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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적 진화통한 ‘중국모델 3.0’ 가능한가?
정치적 진화통한 ‘중국모델 3.0’ 가능한가?
  • 장윤미 성균관대 동아시아학술원 연구교수
  • 승인 2014.01.09 1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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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특집4> 보시라이 사건으로 본 중국모델 논쟁, 권력과 시장의 담합이 낳은 과도기적 불균형 성장모델 한계 직면…기득권 혁파와 신발전방식에 대한 좌우대립 극복과 혁신이 과제

최근 ‘중국의 부상’과 함께 개혁에 관한 평가나 중국식 발전방식에 관한 논의가 꾸준히 이어져왔다. 특히 2008년 세계금융위기 이후 신자유주의 금융화 정책이 실패로 끝나면서 ‘중국모델’은 한층 더 주목을 받아왔다. 그러나 체제전환과 발전의 과정에서 중국만의 특징을 보인다는 이른바 ‘중국모델론’은 많은 논쟁도 함께 불러왔다.

시장주의자들은 중국 경제성장의 이유를 시장의 확대와 무역 및 해외직접투자 부문에서 세계화를 수용했기 때문이라고 진단하는 반면, 자유주의 좌파에선 경제정책에 대한 정부의 적절한 개입과 금융 통제 등을 주요 원인으로 꼽는다. 또한 중국으로부터 자본주의의 대안을 찾고 싶어하는 좀 더 진보적인 그룹에서는 중국경제를 시장경제는 수용했지만 자본주의 사회는 아니라는 이른바 ‘비자본주의적 시장경제’로 진단하는 반면, 중국 개혁의 기본적 성격을 신자유주의로 파악하는 학자들은 중국의 우경화 행보에 비판적 입장을 보인다.

G2시대의 개막과 함께 점차 커져 가는 ‘중국모델’ 논쟁

이렇게 좌우파를 막론한 다양한 평가가 보여주듯 중국모델의 핵심적 특징이 무엇인지에 관한 학자들의 견해는 저마다 다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반적으로 중국모델의 특징으로 권위주의체제에서의 제도개혁, 국가와 시장의 혼합체제, 정책결정의 자기주도 혹은 불간섭주의, 실용주의 정신 등을 꼽는다. 문제는 이러한 특징을 과연 중국만의 특징으로 볼 수 있느냐는 것과 이러한 특징이 과도기적인 것이냐, 아니면 중국적인 특징으로 고착되느냐에 있다.

중국의 이러한 특징을 과도기적인 것으로 보는 시각에서 보면 권위주의 정부의 주도에 의한 경제성장 전략은 이미 냉전시기 동아시아 지역에서도 나타났던 특징이고, 이러한 점에서 중국의 발전방식은 동아시아모델의 변종에 불과하다고 볼 수 있다. 경제발전에 따라 정치 다원화에 대한 욕구가 증가되면 과도기적 특징들은 점차 사라지게 되고 중국 역시 언젠가는 자유주의적인 민주사회로 이행된다는 것이다. 전형적인 근대화론의 시각이며, 이에 따르면 엄밀한 의미에서 중국모델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또 다른 시각에서 중국모델의 제기 자체가 중국경험에 대한 잘못된 평가이자 현실적 모순을 은폐하려는 신화에 불과하다는 비판이 있다. 즉 ‘중국모델’ 담론 자체가 성장주의 전략과 단기적인 이익 추구가 초래한 공동체문화와 생태환경 파괴, 그리고 저가노동경쟁으로 인한 과도한 내부경쟁과 다른 개도국 노동에 미친 악영향 등의 문제를 회피한다는 것이다.

▲ 중국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지난 8월 29일 랴오닝(遼寧)성 선양(瀋陽)에 있는 선양항공기공업그룹 젠(殲)-15 전투기 생산 라인을 시찰하면서 전투기 조종석에 직접 탑승해 내부를 살펴보고 있다. 최근 시 주석이 중국 주력 젠 전투기 생산기기를 포함한 랴오닝성의 공업지대를 시찰한 가운데 첫 항공모함인 랴오닝함에 승선하거나 주력 전투기 조종석에 직접 앉은 것으로 전해진 가운데 강군 건설 의지를 드러내 보인 것이라는 분석이 제기됐다. 제공=뉴시스, 중국 CCTV)
이처럼 각기 다른 시각에서 제기되는 ‘중국모델이란 없다’는 진단에도 불구하고 중국은 세계금융위기 이후 경기부양을 통해 외부 위기에 대응했고 최근 5세대 지도부로의 권력승계도 순조롭게 마쳤다. 2010년 7월 공식적으로 일본을 제치고 세계 제2의 강대국이 되어, 바야흐로 미국과 함께 G2시대를 열었다. 중국이 세계정치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더 커졌고, 세계와의 연관성은 더 깊어졌다. 이로 인해 기존의 발전방식에 대한 평가를 넘어서서, 향후 중국이 목표로 삼고 있는 ‘중국모델’이란 과연 어떠한 것인지, 나아가 이것이 전 세계 인류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 것인가의 논쟁으로까지 이어지고 있다.

