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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안화, 달러를 대체할 수 있을까
위안화, 달러를 대체할 수 있을까
  • 전용복 경성대 교수
  • 승인 2013.12.30 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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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특집2> ‘과도한 특권’ 달러화 위기 고조, 복수 국제통화로 위안화 부상…신흥국들 ‘달러화 일극 체제’에 불만 커, 통화질서 재편 가능성…‘국적없는 통화’ 유로화 한계, 무역1위 경제규모2위 中위안화 대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 이후 전 세계로 번져 나간 세계 경제위기는 새로운 국제통화질서의 재편 가능성으로까지 발전했다. 이는 비단 미국에 불만을 품은 신흥국들 고위 관리들의 정치적 언술에 머물지 않고 현실적인 흐름으로 자리 잡아가고 있는 형상이다. 그 중심에 중국이 있는데, 중국은 2009년 초 공식적으로 위안화 국제화 추진전략을 선언하고 그 구체적인 실행절차를 진행해 왔다. 이는 현재의 달러화 일극 체제에 대한 도전으로, 국제통화질서의 재편을 요구하는 야심찬 계획이다.

과연 위안화가 달러화를 대체할 수 있을 것인가? 이 글에서는 이에 대한 답을 모색해 보는데,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럴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지만, 위안화의 국제통화로의 부상은 아직 많은 시간이 필요하고, 가까운 장래에 복수의 국제통화체제가 출현할 가능성이 크다.

늘어나는 경상수지 적자, 사상누각의 미국경제

2008년 금융위기를 계기로 미국경제는 그 지속 가능성이 의심받는 수모를 겪어야만 했다. 하지만 이런 미국 경제 회의론을 단지 미국의 독주를 시기하는 심정적 독설로만 치부할 수만은 없는 합리적 이유들이 존재한다. 2008년 미국 금융위기의 폭발은 금융기관들과 투기자본의 과도한 탐욕이라는 표면적이고 즉자적 혐의보다는, 오랜 동안 누적된 세계적 차원의 불균형과 더 밀접히 관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잘 알려진 것처럼, 미국은 1990년 이후(그 이전에도) 지속적으로 경상수지 적자를 기록해 왔고, GDP 대비 경상수지 적자의 비율은 오히려 확대되어 왔다. 더구나 재정수지 또한 2000년대 초반 몇 해를 제외하고는 2차 세계대전 이후 지속적으로 적자를 보였다.

이러한 대내외 적자는 모두 미국에게 부채(빚)이다. 이렇게 쌓여가는 빚을 미국은 어떻게 감당해 왔을까? 첫 번째 방법은 간단히 돈을 찍어내는 것이다. 이는 특히 2008년부터 시행되어 온 양적완화정책에서 정점을 이룬다. 두 번째 방법은 세계로부터 돈을 빌려오는 것이다. 단순화해서 말하자면, 미국 경제와 달러화 가치는 대미 흑자국들(특히 중국을 포함한 아시아 국가들)이 그 흑자를 투자의 형식으로 미국에 빌려주는 방식으로 지탱되어 온 체제인 것이다. 미국과의 무역으로 흑자를 낸 나라들이 그 돈을 다시 미국에 투자함으로써, 미국은 누적되는 경상수지 적자에도 불구하고 수입을 지속할 수 있었다. 이러한 달러의 회귀는 이번에는 미국 경제 내부의 문제를 악화시켰다. 첫째, 달러화의 가치가 높게 유지되었고, 그 결과, 둘째, 실물시장에서는 수입품 가격이 하락하고 인플레이션이 억제되었다. 이 두 가지 경향은 미국의 이자율을 낮추어 거품경제를 유도한 주범이 되었던 것이다.

