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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민부국(富民富國)의 메커니즘을 디자인하다
부민부국(富民富國)의 메커니즘을 디자인하다
  • 박이택 본지 편집기획위원, 성균관대 초빙교수
  • 승인 2013.12.30 12:37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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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서양 고전으로 읽는 경제사상사…춘추전국시대 이코노미스트들의 바이블 <관자> ➋

춘추전국시대 제후들은 경제자문관의 역할을 해 줄 이코노미스트였던 경중가(輕重家)들을 찾았다. 왜 찾았을까? 그것은 경중가들이 해결해 주어야 할 새로운 시대적 과제가 출현하였기 때문이었다. 멸국겸병의 시대였던 춘추전국시대, 바야흐로 주 나라의 질서는 무너지고 있었고, 백성들은 어느 제후 밑에서 살지 우왕좌왕하는 시대였다. 새 시대에 걸맞는 새로운 통치 체계를 구축하는 것이 제후들에게 부여된 시대적 과제였다.

복고풍 맹자와 새로운 스타 노자

제자백가(諸子百家)들은 모두 나름의 시대적 해법을 가지고 있었다. 비록 복고풍이기는 하지만, 맹자도 나름의 비책을 가지고 있었으니, 유세에 나섰을 것이다. <맹자>의 ‘양혜왕 상’을 보자.

“이제 왕께서 훌륭한 정치를 하고 어진 마음을 베푸신다면, 천하의 벼슬하는 자들을 모두 왕의 조정에서 벼슬하고 싶게 하며, 농사짓는 사람들을 모두 왕의 들에서 농사짓고 싶게 하며, 장사꾼들을 모두 왕의 시장에서 물건을 쌓아두고 장사하고 싶게 하며, 여행하는 자들을 모두 왕의 나라의 길을 통해 나가고 싶게 할 수 있을 것이며, 자기 군주를 원망하는 모든 백성들이 모두 왕에게 달려와 하소연하고 싶게 할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이 된다면 누가 그것을 막을 수 있겠습니까”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군주가 백성을 사랑하면, 모든 백성들이 그 군주 아래 모일 것이므로 천하통일의 위업을 달성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당대 군주들은 ‘어진 정치’를 충고하는 맹자의 해법에 큰 매력을 느끼지는 않았다. 주 나라의 옛 제도를 이상(理想)으로 보는 이 비책을 ‘빛 바랜 레코드 판’ 이상으로 보지 않았던 것이다.

오히려, 새 시대에 맞는 새로운 비책을 제시하겠다는 유세가들에게 관심을 기울였다. 새롭게 출현하는 자연적 질서, 그것을 도(道)라 이름하고, 그에 대한 비책을 갖고 있노라고 선언할 수 있는 현인에 대한 시대적 갈망. 그래서 만들어진 가공의 스타가 <노자>였다. <노자>의 첫머리를 보자.

“도()가 말해질 수 있다면 영원한 도가 아니고, 이름()이 불려질 수 있다면 영원한 이름이 아니다.”

이 말에 대한 구구한 해석이 있지만, ‘자연적 질서는 변화되어 가는 것이어서, 이미 말해진 질서는 영구불변의 질서가 아니다. 우리는 이제 새로운 자연적 질서에 대해서 말해야 하고, 우리의 개념체계도 이에 맞게 수정되야 한다’는 기성 질서관에 대한 전복적 선언으로 읽어야 한다. 이 선언은 당대 제후들의 마음을 사로 잡았고, <노자>의 도 위에 황제(黃帝)라는 전설적 군주의 통치 체제를 올려놓겠다는 황노학(黃老學)이 출현했다.

노자에 기반한 황노학은 무위의 통치 주장

그렇다면 새롭게 출현하고 있었던 자연적 질서란 무엇일까? 앞서 경중가들의 바이블로 소개한, 당대 황노학의 완성품이었던 <관자>는 그것을 어떻게 보았을까? <관자>의 ‘형세해’를 보자.

“백성은 이로움이 있으면 오고, 해로움이 있으면 떠난다. 백성이 이익을 좇음은 물이 낮은 곳으로 흐를 때 동서남북을 가리지 않는 것과 같다. 그러므로 백성을 불러오려는 사람은, 먼저 이로움을 일으키면 부르지 않아도 백성이 스스로 찾아온다. 싫어하는 것을 설치하면 불러도 백성이 오지 않는다. 그러므로 ‘먼 곳의 백성을 불러들이려는 군주는 먼저 무위를 행해야 한다.’”

