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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승불교, 신용세계의 새로운 지평을 열다
대승불교, 신용세계의 새로운 지평을 열다
  • 박이택 본지 편집기획위원/고려대학교 연구교수
  • 승인 2014.11.03 14:2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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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서양 고전으로 읽는 경제사상사-보시(布施)의 경제학: 법원주림(法苑珠林) (2)> 선행의 대표적 예 보시(布施), 악행의 대표적 예 빚지는 것(債負)

뛰어난 경제학자가 많으면 경제발전이 잘 될까? 답은 ‘글쎄요’이다. 왜냐면 그렇게 밖에 말할 수 없도록 하는 나라가 있기 때문이다. 바로 인도이다. 인도에는 뛰어난 경제학자가 많다.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Amartya Sen이 가장 유명하지만, 그 이외에도 세계 개발경제학계를 주름잡는 인도인 경제학자들은 많다. 파키스탄에서 태어났지만 인도에서 자라고 배웠기 때문에, 인도인 경제학자라 해도 큰 문제가 되지 않는 The Hindu Equilibrium의 저자 Deepak Lal이나, 서(西)뱅골에서 태어난 Prelude to Political Economy의 저자 Kaushik Basu가 그들이다. 이들은 모두 인도의 경제발전에 있어 가장 중요한 연구 테마인 ‘사회적 불평등과 경제발전의 관계’를 심도있게 분석했다. 그들의 연구성과는 인도를 어떻게 바꾸었을까? 그 답은 현대 인도가 보여주고 있다.

인도의 사회적 불평등 체계는 언제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인도의 사회적 불평등의 체계는 언제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질서를 정의하고 집행할 수 있는 강력한 권력체가 그렇게 만들어 논 것이라면, 그 질서를 만든 힘만큼 강한 힘을 가진 권력체가 그것을 바꿀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 않고, 점진적이고 진화적인 과정을 통해 저절로 형성된 것이라고 한다면, 그것을 개혁의 대상으로 삼는 것도, 또 개혁의 방법을 논하는 것도 한층 어려워질 것이다. 그런 점에서 그 제도가 자생적 질서인가 그렇지 않은가는 중요하다.

Deepak Lal은 카스트 제도가 출현하는 과정을 추적하였는바, 그가 얻은 결론은 카스트 제도가 자생적 질서로 형성되었으며, 자기 유지적 체계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의 논리를 간략히 정리해 둔다. 카스트 제도가 탄생한 경제적 기초는 북부 인도 지역의 비옥한 토지였다. 그 비옥함이 낳은 절대적 지대, 그 절대적 지대를 분점하기 위해 출현한 제도가 카스트 제도였다. 아리안족이라는 이민족 지배의 체제가 구축되었던 것도, 그 아래에서 상인, 장인, 농민들이 지배층으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고, 자신들의 생존의 안정성을 높이기 위해 카스트보다 더 세분화된 유사 동업조합체계로서, 서로가 서로의 영업권을 보호해 주는 서브 카스트들인 Jatis를 발전시켰던 것도, 모두 그 토지의 비옥함에 바탕한 것이었다. Madhav Gadgil이 발견한 자기 지배적이고 폐쇄적인 공동체로서의 Jatis는 그러나 모든 인도인을 포괄하지는 않았다. 여기에서 배제된 사람들, 인도에서는 그들을 불가촉 천민이라 부른다.

어떻게 하면 이 사회적 불평등의 체제를 해체할 수 있을까? 사실 이 사회적 불평등의 체계가 어떻게 형성되고 또 유지되고 있는지, 그 메커니즘은 대부분 밝혀졌다. 경제학자들은 이 영역에서는 매우 뛰어난 능력을 발휘했다. 다만, 어떻게 해야 이것을 해체시킬 수 있는지를 모를 뿐이다.

인과응보의 법칙

한 사회의 문제를 이해하는 데에는 경제학이 유용할 수 있지만, 한 사회를 변혁하는 데에는 경제정책보다는 종교적 계몽이 더 효과적일 수 있다. 따라서 모두가 부처가 될 수 있다는 평등적 이념을 가진 불교가 사회적 불평등의 체계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를 추구해 볼 필요가 있다.

사람들은 자신이 취할 수 있는 행동의 보수행렬(payoff matrix)을 보고, 그 속에서 자신의 이득을 최대화시킬 수 있는 행동을 선택한다. 사실 종교란 죽음 이후의 세계도 무시할 수 없으며, 그것을 고려하면 보수행렬이 크게 바뀌게 됨을 설파함으로써, 사람들의 교화를 도모한다. 그렇다면 불교가 사람들의 보수행렬을 바꾸기 위해 제시한 사후세계는 어떻게 구조화된 세계였는가? 그 문제를 풀기 위한 출발점은 인과응보의 법칙과 육도 윤회의 체계를 밝히는 것이다.

