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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도 낮지만 화학사고시 대형참사
빈도 낮지만 화학사고시 대형참사
  • 권혁면 안전보건공단 울산지도원장, 공학박사
  • 승인 2014.04.14 2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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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안전특집3> 석유화학규모 세계5위, 주변 물품 70% 화학제품, 사고 위험도 점증…항공기 사고와 같은 대응관리와 전문성 갖춘 예방 및 현장 관리 필요

2009년 1월 뉴욕공항을 이륙하여 노스캐롤라이나의 샬롯으로 향하던 한 US 에어버스 여객기가 이륙 직후 엔진 2대가 모두 멈추어 허드슨강에 불시착하였는데 준비된 리더인 기장의 탁원한 위기관리로 승객과 승무원 155명은 모두 안전하게 구조되었다.

비행기 엔진을 화학공장의 반응기에 비유할 때 기계, 전기, 화학, 컨트롤, 구조분야 등의 기술이 집약된 두 개체는 구성요소가 서로 아주 유사하다고 할 수 있으며 그 위험성 또한 사고의 빈도는 낮으나 사고의 결과는 참담함을 알 수가 있다.

미국의 경우 항공사고조사위원회와 화학사고조사위원회만이 독립적으로 운영되고 있는데 이것은 비행기 안전의 수준과 유사하게 화학공장도 관리되어야 하는 이유가 될 수도 있다.

1.화학사고 예방의 어려움

우리나라 석유화학산업의 규모는 세계5위, 정유산업의 규모는 6위를 차지하고 있으며 작년 수출품목 1위가 석유·정유제품으로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산업이 되었다.

그러나 근자에 문제가 되고 있는 화학공장 사고는 자칫 우리나라 경제의 버팀목이 되는 화학산업의 근간을 흔들 수도 있다. 예를 들어 건설에 소요되는 기간이 2~3년이 필요한 정유공장에 사고가 발생할 경우 정유공장에서 생산되는 제품을 원료로 하는 화학제품 생산공장 및 이 제품을 사용하는 기계, 전자, 자동차, 건설등 모든 산업이 치명적인 영향을 받게 된다. 이러한 경제적인 영향력 때문에 OECD에서도 화학사고 예방대비대응에 관한 지침을 만들어 회원국들이 활용하도록 하고 있다.

이와 같이 중요한 화학사고 관리분야에서 2011년에 발생한 구미 불산 사고는 사고예방 및 대응 전 과정에서 여러 가지 미숙함을 보여준 전형적인 후진국형 사례로서 향후 유사한 사고시 또다른 실수를 반복하지 않도록 하는 게 필요하다.

<위험사회>란 독일의 저명한 사회학자 울리히 벡 교수가 1986년 처음으로 언급한 용어로서 “성찰과 반성이 없이 근대화를 이룬 현대사회를 말한다” 라고 정의하였다. 그에 따르면 산업화와 근대화를 통한 과학기술의 발전이 현대인들에게 물질적 풍요를 가져다주었지만 동시에 새로운 위험을 몰고 왔다는 것이다.

즉, 위험은 성공적 근대가 초래한 딜레마며, 산업사회에서 경제가 발전할수록 위험요소도 증가하고, 후진국에서 발생하는 현상이 아니라 성공적으로 과학기술과 산업이 발달한 선진국에서 나타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고속열차는 우리에게 편이성을 높여 주었지만 잠재적인 위험의 강도가 일반열차에 비해 커졌음을 알 수가 있다. 화학공장의 경우에도 효율경쟁을 위한 설비 고도화 작업 및 신규물질 개발 등으로 그 위험성이 높아지는 것에 비례하여 새로운 위험에 대한 사전적 대비가 필요한 이유이다.

2005년 3월23일 미국 텍사스주에서 발생한 BP 정유공장 폭발사고는 사망 15명, 부상 180명 재산피해 15억불을 초래했으며, 같은 해 12월11일 휘발유, 경유 등을 정유사로부터 송유관으로 공급받아 런던 및 히드로 공항 등으로 공급하는 영국 번스필드 유류 저장소에서 대형화재가 발생하여 43명 부상, 저장탱크 21기 및 반경 3K m 이내 건물 파괴, 심각한 대기 및 수질오염을 유발하였다.

