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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하게 통제된 시장’과 ‘좋은 사회’
‘스마트하게 통제된 시장’과 ‘좋은 사회’
  • 크리스티안│켈러만 독일사민당 전략 및 컨텐츠국 부?
  • 승인 2014.02.13 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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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의 사회적 시장 경제의 미래> 올바르게 계획된 경제는 좋은 사회에서 양보할 수 없는 필요조건…시장에 지나친 자유를 허용함으로써 사람들의 자유는 오히려 축소

경제와 가치는 정반대의 개념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현재의 정치적 주류는 대안이란 존재하지 않으며, 현실의 제약으로 인한 형식적인 합의가 마치 “합리적인 실용주의”인 것처럼 포장해서 판매하고 있다. 신자유주의라는 상표가 더 이상 그 자체로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으면서도, 그 안의 내용물 즉, 극단적인 시장이 “신기하게도 죽지 않는 것”에는 최소한 2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가치’와 ‘실용적인 경제정책’이 모순적인 관계라는 생각이 아직까지 깨지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것은 다음의 둘째 이유와도 관계가 있다. 둘째, 아직까지 현실적으로 실현가능한 대안책이 성공적으로 뿌리를 내리지 못한 것이다. 그러나 대안책은 분명히 존재하며 이러한 대안책들을 그만큼 더 적극적으로 강구할 필요가 있다. 뒤죽박죽의 경제정책들이 비단 최근 몇년 동안만 우리가 “좋은 사회”라고 생각하는 것과는 다른 결과를 가져온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경제란 좋은 사회의 잠재적인 엔진과도 같다. 그렇다면 사회적 번영과 경제적인 지속성을 사회 전체라는 컨셉트 속에서 실현시키는 것 외에 무엇이 경제의 목적이 될 수 있겠는가.

이렇게 볼 때, 올바르게 계획된 경제는 좋은 사회에서 양보할 수 없는 필요조건이다. 과잉의 경제는 사회와 자연에 중대한 손실을 안겨줄 수 밖에 없다. 금용자본주의의 붕괴는 단순한 사고가 아니며 그 결과에서 알 수 있듯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형식적인 조치 이상의 그 무엇이다.

금융위기 이전 20년 동안 시장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원칙을 고수하던 현상은 독일에서만 나타난 것이 아니다. 그러나 이에 못지 않게 놀라운 것은 금융위기 속에서 드러난 속수무책의 정계와 학계이다. 금융위기에 줄지어 펼쳐진 일관성 없는 “구조정책”에 사람들은 내일의 경제를 걱정하였고 근시안적인 시각으로 자기 앞에 놓인 접시 만을 바라보게 되었다. 그 결과, 미래에 대한 경제전망도 불안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늘 그렇듯이 이와 같은 대규모 위기는 이제는 발벗고 대책을 마련해야만 한다는 합의점을 이끌어내었고, 그 결과 여러 개선책들이 마련되었다. 그러나 개선책 중 대다수는 보편적인 성격이 강하여 개선을 위해 무엇보다도 금융시장이나 기타 다른 시장이 어떠한 역할을 분담해야 하는 지를 적절히 지적하지 못했다.

역할분담은 구체적인 규정을 통해서만이 가능하다. 그러나 이 때의 규정이란 전혀 가치중립적이거나 시장중립적이지 못하다. 오히려 반대로 규정은 누가 무엇을 어느 정도로 할지를 결정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상적인 경우에는 규정을 정하기에 앞서 단순히 기술관료적인 절차 이상의 준비가 먼저 이루어진다. 올바른 경제는 (어느 경제이론인지를 막론하고) 안정과 다이나믹을 동시에 보장한다.

진부하게 들릴 지는 몰라도 올바른 경제는 또한, 모든 사람들에게 보다 더 나은 삶을 제공한다. 자본주의의 모델들은 이러한 목표에 어느 정도 부합하기 위해 항상 사회적이고 민주주의적인 테두리를 필요로 했다.

