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1-12-03 16:39 (금)
‘고르디우스의 매듭’과 20년 후
‘고르디우스의 매듭’과 20년 후
  • 최민식 | 본지 편집기획위원, 윈지코리아컨설팅 부대
  • 승인 2013.10.17 13:3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고용중심 복지국가’,‘통일경제강국’,‘신뢰강국’…20년 후, 이러한 리딩국가 대한민국에 이르기 위한 역동적인 변화, 이제부터다.

특별기고 - 20년의 의미

20년. 10년도 아니고, 20년이다. 돌아보고 내다보기에 덩치가 너무 큰 시간이다. 하지만 한국에서 지난 20년은 분명 ‘시대’였다. 1993년은 민자당 김영삼 대통령의 ‘문민정부’가 출범한 해였다. 군부독재 잔재를 청산하고 금융실명제 도입이라는 혁혁한 업적을 자랑하지만, 1995년에 세계화를 준비없이 선언하고, 1997년에는 국가부도 직전까지 내몰려 IMF 관리하 신자유주의를 강요받게 한 정권이다. 이후 3개의 정권, 즉 김대중 정권, 노무현 정권, 이명박 정권까지 도합 20년 동안, 영미식 신자유주의는 놀라운 속도로 ‘토착화’되었다. 지난 20년간 진행된 양극화, 중산층의 붕괴, 고용 없는 성장에 더해, 기후변화와 고령화라는 전지구적 위기까지 엄습했다. 대한민국의 미래 20년이 타인에 의한 숙명이 되어야 할까. 미래를 예측할 뿐 아니라 변화를 선도하지 않으면 안되는 이유이다. 2013년, 현재는 미래 20년의 출발선인가, 아니면 지난 20년이 또다시 예고하는 숙명의 서곡인가.

세계 최고의 나라

2010년 8월 15일 뉴스위크(Newsweek)가 발표한 ‘세계 최고의 국가’ 순위는 대한민국의 성취와 한계를 동시에 보여 주고 있다. 뉴스위크는 한국을 세계에서 15번째 최고 국가로 선정하여, 대한민국이 선진국의 일원이 되었음을 알렸다. 지표는 5 가지로 구성되어 있다.

교육(education), 건강 (health), 삶의 질 (quality of life), 경제의 역동성 (economic dynamism), 정치환경 (political environment). 그러나 최고점에 가까운 점수를 받은 교육수준(세계 2위)과 경제의 역동성(세계 3위) 때문에 전체 순위가 올라갔을 뿐, 건강과 삶의 질 분야는 각각 23위와 29위에 머물렀다. 지표간 차이가 너무 크다. 참고로 대한민국에 닥칠 경제사회적 위기는 역사상 가장 규모가 큰 메가쓰나미 급이다. 우리나라는 2000년에 노인인구가 전체인구의 7%로 이미 ‛고령화 사회’에 진입했으며, 2020년경에는 노인인구비율이 14.4%에 달해 고령사회로, 2026년경엔 20%를 넘어 초고령사회에 도달할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고령화가 진행되는 나라다. 건강과 삶의 질 분야가 더욱 문제가 될 것이다.

북유럽식 보편적 복지

상위 10위 안에 든 나라 중 7개 국가(핀란드, 스위스, 스웨덴, 룩셈부르크, 노르웨이, 네델란드, 덴마크)가 대부분 북유럽의 복지국가라는 점은 매우 시사적이다. 한마디로 선진국이라고 불리워지기 위해서는 ‘삶의 질’을 위해 경제와 복지의 균형적 발전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며 특히 사회정책이 정교하게 짜여져야 함을 보여준다.

복지국가의 유형은 보통 북유럽식 보편적 복지, 독일식 조합주의 복지, 미국식 선별적 복지, 남유럽식 보수주의 복지 체제로 4분류한다. 포르투갈, 이탈리아, 그리스, 스페인 등 PIGS(Portugal, Italy, Greece, Spain) 국가들은 보수주의 복지체제에 해당되는데, 이는 최근까지 우리나라가 그랬던 것처럼 가족과 개인에게 복지를 떠맡기는 방식을 택하고 있다.