최대 채무국 미국의 생존방식

따라서 세계 경제의 불균형은 미국 금융위기를 낳은 가장 중요한 구조적 원인인 것이다. 그런데 빚이 누적되고 있음에도 흑자국들이 미국에 돈을 빌려준 데에는 보다 근본적인 사정이 있었다. 1997~1998년 외환위기를 경험한 아시아 경제들은 이 경험을 교훈삼아 외환보유고를 확충하고자 했는데, 이 외환 준비금 가운데 가장 안전하고 ‘중요한’ 국제통화가 달러화였던 것이다. 이렇게 달러화가 국제통화라는 사실 덕택에 미국은 세계로부터 낮은 비용(이자율)으로 차입하여, 이를 다시 세계 각지에 투자해 상대적으로 높은 수익을 올렸다. 실제로, 평균적으로 미국의 해외투자 수익률은 외국의 대미 투자 수익률에 비해 2~3% 포인트 높았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미국의 해외 직접투자 증가는 미국 내 제조업 공동화를 불러오면서 미국의 상품수지 적자를 악화시키는 경향을 낳았고, 이제는 소비재의 대부분을 수입에 의존하는 수준에 이르렀다. 반대로 대미 수출을 통해 경제성장을 추구해 왔던 나라들은 미국의 수입 중단이 곧 자신의 경제적 몰락을 의미하게 되었다. 이렇게 미국과 그 주요 무역 상대국들은 이제 서로가 서로를 볼모로 삼는 지경에 도달했다. 따라서 미국 경제의 구조조정은 세계 경제질서의 재편을 요구하는 일이라는 점에서 지난한 과제인 것이다.

▲ 지난달 30일 중국 베이징의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건국 64주년 기념 만찬 연회에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가운데)을 포함해 신 지도부 상무위원 7인이 전원 참석한 모습. 이날 연회에는 중국 내외 유명 인사 1100여 명이 초대됐다.베이징=신화/뉴시스
국제통화질서의 관점에서, 세계 경제 불균형의 정점에는 이렇게 달러화가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미국 경제가 대내외의 불균형을 그렇게 오랫동안 누적해 온 데에는, 그리고 그 결과 오늘날 세계적 차원의 심각한 구조조정(경착륙)을 피할 수 없도록 만든 데에는, 미국의 통화인 달러화가 가진 특별한 지위가 핵심적 역할을 담당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달러화의 과도한 특권으로 연명

한국의 국제거래를 예로 들어 보자. 한국은 전체 국제거래의 80% 이상이 달러를 매개로 거래된다. 또한 한국은행은 2013년 7월말 기준 3,297억 달러의 외환 보유고를 보유하고 있는데, 이 가운데 달러 표시 자산이 약 60%를 차지한다. 세계경제 전체를 대상으로 하더라도 이러한 패턴은 별반 다르지 않다. 이것이 달러화가 가진 특별한 지위, 즉 국제통화를 정의한다.

미국의 저명한 국제통화체계 학자 배리 아이켄그린(Barry Eichengreen)은, 달러화가 국제통화로 등극한 이후, 달러와 미국경제는 ‘과도한 특권’을 누려왔다고 평가한다. 우선 미국의 기업과 개인은 환전에 따른 비용을 지불하지 않아도 된다. 또한 미국의 기업들은 환율변동에 따른 위험을 감수하지 않아도 된다. 즉 기업 활동의 가장 큰 장애물 가운데 하나인 환율 리스크로부터 자유롭게 된다. 하지만 달러화 국제통화로부터 얻는 가장 큰 혜택은 ‘발권이익’(seigniorage)일 것이다. 미국은 달러화 지폐(혹은 전자 장부상의 등재!)의 발행비용만을 지불했고, 다른 나라는 그것을 얻기 위해 그에 해당하는 재화와 서비스를 미국에 제공한다. 2008년부터 터져 나온 미국 금융위기의 비용을 단지 달러화를 발행해 충당하고 있다는 사실에서, 국제통화가 가진 위력을 실감할 수 있다.

국제기축통화 조건과 달러화에 대한 불만

그렇다면 달러화의 과도한 특권은 사라질 것인가? 이에 대한 긍정론과 회의론 모두 합리적 근거를 갖추고 있다. 여기서는 달러화가 미래 어느 시점에 국제통화의 지위에서 물러날 것인가란 ‘예언적’ 가설의 진위를 따지기 보다는, 국제통화로서 갖추어야 할 역사적 조건들을 따져 봄으로써 독자의 개별적 전망에 도움을 주고자 한다.

