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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초연금 공약파기로 정치불신 고조
기초연금 공약파기로 정치불신 고조
  • 박신용철 기자
  • 승인 2013.12.31 13:3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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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초연금 공약 파기, 논란과 쟁점…‘불황, 세수 부족, 세대 형평성 고려 조정’은 설득력없는 핑계…해법은 재원 확보방안과 ‘세금먹는 하마’ 공무원연금 등 개혁

박근혜대통령의 기초연금 공약 후퇴에 대한 반발여론과 사회적 갈등이 심상치 않다.

야권과 시민사회단체는 거짓 공약으로 국민을 우롱했다고 반발하고 있고, 박근혜 정부와 새누리당은 불가피한 조정이라고 맞서고 있다. 국민연금을 성실히 납부하는 20~50대 청장년층은 국민연금과 연계한 기초연금이 역차별이라고 분통을 터트리고 있다.

대통령 박근혜는 지난 9월 26일 국무회의를 통해 기초연금 공약 후퇴에 대해 세계적 경기불황, 유례없는 세수 부족, 재정 건전성, 세대간 형평성 등을 고려한 불가피한 조정이었다는 입장을 피력했다. 대선 후보 시절인 2012년 12월 16일 TV 토론에서 “기초연금은 65세 이상 모든 국민에게 다 드릴 수 있고, 제가 국민의 선택을 받으면 꼭 이것을 실행하려고 한다”고 약속했고, 당선 후인 지난 1월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시절에도 “공약을 모두 지키면 나라의 형편이 어려워진다고 하는 것은 국민에 대한 도리가 아니다”라고 재차 강조했었다.

대통령 박근혜가 기초연금 공약을 제시할 때 세계적 경기불황, 세수 부족, 재정건전성 등은 예견된 사실이었다. 2012년 경제성장률은 최근 3년간 가장 낮은 2.7%에 불과했고 2011년 3.6%보다 크게 감소한 수치였다. 이미 세계 경기 불황은 장기화된 상태였다. 이명박 정부의 부자 감세, 4대강 사업 등으로 세수 부족이 우려되고 있었다. 이런 상황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지 않고 공약을 제시했다면, 유권자를 희롱한 것에 불과하다. 기초연금 공약 후퇴 내지 파기에 대한 비난은 면키 어렵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내년 3.9%를 달성하지 못한다면 기초연금을 포함한 복지정책은 경제성장론에 밀려 더욱 찬밥 신세로 전락할 운명에 놓여 있다는 것이다. 초고속 노령화, 세계 최고 속도의 저출산국으로 치닫는 상황에서 이제는 단기적 봉합 처방을 넘어 냉정하게 미래를 준비할 때다.

공약 파기 논란 ‘불가피’

어쨌든 기초연금 공약은 파기되고 65세 이상 노인에게 소득 하위 70% 대상 차등 지급 방식으로 조정됐다. 대상은 재산과 소득에 따라 소득인정액이 월 83만원 이하인 독거노인과 월 133만원 이하인 노인 부부이며, 국민연금 가입기간과 연계해 최소 10만원~최대 20만원까지 차등 지급하는 안이다. 현재 65세 이상 노인 대부분은 국민연금 가입기간이 짧아 기초연금 20만원을 수령하는 비율이 높지만 미래세대로 갈수록 국민연금 가입기간이 길어지면서 20만원에서 차감 받게 된다. 박근혜 정부는 현재 기초노령연금 수령 대상자 391만명 중 90%인 353만명은 20만원, 나머지 10%인 38만명은 20만원 이하를 수령하게 된다고 설명하고 있다.

▲ 지난 7월 12일 오후 서울 종로구 동화면세점 앞에서 민주노총 서울본부 주최로 열린 '노후의 꿈을 지키는 1045운동 국민연금 서울야간문화제'에서 참가자들이 대선공약 이행을 촉구하고 있다. '1045운동'은 기초연금을 10%까지 확대하고 매년 자동 삭감되고 있는 국민연금 급여를 최소한 45%에서 유지해 기본적인 노후 소득보장 체계를 완비해야한다는 취지의 운동이다. 제공=뉴시스
연금은 경제활동기간 동안 자신의 소득 비례해 보험료를 미리 내 적립한 후 일정한 나이에 소득 비례 연금을 수령하는 적립방식과 소득과 무관하게 생활에 필요한 최소한의 금액을 누구나 똑같이 수령(재원은 세금)하는 부과방식이 있다. 우리나라 연금제도는 적립방식과 부과방식을 혼합한 제도다. 모든 가입자에게 동일하게 적용하는 ‘균등연금식’과 가입자 소득에 비례해 산출하는 ‘비례연금액’을 합해 급여를 지급한다.

