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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반성장과 경제민주화의 이해와 오해
동반성장과 경제민주화의 이해와 오해
  • 정운찬 전 총리, 동반성장연구소 이사장
  • 승인 2013.11.04 1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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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존과 분배를 전제로 해야만 지속가능한 성장이 가능하다’는 의미…정부 정책 의지, 대기업의 선도적 변화와 중소기업의 자조가 동반성장 동력

동반성장의 길을 찾아서 ①

<이코노미21>은 동반성장연구소와 함께 ‘동반성장의 길’을 모색하는 기획연재를 시작한다. 이번 호는 기획연재를 시작하면서 동반성장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정운찬 동반성장연구소 이사장의 글을 싣는다. - 편집자 주

동반성장이 우리 사회에서 본격적으로 회자되기 시작한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특히 2010년 12월 민간협의체로 출범한 동반성장위원회는 ‘동반성장’ 용어의 대중화에 중요한 모멘텀이 되었다. 하지만 아직도 동반성장에 대해서는 말도 많고 오해도 많다. 동반성장에 특정 색깔을 칠해 그 진정성과 핵심을 호도하려는 움직임도 아직 잔존한다. 한편, 작년 말 대통령 선거와 올해 초 새 정부의 출범을 계기로 최근에는 ‘경제민주화’ 논의가 급부상했다. 그런데 동반성장과 마찬가지로 경제민주화도 쓰는 사람마다 그 용어의 의미가 제각각이고 보는 시각도 저마다 다르다.

이 글의 목적은 동반성장과 경제민주화의 의미를 정확히 알리는 데에 있다. 이를 위해 이 글에서는 두 개념을 각각 설명하고 이들이 목적과 수단의 관계에 있음을 밝힌 후, 동반성장이 갖는 의의와 동반성장을 이루는 방법을 구체적으로 제시하고자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1960년대 초 정부 주도의 본격적 경제개발계획이 실시된 이래 지금까지 반세기 동안 선성장·후분배에 입각한 경제성장이 정부 경제정책의 기본 전략이었다. 1980~90년대를 거치면서 우리 경제에 시장메커니즘이 대거 도입·정착되긴 했으나, 선성장·후분배라는 기본 접근에는 별다른 변화가 없었다.

동반성장의 배경과 개념에 대하여

이에 따라, 지난 반세기 동안 우리 사회는 수출과 같은 특정 부문을 선도부문으로 먼저 육성하고 그 성과가 경제 전체에 파급되기를 기대하는 불균형 성장전략에 의존해왔다. 성장과 효율을 극대화하는 것이 지상 목표(선성장)였고 분배와 형평은 부차적 고려사항이었다(후분배). 그런 가운데 대기업을 우대하는 산업구조가 고착되었고, 중소기업은 대기업과의 수직적 관계 속에 불공정 거래를 감수해야 하는 위치로 전락했다.

특히 1997년 외환위기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거치면서 우리 경제의 가계부분과 기업부문이 각기 양극화의 가속적 심화를 경험하는 가운데 분배문제는 지속적으로 악화되어 왔다. 그 결과, 오늘날 가계부채와 중소기업 부실은 한국 경제의 발목을 잡는 양대 문제로 자리 잡았다. 우리 사회에서 분배의 공정성을 개선하지 않고는 더 이상 성장을 기대하기 어렵게 된 핵심적 배경이 바로 여기에 있다.

현재 우리 사회는 가계부채가 거의 1,000조에 육박한다. 가계부채가 너무 많으니 다들 허리띠를 졸라 맨다. 내수가 줄어드니, 특히 중소기업과 자영업은 타격이 크다. 쌓이는 재고로 이들의 투자도 부진하다. 이 때, 수출 대기업의 뛰어난 성과도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지난 4반세기 동안 급속히 진행된 경제의 세계화에 의해 국내적 산업연관관계가 단절되었고, 이로 인해 수출과 내수 간, 그리고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경기도, 일자리도 연계성이 크게 약화되었기 때문이다. 결국, 국내 소비 및 투자의 위축은 성장 둔화와 양극화 심화를 가져온다. 이는 [양극화 심화 ⇒ 가계부채와 중소기업 부실 누적 ⇒ 내수 부진 ⇒ 성장 둔화 ⇒ 양극화 심화]로 이어지는 악순환이 한국 경제에 구조화되었음을 의미한다.

그럼에도, 우리 사회의 의식수준은 지금까지도 지난 반세기 동안의 선성장·후분배의 관성 또는 미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는 오랜 세월을 거치며 확립된 불공정한 분배관행과 기존 이해관계의 조정이 쉽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하지만, 부자이든 영세민이든, 대기업이든 중소기업이든, 한국 경제라는 배에 동승한 이상, 더 이상 실기하면 모두에게 공멸이다.