자국의 통화가 국제통화의 지위에 오르기 위해서는 첫째, 자국의 경제 규모와 국제거래가 세계적 수준에서 ‘주도적’ 역할을 담당할 수 있는 정도의 수준에 도달해야 한다. 해당 경제의 규모가 크고 국제거래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면, 그 나라 통화에 대한 세계적 수요도 증가할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거래를 위한 편의성(convenience)만으로는 국제통화로서 관심을 끌기에 부족하다. 해당 통화 표시 자산을 외국인 투자자들과 중앙은행들로 하여금 보유하도록 하려면, 즉 준비금으로 사용되도록 하기 위해서는 해당 통화의 안정성이 보장된다는 믿음을 주어야 한다. 이것이 국제통화로서의 두 번째 조건이다.

마지막으로 국제통화는 충분히 유동적이어야 한다. 여기서 유동성이란 두 가지 의미를 내포한다. 하나는 해당 통화로 표시된 자산이 쉽게 매매 가능할 뿐만 아니라 기타 통화로 쉽게 전환될 수 있어야 한다는 의미이고, 다른 하나는 해당 통화가 풍부하게 공급될 수 있어야 한다는 의미이다. 이 두 가지 의미의 유동성을 모두 충족시키는 방법은 ‘개방’되고 질적으로 ‘발전된’ 금융시장을 갖추는 것이다. 이것이 기축통화를 위한 세 번째 조건이다.

달러화도 이러한 조건이 모두 만족되었을 때, 비로소 국제통화로서 자리매김 할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이러한 기준으로 볼 때, 달러화의 국제통화의 위상은 현재 크게 위협받고 있음이 분명하다. 미국 경제와 국제무역의 상대적 규모가 지속적으로 축소되고 있다. 또한 미국 정부의 엄청난 부채와 대규모 경상수지 적자 누적은 달러의 신뢰(안정성)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음도 분명하다. 마지막으로 2008년 미국 금융시장 붕괴와 디레버레징(차입감소)은 미국의 금융시장도 충분한 유동성을 보장해 주지 못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 사건이었다. 작금 역설적이게도 달러화의 가치와 위상이 유지되고 있는 현상은, 달러화를 대체할 대안이 부족해서 벌어지는, 일종의 어부지리로 이해하는 편이 정확할 것이다. 즉 달러화를 떠받치는 객관적 조건의 붕괴는 달러화 몰락의 필요조건에 지나지 않는다. 그것의 충분조건은 대안이 될 수 있는 통화의 존재인 것이다. 예컨대, 유럽이 지금처럼 경제위기에 빠지지 않았더라면, 과연 달러화에 대한 그와 같은 지지가 가능했을까?

위안화 국제화 전략, 무역결제 확대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를 계기로 그동안 달러화와 미국 경제가 누린 ‘과도한 특권’에 대한 불만이 터져 나왔다. 이러한 불만은 세계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점점 증가하고 있는 신흥국들을 중심으로 형성되었는데, 특히 중국은 2009년 초에 위안화의 국제화를 공식적으로 선언하고, 구체적인 실행계획을 진행해 오고 있다.

위안화 국제화를 위한 실행전략은 세 가지 차원으로 구성되어 있다. 첫 번째는 위안화를 무역결제와 외국인 직접투자에 보다 광범위하게 사용되도록 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중국은 상하이 등 중국의 주요 무역도시를 시범적으로 지정하여, 이들 도시와 거래하는 무역 상대국들을 대상으로 위안화 결제를 확대해 왔다. 여기에는 주로 홍콩 등 동남아와 아프리카 경제들이 포함된다. 나아가 2012년 9월에는 중국과 대만이 양국의 무역거래와 투자에 달러화 대신 위안화와 대만 달러만을 사용하기로 합의하기도 했다. 그 결과 위안화 결제액 비중이 매우 빠르게 증가하여 2013년 상반기에는 중국 무역 총액에서 위안화 결제비중이 17%를 넘어선 것으로 보도되고 있다. 하지만 위안화 무역 결제액 가운데 약 80%는 홍콩과의 거래여서, 실질적으로 대외거래에 사용된 위안화의 비중은 아직 크다고 할 수는 없다.

