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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불황속 ‘립스틱 효과’와 한국영화
2013년 불황속 ‘립스틱 효과’와 한국영화
  • 마재광 기자
  • 승인 2014.02.27 15:56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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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 창업한 신생기업 가운데 둘 중 하나가 2년안에 폐업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통계청이 12월 24일 발표한 ‘기업생멸 행정통계’ 발표결과이다. 이러한 ‘기업신생률’은 관련 통계가 시작된 2007년 이후 최저치라고 한다. 한국경제가 활력과 생기를 잃고 장기불황에 빠져들고 있다는 것이 확인되는 대목이다.

신생기업 진입은 줄고 생존율은 크게 하락

우선 금융위기 이후, 신생기업의 진입 자체가 점차 줄어들고 있다. 2012년 활동했던 전체기업수는 538만개이다. 이 중 신생기업수가 77만개로 그 비중은 14.3%이다. 2008년도 기업신생률은 16.2%, 2010년은 15.3%였고 2012년 14.3%는 2007년 이래 최저치다. 우리 사회와 정부, 지방자치단체들이 전체적인 고용률과 경제활력을 높이기 위해 ‘청년 창업 기살리기’와 ‘시니어의 인생 이모작 고용과 창업지원’ 등에 애쓰지만, 이미 경제현실은 영세 제조업과 서비스업을 포괄하는 영세 자영업 분야에서 금융위기 이후 폭증과 포화, 레드오션 경쟁,그리고 최종적인 도태와 이탈이 하향추세 속에 지속반복된다는 사실을 입증하고 있다.

2011년 기준 소멸률이 가장 높은 분야는 예술/스포츠/여가 분야 (21.4%), 숙박/음식업(20.2%) 순이다. 앞서 이야기했듯이 신생기업중 2년 뒤 생존율이 1/2이 안되는데, 특히 1인 기업의 생존율은 심각하다. 1인 기업의 1년~5년뒤 생존율은 60%-47.1%-39.3%-33.9%-28.3%에 불과하다. 5년 뒤에 창업사업을 유지하는 1인 사장은 10명중 3명이 채 안되는 꼴이다.

2인 이상 기업의 생존율은 76.2%- 62.3%-53.2%-48.6%-44.5%이니 1인 기업에 비해 그나마 나은 편이라고 해야 할까? 어쨌든 종업원을 두지 못한 1인 영세자영업자의 성공은 한국사회에서 ‘낙타가 바늘귀에 들어가기’만큼 어려운 과제로 보인다.

2013년 ‘립스틱 효과’ 불황상품들

하지만 불황이고 장기침체기라고 다 죽쓰는 것은 아니다. 힘들어도 먹고 살아야 하는 것이 인간이니까 말이다. 불황기에 오히려 잘 나가는 상품들이 있다. 대표적인 것이 바로 ‘불황일수록 립스틱은 잘 팔린다’는 ‘립스틱 효과’이다. 불황도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여성의 본능은 누를 수 없고 돈이 없어 고가의 명품 화장품이나 액세서리, 의류 구입이 힘들고 미용실 출입이 어렵지만 가격대비 만족도가 높은 립스틱이나 네일아트-매니큐어의 구입은 늘어나는 것 또한 드러난 사실이다. 하지만 여성들의 패션트렌드가 색조화장에서 투명메이크업으로 바뀌고 브랜드파워 립스틱 가격이 비싸지면서 ‘립스틱 효과’도 과거 같지는 않은 듯 하고, 대신 네일아트 시장은 2008년 이후 꾸준히 불황효과를 누리면서 ‘불황속 대박시장’으로 꼽힌다고 한다.

일반적으로 변치 않는 불황상품은 저가, 장수브랜드들 몫이다. 소주, 라면 , 새우깡같은 상품이 대표적이며 이는 지금도 마찬가지다. 일본에서도 10년 장기불황 대표상품은 ‘컵라면’이었다. 이는 기업들이 돈이 들어가는 연구개발과 신규투자를 꺼리고 기존 인기저가제품의 판매망을 강화하는 영업전략을 선택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1회용 라이터와 못난이먹거리

2013년을 마감하며 올 한해 유통업계에서 눈에 띈 불황상품이 네 가지 있다고 한다. 1회용 가스라이터와 대형대장고, 못난이먹거리 그리고 1회용 편의점도시락이 그것이다.

편의점 세븐일레븐에 따르면 올 상반기 라이터 매출이 지난 해 같은 기간보다 30.1% 늘었다고 한다. 700원 이상 고가라이터는 13.5% 줄어든 반면 600원 이하 저가 라이터가 32.4%로 불티나게 늘어난 것이다. 이에 대해 관계자 왈 “호황일때는 라이터가 업소의 홍보판촉용으로 많이 제공되어 소비자들이 구매하지 않지만 경기가 어려워지면 그런 역할을 단가가 싼 껌이나 과자가 대체하므로 불황이 되면 라이터 판매량이 늘어난다”고 설명했다.

대형냉장고도 마찬가지다. L대형유통에 따르면 올 한해 800L이상 대형냉장고는 전년대비 20%이상 매출이 늘었고 반면 500~800L 급 중형냉장고는 20% 이상 매출감소해 전체적으로 판매된 냉장고 10대중 7대가 대형냉장고였다고 한다. 이는 불황이 되면서 주부들이 가계부에서 가장 먼저 줄이는 항목이 외식비이고 결과적으로 집에서 식사준비가 늘어나 식자재와 많은 음식을 보관할 용도로 대형냉장고 수요가 커졌다는 분석이다.

