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정분권은 민주주의를 위한 당연한 가치인 동시에 희소한 공공재원을 효율적으로 사용하기 위한 경제적 수단이다. 분권화된 국가에서 지방자치단체는 중앙정부와 함께 주민복지를 증진시키기 위한 재정파트너이다. 분권이 좋다는 입장에서는 자치로 실현할 수 있는 모든 것을 긍정적으로 희망하지만 현실의 사정은 다르다. 자치부활 20여년이 지났지만 주민들은 지방의 ‘자치’재정에 대해 크게 기대하지 않고 자치재정은 신뢰의 위기에 직면하고 있다.
자치재정, 공허한 외침과 신뢰 위기
분권과 자치의 관점 그리고 평가의 대상에 따라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지만 현재의 느낌으로는 자치재정에 대한 부정적인 비판이 많다. 그동안 본질적인 자치와 분권을 위한 재정혁신이 없었던 가운데 재정분권은 OECD 회원국 가운데 낮은 수준에 머물고 있다. 중앙과 지방을 포함한 공공부문의 ‘재정’이 달성해야할 기본 가치들이 현재의 재정분권 틀 속에서는 긍정적인 방향으로 진행되지 않았다. 공공부문의 재정이 가져야 하는 기본 가치는 재정사업에서 ‘효율성’, ‘형평성’, ‘책임성’인데, 지방재정에서는 이들 핵심가치가 특히 악화되었다.
지자체의 재정사업에서 계속 지적되는 비효율성과 낮은 성과 문제를 종합하면 현재의 지방재정은 ‘효율성’을 높이는 방향으로 운영되지 않았다. ‘형평성’은 더 심각하다. 중앙과 지방간 그리고 광역과 기초간 재정 균형에 대한 수직적 형평성과 지자체들간 수평적 균형 모두 악화되었다. 지난 수십 년 동안 중앙정부 중심으로 지방의 재정사업들이 추진되었고 공공재원의 징수 체계 및 규모 역시 중앙정부 중심으로 발전하면서 중앙과 지방간 세입 격차는 계속 확대되었다. 지방재정의 불균형도 심각하여 수도권과 비수도권을 비교하면 지역의 성장과 재정여건 등 모든 부문에서 양극화현상이 악화되었다. 재정형평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중앙정부가 이전재정으로 교정하지만 재정자립도 약화, 복지부담 전가와 지방재원 징발, 지방의 도덕적 해이, 지방세 가격기능 약화와 같은 부작용들이 발생하였다.
재정사업에 대한 ‘책임성’ 가치는 보다 악화되었다. 여러 가지 원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던 지자체의 대형 재정 사업 실패는 일부 지자체의 재정파산을 우려할 정도로 심각한 문제를 남겼다. 중앙정부 중심의 수직적인 재정 책임성 관리조치들이 지속적으로 강화되고 있지만 결과적으로 실제 지방재정의 책임성은 더 약화되었다. 이와 같은 경향이 십수년동안 지속되면서 지역주민에 대한 지자체의 신뢰적자 혹은 신뢰위기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
지역의 사회 경제적 위기가 심각하게 진행되지만 지방의 주인인 주민들과 함께 고민하고 해결방안을 마련하는 지자체가 기대만큼 많지 않다는 점도 신뢰위기의 원인이다. 모든 것을 중앙정부의 재정지원 부족 탓으로 방향을 돌리는 경향이 있다. 저출산・고령화・청년실업과 같은 지역의 사회위기에 따라 보편적 복지수요가 급속히 증가하였지만 자기 지역의 사회문제를 해결하려는 적극적인 지방재정의 노력은 부각되지 않았다. 문제를 해결하려는 중앙정부와 갈 길 바쁜 발목을 잡는 지방이기주의라는 이상한 도식이 만들어지고 있다.
