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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구조조정,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대학구조조정,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 윤지관 덕성여대 교수, 한국대학학회 회장
  • 승인 2014.10.10 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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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의 교육제도 ③-학령인구 감소와 대학구조조정> 정원감축이 평가지표되는 교육계 ‘4대강 사업’으로 전락될 우려 커

최근 대학의 구조조정이 교육분야의 가장 중요한 현안으로 떠올랐다. 박근혜 정부가 올해 초 [대학구조개혁 추진계획]을 공표한 후 이를 촉진하기 위한 정책을 강하게 밀어붙이고 있는 탓이다. 작년 10월 교육부는 전국의 모든 대학을 평가하여 등급화하고 이 등급에 따라 재정지원과 정원조정을 차등적으로 하겠다는 취지의 대학 구조개혁안을 발표하여 대학 구조조정의 방향을 둘러싼 논란을 불러일으킨 바 있다. 학계나 대학의 비판이 이어졌지만 정부는 올해 1월말 이 계획을 확정하고 곧이어 대학특성화 사업을 공지하면서 정원감축 비율을 중요한 평가항목으로 삼음으로써 대학들을 압박하기 시작한 것이다.

정부의 대학구조조정 강행 이유와 실태

정부가 대학들의 반발과 혼란을 무릅쓰고 구조조정을 강행하고 있는 명분은 두 가지다. 하나는 출산율 저하로 학령인구가 감소함으로써 대학정원의 조정이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이 상황을 시장에 맡겨두면 지방대와 전문대의 고사가 예상되기 때문에 이를 막기 위해서 정부의 개입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같은 논리 자체를 그르다고 하기 어렵거니와, 이 조정과정을 통해서 부실대학들을 정리하여 대학의 질과 경쟁력을 높이겠다는 목표 자체도 흠잡을 데 없다. 그렇다보니 목하 대학에서 벌어지고 있는 정부의 구조조정 정책과 조치들은 마치 피할 수 없는 일이 진행되는 과정 정도로 받아들여지는 경향도 없지 않다. 여기에는 모든 기업체들이 구조조정을 겪어왔는데 대학만 여기서 예외일 수 없다는 대학에 대한 세간의 부정적 정서도 작용하고 있다.

물론 대학도 국가의 기관 가운데 하나이고 경영이 필요한 곳이기 때문에 구조조정의 예외일 수가 없고 끊임없이 스스로를 개혁하려는 노력도 중요하다. 그러나 한 가지 꼭 짚어두어야 할 것은 대학은 이윤을 추구하는 기업체가 아니라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육기관이라는 사실이다. 구조조정의 필연성에 대한 정부의 분석이나 개입의 필요성에 대한 주장이 그 자체로서는 아주 그릇된 것은 아니나, 문제는 그 개입의 방식이 대학을 마치 기업체처럼 취급하고 있다는 것이다. 단적으로 전국 대학을 정부가 설정한 성과지표를 기준으로 평가하고 하위에 해당되는 대학들을 강제 퇴출시키는 것이 정부 구조조정안의 기본방향이다. 부서별로 성과지표를 그래프로 그리고 경영효율성에 따라 조정하는 기업체의 방식을 그대로 따르고 있는 것이다.

교육부 구조조정 방안의 근본문제는 이 조정의 과정에서 교육현장이 무시되고 있다는 점이다. 대학은 교수와 학생 사이의 만남을 통해 교육과 연구가 진행되는 학문공동체의 성격을 지니고 있다. 대학의 구조를 조정하거나 개혁하고자 할 때는 이 교육현장에 대한 배려가 반드시 있어야 한다. 그러나 교육이 부재하는 현 정부의 대학 구조조정 정책은 개별대학에 그치지 않고 한국 대학 전체 나아가서 국가의 장래에 심각한 문제들을 야기하게 될 것이다.

예상되는 악영향

우선 두어 가지 예를 들겠다. 하나는 학문분야에 미칠 엄청난 악영향이다. 대학을 구조조정하는 과정에서 학과나 대학의 통폐합 사례가 많았고 앞으로 더욱 늘어날 것이 예상된다. 통폐합되는 학과의 교수들은 당연히 조정의 대상이 되어 교수직을 잃게 되거나 전공분야를 가르치지 못하는 등 열악한 근무환경에 놓이게 된다. 이같은 상황이 구조조정 기간으로 설정된 10년간 지속될 것이 예상되는데 이는 해당교수의 생존권 문제에만 머무르지 않고 학자의 전문성이 요구되는 대학의 교육환경을 열악하게 만들고 궁극적으로는 대학을 기반으로 삼는 학문생태계를 심각하게 훼손하고 망가뜨릴 가능성이 매우 높다. 경영문제로 현직 교수와 연구자들을 퇴출시키는 상황에서 신규 학자의 채용 폭은 크게 줄어들고 결국 앞으로 국내에서 학문에 투신하고자 하는 인재들은 급격히 감소할 것이다. 국가의 대학 및 학문정책이 이처럼 교육현실의 한치 앞 너머를 보지 못하는 수준이어서는 안 된다.

