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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과 가계의 소득배분 괴리 심각
기업과 가계의 소득배분 괴리 심각
  • 박종규 한국금융연구원 연구위원
  • 승인 2014.09.09 13:1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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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반성장의 길을 찾아서⑦> 기업저축률 OECD 12위→2위로 급상승…‘투자의 주체’로 기업 강제해야, 한국경제 저성장 탈출 가능

얼마 전부터 우리 경제의 장기침체 가능성에 대한 우려들이 심심치 않게 나오기 시작했다. “이러다간 일본식 장기불황에 빠지는 것 아니냐”는 걱정들이다. 아닌 게 아니라 지금 우리의 모습은 장기불황 초입의 일본과 너무나 흡사하다. 경제개발 시작단계부터 일본을 모델 삼아 거의 모든 것을 베끼다시피 하다 보니 산업구조, 경제관련 제도나 법률, 관행, 조직문화, 사고방식 등등의 여러 측면에서 일본과 비슷한 점들이 너무나 많다. 일본경제에 대한 미국 학자들의 논문이나 책을 읽다보면 순간적으로 내가 지금 읽고 있는 게 일본에 대한 얘긴지 한국에 대한 얘긴지가 헷갈릴 정도다. 게다가 부동산 버블의 추이라든지, 인구 고령화의 진행상황, 공장의 해외이전 추세 등도 1990년대 초 버블붕괴 직전 일본의 모습과 섬뜩할 정도로 닮아 있다.

체질이 비슷하면 병도 비슷하다지 않는가? 나는 우리 경제가 이미 장기불황에 빠졌다고 판단한다. 정확하게 “일본식”은 아닐지 몰라도 적어도 “한국식” 장기불황 한복판에 놓여있는 것만큼은 거의 확실해 보인다. 장기불황이 따로 있나? 성장률이 하락할 때 크게 추락하고, 올라갈 때 별로 못 올라가는 무기력한 경기 싸이클이 두세 번 반복하다보면 어느 새 ‘잃어버린 10년’이 흘러가는 것이다.

탄력을 잃은 한국 경제성장률

우리의 경기 싸이클도 여간 무기력해진 게 아니다. 2012년 경제 성장률은 2.3%로 내려갔고 2013년에도 3.0%밖에 되지 않았다. 2014년 성장률 전망치는 3%대 후반에서 최대 4.0%까지다. 그 정도라도 얼마나 다행이냐는 분위기다. 이 조그만 불씨라도 꺼뜨려선 안 된다며 전전긍긍해 하고 있다. 과거 우리 경제는 성장률이 3% 미만으로 떨어지는 경우 그 이듬해에는 어김없이 대폭적 반등을 했었다. 바닥에 세게 내리치면 내리칠수록 공은 더 높이 튀어 오르듯, 침체의 골이 깊으면 깊을수록 반등의 폭도 더 컸었다.

2012~2013년처럼 경제 성장률이 2년을 연속하여 3.0%를 넘지 못했던 사례는 6.25 사변 이래 역사상 처음이었다. 경기부진에서 벗어난다는 2014년에도 성장률은 고작 3% 후반에 머무를 전망이다. 이는 우리 경제가 바람 빠진 공처럼 탄력을 잃어버렸음을 의미한다. 지금의 우리 경제는 6% 성장을 불황으로 간주하던 20년 전의 한국경제가 더 이상 아니며, 10년 전의 한국경제도 더 이상 아니다. 2003년 당시 성장률 4.0%란 거기서 더 이상 내려오면 안 되는, 사수해야할 마지노선이었다. 그로부터 10년이 지난 2014년의 성장률 4.0%는 우리가 희망할 수 있는 성장률의 최대치다. 불과 10년 만에 이렇게까지 쇠약해지다니 …. 어쩌다가 우리 경제는 튀어 오르기를 잊어버린 바람 빠진 공이 되어버렸는가?

