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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안전법, 대륙법과 영미법 부조화
산업안전법, 대륙법과 영미법 부조화
  • 강성규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 서울지역본부 본부장
  • 승인 2014.05.14 03:1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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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안전특집 7> 현장 재해가 개선없이 반복되는 이유는 법규정과 적용의 부조화 때문…싱가포르와 교통안전분야 사례 검토필요

1. 40명의 사망자를 낸 2008년 이천 냉동창고 화재사건에 대해 사업주 와 공장장 등 관련자가 구속됐다. 재판에서 공장장에게 징역 10월에 집행유예 2년, 사업주에게 벌금 2,000만원이 선고됐다. 또한 심장질환으로 7명의 근로자가 집단 사망했던 대전의 타이어공장에 대한 재판에서 공장장에 대해 징역 8월에 집행유예 2년 벌금 300만원, 법인에 대해 벌금 1,000만원이 부과됐다. 법인에 대한 벌금은 상급심에서 무죄로 선고됐다.

2. 대검찰청 범죄분석 자료에 의하면 2007년에 사망사고가 발생한 산재 959건에 대해 4건을 구속하고 728건을 불구속 처리했다. 758건에 대해 행정조치가 있었는데, 364건은 작업 중지, 41건은 사용 중지, 160건은 과태료 부과, 193건은 시정 지시였다.

위의 산재 사고에 대한 사법처리 결과를 보면 의문이 생길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에서는 근로자가 사망한 사고에 대해 사법조치를 하지만 법적으로 사업주가 책임지는 사건은 거의 없다.

솜방망이 처벌

대부분의 사고가 근로자의 부주의로 인해 발생했다는 이유로 사업주는 불기소되거나 경미한 형벌을 받는다. 그런데 산재 사망사고가 우리나라의 1/10 수준인 영국에서는 산재 사망사고의 95%는 사업주의 잘못으로 판결되어 사법 처리를 받는다. 그렇다면 한국의 사고는 사업주는 안전조치를 잘 하는데 근로자가 부주의해서 발생하는 것이고, 영국의 사고는 사업주는 안전조치를 제대로 하지 못하는데 근로자가 조심해서 발생하지 않는 것인가? 아니면 산재 사고를 일으킨 사업주에 대한 한국의 처벌 규정이 약한가? 또는 검찰에서 봐주거나(다수의 불기소처분) 법원에서 온정적 판결(사업주에 대해)을 내려서 처벌이 약한가? 많은 전문가들은 우리나라 산업안전보건법의 벌칙 규정이 너무 약해서 그렇다고 생각한다. 처벌이 약해서 사업주가 산재에 대한 관심이 없고, 예방에도 신경을 쓰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산업안전보건법 위반에 대한 우리나라 처벌 규정은 외국에 비해 결코 약하지 않다. 한국의 최고형은 징역 7년 이하 또는 1억 원 이하의 벌금이지만, 미국은 최고형이 징역 1년 이하 또는 2,200만 원 이하의 벌금이니 오히려 한국이 더 강력한 처벌 규정을 갖고 있다.

그러면 무엇 때문에 한국에서 산재를 일으킨 사업주에 대한 처벌이 약해지는 것일까? 검찰은 법규에 근거해서 기소를 하고 법원은 법령에 근거해서 판결을 한다. 산재 사고에 대해 불기소 처분이 많거나 무혐의 판결이 많은 이유는 사고의 원인이 복잡하여 사업주의 잘못에 딱 맞는 법적 근거를 찾을 수 없기 때문이다. 기술 발달에 따라 복합적인 원인에 의해 발생하는 산재사고에서 원인에 딱 맞는 법령 조항을 찾는 것은 원천적으로 불가능할 지도 모른다.

지킬 수 없는 법

1. 여수의 한 화학공장에서 폭발사고가 나서 6명이 사망하고 11명이 부상을 입었다. 사고 후 사업장에 대한 특별감독에서 1,002건의 산업안전보건법 위반사항이 적발됐다. 이 중 442건이 사법처리됐고, 784건은 시정명령, 15건은 사용중지 명령이 내려졌다. 또한 508건에 대해 8억 3740만 원의 과태료가 부과됐고 145건은 권고가 내려졌다.