중국모델론의 역사적 시간대와 의미

물론 ‘중국모델이 있다’고 잠정적으로 합의하는 범주 내에서도 중국모델에 관한 내용 뿐 아니라 중국모델이 과연 어떠한 시간대를 지칭하는가에 대해서 이견이 있다. 발전의 유형에 관심을 보이는 많은 연구자들에게 ‘중국모델’이란 놀라운 경제성장의 역사를 열었던 지난 30년간의 개혁 시기를 지칭한다.

그러나 더 긴 역사적 안목에서 보았을 때, 또한 상당수의 중국인들은 경제, 사회, 정치적 길의 탐색을 포함하여 근대적 국가로 가는 국가발전의 길을 ‘중국모델’로 간주한다. 이렇게 보았을 때 중국모델은 소비에트모델의 이식이 아닌 자신만의 독자적 길을 모색했던 사회주의 시기까지로 확장되며, 다시 그 연원을 따라가면 근대 시기로 이어진다. ‘근대적 국가를 건설하기 위한 발전의 여정’을 중국모델로 보았을 때 그 구체적인 전략과 정책은 당시의 특정 역사단계마다 다르게 나타났으며, 이렇게 보았을 때 중국모델은 아직 완성된 것이 아니라 향후에도 변신의 가능성이 무한한 것으로 간주된다. 변화되는 외부 환경에 적응하여 끊임없는 자기 혁신과 변화의 가능성을 탐색하고 구체화하는 것, 이것이 바로 중국모델의 특징이라는 것이다.

중국은 개혁이후 계획경제 모델과 결별했지만, 그렇다고 서구의 자본주의 모델을 선택하지도 않았다. 서구발전모델을 그대로 수용한 구소련과 동유럽은 대부분 사회적 혼란과 경제적 침체를 초래했지만, 중국은 독립적인 탐색을 거듭한 결과 최근 30년간 놀라운 성장을 보여주었다. 중국 발전이 가져온 결과와 그 의미 역시 여타 국가들과도 사뭇 달랐다. 중국모델은 일국 차원에서의 발전적 특징을 보여주는 것을 넘어 이것이 국제사회에 가져오는 파장까지도 포함한다.

근대적 국가로 가는 길이 서구가 걸어왔던 길 뿐만 아니라 또 다른 길이 있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줌으로써, 현실적, 정책적인 측면 뿐 아니라 학술적, 이론적으로도 근대화(modernization) 혹은 ‘발전학(developmentology)’의 새로운 탐구의 여지와 공간을 열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중국발전의 길이 과연 지난 세기 자본주의 국가들이 걸어왔던 경로와는 다른 것이었으며, 또한 다른 차원의 대안적 모델이 될 수 있는가? 또한 이러한 모델이 중국이 표방하고 있는 사회주의적 전망을 담아내는 발전의 길이 될 수 있을 것인가?

중국 30년 성장은 신자유주의 세계화라는 국제환경에서 가능

우선 중국모델의 핵심적 특징을 살펴보자. 대부분의 중국학자들은 성공적 개혁의 배경으로 권위주의체제와 시장경제 시스템의 공존을 그 이유로 꼽는다. 그러나 권위주의체제와 시장경제의 공존이라는 특징은 중국 뿐 아니라 강력한 독재정권 하에 빠른 경제성장을 거두었던 동아시아의 발전경험에서도 나타났던 특징이다. 중국 개혁의 중요한 특징은 오히려 외부적 조건에 있는데, 그것은 개혁이 개방과 동시에 시작되었다는 점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중국 개혁은 그 시작부터 세계발전의 구성부분이었다고 볼 수 있다.

