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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종된 대화, 안개 속 노동개혁
실종된 대화, 안개 속 노동개혁
  • 장홍근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
  • 승인 2014.08.06 1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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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정책의 실종 ④> 인수위, 사회적 대타협, 신뢰와 상생의 노사관계 전환, 노동위원회 기능 강화 제시…철도노조 파업 이후 노사정대화 중단 상태

채 1년이 지나지 않았다. ‘보수정권 아래에서 지속가능한 고용노동개혁의 가능성’을 조심스레 낙관한 때가. 2013년 봄 필자는 한 토론회에서 그러한 전망을 내놓았다. 참석자 다수는 갸웃했지만 일부는 고개를 끄덕였다. 필자 나름의 근거는 다음과 같았다. 비록 보수정당이 재집권했지만 2012년 총․대선을 거치면서 경제민주화와 복지가 거스를 수 없는 대세임이 확인되었고 대통령직 인수위 보고서나 고용노동부의 부처 업무보고에서도 그러한 기조는 그리 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약속의 정치인’이 대통령으로 취임한 뒤였기에.. 부가적인 근거의 하나로 그런대로 믿을 만한 고용노동정책 핵심 라인업을 들었었다. 1년이 지난 현 시점에서 보면 그 때의 전망은 모두 ‘기대의 오류’에 따른 잘못된 전망이었던 것처럼 보인다. 과연 그러한가? 이 글에서는 고용노동시스템의 혁신과 그것을 위한 방법론인 ‘사회적 대화와 타협’의 가까운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짚어본다.

지난 2년간의 복기

고용노동분야 개혁과 사회적 대타협이라는 키워드를 가지고 2년 전 시점으로 거슬러 올라가 보자. 2012년 역사의 분수령이 된 4월 총선과 12월 대선 공약을 제1악장 주제로 해서 현재까지 제4악장이 연주되었다. 제5악장은 다가올 미래이다.

(1) 제1악장 주제: 2012년 총․대선, 그리고 인수위 보고서

2012년 12월 대선 전초전 성격으로 치러진 4.11 총선은 집권여당(새누리당)의 극적인 역전승으로 끝났다. 불과 총선 몇 달 전만하더라도 정권말기의 각종 악재들이 터져 나오며 집권여당인 한나라당의 완패가 예측되었지만 여당은 파격적인 변신을 통해 총선을 승리로 장식하였다. 여당의 변화는 대표적인 재벌개혁론자인 김종인씨와 합리적 보수주의자를 자임해온 이상돈 교수, 참신한 청년 엘리트 이미지의 이준석 등을 비상대책위원으로 영입하면서 시작되었다. 이후 안팎의 논란을 무릅쓰고 당명을 바꾸고 정강, 정책 방향을 선회하여 한국 보수대중정당에 어울릴 것 같지 않았던 ‘복지와 경제민주주의’를 공약 전면에 내걸어 재계의 우려와 아울러 야권과 정책 차별성을 희석시키는 데로 나아갔으며, 공천과정에서 도덕성이나 과거 발언 등에서 문제가 된 인사들을 신속히 탈락시키는 과단성을 보여주었다. 보수정당의 ‘새빨간’ 선거 점퍼는 한국정치사상 초유의 것이자 어떤 변화라도 두려워하지 않겠다는 결연한 의지를 담은 상징적 칼라로 각인되었다. 한국의 보수정치세력은 권력을 잡기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용기가 있음을 보여주었다.

4월 총선에서 새누리당이 내건 고용노동정책은 주로 일자리 분야에 집중되었다. 향후 고용노동분야 정책 방향을 보여줄 핵심 공약들은 다음과 같았다. 청년창업투자시장 활성화, 스펙초월 취업시스템 도입, 청년취업지원센터 설립, 중소기업 취업 청년구직자 혜택 등 청년 고용 관련 공약이 많았지만 특히 눈길을 끈 것은 비정규직 관련 공약이었다. 차별시정 대표신청 시정제도의 도입, 대기업 고용형태 공시제도 도입을 통한 비정규직 축소, 2015년까지 공공부문 상시 지속적 업무 종사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비정규직 줄이기 위한 정책의 지속적 추진, 사내하도급 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 제정 등이 비정규직 관련 공약이었다. 이외에 저임금 근로자 및 사업주 대한 사업보험료 지원, 실근로시간 단축, 노조 전임자 등 노동조합법 시행과정에서 생기는 문제점을 노사자율 원칙을 토대로 노사정 협의를 거쳐 제도 개선함 등이 공약에 포함되었다.