만약 국가 재정위기의 근원이 복지비 지출이라면, 복지지출이 많은 북유럽 국가들은 이미 오래전에 파산했어야 한다. 그런데 재정수지와 국가부채 관련 지표를 보면, 오히려 북유럽 국가들의 재정건전성이 훨씬 뛰어나다. 보편적 복지국가로 유명한 스웨덴, 노르웨이, 덴마크, 핀란드는 모두 지난 10년 동안 흑자재정을 유지해 왔다. 석유자원 덕에 흑자의 규모가 매우 큰 노르웨이를(13% 재정수지 흑자) 제외하더라도, 나머지 세 나라는 2000년대 들어 매년 평균 1.6% 수준의 재정수지 흑자를 기록해 왔다. 반면, PIGS국가들은 매해마다 약 4.6%의 재정수지 적자를 기록했고, 미국은 이보다 더 큰 5.1%의 적자를 기록해 왔다. 보편적 복지체제를 갖춘 북유럽 네 나라의 국가부채/GDP 비율은 2010년 말 현재 38.4%에 불과하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PIGS평균은 100%, 미국은 61%이다.

복지국가 세계화의 새로운 20년

후쿠야마가 ‘역사의 종말’을 펴냈던 때가 1992년이니까 벌써 20년이 넘었다. 소비에트 연방의 거대한 실험이 실패로 끝난 그 시점,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가 최후의 이념이자 사회체제라는 명제는 수많은 논쟁을 발화시키지만, 결과적으로 지난 20년간 ‘묻지마 철학’이 되었다. 그는 부시 행정부의 강경 외교 노선에 영향을 끼쳐 온 네오콘으로 맹활약을 했다.

2008년 리만브라더스 사태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세계경제는, 바야흐로 신자유주의 시대에 종언을 고하고 새로운 질서를 탐색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변화의 시대, 과도기적인 특징들이 전세계적으로 분출되고 있다. 그리스에 이어 스페인 등 남유럽 국가들의 재정적자 문제로 유로존 붕괴의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다. 금년 2월, 이태리에서는 유로권 이탈을 내세운 무명의 정치인 베페 그릴로의 신당이 25%의 득표로 제3당의 지위에 오르기까지 했다. 세계경제에 활력을 불어넣던 중국 등 신흥 경제국가의 성장이 둔화되면서 각국이 저성장 기조와 긴축, 금융규제, 보호무역주의 등 ‘소극적 생존’을 최우선 전략으로 채택하고 있는 상황이다.

긍정적 변화의 조짐

하지만 긍정적 변화의 조짐도 드러나고 있다. 미국이 ‘부자증세’로 뜨겁다. 연소득 25만불 이상인 상위 2%에 대해 현재 최고소득세율 35%를 39% 수준으로 높이자는 것이다. 참고로 루스벨트 대통령 시절 최고소득계층의 소득세율은 90%를 넘나들었고, 레이건 전 대통령 시절 최고소득세율은 70%에서 28%로 대폭 감축되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부자증세와 부채한도 해결을 위해 진보 성향의 예산,복지 전문가인 제이컵 루 백악관 비서실장을 차기 재무장관에 임명했다. 루는 이전의 카이트너와 달리 민주당의 전통적 좌파 성향 인물로 유명하다. 최근 G8은 6월 17~18일 개최되는 정상회의에서 무형자산의 정의와 자산가치의 평가방법 등을 통일하는데 합의하기로 했다. 7월에 모스크바에서 열리는 주요 20개국(G20) 재무장관·중앙은행 총재회의에 보고할 예정이다. G8 국가들은 ‛리먼 쇼크’ 이후 대규모 경기부양책을 추진한 결과 재정이 악화된 상태다. 세금을 올리는 등 국민 부담을 주는 정책을 실시하기 위해서라도 조세를 회피하는 기업을 발본색원 하자는 분위기다.

미국이든 유럽이든 지난 4년간 급한 불끄기(양적완화와 긴급구제)부터 시작해 신자유주의 이후의 대안짜기를 모색해왔다. 신케인스정책이 그런대로 대안으로 보였다. 그런데 글로벌 경제 페스트에 쉽게 감염되지 않는 강력한 내성을 보이며 국민경제를 지킨 나라들이 있다. 쉽게 거품경제로 훼손되지 않고 꾸준하게 성장과 국민생활의 안정을 동시에 이룩한 나라들이다. 독일, 네덜란드, 스웨덴, 노르웨이, 핀란드 등 등. 유로연합의 대장급 국가인 독일을 제외하면, 모두 북유럽 복지국가의 일원이다.