인과응보의 법칙과 육도 윤회의 체계를 설파하는 데 가장 어려웠던 문제는 죽을 때 죽는 나는 누구이고, 죽어도 죽지 않는 나는 누구인가를 이해시키는 것이었다. 여기에서 이와 관련된 불교의 다양한 교리를 설명할 여유는 없다. 본고에서는 죽을 때 죽는 것은 생명의 형태라 부르고, 죽어도 죽지 않고 후생에 다시 태어나는 것을 Account(계정)이라 부르자. 모든 생명은 자신의 Account를 갖는다. 남에게 선행을 베풀면 그에 상응하는 만큼 자신의 Account 값이 커질 것이다. 남에게 악행을 베풀면 그에 상응하는 만큼 자신의 Account 값은 작아질 것이다. 선행의 대표적인 예가 보시(布施)이고, 악행의 대표적인 예가 빚지는 것(債負)이다. 보시는 전월 호에서 살펴보았기 때문에, 여기에서는 빚지는 것에 대해서만 약간 살펴보자. ‘채부편’의 ‘술의부’를 보자.

“빚을 지는 재앙과 허물은 3보(三報)의 괴로움의 과(果)를 심는 것이다. 혹 어떤 때는 현재에 지고 현재에 갚으며(現負現報), 혹 어떤 때는 현재에 지고 다음에 갚으며(現負次報), 혹은 어떤 때는 현재에 지고 뒤에 갚는다(現負後報). 이와 같은 3시(時)에 진 빚은 털끝 만큼도 거절하고 갚지 않으면 결정코 고통의 과보를 받는 것이다. 그러므로 경전에 “도둑질하는 사람은 먼저 지옥이나 축생·아귀에 들어가고 뒤에 사람의 몸을 얻으면 2종의 과보를 얻는다. 즉 1은 항상 빈궁하고 2는 비록 재물을 얻더라도 조금 얻으며 또 항상 남에게 빼앗긴다.” 한 것이니, 이 말은 징험이 있는 것으로서 자기를 반성하고 남을 위하는 것이다.”

빚을 지면, 반드시 보 갚음을 해야 한다. 갚는 방법은 세 가지인데, 당장 갚거나(現報), 죽기 이전 언젠가 갚거나(次報), 빚을 갚지 못하고 죽을 때 그것은 후생에서 갚아야 한다(後報). 앞 두 가지는 자발적으로 보 갚음을 하는 것이고, 세 번째는 강제적으로 보 갚음을 하도록 하는 것이다. 이 세 번째 보 갚음은 패널티가 매우 크다.

이쯤에서 인과응보의 법칙의 특성을 정리하여 두자. 한 생명이 죽으면, 그 생명의 육신은 물과 불과 흙으로 사라지고, 그의 기억은 모두 소멸한다. 다만, 그 사람이 현생에서 쌓은 선행과 악행을 기록한 Account만이 남으며, 이 Account의 상태에 따라 후생의 생명의 형태가 결정되고, 그 존재의 기억이나 의지와는 무관하게 후생에서의 강제적 보 갚음이 진행된다. 그런 점에서 인과응보란 현생에서의 행위의 결과가 후생에서의 생명의 형태를 결정하고, 보 갚음이라는 인연을 예정한 것이다. 그리고 이 보 갚음이 현생의 행동에 유의한 영향을 주기 위해서는 매우 강렬할 필요가 있다. 바로 이 때문에, 보시의 경우, 적어도 100배 많을 때는 한량 없는 규모로 증폭된 보답을 받는다고 노래한다. 불교에서의 육도 윤회나 시공간적 구조도 마찬가지 이유로 강제적 보 갚음의 영향력을 증폭시키기 위해 독특한 형태를 취한다.

▲ 기원 6세기 불교를 특별히 숭상하던 북위의 전성기에 만들어진 석굴사는 산세를 따라 5개의 굴을 파고 각종 비갈과 크고 작은 불상 7743개를 조각했다. 초작(중국)=뉴시스

육도 윤회(六道 輪廻)의 체계

육도 윤회라는 독특한 재생의 체계가 불교의 특징이라는 점은 부정할 수 없다. 여기에서 도(道)란 살아가는 길인데, 불교는 살아가는 길이라는 점에서 뚜렷이 구별되는 여섯 가지 생명의 형태를 제시한다. 지옥도(地獄道), 아귀도(餓鬼道), 축생도(畜生道), 아수라도(阿修羅道), 인도(人道), 천도(天道)가 그것이다. 앞의 세 가지를 삼악도(三惡道)라 하고, 뒤의 세 가지를 삼선도(三善道)라 한다. 현생에서 얻은 Account가 양의 값이면 삼선도로, 음의 값이면 삼악도로 재생한다고 보면 될 것이다. 그리고 그 값이 큰가 적은가도 고려하기 위해 6가지 형태를 마련하였다.

