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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노동시장 개선해야 사회양극화 극복 가능
이중노동시장 개선해야 사회양극화 극복 가능
  • 조성재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
  • 승인 2014.08.07 1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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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반성장의 길을 찾아서 ⑥> 300인 이상 사업장 근로자 비중 21.6%에서 13.7%로 감소

양극화 현상과 노동문제

양극화라는 단어는 이러한 모순적 상황을 이해하는 핵심 용어이다. 분명 경제는 성장하고 있지만, 소수의 가진 자들만이 잔치를 벌이고 있고, 중산층이 약화되면서 빈곤층이 점점 두텁게 쌓이는 현상이다. 수출 대기업을 중심으로 한 경제성장의 효과가 각 부문으로 제대로 전달되지 않아 ‘아랫목이 따뜻해도 윗목은 추워서 떨고 있는’ 시대를 일컫는 말이기도 하다. 또 다른 말로는 경제의 선도부문의 성과가 물이 넘쳐흐르듯 하층부문에 전달되는 낙수효과(trickle-down effect)가 작동하지 않는다고도 할 수 있다.

경제양극화는 사회적 계층 분리 혹은 병리현상들과 밀접한 관련을 갖는다. 이러한 경제와 사회를 연결하는 주요 고리가 바로 노동문제이다. 노동은 생산의 요소이자, 임금소득을 통하여 내수를 떠받쳐주는 가계 부문을 구성한다. 다른 한편으로 노동은 개인과 가구의 생존조건을 규정할 뿐 아니라 자기실현의 핵심적인 경로이다. 따라서 누구나 일할 권리를 갖고 있으며, 국가는 국민들이 괜찮은 일자리(decent job)를 가질 수 있도록 적극적인 정책을 펴야 한다.

경제와 사회의 연결고리로서 노동을 바라보면 우리 사회 양극화 현상이 노동문제와 직결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비정규직이나 중소영세기업 노동자의 불안정한 고용이나 저소득이 대기업 정규직의 고임금과 대비되어 비쳐진다. 이른바 이중노동시장이 구축되어 상호 이동이 원활하지 않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우리나라에서 1차 노동시장은 얼마나 안정적인가? 1차 노동시장에 속한 노동자들의 수는 늘어났는가, 줄어들었는가? 통계청의 전국사업체조사 결과에 따르면 300인 이상 사업체 종사 근로자의 비중은 1993년 21.6%였으나, 2009년에는 불과 13.7%로 줄어들었다. 300인 이상 대규모 사업체가 일반적으로 괜찮은 일자리를 제공한다고 가정하면 우리나라의 1차 노동시장은 빠르게 축소되어 왔으며, 국제 수준에 비해 지나치게 낮다고 볼 수 있다. 이는 우리들 주변의 경험과 일치하는 양상이다. 즉 지난 10여 년 이상의 시간 동안 많은 아웃소싱과 비정규직화 사례, 그리고 번듯한 일자리에서 조기퇴직 당하는 중고령자를 수없이 보아온 것이다.

기능부전에 빠진 노사관계

그렇다면 세계 최고의 전투성을 가졌다고 평가되어온 한국의 노동조합은 이 과정에서 무얼 하고 있었을까? 필자의 연구에 의하면 비정규직이나 영세기업 노동자의 근로조건을 보호하는 것은 제쳐두고라도 자기 조직 조합원들의 고용도 지키지 못했던 것으로 나타난다. 노조로 인한 경직성을 많은 경영자들이 호소해 왔지만, 우리나라 기업들, 특히 재벌기업들은 거침없는 성장을 거듭해 왔다. 그렇다고 노조가 일방적으로 수세에만 몰렸던 것도 아니다. 일부 재벌 대기업의 노조는 여전히 매년 1,000만 원대가 넘는 임금인상 효과를 누리고 있다.

결국 노동시장의 구조와 노사관계 시스템의 특성, 그리고 이들과 상호작용하는 경제 전반에 대한 포괄적 이해와 토론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우리 사회경제는 어떠한 문제를 안고 있기 때문에 양극화 현상이 나타난 것일까? 양극화는 언제부터 본격적으로 진행되었나? 경제 각 주체는 이 문제에 대해 어떤 책임을 갖고 있는가? 해결 방안은 있는가? 올바른 해결 방향은 무엇인가?