스웨덴은 1980년대말 금융규제가 해체되면서 1990년대 초기에 금융위기를 맞이했다. 당시 스웨덴 정부는 거품붕괴로 파산을 맞이한 금융기관에 혈세를 퍼부어 억지로 살려주거나 시장에 방임하지 않고 차례차례 국유화하였다. 국유화는 투자자의 불안을 진정시켰고 오히려 금융기관들의 회생의 기회를 확대했다. 스웨덴식 혼합경제는 케인스식 혼합경제(재정과 금융정책을 통한 정부의 유효수요관리)를 뛰어넘는다. 스웨덴 정부는 스웨덴식 시장경제에 적합한 경제인을 육성하고 사회적 신뢰를 지속적으로 발전시킨다. 무형의 사회자본인 신뢰는 제도로 안착되어 있다. 발전된 노사관계, 발전된 협동조합 경제부문, 발전된 생산적 지방자치제도, 수많은 토론집단을 운영하고 있는 발전된 민주주의 정치제도 등이 그것이다.

앨빈 토플러는 1960년대 중반 ‘미래 쇼크 Future Shock’를 통해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를 놀라우리만치 정확하게 예측했다. 당시 그가 예측한 40년 후 사회는 지식 기반의 사회, 정보 기술이 혁신적으로 발전한 오늘날의 세계다. 그러나 21세기 들어와 인류의 기술로는 도저히 막아낼 수 없는 지구 온난화 재해가 끊이지 않는 ‘지구의 위기’가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심화되고 있다. 또한 신자유주의 기제에 의해 배태된 사회경제적 양극화의 위기는 기술정보 격차라는 휘발유를 뒤집어쓰고 확대되고 있다. 이를 ‘전지구적 양극화’라 부를 수 있을 것이다. 더욱이 2050년에 전세계적으로 85세 이상 인구가 25%를 상회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를 ‘전세계적 초노령화’라 부를 수 있을 것이다. 과연 세계는 20년 뒤 경제적 위기와 사회적 위기를 뛰어넘어 어떻게 복지국가의 세계화에 이를 것인가.

고르디우스(Gordius)의 매듭

소아시아에 있는 '프리기아'라는 나라에 고르디우스라는 가난한 농부가 있었다. 예언에 의해 왕이 되고 자신의 짐마차를 굵은 밧줄로 매듭을 묶어 놓으며, ‛이 매듭을 푸는 사람이 장차 드넓은 아시아의 왕이다’라는 신탁을 외쳤다. 그래서 수많은 사람들이 이 매듭을 풀려고 했는데, 단 한 사람도 풀지 못했다. 알렉산더 대왕이 프리기아에 들러 매듭을 풀려고 끙끙거렸으나 풀지 못했다. 대왕은 칼을 뽑아 매듭을 내리쳤다. 매듭이 끊어져 풀어졌다. 신자유주의 세계화라는, 20년간 엉킨 실타래(사실은 자본주의가 시작된 18세기부터 200년 넘게 엉켰겠지만)를 누가 어떻게 풀 것인가.

아래 10가지 리스트는 1990년대 이후 미국이 앞장서서 추진한, 제3세계 구조조정의 전제로 확립된 ‘워싱턴 컨센서스’(Washington Consensus) 10개 항목으로서 신자유주의의 전형적 정책 메뉴이다.

① 건전재정 보장과 재정적자 억제

② 공공지출 축소

③ 조세기반 확대와 효율적 집행을 목표로 한 세제개혁

④ 시장이 금리를 결정하는 금융자유화

⑤ 수출주도 성장을 지원하는 경쟁 환율

⑥ 수입허가제 폐지와 관세인하를 수반하는 무역자유화

⑦ 외국인 직접투자 장려

⑧ 국영기업 민영화를 통한 경영 효율화와 실적 향상

⑨ 경제의 규제철폐

⑩ 재산권 보호

미국산 쇠고기의 무역자유화, 국영 인천공항 민영화 추진, 영리병원의 도입 추진, 대기업 몰아주기, 투자자 정부제소권(ISD)을 인정한 한미FTA 추진, 부자감세, 재정건전성 논리로 복지망국론 설파 등, 바로 이명박 정부의 자화상을 그대로 활자화한 것으로 보인다.

신자유주의 정책은 케인즈식 수정자본주의 정책에 대한 반대로서 성립한 것이지만 정책이 시행된 결과, 시장의 상하질서가 완전히 재편되는 새로운 체제가 출현했다. 바로 금융자본주의, 주주자본주의라는 새로운 경제 시스템이 그것이다. 금융의 지배력이 증대함에 따라 기업은 단기수익성에 집착하게 되었고, ‘상품경쟁력 확보를 위한 저임금구조와 상시구조조정→총수요의 지속적 감소→수출시장에서의 경쟁격화→임금저하와 상시구조조정’의 악순환을 유발하게 된다. 나아가 금융버블까지 발생하고 2008년 미국 금융위기는 전세계 경제위기로 확산되기에 이르렀다.

