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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속가능한 농정 패러다임과 동반성장
지속가능한 농정 패러다임과 동반성장
  • 조영탁 한밭대학교 교수 / 경제학
  • 승인 2014.02.28 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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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반성장의 길을 찾아서④> 농업보호주의와 구조조정 넘어서는 성장, 분배, 환경과의 조화 추구해야

1. 새로운 농정 패러다임의 필요성

최근 수년간 한국경제는 모든 분야에서 극심한 양극화 현상을 겪고 있다. 그 가운데서 한국의 농업·농촌문제는 범위상으로 산업(농업과 비농업), 계층(농민과 비농민), 지역(농촌과 도시) 등 여러 분야에 걸쳐 있는 양극화, 시기상으로는 한국경제의 고도성장기부터 시작된 가장 오래된 양극화 문제라고 할 수 있다.

경제성장에 따른 농업과 비농업간의 격차는 농산물 수입개방과 농업구조조정 정책이 시행되면서 더욱 가속화되고 있다. 생산규모를 확대하여 가격경쟁력을 높이는 농업구조조정이 필요하지만, 우리나라의 농지가격과 인건비 등 여러 가지 여건상 저렴한 수입농산물과 가격경쟁을 하기에는 한계가 많다.

그렇다고 농산물 수입이나 FTA를 제한하고 국내농업을 보호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려울 뿐만 아니라, 그 자체가 산업으로서 한국 농업을 살리는 근본적인 방안이 아니다. 이런 측면에서 시장 경쟁만 강조하는 시장주의적 접근이나 농업 보호만 강조하는 국가주의적 접근은 한국농업·농촌의 새로운 활로를 모색하는데에 한계가 있다.

따라서 한국의 농업·농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기존의 인식과 관점을 넘어서는 새로운 정책과 전략이 필요하다. 이와 관련하여 성장, 분배, 환경간의 조화로서 지속가능한 농업·농촌 패러다임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지속가능한 농업·농촌은 농업과 비농업간의 동반성장을 넘어 미래 세대를 위한 환경보전으로 세대간 공존까지 포괄한다는 점에서 최근에 활발히 논의되고 있는 동반성장 논의과도 일맥상통하는 점이 있다.

이러한 문제의식 하에서 한국농업·농촌이 당면한 위기와 과제를 검토하고 한국경제와 농업간의 관계 재설정을 통해 새로운 정책 패러다임을 모색해 보자.

2. 우리나라 농업·농촌의 위기 진단

우루과이 농산물협상 타결 이후 지난 20여년간 우리나라는 농산물 수입개방에 대비하고 한국농업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 농업·농촌부문에 거의 200조에 가까운 재정자금을 투입하였다. 그 중에서 개별경영의 규모화와 가격경쟁력 제고 등 구조조정에만 거의 투융자의 60% 이상을 집중하였다. 이에 힘입어 시설이용형 농업은 일부 성과가 거두기도 했으나 토지이용형 농업에는 기대한 만큼의 성과가 없었다.

한편 이와 함께 정부는 수입개방에 따른 농가소득 악화 대책으로 소득직불제를 시행하고 있다. 소득직불제는 농가경제를 지원하면서 수입개방의 사회적 충격을 줄이는 긍정적인 효과를 발휘하고 있다. 하지만 소득직불제 자체는 수입개방과 농업구조조정의 과도기적 충격을 줄이는 보완적 역할만 수행할 뿐, 그 자체가 농업·농촌의 새로운 미래상을 창출하는 것은 아니다. 더구나 수입개방과 시장 경쟁 그리고 소득직불제 등을 골자로 하는 농업구조조정 정책에도 불구하고 한국농업·농촌을 둘러싼 악순환과 위기는 더욱 심해지고 있다.