양극화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취약계층과 노동자층을 대변하는 노동자 조직이 건실해야 하지만, 주지하다시피 우리나라의 노조 조직률은 10% 내외에 불과하다. 그마저도 한국노총과 민주노총으로 세력이 갈라져 있으며, 최근 수년간은 어느 쪽에도 속하지 않은 미가맹 조합들이 급증하였다. 조직률이 10% 내외인 것은 프랑스도 비슷한 상황이지만, 프랑스 등 유럽국가들과는 달리 산별 노조가 덜 발달되고 산별 협약의 효력확장제도가 미비하여 노조에 의한 근로자 이익대변은 조직률인 10%와 거의 유사한 수준일 뿐이다.

또한 이러한 상황을 인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지난 10여 년간 산별로 조직을 전환하고 산별 교섭을 성사시키기 위한 절절한 노력들이 이루어졌으나, 아직은 ‘무늬만 산별’이거나, 산별의 영향력이 제한적일 뿐인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상황에서 사업장단위 복수노조 허용과 함께 이루어진 교섭창구 단일화 관련 제도는 초기업단위 교섭에 더욱 불리하게 작용하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여전히 기업별로 파편화된 노사관계 구조 속에서 지불 능력이 양호한 재벌계 사업장, 혹은 안정된 사업을 영위하는 공기업 위주로 고용안정 및 고소득이 교섭에서 다루어질 뿐이며, 중소영세 사업장 근로자와 비정규, 특수고용 근로자들의 이해대변은 올바로 다루어지지 않고 있다. 결국 노동시장 양극화를 노사관계가 제어하는 것이 아니라, 더욱 공고하게 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비판에 직면해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누가, 어떻게 이러한 상황을 돌파하여 양극화로 인해 몸살을 앓고 있는 이 사회를 구원할 것인가? 정부로 대표되는 국가권력이 새로운 노사관계 질서를 창출해낼 수 있을 것인가? 그 새로운 질서는 노동시장의 단점과 문제점을 보완하는 시스템을 내장하게 될 것인가? 노동체제를 구성하는 요인들 및 요인 상호 간 관계에 대한 분석과 역사적 평가에 기초해 볼 때 최근 우리나라 노동체제에서 노동시장의 모순과 단점을 치유하기에는 노사관계와 국가의 역할이 지나치게 취약한 것으로 보인다. 수많은 노동 대중들을 약육강식의 정글 세계에 던져두고 복지공동체를 구상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기업별 노사관계시스템이 재벌 주도의 경제체제에 대하여 유의미한 반작용을 하지 못해왔다면 이에 대한 정확한 평가와 대안 담론에 대한 논의가 보다 더 활성화될 필요가 있다.

새로운 노사관계 이념

한국전쟁 이후 지난 60여 년의 시기는 폐허와 가난을 극복하고 북한과의 체제 경쟁에서 승리하기 위한 추격(catch-up) 이념이 지배한 시기였다. 1960년대 이후 1980년대까지 추격의 미명하에 독재체제가 등장하기도 하고, 정치적 민주화 이후에는 효율적 시장을 통한 추격 전략으로 그 수단과 방법이 바뀌었을 뿐 국가의 목표와 담론은 선진경제 수준에 어떻게 하면 빨리 도달할 수 있는가에 초점이 맞추어졌다. 따라서 1987년 이후 약 10년간 노동조합이 ‘의인’으로 등장한 짧은 시기를 제외하면 우리 사회에서 노동조합과 노동운동은 국가적 과제를 몰각한 경쟁력 확보의 저해 세력이었을 뿐이다. 결국 담론 차원에서는 ‘이기주의자’ 낙인을 찍고 제도권 내에서 순치해야 할 대상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결과 노동조합과 노사관계는 노동시장의 양극화 및 분배악화를 견제하고 보정해야 할 역할을 제대로 수행할 수 없었는데, 구조적으로 기업별 노사관계 시스템이 오랫동안 고착화된 것도 그것에 영향을 미쳤다.