문제의 핵심은 고용

각설하고, 경제위기의 결과로 삶이 위태롭게 된 국민들, 어떻게라도 다시 살려내야 하므로 복지국가를 이야기 한다. 그런데 재원이 부족하니 증세론이 나올 수밖에 없다. 과연 부자증세를 통해 나라의 곳간을 다시 채우기만 하면 되는가. 물론 당면한 각종 복지정책의 재원을 반드시 조달해야 한다. 그러나 그것만이 솔루션인가. 아니다. 문제의 핵심은 바로 ‘고용’이다. 고용 없는 성장, 고용 없는 복지를 손보지 않으면 아무리 재정을 다지고 다져도 밑빠진 독에 물붓기에 그칠 것이다. 고용율을 높이기 위한 다각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또한 노령화와 저출산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재정을 통한 복지가 무용지물이 된다. 일하는 소수가 일 못하는 다수를 먹여살려야 하니 말이다. 가족친화적인 기업문화와 노령취업을 유연하게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 이 모든 과제들이 가리키고 있는 단 하나의 결론은, 워싱턴컨센서스를 뒤집어야 한다는 것이다.

고르디우스의 매듭을 끊어내자는 것은, 단기적인 재정정책이 아니라 근본적으로 경제체제의 일대전환을 말한다. 신자유주의 세계 경제체제를 완전히 종식하라. 고르디우스의 매듭을 내리쳐라.

2030 대한민국

토마스 모어의 유토피아는 이상사회의 모델이다. 지난 역사에서 인류가 실험한 이상사회는 정치적 폭력성과 권위주의 속성으로 인해 실패했다. 19세기 말의 사회주의 실험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사회주의 실패 후, 급가속을 밟은 신자유주의 역시 자본의 폭력성, 금융의 약탈성이 극에 달한 체제였다. 실패했다. 사회주의 실험은 러시아가, 신자유주의 실험은 미국이 주도했다.

발상을 거꾸로 하면 어떨까. 패권국가가 답을 먼저 내는 것이 아니라고. 북유럽의 소국 스웨덴이 유럽의 패권국가가 아니었음에도 북유럽 복지국가 모델의 리딩국가가 되었듯이 아시아에서 한국이 고르디우스의 매듭을 끊고 아시아적 복지국가의 리딩국가가 되어 보는 것이 어떠한가.

미국 국가정보위원회(NIC)는 지난해 12월 10일 발간한 ‛글로벌 트랜드 2030 보고서’에서 “오는 2030년에는 미국이든 중국이든 패권국가는 더 이상 없을 것이다. 새로운 시대는 개인의 권한이 강조되고 국가권력은 분산되는, 전체적으로 힘의 분산시대”라고 언급했다. NIC는 “2030년에는 국내총생산(GDP)과 인구, 군비 지출 등을 기준으로 산정되는 글로벌 지배력 면에서 아시아가 북미와 유럽을 합친 힘을 능가할 것”이라고 관측했다.

NIC 보고서의 예측대로라면, 대한민국에게 위대한 기회가 될 것이다. 현재 세계 9위의 수출국가인 한국은 대외 무역의존도가 높아 세계경제의 지형과 판도에 따라 심각하게 영향을 받는다. 또한 앞으로 세계경제를 주도할 만한 대한민국 경제 잠재력은 충분하지만, 잠재력이 현실화되기 위해서는 지속적인 성장이 전제되어야 하며, 양극화 문제, 초고령화 문제, 남북문제 등도 탁월하게 극복해야 한다.

리딩국가 대한민국으로 가자. 그 길은 첫째, 탄탄한 경쟁력을 자랑하는 ‘고용중심 복지국가’이다. 둘째, 냉전지대에서 해방될 뿐 아니라 세계를 향해 도약하는 한반도, ‘통일경제강국’이다. 셋째, 사회적 자본인 ‘신뢰’가 정치경제사회문화 전반에 인프라로 자리잡은 ‘신뢰강국’이다. 20년 후, 이러한 리딩국가 대한민국에 이르기 위한 역동적인 변화, 이제부터다. E21

본 기사는 월간지 <이코노미21> 8월호에 게재된 글입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