그런데 미국 챌린저호 폭발사고 및 나로호 발사연기의 사유가 된 작은 부품인 O-Ring의 문제처럼 위의 두 사고의 원인은 탱크 및 증류탑의 액위(Level)를 측정하는 작은 게이지의 고장에서 비롯되었다. 근자에 발생한 우리나라의 사고를 볼 때도 인명피해 뿐만 아니라 커다란 환경적 피해를 발생시킨 작년의 구미 불산사고는 토출밸브의 형식이 개폐가 용이한 모델을 사용한 것이 중요한 원인으로 지목된다. 여수에서 발생하여 17명의 사상자를 낸 사일로 폭발사고의 경우 용접전 화학분말을 완전히 제거하지 않은 것이 주 원인으로, 15명의 사상자가 난 울산의 물탱트 붕괴사고는 비규격 제품의 볼트가 원인으로 밝혀졌다.

이러한 사실로 볼 때 화학공장을 구성하는 수많은 부품들의 안전성 확보 및 고도의 전문성를 보유하고 있는 운전원 그리고 사고 예방 및 대응 전문가를 보유하는 데에 많은 어려움이 있는 게 현실이다

▲ 1월 3일 오전 울산 남구 황성동 한화케미컬 정문 인근 도로에서 프로판 가스가 누출되고 있다. 누출 사고는 오전 4시께 송유관 공사를 하던 업체에서 굴착기로 도로 굴착 중 SK가스에서 효성1공장으로 연결된 가스배관을 파손해 일어났다. SK가스 측에서 가스를 차단했으나 일부 잔류가스가 계속 누출되고 있어 스팀으로 중화하고 있다. 제공=뉴시스
우리보다 우수한 안전수준을 자랑하는 27개 EU 국가의 중대 화학사고 통계치를 보면 2010년부터 2011년 사이에 321건의 중대화학사고가 발생했고 이로 인하여 27명의 사망자와 121명의 부상자가 발생한 것으로 나타나 있는데 이것은 왜 화학사고의 예방이 그렇게 어려운지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라도 할 수가 있다

2. 화학사고의 관리 단계별 문제점

OECD화학사고 예방대비대응지침에 따르면 화학사고 관리를 4단계로 구분하고 있는데 단계별 우리나라의 수준과 문제점은 다음과 같다

2.1 예방

사고예방이 화학사고의 관리단계에서 가장 중요한 단계가 첫 번째인 이유는 사고가 발생하지 않게 하는 단계이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우리나라도 일정 규모 이상의 화학물질을 취급하는 사업장의 경우, 공정안전관리제도에 의해 안전보고서 심사 등 설계단계부터 안전을 확보하고 있으나 관리 대상이 한국은 21종 미국은 137종 등 선진국에 비해 상대적으로 취약하므로 대상 물질을 확대하는 것이 기본적으로 필요하다.

불산 등 위험한 물질을 취급하는 사업장은 적은 양을 사용하더라고 비상조치 사고예방에 관한 사항을 포함한 비상조치매뉴얼 작성 및 훈련이 이루어지도록 관리하는 것이 필요하다. 작년의 사고시 작업자가 보호구만 적절하게 착용했더라도 사망은 물론 바로 누출밸브를 잠금으로써 대형 사고로 이어지는 것을 방지할 수 있었을 것이다.

다행히 법이 개정되어 올해부터는 5인 미만 사업장이라도 공정안전관리제도의 틀 속에 포함되도록 한 것은 다행한 일이라 할 수 있다.

2.2 대비

사고가 완벽히 예방되는 것이 최고의 목표가 되겠으나 앞에서 살펴봤듯이 화학공장의 위험특성상 사고는 발생한다는 전제하에 모든 준비와 훈련을 하는 것이 필요하다. 따라서 각 사업장은 가능한 사고발생 시나리오별 구체적인 대응시나리오, 주민 보호조치 등을 포함하는 매뉴얼을 준비하고 평소에 연습을 통해 실제 사고를 대비하여야 한다. 이는 국내 화학회사들도 실질적인 훈련에 더욱 더 노력해야 하는 이유이다.

영국 안전보건청의 중대산업사고예방법에 따르면 사고범위가 공장내부에 머무르는 공장내 비상조치계획은 사업주 스스로, 사고범위가 공장 외부에 미치는 외부 비상조치계획은 지자체가 사업장으로부터 사고시나리오 정보를 받아 작성하도록 하고 있다. 즉 작은 사고는 사업장 스스로 책임지되 큰 사고는 지자체가 주관이 되어 비상대응기관 및 사업장과 함께 비상조치계획을 작성하고 평소에 사고대비 훈련을 실시하는 사례는 우리도 참고할 만하다고 본다.