원인제공자 중앙정치와 중앙정부, 거꾸로 돌린 분권방향
자치재정이 기대와 다른 방향으로 전개된 것은 지방분권의 역사적 유산의 영향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지금의 지방재정제도와 관리방식들이 최근의 환경변화들을 제대로 담아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중앙・지방간 재정분권 관계에서 ‘재정’의 관점이 아닌 행정관리와 정치적 요소가 더 많이 고려되고 있다. 재정사업의 성과와 정부 계층간 공공서비스 공급 기능 보다는 중앙정치의 득표와 집권 혹은 통치의 목적으로 지방자치가 이용되었다. 정치와 재정은 상호 양립하기 힘든 속성들을 가지고 있어 적정 수준에서 균형이 필요했지만 현실은 ‘정치’의 비중이 과다하게 무겁다. 더욱이 지방자치단체들은 중앙정치의 수단에 국한된 경향이 있고 자율적인 정치와 활동의 영역을 만들지 못하였다. 수도권 지자체에서는 대권의 영향변수가 강하고 비수도권은 지역기반 중앙정치 엘리트 중심의 지역주의 구도를 벗어나지 못한다. 이에 따라 지방자치의 방향은 모두 위로 향하는 수직 계열화 되었고 ‘지방’ 자체와 지역‘주민’을 향한 아래로의 효율, 형평, 책임 가치들이 설 자리를 찾지 못하였다.
주민복지 증진을 위한 국정운영의 파트너로서 지방자치단체의 재정이 자리매김되기 위해서는 지자체가 자율적으로 사용하는 자기 재원이 충분해야 한다. 이를 확인할 수 있는 지표가 재정자립도인데, 지방자치 부활 이후 지속적으로 하락하였다. 1995년에 재정자립도는 66.4%였지만 올해는 44.8%에 불과하다. 그나마 서울특별시와 광역시의 자립도가 높아 이 정도이고 도・시・군・구는 30% 내외이다.
지방자치 선거를 앞두고 지자체에 대해 사회복지 확대와 지역경제 활성화를 요구하지만 현재의 재정자립도로 그러한 지출을 자체 계획할 수 있는 지자체는 7개 특별・광역시와 경기도 그리고 재정력이 우수한 소수의 지방도시 정도이다. 단체장 후보들은 중앙정부와 끈을 강조하면서 보조금을 많이 유치하겠다는 공약 이외에 다른 자체 계획을 만들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재정자립도 30% 수준에서 국고보조사업의 지방비 부담을 제외하면 자율적으로 사업을 구상할 수 있는 지자체는 많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이에 따라 주민 입장에서는 중앙정부의 사업계획들을 충실히 위탁 대행하는 집행관을 선택하는 지방선거가 될 가능성도 있다. 재정자립도 1개의 재정지표만 고려해도 지방이 스스로 사업을 결정하고 성과에 책임지는 재정의 자치 기능을 기대하기는 점점 어렵게 되었다.
중앙정부에서는 지방에 보조금을 지원하기 때문에 특별히 문제가 될 것이 없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현실의 결과에서 지역의 각종 문제들이 해결되지 않고 악화된 현상을 보면 지금까지 중앙정부의 해결방안들은 성과를 거두지 못한 ‘중앙실패’로 판단해야 한다. 보조금은 수직적인 통제의 끈이기 때문에 재정자립도가 낮아진 만큼 재정에서 분권과 자치는 후퇴한 것이다. 보통교부세를 통해 지자체의 일반재원을 중앙정부가 많이 지원하고 있지만 ‘자치’재정과는 거리가 있고 그 비중이 커질수록 중앙정부에 대한 지방의 예속은 더 심해진다. 기본적으로 남의 돈으로 자치를 한다는 것은 자치가 아니다.