첫째, 농업부문의 효율성, 형평성, 환경성간의 악순환이 지속되고 있다. 특히 소득직불제가 생산연계형으로 추진되는 바람에 쌀 등 특정 작목으로의 생산 편중을 유발하고, 이것이 국내 농업생산과 소비자 선호 및 시장수요와의 괴리를 심화시키고 있다(효율성 악화). 특정 작목의 편중으로 인한 시장가격의 하락은 목표가격 설정에도 불구하고 고유가 등 투입재 가격상승과 맞물려 농가소득을 악화시키고 있다(분배 악화). 또한 농가소득의 악화를 완충하기 위한 정부의 투입재 지원과 생산자 증산노력은 농업생산에 따른 환경오염을 유발하고 있다(환경성 악화).

▲ 2013년 12월 3일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국회의사당 앞에서 전국농민회총연맹 주최로 열린 쌀 목표가격 인상 요구 기자회견에서 참가자들이 피켓을 들고 있다. 제공=뉴시스
둘째, 식품분야에서의 식품안전성과 식량안보 문제다. 국내 식품산업은 급속하게 성장하고 있지만 국내농업과 식품산업간의 괴리는 심화되고 있으며, 그 괴리를 수입개방에 따른 외국농산물이 채우고 있다. 이로 인해 국민들의 식품안전은 물론 식량 안보에 대한 불안도 증폭되고 있다.

셋째, 환경분야의 어메니티와 사회 인프라 그리고 농촌지역발전의 위기 문제다. 경제성 위주의 무분별한 농촌개발로 농촌의 어메니티가 악화되고 있어, 농촌주민의 삶의 질 문제는 물론 도시민을 위한 농촌 어메니티 보전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고 있다. 또한 농촌지역의 교육문화 등 사회적 인프라 낙후로 인해 정주 여건이 악화되고 있으며, 이로 인한 지역인구의 감소와 노령화가 지속되고 있다. 이는 지역발전을 주도할 인적 역량을 축소시키고, 이것이 다시 농촌지역 발전을 저해하고 있다.

이러한 악순환과 위기 문제는 농업구조조정 정책의 완성도를 높인다고 해서 해결될 것 같지 않다. 예를 들어 가격경쟁력을 중시하는 규모화 전략은 전술한 바와 같이 우리나라의 여건상 한계가 많다. 단순히 저렴한 비용과 가격만 강조할 경우 소비자 건강과 식품 안전을 고려한 생산, 환경보전을 위한 생산이 오히려 위축될 가능성이 있다. 농촌지역 발전의 측면에서도 경제성 위주의 접근은 농촌지역의 도시적 개발을 통해 농촌의 어메니티를 훼손할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수입개방과 규모화를 통한 가격경쟁력 제고를 넘어서 한국농업·농촌이 당면한 위기를 돌파할 수 있는 새로운 전략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단순히 농업 자체 그것도 가격경쟁력에만 집중하기보다 한국경제에서 한국농업·농촌의 위상과 역할을 재설정하는 인식상 전환이 필요하다. 더구나 한국농업·농촌과 관련하여 식품, 환경자원 그리고 지역공간이란 다양한 측면에서 새로운 요구 및 과제가 등장하고 있다. 한국 농업·농촌은 이러한 변화의 흐름을 적극 포착하여 농업과 적극적으로 연계·융합하는 전략을 구사할 필요가 있다. 이와 관련하여 한국농업·농촌에 대한 새로운 요구와 과제들을 분야별로 나누어 보면 다음과 같다.

3. 한국농업·농촌에 대한 새로운 요구와 과제들

첫째, 농업의 측면에서 시장개방과 무역확대의 추세 속에서 한국 농업의 생존을 위한 경쟁력 강화가 절실히 요구되고 있다. 이 경우 우리가 추구해야 할 경쟁력은 농업구조조정 정책에서 강조하는 가격경쟁력을 넘어 품질과 안전 그리고 문화 등의 새로운 기능에 기초한 ‘가치경쟁력’(하단 박스 참조)이어야 한다. 한국농업의 가치경쟁력 제고는 국민들의 식품안전은 물론 우리 농산물의 시장 확대를 통해 식량 안보에도 기여한다.