12월 대선은 4월 총선 확장판이었다. 총선 승리의 여세가 지속되는 가운데 새누리당은 그간 보수진영의 취약지대로 여겨져온 고용노동분야 선거 공약에서도 야권에 거의 뒤지지 않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일자리 늘(리기)․지(키기)․오(올리기)’로 요약되는 일자리 공약은 지난 2012년 대선 당시 새누리당의 핵심 공약 중의 하나였다. 새누리당은 지난 대선에서 ‘고용안정을 우선으로 하면서 기업 경쟁력을 회복하는 일자리 지키기 정책’을 추진하고 ‘비정규직, 저임금 일자리를 괜찮은 일자리로 만들기 위해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고, 사회안전망의 보호를 강화’하며 “일자리 늘․지․오 정책을 통해 앞으로 5년 안에 15~64세의 고용률을 EU 목표와 동일한 수준인 70%까지 높이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공약하였다(새누리당, 2012:174).

사회적 대화와 타협과 관련된 공약도 빠지지 않았다. 대화와 상생의 노사관계 정착 항목에서 새누리당은 “노사관계에서 대화와 타협을 통한 상생의 노사관계가 정착될 수 있도록 정부의 공정한 조정 중재자 역할을 강화하고”, “일자리 만들기, 비정규직 보호, 노동기본권 강화 등 노사관계 주요 쟁점들에 대해 노사정위원회에서 사회적 대타협으로 해결”하며 “대통령이 정기적으로 노사 대표와 만나 노동현안에 대해서 의견을 듣고 대책을 논의”하겠다고 약속하였으며 구체적인 실천사항으로 노동위원회의 기능 강화와 노사정위원회의 역할과 기능 강화를 제시하였다(새누리당, 2012:191).

또한 “근로시간면제제도 및 복수노조 시행과정에서 나타난 제반 쟁점들에 대해 노사정위원회 논의를 통한 합리적인 제도보완 방안 도출” 그리고 “노사정위원회 논의를 토대로 자유로운 노조활동과 노동기본권을 보장하도록 제도개선을 추진하여 공정한 노사관계 법 제도 정착”을 약속하였으며 구체적 실천사항으로 노사정위원회에서 근로시간면제제도, 복수노조 제도 보완방안 논의, 노사정위원회 합의시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개정 등을 적시하였다(새누리당, 2012:192).

대선 공약에 이어 대통령직인수위원회의 국정과제제안서에도 고용률 70% 달성과 사회적 대화 타협은 중요한 국정 목표의 하나로 명시되었다.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보고서는 제1 국정목표인 ‘일자리 중심의 창조경제’ 가운데 아홉 번 째 국정과제에서 “고용친화적 정부정책을 통해 고용률 70% 달성을 지원”하겠다고 천명하였다(제18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2013:23).

인수위 국정과제 보고서는 사회적 대화와 타협 관련 내용도 구체화하였다. 대화와 상생의 노사문화 구축을 통해 노사관계안정 및 일자리 창출을 지원하기 위한 주요 추진계획으로 사회적 대타협, 신뢰와 상생의 노사관계 전환, 노동위원회 기능 강화의 세 가지를 제시하였다. 사회적 대타협과 관련하여 참여주체 확대, 논의의제 다양화 등 노사정위원회 개편을 통한 실질적 사회적 대화 국민기구로의 정착 지원, 중앙 및 지방단위 노사정 대화채널을 활성화하고, 산업현장 단위 노사협의회의 적극적 역할 수행 지원, 범 국민적 참여와 역량 결집을 통해 경제사회 전반의 이슈를 포괄하는 사회적 대타협 추진 등을 제시하였다.

