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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세대 위해 복지자원 배분 정책 필요
미래세대 위해 복지자원 배분 정책 필요
  • 윤희숙 한국개발연구원 재정 복지연구부 연구위원
  • 승인 2014.05.15 22:1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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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대간 갈등에 대한 관심이 높다.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진행되는 고령화 속에서 노인에 대한 지원을 늘려야 할 필요성이 활발히 제기되는 한켠에서는, 고령편향 정책 속에서 젊은 세대가 피해를 보고 있다는 불만 섞인 진단도 나오고 있다.

자원의 한계와 세대갈등

자원이 한정되어 있는 가운데, 한 세대에 향하는 지원을 늘릴 경우 다른 세대가 피해를 보는 것은 일견 당연해보인다. 자원의 양이 한정되어 있는 정도가 분명할수록 더 그렇다. 지구라는 자연자원의 한계가 뚜렷한 이상, 현 세대가 개발을 통해 이익을 취할 때 훼손된 환경으로 인한 피해는 주로 미래세대에게 전가된다.

우리나라 국민연금 보험료와 급여 수준 역시 전형적인 세대 갈등 이슈이다. 현재와 같은 구조가 지속될 경우 적립금이 2060년경에 고갈되고, 미래 세대는 지금보다 2~3배의 보험료를 더 부담해야 한다. 이렇게 보면, 앞 세대는 일종의 ‘먹튀’세대가 되고 후 세대는 그 뒷 감당을 책임지는 만큼, 세대간 이해 배분을 명시적으로 구분한 의사결정이 매우 중요하다.

그런데, 이렇게 자원의 한계가 명확한 정책영역이 존재하는 반면, 그렇지 않은 경우들도 존재한다. 예를 들어, 어린 세대에 대한 교육투자를 내실화해 우수한 인력을 키워냈을 경우, 단기적으로는 한정된 국가재원을 뒷 세대에 사용하는 것이지만 장기적으로는 이들의 우수한 인적자원이 앞 세대를 먹여살릴 뿐 아니라 전체에게 가용한 자원의 총량을 비약적으로 증가시킬 수 있다. 넉넉지 않은 스티브 잡스의 부모가 비싼 사립대학 등록금을 부담한 것은 세대간 계정상 부모에게 크게 불리한 결정이지만, 스티브 잡스가 훗날 애플사를 세워 막대한 부를 창출한 것까지 고려하면 전 세대의 복지를 증가시킨 결정이었다.

제로섬 관계만이 아닌 윈윈관계 세대간 이해 필요

결국 세대간 이해를 바라보는 시각에도 균형이 필요하다. 세대간 관계는 제로섬으로만 이루어진 관계가 아니다. 물론 환경문제나 재정배분 등에서 제로섬적 성격이 강한 부분이 상당부분 존재하는 것이 사실이나 이 문제들만 강조될 경우 더 큰 차원의 세대간 이해를 놓칠 위험이 커진다. 그것은 모든 세대가 각자의 잠재력을 펼칠 수 있도록 사회구조를 마련함으로써 전체 사회의 파이를 키울 수 있다는 점이다. 즉, 제로섬이 아니라 윈윈이 가능한 분야들 또한 광범위하게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세대간 윈윈을 가능하게 하는 많은 영역들은 그 수익이 장기간에 걸쳐 나타난다는 공통점을 갖는다. 단견으로 접근할 경우 제대로 그 중요성을 인지하지 못할 위험이 큰 것이다. 그런 만큼, 전체 사회가 나아가는 방향을 긴 호흡으로 이해하고 궁극적인 지향을 분명히 하면서 길을 깔아가는 것이 필요하다. 주요한 정책결정자들이 그 소명을 다하지 못할 경우 윈윈의 관계는 단기적 제로섬으로 귀결될 뿐 아니라 사회의 발전경로 자체를 퇴행적으로 설정하게 된다.

▲ 2013년학년도 국공립 유치원 신입원아 모집을 위한 추첨이 시행된 서울 성북구 길음동 길음유치원에서 학부모들이 추첨에 당첨된 사람을 보며 축하의 박수를 보내고 있다. 사진=뉴시스
우리사회는 최근 장기적 지향과 비젼이 분명한 정책과정을 겪어왔다고 보기 어렵다. 양극화가 심화되고 개발시대 동안 복지투자가 불충분했다는 명목을 내세웠으나, 실제로는 양극화 해소에도, 취약계층의 이동성을 위해서도 별 도움이 되지 않는 많은 결정들이 정치권의 ‘표경쟁’ 과정에서 양산되었다.

