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19-10-19 15:25 (토)
사회적경제 출현과 70년대의 부활
사회적경제 출현과 70년대의 부활
  • 신명호 사회투자지원재단 부설 사회적경제연구센터 소
  • 승인 2014.01.21 12:2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사회적경제 특집1-사회적경제의 개념과 역사> 자본주의 저성장시대 실업,불평등 심화되면서 해결대안으로 다시 주목…제1기본원칙은 ‘사람과 사회적 목적이 자본보다 우선한다’

먼저 독자들께 퀴즈를 하나 낼 테니 풀어보시기 바란다.

[ 문제 ] 다음은 ㉮ 기업에 관한 정의(定義)이다 :

“ 취약계층에게 사회서비스 또는 일자리를 제공하거나 지역 사회에 공헌함으로써 지역주민의 삶의 질을 높이는 등의 ㉯ 목적을 추구하면서 재화 및 서비스의 생산·판매 등 영업활동을 하는 기업”

㉮ 와 ㉯ 에는 같은 단어가 들어가게 되어 있는 데 이 단어는 무엇일까?

[ 보기 ] ① 정치적 ② 경제적 ③ 사회적 ④ 문화적

정답은 ‘③사회적’이다. 그리 대중적인 상식 문제는 아니니 혹시 틀렸더라도 크게 상심하지는 마시라! 어쨌든 빈 칸에 ‘사회적’이란 말을 집어넣고 다시 읽어보면 대부분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여러 사람이 모여 집단을 이루고 규범을 정해 사는 것이 ‘사회’이므로 그런 모듬살이와 관련되었다는 뜻의 ‘사회적’이란 단어에는, 어떤 개인이나 소수 특권층보다는 여러 사람이나 사회 전체, 혹은 지역 커뮤니티와 관계돼 있다는 의미가 깃들어 있다.

사회적 기업,시민 다중을 위해 존재하는 기업

기업의 목적은 최대한 이윤을 추구하는 것이고 그렇게 발생한 이윤은 자본을 댄 주주들에게 돌아가게 되어 있으니 기업은 결국 주주 개인 몇몇을 이롭게 하는 조직이라 할 수 있다. 물론 일자리를 만들어 노동자를 이롭게 하지 않느냐는 반론도 있을 줄 아나, 과연 그것이 이로움인지 착취인지 하는 것은 이 글의 논점을 벗어난 또 다른 주제이다. 게다가 세계화의 영향으로 노동자의 몫을 줄이기 위한 다양한 전략과 방법들이 구사되고 있는 마당에, ‘기업은 결국 만인을 이롭게 한다’는 명제가 그야말로 만인의 동의를 얻을 수 있을지 의문이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소수의 경제적 이익을 추구하는 ‘기업’이란 단어 앞에 ‘사회적’이란 관형어를 붙이는 순간, 우리는 자본가와 같은 강자들 몇몇을 위해서가 아니라 다수의 약자들, 또는 시민 다중을 위해서 존재하는 기업이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나게 된다. 서로 모순되어 보이는 두 개념의 결합은, 오래 전부터 시장이라는 사적(私的) 영역과 제3섹터(비영리 부문) 간의 벽 허물기를 시도해온 유럽에서는 이미 30여 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마침내 우리나라도 2007년, ‘사회적기업육성법’을 제정해서 이처럼 사회적 목적을 추구하는 기업들이 확산되게끔 지원하고 있다. 위의 사회적 기업 정의는 이 법의 제2조에 나와 있는 풀이이다.

그렇다면 정부는 왜 이런 새로운 유형의 기업을 양성하고자 하는 것일까? 이를 위해서는 이 개념의 원산지라 할 수 있는 유럽의 관련 역사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유럽에서 사회적 기업이 등장하게 된 배경

서구에서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1945년부터 첫 번째 오일 쇼크가 찾아온 1973년까지의 약 30년간은 자본주의의 황금기였다. “영광의 30년”(Trente Glorieuses)이라고 불릴 정도였다. 경제성장과 생산성은 최고조에 달했고 노동자들의 소득과 생활수준 역시 빠르게 높아졌다. 노동조합은 강력했으며 각국의 정부는 풍부한 재정 수입을 기반으로 관대한 사회보장체계를 구축했다. 이른바 복지국가의 건설은 이렇게 이루어졌다. 취업을 원하는 사람이면 누구나 어렵지 않게 일자리를 구할 수 있는 완전고용의 시대였다.