중국의 개혁 시점은 자본주의의 구조적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새로운 경제 질서의 재편이 이루어졌던 1970년대 말과 겹친다. 자본의 수익성 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등장한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는 이후 한국에서는 1997년 IMF체제이후, 중국에서는 2001년 WTO체제 가입 이후 본격적으로 확산되었다. 신자유주의는 개인의 권리와 자유를 최고의 가치로 여기며 이론적으로는 국가의 개입을 최소화하지만, 현실에서 신자유주의 원리의 작동은 강력한 국가의 지원에 의해 이루어졌다.

강한 국가와 신자유주의의 결합, 효율과 성장 중심의 가치는 국가이익이나 성장을 위해서는 모든 수단을 동원할 수 있으며, 심지어 공적 가치를 훼손시키는 것도 가능하다는 인식을 가져왔다. 그 결과 지배층은 점차 공적 권력을 사유화하기 시작했고 이로 인해 민주주의 가치는 크게 훼손되었으며, 자본주의는 점차 민주주의와의 결별을 원하게 되었다. 이렇게 변화된 세계정치 상황에서 중국의 경제자유화 정책은 오히려 권위주의적 체제와의 양립이 가능한 공간을 확보할 수 있었다. 중국의 시장 확장은 대부분 정치적 지지로 이루어졌으며, 그 결과 시장의 국가에 대한 의존도는 더 커졌으며, 권력과 시장 간의 의존이 담합을 넘어 체제 특성으로 공고화되었다. 시장은 국가를 통해 공간을 확장해왔고, 국가는 시장 확장을 통해 합법성의 위기를 극복했다. 금융통제나 국유화에 대한 재인식, 다종소유제 등의 특징에서 보았을 때 중국모델이 신자유주의의 전범(典範)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중국발전의 길이 신자유주의의 대안은 아니었다.

중국의 지속적 성장은 신자유주의적 세계화란 외부적 조건 속에서 가능한 것이었고, 시장과 강한 국가가 결합된 신자유주의적 국제환경 속에서 중국은 시장 확장 조치와 함께 권위주의도 강화시켜 나갈 수 있었다. 이러한 점에서 개혁 이후 걸어왔던 중국모델의 길은 신자유주의 모델과는 차별화된 모델, 혹은 대안의 모델이라 보기 어렵다.

성장이 낳은 중국 내부의 정치경제적 특징과 결과

시야를 좁혀 중국 성장을 일국 차원에서 평가해보자.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지난 30년간 중국이 거둔 성장률은 그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매우 좋았으나 동시에 해결하기 어려운 많은 구조적 문제를 낳았다. 불균형 성장은 도농별, 지역별, 계층별, 부문별 격차를 심화시켰고, 수출주도의 의존적 발전으로 국제 분업시스템의 가장 말단에 고정되면서 내수 주도의 경제로 쉽게 전환될 수 없었다.

시장으로 기술을 얻겠다는 전략으로 투자 자유화가 시작되었으나, 자주적 혁신능력이나 핵심기술, 지적재산권이 부족한 기업 상황은 여전히 개선되지 않았다. 지방의 경쟁을 부추기는 방식으로 경제성장을 이루어왔기 때문에 지방정부는 단기적인 목표와 성과에 집착했고, 이로 인해 자원낭비와 산업구조의 왜곡을 가져왔다. 지방자급의 경제구조로 인해 시장이 분할되고 내부통합은 이루기 어려웠으며 지방당국은 현지 기업과 자원에 대한 직접통제를 통해 무소불위의 권력을 형성하였다. 노동자 권리에 대한 착취 위에서 이루어진 저가수출은 불공정 경쟁이란 비난을 낳았고 무분별한 도시 개발의 여파로 인간적 삶을 누릴 수 있는 환경은 망가졌다.

정치적으로는 여전히 당이 모든 영역을 영도하는 ‘당-국가체제(Party-State System)’를 유지했지만, 동시에 민주주의의 원리라 여겨지는 요소들, 요컨대 자치, 참여, 분권, 권리 등의 개념을 적극 수용·재해석하면서 안정적인 발전을 위한 정치적 환경을 조성해왔다. 정치구조 측면에서 민주적 참여의 루트를 한층 더 확대하고, 거버넌스 측면에서 합리적 제도화를 추진했다.

그러나 이와 동시에 사회 곳곳에서 터져 나오는 당의 원칙과는 다른 자발적인 활동과 주장에 대해서 여전히 폭력적이고 강압적인 수단을 통해 탄압하는 ‘이중수단’을 채택함으로써 중국 사회 영역의 독립적인 발전을 가로막아왔다. 개혁 정책의 추진과정에서 이득을 본 세력은 이제 더 나은 개혁에 저항하는 공고한 기득권층이 되었고, 개혁의 향후 진로를 놓고 이데올로기적 대립은 더욱 치열해졌다.

