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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커스] 짓밟힌 짝사랑 ‘한글 사랑'
[포커스] 짓밟힌 짝사랑 ‘한글 사랑'
  • 김상범
  • 승인 2000.11.29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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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디슨 이민화 회장 일부 지분 해외 매각… 한컴 전하진 사장에 대한 비난도 고조
지난 10월9일 한글날, 국내 소프트웨어 업계의 대명사 한글과컴퓨터의 10주년 기념식장. 한컴 최대주주사인 메디슨 이민화 회장은 감사패를 수여받고 축사를 위해 연단에 섰다.
“두가지를 얘기하고 싶다”고 말문을 연 이 회장은 축사와는 걸맞지 않은 묘한 얘기로 참석자들 고개를 갸웃하게 만들었다.


두가지 가운데 하나는 이런 것이었다.
“98년 아래아한글 살리기 운동은 외국기업의 국내기업 인수에 반대하는 국수적 운동이 아니라 반독점 운동이었다”. 다른 한가지는 “국민주를 100억원어치 모으려 했는데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20억원어치밖에 모이지 않았다.
전 사장이 눈물까지 흘리며 도움을 호소해 주위의 격렬한 반대를 무릅쓰고 투자를 했다”는 것. 결과적으로 이득을 보게 됐지만 결코 의도한 것이 아니라는 해명성 발언이었다.
한컴 지분을 매각하겠다는 발표 이후 치른 행사여서 이 회장 발언에 관심이 쏠려 있기는 했지만 이 회장의 엉뚱한(?) 축사는 다소 의외였다.

무엇보다 아래아한글 살리기 운동이 반독점 운동이었음을 강조한 대목의 의도는 사뭇 궁금증을 불러일으켰다.
당시 이 회장 발언 의도를 짐작케하는 일이 최근 일어났다.
보유중인 한컴 지분을 외국계 투자펀드에 넘긴 것이다.
바독점 운동이라더니… 11월22일 메디슨은 보유하고 있던 한컴 지분 10.8% 중 5.53%를 싱가포르텔레콤 자회사인 비커스펀드에 매각했다.
메디슨의 위기상황과 한컴지분의 매각은 이미 기정사실이었던 만큼 놀랄 만한 일은 아니었지만 “외국에 넘기지는 않겠다”,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는 기업을 찾고 있다”는 호언장담은 너무나 쉽게 식언이 되고 말았다.
한컴 창립기념식장 발언이 뒤늦게 떠오르는 이유이기도 하다.
지분 매각으로 한컴의 대주주는 외국기업이 되고 말았다.
이 때문에 국민기업 한컴은 여기저기서 호되게 당하고 있다.
대표 토종기업, 국민이 살려낸 기업이 결국 외국에 넘어갔다는 자괴감마저 호소하는 목소리가 들린다.
지분구성만으로 한컴이 외국기업이 되고 말았다는 분석은 무리가 있다.
하지만 좋든 싫든 한컴이 차지하는 상징적 의미가 훼손됐다는 것만큼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하늘사랑과 합병 무산, 예카 사업의 사실상 포기 등 악재에 시달리고 있는 한컴으로써는 엎친 데 덮친 격이 아닐 수 없다.
실제 메디슨의 지분 매각 소식은 증권시장에서 극도의 냉소적 반응을 불러일으켰다.
"어제 오늘 우리 회사 대주주 지분의 이동에 관해 안타까움을 표시해주신 기자님들께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사실 신문을 통해 안 사실이지만 메디슨의 지분이 일부 싱가포르 펀드로 넘어갔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우리와 접촉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나 아직 저도 만나지 못한 상태에서 지분이 넘어간 것을 보면 경영에는 그다지 관심이 없는 듯 보이는군요.” 11월24일 한컴 전하진 사장은 각 언론사 출입기자에 서둘러 전자우편을 발송했다.
"설사 20~30%의 지분을 외국인이 소유한다고 해서 한글과컴퓨터가 외국회사라는 논리적 비약은 거두어달라는 애기다.
“한글과컴퓨터는 국민이 살려준 기업으로 10만명이 넘는 주주가 우리 회사 지분을 보유하고 계십니다.
” 대주주의 지분 매각 때문에 한컴과 한글에 대한 애정을 거두지는 말아달라는 절절한 호소였다.
가뜩이나 곱지 않은 시선에 시달리고 있는 상황에서 한컴이 외국기업이 됐다는 평가는 치명적이지 않을 수 없다.
사실 애국적 마케팅에 의존했던 한컴 입장에서 마케팅 전략의 대대적 수정도 피할 수 없는 상황이 되고 말았다.
한컴 전하진 사장에 대한 비난과 비판도 수위를 높여가고 있는 상황이다.
“한글과컴퓨터에 쏟아주시는 애정어린 비판과 충고는 겸허히 받아들이겠습니다.
가능하시면 한글과컴퓨터가 국내외 어떤 주주들에게도 투명하고 파트너로서 손색이 없는 국민이 키운 세계적 기업이 될 수 있도록 도와주시기 바랍니다.
” 서둘러 진화에 나선 전하진 사장의 애절함이 격세지감을 느끼게 한다.
지켜보는 이가 많다는 것은 그 만큼 힘든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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