또 다른 예로 정부의 구조개혁 정책시행의 첫 적용대상인 대학특성화 사업에서 드러난 폐해를 들 수 있다. 정부는 ‘전국 방방곡곡’에 특성 있고 경쟁력 있는 대학을 만들겠다는 것을 특성화의 목적으로 내세웠다. 그러나 실제적으로 정원감축 계획이 선정에 거의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방식이어서 지원한 거의 모든 대학들이 불과 한 달 만에 졸속으로 구조조정 계획을 제출할 수밖에 없었다. 대학의 전공과 분야는 그만한 이유가 있어서 구분되어 있는 것으로 그렇게 순식간에 없애고 합치고 할 대상이 아니다. 이런 강압적인 방식으로 대학의 특성화가 이루어지리라고 생각하는 교수는 각 대학에서 기획안을 작성한 사람들 가운데서도 거의 없을 것이다.

그동안 학계에서 현 정부의 구조조정 정책을 두고, 인위적인 틀로 교육생태계를 망가트린다는 점에서 교육에서의 ‘4대강 사업’에 비유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단적으로 정부의 구조개혁 방안대로면 대학의 구조가 개선되는 것이 아니라 그 기본토대조차 무너지게 될 개연성이 매우 높다. 그렇다고 다른 방안이 없는 것도 아니다. 학계 일각에서는 구조조정의 국면에 올바로 대처하면 한국대학의 구조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다고 주장하고 그 방안을 제시하기도 하였다. 그럼에도 왜 교육부는 한사코 지금의 정책을 고수하고자 하는 것일까? 4대강 사업에 토건세력의 이해관계가 큰 역할을 했듯이 이 ‘교육 4대강 사업’에도 사학재단이라는 기득권 집단의 이해관계가 크게 작용하고 있다는 것이 학계의 일반적인 판단이다.

다음에서 현재의 구조개혁 정책의 근본문제와 폐해가 무엇인지 짚어보고, 그것을 대체할 대안과 그 실현가능성은 어떠한지 살펴보겠다.

정부의 대학구조조정 정책의 심각한 문제

학령인구 급감에 따른 지방대 및 전문대의 고사위기에 대처한다는 목표 아래 교육부가 내세운 정책은 전국 대학을 일률적으로 평가하여 5등급으로 분류하고 이 등급에 따라 대학들을 차등지원 및 지원제한하고 정원 또한 차등적으로 감축하겠다는 것이다. ‘최우수’, ‘우수’, ‘보통’ 등급은 차등적인 재정지원을 하면서 이 가운데 ‘최우수’ 등급은 자율적인 조정을 허용하되 나머지는 강제적으로 정원감축을 요구하며, ‘미흡’ ‘아주 미흡’의 하위 두 등급은 재정지원을 제한 내지 중지하고 대폭적인 정원감축을 강제하여 퇴출을 유도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같은 행정조치를 원활하게 하기 위해 구조개혁을 위한 입법을 추진하겠다는 것이고, 등급화 시행 이전이라도 올해부터 모든 정부재정지원 사업에 대학별 구조조정 내지 정원감축율을 평가의 중요한 요건으로 반영하겠다는 것이다.

전국대학을 이처럼 5등급으로 나누겠다는 발상 자체가 비교육적이고 일류대니 이류대니 하는 세속의 구분을 국가정책에 적용한다는 점에서 황당하기까지 하다. 교수단체만이 아니라 전국의 대학으로부터 큰 반발을 산 것도 당연한데, 그럼에도 정부는 이 정책을 그대로 강행하여 지난 4월말 의원입법의 형식으로 대학구조개혁 법안을 발의하였고, 대학특성화 사업 및 학부교육선도대학육성사업(ACE) 등 올해 정부재정지원 평가에서 정원감축 비율에 따라 가산점을 주는 기준을 도입하여 구조조정 정도가 선정에 결정적인 변수가 되게 하였다.