지자체 재정부담 가중시키는 복지지출
지방재정의 일반회계에서 지자체의 자체사업 비중은 34.5%에 불과하며 이 또한 매년 낮아졌다. 자치구는 자체사업 비중이 16.2% 수준으로 지방‘자치’단체로서의 재정기능을 기대하기는 쉽지 않다. 지금의 재정구조 상황에서는 이미 중앙정부의 일선행정기관이 되었다. 중앙정부의 보조사업에는 사회복지 지출의 비중이 가장 높다. 지자체 복지사업은 전체 지출에서 26.1% 정도인데 자치구는 절반 이상인 52.9%를 차지한다.
지방자치법에 명시되어 있듯이 지자체의 재정 기능에서 주민들의 복리후생을 위한 책임이 크기 때문에 지방재정에서 주민들의 생활을 보장하기 위한 복지비 지출 비중은 당연히 높아야 한다. 하지만 지자체의 재량이 거의 없이 중앙의 표준화된 지침을 그대로 집행 혹은 전달하면서 자체 재원을 징발적으로 부담해야 하는 현행 복지보조사업의 운영방식이 문제이다. 지방 복지재정사업의 90% 정도는 국고보조방식으로 집행되는데 지자체의 재량 여지가 거의 없는 현금급여가 대부분이다. 현물이나 바우처도 중앙의 지침은 상당한 통제가 된다.
지방분권 혁신을 위해 추진되었던 2005년도의 분권교부세 사업은 재정지원 수단을 정교하게 만들지 못하여 당초 의도와 달리 지방재정으로 복지비 부담을 대폭 전가시켰다. 이에 따라 복지보조금에서 중앙의 개편 조치는 지방재정에 추가적인 부담을 강제하는 것이라는 의심을 키고 있다. 지방재정에서 복지지출은 재정경직성과 재정압박의 원인으로 회피대상이 되었고 지방재정에서는 복지비 비중 축소가 ‘선(善)’이라는 이상한 그림이 그려졌다. 그 속에서는 중앙과 지방간 재정갈등만 있고 복지의 혜택을 받는 자기 지역의 주민은 빠져있다.
복지보조사업에만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다. 중앙의 각 부처들은 자율공모 방식으로 국고보조사업을 만들면서 지방비 부담을 암묵적으로 강제하고 있다. 형식은 자율이지만 사업평가에서 가점을 주기 때문에 실제는 의무 부담으로 작용한다. 최근에는 각 부처의 국고보조사업에서 중앙정부의 보조금 비중이 낮아져 지방의 재정부담이 커지고 있다. 국고보조사업에는 재정사업의 성과에 대한 책임이 애매해 지는 문제가 있다. 중앙정부는 지방이 자율적으로 신청한 것이기 때문에 지방의 책임이라고 한다. 지방은 중앙정부의 지침대로 사업을 수행했고 국고보조방식이기 때문에 중앙이 문제라고 한다. 이러한 책임회피 공방 속에서 국민의 혈세와 주민의 세금 그리고 지방의 재정사업 자체는 관심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
재정감독이 강화될수록 비효율은 더 커지는 현실
지방재정이 심각한 문제라는 언론의 비판은 이제 정례행사처럼 되풀이 된다. 244개 지방자치단체 가운데 한두 군데만 문제가 되어도 지자체 전부가 야단을 맞는다. 그리고 특단의 대책을 고민하면서 중앙정부는 새로운 재정통제 수단을 추가한다. 그런데 중앙의 통제가 추가될수록 결과적으로 지방의 재정문제는 더 악화되는 이상한 현상이 발생한다. 많은 재정관리 감독 장치들이 문서상으로만 움직이며 지방의 현실에서는 기대하는대로 작동하지 않기 때문이다.
지방에서 야심차게 새로운 재정사업을 계획하려면 우선 지방재정투자심사를 받아야 한다. 금액이 큰 사업은 중앙정부의 심사도 거쳐야 한다. 그 사업은 중기지방재정계획에 포함되어 있어야 다음 연도 예산에 반영할 수 있다. 큰 사업에는 보조금이 지원되니까 기획재정부와 중앙정부 사업부처와 협의도 해야 한다. 기초자치단체는 광역자치단체의 재정부서와 사업부서 협의를 거쳐야 한다. 지방재정법에서는 건전하게 사업을 관리하고 성과에 책임져야 하며 주민들이 참여해야 하고 양성평등까지 고려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사후적으로는 지방재정분석진단을 통해 재정수지가 악화되지 않게 지방채 발행을 억제한다.
