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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급과 수요의 가격탄력성과 조세귀착
공급과 수요의 가격탄력성과 조세귀착
  • 윤종인 본지 편집기획위원 / 백석대 교수
  • 승인 2014.04.24 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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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종인 교수의 경제학교실> 세금이 오르고 내린 만큼 그대로 상품가격에 반영되지 않는 이유는?

소비자시민모임의 석유시장감시단은 2013년 1월부터 12월말까지의 휘발유 및 경유시장을 분석한 결과, ‘주유소 판매가격의 절반이 유류세’라고 최근 발표하였다. 휘발유의 경우 유류세는 주유소 판매가격의 평균 49.94%, 리터당 961.36원이었으며, 경유의 경우 유류세는 주유소판매가격의 평균 42.08%, 리터당 727.97원이었다고 한다.

유류세가 높은 것은 우리나라만은 아니다. 대기오염이 초래하는 외부불경제를 줄이기 위하여 각국은 높은 수준의 유류세를 부과하고 있다. 그건 그렇다 치고, 이렇게 많은 유류세는 누가 부담하는 것일까? 아마도 대부분의 독자들은 당연히 소비자가 부담한다고 답할 것이다. 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유류세는 수요자뿐만 아니라 공급자도 부담한다.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이것이 바로 조세귀착(tax incidence)의 문제이다.

조세귀착이란

조세귀착은 실제로 누가 조세를 부담하는가의 문제이다. 수요자가 조세를 부담한다면 수요자에게 조세가 귀착되고, 공급자가 조세를 부담한다면 공급자에게 조세가 귀착된다고 말한다. 많은 사람들은 석유류를 구매할 때 ‘수요자가 전적으로’ 유류세를 부담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높은 유류세는 수요자에게만 부담이 되고, 유류세 인하의 혜택은 전적으로 수요자에게 돌아가리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건 잘못된 생각이다.

이러한 오해가 널리 퍼져 있는 것은 법률용어 탓이기도 하다. 법률용어로 담세자와 납세자라는 것이 있다. 간단하게 말하면, 담세자는 조세를 부담하는 사람이고 납세자는 조세당국에 조세를 납부하는 사람이다. 이런 용어법에 따르면 담세자는 돈을 내는 수요자와 동일시되고 수요자만이 조세를 부담하는 것처럼 생각하게 만든다.

실제로는 수요자만이 아니라 공급자도 유류세를 부담한다. 그 이유는 의외로 간단하다. 유류세가 없을 때 리터당 휘발유가격이 1,000원이었다고 하자. 그런데 리터당 500원의 유류세가 부과되었다. 그렇다면 공급자는 리터당 얼마에 휘발유를 팔 수 있을까? 유류세가 500원 추가되었으니 1,500원에 팔아야 하지 않을까? 그렇다면 유류세 500원은 전적으로 수요자가 부담하는 셈이다. 하지만 이건 현실세계에서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왜 조세귀착이 발생하는가

휘발유가격이 1,000원이고 유류세가 500원 부과된다면 휘발유가격은 상승하게 될 것이 분명하다. 중요한 것은 휘발유가격의 인상폭은 최소 0원~최대 500원 사이에 있다는 점이다.

이해를 돕기 위해 세 가지 가능한 시나리오를 생각해 보자. 첫째는 공급자의 힘이 대단히 강한 경우이다. 이 경우 휘발유가격은 최대 1,500원까지 올라갈 것이다. 그렇다면 유류세 500원은 전적으로 수요자가 부담한다.

둘째는 수요자의 힘이 대단히 강한 경우이다. 이 경우 휘발유가격은 전혀 올라가지 않는다. 그렇다면 유류세 500원은 전적으로 공급자가 부담한다. 셋째는 그 중간의 경우이다. 예를 들어 휘발유가격이 1,300원으로 상승하였다고 하자. 그렇다면 수요자는 300원의 유류세만을 부담하게 되고 나머지 200원은 공급자가 부담하게 된다.