가치경쟁력 : 가치경쟁력은 ‘기능(품질·안전·문화) ÷ 비용(생산비·유통비)’으로 정의할 수 있다. 가격경 쟁력이 분모인 비용측면에만 초점을 맞춘 것이라면, 가치경쟁력은 분모와 분자 모두를 고려하는 것으로 가격 경쟁력과 배타적인 것이 아니라 이를 포괄하고 있는 개념이다. 후술하는 바와 같이 농업의 가치경쟁력 제고는 단순히 비용절감(분모)에 의해서만이 아니라 기능제고(분자)를 통해서도 가능하며, 우리나라 농업과 같이 분모의 절감에 한계가 있을 경우 분자의 제고를 통해 시장경쟁력을 높일 수 있다.

둘째, 안전한 식품의 안정적 공급에 대한 요구가 커지고 있다. 즉 농산물 수입개방 확대와 식품산업의 급속한 성장 속에서 생산에서 소비에 이르는 과정이 공간적으로나 시간적으로 분리됨에 따라 국민들의 식품 안전에 대한 불안감이 증대되고 있다. 이로 인해 안전한 국내산 농산물 및 식품에 대한 수요가 확대되고 있다. 이러한 소비자의 선호 및 시장 흐름 변화는 한국농업이 새롭게 도약할 수 있는 매우 중요한 기반이다. 그럼에도 식품가공 및 유통산업의 구조변화에 대한 대응능력 부재로 국내 농업과 식품산업 간의 연관관계를 제대로 구축하지 못하고 있다.

셋째, 환경 및 자원문제에서도 한국농업·농촌에 대한 새로운 요구와 과제가 등장하고 있다. 즉 국내 농약과 비료의 총소비량이 감소추세이기는 하지만 선진국에 비해 여전히 높아 식품안전은 물론 토양보전과 수자원 보호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주고 있다. 또한 축산분뇨는 수질 악화 등 환경 부담을 가중시키고 있으며, 온실가스 배출을 유발하는 농사용 전력 소비량도 급증하고 있다. 더구나 농업부문의 비료, 농약, 화석연료의 소비는 환경 오염만이 아니라 유가 급등에 따른 경영 불안정성도 유발한다.

따라서 농업생산에 투입되는 비료, 농약, 화석연료 등 생산 투입재의 혁신을 통해 농촌의 자연환경을 보호하고 식품의 안전성도 높이는 전략이 필요하다. 또한 식량을 비롯한 자원의 해외의존도가 높은 한국으로서는 국내 농업·농촌과 관련된 바이오매스와 친환경소재와 같은 새로운 자원도 적극 발굴할 필요가 있다. 이는 국민경제의 해외자원 의존 및 자원가격 변동에 대한 대응은 물론 농가소득 제고와 고용 창출에도 기여한다.

넷째, 지역 문제와 관련하여 도시지역에 비해 낙후된 농촌지역의 사회문화적 시설과 삶의 질을 향상시키고 도시민의 농촌 어메니티 수요에 적극 대응할 필요가 있다. 특히 농촌지역의 심각한 노령화를 고려해 볼 때 노령가구에 대한 사회복지대책은 매우 중요하며, 농촌 지역개발은 환경 보전과 도시민의 농촌 어메니티 수요와 조화시키는 환경친화적 방안이 바람직하다.

이상에서와 같이 농업을 비롯한 식품, 환경 및 자원 그리고 지역공간의 측면에서 한국 농업·농촌에 대한 새로운 요구와 과제들이 등장하고 있다. 이들은 모두 저렴한 농산물 혹은 농업생산 공간으로서 농촌이라는 차원을 넘어 식품 안전성과 공급 안정성, 환경 및 자원문제 그리고 농촌 어메니티 문제 등 새로운 요소들을 내포하고 있다. 한국농업·농촌의 새로운 활로는 시장의 가격경쟁력 제고 혹은 정부의 농업보호 강화로는 불가능하며, 이러한 새로운 요소들을 기반으로 한 경쟁력, 즉 가치경쟁력을 갖춘 산업과 공간으로 탈바꿈할 때 가능하다. 이를 위해서는 한국농업·농촌이 스스로 가치경쟁력을 갖추도록 여건을 조성하고 촉진하는 농정을 추진할 필요가 있다. 새로운 농정 패러다임의 기본골격과 핵심과제를 예시하면 다음과 같다.