하나 하나의 규정은 합리적인 재정사업을 위해 모두 필요한 조건들이다. 그런데, 이와 같은 이중삼중의 재정통제 장치를 제대로 숙지하고 모든 지침을 준수하는 적극적인 노력은 엉뚱한 최종 결과물을 만들게 된다. 즉, 지방공무원은 월급만 받고 중앙에서 시키는 일만 하고 자체적으로 혁신적인 구상은 생각하지 말라는 생각에 이르게 될 것이다. 지방이 무능한 것이 아니라 지금의 수직적인 재정관리제도가 모든 것을 너무 얽히게 만들고 있다.
매년 보건복지부는 각종 기준에 맞지 않아 복지대상자가 되지 못하는 사각지대의 취약계층을 위해 긴급구호가 가능한 재원을 지자체에 배분한다. 하지만 지자체에 따라서는 상당 수 금액을 불용처리하여 중앙정부로 반납한다. 복지사각지대가 분명 있을 것 같지만 관련 재원을 지방의 담당공무원들이 재량으로 지출하지 못하는 이유가 있다. 80년대에 만든 낡은 보조금 관리방식 때문이다. 정부는 분권혁신을 위해 2000년대 중반에 당시 500여개의 국고보조사업들을 300여개로 대폭 줄이면서 지방에 이양한 적이 있다. 그런데. 국고보조사업의 갯수는 최근에 다시 1,000여개로 증가했다. 각종 공모과제를 포함하면 1만개 이상의 사업이 중앙정부의 보조사업 형식으로 운영된다.
국가재정의 관리기능을 담당하고 중앙 각 부처의 국고보조사업을 관리 통제해야 하는 기획재정부도 국고보조방식의 지역발전특별회계를 별도 운영하면서 지방재정사업 감독에 한 몫을 담당한다. 중앙 각 부처별로는 재정사업의 성과를 평가・감독하지만 자기 부처의 지특회계 보조사업에 대해서는 지자체별 재원배분 결과나 성과에 대한 정보를 공개하지 않는 낡은 관리방식을 계속 유지하고 있다.
올해 기획재정부는 지특회계에 사회계정을 신설하여 각종 복지사업들을 한 바구니에 담아 포괄보조로 운영하려는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해당 사업의 실제 관리업무는 보건복지부와 같은 중앙부처에서 계속하고 기획재정부는 재원배분 기능만 담당할 가능성이 크다. 부처별 국고보조사업의 통계에서도 기획재정부가 아닌 기존의 중앙부처별로 재원을 분산시킬 수 있다. 이러한 경우 지자체는 복지보조 사업에서 또 다른 감독주체를 추가로 만나게 된다. 그 속에서 지역과 주민에 대한 성과책임에 대한 논의는 제대로 이루어진다고 보장하기 힘들다. 돈 관리의 권한 배분만 있다. 이러한 방식이 확대되면서 지금 지방의 재정사업은 모두가 손님이고 주인이 없다. 그래서 책임도 없다.