세대간 동반성장은 결국 모든 세대가 아무 것에도 억눌리지 않으면서 행복한 삶을 추구할 수 있는 사회 시스템을 마련하는 것이다. 그러나 사회정책의 많은 중요 이슈들이 근래의 정치과정에서 인기영합적 방식으로 틀어진 것을 고려하면 현재의 사회내 자원배분을 담당하는 우리세대가 그 소명을 다하고 있다고 인정받기는 어려울 것이다. 지금 단계에서 세대간 동반성장을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세대간 갈등만을 강조하는 것보다, 윈윈구조에 기여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후진적인 의사결정에 의해 제약되고 있는 부분을 지적하고 그 방향성을 다시 정립하는 것이다.

보육의 보편지원 확대결정이 낳은 문제점

교육기회가 빠르게 확대되고 급속히 성장하는 경제 속에서는 대부분 부모 세대보다 나은 일자리를 가지면서 상향이동에 성공할 수 있었다. 그러나 고속성장의 시대가 종료되어 양질의 일자리가 희소해지면서 부모의 사회경제적 지위가 자녀의 학업성과를 통해 노동시장에서의 위치를 결정하는 구조가 고착되고 있다.

최근의 연구들은 생애주기의 각 단계에서 계층간 격차가 확대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고, 인적자본 격차 대부분이 아주 어린 시기에 부모 경제력 격차에 의해 형성된다는 점을 보이고 있다. 이렇게 빈곤과 소득격차가 그대로 대물림되는 구조가 고착되는 것은 사회통합에 치명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보육지원과 조기 교육의 재정지원은 계층격차와 아동발달에 심대한 중요성을 갖는다.

그런데 최근의 정책결정들은 이러한 중요성을 반영하면서 장기적인 지향점을 추구하고 있다고 평가되기 어렵다. 보육·유아교육 예산은 2000년대 후반 급증했으나 정치권의 보편복지 아젠다와 결합하면서 보육의 질과 실수요, 계층간 격차를 개선하기보다는 정치권의 ‘표경쟁 논리’에 의해 모든 가구에게 혜택을 나누어주는 데 치중했다.

보편복지 아젠다가 중앙정치에서 급부상하게 된 계기는 무상급식에서 촉발된 논쟁인데, 이후 무상급식 이슈는 보편/선별 복지, 복지포퓰리즘 등 전반적인 복지정책방향에 관한 논쟁으로 확대되었고, 2011년 무상급식 주민투표에서 새누리당이 패배한 후에는 양당 모두 보편복지로 정책방향을 고정시키게 되었다.

예를 들어, 2012년 9월 보건복지부가 관계부처 합동으로 마련한 ‘2013년 보육지원체계 개편방안’은 본격적으로 대선국면이 시작되기 이전 보육지원체계를 합리화하려는 범정부적인 노력을 반영한 시도이나, 이후 선거국면에서 보편적 지원 공약에 묻혀 사장된 바 있다. 당시 정부안은 취업모 등 실수요를 반영해 이용시간을 차등화하고, 소득수준에 따라 비용부담을 차등화하는 내용을 담으면서 ‘그간의 시행착오를 보완하는’ 노력이라 밝힌 바 있다. 그러나 이후 선거국면을 거치면서 정부안과 정반대로 ‘전계층의 전 가구에 동일한 혜택을 부여하는’ 안이 2013년부터 시행되었다.

이러한 보편지원 확대과정에서 전업주부의 수요가 급증했고 취업모의 실수요가 만족되기 어려워졌으며, 계층간 조기교육격차를 완화시킬 메커니즘을 내장하지 못하는 등 장기적인 문제가 초래되었다. 현재 우리나라는 OECD 국가 중 0~2세 자녀를 둔 여성의 고용률보다 보육시설 이용률이 높은 유일한 국가이다.

노인빈곤의 심각성을 고려한 빈곤대책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고령화가 진행되고 있으나, 연금제도의 미성숙 등으로 노후소득보장은 아직 취약하다. 기초연금 이슈가 지난 대선 국면을 장악했던 것은 -노인표를 선점하기 위한 경쟁이라는 측면이 강했으나 - 어느 정도는 우리 사회에서 노인빈곤 문제가 갖는 중요성을 반영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노인빈곤과 소득지원 필요성이 강조되어 오는 과정에서 특징적인 것은 노인 그룹 내부의 격차를 고려하는 정도가 매우 낮았다는 점이다. 정책적 관심이 더 필요한 그룹을 우선적으로 배려하기보다 기초연금 등 노인 전체에게 동일한 혜택을 나누기 위한 제도 도입이나 확대에 정책역량이 집중되어 왔다.