세분화된 생의 공간들: 하늘과 지옥

생명의 형태는 강제적 보 갚음의 일환이기 때문에, 그에 적절한 삶의 환경을 부여할 필요가 있다. 악행을 많이 쌓은 존재에게는 가혹한 환경을, 선행을 많이 쌓은 존재에게는 좋은 환경을 부여한다. 이들을 위해 만들어 논 생활세계가 바로 지옥과 하늘(天)이다. 지옥은 고뇌의 세계의 상징이고, 하늘은 안락한 세계의 상징이다. 각 존재가 쌓은 Account의 수준과 내용에서 상당한 차이가 있기 때문에, 그에 적합한 보 갚음을 하기 위해 지옥도 하늘도 세분화된다.

팔열지옥(八熱地獄), 팔한지옥(八寒地獄), 변지옥(邊地獄) 등등 지옥은 매우 다양하다. 이 지옥이 어떠한 곳인가를 자세하게 묘사한 불경은 많다. 지옥에서 삶의 조건은 매우 가혹하다는 이미지가 각인될수록, 악행을 막는 금지적 효과가 커질 것이기 때문에, 당연히 생생하고 강렬하게 지옥의 풍경을 묘사한다. 여기에서는 팔열지옥의 하나인 무간 지옥의 풍경을 묘사하는 한 구절만을 제시하여 둔다. ‘육도편’ ‘지옥부’를 보자.

“옥졸이 저 죄인을 붙잡고 발에서 정수리까지 그 가죽을 벗긴다. 그리고 그 가죽으로 죄인의 몸을 싸서 불수레 위에 놓고, 뜨거운 땅위를 왔다 갔다 하며 돌면, 몸이 타서 가죽과 살이 떨어지면서 온갖 고통이 한꺼번에 닥치지마는 죽게 하지는 않는다. ....”

하늘도 마찬가지 이유로 세분화된다. 욕계(欲界) 10천, 색계(色界) 18천, 무색계(無色界) 4천, 모두 32천이다. 무색계(無色界)란 순수한 선정(禪定)의 세계로, 일정한 공간을 점하지 않는다. 색계(色界)는 탐욕을 벗어나기는 하였지만, 아직 형보에는 메어 있는 상태이다. 욕계는 아직 탐욕을 벗어나지 못한 상태로서, 안락함을 추구하는 상태이다. 선행을 한 생명은 부처님과 인연을 맺어 해탈하기를 바라는 경우도 있지만, 세속에서의 부귀를 누리기를 바라는 경우도 있다. 후자와 같은 사람을 배려하기 위해 하늘에 욕계 10천도 만들어 둔 것이다. 이 욕계가 어떠한 공간인지, ‘제천부’의 ‘복승부’를 보자.

“경전에 말한 바와 같다. 즉 ‘욕계 6천에는 복승(僕乘)이 있다. 복이란 이른바 복종(僕從: 하인, 종)이요, 승이란 이른바 기승(騎乘: 코끼리·말과 같은 타고 다닐 것)이다. 욕계의 6천은 다 군과 신, 처와 첩, 존과 비, 상과 하가 있어서, 비는 반드시 존을 따르고, 하는 반드시 상을 따라야 한다. 승(乘)이란, 욕계 6천에는 다 여러 종류의 축생이 있어서, 하늘들이 놀러 가려 할 때는 마음대로 그것을 탄다. 혹은 코끼리나 말을 타고 혹은 공작을 타며 혹은 용을 탄다.”

욕계는 전생에 복업을 쌓은 사람들이 전생에 악업을 쌓아 복종이나 축생으로 태어난 존재들의 서비스를 받으면서 안락하게 살아가는 공간이라 할 수 있는데, 일반 인간 세상에서 부귀를 누리면 살아가는 사람과 크게 다르지 않다.

주기적인 생멸(生滅)의 반복으로서의 시간

다기간(多期間) 모형에서의 의사결정에는 시간의 길이도 매우 중요하다. 생의 길이는 얼마나 될까? 불교에서는 탄생에서 소멸까지의 전 기간을 1기(期)라 표현하는데, 1기는 생성되고(成) 머무르고(住) 파괴되고(壞) 사리지는(空) 4 국면으로 구성되는데, 각 국면을 겁(劫)이라 표현한다. 1기의 절대적 크기는 국면에 따라서 그리고 각 존재에 따라 모두 다르다. 인간의 수명은 국면에 따라 8만세에서 10세까지 변동한다. 그리고 하늘에 사는 존재의 경우, 깨달음의 수위가 높을수록 생의 길이는 더 늘어난다.