한마디로 정부안의 기본문제는 표방한 목표(지방대 전문대 고사 위기 방지 및 대학교육의 질 고양)와 그 방안이 정반대로 가고 있다는 것이다. 전국 대학을 같은 잣대로 평가하게 되면 인프라가 부족한 지방대가 높은 평가를 받을 리 없고 대규모의 세칭 일류대학들이 정원도 적게 줄일 뿐더러 재정지원도 독점하게 될 것이 뻔히 예상된다. 또 대학교육의 질도 마찬가지다. 대학 간의 상호경쟁을 통해서 질을 높인다고 하는데, 모든 대학들이 진정한 교육의 질 향상보다 정부에서 제시한 지표에 맞추고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편법까지 포함한 갖은 비교육적인 행태를 자행하고 있다는 것은 대학관계자라면 다 알고 아마도 교육부 관리들도 그 정도는 알고 있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정부가 보호를 표방한 지방대들이 오히려 정부정책이 지방대 죽이기라고 반발하고, 정부 또한 서울 중심 서열화가 강화된다는 비난에 대해서 ‘좋은 대학’의 정원을 줄이면 학부모들이 반발한다는 식의 자기모순된 주장을 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 전국사립대학교교수협의회연합회와 전국교수노동조합 등은 1월 23일 충북대에서 ‘박근혜 정부 대학 구조조정, 이대로 좋은가’를 주제로 토론회를 했다. 사진=뉴시스

정부의 구조조정 방안이 스스로 표방한 목표와 엇나가고 있다는 또 다른 근거는 이것이 대학의 수나 정원 줄이기에 치중하고 있어서 대학의 구조를 개혁한다는 장기적 목적을 오히려 해치고 있다는 점이다. 대학의 구조를 개혁하려면 무엇보다 현재 대학의 구조적인 병폐를 척결하고 후진적인 요소를 청산하여 대학을 선진화하는 방향이어야 한다. 그러나 정부의 안에는 이같은 문제의식부터가 부재한다. 말로는 학령인구 감소의 위기를 한국 대학의 구조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지만 정작 교육부의 방안은 이같은 개혁과는 아예 무관하다.

한국대학의 구조적인 문제라면 교육학자뿐만 아니라 일반 시민들조차 공감하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한국의 대학들이 서울과 수도권 중심으로 철저하게 서열화되어 있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한국 대학들의 절대다수가 사립이라는 것이다. 최근 10년 사이에 더욱 심화된 대학 서열화는 극심한 입시경쟁을 야기하여 ‘망국적인’ 사교육이 성행하고 공교육의 기반을 무너뜨리는가하면 지역간 균형발전을 저해하는 주요요인 가운데 하나가 되고 있다. 또한 대학의 85퍼센트가 사학으로 구성되어 있는 탓에 한국의 대학생들은 세계 최고 수준의 고액등록금으로 고통 받을 뿐더러 그 대개가 족벌로 운영되고 있어 잦은 비리와 사학분규로 시달리며 열악한 교육환경에 처해 있다. 정부가 대학의 구조를 개혁하고자 한다면 극심한 서열화를 완화시키고 고질화된 사학문제를 근원적으로 해결하는 방안을 찾아나가야 마땅하다.

그러나 교육부의 현행 안은 문제의식의 부족 정도가 아니라 아예 이 병폐들을 더 고착시키거나 악화시키고 있다. 전국 대학을 등급화해서 차등적으로 조정하겠다는 발상부터가 서열화를 강화했으면 했지 해결은 커녕 완화할 것이라고 보는 사람도 거의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정부가 서열화의 문제에 아무런 의식이 없는 것은 아니다. 의식하기 때문에 말뿐이기는 하지만 ‘전국 방방곡곡’에 학생들이 갈만한 좋은 대학들을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한다고 표방한 셈이다.

이에 비하면 두 번째 구조적 병폐에 대해서는 그만한 자의식조차 없다. 사학문제는 고질화되어 분규를 해결하는 것이 교육부의 중요한 정책업무 가운데 하나가 되어 왔다. 그러나 이제 구조조정의 국면에서 대개 부실하게 운영되어 온 문제사학들을 정리할 절호의 기회가 온 것이다. 정부 안대로 하더라도 부실사학들은 낮은 등급을 받을 것이 예상되고 자연스럽게 퇴출의 길을 밟게 될 것이다. 교육부가 할 일은 경영진을 퇴진시킨 후 그 대학의 학생과 교원 등 구성원들을 지원하고 교육현장을 정상화하는 것이다. 그러나 과연 교육부는 그런 당연한 책무를 수행할 자세가 되어 있는가?

