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2-06-25 10:45 (토)
상대방을 파트너로 인식해야
상대방을 파트너로 인식해야
  • 황인학 한국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
  • 승인 2014.07.15 14:3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갑을 문화 개선의 방향과 과제> 갑을 관계 아닌 사안까지 갑을 프레임을 덧씌우는 것은 문제…새로운 규제법 보다 엄정하고 일관된 법 집행력이 더 중요해

갑을 관계의 본질

갑(甲)과 을(乙)은 흔히 계약서상에서 계약의 당사자를 순서대로 지칭하는 관습적 용어이다. 사업의 발주자를 갑으로 하고 사업의 수행자를 을로 하는 계약서라든지, 고용주를 갑으로 하고 종업원을 을로 하는 고용 계약서가 그런 예이다.

계약은 본질적으로 거래 쌍방의 자발적 의사와 합의에 기초해서 이루어진다. 그러나 계약의 세부 내용을 결정하는 협상 과정에서 힘의 비대칭성(asymmetric power)이 작용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다보니 일반적으로는 협상력에서 우위에 있는 자를 갑, 그 상대방을 을이라 통칭하기도 한다.

돌아보면 세상은 어디나 갑을 관계로 얽혀 있다. 사용자와 종업원, 대기업과 협력업체, 고객과 종업원, 본사와 대리점, 정부부처와 산하기관, 국회와 피감기관, 규제당국과 피규제자(국민)의 관계 등 갑을 관계는 도처에서 관찰된다. 현대 사회에서는 회사, 기관 등의 법인은 말할 것도 없고 자연인도 경제적·사회적 관계망의 일원으로 살고 있다.

따라서 우리 모두는 누군가에게는 을의 입장인 동시에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갑의 입장에 서있는 복잡한 관계망의 일원이다. 그렇다고 특정인의 역할이 갑 또는 을로 항상 고정되어 있는 것도 아니다. 역지사지(易地思之) 하라는 맹자 말씀도 그래서 했을 터이다. 상대방의 입장에서 한번 헤아린 뒤 판단하면 덕은 쌓이고 허물은 생기지 않을 것이다.

기로에 선 한국의 갑을 문화

이러한 갑을 관계의 문제점이 작년에 부쩍 세간의 뜨거운 화제로 부상했다. 연예계의 노예 계약에서부터 모 항공사의 라면상무 사건, 남양유업 영업사원이 물건을 받지 않는다며 대리점주에 폭언을 했던 사건 등 우리 사회의 일그러진 갑을 문화가 잇달아 알려졌기 때문이다. 기회를 놓칠세라 국회에서는 새로운 규제 법안을 만들겠다고 나섰다. 민주당은 한술 더 떠 작년 5월에 ‘을 지키기 경제민주화추진위원회’를 만들더니 6월에는 ‘을지로위원회’로 산뜻하게 이름을 바꾸고는 남양유업 방지법으로 알려진 ‘대리점 거래의 공정화에 관한 법률’을 발의하는 등 규제 신설·강화에 적극 나섰다.

작년의 이러한 사건들은 예전이라면 아마도 일과성 해프닝으로 지나갔을지 모른다. 그러나 이제는 시대가 바뀌었다. 기초 생계(bare necessities)를 해결하느라 곤궁했던 시절에는 한 푼이라도 벌기 위해 갑의 부당한 처사에 대해 을은 참을 인(忍)자를 세 번 쓰면서 참았을지 몰라도 지금은 1인당 소득이 2만 달러 시대이다. 을의 권리의식이 향상되면서 참을 忍자를 쓰는 대신 자기 목소리를 내고픈 세상이 된 것이다.

시대가 바뀌었다는 또 다른 이유는 SNS의 확산이다. 갑의 부당한 횡포가 알려지면 이에 公憤하는 여론이 순식간에 확산되고 소비자가 가세하며 불매운동으로 이어진다. 따라서 이제는 기업, 아니 기업의 이름으로 갑의 역할을 해야 하는 이들은 갑을 관계를 어떻게 설정해야 소속 기업의 장기적 가치를 높이며 성장을 할 수 있을 지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을 해야 할 때이다.