독일 또는 북유럽의 국가에서는 자본주의를 다수의 번영을 위해 건설적인 방향으로 이끄는 데 성공한 시기가 있었다. 오늘날 현실은 그 때와 다르다. 그러나 목표를 가지고 자본주의의 고삐를 이상적인 방향으로 이끌어야 하는 도전과제는 여전히 그 때와 동일하다.

1. 올바른 경제의 목표

그렇다면 인간에게 보다 나은 삶을 제공하기 위해 올바른 경제가 구체적으로 마련해야 할 것은 무엇인가? 그동안 경제정책은 무엇보다도 물질적인 생산성을 높이는 데 중점을 두었다. 실존했던 사회주의에서도 걱정없는 유토피아적 공산주의를 향한 성공척도를 중앙에서 통제한 계획경제가 생산한 자동차 수, 철강의 양, 고속도로의 거리에 따라 평가했다.

현존하는 자본주의에서는 ‘국내총생산’이라는 복잡한 지수를 이용하여 오늘날까지도 비물질적인 생산 즉, 서비스 형태의 생산을 포함하여 물질적 번영을 측정하지만 이 도구로 인간의 행복 지수가 얼마나 증가하였는가를 충분히 드러내기에는 역부족이다. 생산된 재화와 용역이 증가한다고 해서 인간의 행복 역시 증가하지는 않는다는 것은 오늘날 누구나 다 아는 자명한 사실이다.

▲ 지난 2011년 10월 15일(현지시각) 독일 프랑크푸르트의 유러피언 중앙 은행 본사 앞에서 시위대가 시위를 벌이고 있다. 이날 1천명이 넘는 시위대가 '프랑크푸르트 점령' 시위를 열었다. 제공=신화/뉴시tm
현대의 행복연구 결과들은 사람들이 생산된 재화 자체에만 관심이 있는 것이 아니라, 이로 인해 발생한 이윤이 어떻게 분배되는지, 또 직접 근로자로서 이 생산과정에 어떻게 참여할 수 있거나 해야만 하는지, 생산과정이 환경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 등에도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지속성을 가진 경제만이 장기적으로 올바를 수 있다. 왜냐하면 지속성이 없이는 다음 세대에서 새로운 패배자가 나올 수 밖에 없으며 이것은 다수의 행복을 증가시키고자 하는 올바른 경제활동의 목표에 위배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문제 역시 사실상 보이는 것보다 더 복잡하다. 예를 들어, 부채는 그것이 개인의 것인지, 공공의 것인지를 막론하고 언제나 미래에 대한 현재의 평가와 연관된다. 부채를 감내하고서라도 해야 하는 투자는 무엇인가? 또 하지 말아야 할 투자는 무엇인가? 지속성은 그것이 처음에 사용되었던 생태학적인 영역 뿐만 아니라 국가의 역할, 사회적인 측면에서도 중요한 것이다. 재화와 용역의 증가에 대하여 비판적인 시각을 가지는 것도 중요하지만 목욕물을 쏟아 버리려다 욕조 속의 아이까지 덩달아 버리는 일은 없어야만 한다.

이용 가능한 재화와 용역을 더 많이 생산하고 이를 더 많이 분배하는 일은 여러 영역에 있어서 인간의 행복과도 직결되는 중요한 요소이다(예를 들면 저소득층 자녀를 위한 학업보조 등의 서비스). 그러나 이 때 중요한 것은 다른 분야가 아닌 실제로 인간의 행복을 직접적으로 증가시키는 재화와 용역의 생산을 증가시키는 것이다. 즉, 식생활 개선, 더 나은 교육, 건강관리의 향상, 유용한 여가활동의 증가 등과 같은 서비스를 말하는 것이다. 아울러 물질적인 번영의 증가 또한 폭넓은 대중에게 유익하도록 분배되어야지 소위 상위 1%라고 하는 부유층만이 혜택을 누려서는 안된다.

그렇기 때문에 올바른 경제를 위한 경제정책이란 단순히 성장만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경제성장이 사회, 분배, 지속성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하여 그 유익성을 먼저 가늠하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평가의 결과가 경제정책 목표설정 시에 갈등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지만 지금까지 여겨졌던 것과는 달리 언제나 대안책이 없는 것은 아니다. 오늘날의 시대정신은 이미 오래 전부터 그러한 고정관념에서 멀어졌다.