위안화 태환성 확대와 20개국과 통화스와프 협정

또 다른 차원의 실행전략은 중국 금융시장의 개방과 위안화의 태환성을 확대하는 정책이다. 앞서 지적한 것처럼 하나의 통화가 국제통화가 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풍부한 유동성을 제공해야 하고 자유로운 태환이 보장되어야 하는데, 그 제도적 기초는 금융시장의 개방이다. 잘 알려진 것처럼 중국의 금융시장은 가장 폐쇄적인 시장에 속한다. 하지만 2007년부터 홍콩에서 중국 기업의 위안화 표시 채권의 발행이 허용되었고, 2010년에는 외국기업의 위안화 표시 채권 발행도 허용되었다. 그 결과 홍콩은 일평균 위안화 거래량이 약 4,000억 위안(2013년 7월 기준)을 기록하면서, 위안화 최대 역외시장이 되었다. 또한 중국은 중국 진출 외자은행들에게 중국 은행간 시장 거래와 위안화 표시 회사채 인수중개업무를 허용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중국의 채권시장은 발행과 유통 시장 모두에서 정부 및 국유은행이 약 90%를 차지하는 등, 실질적으로 시장원리가 작동하고 있다고 보기는 어려울 것이다.

마지막으로 중국은 위안화의 준비통화 기능을 확대하기 위한 방안으로, 여러 나라들과 위안화 통화스와프 체결을 확대해 나가고 있다. 2008년부터 현재까지 총 20개국과 약 2조 위안 규모의 통화스와프협정을 체결했다. 한국은 2011년 10월에 원-위안 통화스와프 규모를 1,800억 위안에서 3,600억 위안으로 확대하였고, 최근 2013년 6월에는 영국과 2,000억 위안 규모의 파운드-위안화 통화스와프협정을 체결하였다. 이에 따라 향후 영국 런던이 위안화 표시 자산의 역외시장으로서의 기능이 강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통화스와프 체결이 곧바로 준비통화로 격상됨을 의미하지는 않는다는 점에서, 이 정책 또한 정지작업에 불과하다고 판단된다.

이러한 진전에도 불구하고 위안화의 현재 위상은 미약하기만 하다. 하지만 미래 국제통화질서의 전개와 관련하여, 다음과 같은 사실을 지적할 필요가 있다. 현재의 국제통화체제에서 국제적 합의는 거의 불가능해 보인다. 세계적 불균형이 누적된 결과, 각국의 이해관계가 화해 불가능한 수준으로 첨예하게 대립되어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세계화폐를 도입하거나 과거 브레튼우즈 체제에서처럼 어떤 통화가 국제통화로 공식적 절차를 통해 추대되고 출범할 가능성은 극히 희박하다. 또한 역사적으로나 이론적으로 국제통화의 역할을 수행하는 통화가 반드시 하나일 이유도 없다. 이러한 사실은 향후에 국제통화가 세계 ‘시장’에서의 경쟁을 통해 선별될 것이란 점을 의미할 것이다. 아직 중국의 정치적 군사적 영향력이 제한되어 있는 상황에서, 이는 위안화의 국제화 가능성에 긍정적인 조건일 것이다.

하지만 국제통화 선별을 위한 경쟁에서 위안화가 경쟁력을 갖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문제들이 해결되어야 한다. 첫째, 중국은 충분히 유동적인 금융시장을 구축해야 한다. 위안화 표시 자산의 거래에 어려움이 있다면, 위안화가 세계적 차원에서 유통되기는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아직까지 중국은 신속히 자신의 포트폴리오를 변경하고자 하는 투자자들의 요구에 크게 부족한 금융환경을 갖고 있다.

