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95년에 지방선거가 다시 시작된 지 어느덧 20년의 세월이 흘렀다.
지방선거가 다시 시작된 것은 기형적으로 중앙집권화된 한국 사회의 문제를 해결하고 진정한 지방자치를 실현하기 위해서 였다. 20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한국 사회는 중앙집권화가 다소 완화되고, 지방자치가 활성화되는 성과를 이루었다. 하지만 아직도 지방자치가 안착됐다는 평가는 없다.
심지어 지방선거가 대통령선거, 국회의원 선거와 더불어 또 하나의 선거가 됐을 뿐이라는 비판적 견해도 있다.
지방선거는 선거로서의 의미뿐 아니라 진정한 지방자치를 위한 과정이 돼야 할 것이다. 진정한 지방자치의 실현을 위해 어떤 과제를 해결해야 하는지를 되살펴봐야 할 때이다.
성년이 된 한국 지방자치의 현 주소를 알아본다. - 편집자 주
곧 있으면 민선 6기 지방정부를 맡을 단체장과 이들을 견제할 지방의원을 뽑는 6.4 지방선거가 실시된다. 이제 우리나라 지방자치제는 20년의 역사를 축적하면서 본격적인 성인기를 맞이할 시점이 되었다. 올해 나이로 20살을 맞이한 지금, 우리나라의 지방자치제가 어떤 역사를 거쳐서 여기까지 왔으며, 앞으로 좀 더 성숙한 방향으로 나가기 위하여 탄생기에서부터 시작하여 성장기까지를 한번 되짚어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지방자치의 역사
우리나라의 지방자치 현실을 두고 너무 중앙정치에 예속되어 있다는 비판을 많이 한다. 이러한 현실은 지방자치제가 폐지되고 부활된 역사에 고스란히 녹아 있다. 익히 알다시피 1960년 12월의 지방선거를 마지막으로, 1991년 광역의회 선거가 부활될 때까지 지방자치제는 무려 30년이 넘게 중단되어 실시되지 못했었다. 헌법에 지방자치에 관한 조문은 존재했지만 실제로는 시행되지 않았던 제도였던 것이다.
물론 박정희 시대의 일사 분란한 개발 독재를 합리화하려는 의도와 더불어 중앙정부의 권한을 넘겨주지 않으려는 권력 의지가 작동하였던 것이다. 이러한 위헌적 상태는 1990년 당시 야당인 평민당을 이끌던 김대중 총재가 지방자치제 부활을 내걸고 13일간의 단식 투쟁을 시작하여 지방자치를 공론화, 의제화할 때 까지 오랜 세월동안 지속되었다. 3당 합당으로 인하여 차기 대선 가도에서 정치적 수세에 몰렸던 김대중 총재는 지방자치제의 부활을 통해 정권교체의 발판을 마련하고자 하였다. 당시 노태우 정부와 여당으로부터 지방자치제의 전면 실시를 약속받았으나, 1991년에 지방의원만을 선출하고 단체장 선출은 기약없이 연기되어 반쪽짜리 지방자치제가 시작되었다.
그럼 어째서 당시에 야당은 전면적인 지방자치제를 주장하고, 여당은 이를 한사코 피하려 했을까? 그것은 지방자치제가 수직적 권력분립을 추구하는 제도이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권력분립이라 하면 수평적인 3권 분립만을 생각하기 쉽지만, 지방의 풀뿌리 조직이 독자성을 가지는 지방자치제는 수직적인 권력분립을 가능하게 한다. 대통령의 말 한마디가 동네 말단 조직까지 영향을 미치는 중앙집권적 권력 체계에 균열을 가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지방자치제였던 것이다.