▲ 유류세는 수요자뿐만 아니라 공급자도 부담한다.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이것이 바로 조세귀착(tax incidence)의 문제이다.
사람들은 수요자가 유류세를 모두 부담한다고 생각하는데 그것은 첫째 시나리오처럼 된다고 생각하는 셈이다. 하지만 첫째 시나리오가 이상한 것은 둘째 시나리오가 이상한 것만큼이나 이상하다. 공급자가 유류세를 모두 부담한다고 말하면 이상하지 않은가?

첫째 시나리오와 둘째 시나리오는 극단적인 예임에 틀림없다. 현실에서 휘발유가격은 1,000원과 1,500원의 중간 어느 수준에서인가 결정될 것이다. 예로 든 바와 같이 휘발유가격이 1,300원으로 결정된다면 수요자에게는 300원의 유류세가 귀착되고 나머지 200원의 유류세는 공급자에게 귀착된다. 조세귀착은 이와 같이 발생한다.

조세귀착이 발생하는 이유는 근본적으로 ‘수요의 법칙’에 있다. 즉 가격이 상승하면 수요량이 감소하기 때문이다. 500원의 유류세가 부과되었을 때 공급자는 1,500원으로 가격을 올리고 싶지만 가격을 올릴수록 수요량이 감소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1,000원보다는 높겠지만) 1,500원보다는 낮은 가격까지 가격을 인상할 수 밖에 없다. 물론 가격을 인상한 만큼 수요자에게 유류세를 전가할 수 있다. 하지만 그 나머지는 공급자가 떠안을 수 밖에 없다.

이즈음 되면 수요의 법칙이 틀렸다고 반박하는 사람이 나올 법하다. 그리고 그 예로 언젠가 들어본 적이 있는 기펜재(Giffen goods)를 근거로 들 것이다. 기펜재는 가격이 상승해도 수요량이 감소하지 않는 재화를 말한다. 기펜재는 수요의 법칙이 성립하지 않는 예외로 간주된다.

기펜재가 현실에서 존재하는지는 의심스럽다. 기펜재는 19세기 영국의 경제학자 로버트 기펜(Robert Giffen)이 아일랜드 대기근 당시 감자시장을 연구하면서 제시한 개념이었다. 물론 영국의 대경제학자인 알프레드 마샬(Alfred Marshall)이 설명한 바와 같이 기펜재는 얼마든지 이론적으로 가능한 개념이다.

하지만 1984년 제럴드 드와이어(Gerald P. Dwyer)와 코튼 린드시(Cotton M. Lindsey)는 “Robert Giffen and the Irish Potato”라는 논문에서 아일랜드 대기근 당시의 감자도 기펜재가 아니었다는 결론을 내렸다. 실제로 기펜재는 존재하지 않는다.

누가 더 많은 조세를 부담하는가

수요자와 공급자가 나누어 조세를 부담한다면, 그 다음에 궁금한 질문은 당연하다. 누가 더 많이 부담하는가? 앞에서 공급자의 힘이 강하다면 수요자가 더 많은 조세를 부담하고, 수요자의 힘이 강하다면 공급자가 더 많은 조세를 부담한다고 말한 바 있다.

이를 조세귀착의 첫째 명제라 부르기로 하고, 보다 엄밀하게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공급의 가격탄력성이 수요의 가격탄력성보다 크면 수요자가 더 많은 조세를 부담하고, 반대로 수요의 가격탄력성이 공급의 가격탄력성보다 크면 공급자가 더 많은 조세를 부담한다.

석유시장의 경우에는 수요자와 공급자 중 누가 더 많은 조세를 부담하게 될까?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석유시장에서 수요의 가격탄력성과 공급의 가격탄력성 중 어느 것이 더 큰가에 달려 있다.

국내 여러 연구에 따르면 석유수요의 가격탄력성은 대략 0.167~0.209이라고 한다. 이 정도이면 석유수요의 가격탄력성은 작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석유의 경우 공급자보다는 수요자가 더 많은 조세를 부담하고 있을 것이다. 우리의 상식과 크게 다르지는 않은데, 그래도 주의할 것은 석유공급자도 적더라도 조세를 나누어 부담한다는 사실이다.

왜 골프장이용료는 그렇게 조금 하락하였을까?조세귀착을 알고 나면 경제현상 중 많은 것을 이해할 수 있다. 조세가 500원 부과되더라도 가격상승폭은 500원보다 적다는 사실을 명심하기로 하자. 그렇다면 다음과 같은 사실도 명확하다.