2. 모 전자업체에서 불산 누출사고가 발생해 한 명의 근로자가 사망하고 4명이 부상을 입었다. 사고 후 실시된 특별감독에서 1,934건의 산업 안전보건법 위반 사항이 적발됐다. 이 중 712건이 사법처리됐고, 1,904건에 대해 시정명령이, 101건에 대해 사용중지 명령이 내려졌다. 143건에 대해 과태료 2억 5천만 원을 부과됐고, 839건에 권고가 내려졌다.

사회적 주목을 받는 산재 사고가 발생하면 종종 특별감독을 하는데, 감독 결과를 보면 다음과 같은 의구심이 든다.

산업안전보건법 위반사항으로 1,000건 이상이 지적되어 행정조치를 받았는데, 과연 이것을 지켰으면 사고가 나지 않았을까? 1,000여건의 지적 중에 사고와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것은 몇 개나 될까? 아마 지적 사항의 거의 대부분은 사고와 직접적인 관계가 없는 것이니 이를 지켰다 하더라도 사고는 예방되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왜 사고 후 감독에서 사고와 직접 관련사항이 없는 사항이 적발되어 사건의 본질(사고의 원인)이 흐려지게 되는 걸까? 사고에 대한 사회적 비난 때문에 사고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사항까지 끄집어내는 것은 아닐까?

특별감독에서 한 사업장에서 천 건이 넘는 위반사항이 발견됐는데 그렇다면 동종의 다른 사업장은 위반사항이 없었는가? 만일 다른 사업장에는 이러한 위반사항이 없다면 이 사업장은 다른 모든 사업장이 잘 지키는 법규를 수천 개나 제대로 지키지 않아 근로자를 사망에 이르게 한 사업장이므로 강력한 사법적 조치는 물론 사회적 비난을 받아야 할 것이다. 아울러 평소에 이렇게 위반사항이 많은 사업장을 방치한 행정기관도 책임을 면키 어려울 것이다.

▲ 포항제철소는 2013년 11월 12일 제철소 내 산업현장에서 근로자들의 재해예방 의지를 확고히 하기 위한 ‘안전 다지기’ 행사를 개최했다. 사진은 이날 행사에 참석한 대표자들이 결의문을 낭독하고 있다. 제공= 포스코/뉴시스
그런데 만일 다른 사업장도 비슷한 정도의 위반사항이 있다면 이는 산업안전보건법의 규정이 과도하여 누구나 걸면 걸리는 법규이기 때문은 아닐까? 혹자는 우리나라에서는 지킬 수 없는 법을 만들고, 평소에는 법을 지키지 않는 것을 방관하다가 문제가 터지면 법을 들이대어 처벌한다고 불평한다. 법을 만들었으면 지키게 해야 하고 지킬 필요가 없다면 폐지해야 한다. 아무리 노력해도 지키기 어렵게 법이 복잡하다면 사람들은 최소한의 법 준수도 포기하는 경향이 있다.

어처구니없는 사고는 가장 기본적인 법 준수를 소홀히 해서 발생하는 것이다. 불가피한 사고에 대해서는 과감히 처벌을 지양하고 잘 알려진 사실에 대한 위반에 대해서만 처벌을 해야 한다. 사고를 유발한 본질을 지적하지 않으면 처벌에 대한 수용성이 떨어지게 되기 때문이다.

결과가 좋아야 하는 영미법과 과정을 중시하는 대륙법

산재사고와 처리에 대해 박근혜 대통령도 지적했듯이 우리는 산재 사고가 나면 감독을 하고 수천 건의 위반사항을 지적하지만, 사고 처리가 끝나고 나면 사업장은 특별한 개선이 없이 지내다가 비슷한 사건이 재발하는 사회적 구조를 가지고 있다.