지난 4월 30일 세월호로 나라 전체가 침통한 가운데 정부여당은 김희정 의원 대표발의로 [대학평가 및 구조개혁에 관한 법률안]을 제출하였다. 의원입법의 형태를 취하고 있으나 이 법안은 정부의 구조개혁안을 법적으로 뒷받침하기 위한 사실상의 정부입법안이라고 보아도 좋을 것이다. 이 법안의 주된 내용은 두 가지다. 하나는 전국 대학에 대한 등급평가를 통해 구조조정을 강제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마련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사학재단에 대한 기존의 규제를 대폭 완화해서 퇴출시 공익적인 자산을 거의 마음대로 처분할 수 있는 특혜를 주는 것이다. 현행법에 의하면 사학재단이 퇴출되는 경우 그 자산은 다른 교육기관에 넘기거나 국고에 귀속하게 되어 있다. 이 법안은 여기에 ‘특례’를 두어 “잔여재산의 전부 혹은 일부”를 여러 형태의 법인에 넘길 수 있게 하여 거의 사유재산권에 준하는 권리를 행사할 수 있게 하였다. 이 법안이 대학구조개혁을 빙자한 사학재단 특혜법이라고 비난받는 것은 그 때문이다.

그렇다면 교육부는 퇴출되는 사립대학의 학생과 교직원 등 교육현장에 대해서는 어떤 배려와 정책적 마련을 하고 있는가? 거의 아무것도 없다. 부실사학재단에게는 여차하면 재산을 팔고 나가버릴 수 있게 보장해주는 반면, 그 대학의 교수는 대량해고에 속수무책으로 당하게 방치하고 있다. 학생들에 대해서도 인근대학에 편입할 수 있다는 최소한의 조치만 언급하고 있다. 결국 해당대학의 현장이 혼란에 빠지고 교육자체가 정상적으로 이루어지지 않을 것임은 명약관화하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학생들을 대학에 보낸 국민들이 져야 할 것이다. 도대체 교육부가 사학재단을 위해 존재하는지 교육을 위해 존재하는지 모를 지경이다.

진정한 대학 구조개혁의 길은 열려 있다

주지하다시피 대학의 구조조정은 최소 10년에 걸쳐서 진행될 장기적인 기획이다. 정부 자신이 2023년까지 대학입학 정원을 16만명, 즉 지금의 거의 3분의 2 수준으로 줄여야 한다고 제시하고 있다. 그 통계를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는다하더라도 일정한 정도의 구조조정은 필연적인 일이기 때문에 교육현장의 혼란을 최소화하고 이를 한국 대학의 구조를 선진화할 계기로 삼아야 한다는 데 대한 공감대가 이루어져가고 있다. 그러나 그것이 교육부가 추진하는 방식, 즉 기업체에 대한 구조조정처럼 진행되어서는 오히려 대학의 기본구조조차 망치게 될 것이라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현 정부의 ‘교육 4대강 사업’을 막아내는 것은 단지 교육계의 일만이 아니라 우리 사회의 장래와 직결된 사안이라는 인식이 필요한 시점이다.

그렇다면 현 정부가 추진하는 구조조정정책을 대체할 현실적인 방안이 있는가? 물론 있다. 그것은 마땅히 한국 대학의 두 가지 구조적인 병폐를 해소하는 길, 즉 극심한 서열화를 완화시키고 사학 중심의 대학체제를 공교육 중심으로 개편하는 방향이 될 것이다. 그리고 그 대안정책의 구체적인 윤곽도 이미 제안된 바 있다.

정부가 대학 간의 지표 경쟁과 평가를 통한 등급화를 기본 방향으로 하는 구조개혁 방안을 처음 제시한 작년 10월 이래 학계에서는 그 근본적인 문제점을 짚고 그것을 대체할 구조조정 정책대안을 모색해왔다. 결국 지난 겨울 올바른 대학 구조개혁을 위한 전국순회 교수토론회가 조직되고 이 전국 토론회의 논의를 토대로 관련 학계 전문가들이 작성한 정책대안이 지난 3월 14일 국회 정책토론회에서 발표된 바 있다.

정책대안은 대학의 구조개혁이 장기간 지속되는 가운데 한국 고등교육이 혼란을 겪지 않도록 정상적인 역할을 보장하고, 주로 조정의 대상이 될 사립대학들을 점진적으로 공공적인 교육기관으로 전환시켜 나감으로써 한국 대학의 구조적인 문제를 개선하는 방향을 취하였다.