국민연금에 20년 동안 가입한 후 월 300만원의 급여를 받는 사람이 있다면 균등연금과 비례연금 각각 150만원씩 받는다고 보면 된다. 박근혜 정부의 기초연금안은 균등연금액만큼 기초연금 20만원에서 차감되는 방식이다.

복지국가소사이어티 이상이 공동대표(제주대 교수)는 "국민연금 가입기간이 10년을 넘으면 20만원에서 1년당 1만원씩 감액해 10만원까지 지급액을 낮추는 방안"이라며 "기초노령연금은 국민연금 가입기간에 연동해 줄여나가는 박근혜 정부의 방안은 최악의 정책“이라고 비난했다.

청와대의 기초연금안은 공약 파기 논란은 차치하고, 국회에서 2014년 예산 심사와 기초연금법 제정이라는 한 차례 조정 과정이 남아 있어 최종 결론은 좀 더 지켜봐야 할 상황이다.

기초연금인가, 기초노령연금인가

집권여당인 새누리당을 포함한 정치권에서부터 기초연금과 기초노령연금을 혼용하고 있다. 개념과 배경부터 정리하는 것이 순서다.

박근혜대통령이 대선 공약으로 제시한 것은 현행 기초노령연금제가 아닌 ‘기초연금제’이다.

대통령 박근혜의 대선공약집(2012년 12월 10일)을 보면, ‘기초연금’이라고 명시돼 있다.

- 기본방향 : 현행 기초노령연금 및 장애인연금을 기초연금화하고 국민연금과 통합·운영함으로써, 사각지대나 재정 불안정성 없이 모든 세대가 행복한 연금제도로 개편

- 대상 및 내용 : 기초연금은 도입 즉시 65세 이상 모든 어르신들과 중증 장애인에게 현재의 2배 지급

반면 기초노령연금은 참여정부 시절 유시민 보건복지부 장관이 도입한 제도다. 정부는 1997년 노인복지법 개정에 따라 1998년 7월부터 경로연금제도를 시행했다. 1991년부터 70세 이상 생활보호대상 노인에게 지급하던 수당을 65세 이상으로 확대한 것이 조세에 기반한 경로연금제다. 경로연금은 생활보호대상자 노인과 저소득층 노인에게 매월 일정액을 지급했는데 1999년 현재 매월 2만~5만원을 57만5천여명에게 지급했다. 경로연금 급여수준은 최하 1만5천원에서 5만원까지 지급하던 것을 점차 상향조정해 2005년 3만5천원에서 5만원까지 지급했다.

참여정부 시절인 2008년 1월 기초노령연금제가 실시되면서 지방자치단체별로 지급하던 경로연금, 노인교통수당, 장수수당, 위생수당 등의 경로연금제도는 폐지됐다. 참여정부의 보건복지부는 기초노령연금제도를 본격 시행하기 전인 2007년 8월 ‘노인대상 현금급여제도 일원화 지침(안)’을 마련했는데 부족한 재원 확보를 위한 강제 조치였다. 보건복지부는 이 지침에서 “기초노령연금 수급 대상이 70%로 확대되는 ’09년부터 노인교통수당 등 기초노령연금과 성격이 유사한 각종 급여, 수당을 기초노령연금으로 일원화하는데 대부분 지자체가 동의했다”면서도 “보건복지부에서 지침을 시달하는 것인 만큼 지자체에서도 적극적으로 이행하여야 하며, 이를 이행하지 않을 경우에는 적절한 불이익 조치를 통해 실행력을 확보할 필요가 있다.”고 적시했다. 말뿐인 의견 수렴이었을 뿐 보건복지부 지침을 준수하지 않으면 불이익을 주겠다는 것이었다.