과거부터 이어지던 관행이라도 새로운 환경에 부합하지 않은 관계 문화는 고쳐야 한다. 기업 사이에서 갑을 계약 또는 거래가 발생하는 이유는 혼자서 일을 다 하는 것보다 양측이 나누어 하는 것이 시너지 효과(synergy effect)를 내기 때문이다. 따라서 기업 간 분업을 통해 시너지를 극대화하려면 상대방이 활용 도구가 아닌 파트너라는 인식부터 공유해야 한다.

어느 일방의 이익 극대화가 아니라 거래 쌍방의 자발적 협력을 유인해서 양측 모두 장기적 이익을 높일 수 있는 방향으로 갑을 관계를 설정해야 한다. 따지고 보면 기업은 법률상 존재일 뿐이고 의사결정은 기업의 이름으로 사람이 하는 일이다. 그러니 갑을 문화를 개선하려면 무엇보다 조직 구성원의 의식부터 바꿔야 할 것이다.

갑을 프레임의 誤·濫用은 경계해야

갑을 문화는 개선되어야 하지만 그래도 작금의 갑을 프레임 논의의 확산과 정치권의 접근방식(규제 신설 및 강화)에는 문제점이 많다. 그 중 몇 가지를 짚어 보면 첫째, 갑을 관계에 대한 문제제기가 잇따르자 갑을 관계가 아닌 사안에 대해서까지 갑을 프레임을 덧씌우는 경향이 늘고 있다. 동일 시장에서 경쟁관계에 있는 사업자 사이에서도 나도 을이라며 사회적보호를 주장하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불특정 사회적 약자를 통칭해서 을로 표현하는 경우도 있다. 이처럼 갑을 프레임을 마구 적용해서 소모적 논쟁을 확산시키는 것은 전혀 바람직하지 않다.

적용 범위와 개념을 확실하게 해둬야 한다. 기업간 갑을 관계는 계약 등을 통해 서로 거래관계에 있는 기업들에 적용해야지, 동일 시장을 놓고 서로 경쟁관계에 있는 사업자들을 대상으로 적용하는 것은 부적절하다. 어느 나라나 모든 산업은 소수의 대기업과 다수의 중소기업으로 구성된다.

이 때 대기업을 갑으로, 중소기업을 을로 설정하면 이야기는 자연스레 대기업의 사업을 제한하고 중소기업을 보호해야 한다는 규제논리로 이어진다. 2011년에 도입된 중소기업 적합업종 제도가 대표적 사례이다. 그러나 다윗(David)과 골리앗(Goliath)의 전쟁을 갑을 관계로 볼 수 없듯이 모든 대·중소기업 관계를 갑을 프레임으로 엮어 판단하는 것은 옳지 않다. 동일 시장의 경쟁자에 대해서까지 갑을 프레임의 잣대를 적용해 경쟁을 제한하면 다윗이 골리앗과 싸워 이길 기회를 빼앗는 격이고, 시장 본연의 창조적 파괴 기능을 정지시키며 경제의 역동적 발전을 가로막는 행위와 다름이 없다.

▲ ‘갑의 횡포’ ‘을의 눈물’ 끝낼 수 있는가?라는 주제로 열린 제2회 동반성장 심포지움에서의 발제자 및 토론자 모습. 사진=동반성장연구소 제공
갑을 프레임 논쟁의 또 다른 문제는 흔히 외부성(externality)을 간과한다는 점이다. 기업 간 갑을 관계의 설정 및 변경은 거래 당사자 외에도 병(丙)으로 또는 정(丁)으로 제3자의 위치에 있는 이들에게도 영향을 미친다. 이른바 외부효과(external effect) 이다. 예를 들어 사용자의 우월적 지위에 대해 노동자를 보호하기 위해 경영상 필요에도 불구하고 해고를 못하게 규제하는 경우를 상정해보자. 경영상 필요해도 해고를 할 수 없으면 사용자는 당연한 대응으로 신규채용을 꺼릴 것이다.