중국모델은 반쪽짜리 불균형 성장

지난 30년간의 중국 발전모델을 한마디로 말한다면 도시와 농촌, 투자와 소비, 시장과 사회, 자본과 노동 등 각 영역 간의 ‘불균형’을 특징으로 하는데, 이제 이러한 방식은 구조적으로 한계에 봉착했다. 고투자, 고수출, 저소비라는 성장모델은 글로벌 경제 침체로 서구 소비시장이 대폭 감소된 상황에서 더 이상 지속되기 어려울뿐더러, 인구 구조는 고령화되고 노동력도 빠르게 감소하고 있다. 최근 중국의 경제 지표들이 악화하면서 골드만삭스는 2020년까지 중국 경제가 연평균 6퍼센트 전후로 성장할 것이라 예측했다. 이것은 1999년 이래 가장 낮은 성장률이다.

사회통제 역시 기존의 방식으로는 더 이상 관리가 불가능한 한계에 봉착했다. 이러한 문제에 대해 중국 지도부는 기존의 발전방식이 국제경쟁력을 높일 수 없는 지속 불가능한 것이며, 이를 바꾸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라는 점을 분명히 인식하고 있다. 향후 중국이 개혁의 경로과정에서 고착되어온 구조적 딜레마를 해결하고 지속적인 개혁의 길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인가? 성장의 측면에서만 성공해온 반쪽짜리 ‘중국모델’의 한계를 극복하고 또 다른 방식으로 개혁이 지속가능하다는 것을 입증함으로써 진정한 ‘중국모델’을 완성할 수 있을까?

‘발전방식의 전환’은 체제개혁과 사회영역의 활성화 필요

달라진 외부 환경과 개혁 과정 자체에서 비롯된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최근 중국 지도부는 ‘발전방식의 전환’이라는 새로운 목표를 제시하고 나섰다. GDP 위주의 양적 확대에 치중해왔던 기존 ‘성장’의 내용을 ‘발전’이라는 좀 더 질적이고 포괄적인 개념으로 바꾸었다. 경제위기로 내수형 경제체를 건설해야 한다는 인식이 확대되었고, 이를 위해 신공업화와 도시화 전략으로 새로운 성장의 동력을 찾는 동시에 소득재분배와 사회복지 확대와 같은 사회정책들도 구체화되고 있다.

각 지역의 최저임금이 꾸준히 상승했고 농촌과 도시의 불균형을 시정하는 각종 정책과 함께 의료시스템 개혁, 교육개혁, 사회보장시스템개혁 등도 잇달았다. 경제성장과 정치구조 간에 뚜렷한 정상관관계는 존재하지 않지만, 사회공정은 산업발전을 위해 상대적으로 풍부한 내수를 제공할 수 있다. 중국의 지도부는 이러한 점을 분명히 인식하고 있으며, 이러한 인식의 변화는 최근 조정된 정책 속에 분명히 나타나 있다. 다가오는 11월에 개최될 18기 3중전회에서 발표되는 내용을 보면 향후 5년간 펼쳐질 국가 정책 방향이 보다 명확해질 것이다.

문제는 중국 지도부의 의지는 있지만, 어떻게 실현가능한 정책으로 만드는가, 그리고 제정된 정책이 현실적으로 집행가능한가에 있다. 현재 중국경제가 안고 있는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고 새로운 성장의 동력을 창출하기 위해선 반드시 체제개혁과 사회영역의 활성화가 수반되어야 한다. 개혁 이후 변화된 다양한 요구들과 개혁이 낳은 문제들은 더 이상 기존의 체제 틀 내의 방식으로는 해결할 수 없으며, 중국이 최근 제시한 새로운 정책들이 실질적으로 관철되려면 체제를 변화시켜야 가능하기 때문이다.