4. 새로운 패러다임 '지속가능한 농정체계'

우선, ‘지속가능한 농업·농촌’을 농정의 새로운 비전으로 설정하고 이를 구현하기 위해서 식품과 환경·자원이라는 두 개의 부문을 한국농업의 재도약을 위한 양 날개로 활용할 필요가 있다. 정책 이념은 경제성, 형평성, 환경성의 조화로서 ‘지속가능성’, ‘식료안전성’, ‘복지와 어메니티 보전’이며, 이를 통해 달성하고자 하는 정책 대상 및 목표는 소비자와 국민에게는 안심과 만족의 제고, 농업인에게는 가치경쟁력을 통한 농가소득의 보장, 지역주민과 국민 그리고 미래세대에게는 복지증진과 어메니티 보전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비전과 이념을 구현하기 위한 정책 방향과 핵심 과제는 다음과 같다. 첫째, 농업정책에서는 ‘경영주체의 형성과 역량강화’, ‘고품질 고부가가치화를 통한 제품혁신’, ‘환경 및 자원가치의 새로운 창출’을 통한 농업의 가치경쟁력 제고가 중요하다. 이 가운데 가장 중요한 과제는 새로운 경영주체의 형성과 역량강화다. <경영주체 형성 =사람(자연인) × 농지 및 설비(물적 자본) × 경영능력(인적 자본)>이란 관계식에서 알 수 있듯이 올바른 경영주체의 형성은 자연인으로서 사람과 농지 및 시설 등 물적 자본이 경영능력·정보·지식과 같은 인적자본과 결합되어야 가능하다. 이전처럼 특정인을 농어민 후계자로 지정하고 여기에 농지 및 설비 지원를 집중하더라도 경영능력이 없으면 한국농업을 이끌고 갈 올바른 경영주체는 형성되지 않는다.

한편, <가치경쟁력 = 기능(품질·안전·문화) ÷ 비용(생산비·유통비)>이란 관계식에서 알 수 있듯이 가치경쟁력 제고를 위해 기능(function)의 제고와 비용(cost)의 절감을 동시에 추구하는 전략이 필요하다. 특히 한국 농업과 같이 자연적 및 경제적 여건상 분모인 비용 절감에 한계가 있는 경우, 분자인 기능의 제고를 통해 가치경쟁력을 높이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이는 최근 소비자의 선호 및 시장 흐름변화에도 부응하는 방안이다.

환경 및 자원가치 창출의 경우, <농업생산 × 투입재 혁신 = 환경농업>에서처럼 알 수 있는 바와 같이 투입재 혁신이 제로면 환경농업이 불가능하고 환경농업이 불가능하면 식품 안전과 환경보전이 어렵다. 농업의 투입재 혁신을 촉진하기 위해서는 환경농업이 창출하는 외부경제에 대한 사회적 보상으로서 환경직불제를 확대할 필요가 있다. 농촌의 지역자원을 이용한 자원순환형 농업도 자연환경 보전에 매우 중요하다. 특히 농업소득의 해외유출을 유발하는 수입농자재(사료, 농화학자재, 유류)가 아닌 지역자원을 활용하는 자원순환형 농업은 농촌의 환경보전만이 아니라 농가의 경영안정성까지 도모하는 일석이조의 효과가 있다.