21세기를 맞이한 우리 사회가 양극화의 개선 없이는 성장둔화를 피할 길은 없다. 동반성장은 이와 같은 문제의식에서 나왔다. 이제 21세기에는 지난 반세기 동안 자리잡은 불공정 분배의 관행을 공정하게 개선함으로써 지속가능한 성장을 추구하자는 뉴노멀 성장전략이 바로 동반성장이다.

이러한 내용이 동반성장이라는 용어에 이미 그대로 녹아있다는 사실은 흥미롭다. 동반성장은 ‘함께 가는 가운데 다같이 성장하자’는 의미에서 공존을 통한 성장을, 그리고 ‘함께 나누는 가운데 다같이 성장하자’는 의미에서 분배를 통한 성장을, 각각 함축한다. 결국 동반성장에 아로새겨진 핵심 메시지는 ‘공존과 분배를 전제로 해야만 지속가능한 성장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요컨대, 동반성장은 20세기와 구분되는 21세기 우리 사회의 시대정신이다. 그것을 이루지 못하면 서민경제가 파탄나고, 경제 전체가 붕괴되어 사회를 유지하기 힘들 수 있다. 그러나 그것에 성공하면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한국경제가 다시 한 번 도약할 수 있다.

한편, 경제민주화는 자본주의 경제에서 대·중소기업, 노동자, 소비자들이 서로 대등한 관계에서 경제활동을 영위하게 됨을 말한다. 즉 대기업과 중소기업은 물론 노동자와 소비자들까지 기존의 수직 관계에서 벗어나 수평 관계로 선택의 자유를 누리게 될 때, 그것이 바로 경제민주화다. 이것은, 어떤 개별 경제주체도 상대방과 자유롭게 거래할 수 있는 동시에 어떤 경우에는 거래하지 않을 자유도 있는 상태이다.

경제민주화는 동반성장을 이루기 위한 수단의 하나

일례로, 기업이 근로조건을 내놓았을 때 노동자가 이것을 받아들이거나 아니면 받아들이지 않을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이 가능하려면, 노동자가 최소한의 생활수단을 확보할 수 있는 상태이어야 하고, 새로 찾을 일자리가 많아야 하며, 한 직종에서 다른 직종으로 옮길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되어야 한다. 또 다른 예로, 대기업과 중소기업과의 거래에서 대기업이 구두주문, 납품가 후려치기, 어음결제 등 불공정거래를 추구할 때 중소기업이 대기업과의 거래를 받아들이지 않을 수 있어야 한다. 그럴 수 있으려면, 현실적으로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격차가 크지 않아야 한다. 다시 말해 경제력이 한곳에 과도하게 집중되어 있으면 안 된다는 뜻이다. 재벌개혁이 경제민주화 논의의 초점인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경제민주화가 이루어진 사회란 어떤 모습일까? 기본적으로 중소기업부문이 강건하여 좋은 일자리가 많고 사회안전망이 적정 수준으로 갖춰진 사회이자, 경제력 집중이 존재하지 않고 노동권과 소비자 권리 등 공동체 구성원의 경제적 자유가 보장된 사회이다. 이렇게 보면, 경제민주화는 경제적 측면의 동반성장—즉 ‘공존과 공정한 분배를 전제로 한 지속가능한 경제성장’—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특히 ‘공존과 공정한 분배’에 초점을 맞춰 이를 이루려는 중요한 한 가지 수단이다.

동반성장론에 색깔을 입히는 오류를 우리 사회가 뛰어넘어야

21세기의 우리 사회가 지속가능한 번영과 복지를 누리기 위해서는 사회의 운영체계 자체가 정비되어야 한다. 이러한 정비를 위해서는 온건한 사회개혁이 필수적이다. 동반성장은 바로 이런 온건 개혁을 지향한다.

그럼에도, 동반성장론을 둘러싼 오해는 아직도 많다. 우리 사회에 동반성장론이 튼실하게 뿌리내리려면 보수세력이든 급진세력이든 우선 색깔론부터 뛰어넘어야 한다. 현실적으로, 동반성장론은 보수세력에겐 급진이고 급진세력에겐 보수로 보이기 쉽다. 실제로 대기업 등 보수세력은 기존의 불공정 분배틀에 기초한 기득권이 일부 조정되는 것에 대해 급진이라며 불편해하고, 노동운동가 등 급진세력은 그런 부분적 조정은 보수적 접근에 기초한 눈속임이라며 매도한다. 동반성장론이 진정성을 갖고 이 사회의 근본 문제를 논리적으로 지적해도, 보수와 급진 할 것 없이 ‘문제’에는 초점을 맞추지 않은 채 ‘지적’만을 가리키며 분란을 키우는 형국이다.