신뢰와 상생의 노사관계 전환과 관련하여 노사문제는 「법ㆍ질서 준수」, 「신뢰와 타협」 가치를 존중하면서 노사 자율 해결기조를 실천에 옮기며, 전근대적이고 불합리ㆍ불법행위 근절 및 위반시 법에 따라 엄정 조치를 취하고, 사회적 책임 실천 우수노사 발굴 및 모범사례 확산에 노력하기로 하였다. 또 복수노조와 근로시간면제제도는 시행상황을 평가하여 필요한 경우 노사정간 합리적 보완방안을 논의하도록 하였다(제18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2013:165).

(2) 제2악장 변주: 정부 출범, 5.30 일자리 협약과 6.4 ‘고용률 70% 로드맵’

2013년 2월 새 정부가 출범하였다. 고용노동부 장관에 이전 정부 시절 정부로부터 갖은 박해를 받았던 노동연구원 출신의 고용노동문제 전문가인 방하남 박사가 깜짝 발탁되었다. 정부의 고용노동정책 방향이 이전 정부와 분명하게 차별화될 것임을 보여주는 인사로 인식되었다. 3월 29일 ‘함께 일하는 나라, 행복한 국민’이라는 제목으로 2013년 고용노동부 국정운영보고가 있었다. “국민 모두에게 일자리 행복을 드리고 대기업과 중소기업, 정규직과 비정규직, 노와 사가 상생하는 일터를 만들겠습니다”라는 부드러운 문구가 표지를 장식했다. 주요 내용은 다섯 가지로 나뉘었다. 첫째, 고용률 70% 달성, 일하는 행복이다. 정부는 고용률 70%가 GDP 3만불 국가로의 도약 중산층 70% 복원의 핵심과제로 파악하였다. 이를 위해 일자리 중심의 국정운영, 청년층을 위한 스펙초월 채용 시스템 도입, 국가직무능력표준(NCS) 개발 보급, 여성을 위한 육아휴직 대상 자년 연령 확대, 반듯한 시간제 일자리, 장년층을 위한 정년연장(고령자고용촉진법 개정), 장시간 근로 축소 및 다양한 근로시간과 근로형태 확산 등을 약속하였다.

둘째 일자리의 질 제고이다. 상반기 중 공공기관 상시 지속적 업무 수행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계획 수립 및 추진, 대기업의 고용형태별 고용현황공시제도, 비정규직에 대한 반복적 악의적 차별에 대한 징벌적 금전보상제도 도입, 사내하도급 근로자에 대한 보호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셋째 노사관계와 관련한 것으로 ‘미래창조형 상생의 노사관계’를 제시하였다. 중앙 노사정위원회와 지역 노사민정협의회, 현장 노사협의회에서의 노사정 대화를 강화하고 정부는 공정한 중재자와 조정자의 역할을 수행함으로써 균형잡힌 노사정 파트너쉽이 만들어지도록 지원하는 한편, 노사정 대타협을 추진하여 노사간 신뢰회복을 통해 상생의 노사관계가 자리잡도록 지원하겠다고 천명하였다.

이와 같은 정부 고용노동정책의 연장선상에서 2013년 5월 30일 ‘고용률 70% 달성을 위한 노사정 일자리 협약’(일명 5.30 일자리 협약)이 발표되었다. 5.30 일자리 협약은 짧았지만 깊이 있는 노사정 사회적 대화를 통해 도출된 의미있는 사회협약으로서 비록 과정이나 절차 면에서 다소 하자가 없지 않지만 고용률을 주요 국정 과제로 제시했다는 점에서 대체로 긍정적 반응을 끌어내었다. 5.30 일자리 협약은 서문과 다섯 개의 장으로 구성되었다. 제1장은 규제합리화와 중소기업 육성을 통한 일자리 창출 기반 조성, 제2장은 청년, 중장년 및 여성 일자리 확충, 제3장은 근로시간 임금체계 개선을 통한 일자리 창출 여력 확대, 제4장은 고용안정을 위한 협력과 근로조건 개선을 통한 일자리 질 개선, 제 5장은 노사정간 일자리 창출을 위한 사회적 대화 활성화와 노사정일자리 협약의 충실한 이행 등을 담았는데 제 5장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가. 노사정은 일자리 창출을 위한 사회적 대화를 활성화 하기 위해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의 기능과 역할을 강화하는데 합의하고 아래와 같은 내용으로 법 개정이 조속히 이루어지도록 노사정 실무협의를 진행한다.