2. 올바른 경제가 가져야 할 세 가지 지속성

올바른 경제가 훼손해서 안되는 지속성에 대해 얘기하면 제일 먼저 환경적인 지속성이 떠오를 것이다. 그러나 자연이 만들어내는 만큼만 자연에서 가져가는 것으로 지속성을 이해해서는 곤란하다 (그렇다면 재생 불가능한 천연자원에 대해 사용금지를 내려야 할 것이다). 중요한 것은 다음 세대가 지금 세대처럼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있는 기회를 똑같이 갖도록 하는 것이다.

생산공정의 개선으로 생산시 사용된 자원의 효율성을 높인다면 존재하는 자원의 일부를 사용하는 것에도 문제가 없다. 왜냐하면 발전된 기술로 인해 사용된 자원이 그만큼 보충되기 때문이다. 환경적 지속성에 대한 이러한 정의는 강경 반개발주의자들의 주장에 비하면 매우 약하게 들릴지는 모르겠으나 현재의 경제방식을 벗어나 자원보호와 그린 테크놀로지를 향한 대대적인 항로수정을 의미한다.

환경적 지속성에 대한 논쟁 다음으로, 심지어 경우에 따라서는 그 보다 더 먼저 여론에서 거론되는 것이 바로 정부활동의 지속성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지나치게 단순한 시각으로 이를 분석하는 경우가 많다. 정부예산의 결손과 국가부채가 다음 세대에 부담으로 작용하기 때문에 정부예산의 계속되는 결손액은 곧 지속성이 없음을 의미하며 반드시 피해야만 하는 것으로 보는 견해가 만연하다. 안타깝게도 이러한 논쟁은 다음 세대에 정부가 저지를 수 있는 실수가 오로지 국가부채만이 아니라는 사실을 간과하고 있다.

붕괴된 인프라구조, 교육이나 사회분야의 실패한 투자 등은 늘어나는 국가부채 만큼이나, 적지 않은 경우에는 그 이상으로 다음 세대에 짐이 된다. 조기교육 등에 대한 투자로 인해 경제의 전 영역에서 획득할 수 있는 수익률이 쉽게 두 자리 숫자에 달하는 데 반해 현재 독일이 자본시장으로부터 장기적으로 얻을 수 있는 수익률은 약 1%에 불과하다. 따라서 부채를 얻어서라도 교육과 같은 곳에 투자를 하는 것은 다음 세대를 위해 낮은 비용으로 높은 이득을 얻는 것과 같다.

이렇게 볼 때, 인적 자원을 위한 사회적 지출이나 투자를 줄이는 것은 지속성을 고려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지속성을 추구하는 목표에 반하는 것이며 다음 세대의 활동무대를 보장하고 확대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제한하는 것이다. 안타깝게도 채무방지 법안과 유럽 재정 협약 비준은 국가의 신규 부채와 지속성에 대한 논쟁을 매우 어렵게 만들었다. 이러한 정책은 올바른 경제정책과는 거리가 있다.

지속성에 대한 세 번째이자 가장 핵심적인 측면은 바로 사회적 지속성에 관한 문제이다. 사회적 지속성을 말할 때, 우리는 가장 먼저 사회적 갈등이 일어나지 않도록 경제활동의 짐과 열매를 분배하는 것을 떠올린다. 이것은 먼저, 사회의 일부 계층이 평균 이하로 점점 더 추락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뜻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최근 몇년 간 독일을 비롯한 여러 선진국에서 이러한 변화가 있어왔다. 그러나 사회적 지속성이란 동시에 최상위 부유층이 평균에서 지나치게 위로 솟아올라서도 안됨을 의미한다. 그럴 경우, 질투와 불신이 만연하게 되는데, 각종 행복연구의 결과에 의하면 이러한 질투와 불신은 사회 구성원의 만족과 결속력에 매우 해롭게 작용한다.