조세를 500원 인하하더라도 가격하락폭은 500원보다 적다. 물론 그 이유는 유류세 500원을 부과할 때 가격상승폭이 500원보다 적었던 것과 같다.

2002년 당시 재정경제부는 제주도 골프장 이용료에 붙는 특별소비세 등 국세와 각종 부담금 등의 면제조치를 취하였다. 이에 따라 제주도 골프장 그린피가 4만~5만원 가량 하락하리라고 예상했던 모양이다. 하지만 제주도 골프장 그린피는 평균 2만원 가량 하락했을 뿐이었다. 이상하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조세귀착에 따르면 당연하다. 특별소비세와 부담금을 4만~5만원 가량 낮추라도 그린피의 하락폭은 그것보다 적을 수 밖에 없다.

조세귀착의 두 번째 중요한 명제는 다음과 같다. 납세의무가 공급자에게 있거나 또는 수요자에게 있거나 상관없이 조세귀착의 결과는 같다.

앞의 예로 돌아가 보자. 유류세가 500원 부과될 때 300원의유류세가 수요자에게 귀착되고 나머지 200원의 유류세는 공급자에게 귀착되었다고 하자. 그런데 이 결과는 납세의무가 공급자에게 있거나 또는 수요자에게 있거나 상관없이 같다는 것이다. 즉 납세의무가 공급자에게 있더라도 수요자에게는 300원, 공급자에게는 200원의 유류세가 귀착된다. 또한 납세의무가 수요자에게 있더라도 수요자에게는 300원, 공급자에게는 200원의 유류세가 귀착된다.

우리나라의 부가가치세(value-added tax)는 대표적인 간접세이고 세입의 약 1/3을 차지한다. 미국에서는 판매세(sales tax)라고 부르고 일본에서는 소비세(consumption tax)라고 부르는데, 판매세는 공급자가 납세의무를 지고 소비세는 수요자가 납세의무를 진다고 생각하면 쉽다.

1978년 우리나라에 도입된 부가가치세는 판매세와 소비세가 결합된 형태라고 볼 수 있는데, 조지프 스티글리츠(Joseph Stiglitz)는 판매세나 소비세보다 좋은 제도라고 말한다. 하지만 둘째 명제에 따르면 판매세, 소비세, 부가가치세의 조세귀착은 본질적으로 같다.

백화점 매장인테리어비용

조세귀착의 둘째 명제를 적용하여 이해할 수 있는 예를 하나 소개한다. 2013년 공정거래위원회는 대형유통업체와 입점업체간 표준계약서를 개정하였다. 이에 따라 백화점이나 대형마트가 매장인테리어 비용을 입점업체에 떠넘기는 행위는 부당행위로 금지되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백화점 입점업체의 인테리어비용 부담이 평균 2,400만원 감소할 것으로 추정했다.

하지만 정말로 그럴까? 인테리어비용을 조세와 비슷한 것으로 간주하면 다음과 같은 사실을 알 수 있다. 첫째 명제에 따르면 누가 더 많은 인테리어비용을 부담하는가는 백화점(공급자)과 입점업체(수요자)의 가격탄력성 중 어느 것이 큰가에 달려 있다. 백화점의 가격탄력성이 입점업체의 가격탄력성보다 크다면 입점업체가 더 많이 부담할 것이고, 그 반대의 경우라면 백화점이 더 많이 부담할 것이다.

둘째 명제에 따르면 인테리어비용의 분담은 그 책임을 백화점에 부과하든 또는 입점업체 부과하든 상관없이 같다. 쉽게 말해 인테리어비용의 부담책임을 입점업체가 아니라 백화점에 부과한다고 해서 입점업체의 부담이 줄어드는 것은 아니라는 뜻이다. 즉 (가격탄력성이 달라지지 않는 이상) 입점업체의 부담에는 변화가 없으며 공정거래위원회의 조치는 아무리 의도가 좋더라도 입점업체의 부담을 줄여주지 못하는 정책이다. E21

본 기사는 월간지 <이코노미21> 2월호에 게재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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