당시 보건복지부는 기초노령연금과 관련해 최저생계비는 줄어들고 기초노령연금 총 수령액은 더 많아지도록 설계했다고 설명했다. 그런데 기초노령연금 초기 서울지역에서는 65세 이상 기초생활수급 노인 6만명이 손해를 보았다. 전북의 경우 도내 65세 노인인구 27만명 중 11만명은 기존 4만~6만원의 지원금이 끊겼다. 2007년 현재 전라북도는 소득과 관계없이 65세 이상 노인에게 노인교통수당, 장수수당 등을 일괄 지급했는데 기초노령연금은 지원 대상을 저소득층 노인으로 한정해 기존 수혜 노인의 40%가 혜택에서 탈락했다.

국민연금과 기초연금 연계가 문제다?

“기초연금을 국민연금 가입기간과 연계하는 것에 여러 번 반대했고, 이런 뜻을 청와대에도 전달했다. 국민연금과 연계한 기초연금안을 반대해온 사람이 어떻게 국민을 설득할 수 있겠느냐. 이것은 양심의 문제다. 그만 사의를 허락해 달라.”

박근혜의 최측근이자 대통령직인수위원회 부위원장까지 지낸 진 영 보건복지부 장관이 기초연금 공약 후퇴와 관련해 사표를 던졌다. 국무총리와 청와대까지 나섰지만 소용이 없었다.

청와대는 적극 해명에 나섰다. 최원영 고용복지수석은 지난 9월 26일 기자회견을 열고 다음과 같이 강조했다. “국민연금을 장기 가입해 보험료를 성실하게 납부하는 사람이 손해를 본다는 것은 결코 사실이 아니다. 국민연금은 국민연금법에 따라 이미 받도록 돼 있는 것을 아무런 변화없이 그대로 모두 다 받으면서 거기에 기초연금을 추가로 해드리는 것이기 때문에 국민연금에 오래 가입하면 할수록 총 연금이 더욱 많아져서 이득을 보게 된다. … 지금의 청장년 세대 등 미래세대가 현재의 노인세대보다도 불리하다는 말도 결코 사실이 아니다. 세대별로 받게 될 기초연금의 평균 수급액을 산출해보면 후세대가 더 많은 기초연금을 받도록 설계돼 있다.”

이에 대해 대표적인 보편적 복지국가론자인 제주대 이상이 교수는 “진 영 장관 사퇴 파동에서는 기초노령연금의 국민연금 연계가 핵심”이라며 “국민연금과의 연계에 반대하는 진 영 장관 입장에서는 국회에서 청와대나 정부의 입장을 방어하거나 국민을 설득할 수 없기 때문에 (사퇴한 것)”이라고 추측했다. 이상이 교수는 “소득하위 70% 어르신들 모두에게 20만원 지급하는 수정안은 지지할 수 있다”면서도 “국민연금과의 연계는 절대 수용할 수 없다”고 재차 강조했다.

국민연금 보험요율은 소득과 비례해 납부하는 방식이다. 경제활동기간 동안 소득이 높을수록 더 높은 보험료를 부담하게 되고, 납부한 보험료에 따라 차등 수급 방식이다. 국민연금 연계 모델이든, 소득수준 연계 모델이든 결과적으로 기초연금 수급대상과 지급액은 별반 차이가 없다. 국민연금 가입기간과 소득수준은 대체로 비례하지만 국민연금 가입자 및 실제 납부자의 비율이 전체 노동자의 최소 80% 이상은 되어야 소득대체효과와 소득재분배 등의 효과를 거둘 수 있다.

국민연금과의 연계 모델은 참여정부 유시민 장관 작품

김대중 정부 임기 마지막해인 2003년 ‘더 내고 덜 받는 방식’의 국민연금 개혁안이 제출됐다. 국민연금은 보험료 3%에 불과했지만 소득대체율이 60%에 달하는 세계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수익성이 대단히 높은 구조였다. 당시 국민연금기금이 2048년이면 고갈된다는 전망이 제기됐다. 현상 유지로 갈 경우 미래세대가 소득의 30%를 국민연금 보험료로 떠안아야 할 판이었다. 국민연금 개혁 논의는 2002년 3월에 시작됐다. 그러나 그 후 3년간 국민연금 개혁 논의는 지지부진했다.

참여정부의 기초노령연금 설계는 김근태 보건복지부 장관(2004. 7. 1~2005. 12. 31) 시절과 유시민 보건복지부 장관(2006. 2. 10~2007. 5. 25) 시절로 양분된다.