실제로 1995년 전면적인 지방자치제가 도입이 되어서 서울시장 선거에서 야당이 승리하고, 25개 구청장 중에서 23개 구청장을 민주당이 장악하면서 국민들은 지방정부에서나마 정권교체를 경험하게 된다. 이를 발판으로 김대중이 정계에 복귀하였고, 이후 1997년 대선에서 승리하는 밑바탕이 마련된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이렇게 탄생한 지방자치제는 이후 새로운 선거를 치를 때마다 여당의 무덤으로 작용하였다. 1998년에 실시된 2기 지방선거는 여당이 승리하였으나 정권이 출범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이었고 IMF외환위기로 인하여 이전 정권에 대한 분노가 남아 있을 때라 김대중 정부를 향해 정권 심판의 목소리가 높아지기 어려웠었다는 특징이 있다. 민선 3기 이후 지방선거는 모두 정권 심판론이 선거 결과를 좌우하였고, 어김없이 야당이 승리하였다. 2002년은 임기 말의 김대중 정부를, 2006년은 노무현 정부를, 그리고 2010년 선거는 이명박 정부를 심판하는 선거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중앙권력에 대한 심판으로서 지방선거가 나름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니나 이는 역설적으로 중앙정치에 대한 지방 정치의 예속화를 심화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단체장의 업무와 성과를 중심으로 평가하는 선거가 아니라, 어떻게 보면 지방정부와 크게 상관도 없는 대통령의 실정을 지방자치단체장에게 묻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한편으로 단체장과 지방의회가 모두 한 정당으로 쏠리는 현상을 심화시켰다. 서울시 지역구 광역의원 당선자수를 가지고 시계열적 비교를 통해 이러한 사실을 확인해보자. 한나라당이 압승을 거둔 2002년 지방선거에서 한나라당은 92석 중 82석을 차지하였고, 민주당은 단 10석을 차지하는데 그쳤다. 이 같은 현상은 2006년 지방선거에서 더욱 심해져 서울시 지역구 광역의원 96석을 한나라당이 싹쓸이 하였다. 당시 여당이었던 열린우리당은 비례대표 2석을 제외하고는 서울시 광역의회 지역구 의석을 단 한 석도 얻지 못하였다.
무상급식 : 새로운 지방자치의 계기
다행히 이러한 현상은 5기 지방정부에서는 조금 완화되는 추세를 보였다. 앞에서 언급한 광역의원 쏠림 현상도 여전하긴 했지만, 이전보다는 한결 완화된 격차를 보였다. 또한 서울과 경기도의 경우 기초자치단체장은 민주당이 휩쓸었지만, 광역자치단체장은 한나라당이 차지하였다. 이전 지방선거에서 런닝메이트처럼 광역과 기초의원들이 묶여져 특정 정당의 후보가 함께 당선되던 현상이 나타나지 않은 것이다. 전통적인 한나라당 표밭으로 인식되었던 강원과 경남, 충남 등지에서 야당 혹은 야권 성향의 무소속 후보가 당선되는 현상도 나타났다.
이러한 결과는 무상급식이라는 메가 이슈가 정권 심판과 겹치면서 나타난 결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이슈 틈에서도 나름대로 광역자치단체장으로서 지지를 받고 있던 오세훈 서울시장과 김문수 도지사가 재선에 성공한 것은 후보자의 경쟁력이라는 변수를 감안한다 하더라도 표 쏠림이 한결 완화된 현상으로 평가해도 무방할 것이다.
특히 5기 지방선거에서는 교육감과 교육의원 선거가 같이 치러져 다른 선거보다 중앙 정치적 이슈에서 떨어져 생활 정치적 이슈가 파고들 공간이 많았다는 점을 주목해볼 필요가 있다. 이전에 이명박 전 서울시장이 청계천 복원이라는 ‘메가 공약’으로 당선된 바 있지만, 이는 개발 공약일 뿐 생활정치에서 우러나온 공약으로 볼 수는 없다. 무상 급식도 전국적으로 시행되기 때문에 일부 거대 공약적 측면이 있으나 개발 공약에 비해서는 지역 주민들의 “생활과 밀착된 공약”이었다고 평가된다.
특히 교육감에 대한 관심이 광역 자치 단체장에 준할 만큼 국민적 관심도가 높아지고 교육 정책에 대한 시민 참여 의식이 높아지게 된 것은 5기 지방선거가 이룩해낸 성과이다. 이전까지 교육감 선거는 시민들의 극심한 무관심 속에 치러졌는데, 이제는 교육감에 대한 인지도도 높아지고 이를 통해 교육 정책에 영향을 미치는 국민적 효능감이 매우 높아지는 성과도 있었다. 특히 서울과 경기, 강원 등에서 진보 교유감이 탄생하면서 지금까지와는 다른 새로운 교육 정책에 대하여 알게 되고, 이를 통해 한국 교육의 다양성이 확보되는 효과를 거두었다.