국제통화 되기 위해 위안화가 풀어야 할 의구심

예를 들어, 중국 채권시장의 규모가 최근 빠르게 성장하고 있지만, 정부나 중앙은행, 그리고 국유은행이 발행한 채권이 90% 이상을 차지하고 있고 회사채 비중은 겨우 3% 내외에 머무르고 있는 등, 발행에서 민간의 참여가 매우 저조하다. 더욱이 외국기업의 채권 발행이 원칙적으로 불가능하진 않지만 발행절차와 외환관련 규정이 매우 까다로워, 외자계 기업과 금융기관들이 사실상 배제되어 있다. 유통시장에서 채권의 거래도 주로 중국의 대형(국유)은행에 의한 은행간 거래가 주를 이루고 있어, 채권 수익률이 정부에 의해 통제된다는 의심까지 받고 있는 실정이다. 또한 중국의 금융시장에서 거래되는 금융자산의 종류가 매우 제한되어 있다. 이러한 금융시장 조건을 고려할 때, 위안화로 표시된 자산과 위안화 자체가 시장의 인기를 끌기는 어렵다.

둘째, 위안화 국제화를 위해서는 외국계 자본의 자유로운 유출입을 보장하는 자본계정의 자유화가 결정적으로 중요하다. 2001년 WTO 가입에 따라 중국은 외국계 기업과 금융기관의 진출을 대폭 허용했지만, 외국자본의 출입은 매우 엄격히 제한된 조건과 범위 내에서 철저히 통제되고 있다. 이는 중국의 금융시장이 외국자본의 자유로운 유출입이 야기하는 혼란에 대응할 만큼 충분히 성숙되지 못했음을 반영한 정책적 조치이지만, 다른 한편으로 이는 해외의 위안화 투자를 막고 있어 위안화의 국제화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 따라서 자본계정에 대한 통제는 명목상으로는 외환시장 정책의 하나에 불과하지만, 실질적으로는 자본계정 자유화의 부정적 영향은 차단하고 그 장점만을 취할 만큼 중국의 금융부문이 성숙되어 있지 못함을 의미한다.

셋째, 향후 위안화의 국제화는 궁극적으로 중국경제의 전반적인 성장에 달려 있다. 1978년 이후 중국의 개혁·개방 정책은 매우 성공적이었다. 그 결과 경제규모 세계 2위, 세계 무역에서 차지하는 비중에서는 1위, 해외직접투자 유치에서도 개발도상국 가운데 압도적인 1위를 차지하게 되었다. 이러한 중국경제의 외연적 확장은 중국과의 무역거래나 향후 중국 소비시장의 성장성에 기대를 건 대중국 직접투자를 위한 위안화의 편의적 수요를 증가시켰다. 하지만 중국의 경제성장이 멈추거나 정체된다면 그러한 편의적 수요마저도 감소할 수 있다.

1990년대부터 중국은 수출에 의존하는 성장방식을 추구해왔다. 세계적 불균형의 가장 핵심에 위치한 중국이 앞으로도 이러한 수출 의존적 성장방식을 고수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중국의 지속 가능한 경제성장은 내수 주도적 성장체제로의 전환 성공여부에 달렸다. 이를 인식한 중국 정부는 2000년대 초반부터 내수 주도적 성장체제로의 전환을 위한 노력을 경주하고 있지만, 1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뚜렷한 성과를 보이지 않고 있다. 이에 대한 전망도 일방적으로 낙관할 수만은 없는데, 왜냐하면 임금제도, 사회보장제도, 세제 등 매우 복잡한 사회·경제 체제의 전환을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위안화 국제화 가능성의 궁극적 의구심은 중국 정치체제의 신뢰에 대한 것이다. 더 현실적으로 금융(외환)위기와 같은 경제적 곤란이 닥쳤을 때 과연 중국 정부는 지금처럼 소유권과 위안화의 안정성을 완벽히 보장해줄 것인가의 문제이다. 지금까지도 중국의 정책 효과성(effectiveness)이 매우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러한 현상의 이면에는 정책적 편의를 위해서라면 시장경제 원리의 가장 근본이 되는 사적 ‘소유권’을 침해할 수도 있다는 공포가 자리 잡고 있다. 투명하지 못한 사법체계와 일상에서 관찰되는 여러 분규들에 대한 정부의 대응방식들을 볼 때, 이러한 우려가 근거가 없는 것도 아니다. 따라서 경제위기가 닥쳤을 때 중국 정부가 내외국인 모두의 사적 소유권을 제한하지 말란 법도 없다는 인식이 지배하는 한, 위안화 표시 자산을 보유하도록 유도할 마땅한 방법은 없다.