왜 그럴까? 이는 법체계와 국민의 사고 처리에 대한 인식이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 우리나라 법체계와 산업안전보건법이 어떠한 구조인지를 살펴봐야 한다.

세계 각국의 법률은 크게 세 개의 법체계로 구분할 수 있다. 다민족으로 구성된 로마시대에 시민으로서 지켜야 할 상황을 법률로 규정한 로마법(시민법)에서 유래해서 독일에서 완성된 대륙법과 법률에 규정하지 않더라도 관습과 판례를 중시하고 시민의 상식적 판단에 근거한 영미법(관습적인 상식법)과 사회주의법이다. 대부분의 국가가 대륙법이나 영미법에 기초한 법체계를 가지고 있는데, 부분적으로 융합된 것도 있지만 근간은 이 두 개의 법 이론에 기초하고 있다.

영미법과 대륙법 체계의 가장 큰 차이는 결과를 보느냐, 과정을 보느냐에 있다. 영미법은 다른 말로 관습적인 상식법이라고 이야기하듯이 평균 시민의 관습적이고 합리적인 상식에 벗어나지 않아야 한다. 사고의 예방을 위한 과정은 자유롭게 선택하되 사고가 발생하면 그 결과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 사고를 예방하기 위해 취했던 과정이 합리적 상식에서 벗어나지 않아야 한다.

만일 이미 잘 알려진 위험에 대해서도 상식적인 조치를 하지 않아 사고가 발생했다면 감당할 수 없는 정도의 법적 제제를 받는다. 법률에 적혀 있지 않더라도 피해자에게 수십억 원을 배상하도록 판결하는 징벌적 배상주의가 근간에 있다. 비록 법규에 지켜야 할 자세한 규정이 없더라도 사업주는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 합리적인 상식에 맞는 예방조치를 다해야 한다. 규정에 없더라도 결과가 나쁘면 법적 제재를 피해나갈 방법이 없다.

한국의 산업안전보건법은 대륙법과 유사

대륙법은 시민법에서 출발한 것처럼 서로 다른 배경을 가진 시민들이 지켜야 할 것을 규정으로 정해 놓는다. 정해진 규정을 지켜야 한다. 규정만 잘 지키면(과정을 잘 관리하면) 사고를 예방할 수 있다는 전제가 있기 때문이다. 규정을 잘 지키면 설사 그 결과가 나쁘더라도 큰 책임을 묻지 않는다. 결과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충실하게 지키도록 하는 것이기 때문에 한두 가지 위반 사항에 대해 처벌을 강력하게 할 수 없다. 대신 여러 단계에서 위반사항에 대해 반복적인 제재를 가한다. 사고 예방에 불필요한 것이라고 생각해도 규정이 있으면 지켜야 한다.

결과에 상관없이 규정을 준수하지 않으면 법적 제재를 받는다. 역으로 결과가 나쁘더라도 규정을 준수했다면 법적 제재를 가할 수 없다. 이것이 산재사고에 대한 법적 조치가 미흡하게 보이는 이유이다. 과정을 관리하도록 만들어진 법체계를 가지고 결과에 대해 책임을 물으려고 하니 법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것이다.

영미법은 영국과 미국을 비롯한 캐나다 호주 등 영연방계의 나라나 싱가포르, 말레이시아처럼 영국의 지배를 받았던 나라에서 채택하고 있고, 대륙법은 독일과 프랑스를 중심으로 해서 이탈리아 등 유럽국가와 일본이 채택하고 있다. 대부분의 법률을 일본의 것을 차용한 한국과 대만의 법체계도 이에 속한다. 특히 우리의「산업안전보건법」은 일본의「산업안전보건법」(「노동안전위생법」)을 근거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대륙법과 유사하다.

한국의 법체계는 대륙법에 기초한 일본법을 차용했는데, 법률을 운용하는 전문가나 행정가들은 대부분 미국에서 공부하여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미국식 법률형태 즉 영미법의 정서에 익숙해져 있다. 아울러 정책담당자들이 외국의 제도를 조사할 때도 언어장벽 때문에 대륙법 체계인 비영어권인 국가보다는 영미법 체계인 영어권의 국가를 방문하는 것을 선호한다.