지방자치의 구조적 한계
그러나 이런 성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중간에 물러나는 단체장과 지방의원들이 아직도 많은 것은 우리 지방자치제가 나갈 길이 여전히 멀다는 것을 보여준다. 지난 20년간 형사처벌을 받아 물러난 자치단체장은 모두 102명이라고 한다. 전체의 8.3%에 이른다. 또한 지방 의원도 전체의 4.7%나 형사처벌을 받았다고 한다. 단체장은 아니지만 서울시 교육감의 경우 공정택 교육감과 곽노현 교육감이 2대에 걸쳐서 연달아 형사처벌을 받는 불명예를 안기도 하였다.
이는 지방자치가 중앙으로부터는 예속되어 있으면서, 지방에서는 소통령으로 불릴 정도로 막강한 권한을 행사하고 있는데 근본 원인이 있다. 지방 정치에서 영향력을 행사하기에는 시민사회가 폭넓게 형성되어 있지 않고, 관(官) 우위의 전근대적 사고방식이 중앙 집중적 문화와 겹치면서 지방자치를 고사 위기로 몰아넣고 있는 것이다.
실례로서 문제점을 살펴보자. 이를 위해 필자가 살고 있는 동네의 최아무개 지방의원의 의정보고서를 펼쳐 들었다. 보고서는 지하철 조기 개통에 대한 서명용지를 도지사와 함께 들고 있는 사진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 한마디로 예산을 따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것에 포커스를 맞춘 사진 한 컷이 전부이다.
한 장을 넘겨 2쪽과 3쪽을 살펴보면 연출된 것으로 예상되는 중앙정부 장관을 만나 설명하는 사진, 또 한 쪽으로는 지도를 가리키며 지하철 노선도를 살펴보는 사진이 있다. 다음 장을 넘겨봐도 얼마의 예산을 확보하여 무엇을 지었고, 도로를 어떻게 건설할 것이며 체육관을 어디에 짓는다는 이야기가 의정 보고의 전부를 차지하고 있었다. 지방의원의 의정보고서임에도 불구하고 온통 초점은 중앙으로부터 내려오는 예산을 얼마나 많이 따내서 각종 건물과 도로, 지하철을 놓겠다는 이야기에 맞춰져 있는 것이다.
만약 이것이 지방의원이 해야 할 일의 전부라면 지방선거라는 어려운 선출 과정 자체가 무의미하다. 중앙에서 나눠주는 예산을 많이 가져올 수 있는 역량이라는 단일 지표만 설정하면 될 일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논리적 귀결은 지방자치의 참 의미에서 더욱더 멀어지는 결과를 가져온다.
여기에는 예산의 구조적인 면이 도사리고 있다. 여야를 막론하고 현재의 지방자치는 2할 자치에 불과하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중앙정부가 넘겨서 시키는 위임 사무와 인건비 등 경직적인 예산을 제외하고 나면 지방정부가 스스로 기획해서 할 수 있는 일은 전체 업무의 20%에 불과하다. 이런 것이 아니라면 아시안 게임이나 동계 올림픽 등 국제 스포츠 대회를 경쟁적으로 유치하여 이것을 기회로 중앙정부의 예산을 조금이라도 더 따오려는 촌극은 빚어지지 않을 것이다. 2할 자치의 현실에 대하여 김문수 경기도지사는 최소한 4할 자치는 되어야 하는 것이 아니냐는 의견을 밝히기도 했다. 현재는 반쪽짜리 지방자치도 되지 않는다.
6기를 맞이하는 지방자치가 앞으로 나아갈 방향은 위에서 언급한 문제점에서 모두 나타나게 된다. 우선 하루라도 빨리 지방자치는 중앙으로부터 예속을 벗어나야 한다. 이것은 제도나 예산만이 아니라 문화적인 것까지 포괄하는 함축적인 의미이다.