프랑스의 예를 들면, 최소 3년을 근무한 사람을 해고하려면 5년 치의 봉급을 줘야하기 때문에 기업으로서는 뾰족한 대안이 없는 경우 신규채용을 하지 않겠다고 한다. 그 결과 노동시장은 규제의 혜택을 누리는 내부자와 규제 때문에 일자리 구하기 힘든 외부자(주로 청년세대)로 양분되며 또 다른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

을인 노동자를 위한 정책이 청년 실업을 포함한 실업률과 사회갈등을 증폭시킨다는 위의 예시는 갑을 프레임 논쟁에 한계가 있음을 시사한다. 다수의 협력업체로부터 부품을 공급받아 최종 완제품을 생산하는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거래 관계, 유통기업과 제조기업의 거래 관계에도 정부가 시장거래비용을 높이는 규제를 가할 경우에도 비슷한 문제가 발생한다.

규제 때문에 거래비용이 높아지면 해당 기업들은 먼저 시장거래를 내부화하거나 또는 규제의 적용을 받지 않는 해외 협력업체로 거래선을 변경하는 방안을 강구할 것이다. 을을 위하려는 규제가 오히려 을의 거래기회를 봉쇄하는 부작용을 초래하는 셈이다. 거래비용이 상승했음에도 거래 관계가 계속되는 경우에도 문제는 여전하다. 규제에 순응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비용의 상당부분은 최종 소비자가 지불하는 가격에 전가될 것이고, 그 결과 갑도 을도 아닌 다수의 소비자 후생을 감소시키는 외부효과를 발생시키기 때문이다.

계약 및 거래 관계에서 갑의 부당한 횡포가 있다면 이는 엄정하게 규율해야 한다. 그러나 갑을 관계는 기본적으로 사적 자치와 계약 자유의 원칙에 입각하여 당사자들이 자율적으로 결정할 사안이며, 워낙 다양한 상황에서 복잡한 형태로 나타나기 때문에 정부가 획일적인 사전규제로 규율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섣부른 규제는 교각살우(矯角殺牛)의 우(愚)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특히 문제의 범위를 갑과 을의 관계로 국한하여 보는 갑을 프레임에 갇혀서 을의 입장만 챙기는 정책을 펼칠 경우 이는 을에게 善行이 될지 몰라도 丙과 丁, 일반 국민들에게는 惡行이 될 수 있음도 깊이 유의할 필요가 있다.

공적 제재보다 치명적인 시장의 역습과 처벌

갑을 문화의 왜곡된 사례가 언론의 주목을 받자, 국회는 관련 규제를 신설 또는 강화하는 법안 발의를 서두르고 있다. 남양유업 사건과 관련해서는 ‘대리점 거래의 공정화에 관한 법률’을 신설하는 법안이 발의되었고 민주당에서는 이른바 갑을 관계 3법이라고 하여 ‘하도급 거래 공정화에 관한 법률’, ‘가맹사업거래의 공정화에 관한 법률’, ‘대규모유통업에서의 거래 공정화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발의하였다. 그러나 계약 자유의 원칙에 기초하고 있는 갑을 관계에 대해 정부 규제를 추가로 신설·강화할 필요가 있는지 의문이다. 갑의 부당한 횡포를 제재할 수 있는 법률적 규제조항은 이미 존재한다.

예를 들어 공정거래법 제23조에서는 기업이 하지 말아야 할 불공정거래행위를 적시하고 있는데 그 중의 하나가 ‘거래상 지위의 남용’이다. 예컨대 남양유업 사건에서 만약 본사가 우월적 지위를 이용하여 대리점에게 판매목표를 부과하고 밀어내기를 강요했다면, 이는 공정거래법 제23조에 의거하여 공적 제재의 대상이 된다.