- 중소기업·소상공인·여성·청년 등 참여 범위 확대

- 경제·산업·복지 등 논의의제 확장

- 논의시한 및 의사결정 구조 합리화

- 이행평가 기능 강화

나. 노사정은 “노사정 일자리협약”이 지역 단위에서 확산될 수 있도록 지역노사민정협의회를 중심으로 실천방안을 마련·추진토록 지원한다.

다. 노사단체는 “노사정 일자리협약”이 사업장 단위에서 실천될 수 있도록 소속노조 및 회원사에 대해 지원하고, 임·단협 교섭과정에 반영될 수 있도록 적극 노력한다.

라. 노사정은 향후 공동 점검단을 구성하여 이행상황을 점검하고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는 이를 지원한다.

▲ 제82차 노사정위원회 본회의가 2013년 7월 29일 서울 여의도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 대회의실에서 열린 가운데 참석위원들이 손을 잡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왼쪽부터 윤상직 산업통산자원부장관,이희범 한국경총회장, 김정숙 한국여성단체협의회회장,김대환 노사정위원장,현오석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장관,문진국 한국노총위원장,방하남 고용노동부장관. 사진=뉴시스

5.30 노사정 일자리 협약은 신속하게 정부 정책 영역으로 심화•확대되었다. 2013년 6월 4일 정부는 관계부처 합동으로 ‘고용률 70% 로드맵’을 발표하였다. 6.4 고용률 70% 로드맵은 4.30 일자리 협약의 정신을 정부 정책으로 구체화한 것이었다. 주요 내용은 ‘1.창조결제를 통한 일자리 창출’ ‘2.일하는 방식과 근로시간 개혁’, ‘3.여성 청년 등 비경제활동 인구의 고용가능성 제고’, ‘4.일자리를 위한 사회적 연대와 책임 강화’ 등이었으며 이를 위한 추진체계로 ‘국민일자리 행복회의’를 설치하고, 장관급인 국무조정실장이 주재하고 관계 부처 장관으로 구성되는 ‘일자리지원협의회’를 통해 정기적으로 주요 과제 이행상황을 모니터링하고 개선방안을 마련키로 했다.

(3) 제 3악장: 반전

정부 출범 이후 상반기까지 비교적 순항하는 듯이 보이던 정부 고용노동정책이 여름을 지나며 갑자기 요동치기 시작하였다. 사단은 노사관계 더 엄밀하게는 노정관계 영역에서 벌어졌다. 2013년 8월 지리한 실무협의과정에서 거의 다된 것처럼 보이던 전국공무원노동조합의 합법화가 결국 무산되었다. 해고된 조합원이 조합원 자격을 유지하면서 전임자 노릇을 버젓이 하고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공무원 노조법 위반이라고 했다. 전공노는 나름대로 노정대화를 통해 정부 측의 요구를 상당 부분 수용했는데 정부가 약속을 어겼다고 반발했고 정부는 노조 측이 정부의 합법화 선결 요구를 이행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2013년 10월 25일 정부는 전교조가 해고된 교원의 조합원 자격을 유지하는 노조규약 관련 조항을 수정하라는 거듭된 지시와 최후통첩에도 불구하고 이 조항을 고치지 않고 고수한다는 이유로 마침내 ‘노조 아님 통보’를 하였다. 1989년 출범하자마자 1,500여명의 교사가 노조를 만들었다는 이유로 교단에서 쫒겨나고 혹독한 시절을 버텨낸 끝에 마침내 김대중 정부 시절인 1999년 노사정위원회가 교원노조 합법화에 합의함으로써 합법노조가 된 이래 우리나라 최대 교원노조로 활동해 온 지 15년이 지났고 지금도 여전히 6만여 명의 교직원이 가입해 있는 노조가 졸지에 법외노조의 위기에 빠진 것이다. 전교조는 즉각 정부의 ‘노조아님 통보’ 행정조치의 부당함을 주장하며 법원에 가처분 신청을 하였고 11월 13일 서울행정법원은 전교조가 낸 ‘노조아님 통보 집행정지신청’에 대하여 이유있는 것으로 판단하여 ‘인용’ 결정을 내렸다. 법원은 “이 사건 처분의 효력이 계속 유지되는 경우 실질적으로 교원노조법 등에 따른 노조활동이 상당히 제한될 수 밖에 없는 손해를 입게 되고 이러한 손해는 그 범위를 확정하기가 쉽지 않으므로 ‘회복하기 어려운 손해’에 해당하고, 그 집행을 정지할 긴급한 필요가 있음”을 이유로 들었다. 전교조는 당분간 교원노조법상 합법적 노조로서의 지위를 유지하게 되었지만 합법과 비합법의 위태로운 경계선에 놓이게 되었다.