정부간 재정사업 분야에서는 분명한 글로벌 트랜드가 있다. 중층적으로 얽혀있는 수직적인 의사결정 구조를 단순화하고 재정사업의 성과에 대한 책임주체를 명확히 하는 것이다. 중앙과 지방에 대한 과거와 같은 이분법적 도식은 없다. 자치와 분권에 대한 전통적인 관점들은 60년대 복지국가체제의 낡은 틀에 있는 것이다. 유럽은 초국가 기구에서 의사결정이 국민국가 단위를 건너 지방에 직접 작용한다. 정보통신과 교통의 발달로 지리적 단위는 면이 아닌 점으로 연결되어 중앙과 지방의 경계가 희석되고 있다. 주민들의 참여자치는 지방에 국한되지 않으며 중앙과 직접 소통도 원활하게 할 수 있다. 복지의 책임이 중앙에 있다는 것도 현실에서는 검증되기 어렵다. 이미 많은 국가에서 지방자치단체의 사회복지 역할이 상당하다. 독일과 스웨덴은 과거부터 공공부조의 모든 재원을 지방재정에서 부담한다. 물론 영국은 중앙정부가 모두 부담한다. 현실이 잘못된 것인가? 아니다 이론이 낡은 것이다.
일본은 삼위일체 개혁을 통해 지방재정 중심으로 재정사업을 분권화시켰고 영국은 반대로 지역개발과 보건에서 중앙정부의 책임을 강화했다. 80년대 대처정부 이후 수십년동안 집권화정책을 추진했다. 미국은 주정부 중심으로 연방정부와 성과계약체계를 구축했다. 새로운 분권과 집권 혁신에는 공통된 한 가지가 있다. 지역 문제를 해결하는 주체가 재정과 사업권한을 모두 가지고 지역과 주민에게 성과의 책임을 진다는 것이다. 주민들은 중앙과 지방을 구분하지 않는다. 구분할 필요도 없다. 일 잘하는 책임있는 재정주체를 좋아할 뿐이다.
“자율과 책임”, 자치재정을 위한 조건
80년대 이후부터는 정부 재정의 목적은 “결과지향적 성과”와 “재정준칙에 기초한 건전성”으로 전환되었다. 신공공관리혁신이 강조하는 결과지향적 성과를 위한 분권재정에서는 권한이양과 성과계약이 중요하다. 하지만, 정보비대칭과 재정공유재 비극 상황에서 지방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오히려 악화시킨 중앙실패와 지역주민들의 다양한 선호를 파악하고 적절한 대응방안을 개발할 역량이 충분하지 않았던 지방실패가 동시에 혼재되면서 서로를 비판하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분권화된 자치재정이 만병통치약이 되기를 희망하지만 지금은 섣부른 기대이다. 이론에서는 분권재정이 좋다고 해도 주민들이 싫어할 수 있다. 주인이 선호하지 않는 재정분권화가 제대로 추진될 수 없다. 그렇다고 중앙정부가 244개 지방자치단체의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기대하는 것도 어리석다. 2∼3년마다 보직이동하는 중앙 부처의 사업 담당자 한 두명이 전국 지자체의 개별 현실을 모두 알고 맞춤형으로 대응할 수 없다. 역량의 한계와 관료제의 경직성 문제가 분명히 있다. 이를 중앙실패라고 한다. 이제 분권재정을 위한 새로운 틀을 만들어야 한다.
첫째, 해결해야 할 사회 경제 문제에 대한 현재의 상황을 중앙과 지방이 모두 인식하는 문제상황 공유가 필요하다. 문제인식을 공유하지 못하면 중앙과 지방간 신뢰관계가 형성되지 않아 정부간 재정관계를 재설계하는 것은 쉽지 않게 된다. 둘째, 중앙과 지방의 기능분담과 같은 형식적 관계에서 실제 지역에서 발생하는 문제 자체에 초점을 맞추는 문제해결형 분권재정체계를 만들어야 한다. 정치와 권력에서 문제해결을 잘하는 재정 주체가 상대적으로 유리할 수 있도록 공공서비스에서 경쟁하는 기능형 재정관계로 전환해야 한다. 셋째, 중앙과 지방재정은 지역주민들에게 봉사하는 성과 경쟁의 재정파트너로서 관계를 형성해야 한다. 이는 전통적인 수직적인 관리 감독체계에서 수평적인 기능 협력체계로 전환을 의미한다. 중앙정부는 지방재정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각종 재정 조치에 대해서 우선 협의하는 의무를 제도적으로 보장해야 한다.