故김근태 보건복지부 장관은 2005년 3월 노무현 대통령에게 업무보고를 하면서 노인복지법을 개정해 도시근로자 평균소득의 60%(1인 가구 기준 월 54만3천원) 이하를 버는 65세 이상 노인 모두에게 월 3만5천~5만원씩 경로연금을 지급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보고했다. 당시 경로연금은 65세 이상 기초생활수급 노인과 71세 이상 저소득 노인에게만 주어지고 있었다. 복지부가 노무현 대통령에게 보고한 방안이 시행되면 20만8천여명의 노인이 새로 지원 대상으로 포함된다.

또한 ‘저출산 및 고령사회 기본법’을 제정해 2006년~2010년까지 저출산, 고령사회 기본 계획을 수립하고 대통령 직속 고령사회위원회를 설치하겠다는 방안도 보고됐다. 기존 경로연금제도의 확대·시행 방안이었다.

그런데 2006년 유시민 장관이 입각한 후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렀다. 유시민 장관은 국민연금 개혁안을 제시하며 보완재로 ‘기초노령연금제’ 카드를 꺼내들었다. 집권여당인 열린우리당도 정부안을 받지 않고 머뭇거렸다. 강기정 의원 등이 정부안을 약간 수정(기초노령연금 수급 대상을 45%에서 60%로 확대)한 연금개혁안을 발의하면서 논의는 본격화됐다.

참여정부는 ▲국민연금의 재정 안정화 ▲시각지대 해소 ▲기금운용체계 개편 ▲ 국민연금과 공무원연금의 형평성 등을 놓고 논의를 전개했다. 논의는 국민연금 사각지대 해소는 뒷전인 채 국민재정안정화에 방점을 두었다. 즉 연금가입자들의 소득대체율은 당장 10% 인하하고 보험료도 10년간3.9% 인상하면서, 기초소득보장 장치로는 고작 가입자 평균소득의 5%에 해당하는 기초노령연금 급여를 국민기초생활보장법상의 최저생계비 160% 이하 소득을 가진 75세 이상 노인에게 지급하겠다는 것이다.

2006년 당시 국민연금 납부예외자 42%, 전체 노인인구의 57%가 잠재적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것으로 추산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한나라당과 민주노동당은 사각지대 해소를 위한 기초연금 도입 주장을 한 반면 참여정부는 재정안정화를 위해 보험요율과 급여율만 조정하자는 입장이었다. 열린우리당과 정부는 막대한 재정 부담을 이유로 기초연금 도입도 반대했다. 당시 진보적 노동, 시민사회단체들도 참여정부의 기초노령연금제에 대한 문제점을 지적하며 반대했다.

국민연금 소득대체율을 현행 60%에서 2008년 50%로 낮춘 후 2028년까지 매년 0.5%씩 줄여나가 2028년부터 40%로 낮아지게 됐다. 반면 전체 기초노령수당은 5%에서 출발해 2028년까지 10%(20만원)를 단계적으로 인상되도록 설계됐다. 기초노령연금 지급 대상도 65세 이상 전체 노인 중 소득과 재산이 적은 노인 60%에서 2009년부터 70%로 확대될 예정이었다. 결과적으로 2028년부터 연금 급여율은 기초노령연금 인상분을 포함해 2007년 기준으로 최소 10%에서 최대 20% 감소하게 설계됐다.

2007년 7월 기초노령연금법, 같은 해 12월 국민연금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이렇듯 국민연금과 기초노령연금의 연계는 참여정부에서 시작되었다.

당시 전문가들은 기초연금없이 현행 국민연금 급여율을 60%로 유지하려면 보험요율을 20%로 대폭 올려야 하고, 급여율을 40%로 낮추면 보험요율은 13% 더 올려야 한다는 분석이 일반적이었다. 현재 국민연금 보험료율은 9%다. 국민연금 급여율을 낮추기 위한 조세 방식의 기초노령연금 도입은 불기피한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물론 조세 방식의 기초노령연금은 미래세대에 부담을 지우는 것이다.