우선 학령인구 감소와 조정의 불가피성에 대한 정부발표부터 다시 검토할 필요가 있다. 정부는 향후 10년 동안 가령 1000명 정원의 대학을 160개 없애야 한다는 식의 충격적인 수치를 제시하고 그것으로 대학에 대한 강제구조조정의 명분을 삼고 있다. 그러나 이런 분석은 한국 대학의 학생구성을 현재와 같이 유지할 때 유효한 것이지, 가령 10년간 선진국 형으로 학령인구의 범위를 넓히고 계속 혹은 평생교육을 강화하여 성인들에게 대학입학의 문턱을 낮추는 정책을 쓰면, 조정되어야 할 정원은 대폭 줄어들게 된다. 구미 선진국 경우 대개 재학생의 반수는 갓 고등학교를 졸업한 학생들이 아니라 성인들이다. 또한 대학이 지나치게 많다는 세간의 인식과는 달리 인구 당 한국의 대학 수는 미국의 절반을 조금 넘는 수준이다. 무엇보다 대학 정원 조정은 10년 후, 20년 후 지식산업 시대의 인력양성이라는 관점에서 접근해야지 현재 상황에 따른 축소지향의 기능적인 대응이어서는 안 된다.

공공형 사학 전환이 해결책

그런 관점에서 구조조정의 규모도 면밀하게 재검토되어야 하거니와,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과도한 사학비율과 이로 인한 부작용을 개선하는 일이고 그것은 사학들의 상당수를 공립이나 공영형으로 전환함으로써 실현될 수 있다. 과연 이것이 가능한가가 문제일 것이다. 실제로 그동안 사학재단은 무슨 잘못을 저질러도 건재하였기 때문에 그 현실성에 의문이 들 수도 있다. 그러나 앞으로 본격화될 구조조정 국면의 대학환경은 과거와는 크게 다를 것이며 아무리 친재단적인 정부라 할지라도 비리사학이나 부실사학을 더 이상 비호하기 힘들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지방대를 살리겠다는 목적을 위해서라도 앞으로 생겨날 퇴출사학들을 지역의 여건에 따라 국공립과 통합하거나, 공립으로 전환하거나, 혹은 공익적인 운영을 하는 조건으로 정부가 일부 운영비를 지원하는 공공형 사학으로 전환하기만 하면 된다.

10년 동안 이 전환이 순차적으로 일어나게 되면 지방의 대학은 그대로 존속하면서 안정적으로 운영될 수 있고 등록금이 낮아져서 지금보다 더 경쟁력을 가지게 될 것이다. 그리고 현재 고질화된 사학문제의 상당부분이 불식될 것이다. 또 이같은 전환과정에서 연구인력이자 교육의 주체이기도 한 교직원의 신분도 안정되기 때문에 교육현장의 혼란도 연구력의 쇠퇴도 없을 것이다.

이러한 대안적 방안은 현 정부의 대학구조개혁안과 방향부터 다르기 때문에 정부가 정책을 송두리째 수정하기 전까지는 실현불가능한 안이라고 이해될 수도 있다. 그러나 현재 정부 안에는 장기적인 대학정책으로서는 도저히 성립될 수 없는 결락 부분이 있고 그 부분을 이 정책대안이 채울 수 있기 때문에 국민적 합의나 정치권의 논의를 통해서 수용될 여지가 없지 않다고 본다. 즉 현재 정부 안은 장기적인 대학구조조정 과정에서 반드시 필요한 부분을 백지로 남겨두고 있는데, 첫째 대학의 퇴출 이후에 대한 구상과 정책이 전무하다는 점, 둘째 정책실행에 필수적인 예산에 대한 고려가 전혀 없다는 점 이 두 가지다. 이것은 현재의 정부안이 반쪽짜리 정책에 가깝고 그만큼 더 보완의 여지를 남겨두고 있다는 말이다.

주지하다시피 현 정부의 일방적 국정운영 경향으로 미루어 교육부의 마구잡이식 구조조정이 강행될 소지가 많다. 그러나 그럴 경우 대학의 혼란은 걷잡을 수 없이 커질 것이고, 그 영향은 반드시 대학 내부에만 미치지 않을 것이다. 구조조정의 위기를 한국 대학의 선진화를 위한 계기로 삼는 길은 분명히 존재한다. 다만 현 정부가 그 길을 거부하고 있을 뿐이다. 교육부는 더 이상 구조개혁의 미명 아래 대학을 강압하고 구성원들을 방치하면서 부실 사학재단을 비호하는 행태를 그만 두어야 할 것이다. E21

본 기사는 월간지 <이코노미21> 7월호에 게재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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