사회적 지속성은 소득과 재산의 분배 외에도 개인이 사회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의미하기도 한다. 이때, 참여란 성과를 통해 승진할 수 있는 기회, 그리고 가치 있는 개인으로서 가치를 생산하는 근로생활을 할 수 있는 기회를 말한다. 따라서 부모의 사회적, 경제적 지위에 따라 성과가 결정되는 교육제도나 계속되는 대량실업은 사회적 지속성에 위배된다.

3. 가치실현을 위한 도구

통제되지 못한 시장이 지속적인 번영이 아니라 자본주의 체제를 더욱 불안정하게 하며, 우리의 경제적 삶의 기반을 파괴하고 사회적 불평등을 심화시킨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자명한 사실이다. 그 원인은 여러 가지인데, 잘못 통제된 시장이 앞서 언급한 지속성의 측면들을 고려하지 않기 때문이며 또한 금융시장과 같은 특정 시장이 과장과 ‘극대화’를 추구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반대로 우리는 스마트하게 통제된 시장이 혁신적인 잠재성을 가지고 만인의 행복을 보장할 수 있다는 사실 역시 잘 알고 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독일연방공화국은 이러한 사실을 분명히 입증해보였다. 당시 계획경제체제였던 독일민주공화국(구동독)과 비교 해보더라도 이러한 사실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정치가 해결해야 할 도전과제는 각 시장의 긍정적인 잠재성을 보장하면서도 동시에 각 시장에 분명한 한계선을 그어주는 것이다.

a) 국가의 권력

적절한 전략의 가장 중요한 요소는 적극적인 재정정책이다. 이 때 ‘적극적’이라는 단어는 여러가지를 의미한다. 첫째, 국가는 민간경제가 쉽게 만들어내지 못하는 재화와 용역을 제공해야 한다. 둘째, 국가는 사회적 지속성을 유지하기 위해 분배정책을 펼치고 사회 계층간에 소득과 재산의 격차가 너무 벌어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 셋째, 국가는 재정정책을 통해 경제분야에 친환경적인 변화가 일어날 수 있는 제반 여건과 자극을 제공해야 한다. 넷 째, 국가는 스마트한 경기정책으로 큰 경제기복의 여파를 진정시켜야 한다.

이 중 민간경제가 쉽게 만들어내지 못하는 재화를 제공해야 한다는 말은 경제교과서에서 주장하는 ‘국가에 의한 공공재의 제공’ 이상을 의미한다. 경제학자들이 일반적으로 정의하는 공공재는 비경쟁성과 비배제성을 가진 재화와 용역이다.

대표적인 예가 국가방위인데 즉, 국방은 국민이 증가한다고 해서 더 소모되는 것이 아니며(비경쟁성), 국민 중 어느 누구도 국방의 보호에서 배제되지 않는다(비배제성). 그러나 위에서 언급된 공공재 기준에 부합하지 않은 재화와 용역까지도 국가가 타당한 근거를 가지고 제공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예를 들면 교육은 일반적인 정의에 의하면 공공재는 아니다. 즉, 교육에는 분명히 경쟁이 존재하며 (강의실의 학생수가 2000명일 경우, 50명일 때보다 교육 성과가 떨어진다) 개인이 교육을 받지 못하는 경우도 쉽게 발생할 수 있다 (미국의 높은 대학등록금이 이를 잘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높은 교육수준이 전제되어야 사회가 제 기능을 하고 사회적 지속성이 유지될 수 있으며 교육은 또한 중요한 분배 요소이기도 하기 때문에 국가의 재정으로 교육 시설을 제공하는 것은 당연하다.

철도나 전력망과 같은 인프라 역시 민간에서 이를 더 높은 수준으로 제공할 수 있는지 여부가 명백히 입증되지 않았기 때문에 국가차원에서 이를 제공할 수도 있는 것이다 .