둘째, 식품정책은 ‘식품안전과 안심확보’, ‘식품산업과 농업간의 연계강화’, ‘안정적인 식량확보’가 핵심과제다. 식품안전과 안심확보를 위해서는 식품 안전관리의 4대 원칙(전과정 원칙, 위험분석의 원칙, 투명성의 원칙, 규제영향평가의 원칙)을 일관성 있게 추진할 필요가 있다. 이와 아울러 신뢰형 시장거래(표지제도)와 계약형 직거래의 확산을 위한 제도적 기반을 확충할 필요가 있다. 식품 산업과 국내 농업간 연계 강화를 위해서는 식품 산업의 요구에 부응하는 산지 공급체계의 구축과 농산물 유통구조 혁신이 중요하다.

비상사태에 대비한 안정적인 식량확보를 위해 일정 규모의 국내 곡물생산능력을 유지하면서 수입원의 다변화와 효율적인 비축제도를 병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또한 유사시 신속한 긴급대응을 위해 식량안보 매뉴얼을 갖춰 대처할 수 있도록 법적 근거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

셋째, 농촌정책은 ‘농촌주민의 삶의 질 향상’, ‘지역개발을 위한 지역역량강화’, ‘다원적 가치의 어메니티 보전’이 핵심과제다. 농촌주민의 삶의 질 향상을 위한 정책은 농촌지역의 다양성을 고려한 정책수요 파악 및 지원, 농촌주민에 부합하는 사회서비스의 파악과 공급, 그리고 농촌 복지 및 생활의 중심지로서의 정주권 형성 등에 초점을 맞출 필요가 있다. 지역개발을 위해서는 과거처럼 일회성 이벤트 유치 혹은 정책사업 지원보다 지역 스스로 발전동력을 찾을 수 있는 능력의 제고, 즉 지역의 역량강화(capacity building)가 더 중요하다.

다원적인 가치의 어메니티 보전을 위해서는 농촌의 환경자원과 문화, 유적의 보존 및 복원 활동, 농촌자원을 기반으로 한 다양한 사회경제적 활동, 환경서비스 분야의 다양한 활동 등에 정책의 초점을 맞출 필요가 있다. 그리고 다양한 형태의 농촌자원을 유지·보전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로서 상호준수의무의 강화, 환경직불제의 확대, 농촌 공간계획 수립, 용도지역 지정제도와 토지이용허가제도, 계약적 토지이용제도 등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끝으로, 한국농업·농촌의 가치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정부의 역할이 필수적이다. 하지만 과거처럼 정부가 농업·농민에 대한 지원사업을 많이 한다고 우리 농업과 농촌의 경쟁력이 높아지는 것은 아니라는 점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새로운 농정을 효과적으로 추진하기 위해서는 ‘정책추진 체계’와 ‘지원체계 혁신’이 매우 중요하다.

우선, 전자와 관련하여 정부는 이전처럼 ‘설계자’나 ‘주도자’가 아닌 시장의 전환과 혁신을 유도하는 ‘촉진자’의 역할에 중점을 둘 필요가 있다. 정부가 지나치게 농업·농민에 대해 개입하고 모든 것을 주도해서는 농업·농촌의 가치경쟁력이 높아질 수 없다.

후자와 관련해서는 상당한 정치적 어려움이 예상되기는 하나 장기적으로 직불제 등 보조금 지원 체계를 개혁할 필요가 있다. 특히 직불제중 변동직불제는 특정 작목으로 생산을 집중하게 하는 비효율성을 유발하기 때문에 장기적으로 고정직불 형태로 전환하고, 농가의 소득문제는 사회복지정책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

5. 지속가능한 농정의 의의

이처럼 새로운 농정 패러다임은 농업보호와 지원만 강조하는 농업보호주의는 물론 농업 자체와 협소한 가격경쟁력 제고에만 집중하는 농업구조조정을 넘어서 그 동안 농업이 간과했던 식품 및 식품안전, 환경 및 자원, 다원적 어메니티를 농업·농촌과 연계·융합하여 농업·농촌의 ‘가치경쟁력’을 제고하는 전략이다.