결국 새로운 체제를 구상함에 있어서 이러한 경제성장과 국제경쟁력 확보를 위한 노동권의 유예, 혹은 최소화라고 하는 담론 자체를 극복할 필요가 대두된다. 노동은 국제경쟁력 확보를 위해 동원되어야 할 타자 혹은 대상인 것이 아니라, 이 경제사회의 주인 중 하나이다. 따라서 일을 하는 과정에서 자기실현할 수 있는 기회들이 제공되어야 하며, 노동력의 재생산은 곧 공동체 생활과 문화의 향유를 동반하는 것이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수치적 경제성장 목표에 집착하기보다는 경제발전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되새길 필요가 있으며, 경제성장의 방식 자체도 과거와 같은 투자, 수출, 이윤확보가 중심이 되는 것이 아니라, 임금주도 성장에 대한 고민을 전개할 필요가 있다.

[그림 1] 시대별 경제이념과 노동 관련 담론의 변화

1990년대 초반에 우리나라는 노조에 의한 빠른 임금인상이 그 이전의 수출주도형 성장과는 달리 임금, 내수기반 확충과 재투자의 선순환을 가져올 수 있다는 것을 경험한 바 있다. 또한 최근 중국과 일본은 그들의 구조적 경제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정부가 주도하여 임금인상을 요구하고 있기도 하다. 물론 임금의 무한 증가가 요구되는 것은 아니며, 적절한 거시경제변수들과의 조정 양식이 개발되어야 할 것이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强小國을 지향하여 재벌과 같은 대표선수들을 중심으로 경제를 꾸려야 한다는 迷妄으로부터 벗어나야 한다는 점이다. 미, 일, 중, 소 등 강대국의 틈바구니에서 저개발국으로 오랜 동안 살아온 역사 때문에 弱小國이라는 의식이 뿌리 깊게 박혀있지만, 인구 규모로 보았을 때 5,000만명, 북한을 포함할 경우 7,000만 명이라고 하는 수치는 결코 작지 않다. 당장 5,000만 명의 중진국 내수를 활용하여 산업과 시장이 형성될 가능성은 얼마든지 존재한다. 따라서 强中國 개념을 새로이 구상하면서 생산과 소비, 수출과 내수, 노동과 자본이 균형을 이루는 따뜻한 공동체에 대한 관념이 요구된다고 할 것이다.

그 공동체는 과거와 달리 국민들의 자발성과 자율에 기반하여 운영되는 문화적, 정치적으로 고도화된 사회를 지향한다. 과거에는 정치적 반대자를 군대와 경찰을 이용하여 억압하거나 봉건적 황제경영과 시장원리로 약자를 위협하여 규율을 확립하였다면 향후에는 신뢰와 자율의 공동체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자율의 공동체와 관련하여 생산자집단으로서의 노동조합과 기업조직만한 학교는 없을 것이다. 그러한 점에서 노사 파트너십에 기초한 일터의 민주적, 생산적 운영에 대한 사고를 더욱 발전시킬 필요가 있다. 그리고 그러한 관행과 새로운 목표들이 탈추격(post catch-up)의 가치와 전략으로 자리매김할 때 단지 동원 대상으로서의 노동이 아니라 일과 생활의 공동체를 지탱하는 핵심 요인으로서의 노동이 부각되게 될 것이다.

단체교섭과 사회적 대화의 변화:구조보다 행동을!

노사관계 시스템의 발전 방향과 관련하여 종국에는 교섭과 사회적 대화를 어떻게 새롭게 구축할 것인가가 가장 중요할 것이다. 교섭과 관련하여 기존의 기업별 노조와 기업단위 교섭이 기업 간 임금 및 복지 격차 확대를 초래했다는 비판에 기초하여 초기업단위 교섭, 그 중에서도 산별교섭을 발전시킬 당위성은 충분하다고 할 것이다. 더욱이 2011년 현재 산별, 업종별, 지역별 등 초기업단위 노조 소속 조합원이 전체의 56% (96만 4,000명)을 차지하고 있다는 것은 기업의 경계를 넘어선 교섭구조를 고민해야 할 가장 절실한 이유이다. 반면 복수노조 제도와 함께 도입된 사업 또는 사업장 단위의 교섭창구 단일화 제도는 의도했건 그렇지 않았건 간에 교섭을 기업 또는 사업장 단위로 제약하는 결과를 빚고 있기 때문에 교섭단위의 분리뿐 아니라 교섭단위의 통합을 가능하게 하는 법제도 개선이 시급하다.