분배란 높은 소득과 재산에 대하여 세금을 부여함으로써 재산축적에 어느 정도의 제동을 걸고 사회 저소득층에 일정수준의 최저임금과 사회 경제활동의 참여를 보장하는 것이다. 이러한 분배는 시장에서 저절로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에 국가의 역할이 중요하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재산몰수에 가까운 과세를 부과하거나 지나친 사회보조로 성과에 대한 긍정적인 도전 자체를 감소시켜서는 안될 것이다. 그러나 아직까지 독일이 이러한 한계선에 도달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독일의 최대 과세율은 현재 40%를 약간 웃돌고 있다. 그러나 최근 연구결과들에 의하면 최대 과세율이 60%에 달한다 하더라도 최상위 소득층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염려는 없다고 한다. 아울러 높은 상속세를 반대할 만한 정당한 근거 역시 없다고 본다.

b) 노동의 가치

어느 경제에서든지 노동시장은 중요하다. 현대 경제사회에서는 대부분의 제품이 (인간이 제작한 기계의 도움을 받아 제작이 되었는지와는 무관하게) 1차적으로 인간 노동력의 산물이다. 이 때문에 노동시장은 가격설정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며, 시장경제 질서의 안정에도 영향을 미친다. 노동시장은 또한 태어날 때부터 큰 유산을 물려받지 않은 이들의 생활수준과 이들에게 사회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시장이기도 하다.

여기서 말하는 사회 참여란 물질적인 것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개인 스스로가 사회에 의미있는 방식으로 공헌을 하고 있다는 느낌을 갖는 것을 말한다. 동시에 노동시장은 사람들이 자기 삶의 많은 시간을 어떻게 보내는지를 결정하기도 한다. 노동시장은 이렇듯 사회의 번영과 사회적 지속성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면서도 통제되지 못한 시장주체들에 의해 고려되지 않기 때문에 특별한 관심과 규정을 필요로 한다.

첫째, 노동시장의 규정과 정책, 또 행위자들은 경제와 사회 전체를 불안정하게 만들어서 안된다. 명목임금이 지속적으로 하락하면 총경제적으로 물가가 하락할 위험성이 있다. 왜냐하면 이러한 경우 기업은 국내에서 비용감소와 함께 시장축소에 대면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 결과 1920년대 말에 발생한 대공황과 같은 심각한 불경기를 초래할 수 있다. 반면, 지나치게 빨리 상승하는 임금 역시 누구도 바라지 않는 인플레이션을 일으킬 수 있다. 따라서 올바른 경제, 지속적인 경제를 위해서는 다수의 임금을 지속적이고 안정되게 상승시킬 수 있도록 노동시장 주체간의 균형을 이루는 것이 중요하다.

역사적·국제적 경험에 따르면 이러한 목표는 강력한 노동조합을 통해 가장 효과적으로 달성할 수 있다. 그러나 이 때 노동조합은 어느 정도 크기를 갖추어야 하고 임금의 일정 수준을 충족시킬 수 있어야 하며 노동조합의 행동이 경제 전체에 미치는 영향까지도 고려할 수 있어야 한다. 동시에 국가가 최저임금제와 같은 법적 규정을 통해 가드레일을 만들어 임금협상체제가 실패할 경우에도 심각한 결과를 막는 것이 중요하다. 그 밖에도 국가는 일자리보장과 사회 복지제도를 통해 노동이 경제의 가장 중요한 원동력이자 인간의 중요한 삶의 일부분으로서 제 역할을 다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c) 성장의 대가가 지나치게 큰 경우

머리글에 언급했듯이 현재의 성장모델은 이미 그 한계에 도달했다. 책임의식이 있는 사회라면 이러한 핵심적인 문제를 인식하고 해결하려 할 것이다. 이 때, 다각적인 차원에서 문제를 분석하는 것이 중요하다. 특히 다음 세대의 이익을 고려하거나 특정 활동이 다른 국가의 사람들에게까지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경우, 통제가 없는 시장은 제 기능을 올바르게 하지 못한다.