또한 우리나라의 경우 유해화학물질관리법상 사업장은 사고대비물질 69종에 대해 자체방제계획을 수립하도록 하고 있으나 미국의 경우 140개 물질에 대한 위험관리계획(RMP)을 환경부에 제출하도록 하고 있는데 계획서에는 가상 사고시나리오와 사고의 영향이 미치는 거리 등을 표기하여 실제 사고시 비상대응조직이 활용하도록 하고 있는 것을 참조할 필요가 있다.

2.3 대응

훈련에서 흘리는 땀 한방울은 전쟁에서 흘리는 피 한 방울과 바꿀 수 있다고 했듯이 대응의 성패는 이미 대비 단계에서 결판이 난다고 할 수 있다. 전술한 비행기 사고시 비상상황이 거의 1분 간격으로 전개되므로 매뉴얼을 펴고 참고할 여유도 없을 정도가 대응 상황이 된다. 불산 사고시 대응기관들이 준비상태가 부족하여 피해를 키웠는데 이러한 화학사고를 대응하는 대응기관내에 전문가, 전문 장비 및 평소 훈련이 아쉽다.

2.4 복구

복구단계의 핵심은 빠른 시간내에 공장을 정상화 시키는 것인데 이에 못지 않게 원인을 정확히 밝혀 재발방지 대책을 세우는 것이 중요하다. 사고라는 많은 비용을 들여 얻은 경험을 잘 살려 또 다른 유사사고를 막는 것이 중요하다.

3. 효율적인 화학사고 관리방안

3.1 자율안전관리 시스템 구축

화학공장에는 너무나 다양한 잠재위험이 도사리고 있으며 시간에 따라 이러한 위험이 변화하는 속성을 지닌다. 따라서 기존의 지시적 방식 규제로는 다양한 잠재적 위험의 제거와 사고예방에 한계가 있다.

따라서 자율안전보건경영을 통한 자율적 안전관리 시스템 운영이 필요하다. 이러한 안전보건경영시스템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경영진의 안전리더십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우수 안전 기업을 보면 CEO가 진정으로 안전을 중요시하는 모습을 위험의 가장 접점에 위치하는 작업자들이 마음으로 느낄 때 안전이 확보된다고 한다.

우리나라 SK이노베인션 구자영 회장은 미국의 엑슨 모빌사에서 30년을 근무하면서 안전에 대한 중요성을 경험한 후 4년전 SK에 합류한 후, 안전문제로 회사의 존립이 위태로워질 수 있으며, 훌륭한 안전환경시스템은 하루아침에 만들어 질 수 없다는 말로 SK 전 사업장에 필요한 시스템을 구축하기 시작하였는데 작년의 구미 불산사고로부터 우리는 안전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경험하였다.

3.2 사고 대응 훈련

영국의 경우처럼 사고의 크기가 사업장 밖으로 미치는 경우에는 사업장 자체만의 대응능력를 넘어서게 되어 지자체가 사업장 정보를 받아 비상조치계획을 수립하게 하고 있듯이 우리나라의 경우도 이러한 큰 사고에 대한 비상조치 매뉴얼을 지자체 및 대응관련 전문 기관들이 사업장의 도움을 받아 작성하고 평시 연습을 하는 것이 필요하다. 불산 사고에서 보았듯이 현 실태에서는 비상조치 매뉴얼의 부재 또는 숙지 및 훈련부족, 매뉴얼과 실제 대응은 따로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아 지속적인 현행화가 필요하다.

작년 구미 불산사고의 경우에는 사고 물질에 대한 대응매뉴얼 구비가 되어 있지 않았고, 물질에 대한 적절한 대응방법, 주민철수 및 복귀 등의 절차가 원활히 이루어지지 못했다.