<관자>는 새로운 질서의 핵심을 공리(功利)주의적 인간의 출현으로 보았다. 그리고, 그에 대응할 수 있는 군주제적 질서는 무위(無爲)의 통치였다. 무위란 억지로 하지 않음을 의미한다. 자연스럽게 사람들이 모이고, 자연스럽게 사람들이 열심히 일하도록 하게 하면 된다. 그렇게 되도록 하는 것을 ‘무위를 행해야 한다’고 표현한 것이다. 어떻게 해야 그렇게 될까? 바로 이 나라를 열심히 일하면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는 곳으로 만들면 된다.

▲ 춘추전국시대 ‘어진 정치’를 충고하는 공자·맹자의 유가사상은 군주들에게 별 큰 매력이 없었다. 사진은 ‘그림으로 보는 공자의 일생-공자성적도'. 공자성적도’란 세계 4대 성인의 한 사람인 공자의 행적과 가르침을 표현한 그림 및 목판화를 말하며, 조선시대 제작된 3종이 현존하고 있다. 사진은 국립전주박물관 협곡회제(夾谷會齊 : 협곡에서 제나라 임금을 만나다). 제공=뉴시스
무위의 통치의 핵심은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는 나라로 만드는 것이다. ‘무위를 행한다’는 역설적 표현은 열심히 일하는 백성들이 그에 상응하는 보답을 받을 수 있는 나라를 만들어야 한다는 현대인의 상식이, 백성들을 열심히 일하게 한 후, 그것을 빼앗는 것이 당연시 되었던 당시에는 어느 만큼 표현하기 어려운 새로운 발상이었는가를 보여준다.

공리주의적 인간으로서 백성과 통치의 유인양립성

그런데, 이것은 군주의 말이 추상처럼 실행되는 군주제와 어떤 관계가 있을까? <관자>의 ‘형세해’를 다시 보자.

“군주가 명령하면 행하고 금하면 그치는 까닭은 반드시 백성이 좋아하는 것을 명령하고, 백성이 싫어하는 것을 금하는 때문이다. 백성의 인정은 삶을 좋아하고 죽음을 싫어하지 않는 사람이 없고, 이익을 좋아하고 해로움을 싫어하지 않는 사람이 없다. 그러므로 군주가 백성을 살리고 이롭게 하는 것을 명령하면 행하고, 백성을 죽이고 해로움을 주는 것을 금하면 그친다. 정령을 실행하는 방법은 반드시 백성이 그 정령을 즐겁게 받아들여야 정령이 실행된다.”

군주의 말이 추상처럼 실행되기 위해서는 백성이 그 말을 즐겁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하여야 하고 더 나아가 군주 자신도 자신의 말에 구속되어야 한다. 이상한 표현 같지만, 현대 경제학자들은 이것을 유인 양립성(incentive compatibility) 조건이라 한다. 무위의 통치에 있어 군주에게 필요한 것은 ‘군주가 원하는 것’을 ‘백성들이 즐겁게 받아들일 수 있는 것’으로 바꿀 수 있는 능력이다. 바로 이 능력을 지닌 사람들이 경중가였다.

따라서 당대 경중가들이 직면한 제약은 다음과 같이 정리될 수 있겠다. 첫째, 백성들은 공리주의적인 인간이어서 이익에 따라 국경을 건너 이동한다. 이른바 ‘발에 의한 투표’다. 둘째, 백성들에게 다른 나라에서 얻을 수 있는 유보소득(reserve income) 이상의 소득을 보장해 주어야 한다. 셋째, 법은 유인 양립성 조건을 만족하여야 한다.

당시 경중가들은 군주와 백성의 게임을 영합(Zero-sum) 게임으로 보지 않았다. 백성으로부터 많은 것을 빼앗아 군주의 창고를 채우는 것은 해법이 아니었다. 경중가들이 추구하는 해법은 군주와 백성이 모두 윈-윈(win-win)할 수 있는 해법이었다. <관자>의 ‘치국’을 보자.

경중가들의 윈윈해법은 부민부국

“무릇 나라를 다스리는 도는 반드시 먼저 백성을 부유하게 해야 한다. 백성이 부유하면 다스리기 쉽지만, 백성이 가난하면 다스리기 어렵다.”