하지만 이 호시절은 이후 그다지 ‘영광스럽지 못한’ 30년으로 이어졌다. 점차 제조업이 쇠퇴하고 서비스 산업의 비중이 높아지는 소위 탈공업화(deindustrialization) 현상이 나타났다. 중화학공업의 생산기지 역할을 했던 유럽과 미국의 국제경쟁력은 환태평양권의 신흥공업국들에게 밀리기 시작했다. 비교우위의 경쟁력이 사라진 것이다. 제조업 공장들은 생산규모를 축소하거나 아예 문을 닫는 지경에 이르렀다.

자연히 경제성장률은 둔화되고 실업자가 증가했으며 빈곤 상태로 떨어지는 사람들도 생겨났다.

설상가상으로 1980년대부터 본격화된 세계경제의 글로벌화 경향과 신자유주의의 공세는 노동자의 처지를 더욱 어렵게 만들었다. 정보통신 기술의 발달과 무역 자유화로 상품과 금융자본의 이동은 더욱 신속하고 거침없어졌다. 이제는 전 세계적으로 노동 비용과 세금 등을 절감할 수 있는 초국적 생산 네트워크가 구축되었을 뿐 아니라, 단기간에 고수익을 노리는

금융자본들의 이동도 빠르고 편리해졌다. 결국 초국적기업의 경영자들은 투자금을 회수해가는 대주주들의 응징을 피하기 위해 오직 수익률을 높이는 데 혈안이 되고, 그것은 노동자들의 몫과 그들에게 들어가는 비용을 줄이기 위한 갖가지 전략과 방법들을 불러왔다. 지속적으로 실업률은 높아지고, 일을 하는데도 가난한 근로빈곤층의 비율도 점차 증가했다.

▲ 대표적인 협동조합 도시인 스페인 몬드라곤의 본사 모습
처음에 유럽 정부들은 예전에 관대하게 설계했던 사회보장 제도를 활용해서 위기를 관리하려 했다. 예를 들면, 50대에 실업자가 된 사람에게 노령연금의 지급시기를 앞당겨줌으로써 실업으로 인한 빈곤화를 막고자 한 것이다. 하지만 경기 불황과 재정 수입의 감소가 근본적으로 치유되지 않는 상태에서 사회복지체계를 이용한 대응에는 한계가 있었다. 더구나 저출산 고령화의 경향은 국가의 공공재정 수지를 더욱 악화시키는 원인이 되었다. 복지 재정의 수입원인 젊은 경제활동인구는 감소하는데, 기대수명이 늘어난 노인 인구에게는 더 많은 의료와 돌봄 서비스의 비용이 들어갔다.

옛날에는 넉넉한 기준으로 지급되던 각종 사회복지 수당과 서비스는 수급 자격이 점차 엄격해지고 제공되는 양에도 제한이 가해졌다. 복지 혜택의 내용을 축소하고 조정하는 이른바 사회복지 시스템의 개혁이 불가피해졌다. 그동안 국가가 공급해오던 공공재로서의 사회서비스는 과거에 비해 위축되고 어떤 부문에서는 공백이 생겨났다.

공공부문이 주도하는 사회서비스 체제의 문제점은 그 밖에도 또 있었다. 서비스의 질과 내용이 획일화된다는 것이었다.

세상이 변하면서 욕구가 다양화되는데도 국가가 제공하는 사회서비스는 수요자의 생각과 기대를 정확히 반영하지 못하는 수가 많았다.

