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6월 전국 동시 지방선거의 결과가 나왔다. 광역단체장 선거에서 새누리당이 8곳, 새정치민주연합(이하 새민련)이 9곳에서 승리했다. 정부여당에 대한 민심 이반과 함께, 야당에 대한 정치적 불신도 함께 표출된 선거 결과였다. 새누리당의 후보가 기존의 지역기반인 경북, 경남, 대구, 부산뿐만 아니라, 경기와 인천에서도 승리한 데서 볼 때, 이번 선거에서는 박근혜 정권에 대한 심판이 제대로 반영되지 않았다.
한편, 새민련이 전남, 전북, 광주 등 기존의 전통적 지지 지역뿐만 아니라 기존의 충남과 충북에 더해 대전과 세종에서 추가로 당선된 것은 수치상으로 보면 승리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세월호 침몰 참사나 안대희 총리 지명자 낙마 등의 연이은 호재에도 불구하고 기존의 인천을 내주고 경기도를 탈환하지 못한 것은 국민들이 새민련에 대해서도 대안세력으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물론 서울의 조희연 후보는 경우가 조금 다른 측면도 있었다. 고승덕 후보와 딸의 SNS파문의 직접적인 수혜자로서 보수 표가 분산되고 이반된 효과가 크다 하겠다. 그러나 다른 지역의 진보 후보들이 당선된 것은 지역주의를 반영하는 기성정당 출신이 아니라 가치와 정책노선의 차이를 반영하는 ‘진보-보수’의 구도의 수혜자들이다. 우리가 앞으로 이런 식의 ‘진보-보수’라는 가치와 정책의 차별적 구도를 만들 수 있다면 진보진영이 정치적으로 약진할 가능성을 엿볼 수도 있을 것이다.
한편, 이번 선거에서 기존의 안희정 충남지사 외에도 권선택(참여정부 인사 비서관 출신) 대전시장과 이춘희(참여정부 신행정수도기획본부장 역임) 세종시장 등 3명의 친노 성향 광역 지자체장이 탄생하였고, 기초 지자체장도 16명에서 22명 수준으로 증가했다. 이는 친노 세력이 다시 정치의 전면에 등장할 기초체력을 다진 것으로 볼 수 있다. 박원순 서울시장이 재선 성공으로 정치적 입지가 크게 높아짐에 따라 이후 새민련은 그를 매개로 이합집산과 전략적 제휴 등을 통해 당의 주도권 장악을 노리는 계파 갈등이 심화될 가능성이 크다.
윤장현 후보의 광주시장 당선에도 불구하고, 안철수 대표는 민주당과의 합당과정, 기초 지자체 무공천 철회과정 등을 거치며 대권 후보로서의 지지를 크게 상실했다. 안철수 의원 스스로가 지난 수년 동안 기성정당을 ‘낡은 정치’로 비판했고, 이에 대항하는 제3의 정치세력을 자칭하며 ‘새 정치’라고 했으나, 결국 낡은 민주당에 녹아들어감으로써 ‘새 정치’의 기치를 버렸다. ‘새 정치’에 대한 국민의 염원에도 불구하고 안철수 의원은 더 이상 그것의 대변자가 아니다. 때문에 장차 그가 정치적 지지를 회복하는 일은 어려울 것으로 판단된다.
박근혜 대통령과 정부여당은 대선 당시의 복지국가 공약을 대부분 축소하거나 폐기하고 있다. 야당인 새민련은 복지국가 공약의 실천과는 동떨어진 정치적 이슈에 스스로 매몰되는 자충수를 둠으로써 정책적 무능과 정치적 무기력을 여실히 드러냈다. 이들 두 정당은 극단적 대결구조를 항상적으로 유지함으로써 자신의 존재 이유를 드러내는 전략, 즉 ‘적대적 공생 전략’으로 정치적 이익만 챙기고 있다. 기존의 양대 정당에 대한 국민적 실망은 갈수록 그 정도를 더해가고 있다. 복지국가 건설 전망은 더 이상 이들의 것이 아니라는 세간의 질타가 무게를 더해가는 이유이다.
한편, 이번 지방선거에서 몰락 수준의 성과만을 보여준 진보정당들이 복지국가 건설의 주역이 되기도 어려울 것이다. 그렇다고 ‘새 정치’의 기치를 낡은 정치에 헌납한 안철수 대표와 ‘우 클릭’을 거듭함으로써 국민적 기대를 배신한 새민련 지도부가 복지국가를 건설할 것 같지도 않아 보인다. 이들에게는 그럴 의지도 능력도 없다는 것이 시민사회의 평가이다. 얼마 전에 있었던 정부여당의 기초연금 법률안을 군사작전 하듯이 통과시켜준 새민련 지도부의 정치행태는 시민사회로부터 ‘새누리당의 2중대’라는 조롱을 당하기에 충분했다. 이로써, 안철수 대표는 ‘기초연금을 국민연금에 연계함으로써’ 노후소득보장을 망쳐버리는 ‘낡은 정치’를 스스로 행하고 말았다.
그래서 ‘역동적 복지국가’ 건설의 대업을 이룰 새로운 정치세력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제법 들려온다. 복지국가 건설의 대의에 부합하는 대한민국의 정당정치 질서는 ‘다당제 합의제 민주주의’라는 목소리가 이미 전문가들과 시민사회의 운동가들 사이에서는 널리 퍼져있다. 그리고 이번 지방선거를 계기로 새로운 정치 세력, 즉 복지국가 정치세력의 등장 분위기는 이미 조성된 것으로 봐도 무방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