당시 박원석 참여연대 협동사무처장(현 정의당 국회의원)은 “정부는 그간 연금 적립금 고갈이라는 문제에 착목해 재정안정화 중심의 연금 개혁을 추진해왔지만 연금 재정 고갈은 당장 발생할 문제가 아니라 2047년에 가서 발생할 일이며, 그것도 현재 보험료와 급여율을 그대로 유지한다는 전제 하에 예상되는 통계”라며 “이 문제에 대한 대책 마련이 중요하다면 당장 대상자의 절반가량이 연금제도에 들어와 있지 않는 사각지대 문제는 더 시급하고 우선적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라고 지적했다. 또한 그는 “미래의 연금 수급자들의 수급권을 대폭 약화시켜 놓고 보험료 인상을 통해 일부 저소득 계층에 대해 용돈 수준의 수당을 지급하는 것으로 갈음하는 ‘개악’에 가까운 법 개정”이라고 일갈했다.

국민연금과 연계해 실시한 기초노령연금으로 사각지대 해소됐나?

참여정부의 국민연금 개혁안으로 사각지대 문제는 상당 부분 해소된 것일까. 답은 ‘NO'다.

18세 이상 60세 미만의 소득활동인구는 모두 국민연금에 가입해야 한다. 2011년 12월 현재 국민연금 총 가입자는 1,982만명이며 이중 실제 보험료를 납부하는 가입자는 1,440만여명이며 49만명은 납부 예외자, 51만7천명은 미납상태다. 실제 국민연금 가입률은 48.6%에 불과해 영국 90.0%, 미국 88.2%, 캐나다 78.3%, 독일 70.1% 등과 비교해도 턱없이 낮다.

2012년 말 현재 65세 이상 전체 노인 중 국민연금을 받는 수급자는 약 31%, 평균 연금수급액 30만원에 불과했다. 30만원도 2012년 국민연금 가입자 전체 평균소득의 16% 수준으로 제대로 된 노후보장을 받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국민연금기금 재정건전성을 점검한 추계 결과, 2030년경에는 전체 노인의 40%만 국민연금을 수급할 수 있고, 2050년에도 전체 노인의 68%정도만 수급이 가능하다. 또한 국민연금을 받더라도 수급금액(소득대체율)은 2020~2050년 사이에 가입자 평생소득의 20~25%에 머물 것으로 추정된다.

소득파악이 어려운 국내 현실에서 자영업자 등 지역가입자가 국민연금에 가입하고도 보험료를 내지 않아 실질적으로 공적연금에 가입하지 않은 것과 같은 상황이 광범위하게 퍼져 있다.

국민행복연금위원회 자문위원인 김원섭 고려대 교수(사회학과)는 지난 8월 20일 국회에서 열린 기초연금 관련 정책토론회에서 "국민연금제도가 상당히 성숙하고 나서도 여전히 대규모 연금수급 사각지대가 존재해 실질적 노후 안전망 구실을 못할 것"이라며 "OECD 국가 중 최고수준의 노인빈곤을 해결하려면 대다수 국민연금 수급자의 연금급여 수준을 상향 조정하면서 고소득층에 대해서는 연금급여액을 감액하는 조치가 필요하다"고 했다.

국회의 직무유기, 책임방기가 논란 극대화

기초노령연금법은 완결된 법안이 아니었다. 해당 법률에 국회 연금제도개선특별위원회를 구성해 연금지급액 상향조정 시기, 방법, 소요재원 대책 등을 논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2011년 현재 67.2%에 머무르고 있는 실수급률을 법에 규정된 수급자 수준인 70%까지 확대하고 수급 자격을 단계적으로 확대하는 방안이 검토돼야 했다. 그러나 민주당도, 새누리당도 국회 연금제도개선특별위원회에는 관심이 없었다. 국회에서 연금제도개혁특별위원회가 구성된 것은 2011년 2월이었고, 같은 해 8월 이후에는 한 차례 회의도 소집되지 않았다.

주은선 경기대 교수(사회복지학과)는 "첨예한 제도개선 논쟁에 개입해 대안을 모색하는 것이 의회의 기능임에도 한국 국회는 기초노령연금 개선문제와 관련해 본연의 기능을 회피했다"고 질타했다. 기초노령연금법에서 규정한 연금제도개선특별위원회를 내실 있게 운영하지 못해 시민들에게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연금제도가 정착될 수 있는 기회가 박탈된 것이다.