윤리적 가치와 경제적 성과를 동시 추구

이처럼 일자리를 필요로 하는 실업자들이 늘어나고 국가가 공급하는 사회서비스의 양과 질이 부족해지는 상황에서 등장하게 된 것이 ‘사회적 기업’(social enterprise)이다. 일단 기업으로서의 성격을 가지므로 시장에서 재화나 서비스를 판매하는 영업활동을 하고 그 결과 수익을 창출함으로써 재정에서의 독립성을 확보한다는 특성을 띤다. 그와 동시에, 영리기업들과는 달리, 사회적으로 유익하고 가치 있는 목적을 추구한다면 그것은 여러 가지 사회 문제를 해결하는 특별한 경제조직이 될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이 때 사회적 목적이란 예를 들면, 혼자 힘으로 노동시장에서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는 취업애로계층—장애인, 근로능력 미약자, 장기실업자, 출소자 등을 위해 고용을 창출하는 것이 될 수 있다. 이들을 고용해서 사업체를 꾸리는 것은 이들 취약계층에게 일자리와 어느 정도의 소득을 마련해주는 것이므로 그 자체로서 사회적 가치가 있는 일이 된다. 다시 말해서, 노동으로부터 소외된 사람들을 다시 노동의 상태로 통합하는 것인데, 유럽에서는 흔히 이런 조직을 노동통합형 사회적 기업(Work Integration Social Enterprise:WISE)이라고 한다.

또, 어떤 돌봄 서비스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시장에서는 안성맞춤의 서비스를 구매할 수 없을 때, 그들이 원하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일도 유익한 사회적 목적이 될 수 있다. 환경오염의 원인이 되는 폐기물을 재활용하는 사업체가 있다면 그것은 다중의 생활환경을 깨끗이 지키는 사회적 목적을 실현하는 것이 된다. 문화적 혜택을 못 받고 있는 소외계층에게 예술 공연이나 행사의 감상 기회를 제공한다든지, 소득이 낮은 마을 주민들을 조직해서 새로운 소득 창출 사업을 벌인다든지 하는 것 모두가, 여러 사람을 이롭게 하는 사회적 목적이 될 수 있다. 실로 사회적 목적이란 그 유형을 일일이 나열할 수 없을 정도로 많고 다양할 수 있으며, 사회적 기업을 도모하는 사람들의 독창성에 의해서 새롭게 발굴되는 것이기도 하다. 다만, 분명한 기준점은 소수의 기득권자를 위하는 게 아니라 많은 사람들, 지역사회, 사회적 약자들의 유익함을 지향한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사회적 기업은 그 단어의 구성에서 드러나듯이, 윤리적 가치를 추구하는 결사체로서의 성격과 경제적 성과를 추구하는 사업체로서의 성격을 동시에 지닌다. 창의력과 혁신의 정신으로 시장에서 수익을 창출하는 한편, 그것을 기반으로 자본주의 시장의 실패로 빚어지는 각종 불평등과 소외, 공동체 해체의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는 것이다.

실제로 유럽의 시민사회운동은 1970년대 말부터 실업과 빈곤의 확산, 새로운 욕구의 출현 앞에 자국의 정부가 보이는 무력함에 대해서 선제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들은 오늘날 우리가 사회적 기업이라고 부르는, 당시로서는 새로운 형태의 실험에 착수했다. 불가피하게 말라가는 정부의 돈줄에 의존하지 않고 시장과 제3섹터의 요소를 혼합한 다양한 성격의 경제조직들을 시도했다. 그리하여 사회적 기업이라고는 하지만, 정부가 처음부터 법과 제도를 만들어 하향식 발전 경로를 택하고 있는 우리나라와는 달리, 실제로는 다양한 명칭과 내용의 성체적(hybrid) 경제조직들이 생겨났다. 현재도 유럽의 사회적 기업들은 결사체와 사업체라는 양가적 특성을 지녔다는 점에서 ‘사회적 기업’으로 통칭되고 분류되는 것일 뿐, 나라에 따라서는 다른 이름을 사용하고 있는 경우가 허다하다.

사회적 경제라는 개념의 기원

사회적 기업은 결사체와 사업체의 특성을 동시에 지닌다고 했는데, 그렇다면 그 이전에는 비슷한 성격의 경제조직이 없었을까? 사실 18~19세기의 유럽에는 공제조합, 협동조합 이라는 이름의 유사한 조직들이 일찍이 생겨난 바 있다.