안희정 지사가 쓴 책에 보면 ‘주민자치 역량을 더욱 살려나가야 한다’는 소제목을 단 글에서 주민들이 자기 집 앞의 눈을 치우지 않는 현실을 이야기하고 있다. 제설 작업을 위하여 4억2,000만 원의 예산을 쓰고 있는데, 충청남도에서 관리하고 있는 도로가 1,994킬로미터에 달해서 광역정부가 도저히 이를 다 감당할 수 없는 현실을 토로한다. 그런데 지방의 공동체가 붕괴되어서 생활 현장의 문제를 주민 스스로 해결하기는 더욱 어려워졌다는 것이다. 예산이 투입되지 않으면 자기들 지역의 일임에도 불구하고 주민들이 스스로 나서지 않는다. 약화된 주민의 자율성을 살리는 방향으로 지방자치가 나아가지 못한다면 제도를 바꾸는 것만으로 지방자치제의 성공적인 변화를 바라기는 어렵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기초선거 무공천 논란
지방선거를 앞두고 모든 이슈를 빨아들인 기초선거 무공천 논란도 붕괴된 주민의 자율적 문화와 무관하지 않다. 1995년 최초로 실시된 지방선거에서 정권 심판의 영향으로 야당이 대거 당선되었다는 이야기를 서두에서 언급한 바 있다. 재미있었던 것은 당시 서울지역에서 서울시장에서 구청장까지 기호 2번이 휩쓸었는데, 덩달아 기초의원도 2번이 많이 당선되었었다는 사실이다.
물론 기초의원에 정당 공천이 실시되었다면 크게 문제가 아닐 수도 있는데, 당시 기초의원은 정당 공천이 배제되었다. 덕분에 아무 상관도 없이 기초의원 후보 기호 2번이 야당 후보라는 유권자의 인식 탓에 당선이 많이 되는 결과를 낳았다. 그 사람이 누구냐가 아니고, 그 사람이 추첨을 통해 뽑은 기호가 몇 번이냐에 따라서 당선되는 웃지 못할 촌극이 벌어진 것이다. 물론 이것은 1번 혹은 2번 지지율의 쏠림 현상이 일어나는 영호남에서는 말도 안되는 희극으로 많이 벌어졌다.
기초선거에서 정당 공천을 배제하면 토호들이 판을 칠 것이라는 비판은 이런 배경을 깔고 있다. 주민들의 자율 활동이 활성화되지 못한 탓에 지방 정치가 몰락해 있고, 지방 정치의 몰락은 그대로 지방에서 활동하는 시민사회의 성장을 막고 있고, 당연히 지역에서 성장할 정치 명망가의 싹이 자랄 수 없는 토양인 것이다. 이장에서 군수를 거쳐 도지사에 오른 김두관 전 경남지사는 정말 희귀한 사례일 뿐이다.
활성화되지 못한 지방정치는 선거 과정에서 선출된 의원들의 직업적 쏠림 현상도 만들어내고 있다. 지방자치실무연구소장을 역임한 국민대 김병준 교수는 ‘지방자치론’이라는 그의 저서에서 지방의원 당선자 중 자영업자의 비율이 너무 높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한마디로 자영업자가 지방정치과정이나 정책과정에서 과다 대표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지방의 집행 권력과 의회가 이권을 중심으로 결탁할 가능성을 높이는 결과를 초래한다. 또한 기초자치단체장이 연달아 사법처리를 받은 일부 지역의 사례와도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지방자치의 정착이 민주주의의 완성
민선 1기부터 5기까지의 지방자치는 중앙으로부터 떨어져 지방이 독자적인 정치의 주체로서 기능하기에는 많은 한계가 있었다. 이제 민선 6기를 시작하면서, 새로운 지방자치의 희망은 이를 극복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지방의 독자성과 자율성이 생겨나면 지방자치는 주민들의 실제 생활에 집중하는 생활정치로 이어질 것이다. 생활 정치가 만들어지면 주민들은 지방자치를 통해 자신들의 삶의 문제를 해결하려 하는 문화가 형성될 수 있다.