이것은 백성과 군주가 모두 승자가 될 수 있는 해법 즉 부민부국(富民富國)이 목표임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이제, 우리들의 주인공인 경중가들이 무엇을 하는 사람인가는 명백해졌다. 바로, 부민부국의 경제체제를 고안하는 메커니즘 디자이너(mechanism designer) 였다.

경제는 복잡하다. 따라서, 경제체제를 고안하기는 어렵지만, 복잡하기 때문에 다양한 메커니즘을 만들 수 있는 가능성도 열려있다. 복잡한 경제를 프랑스의 아날학파의 거두 브로델은 간단하게 세 층위 - 물질생활의 영역, 시장경제의 영역, 자본주의의 영역 - 로 구분하였는데, 춘추 전국시대 경중가들이 설계한 경제체제를 이해하는 데도 유용하다. 물질생활의 영역은 생계경제의 영역이기도 하고, 모든 것이 생산되는 생산의 영역이기도 하다. 시장경제의 영역은 교환경제의 영역으로, 수요와 공급에 의해 가격이 형성되고, 상거래가 이루어지는 영역이다. 자본주의의 영역은 사회적 위계의 영역으로, 특권을 가진 사람들이 자신에게 유리하도록 교환과정을 왜곡시키고, 기존 질서를 변형시켜 독점적 지대를 창출하는 영역이다.

(여기서 잠깐, 독자들은 춘추전국시대에 시장경제와 자본주의가 있었나라는 의문을 품을 것이다. 현재 자본주의 맹아론은 명청기 맹아론을 넘어 이미 춘추전국시대에 자본주의 맹아가 있었다는 지점까지 와 있다. <관자>는 이 시대 시장경제와 자본주의를 잘 보여준다. 중요한 것은 시장경제와 자본주의가 있었는가가 아니라, 그것이 어떻게 존재하였는가이다.)

말이 조금 어려워졌다. 원래 비책은 미묘하고, 현묘해야 제 맛이다. 공짜 점심은 없다. 경중가들의 비책을 체득하기 위해 우리는 약간의 정신적 노고를 할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한다.

경중가들은 이 세 층위 각각에 대해 나름의 처방전을 제시한다. 물질생활의 영역에서는 백성들이 부민(富民)이 되는데 군주가 기여할 수 있는 다양한 비책을 제시하고, 시장경제의 영역과 자본주의 영역에서는 군주의 창고가 가득 찰 수 있게 하는 다양한 비책을 제시한다.

내권화를 방지할 시장관리 체계

물론 물질생활 영역에서의 비책과 시장경제 및 자본주의 영역에서의 비책은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다. 시장경제와 자본주의의 영역은 국가가 관리하여야 하는데, 백성들이 시장경제나 자본주의 영역에서 발견할 수 있는 일확천금의 유혹을 뿌리치고, 물질생활의 영역에서 열심히 일하도록 하기 위함이다.

자연 환경에 따른 것이든, 분업과 전문화에 따른 것이든, 지역간 물산의 차이는 교환경제를 발전시킨다. 교환은 교환의 양 당사자 모두에게 이익을 주는데, 당시에는 이를 유무상통(有無相通)의 이득이라 했다. 시장은 교환을 편리하게 하는 시설로, 군주는 그 설치를 적극 장려했다. 교환경제가 발전하면, 생산과 유통이 분리되고, 유통을 전업하는 상인이 등장한다. 이른바 시장경제의 발전이다.

시장경제가 발전하면 어떤 결과가 산출될까? <관자>의 ‘치국’을 보자.

“지금 상공업이나 사치스런 장식물 만드는 사람은 하루를 일하면 닷새를 먹는다. 농부는 한 해 동안 일하여도 가족을 먹여 살리기에 충분하지 않다. 그러하면 백성은 농사를 버리고 상공업에 힘쓴다. 농사를 버리고 상공업에 힘쓰면, 농토는 황폐해지고 나라는 가난해 진다.”