사람들은 언제 닥칠지 모르는 위험들—가장의 사망, 질병, 사고 등의 위기에 대비해서 공동체라는 방식으로 그 피해를 최소화하고자 하였다. 오늘날 보험이라 부르는 이 같은 제도를 유럽에서는 상호공제회, 또는 공제조합(mutual)이라는 이름으로 시작했다. 공제조합은 처음 영국의 선술집에서 ‘머니박스’(money box)라는 통에 소액의 돈을 추렴해 모아두었다가 중병에 걸린 조합원의 진료비를 내주거나 사망한 조합원의 가족에게 위로금을 전달한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이미 산업혁명이 일어나기 전인 17세기 말에 이런 공제조합은 영국 전역에 확산돼 있었다.

동업자조합에서 출발한 프랑스의 공제조합 역시 지속적인 성장을 거듭했다. 더구나 1852년 공제조합운동이 법률로 인정을 받으면서 그 확산 속도는 더욱 빨라졌다. 19세기 중반 2,000개(조합원 10만 명)에 달했던 공제조합은 19세기 말이 되자 1만 3,000개(조합원 210만 명)로 늘어났다.

한편, 산업혁명을 계기로 발달하기 시작한 자본주의는 노동자들의 삶을 극도로 피폐하게 몰아갔다. 일자리를 잃은 실업자들이 쏟아졌고 공급 과잉 상태의 노동력 가격은 계속 하락했다.

노동자들은 실업과 저임금에 시달리는데, 밀가루와 같은 그들의 생필품은 제분업자들의 매점매석으로 가격이 비싸고 품질이 형편없었다. 정부의 탄압과 고용주들의 외면으로 임금인상 운동, 참정권 운동 등이 잇따라 실패한 후, 마침내 1844년 영국의 로치데일에서 소비자협동조합이라는 새로운 형태의 권익운동 조직이 성공을 거둔다. 이를 계기로 소비자조합 뿐 아니라 노동자협동조합, 신용협동조합 등 협동조합(cooperative)조직들이 유럽 전역으로 퍼져나갔다. 특히 자본주의의 발전 속도가 완만하고 산업화의 파괴력이 덜했던 프랑스에서는 숙련노동자들이 노동자협동조합을 만드는 데 적극 나섰고, 프랑스 정부 역시 방임주의 성향의 영국 정부와는 달리, 노동자들의 시도를 적극 지원했다.

근대 민주주의의 발전은 개인의 자유 신장뿐 아니라 민간단체(association) 결성의 자유화를 통해서도 나타났다. 언제나 권력으로부터 탄압과 감시를 받던 결사체를 민간에서 조직하는 일이 점차 가능해졌다. 프랑스에서는 “구식 길드가 민간단체의 원칙에 따라 보통선거와 노동자 주권을 받아들이는 소규모 직종별 조직으로 전환되었다.” 그리고 수십 년의 논쟁을 거쳐 1901년, 비영리 민간단체를 법적으로 인정하는 법률이 생겼다. 이상과 같이 유럽에서는 각 나라마다 시기적 차이가 있고 조직 유형에 따라 출현 및 발전 과정이 다르기는 하지만, 대체로 18세기 초부터 20세기 전반에 이르기까지 공제조합, 협동조합, 그리고 민간 차원의 결사체들이 속속 등장하고 꾸준히 확산되었다. 이것은 물론 서민 대중들이 자신들의 삶에 깃든 불확실성, 그리고 현실적 욕구와 필요에 대응해서 조직적으로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과정이었다.

그런 가운데 이들 협동조합과 공제조합, 민간단체들이 지 닌 공통점에 주목한 사람이 있었다. 기독교 사회주의자였던 프랑스의 샤를 지드(Charles Gide)는 협동이야말로 비인간적인 자본주의 시장경제에 대한 대안이며 사적 이윤을 폐지하고 이윤을 공유할 수 있는 방안이라고 믿었다. 그는 협동조합과 다양한 형태의 공제조직들을 성장시킴으로써 자본주의의 문제, 특히 분배의 불평등을 점진적으로 개선할 수 있다고 확신했다.

