빼앗아 갈 수 있느냐”고 반발했지만 동부팜황옹측은 “농산물 90% 이상을 수출해 국내 농민들이 입을 피해는 없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대기업의 농식품분야 진출 허용을 놓고 박근혜정부의 농업정책이 또다시 시험대에 오른 것이다. 농림축산식품부의 기본 입장은 “자유무역협정 시대를 맞아 농업에도 자본과 기술을 투입할 때가 됐다”는 것이다. 하지만 대기업이 자본과 앞선 기술력을 토대로 생산한 물량을 국내에 풀면 영세 농민들은 직격탄을 맞을 것이라는 농민단체의 의견도 무시할 수 없어 보인다.

한편 이런 논란을 증폭시키고 있는 것이 식물공장 사업이다. 농식품부는 올해 32억원을 투입해 식물공장 시범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식물공장이 농업정체성을 흔들 가능성이 많다고 지적한다. 대기업이 큰 자본을 투자하여 대규모 시설을 짓고, 노동자를 고용하여 대량생산하는 시스템이, 곧 농업의 근본을 농민으로부터 대자본으로 옮기려 하는 것이 아니냐는 것이다. 농업의 다원적인 기능을 무시하고 단지 먹을거리 수급으로써만 접근하는 정책의 대표적인 사례가 식물공장이라는 지적이다.

전임 이명박정부와 현 정부는 농업의 살길을 수출에서 찾는다고 주장하고 있다. 명품 농작물을 생산해 수출하면 농업과 농촌을 살릴 수 있다는 얘기다. 그러나 현재 순수 국내 농산물 수출 규모는 우리나라 총 수출액의 0.7%에 불과하다. 농산물의 수출 경쟁력을 높인다고 하지만 절대다수의 소규모 농가에서 수출용 농산물을 생산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즉 수출이 가능한 것은 자본 규모가 큰 기업농 형식이 아니면 안될 것이다.

시장원리에 안맞는 저가 농산물정책

한편 우리 국민이 소비하는 농산물을 100으로 볼 때, 우리 땅에서 생산되는 농산물은 겨우 25 정도의 수준이다. 즉 자급률이 낮다는 것이다. 시장원리로 보면 농산물 가격은 매우 비싸야 정상이다. 하지만 값싼 수입 농산물을 매개로 해 의도적으로 낮은 가격을 정부가 유지해왔다. 이 때문에 그동안 농민은 ‘죽어라 일할수록 소득은 줄고 빚은 늘어나는’ 기이한 생활을 반복하고 있다.

도시근로자 가구와 농가의 소득을 대비해 보면, 우루과이라운드를 시작하기 전 농가소득은 도시근로자 가구의 95% 수준이었다. 20년이 지난 현재는 58%로 급감했다. 농촌에서 나오는 소득이 가난한 소농에게 돌아가지 않기 때문이다. 정부는 농민과 농업을 희생양으로 삼아 경제발전과 물가안정을 이루었다. 지금까지도 그 공은 농민들에게 돌아가지 않고 있다. 아니 그동안 오히려 강도 높은 구조조정과 정리해고 대상이 돼 왔다. 수많은 농민들이 농촌에서, 농업에서 떠밀려나는 구조조정, 정리해고에 대해서는 사회적으로 심각성조차 인정받지 못했다.

MB정부에 이은 현 정부의 농정은 ‘희생 강요’

전임 이명박정부는 한미FTA를 체결하면서 막대한 피해를 입게 된 농어민을 지원하기 위해 10년간 23조원을 지원하겠다고 약속했다. 물론 그 약속을 헌신짝처럼 버린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박근혜 정부 또한 지난 몇 개월간 보여준 농업정책의 기조로 인해 농민의 신뢰는 무너지고 있는 듯하다.

한미FTA에 이어 한중FTA가 추진되고 있다. 사회 전반에 중국산 제품이 없는 곳이 없다. 농업분야도 마찬가지다. 식재료 대부분이 중국산으로 채워지고 있다. 이런 와중에 한중FTA가 체결된다면 산소 호흡기를 끼고 연명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우리 농업은 시한부 선고를 받게 될 것이다.

또한 기후변화로 인한 기상재해로 세계 곡물가격이 급등했고, OECD 국가 중 최하위인 식량자급률을 간신히 유지하고 있는 우리의 상황에서 식량안보는 매우 시급한 문제이다. 농업의 문제는 농업을 넘어 국가 전체의 위기로 번지기 일보 직전이라는 전문가들의 지적이 있다. 그러나 출범 초기 박근혜정부의 농업정책에서 식량안보에 대한 심각한 위기의식을 읽어내기는 어렵다는 게 중론이다. ‘농업 발전 없이 선진국으로 도약은 불가능하다’는 인식 아래, 정부 차원의 체계적인 농민, 농촌, 농업 발전에 대한 계획 수립과 실천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본 기사는 월간지 <이코노미21> 8월호에 게재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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