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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교육비용, 국가가 부담해야
고등교육비용, 국가가 부담해야
  • 임재홍 한국방송통신대학교 법학과 교수
  • 승인 2014.10.08 1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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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의 교육제도②-대학교육비용 부담주체> 국가장학금제도보다 정부책임형 사립대학 육성이 우선적 과제

지난 2011년 한국대학교육연구소는 “미친 등록금의 나라”라는 제목의 책을 발간했다. 1인당 국민소득 세계 49위인 우리나라의 대학등록금이 세계 2위에 이르게 된 원인을 낱낱이 파헤쳤다. 반면 대학들은 엄청난 액수의 적립금을 쌓아놓고 있었다. 2009년 회계결산기준 주요 대학의 누적 적립금을 보면 이화여대가 6280억원, 홍익대 4857억원, 연세대 3907억원 등이었다.

대학자율화와 반값등록금

우리나라 대학의 등록금이 비싸진 이유는 대학자율화조치와 연관이 크다. 교육에 대한 관료적 통제의 전통이 강한 우리나라에서 대학자율화조치의 시작은 1987년 문교부가 수립한 대학자율화 세부실천계획부터이었다. 이것은 6.29선언이후 논의되어온 각종 교육자율화방안을 광범위하게 수려한 것인데 그 논리는 정치로부터 교육의 독립이었다. 대학교육자율화계획의 하나가 사립대 등록금 자율화조치이었다. 그 결과 1990년부터 1996년(노태우정부-김영삼정부)까지 사립대 등록금은 폭등했다. 등록금자율화 조치가 있었던 1989년 사립대 등록금은 1,442천원이었는데, 1996년에는 3,711천원으로 2.6배나 인상되었다.

고등교육을 시장영역으로 간주한 이 조치는 대학의 설립을 자율화했다. 그 결과 사립대학의 설립이 폭증했고, 부실비리대학이 증가했다. 고등교육의 공급증가로 인하여 대학구조조정의 원인을 제공하게 된다.대학자율화조치는 2003년 노무현정부에서 국립대 등록금자율화조치로 이어져 2004년부터 2008년까지 국립대 등록금 역시 폭등하게 되었다. 이 기간 중 국립대는 매년 10% 가까운 인상율을 보였다.

대학자율화조치가 등록금의 폭등으로 연결된데는 신자유주의적 시장화 정책과 관련이 있다. 신자유주의는 서방국가에서 헤게모니로서 형성된 정치적인 담론이었다. 신자유주의는 스태그플레이션과 국제무역 및 환율을 관리하고 있는 브레튼우즈 체제의 붕괴에 따른 대책으로서 1970년대 미국에서 시작된다. 신자유주의에서 시장은 공공부문의 새로운 규율기술로서 등장한다.

이러한 신자유주의 흐름은 교육영역에도 확산되었는데, 특히 고등교육 영역에서 더 강력했다. 영국이나 미국에서 고등교육영역을 시장화하기 시작한 것은 국가와 자본의 이해가 맞아 떨어졌기 때문이다. 공공부문에 재정적 지출을 삭감하려는 국가와 교육영역에서 영리를 추구하길 원하는 자본 모두 교육영역을 민영화, 시장화, 상업화하는데 야합한 것이다.

고등교육에서 국가의 역할을 축소하는 것이 경제적으로나 교육적으로 더 효율적인 방안으로 장려되었다. 2000년에 유네스코는 교육이 2조 달러 가치를 가진 전세계적 ‘산업’이라고 발표했다. 이러한 시장규모는 세계자동차 사업보다 더 크다고 본 것이다. 국제기관의 이러한 발표는 자본의 교육사업 진출을 장려하는 메시지로 작용한다.

자유주의 논리에서 시장은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하여 자율적으로 작동된다. 고등교육영역을 공공부문에서 시장으로 변질시키면 고등교육영역 역시 수요-공급의 원리에 의하여 자율적으로 작동하는 자율영역이 되고 이를 반영한 것이 대학자율화정책이다. 우리나라에서도 대학자율화정책은 국립대학 법인화정책 즉 민영화정책, 사립대학 상업화정책으로 전개되고 있다.