따라서 피해범위가 넓게 퍼지는 불산 누출과 같은 사고는 비상대응 기관들이 사전에 대응방법을 상호 논의하고 훈련을 실시하는 것이 필요하다

3.3. 대응 전문가 조직

화학사고의 특성상 대처하는 방법도 화학물질 별로 차이가 있으므로 화학사고 대응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한 영역이 많다. 물론 초동대응을 책임지고 있는 소방관의 전문성 및 대응장비의 확보가 우선적으로 필요하겠으나 평소에 화학물질 취급 사업장에 대한 비상조치 계획등의 지도를 수행하다가 사고발생시 대응팀에 합류하여 대기 및 수질 오염,특히 하천 오염을 방지하기 위한 확산 방지뚝 설치 등 환경적으로 대응하는 전문가 조직의 활성화가 필요하다.

우리나라의 재난관리조직에 해당하는 미국의 지역비상대응위원회에 경찰서, 소방서, 민방위, 환경전문가, 공중보건, 운송업체등 비상대응과 관련된 전문가가 참여하는 조직을 참고할 만 하다.

우리나라도 금년부터 화학물질 안전원 및 권역별 화학재난 방재센터가 설립되어 부처간 협업 및 장비의 현장출동이 용이해지고 화학물질 사고현장에서 물질의 성분규명과 지방환경청, 지자체등과 함께 주변 주민들의 건강 및 환경영향을 조사하며, 사고현장에 환경측정분석 차량을 비롯해 첨단 화학물질 탐지 분석장비가 운영될 계획이어서 화학사고 관련 전문성이 많이 향상 될 것으로 기대된다.

3.4. 객관적인 사고조사 및 대책수립 방안 마련

대형사고의 경우 그 원인 및 책임의 경계가 불분명하며 기술적인 사고원인 이외에도 규정 및 체계)등 제도적인 요인, 환경적 요인등 많은 요인들이 접목되어 있을 수 있다.

화학사고의 경우 그 원인조사시 여러 부처에서 관리하는 제도가 복합적으로 맞물려 있는 경우가 많아 해당 부처의 조사만으로는 객관적인 분석이 어려울 수가 있다. 따라서 미국의 화학사고조사 위원회(CSB, Chemical Safety and Hazard Investigation Board) 같이 독립적이고 전문성을 보유한 사고조사기관에서 사고조사를 수행하고 이를 토대로 개선될 때 까지 사후관리 하는 시스템이 필요하다. 우리나라의 경우도 어느 부처에도 속하지 않는 별도의 조직을 두고 객관적인 조사 및 후속대책의 이행여부를 감독하는 기능을 갖는 조직설립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4. 사고는 우연히 일어나는 것 아니다

우리나라에 안전사고가 많은 이유를 사회학적으로 분석한 자료를 보면, 첫째는 압축적 근대화 과정에서 안전을 경시하는 풍조가 생겼다는 것이다. 세계 최단기간에 최단기간 고속도로 설치 등 신기록을 세우는 동안에 안전은 성장 분위기 속에 묻혀버렸다는 것이고, 둘째로 사고는 고의가 아니라 우연히 일어나므로 어쩔 수 없는 운명으로 여기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자동차 추돌사고 후 사과보다는 내가 일부러 사고를 냈냐는 등 오히려 목소리를 높이는 사고 유발자를 왕왕 볼 수가 있는 것이 그러한 경우이다.

세 번째, 사고는 나와는 별 관계가 없다는 낙관성에 기인한다고 한다. 사고는 나와 가까운 가족이나 친구에게는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을 주로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화학공장사고예방에 있어서도 이러한 의식을 배제하는 안전문화가 가장 기본적인 밑바탕으로 자리잡지 않으면 근원적인 해결방법을 찾기가 어려워진다

인간을 구성하는 물질의 70%가 물이며, 우리가 걸치고 있는 물품의 70%가 화확제품이라고 하듯이 화학산업은 우리 인류의 번영에 과거에도 그랬듯이 앞으로도 필수불가결한 산업이다. 문제는 이러한 산업의 중요성을 누구나 인정하면서도 우리 가까운 곳에 화학공장이 건설되는 것에는 민감한 반응을 보인다는 것이고, 그 이유의 중심에는 안전의 이슈가 도사리고 있으므로 이의 해결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할 수가 있다.

따라서 이러한 국가를 지탱하는 산업의 영속적인 발전을 위해선 관련 모든 기관, 단체, 화학회사들이 힘을 합쳐서 사고예방 및 사고시 완벽한 대응을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고 하겠다. E21

본 기사는 월간지 <이코노미21> 2월호에 게재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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