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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과 북은 정세의 영향 받음 없이 정상적 운영”
“남과 북은 정세의 영향 받음 없이 정상적 운영”
  • 안성용 선임기자
  • 승인 2013.10.31 1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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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이어 이산가족상봉 합의, 금강산관광 재개도 성사 가능성 커져…6자회담 등 국제관계와 남북 경협 진전에도 긍정적 영향 기대

남북은 8월 14일 7차 실무회담을 열어 개성공단의 발전적 정상화에 합의했다. 개성공단 중단사태 이후 133일 만의 일이고 치열한 교섭과정을 겪은 후 만들어낸 귀중한 성과이다.

남북 양측은 이날 합의문에서 “남과 북은 통행 제한 및 근로자 철수 등에 의한 개성공단 중단사태가 재발되지 않도록 하며, 어떠한 경우에도 정세의 영향을 받음이 없이 남측 인원이 안정적 통행, 북측 근로자의 정상 출근, 기업재산의 보호 등 공단의 정상적 운영을 보장한다”고 밝혔다. 양측은 또 남측 인원의 신변안전 및 기업의 투자자산 보호, 개성공단 기업들에 대한 국제적 수준의 기업 활동 조건 보장 등 4개 항에 합의했다. ‘상부의 위임을 받아서’ 합의한 합의서의 양측 서명주체는 우리측 김기웅 수석대표와 북측 박철수 수석대표다.

어떤 경우에도 정상운영 보장...관련제도 국제화 및 외국기업 적극 유치키로

이번 7차 회담에서는 이전의 6차회담까지 남북 간 가장 중요한 쟁점이었던 개성공단 가동 중단의 재발방지와 관련해 진일보한 합의를 이끌어냈다. 즉 남북은 “어떠한 경우에도 정세의 영향을 받음이 없이 남측 인원의 안정적 통행, 북측 근로자의 정상 출근, 기업 재산의 보호 등 공단의 정상적 운영을 보장한다”고 합의한 것이다.

또한 이번 합의에서는 특히 개성공단 국제화와 관련한 내용이 4가지에 이를 만큼 큰 비중을 차지했다. 구체적 합의 내용을 보면 외국기업 유치 적극 장려, 개성공단 내 노무·세무·임금·보험 등 관련 제도의 국제적 수준으로 발전, 제3국 수출 때 특혜 관세 인정 등 방안 마련, 남북 공동 해외투자설명회 개최 등이 포함돼 있다. 이는 양측이 1차 실무회담부터 공언한 “개성공단의 발전적 정상화”와 “국제적인 수준의 운영”이라는 전제를 구체적인 공동행동으로 보여준 것으로서 매우 뜻 깊은 합의사항이라 할 수 있다.

▲ 8월 14일 개성공단 종합지원센터 회의실에서 열린 제7차 남북당국 실무회담에서 김기웅 남측대표(오른쪽)와 박철수 북측대표가 정상화타결 합의문을 교환하고 있다. 제공=뉴시스

또 남북은 과거 개성공단을 포함하여 남북 교류협력 사업마다 문제가 되어왔던 통행·통신·통관 등 소위 ‘3통’ 문제에서도 진일보한 합의를 만들어냈다. 즉 상시적 통행 보장, 인터넷 통신·이동전화 통신 보장, 통관 절차 간소화와 통관 시간 단축 등이 그것이다. 또 남쪽이 거듭 주장해 온 공단 관련 인원의 신변 안전 보장과 투자 자산 보호도 확인했고, 동시에 개성공단과 관련한 일체의 문제를 논의·처리할 기구로 ‘개성공단 남북공동위원회’를 구성·운영하고, 그 산하에 필요한 분과위원회도 두기로 했다. 그간 공단 가동 중단으로 인한 기업들의 피해 보상 등에 대해선 이 공동위원회에서 협의해 나가기로 했다.

합의 배경과 의미

남북은 이번 합의서에서 ‘북쪽 책임론’이나 ‘남북 공동책임론’을 명기하지 않았다. 대신 “어떤 경우에도 정세의 영향을 받음이 없이” 개성공단의 정상적인 운영을 ‘남북’이 공동 보장하기로 했다. 그러나 우리측이 1~6차 회담에서 일관되게 요구했고, 이번 회담에서 쟁점이 될 것으로 예상했던 북측의 책임 인정 문제를 전격 양보한 배경에 대해서는 관심이 모인다.