기업투자활성화 목적의 법인세 감세 결과

경제가 활력을 잃은 이유는 투자부진 때문이라는 주장이 많다. 투자가 살아나야 경제가 활력을 찾을 수 있다는 얘기다. 이런 주장이 나온 지도 꽤 오래되었다. 내 기억으로는 투자부진이 경기부진의 원인으로 지목(指目)되기 시작했던 것은 2005년 하반기 무렵부터였다. 카드사태 후유증이 마무리되어 소비회복이 시작되고, 수출여건도 좋았으며, 기업 수익률과 현금 보유량, 낮은 실질금리 등등 제반 여건들이 기업투자가 활발하게 일어날 조건들이 모두 갖추어져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05년 하반기에는 투자가 별로 늘어나지 않는 기현상이 벌어졌다. 그 때부터 투자를 살리기 위한 환경조성과 규제완화가 경제 활성화 정책의 핵심이 되었고 그런 정책기조는 지금까지도 이어져 오고 있다. 특히 이명박 정부에서는 아예 “기업 프렌들리(friendly)”라는 표현을 써가며 다양한 방식으로 투자증가를 통한 경제 활성화를 모색했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법인세 감세였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맞아 우리경제도 커다란 충격을 받았고 재정도 극도로 악화되어 세금이 크게 모자랐지만 이명박 정부는 격렬한 반대를 무릅쓰고 기업들을 위해 대규모 법인세 감세를 단행해주었다. 기업들이 법인세를 절약한 돈으로 투자를 늘려 경제를 활성화시키고 고용을 확대해 주기를 기대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기대했던 만큼의 투자는 일어나지 않았고 경제도 활성화되지 못했다. 2010년 실질 민간 설비투자는 전년대비 25.1% 증가하여 매우 인상적인 증가속도를 보였었다. 그러나 이는 2009년 △9.4% 감소에 대한 반등의 의미가 컸었다. 2011년 이후에도 법인세 감세는 유지되었지만 실질 민간 설비투자는 2011년 4.4%에 불과하더니 2012년에는 △0.3%로 정체되었고 2013년에는 △2.2% 감소했다. 이 정도를 가지고 투자 활성화가 이루어졌다고 할 수 있는가? 겨우 이런 성과를 위해 그 난리를 피워가며 법인세를 감세해 준 것인가? 고작 이런 모습을 보려고, 세수(稅收) 부족으로 허덕이는 재정여건을 감내해 왔었나?

투자 활성화를 위해 김대중 정부 이후 지금까지 15년 여 동안, 해 볼 수 있는 정책수단들은 다 동원해보았던 것 아닌가 생각한다. 결과는 백약(百藥)이 무효(無效)였다. 이쯤 되면 “투자 활성화”는 우리 경제 활성화의 현실적 방법이 아니라는 게 판명이 나버린 셈이다. “정신 나갔다(insanity)는 말의 정의(定義)는 똑같은 일을 자꾸 자꾸 되풀이 하면서도 다른 결과가 나오기를 기대하는 것이다”는 격언도 있다. 미련을 못 버리고 자꾸 매달리기면서 시간만 보내기보다 다른 방법을 찾아 나서는 게 현명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소득배분의 문제 ‘임금 없는 성장’

한국식 장기불황은 뜻밖에도 소득배분 메커니즘에 문제가 생겼기 때문이다. 여기서의 소득배분은 가계와 기업사이의 소득배분이지 부자(富者)와 빈자(貧者) 사이의 소득배분을 말하는 게 아니다. 그러므로 이것은 보수와 진보의 이데올로기 싸움의 재료가 되어서는 곤란하다. 보수건 진보건 머리를 맞대고 함께 풀어야 할 이슈다.

소득배분의 어떤 점이 잘못 됐다는 얘긴가? 경제가 창출한 부가가치를 소득의 형태로 가계와 기업에 배분하는 단계에서, 기업에게만 지나치게 유리한 방향으로 소득을 배분하고 있다는 것이다. 기업소득 증가율은 과거에 비해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늘어난 반면 가계소득 증가는 거의 정체상태에 빠져 있다(<표 1> 참조). 이런 패턴은 우리 경제가 역동성을 잃지 않았던 외환위기 이전과는 매우 다른 양상이다.

가계소득의 증가부진 과정을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1999년 이후 이자소득이 감소하기 시작했고 2001년부터는 자영업 소득이 크게 둔화되었으며 2008년부터는 배당소득도 정체상태에 접어들었다. 그리고 2008년부터는 가계소득의 70% 이상을 차지하는 임금소득이 실질가치 기준으로 현재까지 정체되고 있는 중이다. 가계가 기업으로부터 얻는 소득은 임금, 이자 및 배당으로 구성된다고 할 수 있는데 2008년이 되자 세 가지 모두가 명목 또는 실질가치로 정체에 들어간 것이다. 이는 기업소득 증가가 가계소득 증가로 이어지는 경로가 사실상 차단되었음을 의미한다. 기업과 가계가 절연(絶緣)되어 기업 따로 가계 따로 서로 겉돌다보니 기업의 성과가 아무리 눈부시게 좋아져도 가계살림은 나아질 방법이 없다.