지방자치제도는 어떻게 이러한 바람직한 방향의 지방자치를 뒷받침해야 할까? 우선 과감하게 예산과 권한을 지방으로 넘겨주는 혁명적 발상을 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지방은 늘 중앙정부의 권능에 기대어 지방의 문제를 해결하려는 발상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2할 자치가 한계를 넘어 4할 내지 6할 자치로 가기 위해서는 말로만이 아니라 예산과 권한이 실질적으로 지방으로 이양되는 정책이 마련되어야 한다.
이렇게 되면 지방만의 이슈가 탄생할 수 있다. 무상급식처럼 전국 공통의 이슈나 지하철 건설이나 청계천 개발과 같은 토목형 이슈가 아니라, 지방의 문제는 지방 스스로가 해결한다는 자세로 각 지역에 기반한 생활적 이슈가 자연스럽게 부상하게 된다. 그런 이슈가 생겨나고 이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지방자치는 스스로의 활력을 찾아나갈 수 있다.
지방의 정치가 활성화되면 지방자치가 구현되는 양태도 다양화를 추구할 수 있을 것이다. 전국에 있는 지방자치의 모습이 반드시 중앙에서 정해놓은 획일화된 제도를 따를 필요는 없다. 전국의 다양한 모습은 다양한 형태의 정치를 만들 수 있다. 전라도와 경상도의 제도가 같을 필요가 없고, 산간벽지와 섬에서 이뤄지는 자치의 모습이 동일한 행정구역 단계를 가질 필요가 없다. 실제 지방자치가 발달한 선진 각국의 지방자치는 정치와 행정이 여러 가지의 다양한 모습을 가지고 있다.
지방차지가 생활 정치가 되지 못한 탓에 일률적으로 광역자치단체를 없애자고 하거나 인근 시군을 통합하여 광역과 기초 사이의 중간형태의 자치 단체를 만들자는 등의 제안이 나오고 있다. 물론 모두 일리가 있는 제안이기는 하나 중앙에서 하나의 틀을 제시하고 이를 지역의 현실과 관계없이 끼워 맞추려는 경향이 문제가 되는 것이다.
지방자치단체가 생활 정치를 하면 기초자치단체가 통합이 되거나 그 과정 중에 자연스럽게 권한을 대폭 이양하는 방향으로 이뤄져야 하는데, 지역주민의 의사를 강제하는 방식으로 지방정부의 행정 조직을 개편하려 하면 부작용만이 나타날 뿐이다.
서두에서 지방자치제도가 가지는 수직적 권력 분립의 의미를 설명하였다. 우리나라의 지방자치는 민주주의의 몰락과 함께 사라졌다가 민주주의의 회복과 함께 부활하였다. 그만큼 민주주의 제도적 안착과 궤를 같이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것이 중앙 정치의 예속을 가져오는 부작용을 낳았는데, 이제 지방자치가 자기 모습을 회복하여 우리나라 중앙정치를 건강하게 만드는 기초 체력으로서 기능해야 할 시점이 되었다.
풀뿌리 민주주의가 살아난다면 고질적인 중앙 집중의 폐해를 극복할 수 있고 지역주의로 얼룩진 중앙 정치의 문제점을 해결하는 단초가 될 수 있다. 오랜 독재의 경험으로 우리는 민주주의라고 하면 정치형태나 이념으로서 가지는 의미만을 떠올리지만, 이제는 생활양식으로서 민주주의를 강조할 때가 되었다. 지방의 생활정치를 단위로 단체장과 지방의원이 뽑히고, 생활의 민주화가 지방의 민주화를 견인할 때 우리나라의 민주주의는 한결 더 풍부해지는 경험을 할 수 있을 것이다.
20년 전에 지방자치제의 실시가 정치 민주화를 앞당길 것이라고 보았던 혜안은 지금 생활의 민주주의로 나가야하는 단계에서도 여전히 유효하다. 생활 정치로 지방자치가 한 단계 더 도약할 때 대한민국의 민주정치는 풀뿌리부터 건강해져 나갈 것이다. E21
본 기사는 월간지 <이코노미21> 5월호에 게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