불교의 시간관에 있어 또 하나 독특한 점은 외생적인 재앙이 주기적으로 닥친다는 것이다. 삼재(三災)가 바로 그것이다. 공자는 논어의 초두를 군자의 삼락(三樂)으로 시작하지만, 부처님은 설교의 화두를 생노병사라는 고(苦)에서 시작한다. 불교에서 삶은 별로 살만한 것이 아니다. 삶을 고(苦)로 만드는 데에는 성주괴공(成住壞空)이라는 주기적 순환과 삼재(三災)라는 재앙이 큰 역할을 한다. 이 때문에, 윤회에서 벗어날 수 있는 해탈을 추구한다 할 것이다.

불교는 사회적 불평등의 체계에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가?

불교는 인과응보가 철혈의 법칙으로 관철되는 육도 윤회의 체계와 그에 합치하는 시공간적 구조를 창출하였다. 그럼으로써 사람들의 보수행렬에 영향을 미쳐, 선행을 권장하고, 악행을 금지시키는 효과가 있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권선징악의 메커니즘을 강화하는 것과 현실적으로 존재하는 신분관계 그 자체를 해체하는 것은 다른 문제이다. 현실적으로 존재하는 부귀와 빈천은 전생에 있어서의 선행이나 악행의 보상이라는 점에서 정당화되었다. 모두가 부처가 될 수 있다는 평등성은 육도 윤회의 체계 속에서 모든 생명체는 그 중 어느 하나로 고정되지 않고, 다른 생명의 형태로 변환될 수 있다는 가능성 속에서의 평등일 뿐, 숙생의 업보를 갚기 위해 살아가는 지옥도, 아귀도, 축생도, 아수라도, 인도, 천도라는 육도에서의 삶의 차이를 부정하지 않는다.

다른 생명으로 재생될 수도 있는 가능성, 그것은 생명으로서의 동등성을 확립하고, 생명 존중 사상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생명으로서의 동등성이 현실상 존재하는 생명간의 차이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그런 점에서 인간 세계에서의 사회적 불평등은 다양한 생명체간의 차이 속에 묻혀 버렸을 수도 있는 것이었다.

불교, 신용경제의 새로운 장을 열다.

사실 역사적으로 중요한 변화는 의도하지 않은 효과들에 기인하곤 한다. 불교는 신용경제의 발전을 의도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인과응보의 법칙에는 빚을 갚지 않고 죽는 사람들에 대한 엄정한 처벌의 체계가 포함되어 있다. 이것은 시장경제와 신용경제가 발전할 수 있는 사회적 신뢰의 형성과 맥을 같이 한다. 중국문화권에서 불교가 발전한 시기에 시장경제와 신용경제가 발전하였음은 이와 무관하지 않다.

신용경제의 발전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은 사원을 중심으로 하여 전개되었던 금융 시스템이다. 중국의 무진장(無盡藏), 고려의 보(寶)가 그것이다. 이것은 한편으로는 인과응보의 법칙이 사회적 신뢰를 형성한 것에 바탕한 것이지만, 그것만이 작용한 것은 아니다. 또 하나 무시할 수 없는 요인은 ‘인스탄트 카르마(Instant Karma)’ 현상이었다. 내세에서 보다 나은 생명의 형태를 받기 위해 사원에 기진하는 현상, 절은 이로 인하여 금융 대부를 할 수 있는 자본의 원천을 확보할 수 있었다. 보시는 탁발승의 구걸에서 시작되었지만, 그것을 넘어 사원을 금융의 메카로 만들었다. 중국문명권은 불교로 인해 신용경제의 발전과 그것이 야기한 다양한 문제에 직면하게 되었다고 할 수 있다.

갑자기 존 레논의 인스탄트 카르마(Instant Karma)의 한 소절이 생각난다.

“순간의 업이 당신을 붙잡고 / 당신의 머리를 두드리죠 / 정신을 더욱 집중해야죠 / 곧 당신은 죽을 지도 몰라요 // 무슨 생각을 하는 거죠 / 사랑스럽게 웃음진 얼굴로 / 무엇하려고 하는 거죠 / 당신 하기 나름인 걸 // 순간의 업이 당신을 붙잡고 / 당신의 얼굴과 대면하겠죠 / 더욱 마음을 집중하고 / 인류의 일원이 되어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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