그는 1905년에 발간한 한 보고서에서 ‘사회적 경제’(economie sociale)라는 개념의 범주 안에 ①협동조합 및 공제조합과 같은 결사체, ②고용주의 사회적 공헌, ③사회적 입법과 같은 공공의 규제를 제시하고 있다. 즉, 자본주의 시장경제가 필연적으로 수반하는 이윤의 독점과 불평등을 해소하고 견제할 수 있는 사회적 장치들을 통틀어 사회적 경제라고 했던 것이다. 사실, 역사상 ‘사회적 경제’란 용어를 맨 처음 사용한 이는 19세기 프랑스의 자유주의 경제학자 샤를 뒤느와이에(Charles Dunoyer)라고 알려져 있지만, 오늘날의 의미와 견주어보면 그보다는 지드의 개념을 원류로 보아야 할 것 같다.

사회적 경제의 부활

그러나 사회적 경제라는 용어는 그 이후 역사 속에 그냥 묻혀 버렸다. 협동조합, 공제조합, 그리고 각종 민간단체들은 각개약진하면서 흥망성쇠의 길을 걷게 된다. 협동조합은 꾸준히 개체 수를 늘리면서 유럽을 넘어 세계 전역으로 확대되었지만, 한편에서는 시장에서 경쟁하는 가운데 본성을 잃고 영리기업처럼 변질돼 버리는 현상도 일부 나타났다. 또한 지역 단위의 보험제도 역할을 하던 공제조합들은 전국 차원의 사회보장체계가 수립되는 과정에서 그 구조로 편입돼 들어갔다.

모두로부터 잊혀 있던 ‘사회적 경제’라는 용어가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른 것은 유럽의 자본주의가 저성장의 길을 걸으면서 실업과 불평등의 문제가 심화되기 시작했던 1970년대였다.

1970년 6월, 프랑스에서는 협동조합, 공제조합 및 민간단체들이 공동보조와 연대의 필요성을 느끼고 CNLAMCA(전국 공제조합;협동조합;민간단체 연합 정도로 해석. 2001년에 현재의 CEGES-사회적경제 기업 및 기관 협의회로 전환했다.) 라는 전국 조직을 결성한다. 또한 1981년 미테랑의 사회당 정부가 들어서자 세계 최초로 ‘사회적 경제’라는 용어를 채택한 행정부의 공식기구(DIES) -‘사회적 경제 지원을 위한 정부부처 간 협력위원회’라는 의미를 지닌 “Delegation Interministerielle a l'Economie Sociale”의 축약어-가 만들어진다.

이 같은 프랑스에서의 움직임은 스페인, 벨기에, 포르투갈 등 유럽의 라틴계 국가들로 퍼져가는 한편, 유럽연합(EU)의 정책에도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1970년대 후반부터 유럽연합의 자문기구인 유럽경제사회위원회(EESC)와 집행위원회(European Commission)가 협동조합, 공제조합 및 민간단체들의 유럽 단위 회의를 적극 후원하고, 1989년에는 집행위원회(EC) 안에 ‘사회적경제국’이라는 부서를 설치한다.

또한 1990년부터 유럽의회는 회원국 간의 사회적 경제 포럼이라 할 수 있는 ‘사회적경제인터그룹’(Social Economy Intergroup)을 가동하고 있으며 2009년에는 사회적 경제 결의안을 채택한 바 있는데, 여기서 회원국들에게 “노동시장 불균형의 3대 요소인 실업과 고용 불안 및 사회적 배제를 바로잡기 위해 제3섹터 전반에 대해 법·제도 등을 적절히 갖추라”고 촉구하고 있다.

사회적 경제 기본원칙과 우리나라 유입

이상의 역사에서 보듯이, ‘사회적 경제’란 먼저 어떤 개념과 원리를 정해 놓고 거기에 맞춰 일사분란하게 만들어온 조직이 아니라, 시장경제가 일으키는 각종 문제들(실업, 고용 불안, 사회적 배제 등)을 극복하기 위해 시민 대중들이 실험해온 다양한 형태의 조직들을 총칭해서 부르는 이름이다. 그러니 여러 곳에서 같은 용어를 쓰고 있지만, 정작 사회적 경제가 무엇인가에 관해 단일하고 공인된 정의란 존재하지 않는다.