그래서 새로운 정책을 도입할 때 생각은 자본가 중심의 미국적 사고에 기반하고 심정적으로는 근로자 중심의 유럽의 제도를 지향하여, 이들의 제도를 규정 중심의 한국법 체계에 도입하기 때문에 제도의 혼선이 오는 경우가 나타나고 있다. 결과적으로 제도의 취지는 좋으나 법적 체계와 일치하지 않아 현장에서는 실제로 잘 작동되지 않는 것이다.

결국 대통령이 지적한 사고처리 과정이 개선없이 반복되는 이유는 자명하다. 과정을 관리하도록 만든 산업안전보건법 즉 대륙법 체계를 가진 한국의 법률체계에서, 결과에 대해 일벌백계를 요구하는 ‘국민정서법’(영미법의 정서와 유사)에 부응하기 위해, ‘과정관리법’(대륙법)으로 결과를 다스리려고 하는 방식(사법조치 또는 행정 처분)의 부조화가 이뤄낸 결과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나? 바람직한 감독 방향

우리나라의 법률체계를 바꾸던지 아니면 법률체계에 맞게 행정(감독)을 펴야 한다. 그런데 법률체계를 바꾸는 것은 쉽지 않다. 산업안전보건법만 바꾸어서 되는 것이 아니고, 관련 다른 법과 법체계의 기초를 제공하는 헌법을 바꿔야하기 때문이다.

법률은 헌법에 기초하고 있고 헌법에 기초하지 않은 법률은 제정이 되더라도 위헌이 된다. 헌법에 의하면 모든 국민은 법률에 의해서 범죄를 구성하지 않는 행위에 대해 처벌받지 않는다는 죄형법정주의를 채택하고 있다. 국민이 지켜야 하거나 하지 말아야 하는 사항에 대해서는 법률로 규정해 놓고 그 법률규정을 위반해야 처벌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하위 법규에 위임을 하더라도 구체적으로 적시해야 하고 포괄적인 위임은 할 수 없다. 사고가 발생했을 때 그 결과에 대해 책임을 물으려면 관련된 사항이 법규에 있어야 하는데, 산업안전보건과 같은 전문분야에서는 상황에 딱 맞는 규정을 모두 법규에 기술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당연히 우리 법체계로는 결과에 대한 처벌이 제대로 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과정을 중시하는 법체계의 정신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국민정서법’이 사고 결과에 대한 일벌백계를 원한다 하더라도,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결과에 대한 조치’보다는 그 결과를 유발한 ‘원인에 대한 과정관리’가 필요한 것이다. 사고의 진정한 원인이 무엇인지 확인하고 그 원인을 예방하는 규정을 충실히 지키도록 해야 하는 것이다. 사고를 교훈 삼아 사고가 나지 않은 사업장에 대해 관련 규정을 제대로 지키도록 감독하고 처벌해야 반복되는 사고를 예방할 수 있는 것이다.

안전보건경영시스템과 위험성평가

대륙법 체계는 규정이 있어 해야 할 일을 명확히 알기 때문에 누구나 쉽게 따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산업안전보건처럼 새로운 지식과 기술이 끝없이 도입되는 분야에서는 규정이 현실을 따라갈 수 없다. 그리고 적시에 새로운 규정을 만들더라도 지켜야 할 규정이 너무 많고 사업장마다 여건이 다르므로 어디서 무엇부터 시작해야 할지 모르게 된다. 이런 측면에서는 결과에 중점을 두고 과정을 선택할 수 있는 영미법 체계가 산업안전보건에는 더 적합할 수도 있다.

영미법의 정신에 근간을 둔 것이 자율안전을 강조하는 안전보건경영시스템(KOSHA 18001)이나 위험성평가이다. 안전보건경영시스템은 사업장 스스로 안전보건 계획을 세워 문서화하고 이를 지켜가는 사업장을 안전보건공단이 인증해 줌으로써 자율안전관리를 유도하는 제도이다. 위험성 평가는 2013년에 처음 도입되어 사업장 스스로 위험요소를 찾아 개선하도록 하는 자율안전관리제도이다.