그러나 노인빈곤율이 높아 노인 전반에 대한 정책적 관심이 깊이 요구된다고 하더라도 가장 열악한 그룹부터 어느 정도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노력이 우선적으로 투입되는 것이 필요하다. 만약 빈곤율 감소 목표만을 배타적으로 강조할 경우, 빈곤정도가 낮아 상대적으로 빈곤선 위로 끌어올리기 쉬운 그룹에게 현금을 지원하는 것이 가장 효율적인 정책수단이 된다. 그러나 우선순위가 두어져야 하는 부분은 빈곤선 주변의 노인보다는 극빈에 시달리며 가족의 도움을 기대할 수 없는 노인들일 것이다.

현재 노인인구 내부의 격차를 고려하면, 노인과 비노인의 구분보다 노인그룹 내부의 구분이 더 큰 격차를 보이는 그리고 이 중 가장 열악한 상황에 처해 있다고 보여지는 1인 노인가구 142만 3천명 중 82.9%에 이르는 118만명의 여성고령자이며, 이 중 108만명은 배우자와 사별한 여성이다. 이렇게 소득원으로 의존했던 배우자가 사망한 후 시간이 흐름에 따라 극빈 상황으로 악화되는 여성노인은 우리나라 극빈노인의 전형적인 형성 경로이다. 이러한 결과는 빈곤에 노출된 정도가 높은 초고령자나 독거노인, 배우자와 사별한 여성 노인 등에게 각각의 상황을 반영한 맞춤형의 지원이 필요하며, 보다 집중적인 관심과 배려가 요구된다는 것을 보여준다.

현 세대의 패자부활을 지원하는 사회정책

글로화된 이후 경제구조의 특징은 ‘불확실성이 증가하고 혁신속도가 빨라지며, 숙련 내용이 빠르게 변화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경제구조 하에서는 실직이나 파산 등 새로운 위험에 직면한 개인들이 이를 헤쳐나가기 위해 필요한 자원을 제공하고, 능력을 증진하고, 제도적으로 지원하는 것’이 사회경제정책의 핵심 과제가 된다. 이러한 정책의 방향은 한마디로 변화무쌍한 노동시장의 흐름을 개인이 성공적으로 탈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기업과 산업의 수명 역시 단축되고 있고 안정된 내일이 보장되어 있다고 기대하기 어려운 이상 근로자 개인이 노동시장에서 퇴출되는 것은 드문 일로 취급되어서는 안되며 영속적인 영향을 미치는 실패가 되어서도 안된다는 것이다. 단, 근로자 개인이 이러한 변화와 불확실성을 헤쳐 나가는 것은 개인만의 노력으로 가능한 것이 아니라 시스템적인 지원이 불가피하다. 실직이나 파산 후 새로운 숙련을 획득하고, 새로운 일자리로 연결되고, 자본에의 접근성이 보장되는 것은 사회전반의 패자부활 시스템이 완비되어야 가능하기 때문이다.

현재 우리나라의 만성적 빈곤층은 대부분 취업을 하지 못하거나 막다른 일자리를 전전하는 인구들로 구성되어 있다. 장기반복적으로 빈곤을 경험하는 가구의 가구주 50% 이상이 미취업자이다. 그런데도 대부분의 빈곤 가구는 상당기간 동안 직업훈련 경험을 전혀 갖지 못했고 고용지원서비스를 받은 경험도 없는 것으로 나타난다. 이들의 상향이동을 가능하게 하기 위해서는 고용지원과 직업훈련 등 노동시장정책의 인프라가 대폭 확대되는 것이 필요하며, 이것이 사회정책의 최우선에 배치되는 것이 필요하다. 이는 사회정책의 우선순위를 시혜성 혜택을 나눠주는 것으로부터 이들의 역량을 키우는 방향으로 전환하는 근본적인 변화를 의미하며, 이것이 근본적인 전환을 의미하는 만큼, 정치적 과정에서 정파를 넘어선 미래 지향적 합의가 요구되는 부분이다. E21

본 기사는 월간지 <이코노미21> 2월호에 게재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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