기존의 규제 장치가 충분한 수준인가에 대해서는 다른 의견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새로운 규제를 늘리기에 앞서 기존의 규제 법령을 제대로 적용, 집행했는지는 따져봐야 한다. 이와 관련 남양유업의 사건에서 본사의 영업사원이 대리점주에 폭언을 한 배경은 본사의 물량 밀어내기에 순순히 응하지 않았다는 이유였다. 이 문제가 여론의 주목을 받자, 공정거래위원회는 직권조사를 통해 남양유업의 우월적 지위 남용이 있었다고 판단하여 123억 원의 과징금을 처분했다.

공정위의 이 같은 처분은 현행 법률로도 갑의 불공정한 행위를 충분히 제재할 수 있음을 방증한다. 문제의 본질은 규제 법령의 부족함이 아니라 법집행의 효과성이 미흡한 데 있는 것이다. 따라서 부당한 갑의 횡포를 막기 위해 현 시점에서 필요한 것은 엄정하고 일관된 법 집행력의 보충이지, 새로운 규제법(대리점법)의 제정이 아니다.

우월적 지위를 남용하여 불공정 또는 부도덕한 행위를 한 기업에 대한 처벌은 정부의 공적 제재에서 그치지 않는다. 어떤 면에서 보면 정부의 과징금 처분보다 시장의 응징이 더 즉각적이고 치명적일 수 있다. 불미한 사건이 SNS를 통해 확산되면 해당 기업 제품에 대한 불매운동이 일파만파로 번지는 한편, 투자자의 외면(주식매각)으로 기업가치 또한 폭락하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다시 남양유업의 사례를 보자. 사건이 처음 알려진 것은 작년 5월 3일이었다. 남양유업의 주가는 그 전까지만 해도 117만원 까지 치솟으며 ‘황제주’로 불렸다. 그러나 사건이 알려진 일주일 만에 주가는 97만원으로 떨어지고 1400억원 가량의 시가총액이 사라지는 시장의 응징을 받아야 했다.

이 뿐만이 아니다. 소비자들의 불매운동 여파로 2013년 매출은 전년보다 약 10% 감소하면서 남양유업은 실적을 공시한 1994년 이후 작년 처음으로 영업이익 적자를 기록했다. (금감원에 따르면 남양유업은 2013년도에 영업손실 175억5600만원, 당기순손실 455억3900만원을 기록했다(2월 21일 공시). 2013년도 매출액은 전년보다 9.9% 감소하여 1조 2298억원을 기록했다) 규제 법률에 기초한 공적 제재보다 시장의 응징이 더 치명적이었던 셈이다. 그리고 이런 사실을 감안하면 사건이 발생할 때 마다 규제법령을 추가하려는 입법 만능주의는 버려도 좋을 듯하다.

갑을 문화 개선의 방향 : 경제적 합리성이 전부는 아니다.

이처럼 갑을 관계에서 불공정한 행위나 또는 세간의 이목을 끄는 부도덕한 행위가 발생했을 때 법률상 제재 외에도 시장의 역습과 제재로 인해 기업 가치가 크게 훼손될 수 있는 게 작금의 시대환경이다. 그런 만큼 기업으로서도 이 점을 생각해서 기왕에 구조화된 갑을 관계라 해도 혹여 불공정, 불합리한 점은 없는지 점검하고 개선하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이 때 갑의 위치에 있는 기업들이 특히 주목해서 봐야 할 부분은 지금의 갑을 계약 또는 거래조건이 경제적 합리성(economic rationality)의 한쪽으로 너무 치우쳐 있지는 않는지 따져 보는 일이다.

경제적 합리성 기준은 달리 말하면 효율성 기준이다. 경제학에서는 모든 사람이 경제적 합리성 원리에 입각해서 의사결정을 하고 선택행위를 한다고 가정한다. 다시 말하면 경제주체는 개인이든 기업이든 주어진 상황에서 이익은 최대화하고 손실은 최소화하려 한다는 가정 하에 개인의 선택, 기업의 전략, 시장의 행태를 분석한다. 어떤 면에서 경제학은 절제된 소수의 기본 정리에서 시작하여 소비자, 생산자의 복잡한 의사결정 과정을 과학적으로 분석한다는 점에서 대단히 매력적인 이론이자 학문이다. 그러나 불행히도 경제학에서 묘사하는 인간(Homo Economicus)은 우리 인간의 실제 모습과 다르다.