자율화정책은 다른 측면에서는 국가규제로부터의 자유 즉 탈규제를 의미한다. 자율의 주체인 ‘사립화된 대학’, ‘영리를 추구하는 기업으로서의 대학’을 전제한다. 그래서 일반 사기업이 경제활동의 자유를 누리듯이 대학도 기업적 활동, 영리활동에 장애가 되는 공적 규제를 철폐하려고 한다. 대학자율화정책으로 말해졌던 사안들을 보면 대학설립과 운영의 자유(대학설립과 운영에 대한 규제 완화), 등록금 책정의 자유(등록금 규제정책의 포기), 통폐합 등 학과운영의 자유, 산학협력의 자유, 학교기업운영의 자유, 교원인사의 자율성(비정규직의 일반화) 등이다.

자율화정책은 당연히 등록금의 결정 자유를 전제로 하는 만큼 등록금은 인상될 수 밖에 없다. 우리나라 고등교육이 대중교육화 단계에 들어선 1980년에 비하여 현재 사립대학 등록금은 11.5배 증가하였고, 국ㆍ공립대학의 경우에는 12.5배 증가하였다. 그리고 사립대학의 경우에는 등록금이 국립대학에 비하여 1.8배나 많기 때문에 그 교육비로부터 오는 고통은 더 심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런 상황 때문에 반값등록금이 사회적인 이슈가 된 것이다.

반값 등록금 제도와 국가장학금, 어떻게 다른가?

반값등록금이 이슈가 되고 있던 상황에서 등록금에 대한 대책이란 고작 학자금 융자제도였다. 이 제도는 일종의 금융상품으로서 연리 7%에 달하는 고금리 대출제도였다. 이 제도는 대학졸업자들을 채무자로 만들어 평생 대출금 상환의 부담을 안겨줄 뿐만 아니라 저소득층의 고등교육 접근을 가로막는 역할을 하고 있었다.

반값 등록금이 사회적 이슈가 되면서 정치권에서도 이에 대한 검토를 시작했다. 민주당(현 새정치연합)은 몇 번의 입장 변경을 통해 최종적으로 등록금 고지서상 반값등록금을 약속했다. 한나라당(현 새누리당)은 2006년부터 등록금 부담을 반으로 줄이겠다는 당직자들의 약속이 있었다. 2007년에는 반값등록금 법안을 임시국회에서 통과시키겠다고 발표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한나라당이 말하는 반값등록금은 등록금고지서상 반값이 아니라 장학금 제도를 크게 확대하여 대학 등록금의 부담을 반으로 줄인다는 내용이었다. 즉 국가장학금제도가 실체이었다.

▲ 국내 최초로 반값등록금이 실현된 서울시립대 본관 대회의실에서 2011년 11월 17일 박원순 서울시장이 서울시립대 집행부학생 20여 명과 ‘찾아가는 현장 토론회’를 갖고 대화를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2007년 대통령선거에서 승리한 이명박정부가 채택한 것은 '취업후 학자금 상환제'이었다. 이명박 후보의 교육공약은 초기 ‘반값 등록금’에서 시작하여 ‘맞춤형 국가장학제도의 구축’을 거쳐 최종적으로 ‘취업후 학자금 상환제’을 2010년부터 시행하기에 이른다. 2009년 5월 한국장학재단이 설립되었고, ‘취업 후 학자금 상환 특별법’이 2010년 제정되었다.

‘취업후 학자금 상환제’는 높은 이자율, 상환 시 복리적용, 가혹한 상환기준선(최저생계비 수준)과 까다로운 자격조건(평균 성적 B학점 이상) 등으로 큰 도움이 되지 못했다. 이 제도는 반값등록금제도나 국가장학금제도에 비해 교육비의 공적 부담 원칙에 기여하지 못했다. 이 때문에 2012년 대통령 선거에서도 반값등록금은 다시 쟁점이 되었다. 선거에서 승리한 박근혜정부는 국가장학금제도를 도입하였다.

우리나라 총 대학 등록금수입액은 약14조원(2011년 기준) 정도이다. 박근혜정부는 국가장학금으로 4조원, 대학의 장학금과 등록금 인하 등 자체 노력으로 3조원 등 모두 7조원을 마련해 반값등록금을 실현하겠다고 한 바 있다. 그러나 2014년 교육부 예산을 보면 국가장학금은 3조5천억원에 그치고 있다. 이 예산도 학생수의 급감, 대학구조조정으로 16만명을 감축한다는 교육부의 계획이 실현된다고 가정하면 국가장학금 예산은 당초 계획보다 적어지게 된다.