한 남북전문가는 “개성공단의 정상 운영을 남북이 공동으로 보장했으나, 실질적으로는 북한이 보장한 것으로 봐야 한다. 책임 인정 문제가 빠지고 재발 방지책에 합의가 집중된 것에는 남측의 상황과 관련한 정치적 판단이 반영됐다고 볼 수 있다”고 밝혔다. 즉 국가정보원 대선 개입 문제에 따른 야당 및 시민단체의 투쟁과 최근 세금 제도 개편문제에 대한 여론의 반발 등 국내 정치에서 어려움에 직면한 청와대가 개성공단 재가동을 돌파구로 활용했다는 분석이다.

그러나 개성공단 중단 장기화는 중소기업 살리기를 모토로 건 박대통령의 입장에서는 시간을 끌수록 어려워지는 과제였다는 분석이 더욱 설득력을 가지는 것으로 보인다.

한편 북측의 경우 대남 정책을 총괄하는 김양건 통일전선부장이 박상권 평화자동차 사장과의 면담에서 “개성공단이 잘 되어야 DMZ 공원도 잘 될 것”이라고 언론을 통해 14일 이전에 밝힌 것으로 보아, 북측도 이번에 합의를 이끌어내려 노력했음을 추론할 수가 있다. 지난 호에 기자가 밝혔듯이 김정일위원장의 중요 업적인 개성공단 사업을 북측이 계속 중단하거나 포기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운 선택이기 때문이다. 또한 이번에 진행된 실무회담에는 지난달 25일 북한을 방문해 김정은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을 만난 리위안차오 중국 국가부주석이 남북 사이의 “의제의 조율 등 합의를 둘러싼 메신저 역할”을 했을 가능성이 언론에 흘려지고 있는 점을 고려하면 남북은 이번 회담에서 “합의를 이끌어내려 애썼다”는 것은 확실해 보인다.

개성공단의 향후 활동 예상

남북이 합의서에 많은 내용을 담았음에도 불구하고, 실제적인 개성공단 가동 시점과 절차를 구체적으로 명시하지 못한 것은 아쉬운 문제이다. 이를 김기웅 남쪽 수석대표는 공단 가동 시점과 관련해 “공동위원회를 가동해서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 작업이 진행되고 또 기업들이 기반 시설을 정비하는 데 시간이 걸린다. 그런 과정에서 공동위원회에서 협의한다”고 말했다.

이제는 공동위원회의 구성 및 활동이 중요하게 됐다. 남북은 공동위원회의 구성을 위한 실무협상을 시작했다.

‘국장급’이 책임을 지는 구조로 결정될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어쨌든 개성공단 재가동은 이제 시작이 됐다. 이 작업의 속도가 문제일 뿐이다. 중요한 것은 양측이 개성공단을 국제적으로 경쟁력이 있는 공단으로 발전시켜 나가기로 한 것인데, 이를 위해 앞서 본대로 외국기업 유치, 공단 운영의 국제적 기준 적용, 해외투자설명회 추진 등에 합의했다. 이에는 양측 최고지도자의 생각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특히 비즈니스를 앞장서서 하겠다는 박대통령의 최근 발언들을 볼 때, 향후 우리 정부는 개성공단과 관련하여 액션 플랜을 만들어 낼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남북관계, 대화국면으로 전환

합의 직후인 8.15일 경축사에서 박대통령은 북측에 “새 정부는 정치적 상황과 무관하게 인도적 지원을 계속해 나갈 것”, “열린 마음으로 북한을 적극 도울 준비가 돼 있다”고 밝혔다,

구체적으로는 “어제 개성공단 사태가 발생한 지 133일 만에 재발방지와 국제화에 합의했다”며 “저는 이번 합의를 계기로 과거 남북관계의 잘못된 관행을 바로잡고 상생의 새로운 남북관계가 시작되기를 바라마지 않는다”고 말했다. 또한 한 발 더 나아가 단기적 방안으로 추석 전후의 이산가족 상봉행사를 제안했고, 장기적 방안으로는 비무장지대(DMZ) 세계평화공원 조성을 제의했다. 박대통령이 북한에 이를 공식적, 직접적으로 제안한 것은 처음이다. 상당히 신중한 스타일인 박대통령의 발언은 이산가족 상봉 제안의 경우 실현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해 결정한 것으로 보인다. 또한 이 제안은 이명박정부 이후 오랫동안 경색되었던 남북관계의 물꼬를 틀 가능성이 높다.