인간은 분명히 경제적 효율성을 추구한다. 그러나 인간은 또 다른 한편으로는 ‘누구에게든 공정하게 대접받으려 하고 본인도 알지 못하는 사람에게 조차도 공정하게 대우하려는’ 가치관을 가지고 있다. 예를 들어 인지 심리학이나 행동 경제학에서는 사람은 이론 경제학의 토대를 이루는 효율성(efficiency) 기준 외에 공정성(fairness)을 중요한 판단요소로 활용하고 있음을 강조하고 있다. 이때의 공정성은 단순히 누군가를 도와주는 이타심(altruism)과도 다른 차원이다. 인간의 이러한 속성을 간과하고 경제적 합리성의 한 가지 잣대로만 협력회사와 관계를 설정하거나 또는 소비자에게 마케팅 전략을 펼칠 경우 경제이론으로는 예상하지 못한 을의 분노와 시장의 역습에 직면할 수 있다. 따라서 기업이 영속기업으로 계속 성장, 발전하려면 경제학적 합리성을 뛰어 넘는 차원에서 종업원, 협력업체, 소비자 등의 이해관계자와 새로운 관계 문화를 만들어야 할 것이다.

경제적 합리성만으로 부족한 이유: 최후통첩 게임과 乙의 역습

경제 이론적 합리성만으로는 을의 역습 또는 시장의 반격을 피하기 어려운 까닭을 예를 통해 살펴보자. 게임이론에 흔히 최후통첩 게임(ultimatum game), 또는 독재자 게임(dictator game)이라는 게 있다. 내용은 이러하다. 여기에 갑과 을, 두 사람이 있고 둘은 서로 모르는 사이다. 이 때 누군가 나서 갑에게 1만원을 주며 을과 나눠 갖되 분배비율을 갑이 정하라 한다. 두 사람은 서로 상의할 수 없다. 을은 갑의 제안에 대해 동의 또는 거부 중 하나만 결정할 수 있다. 만약 갑이 말한 분배율 제안에 을이 동의하면 그대로 돈을 나눠 갖고, 만약 을이 갑의 제안을 거부하면 두 사람 모두 한 푼도 가질 수 없다. 재협상은 없다. 이런 경기규칙 하에서 우선 제안권이 있는 갑은 을에게 어떤 분배비율을 제안하는 게 최선(합리적)일까? 만약 여러분이 갑이라면 어떤 제안을 할 것인가? 이 과정에서 갑이 어떤 제안을 했는지는 제3자에게 전혀 공개되지 않기 때문에 갑은 자기의 이익 극대화를 추구하면 된다.

이 실험에서 경제적 합리성을 기반으로 하는 이론적 해법은 甲이 거의 전부를 갖고 乙에게는 500원, 또는 많아야 1000원을 제시하는 것을 정답으로 한다. 그 이유는 이러하다. 갑은 분배 제안을 하기에 앞서 乙의 반응, 乙의 선택지에 대해 먼저 생각해볼 것이다. 乙의 입장에서 생각하면, 돈이란 것은 한 푼이라도 있는 게 없는 것보다 낫다. 따라서 이 점을 간파한 甲은 乙에게 조금만 주어도 乙이 제안을 거부함으로써 게임을 파토내지 않을 것이라는 합리적 기대를 하게 된다. 그래서 甲은 전혀 낯선 사람인 乙에게 ‘껌 값 제안’을 하는 게 이론적 정답이다. 이 거래에 대해 이론 경제학자들은 갑과 을 모두가 이득을 봤기 때문에 호혜적(mutually beneficial) 또는 相生적 거래라고 해석할지 모른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몫을 갑이 가져갔다고 해도 을에게도 껌 값이지만 없는 돈이 생겼기 때문이다.