중요한 것은 반값등록금과 국가장학금 제도의 차이이다. 반값등록금이란 고지서상의 등록금을 반으로 낮추는 것을 말한다. 반값등록금이 실현되기 위해서는 설립주체 즉 국가(국립대학), 지방자치단체(공립대학), 사립학교법인(사립대학)이 대학운영경비를 더 많이 부담해야 한다. 사립학교법인의 재정취약성을 고려한다면 사립대학의 경우에도 공적 보조가 필요하게 된다. 따라서 고등교육재정교부금제도가 법제화되어야 한다. 반면 국가장학금이란 대학이 학생들에게 고지하는 등록금 액수는 이전과 동일하나, 국가가 학생들에게 소득별로 차등해서 장학금을 지급하는 정책을 말한다.

이러한 개념 정의로부터 반값등록금이 보편적 교육복지라면, 국가장학금은 선별적 교육복지라는 것을 알 수 있게 된다. 우리나라에서는 복지정책을 펼 때마다 보편복지와 선별복지 중 어느 것을 택할 것인지 논쟁이 있었다. 반값등록금에 대해서도 부유계층까지 혜택을 주는 것은 소득재분배 차원에서 정당화될 수 없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논리가 국가장학금 제도 도입의 이론적 근거가 될 수도 있다.

그러나 모든 계층에 반값등록금의 혜택을 주면서도 소득재분배 차원에서 정당화될 수 있는 제도 설계는 얼마든지 가능하다. 그것은 반값등록금 혜택을 받는 중산계층이나 부유계층에 대해 등록금에 해당하는 액수만큼 세금을 더 부과하면 된다. 그리고 이 경우에 선별복지에 따른 행정비용을 절약할 수 있기 때문에 경제적으로 더 효과적일 수 있다.

양 제도는 경제적 논리보다는 우리나라의 고등교육 현실에서 어느 것이 더 적합성이 있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사립대학이 다수인 우리나라에서 국가장학금 제도는 문제점이 있다. 왜냐하면 학생의 교육권을 보장한다는 차원에서 대학운영경비는 설립주체가 일차적으로 부담해야 한다. 즉 대학의 유형에 따라서 국립대학은 국가, 공립대학은 지방자치단체, 사립대학은 사립학교법인이 부담해야 한다.

그런데 국가가 장학금 형식으로 수업료를 부담하는 것은 지방자치단체나 사립학교법인이 부담해야 할 전입금을 국가가 대납해주는 것이다. 대납을 해주는 것이 실정법상 문제될 것은 없다. 그러나 우리나라 사립대학의 여러 문제들 예를 들면 족벌지배체제, 학교비리를 척결하고 교육의 공적 가치를 반영할 수 있는 기회를 버리는 결과가 되고 만다.

우리나라처럼 사립의 고등교육기관이 87%에 이르고 사립의 고등교육기관에 재학하는 학생이 80%에 달하는 점을 감안하면 국가장학금보다는 반값등록금제도를 통해서 사립학교의 지배체제나 비리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제도를 설계하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

반값등록금은 국가가 대학에 대해 직접 재정보조금을 지원하는 제도이다. 즉 국립대학뿐만 아니라 사립대학의 재정 일부를 국가가 책임지는 것이다. 이 경우 (사립)대학의 예산과 결산이 정부의 감독 하에 있게 되고, 대학 내부적으로는 사립학교법인과 구별되는 별도의 조직을 통해 인사와 예산이 운영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이런 점에서 국가장학금보다는 반값등록금의 공적 성격이 강함을 알 수 있다.

고등교육비용, 누가 부담해야 하는가?

반값등록금이 사회적 이슈가 되면서 종래의 학자금 융자제도를 넘어서는 국가장학금제도가 마련되어 등록금 부담이 일부 경감된 측면은 있다. 그러나 자율화조치로 등록금이 국민소득에 비해 과도한 것은 여전하며, 대학생자녀를 둔 가정은 빈곤계층이든 중산계층이든 그 부담의 정도는 여전히 심각하다. 여기서 고등교육의 비용을 누가 부담하는 것이 좋은지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

고등교육의 공공성 전통이 확립된 유럽 국가들은 신자유주의 흐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대학 등록금이 거의 없거나 있다 해도 우리나라 돈으로 수십만원 수준에 불과하다. 독일에서 국립대 법인화 정책과 등록금 인상은 비슷한 시기에 진행되었다. 1997년 바덴-뷔템베르크에서는 장기 학생에 대한 1,000마르크의 수업료 도입 법안을 통과시켰고, 2007년에 이르면 독일 전체 16개주 가운데 7개주에서 본격적으로 등록금을 도입하여 대학생들에게 학기당 500유로를 받기 시작했다.