안전보건경영시스템이나 위험성평가나 자율안전관리를 기본으로 하는 것이기 때문에 제도의 설계는 결과에 책임을 묻는 대신에 과정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런데 현행 제도는 기존의 규정을 모두 준수하고 이에 더불어 자율안전관리를 하도록 설계되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자율안전관리를 아무리 잘 하더라도 특별감독을 하면 기존의 안전보건관리 위반수항이 수없이 지적되는 것이다. 영미법의 정신의 제도를 들여오면서 대륙법 체제의 근간을 바꾸지 않아, 제도의 취지는 좋지만 현실성은 없게 된 것이다.

대륙법 체계인 유럽국가에서는 EU에 위험성평가 제도를 도입하면서 기존의 안전보건규정을 대폭 삭제해서 그런대로 잘 운용되고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자율안전보건 체제로 법과 제도를 바꾸는데 두 가지의 걸림돌이 있다. 하나는 노동계의 반발이고 다른 하나는 위헌의 소지이다. 자율안전관리를 하기 위해 기존의 규정을 대폭 삭제 또는 유예한다고 하면 사업주는 환영하고 노동계는 크게 반발할 것이다.

그래도 자율안전보건관리를 통해 결과에 책임을 물으려고 하면 노동계를 설득해서 기존의 규정을 대폭 줄여야 한다. 자율안전보건관리를 하도록 하고 결과에 대한 책임을 물으려고 하면 법에 포괄적인 위임이 되어야 하는데, 우리 헌법은 포괄위임을 금지하고 있어 이를 극복하기 위한 법적인 검토도 반드시 필요하다. 이 두 가지 걸림돌을 극복해야만 우리나라에서 진정한 자율안전보건관리가 정착될 수 있다.

산업안전보건 분야에서 선진국이 된 싱가포르의 교훈

한때 싱가포르는 한국과 함께 아시아의 네 마리 용에 속했었다. 그런데 오늘날 싱가포르는 경제규모는 우리나라보다 작지만 1인당 국민소득은 5만 달러를 넘는 선진국이 됐다.

그런데 싱가포르는 경제뿐 아니라 산업안전보건 분야에서도 선진국이 됐다. 2004년에 싱가포르의 사망사고 십만인율이 4.9였다. 2015년에 사망사고 십만인율을 2.5로 낮추는 것을 목표로 정하고 2005년에 산업안전보건법을 열거형 규제방식에서 포괄형 규제방식인 위험성평가로 바꿨다. 결과적으로 사망사고 십만인율은 2008년에 2.9로 낮아졌다(2005년부터 2008년까지 한국의 업무상사고 십만인율은 12.6에서 10.7로 감소하였고, 2012년에 7.3이었다).

2010년에 만난 싱가포르의 산업안전보건국장은 이런 성과가 법을 규제형에서 자율형으로 바꿔서 얻은 것이라고 했지만, 자세히 들어보니 다음과 같은 차이점 때문인 것 같다.

첫째, 감독관 수가 다르다. 일반적으로 자율형 법률을 유지하는 나라는 감독관 수가 많다. 싱가포르의 근로자 수는 우리나라의 1/5 정도이지만, 감독관의 수는 우리나라와 비슷하다. 결국 우리나라보다 감독관 수가 5배 정도에 이르고 있다.

둘째, 감독의 강도가 다르다. 싱가포르에는 한국 건설회사가 많이 진출하고 있다. 한국에서 사망사고를 많이 내는 회사도 싱가포르에서는 사고를 내지 않는다. 이 이유에 대한 현지 한국인 직원의 설명은 명쾌했다. 한국에서는 있는 법을 다 지키지 않지만 ‘싱가포르에서는 일단 법에 나온 규정을 다 지키고, 추가로 안전조치를 더한다’는 것이었다. 그렇지 않으면 강력한 행정조치를 받는다고 한다.