이 경우, 시장은 재화 또는 용역의 실질적인 가격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다. 특히 환경 분야의 비용문제가 그러한 경우다. 예를 들면 이산화탄소를 대량 흡수할 수 있는 열대림을 벌목하는 데 드는 비용은 나중에 목재의 판매가보다 훨씬 더 높다. 즉, 사회가 부담해야 하는 비용은 소비자가 처음에 지불하는 가격과 심각한 불균형을 이룬다. 지구온난화는 잘못된 시장이 초래할 수 있는 단 하나의 예에 불과하다. 대부분의 국가는 현재의 뛰어난 에너지효율성의 증가를 고려하지 않고, 성장을 위해 계속해서 더 많은 자원을 사용한다. 지금까지 환경 분야에서 여러 성과가 있었지만 생태계를 현재와 미래에 온전히 지속하기에는 아직도 역부족이다.

이 거대한 문제를 조금이라도 해결하려면 자원의 효율성을 크게 증가시킬 수 있는 혁신적인 기술발전의 방향과 속도를 정확하게 규정하는 경제정책이 필요하다. 먼저 에너지소비와 천연자원의 가격을 높여야 한다. 천연자원의 가격이 상대적으로 낮은 한 기존의 생산방식과 소비방식을 변화시키려는 동기부여가 없을 수 밖에 없다.

둘째, 투자자와 혁신자들은 에너지와 천연자원의 가격이 앞으로도 계속 높을 것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석유와 천연자원을 최소한으로 이용하는 혁신적인 발명만이 미래에 효율성을 높이는 기술로 살아남을 것이다. 재생불가능한 에너지 소비에 대해 세금을 부과하고 투명하고도 점차적으로 세금을 올리는 방법이 가장 효과적일 것으로 기대된다. 언젠가 석유가격이 하락하는 날이 온다 하더라도 이렇게 부과된 세금은 재생불가능한 에너지원에 대한 최저가격선이 될 것이다. 현재 CO2 배출권거래제는 완전한 자유방임주의적 접근법보다는 낫지만 여전히 신뢰와 안정면에서 완벽하지 못하여 큰 폭의 가격변동이 예상되며, 이로 인해 에너지효율적인 혁신기술에 대한 기대가 저하된다. 따라서 앞으로는 실질적인 사회생태학적

비용에 따른 가격 구조로의 변화가 불가피할 것이며 해로운 경제활동에 대한 엄격한 규제와 금지 또한 피해갈 수 없을 것이다.

한 단계 더 나아가 정부는 친환경 제품을 위한 새로운 시장을 창출해야 한다. 기업은 에너지효율이 높은 신제품을 개발하는 것을 꺼린다. 소비자가 새로운 제품을 실제로 원하는 지가 불분명하기 때문이다. 어떠한 기술은 그 기술을 사용하는 최소 사용자수가 존재할 때에만 실제로 유용하기도 하다.

이미 수소연료자동차를 이용하는 사람들이 있고, 주유소 등의 네트워크가 구축되어 있을 때에만 수소연료자동차를 새로 구매하려는 사람들도 생길 것이다. 민간기업 차원에서도 동일한 이유로 충분한 소비자가 확보되지 않은 한 주유소 등의 네트워크를 구축하지 않는다. 이 때문에 정부와 정부기관은 (경찰차나 공공건물의) 조달과 인프라구축 시에 ‘CO2 제로’ 기준을 설정하고 이러한 기술을 요청함으로써 기술적 선구자 역할을 해야 한다.

그러나 정부가 직접 앞장서서 혁신기술을 개발할 필요도 있다. 특정 연구프로젝트는 기업이담당하기에는 지나치게 방대하고 복합적일 수 있다. 또한 혁신적인 기술이라고 모두 상업화되고 특허를 낼 만한 결과물을 낳지는 않는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이러한 기술이 에너지 효율을 높이는 새로운 지식을 창출한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경제와 사회 전체에 공헌하는 것이다. 바로 이러한 경우에 정부는 에너지효율과 자원생산성 분야의 연구개발을 직접 재정지원하고 이를 확대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정부는 지속적으로 친환경적인 생산방식과 소비방식을 위한 종합적이고 장기적인 인프라프로젝트를 실시하고 부담해야 한다. 에너지생산, 이동성, 도시계획 등은 정부가 근본적인 차원의 구조변화를 실시할 수 있는 분야들이다. 그동안 이 분야의 지나친 민간화로 (기업 자체의 높은 이익 외에) 더 이상 긍정적인 효과를 거둘 수 없게 되었다. 인프라구조 분야에 대규모의 공기업이 존재한다면 지속적인 에너지 소비를 향한 극단적인 변화를 일으킬 수 있을 것이다. 인프라구조의 변화, 가격구조의 변화 그리고 연구개발에 대한 정부지원 등을 통해 환경문제와 함께 가는 성장모델에 한 걸음 더 다가갈 수 있을 것이다. 이로써 이 분야에서 얼마나 근본적인 차원의 변화가 필요한지 분명해졌을 거라 생각한다.