이는 곧 ‘규모화에 기초한 가격경쟁력 강화전략’을 포함하면서도 이를 질적으로 심화시킨 ‘융합화에 기초한 가치경쟁력 강화전략’이기도 하다. 이러한 새로운 전략은 이전의 농정 패러다임과 달리 다음과 같은 의미가 있다.

첫째, 과거에는 성장과 분배간의 상충관계, 성장과 환경간의 상충관계가 부각되었지만, 새로운 농정 패러다임은 ‘3가지 과제’, 즉 성장과 분배 그리고 환경간의 조화를 추구한다. 우선 품질과 안전, 어메니티를 중심으로 한 소비자 및 시장수요의 변화는 전통농업을 혁신하여 농업과 농촌에 다양한 사업과 성장기회를 제공한다. 또한, 그 과정에서 농민은 지속가능한 농업을 통해 환경보전을 수행하고, 국민은 환경보전 서비스에 대한 재정지원(환경직불제) 등으로 농민의 소득개선에 기여한다. 이처럼 새로운 농정은 농업 성장과 농가 소득 그리고 농촌 환경간의 상충관계를 해소하여 이들 간의 선순환 메카니즘을 추구한다.

둘째, 새로운 농정 패러다임은 ‘3가지 이념’, 즉 지속가능성과 식료안전성, 그리고 어메니티간의 유기적 연관성을 추구한다. 예컨대 식품안전성을 위해서는 농업생산의 환경성이 매우 중요하며, 농업생산의 환경성 제고는 농촌 어메니티를 보전하는 데에 필수적이다. 또한 이는 다양한 환경관련 사업을 통해 농외소득 제고와 지속가능한 농촌개발에도 기여한다. 이러한 의미에서 환경농업은 식료안전성과 농촌 어메니티를 연결하는 중요한 기반이다.

셋째, 새로운 농정 패러다임은 ‘3가지 정책’, 즉 농업정책, 식품정책, 농촌정책간의 조화와 시너지 효과를 추구한다. 환경성을 중시하는 농업정책은 식품안전을 지향하는 식품정책과 유기적으로 연관되어 있으며, 농촌경제의 활성화와 어메니티보전을 위한 농촌정책과도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이와 아울러 농업과 식품산업간 연계강화 및 고부가가치 창출을 추구하는 식품정책은 농업성장과 소득창출을 통해 농업발전을 촉진할 수 있으며, 관련 가공업이나 유통업은 농촌경제의 활성화에 기여할 수 있다. 이런 측면에서 정책분야와 수단별간의 협력관계, 즉 정책 조응성(policy coherence)이 매우 중요하다.

넷째, 과거 농정이 생산자 중심(보호주의 농정) 혹은 소비자 중심(구조조정 농정)라는 이분법의 관점에 입각해 있던 것에 비해 새로운 농정 패러다임은 ‘3주체의 이해관계’, 즉 생산자, 소비자, 미래세대간의 조화를 추구한다. 고부가가치 농업으로 농업성장과 농민소득을 견인하고 안전한 식품공급으로 소비자의 안전과 건강을 도모하며, 환경농업의 확산으로 자연생태계를 보전하여 미래세대를 배려한다. 이처럼 새로운 농정 패러다임은 ‘3가지 과제’, ‘3가지 이념’, ‘3가지 정책’간의 조화를 추구하고 한국농업·농촌의 중요한 주체들인 농민, 소비자, 미래세대라는 ‘3가지 주체’간의 공존과 공생을 지향한다.

물론 이러한 새로운 농정 패러다임의 구축은 하루 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으며, 각계 각층의 지속적인 협력과 노력이 필요하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농업·농촌에 대한 인식상 전환이다. 한국경제의 성장과정에서 가격경쟁력이 약한 우리나라 농업·농촌은 축소조정이 불가피하다는 시장주의적 인식이나 그렇기 때문에 시장을 거부하고 정부가 농업·농촌을 보호하고 지원해야 한다는 국가주의적 인식은 모두 한국농업·농촌의 재도약에도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 E21

본 기사는 월간지 <이코노미21> 1월호에 게재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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