유통을 전업으로 하는 상인들의 돈벌이는 농민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먹고 살기에 빠듯한 정도의 소득밖에 얻지 못하는 농민들이 너도 나도 상인이 되겠다고 나서면, 농업 생산은 줄어들고, 상인들의 이득도 줄어들어 모두 가난해 진다. 바로 내권화(內捲化, involution)의 덫이다. 물론 모든 상인이 다 가난해 지는 것은 아니다. 시장을 잘 요리할 줄 아는 상인들의 수중에는 많은 부가 쌓인다. 부유한 상인이 출현하면 군주제는 어떻게 될까? <관자>의 ‘규탁’을 보자.

“나라의 재물은 모두 상인들에게 들어가 군주가 정책을 쓸 수 없게 됩니다. 백성들은 서로 부림을 받게 되어 군주가 다스릴 수 없습니다.”

시장경제의 발전을 그대로 방치하면 내권화의 덫에 빠질 수도 있으며, 군주제를 위협할 부유한 상인이 출현할 수도 있다. 그래서 경중가들이 제시한 비책이 관영상업의 운영이었다. <관자>의 ‘규탁’을 다시 보자.

관독상판의 원형적 이념

“상업을 잘 관리하는 사람에게 관부의 점포를 맡깁니다. 관부의 점포를 잘 관리하면, 시장에서 교역하는 사람들이 한가해집니다. 시장에서 교역하는 사람이 한가해지면, 밭에서 일하는 사람이 많아집니다. 밭에서 일하는 사람이 많아지면, 백성의 재물이 많아집니다.”

물론, 관영상업은 내권화의 덫에 빠지지 않고, 교환경제의 이점을 살릴 수 있는 방책이기는 하였지만, 그것을 보장해 주는 것은 아니다. 상업으로 떼돈을 벌 수 있는 가능성을 미연에 방지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사람, 즉 이재에 밝아 시장을 잘 요리하는 상인을 관상으로 삼아야 한다. 그래야 내권화의 덫에도 빠지지 않고, 교환경제의 이점도 살리면서, 교환의 이득의 대부분을 군주가 차지할 수 있다. 국가가 감독하고 상인이 경영한다는 관독상판(官督商辦)의 원형적 이념은 이렇게 만들어지고 있었다.

시장경제와 자본주의의 영역에서 획득한 재부 중 일부는 공공재의 공급, 생산적 투자, 시혜적 복지라는 방식으로 백성들에게 돌려줌으로써, 높은 생산성을 유지하고, 군주에 대한 신망을 형성할 수 있다. <관자>의 ‘승마’를 보자.

“성인을 성인으로 여기는 이유는 백성에게 (재원을) 잘 나누어주기 때문이다. 성인이 백성에게 나누어 줄 수 없으면 백성과 다르지 않다. 자기도 부족하면서 어떻게 성인이라 할 수 있겠는가? 나라에 일이 있으면 백성에게 되돌려 주어야 한다. 오직 성인만이 백성에게 생산 문제를 잘 맡긴다.”

군주가 성인처럼 통치하기 위해서는 써도 써도 마르지 않는 군주의 창고가 필요하다. 시장경제와 자본주의의 영역이 바로 그 창고이다. 경중가들이 제시하는 비책이란 시장경제와 자본주의의 영역에서 백성들의 근로의욕이나 산업개발의 의욕을 줄이지 않으면서 군주의 창고를 가득 채우는 방법들이다. 이 비책을 실행하기 위해서는 시장경제와 자본주의를 잘 요리할 수 있는 경중가들이 꼭 필요하다. 이로써 경중가들의 삶의 터전은 마련되었고, 경중가들의 경쟁 속에 더욱 정교하고 미묘한 비책들이 만들어져 갔다. 그 비책을 모아 논 것이 <관자>이다.

현재까지 이어지는 중국사회 지배의 테크놀로지

중국이라는 나라. 13억의 인구. 이 사회는 어떻게 돌아가는 사회일까? 2500여년 전부터 통치자들은 시장경제와 자본주의의 영역을 관리하고, 그로부터 통치의 자원을 뽑아내어 활용함으로써, 백성들을 그 통치의 우산 아래 모을 수 있는 지배의 테크놀로지를 발전시켜 왔다. 그 원형을 만든 사람들, 당시에는 그들을 경중가라 불렀다. 지난 2500여년 동안 중국에서 발전해 온 지배의 테크놀로지, 그것이 현재 중국에 대한 이해의 문을 여는 열쇠 중의 하나이다. E21

본 기사는 월간지 <이코노미21> 10월호에 게재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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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eohwa 2013-12-30 18:47:59
완전 좋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