그러나 어떠한 사회도 홀로 이러한 과제를 성공적으로 해결할 수는 없다. 글로벌 차원의 노력이 필요한데, 현재 이러한 노력에 대한 필요성은 인지되고 있으나 아직까지는 심각하게 다루어지지 않고 있다. 현재 세계경제에서 “입지적 장점”으로 여겨지고 있는 요소들로 인해 실질적인 의식변화가 일어나지 않고 있다. 그러나 이것 역시 근본적으로 봤을 때, 비용만으로 세계경쟁력을 따지는 경제와 지속성 패러다임간의 허구적인 모순일 뿐이다. 독일과 같은 국가는 오히려 친환경적인 산업정책으로 혁신성과 기술발전 속도를 높이고 이로써 자원절약 기술분야에서 독보적인 경쟁력을 갖추려고 꾀하고 있다. 그러나 일부 국가만의 노력과 발전만으로 전 세계적 환경문제를 해결하기에는 역부족이다. 그러므로 선두주자 국가와 혁신적인 기술에 대한 어느 정도의 보호는 필요하다. 예를 들어, 무역제재나 특정 수입품에 대하여 CO2 배출량에 따른 관세를 부과하는 등의 대책에 대하여 심각하게 고민할 필요가 있다. 물론 이러한 대책이 적지 않은 갈등을 일으킬 것임은 굳이 언급하지 않아도 쉽게 알 수 있다.

노동 자체의 지속적인 효율성 증가는 자원의 효율성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기술발전은 에너지효율성만 가져오는 것이 아니라 예를 들어, 자동차를 생산하는 데 필요한 시간도 지속적으로 감소시킨다. 즉, 사회에서 생산가능한 재화와 용역의 양은 계속해서 증가하는 것이다. 물론 인간의 기본욕구 등과 같이 아직 충족되지 않은 수요가 있는 한 이러한 결과는 긍정적인 것이다. 그러나 일반적인 경제 이론과는 달리 시장에서 생산성의 증가가 자동적으로 생산물의 증가를 가져오지 않음은 분명하다. 생산성의 증가로 실업률이 증가할 수도 있다. 이러한 트렌드는 노동시장에 더 많은 노동력이 존재할 때에 더 급속도로 나타난다. 이러한 딜레마에서 벗어나기 위한 단기적 해결책은 다양하지만 대체로 진정한 지속성을 고려한 해결책들이라고 보기에는 어렵다. 경제적으로 고성장을 이룬 사회의 경우, 노동생산성의 증가를 더 이상 중대 목표로 삼지 않는 것이 대안책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증가한 생산성으로 인해 더 많은 여가 시간을 가질 수도 있을 것이다.

d) 금융시장의 부정적인 측면

금융제도는 여전히 통제되지 못하고 있으며 그 결과 아직까지 충분한 정도로 올바른 역할을 하지 않고 있다.

금융시장의 움직임에서 알 수 있듯이 금융시장은 비상식적으로 돌아가고 있으며 경제적 기본질서에 따라 변하지 않는다. 현재 금융시장은 마치 조울증 환자에게 우리 경제에 대한 책임감과, 이로써 사회의 중요한 일부분을 맡긴 것과 같은 모습을 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금융시장 규제의 필요성은 매우 중요한 정치적 차원의 문제로 보아야 한다.