(4) 제4악장: 현재 혼동

2013년 12월에 한국노총은 위원장 선거 국면 아래에서 일체의 노정대화 거부를 선언한다. 이유는 다 아는 대로이다. 바로 그 며칠 전 철도파업이 있었고 정부는 파업지도부 검거를 이유로 민주노총 본부에 강제로 진입하였다. 노총은 ‘정부가 사과하고, 책임자를 처벌’할 때까지 일체의 노정 대화에서 철수한다고 천명했다.

현재 우리나라 중앙 사회적 대화 기구인 경제사회노사정발전위원회의 모든 의제별, 업종별 회의체는 정상적으로 가동되고 있지 못하다. 작년 12월 노총의 노정대화 단절 선언 이후 석달 넘게 파행 상태가 이어지고 있다. 그 사이 한국노총 신임 집행부의 출범을 알리는 대의원 대회가 있었고 바로 전에 위원장 선거가 있었다. 위원장 선거와 신집행부가 출범하면 정상화를 위한 실마리가 풀릴지 모른다는 희망도 있었지만 물거품이 되었다. 노사정위의 ‘일가정 양립을 위한 일자리위원회’가 파행되고 있는 가운데 정부는 관련부처 합동으로 2월 4일 ‘일하는 여성의 생애주기별 경력유지 지원 방안’을 발표하였다. 상당 부분 노사정위원회의 의제별 회의체인 일자리위원회에서 다루거나 다룰 예정이었던 의제와 밀접히 연관된 것이었다.

한편 국회 환경노동위원회는 2월 14일 노사정위원회를 통한 중앙 사회적 대화가 단절된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산하에 ‘노사정 사회적 대화 촉진을 위한 소위원회’를 4월 15일까지 한시적으로 설치하고 근로시단 단축, 노정 노사관계 쟁점, 통상임금 등을 논의하기로 하였다고 발표하였다. 민주노총은 국회 소위에서 수용하기 어려운 요구조건을 내걸었고 수용되지 않자 불참하였다. 국회 ‘사회적 대화 촉진 소위’가 소기의 성과를 거두고 성공적으로 사회적 대화를 복원시킬 수 있을지 미지수이다.

이 와중에 고용노동부는 1월 23일 전국 근로개선지도과장 회의를 열어 “통상임금 노사지도 지침”을 공표하고, 직무•성과 중심의 임금체계 개편 추진 의사를 천명하였다. 이어서 3월 20일 정부는 임금구성의 단순화, 호봉제의 축소, 성과 연동 상여금 도입 등을 골자로 하는 ‘합리적 임금체계 개편 매뉴얼’을 발표하였다. 노동계는 정부의 일방주의적 방식과 아울러 고령자의 임금을 깍아 사용자의 이윤을 보장하려는 사용자 편향적 내용으로 가득차 있다고 비판하였다.