이 세 가지 소득원(所得源) 가운데 가장 드라마틱한 것이 임금이다. 실질임금은 2008년 1/4분기 이후 계속 정체(<그림 1>)되어 노동 생산성과 실질임금의 격차가 갈수록 벌어지는(<그림 2>) 사상 초유(初有)의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생산성은 꾸준히 증가하여 성장은 되고 있지만 실질임금이 증가하지 못한다. “임금 없는 성장”이란 이름을 붙이게 된 이유다.

<표 1>가계 및 기업 소득 증가율 

기간

국민

총소득

가계

기업

‘75∼‘97

8.9

8.2

8.1

‘00∼’10

3.4

2.3

16.5

‘05∼’10

2.8

1.6

19.1

‘10

5.5

2.5

26.8

자료:『국내외 금융·경제 여건 및 금융정책방향』, 금융위원회 2011. 11

<그림 1>상용근로자 전산업 실질임금

 

<그림 2> 평균노동생산성과 실질임금

 

<그림 3> 이월이익잉여금/당기순이익

자료: 한국은행 『기업경영분석』 각호

우리 경제 역사상 실질임금이 6년 이상 연속하여 정체되었던 적은 경제개발이 시작된 이래 처음 있는 일이다. 근로자들의 생활형편이 역사상 최장기간 전혀 나아지지 않고 있다는 얘기다. 심지어 IMF 때도 실질임금은 2년 반 만에 위기 이전 수준을 넘어 왕성한 증가를 재개했었다. 이는 굉장히 중요한 경제적, 사회적, 정치적 함의를 갖는다. 가볍게 보아 넘길 일이 아니라는 뜻이다. “임금 없는 성장”을 해소하기 위해 무조건 임금을 많이 주자는 의미가 아니다. 적어도 생산성이 늘어나는 만큼은 올려줘야 하지 않느냐는 얘기다.

실질임금 정체 요인

실질임금은 왜 갑자기 정체되었나? 그 현상의 약 절반 정도는 인구 고령화로 설명이 가능하다. 나머지 절반은 경제학자들이 앞으로 규명해 내야 할 Open Question이다. 그렇다면, 인구 고령화는 어떻게 임금을 정체시키나? 우리나라 근로자들이 점차 고령화되면서 직장 내에서 월급을 가장 많이 받는 40대의 비중이 점점 줄어들기 때문이다. 이런 경로를 통해 인구 고령화는 전체 평균임금에 대해 하방압력을 갖는다. 우리나라에서는 2008년 이후부터 고령화로 인한 평균임금 하방압력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으로 분석된다.

인구 고령화 때문에 인구가 줄어든다는 얘기는 많이들 알고 있다. 우리나라도 내후년부터는 생산가능연령인구 숫자가 줄어들기 시작한다. 인구 고령화가 임금을 줄이는 역할은 이미 벌써 시작되었다. 인구 고령화는 앞으로도 임금을 하락시키는 역할을 계속 할 것이며 시간이 갈수록 인구 고령화의 임금 하방 압력은 점점 더 커질 것이다.

이런 분석의 시사점은 무엇인가? ‘인구 고령화’라는 인구학적 원인이 도사리고 있는 한, “임금 없는 성장”은 저절로 해결될 수 없다는 뜻이다. 중국처럼 7~8%까지 올라간다면 모를까, 4~5% 정도의 성장률 가지고는 실질임금이 증가세로 돌아서기는 매우 어려울 것이고 노동 생산성에 맞추어 증가하기란 더더욱 어려울 것이다. 결국, “임금 없는 성장”을 해소시키려면 인위적·제도적 방법을 통해 생산성과 실질임금의 격차를 줄이려 노력해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기업저축률은 엄청난 증가

한편, 임금 증가가 생산성 증가에 못 미쳤다면 근로자들이 못 받아간 부분은 어디로 갔나? 『기업경영분석』을 보면 우리나라 기업부문의 총매출액 대비 인건비 부담은 2008년 이후 뚜렷한 하락추세를 나타냈음을 알게 된다. 실질임금이 동결되어 있는 동안 기업부문의 인건비 부담이 크게 줄어든 것이다. 그리고 줄어든 인건비는 기업의 영업이익으로 나타났고, 기업의 수익성 내지 처분가능소득은 2008년 이후 “엄청나게” 많이 증가할 수 있었다.