기초연금 문제는 ‘재원’

대통령의 기초연금이 공약대로 시행되려면 숙제인 ‘재원’ 문제에 대한 근본적인 해법이 필요하다. 대통령의 변명이 아니더라도 복지 재원 마련에 대한 묘수가 없는 것이 현실이다. 우선 기초연금 재원에 대한 다양한 분석부터 따라 가보자.

사회복지세 도입을 주장해온 대표적인 복지국가론자인 오건호 ‘내가 만드는 복지국가’ 공동운영위원장은 ‘사전에 기획된 공약 사기’ 사건으로 규정하고 있다. 국민행복연금위원회 추계 자료에 따르면, 2014~2017년 65세 이상 모든 노인에게 20만원을 지급하면 총 60조3천억원이 필요하다. 현행 기초노령연금제도를 유지할 경우에는 26조9천억원이 드는데 대통령 박근혜의 공약대로 시행한다면 33조4천억원의 추가 재원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현행 기초노령연금은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가 약 75:25 비율로 재원을 부담한다. 따라서 33조4천억원의 추가 재원 중 75%인 25조1천억원은 중앙정부가 마련해야 한다. 그런데 박근혜의 대선공약집을 보면 기초연금 공약이행을 위한 재정규모를 14.7조원으로 계산했다. 10조원의 재원이 부족하게 된다. 기초연금 도입 공약을 지키려면 25조원이 드는데 15조원으로 감당하려 한 것은 처음부터 ‘국민연금과의 통합·운영’을 통해 국민연금 가입자에게 차등 지급하려고 했다는 주장이다.

홍헌호 시민경제사회연구소 소장에 따르면 박근혜 공약대로 계산할 경우 639만명 노인에게 연간 240만원, 총 15조3천억원이 지급된다. 현행 기초노령연금보다 11조원 추가 재원이 필요하다는 계산이다. 여기에 월 2백만원 이상 연금을 받는 특수직역연금(공무원연금, 군인연금, 사학연금) 수혜자를 제외하면 전체 수혜대상자 610만명, 총 비용은 14조6천억원이 되고 추가로 필요한 재원은 10조3천억원이 들 것으로 추정했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설계대로 기초연금제를 시행하면 2015년 9조9천억원, 2010년 16조9천억원, 2030년 49조6천억원, 2040년 130조6천억원, 2050년 167조6천억원으로 급증한다.

반면 현재 기초노령연금법에 정해진 대로 소득 하위 70%에만 지급하되, 2028년까지 지급액을 20만원으로 단계적 상향 조정한다면 2015년 5조6천억원, 2020년 12조7천억원, 2030년 51조8천억원, 2040년 109조1천억원, 2050년 178조2천억원이 든다. 2030년이 되면 박근혜 정부의 기초연금보다 더 많은 재원이 들어가게 된다. 여기에 저소득 노인층 일부 지급액을 20만원으로 조기 인상하면 더 많은 재원이 필요하게 된다.

야당은 지난 대선에서 2014년부터 80% 노인에게 ‘현재의 두 배 수준’으로 지급하겠다고 공약했다. 월 9만7천원에서 두 배로 인상하겠다는 것이다. 이 안대로 80% 노인에게 월 20만원을 지급한다면 2015년 11조8천억원, 2020년 20조2천억원, 2030년 59조2천억원, 2040년 124조8천억원, 2050년 204조원에 달하게 된다. 박근혜 공약안이든 민주당 안이든 막대한 재원이 필요하고, 뚜렷한 대안이 없다는 것이 공통분모다.

복지공약대로 무조건 이행해라… ‘무리’

대통령의 기초연금제도는 2005년 한나라당이 국민연금 개혁방안으로 제시한 것에 뿌리를 두고 있다. 당시 한나라당은 ‘국민연금 가입과 상관없이 모든 노인들에게 평균소득의 20%까기 기초연금을 준다’는 획기적인 안을 제안했다. 재원은 부가가치세 인상을 통해 마련하겠다고 했는데 감세를 주장하던 당론과 충돌했다. 한나라당안이 시행된다고 가정할 경우 5조~6조원, 장기적으로 수십조원의 재원이 필요했다. 한나라당은 부가가치세 인상을 재원으로 마련하겠다고 했으나 호된 비판을 받고 물러섰다. 한나라당은 민주노동당과 기이한 동거를 하면서 수정안으로 ‘65세 이상 노인의 80%와 중증 장애인에게 평균소득 5%를 주되, 2018년까지 액수를 10%로 늘리자는 안’을 제시했었다.