이러한 정책 선회에 대한 독일 대중들의 반응은 매우 격렬했다. 사회적 저항은 우리나라 반값등록금 운동 이상으로 강력했다. 많은 대학생들이 거리와 법정에서의 투쟁을 벌였다. 이런 저항은 1960년대말 교육 평등권 사상과 학생들의 등록금 폐지 운동 등에 힘입어 1970년대 무상교육 시스템이 자리 잡았던 전통과 연관이 깊다. 독일 연방헌법재판소가 2012년 11월 등록금소송에서 등록금 과잉 징수는 위헌이라는 결정을 내렸고, 그 영향으로 다수 주에서 등록금 무상으로 복귀하기 시작한 것이다.

여기서 고등교육을 공공성이 인정되는 공공재로 볼 것인지 사회적 논의가 필요하다. 종래 복지국가 하에서 고등교육의 공공재(혹은 준공공재)적 성격에 대해서는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따라서 국가가 교육을 제공하고 그 공적 재원을 조달하는 것은 절대적인 원칙으로 확립되었다. 심지어 자유주의자들도 교육과 연계해서 발생하는 외부효과 때문에 교육에 공적으로 재정이 지원되어야 한다는 데에 암묵적으로 동의한 바 있다.

이러한 복지국가적 사고는 1970년대 이후 전세계적으로 영향을 미친 신자유주의 정책에 의하여 대체하기 시작되었다. 신자유주의자들에게 교육은 단순한 사적 재화일 뿐이다. 이를 논증하기 위해 교육에 대한 공적 보조금을 삭감하기 위한 주장을 전개한다.

그 유형을 분류하면 세 가지 정도이다. 먼저, 고등교육에 대한 투자 결과 공적 편익율이 사적 편익율보다 낮다. 둘째, 고등교육에 대한 보조금 지급이 빈곤계층보다는 부유계층에 더 많이 누적됨으로서 소득의 불평등을 증대시키는 역진성을 초래한다. 셋째, 현재 개발도상국 정부들은 자원 부족에 직면하고 있다. 따라서 교육에 대한 공적 보조금을 축소하고 개인들이 자신의 교육을 위하여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공적 보조금을 지급하는 예외적인 경우에도 빈곤층만을 대상으로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은 실제 논리적으로도 근거가 없고, 고등교육의 공공성을 극단적으로 폄하함으로써 사회적 불평등을 심화시킬 가능성이 농후하다. 고등교육은 비용으로 산정하기 어려운 외부효과를 창출한다. 이러한 외부효과의 예로서 건강개선, 인구증가의 감소, 빈곤의 감소, 소득 배분의 개선, 범죄 감소, 신기술의 신속한 적용, 민주주의의 확장, 사회적 자유의 보장 등을 들 수 있다. 따라서 공공재(a public good)이거나 공공재에 준하는 가치를 가지고 있다.

또한 교육은 가치재의 성격을 갖고 있다. 고등교육을 사유화하여 시장화 하는 경우 시장의 불완전성으로 인해 고등교육의 기회균등의 보장이라는 헌법적 가치가 제약될 수 있다. 고등교육의 시장화는 필연적으로 경제적으로 어려운 계층의 고등교육 접근권을 침해하게 된다. 따라서 교육에 대한 공적 장려가 필요하다. 따라서 국가는 교육에 대한 보조와 지원을 해야 한다.

고등교육의 문제해결을 위한 공공적 대책

우리나라에서 고등교육이 사적인 재화처럼 인식되고 개인부담이 과도한 원인은 바로 사립대학 위주로 고등교육이 설계되어 있기 때문이다. 2011년 기준으로 사립의 고등교육기관 수는 전체 고등교육기관의 87%에 달하고, 사립대학의 학생수는 75%, 일반대학의 경우에는 79%에 달하고 있다.