대형마트의 신선식품인 과일,채소,생선 중 유통과정 중 흠집이 난 못난이먹거리도 올해 큰 인기를 모은 불황상품이었다. 깔끔하게 재정리해 평소가격의 30~40%에 판매하면 알뜰족에게 큰 인기를 끄는 효자상품이 된다고 한다. 편의점 1회용도시락 역시 비싼 식당식사를 대체하고 직장인과 학생들의 주머니 사정을 도와준 불황식품이었다. 3000~4000원이면 한 끼를 해결할 수 있고 매일 메뉴도 다양해 계속해서 젊은 층을 편의점으로 불러들이고 있다. 주요 사무실 지역 근처 편의점들의 도시락시장 규모는 현재 년 2조원이 넘어섰고, 올 한해 판매된 편의점 도시락만 1억개를 넘었다고 한다.

상품만 불황상품만 있는 것이 아니다. 산업 자체가 불황산업도 있다. 대표적인 분야가 영화산업이다. 이는 미국이나 유럽 등 세계적으로 공통된 현상이다. 세계영화산업을 선도하는 미국의 할리우드 영화는 미국의 대공황기와 전쟁기인 1930년~1940년대에 급속도로 성장 팽창하여 오늘에까지 그 독점적 지위를 잃지 않고 있으며 그 영향력을 세계로까지 확장한지 이미 오래이다.

불황산업인 영화는 최고의 전성기 구가

영화가 불황산업인 이유는 상당히 저렴한 가격으로 좋은 인프라환경에서, 당대 최고의 스타와 엄청난 제작비가 들어간 잘 만들어지고 후회하지 않은 문화상품을 남녀노소가 함께 즐길 수 있다는 점 때문이다. 호황일 경우는 국내외 여행이나, 고급예술작품공연, 스포츠 등을 선호하겠지만, 돈이 궁한 불황기에 여가선용과 가족,친구,애인과 시간죽이기 문화상품으로 영화를 상대할 상품과 산업은 이젠 존재하지 않는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

한국은 불황산업으로 영화가 확실히 자리매김한 세계적으로도 매우 독특한 나라이다. 세계적으로 유래를 찾아볼 수 없는 급속한 도시집중화와 극장의 대규모 멀티플렉스화가 그 외부 요인이라면 이야기와 스토리를 좋아하는 국민 일반의 문화적 감수성이 또 하나의 요인일 것이다.

어쨌든 2000년대 이후 꾸준히 성장해온 한국영화는 올 한해 대박을 친 모습이다. 한 해를 마감하기도 전인 12월 17일 사상 최초로 한 해 관객 2억명을 돌파했다. 송강호라는 국민배우는 ‘설국열차’ ‘관상’ ‘변호인’ 영화 세 편의 주연으로 가뿐하게 관객 2천만명 이상을 동원했다는데 이도 한국영화사상 처음 있는 일이다. 외양만 좋은 게 아니라 내용적으로도 의미있다. 한국영화 관객수가 그 중 1억1816만명이고 점유율 59%이다. 반면 외국영화 관객수는 8181만명에 점유율은 41%에 그쳤다. OECD국가중 미국을 제외(미국이야 자국 헐리우드 영화를 당연히 제일 많이 볼테니)하고 자국 영화 점유율이 외화점유율보다 더 높은 나라는 우리나라가 유일하다. 문화강국이라고 콧대 높은 유럽의 프랑스,영국, 이탈리아, 독일도 무너진 지 오래이다.

1인당 평균 영화관람도 4.12편 세계 1위

더 나아가 전 세계에서 올해 국민 1인당 영화를 가장 많이 본 나라는 한국이 될 것이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12월22일 CGV에 따르면 12월 국내 총 영화관람객수 2억 명을 넘어선 한국은 올 연말까지 그 수가 2억 1000만 명에 달할 것으로 전망했다. 이에 따라 올해 한국의 1인당 평균 영화관람 편수는 4.12편이 되는데, 3.88편이 될 것으로 보이는 미국(스크린 다이제스트 기준)을 처음으로 추월한 수치다. 이어 호주(3.75 편), 프랑스(3.44편) 등이 뒤를 따랐는데, 1인당 연간 4회 이상 극장을 찾은 나라는 한국이 유일하다.

무엇이든 ‘세계 최고’에 대한 욕심이 많은 우리 국민들의 한국영화사랑과 한국영화시장의 큰 성장은 산업적으로나 경제적으로 문화적으로 박수칠 만한 일임이 분명하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영화산업의 속성상 그 이면으로 우리 경제의 깊은 불황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보이는 것 또한 어쩔 수 없는 찜찜함이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연말 한국영화 흥행돌풍을 이어가는 ‘변호인’이 헐리우드식의 깨고 부수는 블록버스터 영화가 아니라 ‘회고와 추억’, ‘정의와 용기’, ‘돈과 인생의 길’에 대해 생각하게 하는 수작이라는 사실이다. E21

본 기사는 월간지 <이코노미21> 1월호에 게재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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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존 2014-03-07 02:28:31
유익하고 의미있는 내용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