대화의 실종, 노사정 모두 파행 책임으로부터 자유롭지 않아

역사는 결코 단선적으로 발전하지 않는다. 수많은 시행착오와 굴곡, 복고와 우회로를 거치며 필연적 계기와 우연적 계기들이 종횡으로 교직하는 가운데 서서히 강물처럼 나아간다. 작년 하반기 이래 몇 개의 우연적 계기들로 난관에 봉착해 있지만 노동개혁 곧 전반적인 고용노동시스템의 개혁은 피하거나 미룰 수 없는 과제로 우리 앞에 와 있다. 통상임금 논란, 휴일근로의 연장근로 한도 산입, 정년연장 등의 이슈들은 현존하는 고용노동시스템의 근본 문제와 연관되어 있다. 정부나 재계 입맛대로 풀 수 없다. 노사정 간의 진지한 대화와 타협을 필요로 한다.

하지만 지금 대화는 실종되어 있다. 노사정 모두 사회적 대화의 파행 책임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정부는 누가 뭐래도 사회적 대화기구의 산파였지만 이후 사회적 대화가 제대로 정착되도록 노력했는지 자성해 볼 필요가 있다. 1998년이나 2008년 경제위기 극복 때처럼 필요한 경우 사회적 대화를 곧잘 이용했지만 평상시엔 거추장스러운 절차로 치부해 오지 않았는지 되돌아보아야 한다. 경제계는 사실상 1998년 이후 사회적 대화의 과실을 누구보다 많이 누려온 주체이다. 우리나라 사회적 대화의 성과가 여러 면에 거쳐 있지만 가장 두드러진 부분은 노동시장의 유연화와 관련한 노동계의 양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회적 대화의 최대 수혜자인 사용자측이 대승적 자세로 사회적 대화에 임하여 왔다고 보기는 어렵다.

노동계는 사회 조합주의를 표방하는 한국노총의 참여와 민주노총의 불참으로 갈린다. 기본적으로 참여 입장을 견지하고 있지만 한국노총 역시 전술적 필요에 따라 참여와 탈퇴를 반복해오고 있다. 노동계 일각에서는 정부나 사용자측의 사회적 합의 불이행, 그리고 노사정위의 정부 들러리 역할 및 독립성 결여 등을 들어 노사정위 무용론 혹은 해체론을 견지하고 있다. 일정 부분 공감이 가지 않는 바는 아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회적 대화에 참여할 이유는 적지 않다.

어떤 면에서 지난 15년간 노사정위의 외부에 머물러 있는 노동계 일각은 사회적 대화의 정치에 관한 한 장외 평론정치에 머물러 있었고 적극적 사회적 대화 노동정치의 기회를 스스로 거부한 셈이다. 이는 혼자서 결정하고 실행할 수 있는 투쟁의 정치에 비해 훨씬 복합적인 정책역량과 상대방과의 소통, 설득 역량을 필요로 하는 노동정치 학습의 장을 걷어찬 것이며, 이는 노조 정책 역량의 약화 더 나아가 조직역량 및 사회적 지지의 약화와도 무관치 않을 것이다. 대화가 만병통치약이 아니듯 투쟁이나 비토전술도 능사는 아니다. 투쟁은 결국 협상의 정치장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하기 위한 것일 때 의미를 발한다. 전략적 선택이 필요한 이유이다.

2012년 총선과 대선에서 시작하여 새 정부 출범 직후까지 이어져오던 노동개혁의 움직임이 이후 사회적 대화의 실종과 더불어 짙은 안개 속으로 빠져들었다. 다시 불씨를 살려야 한다. 대화는 복원되어야 하고 노동개혁의 발걸음은 다시 내디뎌져야 한다. 문제는 산적해 있고 해결이 지연되면 될수록 그 피해는 고스란히 우리 사회의 한계 계층에게로 전가된다. 결단의 순간에 전략적 선택을 할 줄 아는 지혜와 용기가 그 어느 때보다 우리 사회의 노사정 주체들에게 요청되는 때이다. E21

본 기사는 월간지 <이코노미21> 4월호에 게재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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