대통령 박근혜는 대선 후보 시절부터 현재까지 ‘증세 없는 복지론’을 설파해왔다. 증세보다는 세출구조조정(60% 세출 구조조정, 40% 세입 증가)이나 지하경제 양성화 등을 통해 복지 재원을 충분히 마련할 수 있다는 것이다. 박 대통령이 이미 세수 부족을 인정해 40% 세입 증가는 물 건너갔고 60% 세출 구조조정도 쉽지 않아 보인다.

보편적 복지를 위해서는 증세가 불가피하다는 것이 야당과 보편적 복지론자들의 입장이다. 문제는 재원이다. 이런 가운데 최근 눈길을 끄는 법안이 발의됐다. 민주당 김용익 의원(국회 보건복지위)이 발의한 기초노령연금법 일부개정법률안이 눈길을 끈다. 김용익 의원은 참여정부 시절인 2006년 1월 청와대 사회정책수석으로 발탁된 인물로 진보개혁적 보건의료정책과 예방의학분야 전문가로 손꼽힌다.

김용익 의원이 대표발의안 기초노령연금법 개정안의 골자는 ‘기초노령연금 수급액을 두 배로 확대하되, 소득 상위 20%는 수혜 대상에서 제외하고, 소득하위 70~80% 노인의 기초노령연금을 감액 지급한다는 것이 골자다. 또한 현행 기초노령연금법에서 규정하고 있는 2008~2028년까지 20년 간 기초노령연금 1인당 수급액을 국민연금 가입자의 3년 평균소득 월액의 5%에서 10%로 점진 인상한다는 것에서, 인상 시기를 2028년에서 2014년으로 앞당기자는 것이다. 현행 기초노령연금 지출액은 2011년 3조8천억원, 2014년 4조5천억원이 소요되는데 김용익 의원 개정안대로라면 현재의 두 배 정도인 5조원의 추가 재원이 들어간다.

이는 박근혜대통령의 65세 이상 모든 노인에게 월 20만원 기초연금 지급 공약이 현실성이 없었다는 점, 기초연금을 포함한 보편적 복지 수준과 재원을 포함한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는 점을 재확인해주는 대목이다.

지자체 부담 없다던 공약도 ‘파기?’

현행 기초노령연금법은 5%에서 10%로 인상하되, 2011년 5.75%, 2012년부터 매해 0.25%씩 인상해 2028년 10%에 달하도록 설계돼 있다.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매칭시스템으로 지급되는데 평균적으로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가 75:25로 분담하고 있다. 현행 기초노령연금의 국고보조비율은 지자체 재정자립도와 노인 인구 비율에 따라 40~90% 차등 지급한다. 재정자립도가 낮고 노인 인구비율이 높을수록 더 많은 국고보조를 받게 된다. 2013년 현재 기초노령연금 4조3천억원 중 국고보조금은 3조2천억원, 지자체는 1조1천억원을 부담하고 있다. 2012년 중앙정부 2조9천억원, 지자체 1조원 등 총 3조9천억원이었다.

지자체들은 무상급식 예산부터 영유아보육예산까지 중앙정부와 마찰을 빚어왔다. 중앙정부는 똑소리나는 해법을 제시하지 못한 채 정쟁으로 흐르고 있다. 이 와중에 박근혜식 기초연금이 국회 입법과정을 거쳐 내년 7월 시행된다면 지자체 추가 부담액은 4천억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지자체의 재정압박은 심해질 것이 명약관화한 상태다. 현재 기초노령연금 시스템에서도 더욱 재정 압박을 받는 것은 기초지방자치단체다. 한 예로 경기도의 경우 기초노령연금의 지방정부 부담금의 20%만 광역단체인 경기도에서 부담하고 나머지 85%는 기초지자체가 부담하는 식이다.

박근혜는 당선자 신분으로 광역자치단체장들 만난 자리에서 “중앙정부의 복지 지출 확대로 인한 추가비용을 지자체에 전가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다.”고 약속했다. 현재 세수 부족으로 공약을 파기한 대통령이 지자체에 추가 비용을 전가하지 않을지는 두고 볼 일이다.