이렇듯 현실에서 초기업단위 조합원수 비중이 절반을 훌쩍 넘어서고, 역사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산별교섭 등 초기업단위 교섭을 촉진해야 할 이유와 당위가 충분하지만, 지난 10여 년의 산별교섭 경험이 그다지 생산적이지 않았다는 점에서 당장 서구적 의미의 산별교섭을 실현하는 데 집착하기보다는 보다 유연한 전략이 요구된다는 점을 강조하고자 한다. 이를 ‘다원적 산별교섭 체제’라고 한다면 그것은 산별로 조직은 집중화, 대형화한다고 하더라도 교섭 단위는 유연하게 설정하는 방향을 의미한다. 대산별 아래 특성별, 업종별, 지역별 교섭 등을 다각적으로 배치하는 과정에서 노-노, 사-사, 노-사 상하급 단위와 횡적인 단위간의 조율(coordination)을 강화해 나가는 전략이 요구되는데, 이는 곧 노사관계에서 구조보다는 행동적 측면에서 기존의 문제점을 극복해 나간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노조의 일방적 요구보다는 사용자 입장에서 교섭비용을 어떻게 줄여나갈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병행되지 않으면 안 된다. 이중교섭 혹은 다중파업과 같은 행태를 지속하는 한 사용자들의 거부감과 저항이 지속될 것임을 유의할 필요가 있다.

중층적 사회적 대화는 이러한 다원적 산별교섭을 지원하고 유리한 환경을 조성하는 방향으로 추진되어야 한다. 최상급 수준의 사회적 대화에서는 물론 일자리를 중심으로 한 새로운 경제사회 질서와 체제에 대한 고민을 포함하여 큰 틀의 방향제시가 이루어져야 하지만, 하급의 지역과 업종 수준에서는 보다 유연하면서도 실질적인 주제들을 다루는 전략이 요구된다. 특히 지역 수준에서는 산별교섭과는 달리 생산 및 생활공동체의 건전한 발전을 위한 복지체제의 발전을 노사정 공동으로 모색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이러한 교섭 및 사회적 대화에서 중요한 것은 작은 약속들의 실천이 누적되면서 상호 간의 신뢰가 구축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노사관계와 일자리

노사관계의 구조와 행태를 바꾸어나가면서 내용적으로 보면 미래의 노사관계는 복지국가를 위한 최대 과제인 일자리의 양과 질을 확보하는 데 중점을 두어야 한다. 이를 위하여 과거와 현재, 미래에 대한 구상을 [그림 2]와 [그림 3]과 같이 제시해 보았다.

[그림 2] 외환위기 전후 일자리의 구성 변화

우선 외환위기 이전 우리의 주요한 일자리 창출 수단은 재벌들의 수출에 의한 것이었음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수출주도산업도 의류, 신발, 완구, 가발 등에서 자동차, 휴대폰, 석유화학과 조선 산업 등으로 변천해 온 바 있다. 그런데 외환위기 이후에는 이러한 수출에 입각한 고용창출 전략이 작동하지 않았다. 그것은 노동절약적 기술의 발전에 따른 것이기도 하였지만, 아웃소싱과 비정규직 의존 심화에 따른 결과이기도 하였다.

더욱이 세계화의 진전에 따라 국내 재벌들은 1990년대 이후 시장과 생산기지를 찾아 공세적으로 해외로 진출하였는데, 이는 다시 국내 일자리창출의 기회를 축소하고 해외 일자리의 증대를 가져왔다. 예를 들어 삼성전자 휴대폰(스마트폰 포함)중 80%가 해외공장에서 생산되고 있으며, 현대자동차의 해외생산물량도 60% 전후에 달한다. 물론 각종 무역장벽과 무역마찰의 가능성, 환리스크 등으로 인하여 해외진출을 하지 않았더라도 국내에서 그만큼의 일자리가 만들어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오히려 자동차산업 등에서는 해외 생산기지에 대한 핵심부품 수출을 통하여 국내 고용이 늘어나는 효과가 더 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재벌들의 해외진출은 국내 고용창출 능력을 제약한 것만은 틀림없는 사실이며, 이는 동반진출한 중소기업까지 고려하면 더욱 그러하다. 그러나 동반진출한 중소기업 역시 단순히 인건비 차이를 겨냥하여 도피성으로 해외로 진출한 중소기업들과는 구분할 필요가 있다. 그만큼 국내외 일자리의 동학은 복잡하게 전개되고 있다.