성장 중심에서 ‘질적 개혁’으로 변모는 정치적 ‘진화’의 문제

이러한 측면에서 현재 중국은 ‘성장 중심의 개혁’을 넘어 정치적, 체제 구조적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질적 개혁’이라는 포스트-개혁의 중요한 시기에 놓여있다고 하겠다. 혹자는 이를 ‘제2의 개혁’ 혹은 ‘중국모델 3.0’이라 부른다. 앞으로의 관건은 경제 ‘성장’을 뛰어넘어, 정치적 ‘진화’의 여부에 달려있다. 일정한 성장률을 유지해야 체제를 유지할 수 있지만, 체제를 바꿔야 지속적 성장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즉 개혁 초기 중국 정치개혁의 의미가 ‘새로운 경제적 변화에 상응하는 정치제도 구축’이라는 ‘소극적’인 것이었다면, 이제는 체제구조 개혁으로 경제발전의 동력을 마련해야 하는 ‘능동적 정치개혁’이 필요한 시기라 할 수 있다. 정책방향 조정 뿐 아니라 체제구조에 대한 개혁도 동시에 이뤄져야 최근 중국이 제시한 발전방식의 전환이 가능하다는 얘기다. 중국이 과연 이러한 구조 개혁을 통해 지속가능한 ‘중국모델’을 완성할 수 있는가?

중국의 새 지도부가 이러한 구조 개혁을 성공적으로 완수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 중요한 정치적 과제를 해결해야 한다. 하나는 기득권 이익구조를 깨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개혁 정당성의 근거를 설득력 있게 마련해야하는 과제이다. 전자는 개혁의 동력을 마련하기 위한 시급한 과제이며, 후자는 개혁을 위한 장기적인 안정적 환경을 위한 것이다.

보시라이 사건이 보여준 중국 정치구조개혁의 한계

그러나 현재 이 두 가지 모두 그리 쉬워보이진 않는다. 2012년에 터져 나와 최근 재판이 진행된 ‘보시라이’ 사건은 이러한 측면에서 중국 정치가 안고 있는 난점을 여실히 보여준다. 중국의 새 지도부는 보시라이 사건의 성격을 ‘부패문제’로 한정지으며 정치와 분리하려 하지만 대중들에게는 오히려 정치적 게임으로 비칠 뿐이다. 보시라이의 모든 범죄 사실을 대중에게 철저히 공개해서 현행 법에 따라 처벌하리라고 믿는 사람은 거의 없다. 레닌주의 정치철학에 따르면 법은 항상 계급투쟁의 수단이었을 뿐, 당국체제 아래 당은 언제나 법 위에 존재하기 때문이다.

시진핑 주석은 이러한 ‘법’ 수단을 통해 반부패 의지를 보여주는 동시에 최근 행보에서 정풍(整風)운동의 필요성을 역설하며 대중의 지지를 얻기 위한 군중노선 운동도 함께 벌이고 있다. 보시라이는 충칭 집정당시 공동부유와 반부패 등을 약속하며 대중들의 광범위한 지지를 얻은 바 있는데, 현재 시진핑 주석 역시 아이러니하게도 이러한 ‘마오노선’을 충실히 따르고 있는 것이다. 물론 이것이 마오쩌둥 시기로의 회귀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며, 새 지도부 출범 이후 권력집중과 지지기반을 강화하기 위해 ‘법’이란 제도 뿐 아니라 ‘대중운동’이란 당의 동원방식도 총동원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법치 의지를 보여줌과 동시에 ‘혁명’ 전통에서 정당성을 찾으려는 것이다. 그러나 이 두 가지는 근본적으로는 서로 충돌하는 것으로 법에 의한 통치를 강조하면 공산당의 지위가 도전받고, 공산당의 영도와 독점적 권리를 강조하면 법에 의한 통치가 형식화된다. 중국 현대사에서 이는 서로 충돌해왔으며, 언제나 ‘당의 우위’로 귀결되어왔다.

부패척결의 부메랑

또한 부패척결이란 사정의 칼을 어느 선까지 휘두를 것인가도 고민이 아닐 수 없다. 최근 반부패 조사가 저우융캉 전 정법위원회 서기로까지 이어지고 있는데, 그는 후진타오 시대의 ‘안정유지’ 목표를 위해 공안라인을 통해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했던 인물이다. 저우융캉은 국영 석유회사 최고경영자 출신으로 ‘석유방’의 대부로 알려져 있으며, 최근 그의 측근들 역시 부패혐의로 잇달아 체포되었다. 이는 단순한 반부패 척결을 넘어서서 중국 지도부가 에너지 독점이라는 수단을 통해 부당한 이득을 취해왔던 기득권 이익구조를 깸으로써 개혁 추진의 새로운 동력을 마련하겠다는 의도로 보인다.