이래서는 우리 사회가 머지 않아 공멸의 내리막길로 치달을지도 모른다. 보수와 급진 모두 하루 빨리 단기 시야를 벗어나 중장기 시야를 갖춰야 한다. 동반성장론을 구심점으로 다같이 지혜를 모아 지속가능한 사회를 지향해야 한다.

대ㆍ중소기업간 동반성장의 구체적 방법에 관하여

대·중소기업간 동반성장을 이루기 위해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당장 실천하기 쉬운 것들부터 따져보자. 우선, 초과이익공유(협력이익배분)를 실행해야 한다. 대기업이 목표한 것보다 높은 이익을 올리면 그것의 일부를 중소기업에 돌려 중소기업이 기술개발, 해외진출, 또는 고용안정을 꾀하도록 하자는 것이다. 이것은 결코 시혜적인 것이 아니다. 보상적인 것이다. 초과이익의 적지 않은 부분은 납품가 후려치기에 연유하기 때문이다. 둘째, 중소기업 적합업종을 선정하여 대기업이 더 이상 지네발식 확장을 못하도록 해야 한다. 이것은, 중소기업의 사업영역을 보호하기 위해 대기업들의 신규 참여 확대를 금지하는 업종을 선정함으로써 중소기업의 자생력을 키워주자는 취지이다. 끝으로, 정부가 조달청을 통해 재화나 서비스를 조달할 때 예컨대 80% 이상을 중소기업에 직접 발주하도록 하는 등의 노력이 당장 필요하다.

이러한 방안들은 기존의 불공정한 기존 게임룰 아래에서라면 대기업으로 흘러갔을 돈이 중소기업에 합리적으로 흘러들어가도록 교정하는 조치들이다. 물론 중·장기적으로는, 대기업 위주의 경제정책을 중소기업 위주의 신산업정책으로 바꾸어야 한다. 중소기업이 가장 필요로 하는 것은 사람이다. 좋은 학생들을 중소기업으로 유도하기 위해서 학자금 융자에 혜택을 준다거나 군복무에서 혜택을 줄 수도 있다. 또한 중소기업의 해외진출을 위해 국가기관, 예를 들면 KOTRA가 대학, 중소기업 등과 협력해야 한다. 뿐만 아니라 정부의 R&D 자금 배분을 대기업 위주에서 중소기업 위주로 바꾸어야 한다.

동반성장으로 우리가 얻게 되는 것은 무엇일까? 첫째, 성장이 촉진되고 지속적 성장의 기초가 된다. 한국경제는 인구가 5천만이 넘으면서도 1인당 소득이 2만 달러가 넘는 50–20 그룹에 속하게 되었고 일본·중국에 비해 국가신인도가 같거나 높아졌다. 그러나 투자가 부진하여 잠재성장력이 떨어졌다. 대기업은 돈은 많으나 투자대상이 부족하고 중소기업은 투자대상은 있으나 돈이 없다. 따라서 투자증진을 위해서는 대기업에는 첨단, 핵심기술을 많이 제공해야 한다. 그것은 중기적으로는 R&D의 방향전환, 즉 D에서 R로의 점진적 전환이 필요하고 장기적으로는 교육혁신을 통해 국민 전체의 창의성을 제고해야 한다. 이것들은 시간을 필요로 한다. 그러나 단기적으로는 대기업으로 흐를 돈이 합리적으로 중소기업에 흘러가게 함으로써 중소기업의 투자를 촉진하면 단기적 성장을 이루고 지속적 성장의 기초를 쌓을 수 있다. 둘째, 또한 동반성장은 여러 가지 양극화로 인한 사회갈등과 분열을 해소하는 데 기여할 것이다. 뿐만 아니라, 동반성장은 약자들의 생활을 개선함으로써 사후적 복지수요를 줄이는 사전적 복지제도의 역할도 수행한다.

결론적으로, 동반성장은 한국경제의 밝은 면은 더 밝게 어두운 면은 덜 어둡게 할 것이다. 그리고 중소기업이 중견기업으로, 중견기업이 대기업으로 도약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 사회 각 경제주체들이 상호 공존하기 위해 특별한 노력과 정성을 기울이지 않는다면 동반성장은 영영 이상으로만 남게 될 것이다. 특히, 정부의 강력한 정책 의지 위에 대기업의 선도적 변화와 중소기업의 자조가 어우러진 삼위일체가 동반성장의 핵심 동력이다. E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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