실제 실험을 한 결과는 어땠을까? 이 실험은 경제심리학자이며 2002년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했던 다니엘 카네만이 했 것인데, 실제 대학원생을 대상으로 실험한 결과는 이론 경제학이 예측한 것과 판이했다. 피실험자들은 서로 모르는 사이임에도 반씩 나누자고 한 경우가 실험집단별로 차이가 있지만(경영학 전공자가 갑인 경우 63%, 심리학 전공자가 갑인 경우 近 80%) 절반을 넘었다. 이론 경제학의 예상과 달리 갑이 80% 이상으로 절대 몫을 갖겠다고 제안한 경우는 오히려 드물었다. 더욱 중요한 것은 갑이 대부분을 갖겠다고 한 경우 을은 그 제안을 거부함으로써 양쪽 다 한 푼도 받지 못하도록 ‘빈털터리 전략’을 구사했다는 사실이다. 을의 역습이 작용한 것이다.

이 놀라운 사실에 다른 학자도 비슷한 실험을 여러 형태로 반복했으나 결과와 시사점은 늘 비슷했다. 즉 실제 인간관계에서는 본인이 경제적 이득을 얻을 기회가 있었음에도 공정하지 못하다고 생각하는 거래에는 참여를 거부하거나 또는 자기희생을 감수하더라도 불공정 거래자를 응징하려는 성향이 실재하고 광범위하다는 것이다. 따라서 실제 세계에서는 단순히 상대방(을)에게도 득이 된다는 이유만으로는 우호적이고 생산적인 관계 발전을 기대하기 어렵다. 거래 상대방이 고객이든 종업원이든 또는 협력회사이든, 상대방과의 장기 반복적인 관계를 통해 계속해서 발전하기를 원한다면 경제학적 합리성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을의 역습’과 ‘여론·시장의 동조 및 반격’ 현상과 그 원인에 대해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시대 환경이 바뀌고 이해관계자의 눈높이가 바뀐 만큼 기업활동 관련 갑을 계약 또는 거래 관행에 바뀌어야 하는 부분이 있다. 갑의 지위에 있는 기업에 의한 부당한 횡포에 여론이 비등하자, 갑을 프레임을 확대 해석하면서 규제를 더 많이 신설·강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있으나 이는 바람직하지 않다.

우월적 지위의 남용은 이미 법에서 금지한 사안으로 추가적인 규제입법이 아니라도 집행력을 보충하면 충분히 규율이 가능한 사안이다. 게다가 문제를 일으킨 기업은 법률상 제재 외에도 시장에서 그 이상의 처벌을 받는 게 작금의 현실이다. 굳이 이중, 삼중의 복잡한 규제입법을 만들어 규제 순응과 규제 집행을 더욱 어렵게 하는 것은 득보다 실이 크다.

갑을 관계는 정부 규제에 앞서 기업들 스스로 인식을 바꿔서 관행과 문화를 개선해야 하는 과제이다. 먹고 살기 힘든 시대와 달리 이제는 사회 전반에 경제적 효율성 외에 공정성 가치를 함께 평가하는 경향이 퍼지고 있다. 소득수준이 기초생계 수준을 넘으면서 상대방으로부터 공정하게 대접받고, 공정하게 대접하려는 성향도 높아진다.

사람들은 법률과는 별개의 차원에서 무엇이 공정하고 불공정한지에 대해 저마다의 내적 규칙을 갖고 판단하며, 불공정하다고 판단한 행위에 대해서는 자기희생이 따르더라도 응징하려고 한다. 이런 점을 간과한 채 경제적 합리성으로만 갑을 관계를 구조화해서는 예상치 못한 을의 역습과 시장의 응징에 해당기업은 커다란 위험에 빠질 수 있다. 갑을 문화의 올바른 정립이 기업의 생존과 지속 발전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변수로 인식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E21

본 기사는 월간지 <이코노미21> 3월호에 게재된 글입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