문제는 중국의 부패가 시장화의 확대 과정에서 구조적으로 형성, 고착되어 온 것이며, 석유 뿐 아니라 석탄, 전력 등 각종 에너지 분야의 국유기업에서 만연된 현상이라는 점이다. 독점구조와 행정권력을 통해 취득한 막대한 이득을 사적으로 갈취하는 현상은 국유기업 분야 뿐 아니라 금융업이나 각급 지방정부에서도 존재한다. 저우융캉에 대한 조사를 통해 반부패 의지를 보여주고 개혁의 돌파구를 마련한다 하더라도 시장과 권력의 결합을 통해 형성되어온 기득권의 저항은 만만치 않을 것이며, 인맥으로 얽혀있는 중국 정치구조에서 어느 선까지 타겟으로 할 것인가도 상당히 어려운 문제로 보인다. 보시라이와 저우융캉 사건처리를 통해 독점권력과 부패간부들에게 경각심을 주는 시범효과를 거둘 수도 있지만, 자칫 권력투쟁과 사회갈등의 소용돌이에 휘말릴 가능성도 있다.

충칭모델이 갖는 의미와 위상

중요한 것은 보시라이가 천시퉁이나 천량위 등 기존의 정치적 숙청사건과는 다르게 뚜렷한 정책비전을 제시함으로써 대중들의 지지를 얻었다는 점이다. 도농 균형발전을 추구하고 빈부격차를 줄이려는 목적에서 국유기업 및 토지개발에서 나온 수익을 민생 개선에 활용하는 충칭에서의 조치들은 후진타오 집권 2기 출범이후 강조해왔던 ‘조화사회’ 건설이나 최근에 발표된 발전방식의 전환과도 상당부분 일치한다. 또한 일부 지식인들과 대중들은 민생건설에 주력했던 충칭에서의 실험이 여전히 좋은 것이었다고 평가하고 있다. 따라서 보시라이가 개인적 야망의 실현을 위한 정치적 선전으로 고취시켜왔던 충칭모델은 사라졌지만, 중국 경제위기를 타개하기 위한 하나의 방법으로서의 충칭모델은 아직 유효하다. 즉 정치적 논란이 된 ‘충칭모델’은 사라졌지만, 경제적 민생실험의 장이었던 ‘충칭경험’은 현재 중국의 정세 속에서 여전히 유효하다는 것이다.

나아가 충칭모델은 이러한 정책노선의 특징 뿐 아니라 중국 당내외의 복잡하고 첨예한 가치충돌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즉 어떠한 개혁으로 가야하는가라는 당내 노선 뿐 아니라 중국이 어떤 사회로 나아가야 하는가라는 이념적 측면도 포괄하고 있다. 기존의 지방모델은 대부분 정책모델이었지만, 충칭모델은 대중차원의 이념적 지향과도 결합되어 있다.

중국모델에 관한 중국내부의 근본적 좌우파 대립

현재 중국의 이데올로기 좌우대립을 단순화해서 말하자면 민족주의적 성향과 사유화 반대 정서를 기반으로 한 대중 중심의 마오좌파와 자유시장과 법치 및 점진적 정치개혁을 강조하는 엘리트 중심의 자유주의파로 나뉘어 볼 수 있다. 지역적으로 대중 좌파는 충칭 등의 내륙지역을, 엘리트 우파는 광둥 등의 연해지역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중국 지도부의 고민은 바로 이러한 지역적, 이념적, 계급별 갈등을 어떠한 정치적 수단으로 해결하느냐에 있다.

법치 의지로 우파를 달래면서 대중노선으로 좌파를 달래려 하지만, 이러한 이중적 조치는 양쪽의 불만을 가져오게 마련이다. 물론 향후 관료부패 척결과 민생문제 해결 등 구조적인 불균형을 해소하려는 시도가 어느 정도 효과를 본다면, 당의 영도와 법의 통치가 결합된 형태가 당분간 안정적으로 유지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권력엘리트들은 자신의 기득권을 포기해야 하는 개혁에는 완강히 저항할 것이며, 관민 대립정서가 그 어느 때보다 심각한 지금의 상황에서 상하 균형점을 찾기가 갈수록 힘들어지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정책방향이나 내용을 둘러싼 엘리트 내부의 분열이 일어난다면, 정치적 혼란을 피할 수 없음은 자명하다. 정치적 갈등을 완화하기 위한 경제적 해법은 무엇인지, 경제적 돌파구를 마련하기 위한 정치적 해법이 무엇인지, 지금 중국 앞엔 가장 어려운 과제가 놓여있다. 이러한 어려움을 극복한 중국모델의 혁신은 가능할까? E21

본 기사는 월간지 <이코노미21> 10월호에 게재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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