향후에는 이러한 일자리의 구조를 어떻게 가져가야 할 것인가? 재벌들의 일자리는 향후 고용창출을 통한 사회적 책임 수행을 요구한다고 하더라도 획기적으로 늘어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러한 점에서 재벌 등 대기업의 영향권 내에 있는 외주화된 일자리에 대해서 재벌의 사회적 책임성을 분명히 하는 것이 오히려 더 현실적일 수 있다. 재벌이 직간접적으로 고용하고 있는 근로자들, 즉 재벌의 가까운 영향권 내에 있는 근로자들의 근로조건을 획기적으로 개선하도록 요구할 필요가 있다.

[그림 3] 재벌 중심의 국제화와 연대와 혁신의 노사관계

해외 일자리에 대해서는 그것이 국내 일자리와 대체관계가 아닌 한에서는 불가피성을 인정하고 오히려 핵심부품의 수출을 통한 고용창출 기회로 삼아야 한다. 그러나 도피성 해외진출이나 동반진출을 포함하여 해외진출은 언제나 국내에서 일터혁신을 통하여 일자리 유지 혹은 창출이 가능했었던 것은 아닌지 끝없이 문제를 제기할 필요가 있다. 그것은 거꾸로 일자리를 유지하기 위하여 일터혁신을 목표로 노사가 파트너십을 공고히 하고, 고임금을 넘어서는 고생산성 체계를 구축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그를 위해서는 숙련에 대한 노동조합과 사용자들의 전향적 자세가 전제되어야 한다. 아울러 해외진출의 대상국과 관련하여 북한을 적극적으로 고려해야 하는데, 이는 물론 남북화해 및 동북아 평화질서 구축과 동시에 진행되게 될 것이다.

한편 그림에서 공공부문, 협동조합, 사회적 일자리 등 비시장 영역의 일자리를 확대하는 수직축의 위에서 아래로의 전략에 대하여 심사숙고할 필요가 있다. 이들 일자리는 시장 경쟁원리와 일정한 거리를 두는 영역을 의미하며, 그만큼 공동체성과 연대의 원리가 내재되어 있다고 할 것이다. 이들 영역은 앞서 강중국 모델에서 설명한 바와 같이 내수기반의 확충과 함께 진지를 형성하게 될 것이며, 이는 국제경쟁력이 중요한 재벌 중심 경제체제의 후방에서 따뜻한 공동체를 유지하는 또 다른 근거지가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장기 시야가 필요하다

이러한 다각적인 노력을 통해 일자리의 양과 질을 확충하려는 노력이 사회적 대화의 중심에 서야 하고, 그를 위한 정책방향과 노사의 실천방향이 도출되어야 할 것이다. 이 때 중요한 것은 노, 사 모두 장기 시야, 장기적 관점을 가져야한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사용자들은 특히 외환위기 이후 주가중심의 경영 하에서 단기 수익성을 올리는 데 집착하고 있다. 그러나 사람에 대한 투자와 신뢰관계 구축은 장기간이 소요되는 일이다. 또한 노동조합은 외국에 비하여 위원장, 대의원 등 임원들의 임기가 너무 짧고 정책 역량이 취약하다. 따라서 한 해 한 해의 임단협 교섭에서 조합원들에게 무언가 보여주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강하다. 이러한 노사의 단기주의는 기회주의적 행동이나 갈등으로 귀결되기 십상이다. 노사관계를 전환하기 위해서는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 왜냐하면 노사관계는 경제 및 산업구조, 갈등을 처리하는 그 사회의 제도와 관행 등과 밀접히 관련되어 있어서 쉽게 바뀌지 않기 때문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어떤 노사관계를 구축할 것인가에 대한 진지한 토론과 그것을 장기에 걸쳐서 어떻게 실현할 것인가에 대한 로드맵을 마련하는 일이다. 금년에도 현장의 노사관계는 매우 어지럽게 전개될 것으로 보이는데, 이러한 장기적 관점이 없이는 우리 사회의 양극화 문제 극복이나, 더 많은, 괜찮은 일자리의 창출은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다. E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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