이와 같은 원칙들이 현실이 제도와 정책으로 실천되기 위해서는 지금의 낡은 정부간 재정관계 제도들은 대폭적으로 개편되어야 한다. 무엇보다 지방세 중심의 세입구조를 강화하고 세수와 세원관리에서 지자체의 기능과 책임을 확대해야 한다. 구체적으로는 지방소비세의 재원을 확대하고 지자체간 재원배분에서 소비지주의를 강화하는 방안, 지방자치 부활의 상징이었던 담배와 관련된 제세공과금들을 담배소비세로 일원화하는 방안, 50% 수준의 징수율에 그치는 환경개선부담금의 지방환경세 전환 방안, 지자체의 보육료지원 재원이 될 수 있는 지방보육세 신설방안, 주세의 지방세 환원 등과 같은 의미있는 조치들이 필요하다.
둘째, 원칙없이 임의적으로 운영되는 국고보조금제도를 대폭 정비해야 한다. 특정사업의 개별적인 기준보조율의 적정성에 대한 지엽적인 논쟁 보다는 기본 체계에 대한 개편이 필요하다. 중앙-광역-기초의 중층적인 국고보조사업의 재정관리체계를 단층화시켜 관리의 효율성과 사업의 성과책임성을 강화해야 한다. 법정기준보조율이 규정되지 않은 분야에서는 국고보조사업에 대해 지방비 부담을 요구하지 못하도록 법제화하고 실제 보조사업의 성과중심으로 재정책임을 강화하여 재정공유재 비극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중앙예산당국인 기획재정부가 운영하는 지특회계는 폐지해야 한다. 그 속의 영세한 소규모 보조사업들은 지방으로 이양하고 중앙정부의 관리가 필요한 사업은 과거와 같이 개별 부처로 환원시켜야 한다.
셋째, 현행 지방재정관리제도의 책임 지향 방향을 지역사회와 주민들을 향할 수 있게 전환해야 한다. 중앙정부의 재정관리제도에서 규정하는 지침을 모두 준수해도 지역의 문제가 계속 악화되는 것은 현행 관리제도에 구조적인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중기지방재정계획, 지방재정투자심사, 지방재정공시제도 등과 같은 재정관리제도들이 지역주민의 관점에서 설계・운영되어야 한다. 지방재정은 중앙정부의 재정지침을 준수하는 관리책임과 병행하여 지역의 사회 경제적 문제를 직접적으로 해결(지역소득, 실업률, 주민행복 등)할 수 있는 성과책임제도들이 마련되어야 한다.
넷째, 정부간 재정관계와 관련된 제도 변화과정에 누적되었던 중앙・지방간 불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간 재정신뢰를 보장할 수 있는 제도들이 마련되어야 한다. 최근에 발생했던 지방소비세 재원 배분 비율을 둘러싼 안전행정부와 기획재정부의 갈등과 같은 현상이 반복되면 관련 주체들간의 합리적인 소통이 자리매김될 여지가 없어진다. 구체적으로는, 국고보조사업의 지방이양을 추진할 때 분권교부세제도와 같은 지방재정 징발의 부작용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제도개편에 따른 ‘재정불이익배제의 원칙’을 명문 규정으로 제도화해야 한다. 지방세에 대한 지방정부의 권한을 보장하기 위해서 취득세와 같은 지방세 감면은 지방조례로서만 가능하게 하고 중앙정부가 지자체 의사에 반대되는 인위적인 지방세 감면조치를 할 수 없게 하는 규정도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중앙 각 부처와 수직적으로 연계되어 있는 현행 재정사업 운영체계를 지자체 내부의 부서간 그리고 지방의회와 집행부간 수평적 협력체계로 전환시켜 재정사업에서 지자체 스스로의 내부적인 자율과 책임을 높여야 한다. E21
본 기사는 월간지 <이코노미21> 5월호에 게재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