포스트-달러화 체제? 복수의 국제통화체제 가능성 커

미국의 달러화는 국제통화로 등극한 이후 최대의 위기를 맞고 있다. 자신을 국제통화로 만든 그 조건 자체가 허물어지고 있는 것이다. 미국발 금융위기로 미국 금융시장에 대한 신뢰가 심각하게 손상되었고, 미국의 누적된 대내외 적자는 달러화 및 달러화 표시 자산의 안정성을 더 이상 장담할 수 없게 하고 있다. 이러한 위기가 일시적인 어떤 ‘사고’가 아니라는 사실에 문제의 심각성이 존재한다. 미국 경제와 국제통화질서, 그리고 세계경제의 위기는 달러화가 국제통화의 특권을 누리던 지난 60여 년 동안 누적된 세계적 불균형의 결과이다. 따라서 그 해결 또한 간단하지 않다. 이러한 혼란의 와중에도 달러화의 가치가 유지된 기이한 현상은 대안의 부재에 따른 어부지리라 설명하는 것이 보다 더 설득력 있어 보인다.

하지만 이러한 어부지리의 요행이 지속될 수는 없을 것이다. 세계 시장에서는 국제통화를 위한 경쟁이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기 때문이다. 달러화에 대한 대안적 국제통화로 흔히 거론되는 통화는 유로화와 중국의 위안화일 것이다. 하지만 유로화는 국제통화로서 갖춰야 할 가장 근본적인 조건인 안정성을 갖추지 못하고 있다. 바로 유로화는 국적 없는 통화, 즉 유로화의 가치 안정을 ‘책임’질 주체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유럽중앙은행(ECB)이 존재하긴 하지만, 유럽 재정위기를 겪으며 보여준 모습으로 판단하자면, 이는 일국의 중앙은행이라기 보다는 차라리 제한된 권한만을 갖는 국제기구의 성격에 가깝다.

국적없는 유로화보다는 위안화의 국제통화 경쟁력 주목

다음으로, 위안화의 국제화는 아직 가장 초보적인 단계에 머물고 있고, 향후 발전이 어떻게 전개될지 예측하기도 어렵다. 위안화의 국제화를 위해서 중국은 금융위기에 대한 내성을 갖추는 한편, 자본계정을 개방해야 하는 1차적 과제에 직면해 있다. 중국 금융부문이 이 정도의 실력을 쌓기에는 많은 시간이 필요해 보인다. 더구나 중국 당국은 국제거래자들의 환심을 살 만큼 위안화의 안정성을 충분히 보장하고 있는 것도 아닌 것 같다. 마지막으로 중국의 외연적 성장도 체제 전환이란 난제를 극복해야 가능한 일일 것이다.

결국, 중장기적으로 차기의 국제통화는 세계 시장에서 경쟁을 통해 선별될 것이고, 그에 따라 국제통화질서의 재편이 불가피해 보인다. 역으로 국제통화를 위한 경쟁에서 승자는 현재 직면하고 있는 세계적 차원의 불균형을 가장 효과적으로 해소하는 경제에게 돌아갈 것이다. 하지만 유럽이나 미국이 지금처럼 금융위기의 비용을 자국 대중들에게 전가하는 방식으로 경제위기의 해결을 지연시키는 동안, 중국의 위안화는 더 두드러지게 부상할 가능성이 크다는 점만은 분명하다. 따라서 가까운 장래에 우리는 복수의 국제통화체제가 등장할 가능성이 크다고 하겠다. E21

본 기사는 월간지 <이코노미21> 10월호에 게재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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