그러나 여전히 정치적 요구와 현실간에는 너무나도 큰 격차가 존재하고 있다. 그 이유는 금융산업 내에서 좋은 규제와 나쁜 규제에 대한 기존의 정의들이 여전히 깨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금융산업의 강력한 성장은 1980년대와 1990년대 자유화의 결과이다. 그러나 사회 연금프로젝트의 대규모 투자 결과이기도 하다. 연금펀드를 비롯한 기관투자자들은 거대한 자본으로 시장의 흐름만을 지배하지 않는다. 이들은 “좋은 기업경영”이 무엇인지도 결정한다.

주주가치의 극대화는 금융자본주의의 핵심이며 종종 한 기업의 투자, 노동과 고용에 재난을 불러일으킨다. 유토피아적 차원의 수익성 기대로 인해, 기업은 더욱 더 비용에 대한 압력을 받게 되었다.장기적이고 전략적인 투자 대신 금융시장에 단기적이고 근시안적인 투자가 행해지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수익모델은 더욱 더 수익성에만 집중하는 결과를 가져올 뿐만 아니라 지속적인 투자 감소를 가져온다.

금융시장은 각 경제의 두뇌역할을 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금융시장으로서의 기본기능에 충실해야 한다. 대출을 통해 기업 특히, 혁신적인 기업의 투자를 가능케 해야 한다. 또한 리스크 분배를 통해 기업 차원의 도전을 증가시켜, 그 결과 혁신과 성장 역시 증가하도록 해야 한다.제대로 작동하는 금융시스템은 지속적인 성장을 가져올 수 있는 분야와 기업에 1차적으로 자본을 대출해야 한다. 또한 저축된 소액을 모아 투자자본을 구할 수 없는 대규모 투자 프로젝트에 제공해야 한다.

금융시장이 다시 핵심 기능을 하기 위해서는 제일 먼저 금융시장의 자유를 축소시켜야 한다. 즉, 리스크를 만들어낸 자에게 리스크에 대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 투기성 투자를 몰아내고 “도덕적 위험부담”에도 한계를 그어야 한다.

금융주체는 만약 투기성 투자가 실패로 돌아가면 언제든지 국가에서 구제해준다는 생각으로 지나치게 위험한 투자를 하지 말아야 한다. 동시에 금융시장을 근본적인 차원에서 더욱 효율적으로 규제할 수 있는 제반 여건이 필요하다. 경제정책의 가장 시급한 과제 중 하나는 현재 규제없이 난무하는 은행천국과 (헤지펀드와 같은) 일명 그림자 은행 등의 권력을 축소시키는 것이다. 이와 더불어 새로운 정책방안이 마련되어야한다.

국가에서 개입하지 않는다면 금융시장은 다른 경제 분야를 위기에 빠트릴 수 있는 매우 심각한 수준의 리스크를 지속적으로 유발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금융시장과 금융시장의 활동범위뿐만 아니라 금융시장의 규모를 제한할 필요가 있다.

4. 시장에 대한 통제

성장을 통제하기 위한 사회와 정부의 강력한 역할, 각 시장의 분명한 역할분담, 국가의 중대한 금융정책 등과 같이 앞서 언급한 대책들을 위해서는 먼저 경제의 가치가 무엇이며 그 방향을 어디로 설정할 것인가에 대한 사회적 결정이 우선되어야 한다. 경제와 경제학은 사회의 전 영역에 영향을 미치고, 시장에 지나친 자유를 허용함으로써 많은 사람들의 자유를 더 보장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축소시켜 왔다.

막강한 시장에 대한 무력함은 “정치 주체” 즉, 개인, 정당, 조합 또는 시민단체 등의 대처능력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시장과 경쟁의 논리가 세계를 휩쓸며 대책의 수립을 막고 있다. 사람들은 ‘먼저 움직이는 사람이 진다.’라는 생각으로 시장이 통제하려는 자를 벌한다고 믿고 있다. 그러나 여기서 보여주고자 했듯이 이러한 논리는 잘못된 것이다. E21

본 기사는 월간지 <이코노미21> 12월호에 게재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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