이로부터 다양한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 먼저, 사립대학 위주의 체제하에서는 대학의 서열화 경향을 띠게 된다. 사립대학이 많을수록 대학들은 제각기 생존과 지위 상승을 위한 서열경쟁에 매달리게 된다. 둘째, 사립대학의 재정이 열악하기 때문에 대학의 운영비를 대부분 학생들이 부담해야 한다. 고등교육비용의 개인부담율이 높아지는 이유는 고등교육기관에서 차지하는 사립고등교육기관의 비율이 높기 때문이다. 셋째, 고등교육의 질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재단의 전입금이나 국가의 공적 지원이 없는 사립대학에 의한 고등교육은 낙후할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 고등교육 이수율은 세계에서 제일 높지만, 학생 1인당 공교육비는 미국의 39%, OECD평균의 74% 정도에 그치고 있다.

이러한 과도한 개인부담을 낮추기 위한 노력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예를 들면 고등교육법을 개정하여 학생이 참여하는 등록금 심의위원회를 설치하고, 등록금 적정산정의 기준을 마련하고, 등록금인상율의 한계를 법률로 규정하고 있다(동법 제11조). 그러나 이러한 규제는 국가의 공적 경비 부담원칙을 설정하는 것은 아니며, 별 실효성도 없다. 따라서 문제의 원천이 되는 사립대학 위주의 고등교육체제를 변화시켜야 한다. 즉 공적 책임이 강조되는 국공립대학 위주의 고등교육체제를 만들어야 한다.

그러한 방안으로 국공립대학의 신설이나 확장이 있지만, 고등교육의 공급이 팽창하여 양적 축소가 논의되는 현 상황에서는 적절한 대안이 되기는 힘들 것이다. 차선책으로 고려해볼 수 있는 것이 정부책임형 사립대학의 육성 방안이다.

정부책임형 사립대학이란 사립대학이 정부 등 공적 기관으로부터 대학운영경비의 50%이상을 제공받는 사립대학을 말한다. 즉 정부의 지원을 받는 사립대학을 말하며 그 법적 지위는 반(半)공립, 반(半)사립으로 전환되는 사립대학을 말한다. 정부의 지원이 이루어지는 만큼 재정지원이 되는 영역 즉 인사와 예산에 대해서는 학교법인이 아니라 대학구성원과 정부에서 임명하는 위원으로 구성되는 대학운영위원회가 심의ㆍ의결권을 가지도록 하면 된다.

이러한 방법은 미국의 고등교육사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미국의 고등교육은 1600년대 퓨리턴 등 종교단체에 의하여 설립된 사립학교들에 의하여 수행되었다. 그러나 사립대학의 재정 부실 등의 문제와 다트머스대학의 공립화 실패 이후 모릴법(1862년과 1890년)을 제정하여 주립대학 설립을 위한 연방 재정 지원을 제공하기 시작하였다. 그 결과 현재 미국 주립대학의 재적학생수는 전체 고등교육을 받는 학생 총수의 74%에 이르고 있다. 이 과정에서 사립대학이 자진해서 주립대학이 된 경우(오번대학교, 럿거스대학교, 윌리엄ㆍ메리대학 등)도 있지만, 준공립화 사례(매사추세츠공과대, 코넬대, 시러큐스대, 예일대, 오리건주나 켄터키주의 기독교 대학들)도 있다.

사립학교법인의 족벌구조를 민주적 지배구조로 변경하는 것을 조건으로 하여 사립대학운영경비의 50%이상을 정부가 책임지는 정부책임형 사립대학은 사립대학의 여러 문제를 해결하면서 국가의 공적 책임도 강화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반값등록금정책의 실효적인 수단이 될 수 있다. 국가장학금제도보다 정부책임형 사립대학의 육성이 더 우선적인 과제일 것이다.

일부에서는 예산상의 문제로 현실성이나 구체성이 떨어진다고 보는 시각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각도를 조금만 변경해도 현실적인 방안임을 알 수 있다. 왜냐하면 국가장학금 예산으로 확보된 3조5천억원과 연구비 예산 1조원을 합하면 우리나라 사립대학의 거의 대부분을 포괄할 수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대학구성원과 법인이사회의 합의에 기초하여 사립학교법인이 먼저 신청하는 방안이기 때문에 위헌성의 문제도 전혀 없다.

정부책임형 사립대학의 육성 방안 이외에도 고등교육을 공공화하는 방안으로서 ① 사립대학이 자율적 구조개선에 의해 국·공립화 하는 방안, ② 국공립대학이 사립대학을 인수·합병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 ③ 비리사학의 처리방안으로서 국·공립화 혹은 정부책임형 사립대학으로 전환시키는 방안도 생각해 볼 수 있다. E21

본 기사는 월간지 <이코노미21> 7월호에 게재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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