학자들이 내린 정의도 저마다 조금씩 다르다. 그렇기는 해도 사회적 경제의 범주를 정하는 기준에 관해서 대강의 공통분모가 없는 것은 아니다. 유럽을 대표하는 가장 권위 있는 당사자 기구라 할 수 있는 ‘유럽사회적경제’(Social Economy Europe)-2000년에 설립된 ‘협동조합, 공제조합, 민간단체 및 재단의 유럽상설회의’. 2008년 그 명칭을 ‘유럽사회적경제’(Social Economy Europe)로 변경했으며, 유럽연합 차원의 사회적 경제 대표기구 - 가 제시한 기본원칙은 다음과 같다.

★ 사람과 사회적 목적이 자본보다 우선한다.

★ 구성원 자격은 자발적이고 개방적이어야 한다.

★ (조직은) 구성원에 의해 민주적으로 운영되어야 한다.

★ 구성원 및 이용자의 이익, 기타 보편적 이익 등을 고루 안배 하여야 한다.

★ 연대와 책임의 원칙은 반드시 준수되고 적용되어야 한다.

★ 공공기관으로부터 자율성과 독립성을 유지해야 한다.

★ 잉여의 대부분은 지속가능한 발전의 목표, 구성원의 이익과 보편적 이익을 위해서 사용되어야 한다.

협동조합, 공제조합, 민간단체(association)와 재단(foundation) 등은 바로 위의 원칙과 기준에 합당하기 때문에 사회적 경제의 대표적인 유형으로 분류된다. 또 이 글의 첫머리에서 언급한 사회적 기업 역시, 자본보다 사람을 중시하는 사회적 경제의 한 형태이다. 19세기에 자본주의가 처음 발달하면서 쏟아내는 폐해에 대한 대응기제가 전자였다면, 후자는 불황기에 접어든 자본주의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시도였다고 할 수 있다.

서구가 복지국가 수립 후에 맞이한 시장경제의 실패를 치유하는 수단으로 사회적 경제를 꺼내들었다면, 우리나라는 복지다운 복지를 경험해보지도 못하고 느닷없이 실업과 빈곤화의 늪에 빠져버렸다. 1990년대 초반까지 낮은 빈곤율과 불평등을 자랑하던 한국은, 1997년 경제위기를 계기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사이에서 가장 고용이 불안정하고 빈부 격차가 심한 나라의 하나로 전락해버렸다.

정부, 2012년 협동조합기본법 제정

한국 정부가 사회적기업육성법(2007년)과 협동조합기본법(2012년) 제정에 발 벗고 나선 것도 사회적 경제의 활성화를 통해 일자리와 빈곤화 문제를 완화해보자는 생각에서였다. 이 외에도 보건복지부는 자활기업을, 안전행정부는 마을기업을, 농식품부는 농어촌공동체회사를, 시행지침에 근거해서 독려하고 있다. 명칭은 각기 달라도 그 성격은 대동소이한 공동체 조직들이고, 어쨌든 이들은 그 전부터 시민사회운동 진영에서 키워온 소비자생활협동조합,

의료생협, 공동육아협동조합, 마이크로크레디트 등등과 함께 우리나라의 사회적 경제 부문을 구성하고 있다.

이런 조직들이 실제로 우리 앞에 놓은 사회 문제들을 얼마나 해결하게 될 지는 좀 더 두고 봐야 할 터이지만, 명심해야 할 것은 이것을 직접 만들고 참여하는 사람들에게서 우러나오는 자발성과 역동성이 성패를 좌우한다는 사실이다. 사회적 경제가 활성화되는 데 정부의 지원 정책은 매우 긴요한 요소이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당사자들의 자생력을 키우는 방향일 때만 이로운 것이다. 자꾸 당근을 흔들어대며 결성을 독려하는 당국의 성과주의적인 태도가 사회적 경제의 장기적인 발전에 오히려 해(害)가 되지는 않을까, 우려가 되는 이유이다. E21

본 기사는 월간지 <이코노미21> 12월호에 게재된 글입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