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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경제를 향한 길잡이가 되길 바랍니다.
좋은 경제를 향한 길잡이가 되길 바랍니다.
  • 원혜영 민주당 국회의원
  • 승인 2013.10.17 14:0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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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미 21>이 복간된다니 너무 반갑습니다. 벌써 십년 전 쯤으로 기억됩니다. 당시 <이코노미 21>은 ‘사회책임경영’이라는 화두를 꺼냈습니다. 경제의 주된 작동원리를 ‘기업인의 이윤추구’에서 ‘사회 전체의 이익확대’로 전환해야 한다는 관점을 대한민국에 소개했습니다. 풀무원 창업자로서, 그리고

‘옳은 것이 좋은 것’이라는 신조에 따라 사회적 책임을 중시해왔던 터라, <이코노미 21>의 기치는 퍽이나 반가왔습니다. 2013년 오늘, 경제민주화가 정치권 여야를 넘나드는 아젠다가 되었습니다. 착한성장론, 동반성장론, 독일 사회적 시장경제론 등이 미디어와 정치권의 화두가 되었습니다. <이코노미 21>의 10년 앞선 문제의식이 분명 마중물이 되었을 것입니다.

두 차례의 세계적인 경제위기는 더 이상 이대로는 안된다는 깨우침을 주었습니다. 세계적인 학자들이 저마다 신자유주의를 손봐야 한다는 데에 일치된 의견을 냈습니다. 클린턴 정부에서 노동부 장관을 지냈던 라이시는 수년 전, 만약 오바마의 민주당이 미국 사회의 ‘기본 합의’(누구나 중산층이 될 수 있다는 아메리칸 드림)를 외면하는 방향으로 움직일 경우, 민주당에게 다시는 집권의 기회가 오지 않을 것이라고 비판했습니다. 마이클 샌델 역시, ‘왜 도덕인가’에서 초선 오바마 대통령에게 충고했습니다.

‘오늘날 자유주의자들이 과거 자유주의자들의 노력들-경제세력에 대한 민주주의적 통제권을 확립하려던-을 외면하는 것은 실수이다.’ 오바마가 재선에 성공하게 된 이면에는 이러한 현실에 대한 냉엄한 인식 위에서 ‘경제세력에 대한 민주주의적 통제’ 아젠다를 확립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사실 전후 미국의 자유주의 아젠다는 1944년 프랭클린 루스벨트가 ‘경제권리장전’을 발표하면서 확립되었습니다. 여기에는 ‘좋은 일자리를 얻을 권리, 안락한 가정을 꾸릴 권리, 적절한 의료혜택을 받을 권리, 경제적 근심으로부터 보호받을 권리, 좋은 교육을 받을 권리’ 등의 사회적 자유권이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한마디로 미국식 복지국가이고 중산층국가입니다. 80년대 말부터 90년대 중반, 대한민국 국민들도 중산층의 꿈을 꾸었습니다. 고도성장과 탄탄한 일자리, 저축과 내집 마련이 그것입니다. 그러나 97년 IMF 경제위기는 모두의 꿈을 앗아가기 시작했습니다. 이후 신자유주의 15년, 성장률은 감소했고 일자리는 줄어들었으며, 저축보다는 채무가 늘고, 내집 마련의 꿈은 아물아물 해졌습니다. 대한민국 경제, 나쁜경제의 덫에 빠져있습니다.

<이코노미 21>의 당찬 재출범에 부쳐 기대하게 되는 것은, 바로 ‘누구나 중산층이 될 수 있다는 한국사회 기본합의- 코리안 드림’을 세우는 일입니다. 대한민국, 이제 ‘좋은 경제’를 이야기 할 때입니다. 대기업은 세계와 경쟁하고, 중소기업이 강한 ‘대중소 상생경제’, 지식기술자본과 문화자본이 강한 ‘지식문화경제’, 경제주체들이 함께 문제를 해결하는 ‘사회적 합의경제’, 양극화를 제어하고 모든 국민들이 중산층이 되는 ‘중산경제’, 한반도 전체가 발전적으로 융합되며 동아시아 시장으로 뻗어나가는 ‘한반도경제’ 등등. 힘있는 대안이 필요합니다. 모쪼록 <이코노미 21>이 경제시민의 주체적 관점에 서서, ‘좋은 경제’를 이끄는 길잡이 언론이 되길 소망합니다.

본 기사는 월간지 <이코노미21> 8월호에 게재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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