정부는 16일 판문점 연락채널을 통해 “추석을 전후한 이산가족 상봉 등 인도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적십자 실무접촉을 23일 판문점 내 우리 측 지역인 평화의 집에서 가질 것”을 북측에 공식 제의했다. 이 제안에 이어 북측에서 화답이 나왔다. 북한이 18일 우리 정부가 제안한 이산가족 상봉을 위한 실무접촉 제안을 이틀 만에 수용한 것이다.

북한의 조국평화통일위원회(이하 조평통)는 이날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발표한 대변인 담화에서 “오는 추석을 계기로 금강산에서 흩어진 가족, 친척 상봉을 진행하며 10·4선언 발표일에 즈음해 화상상봉을 진행하도록 한다”고 밝혔다. 조평통은 “북남 적십자 실무회담은 남측의 제안대로 23일에 개최하도록 하며 장소는 금강산으로 해 실무회담 기간 면회소도 돌아보고 현지에서 그 이용 대책을 세우도록 한다”라고 제안했다. 또한 북한은 특히 이산가족 실무접촉 전날 금강산 관광 재개를 위한 실무회담을 제안해 금강산 관광 재개에 강한 의지를 드러냈다. 조평통은 “금강산 관광 재개를 위한 실무회담에서는 관광객 사건 재발방지 문제, 신변안전 문제, 재산 문제 등 남측의 관심사로 되는 문제들을 포괄적으로 협의,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실무회담 날짜는 22일로 하며 회담장소는 금강산으로 할 것을 제의한다”면서 “개성공업지구 정상화에 이어 금강산 관광이 재개되면 온 겨레에게 또 하나의 커다란 기쁨을 안겨주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앞으로 구체적인 회담을 통해 또 밀고 당기기가 진행될 것이다. 그러나 이제 오랜 기간 닫혔던 문은 열렸다. 대화가 시작된 것이다. 이산가족 상봉, 금강산 관광 재개 등 중요한 문제들이 다시 대화의 의제가 된 것이다.

남북이 개성공단 정상화 합의를 하고, 뒤이은 대화 제의들을 하면서 그동안 정적으로 보이던 국제관계들이 동적으로 변화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한중, 북중, 북미 관계와 6자회담 등 한반도 정세 전반에도 긍정적인 변화가 시작될 것으로 전망된다.

개성공단 정상화 여부는 여태까지 남북관계의 바로미터라는 평가를 받아왔다. 일단 이번 합의로 남북은 이산가족 상봉 등 인도주의적 문제나 ‘5·24 조치’ 해제, 금강산 관광 재개 등 다른 남북 간 경제협력, 민간교류, 정부 간 교류 등 다양한 대화 및 행보에 나설 수 있게 됐고, 실제 빠른 속도로 양측 모두 나서고 있다. 또 이번 상황은 예전과는 달리 미, 중, 일, 러 등의 영향보다는 남북 스스로가 경색된 국면을 스스로 대화로 열어냈다는 것 즉 ‘주도권’을 쥐게 되었다는 것이 또한 의미가 크다.

국제관계의 긍정적 변화 가능성

남북관계의 개선은 북중 관계는 물론 북미 관계를 비롯한 북한의 대외관계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쳐 6자회담 재개 등으로 이어질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중국을 방문한 최룡해 조선인민군 총정치국장이 시진핑 국가주석을 만나 “대화를 하겠다”는 입장을 전했고, 6자회담 북쪽 수석대표인 김계관 외무성 제1부상은 중국과 러시아를 방문하며 6자회담 재개 가능성을 타진한 바 있다.

하지만 북한의 그간의 대화 노력은 핵과 관련한 북의 선행 조치와 남북관계 개선 등을 집요하게 요구하는 미국의 싸늘한 반응에 부딪혀왔다. 이런 상황에서 남북관계 개선은 북한의 대미 교섭에 유용한 논거를 제공해줄 것으로 보인다. 남측도 그동안 북미 관계 개선에 소극적이었던 태도에서 벗어나 적극적인 역할을 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이 경우 미국도 6자회담의 전제조건으로 내세운 북한의 성의 있는 조처 요구를 완화할 가능성이 있다. 한편 남북관계 개선은 그간 6자회담의 조기 개최를 주장해온 중국의 활동 폭을 넓혀줄 것으로 보인다. 그간 중국의 6자회담 개최 주장에 미국 등은 “아직 때가 아니다”며 미뤄왔는데, 남북관계가 개선되면 중국은 이를 토대로 미국에 대한 설득력을 높일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E21

본 기사는 월간지 <이코노미21> 9월호에 게재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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