실제로 우리나라 기업저축률, 즉 전체 국민소득 가운데 기업에게 돌아간 처분가능소득의 비중은 2006년만 하더라도 OECD 25개 국가 가운데 중간 수준(12위)이었지만 2008년 이후 껑충 뛰어올라 2009~2010년에는 일본에 이은 2위를 차지했다. 2008년 이후의 국내외 경제사정이란 정말로 좋지 않은 것이었는데 그런 와중에서도 기업소득이 그처럼 크게 증가한 것은 “엄청나다”라는 수식어 말고는 적당한 표현을 찾기 어렵다. 광범위한 기업부실이 금융부실로 이어져 경제가 커다란 어려움에 빠졌던 1998년 금융위기 상황을 되돌아보면 불과 10여 년 만에 기업저축이 지금처럼 늘어난 것은 상전벽해와 같은 일이 아닐 수 없다. 기업저축이 늘어난 것은 그 자체는 매우 반가운 일이다. 기업소득 증가가 가계소득의 증가로 자연스럽게 이어질 경우 두 가지가 서로 상승작용을 일으켜 안정적이고 활발한 경제성장이 가능해진다. 이른바 ‘경제 선순환’이요 ‘낙수효과’다. 기업부문에 배분된 소득이 차기(次期)의 왕성한 투자와 고용창출, 그리고 근로자들의 임금을 생산성에 맞게 지급하는 데에 쓰인다면 아무리 기업 편향적 소득배분이라 하더라도 문제 삼을 일이 별로 없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나라 기업부문은 늘어나는 소득에도 불구하고 투자도, 고용도, 배당도 하지 않은 채, 남는 이익을 쌓아두기만 하오고 있다. 『기업경영분석』을 자세히 살펴보면 2008년 이후 “임금 없는 성장”으로 인건비/매출액이 큰 폭으로 줄어들었고, 그에 따라 이익이 대폭 증가하자 기업들은 그 상당부분을 매년 차기로 이월하여 누적시켜 왔음을 발견하게 된다.

▲ 전경련 중소기업 협력센터가 1월 15일 서울 여의도 FKI타워 컨벤션센터에서 '2기 한국형 동반성장모델 발표회'를 개최, 이종욱 상생협력연구회장이 개회사를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저축의 역설

경제원론을 공부한 사람이라면 “저축의 역설”이란 용어를 교과서에서 읽어 본 적이 있을 것이다. 가계가 저축을 많이 하면 할수록 재산이 늘어나 가계로서는 좋은 일이지만, 너도 나도 지나치게 저축을 많이 할 경우 경제 전체적으로 수요가 줄어들어 불황이 찾아오고, 가계는 저축을 하고 싶어도 더 이상 할 수 없게 될지 모른다는 얘기다. 이와 꼭 마찬가지 상황이 지금 우리경제에서 벌어지고 있다.

우리의 경우는 가계가 아닌 기업이 문제다. 기업저축이 늘어나면 그 기업 입장에서는 재무구조가 탄탄해져서 좋겠지만 기업들이 너도 나도 지나치게 저축을 늘리는 바람에 가계소득이 말라붙고 전체 경제가 말라 죽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와 같은 현상을 나는 “기업저축의 역설”이라고 부른다. 개인에게는 최선의 일이더라도 공동체 전체에는 손해인 경우가 있을 수 있지 않은가? 실험실에서 돋보기를 들고 개별 경제주체의 입장을 바라보는 미시(微視:micro)분석과 산꼭대기에 올라 세상 전체를 바라보는 거시(巨視:macro)분석의 차이점이 바로 이런 데에 있다.

기업들은 왜 투자를 하지 않는가? 2006년쯤이던가, 왜 돈을 쌓아두기만 하고 투자를 않느냐는 질문에 “국민들이 기업을(사실상 재벌총수들을 의미했었음) 존경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어처구니없는 대답을 하는 것을 보고 아연실색(啞然失色)했던 기억이 난다. 기업들이 예금으로, 채권으로, 주식으로 보유하고 있는 자산규모는 이제 천문학적인 규모에 달하고 있다. 이러한 자산은 물론 언젠가는 생산적 용도에 쓰이게 될 것이지만 적어도 지금 이 순간만큼은, 적어도 일차적으로는, 생산적 용도에 사용되고 있지 않는 “놀고 있는 돈”일 뿐 아니라 규모가 지나치게 커져, 경제 전체에 굉장한 부담을 주고 있다.

이러한 성격은 1980년대 후반의 대기업들이 보유했던 비업무용 토지와 너무나도 흡사하다. 당시 비업무용 토지도 언젠가는 공장 또는 사무실 등에 사용될 땅이라고 주장했지만 적어도 아직은 생산적 활동에 사용되지 않고 있는 나대지(裸垈地)였다. 또한 재벌보유 비업무용 토지는 전국의 땅값을 올리는 주범(主犯)이었고, 그로 인한 부동산 버블은 경제 전체에 커다란 부담을 주었다. 1980년대 후반 노태우 정부는 대기업의 비업무용 토지를 억제하기 위해 위헌소지의 부담을 무릅쓰고 “체제유지(體制維持)가 더 중요하다”는 명분으로 토지초과이득세를 도입하기까지 했었던 것은 현재에도 시사(示唆)하는 바가 많다.