셋째, 행정조치의 강도가 다르다. 앞서 언급한 대로 우리나라의 법률체계 때문에 우리나라의 벌금은 아무리 많이 부과해도 그다지 크지 않다. 그러나 싱가포르의 법률체계는 높은 벌금을 부과할 수 있고, 실제로 고의성 과실에 의한 사고에 대해서는 아주 높은 벌금을 부과한다고 한다.

마지막으로 일관된 정책이다. 싱가포르 산업안전보건국장은 2005년에 취임해서 8년째 같은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계획과 실행을 같은 기조에서 수행하고 평가하므로 책임행정이 가능한 것이다.

향후 발전을 위한 제언

오늘도 산재사고는 계속 발생하고 있다. 사고가 발생한 사업장에 대해서는 이러저러한 감독을 받게 되고 수천 건의 위반사항이 지적되고 행정처분을 받는다. 그러나 비슷한 유형의 산재사고는 반복되고 있다.

그러면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은가? 대륙법 체계에 충실해 행정을 펴는 교통안전분야가 좋은 예인 것 같다. 교통사고가 나면 특별한 고의성이 없는 한 보험으로 처리하고 사고에 대한 책임이 결과에 비해 과하지 않다. 대신 교통사고를 유발한 원인을 분석하여 단속에 활용하고 사고가 없더라도 위반에 대해 제재를 가한다. 결과보다는 과정을 관리하는 것이다.

이에 비해 산업안전보건 분야는 상대적으로 과정관리가 미흡하다. 사고가 발생한 사업장에 대해 결과에 대한 책임을 물으려고 하지만, 결국 법원에 가면 사업주가 큰 책임을 지지 않는다. 우리 법체계에 충실하기 위해서는 이미 발생한 산재사고에 대해 특별감독을 해서 사고 원인과 무관한 위반에 대해 수천 건의 처분을 하는 것 보다는, 사고를 유발한 핵심 위반 사항을 제대로 파악하여 동종 업종이 규정대로 지키도록 감독하는 것에 힘을 기울여야 한다. 규정이 없다면 새로운 규정을 빨리 만들어야 한다.

모든 규정을 다 감독할 필요는 없다. 제한된 감독 인력으로 그렇게 할 수도 없다.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 중대한 사고, 다발 사고의 원인이 되는 규정을 우선 준수하도록 하면 된다. 사고 여부와 관계없이 정해진 규정을 지키지 않는 사업장에 대해서는 위반사항이 수정될 때까지 지속적인 감독을 해야 한다. 사고가 발생한 사업장을 벌하기 위해 사고와 무관한 사항을 찾아내는데 아까운 인력을 투입하는 것은 현명한 일이 아니다.

그렇다고 법체계 때문에 수없는 규정을 새로 만들고 이를 모두 지키도록 하는 것도 현대적 감각에 맞는 행정은 아니다.

사업장이 산재 예방을 자율적으로 하는 방법을 선택할 수 있게 해야 한다. 안전보건경영시스템을 도입하거나 위험성 평가가 그것이다. 대신 이 때는 관련 규정을 대폭 유예해 주어야 한다. 법에서 지켜야 할 사항을 일일이 제시하는 대신에 사업장 스스로 필요한 사항을 정해 지키도록 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안전보건경영시스템을 도입하거나 위험성 평가를 한 경우에는 법규에 나온 규정을 미준수했다는 이유로 행정처분을 하지 말아야 한다.

과정은 자율에 맡기고 결과에 책임지도록 해야 한다. 자율 안전관리를 하고 사고가 났을 경우에는 사업주 스스로 ‘사고를 예방하기 위한 합리적인 예방조치를 했음에도 사고는 불가피하게 났다’는 것을 입증하도록 해야 한다. 입증을 하지 못하는 경우에는 자동적으로 사법처리가 되도록, 헌법의 정신을 훼손하지 않고 산안법을 개정하는 것이 전제되어야 한다.E21

본 기사는 월간지 <이코노미21> 2월호에 게재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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