특수직역연금부터 개혁해야

참여정부에서 국민연금 개혁안을 강행할 당시 유시민 보건복지부 장관은 국민연금 개혁과 함께 특수직역연금 개혁이 병행되어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시민들은 국민연금 개혁에 앞서 특수직역연금 개혁이 선행되어야 한다는 여론이 우세했다. 전국민 대상인 국민연금제도를 개혁한다며 '고통분담'을 요구하는 상황에서 '세금 먹는 하마'인 공무원연금개혁은 당연한 것이었다. 적자구조가 만성화돼 세금이 지속적으로 투입되어야만 했기 때문이다.

특수직역연금이란 공무원연금, 군인연금, 사학연금을 통칭하는 말이다. 공무원연금은 1993년부터 적자를 내기 시작했고 2002년 기금이 완전 고갈됐다. 이후 적자분은 국민세금으로 메워야 했다. 공무원연금 적자는 2005년 6,096억원, 2007년 1조 4,779억원, 2011년 3조 3,573억원이었고 2014년 5조 5,005억원, 2020년 13조 8,126억원, 2030년이면 18조원에 달하는 적자가 발생할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군인연금은 1973년 이미 기금이 고갈됐다. 현재 특수직역연금은 월평균 200만원 이상을 지급하고 있다.

노무현 정부 시절 행정자치부 자문기구인 공무원연금제도발전위원회는 '신규공무원은 국민연금과 동일한 조건을 적용하고, 기존 공무원 급여율은 현재 76%에서 50%로 내리는 안'을 마련했다. 신규공무원의 경우 연금을 줄이든 대신 퇴직연금제도를 도입해 공무원과 정부가 절반씩 납부한 후 투자를 통해 기금을 조성하는 방안이었다. 신규공무원은 임용 때부터 국민연금에 포함시켜 장기적으로 공무원연금제도 폐지하는 안, 공무원연금 틀을 유지하면서 ‘더 내고 덜 받는 식’으로 보험료율과 급여율을 조정하는 안도 함께 제시했다. 그러나 공무원노조, 교원단체, 재향군인회 등을 중심으로 특수직역연금개혁에 반대하고 나섰다. 그리고 특수직역연금에 막대한 세금을 쏟아 부으면서도 개혁은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

현재 청와대의 국민연금과 기초연금 연계방안에 대한 청장년층의 반발은 ‘정서적 반발’에 기반을 두고 있다. 구조적으로 만성화된 특수직역연금 개혁부터 시행하는 것이 시민을 설득할 수 있는 첫 걸음이 될 것이다. 그러나 대통령도 특수직역연금 개혁에 대해서는 별 말이 없는 실정이다.

겉모양만 사회적 합의였던 참여정부의 연금 개혁안

유시민 장관이 국민연금 개혁안과 기초노령연금 카드를 꺼내들기 전부터 사회적 합의기구에서 논의가 진행 중이었다. 참여정부는 정부, 노동계, 재계, 시민단체, 여성계, 종교계 등 37명의 대표자가 참여하는 ‘저출산 고령화 대책 연석회의’를 통해 국민연금 개혁안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도출하려 했다. 사회적 합의를 통한 연금개혁 요구는 각 주체의 부담, 노후 소득보장에 관한 문제였기 때문이다. 유시민 장관도 참여하는 ‘저출산 고령화 대책 연석회의’를 통해 연금개혁을 추진한다고 했지만 실제는 유시민 장관 독자적으로 추진했다. 진보적 노동·시민사회단체·여성계·종교계 등은 ‘사회적 합의를 통한 연금개혁’을 요구했지만 묵살됐다.

박근혜대통령도 기초연금 공약 파기에 대한 사회적 합의 틀로 국민대타협위원회를 거론했다. 대통령 박근혜는 지난 9월 26일 국무회의에서 기초연금 공약 후퇴와 관련해 “복지제도는 국민적 합의가 전제된다면 더 강화될 필요가 있다”면서 “대타협위를 만들어 국민 의견을 수렴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대선 공약의 하나로 아직 구성되지는 않은 상태다. 박근혜식 사회적 합의틀 구성과 논의 방향에 대해서는 아직 언급하기 이르다. E21

본 기사는 월간지 <이코노미21> 10월호에 게재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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