지금 우리 경제는 돈을 빌려 투자에 나서야 할 기업이 지나치게 많은 저축을 하고, 소득이 늘어나지 않는 가계는 엄청난 빚을 지고 있다. 순위가 높아도 좋아 할게 따로 있지 기업저축률 세계 2위가 도대체 뭔가? 기업은 저축의 주체가 아니라 투자의 주체여야 한다. 투자를 해야 할 기업이 저축만 하고 있으니 경제가 제대로 굴러가게 만들 방법이 없다. 부채의 주체여야 할 기업이 저축의 주체가 되고 저축의 주체여야 할 가계는 부채의 주체가 되었다. 가계와 기업의 역할이 서로 뒤바뀐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경제 역동성이 살아날 수 있겠는가? 설령 케인즈가 살아 돌아온다 해도 불가능할 것 같다.

한국경제의 역동성 회복을 위해서

이런 문제들을 해결하여 경제의 활력을 되찾을 수는 없는가? 한국경제가 저성장에서부터 벗어나 왕년의 왕성했던 역동성을 회복할 방법은 무엇인가? 문제의 핵심은 자금이 기업부문 특히 재벌 대기업에게 흘러 들어가기만 하면 거기서 고여, 흘러나오지 않는 막힘을 뚫어주는 것이다. 그렇게 해야 낙수효과(落水效果: trickle- down effect)도 되살릴 수 있다.

첫째, 동반성장 내지 경제민주화를 다시 정책의 우선순위에 올려놓을 필요가 있다. 기업들이 거두고 있는 천문학적인 수익 가운데 하청기업, 납품업체 등 관련 중소기업들이 가져가야 했던 몫을 부당한 방법으로 가져가 저축으로 남긴 부분은 없는지를 확실히 하자는 것이다. 이런 게 곧 동반성장이요 경제민주화가 아닌가. 이것만 확실하게 해도 우리 경제의 분위기는 확연히 달라질 수 있다고 본다.

둘째, 같은 일을 하면서도 임금은 절반 밖에 못 받는 비정규직 문제를 전향적으로 해결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정규직을 위한 과잉 보호장치를 과감하게 제거해야 한다.

셋째, 최저임금도 적극적으로 올려주어야 한다.

넷째, 기업들이 현금을 쌓아두려는 인센티브를 제거하기 위해 사내유보에 대한 과세를 강화하거나 기업들이 돈을 굴려 벌어들이는 금융소득에 대해 세율을 높이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여기에 대해서는 대기업을 중심으로 하는 거센 반발이 예상된다. 이런 저런 논리를 가지고 반대에 나설 것이고 그 반대 논리를 뛰어넘는 작업은 쉬워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면, 이도 저도 안 된다면, 다섯째, 법인세 세율을 다시 올리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법인세율을 올려 기업부문의 처분가능소득을 줄이는 동시에 그것을 재원으로 가계의 소득을 보조해 주자는 얘기다.

지금 우리 경제는 자금이 기업부문에 가면 거기서 머무를 뿐 가계로 잘 흘러나오지 않아 경제가 선순환을 하지 못하고 있다. 이런 막힌 곳을 터 주어야 경제가 비로소 의미 있는 회복이 가능해진다. 이것은 “임금 없는 성장”과 “기업저축의 역설”이라는 두 개의 현상을 해소하여야 가능해진다.

아무리 많은 기발한 정책을 고안해 낸다 하더라도 기업저축을 낮추는 동시에 임금이 생산성에 맞추어 증가하는 모습을 가시적으로 구현해 낼 수 있어야 의미있는 경제회복이 가능하다. 그렇지 못할 경우 성장률이 다소 높아진다 하더라도 그것은 반짝 회복에 그칠 뿐이며 경제의 고질병은 점점 더 깊어갈 것이고, 우리 경제는 끝내 장기불황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그 경우 아마도 차기 정부 쯤 가서는 2~3%의 성장도 다행이라고 여기고, 마이너스 성장에도 별로 놀라지 않는, 무기력한 경기 싸이클 속에 “한국판 잃어버린 10년”이 지나고 있음을 깨닫게 될 것이다. E21

본 기사는 월간지 <이코노미21> 5월호에 게재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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