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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도 쉬고 싶어요!
우리도 쉬고 싶어요!
  • 서준영 서울 삼각산 고등학교 2학년
  • 승인 2014.11.12 15:5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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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의 교육제도⑦-고등학생이 본 교육현실> 쉬지 못하는 대한민국 교육, 이제는 바뀌어야…학교 일과 공부만으로 이름 있는 대학 입학 불가능…방과 후 학원, 야자는 선택 아닌 필수

고등학생이 되어서 처음 받아 본 모의고사 시험지는 어처구니없이 어려웠다. 특히 수학은 학교에서 수업만 열심히 들은 정도로는 반도 못 풀 정도였다. 일반 수업 외에 과외를 받고, 인터넷강의를 듣고, 밤까지 나머지 공부를 해야―결국 내 휴식시간을 포기해야―겨우 모의고사를 어느 정도 괜찮은 수준으로 풀 수 있었다. 시험이라면 수업 시간에 공부하는 내용을 알고 있으면 어느 정도 잘 풀어야 하지 않을까.

답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최소한의 사회적 인정을 받고, 번듯한 직업을 가지려면 대학에 가야 한다고 어릴 때부터 전래동화 듣듯이 들어왔다. 대학에 안 가면 못 배운 사람이라고. 대학에 못 가면 취직도 못 한다고. 그리고 그 대학은 아무 대학이 아니라 적어도 서울에 있는 대학이어야 했다. 한국 사회에서 대학은 곧 신분이니까. 그런데 ‘인서울’ 대학정원은 5만 명 남짓이다. 전국의 고등학생들은 이른바 ‘인서울’을 위해 아등바등 공부하고, ‘인서울’ 대학을 위한 ‘선발’의 기능을 수행해야 하는 ‘시험’은 그래서 1등급, 2등급 등을 선발해내기 위해 어렵게 낼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렇기에 우리나라 학생들은 얼마 쉬지 못한다. 여덟 시에 등교하고 오후 네 시에 학교 공식 수업이 끝이 나지만, 사실 학교 일과 공부만으로 이름 있는 대학에 입학하기란 택도 없다. 그래서 학교가 끝나고도 남은 시간을 학원이나 야자(야간자율학습)에 쏟아붓는다. 상대평가로 대학에 들어가기 때문에 늘 경쟁을 해야 한다. 쉬어도 불편하게, 자투리로 쉴 수밖에 없다. 자발적이고 주체적인 동아리 활동이나 학생회 자치 활동은 시험상의 불이익을 감내할 마음이 갖추어져 있거나 혹은 그것마저 ‘입사제’를 겨냥한 또다른 스펙 마련 활동을 수행하는 마음으로 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당장에 잠 잘 시간도 부족한데. 법으로 정해진 노동시간이 주(週) 40시간, 일(日) 8시간인 걸 생각해보면 무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렇게 많이 공부를 해서 뭔가를 얻을 수 있을까. 그렇지 않다. 학교에서 배우는 입시 위주 교육이란 그냥 암기용 지식이 전부다. 실용적인 지식이나 주체적으로 문제를 해결할 방법 같은 건 따로 배울 기회가 없다. 또한 대학을 준비하는 친구들 중에선 자신이 배우고 싶은 게 아닌데 ‘가야 하니까’ 가는 경우도 있다. 예컨대 취업이 잘된다 해서 가는 경영학과라든지, 배우고 싶지 않은데 입학 커트라인에 맞춰서 마음에도 없는 과를 쓴다든지. 고등학교에서 정말 자신이 무엇을 배우고 싶은지 고민할 시간 없이, 그냥 대학에 가라고 해서 가기 때문에 당연한 결과이다.

▲ 2015학년도 수학능력시험을 10일 앞둔 3일 밤 서울 영등포구 국제금융로7가길 한 고등학교에서 자율학습을 하는 수험생들의 교실(왼쪽 아래)이 서울 도심 야경의 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물론 대학을 준비하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대학을 준비하지 않는다고 많이 쉴 수 있는 건 또 아니다. 대학을 준비하지 않는 청소년들에게 세상은 또 다른 방식으로 압박을 준다. 대학에 안 갔으면 그만큼 네가 노력을 해서 뭔가 보여줘야 하는 것 아니냐고. 자격증이라도 따 놓아야 하지 않냐고. 계속해서, 다른 방식으로라도 경쟁을 종용한다. 이외에도 대학에 가지 않는 사람들에 비해 취업 부분 등 미래에 대한 부담은 더 심하다.

고등학생 96.4%가 평일에 적정수면시간 미만 잠을 잔다고 한다. 바쁜 청소년 시기는 이젠 일종의 통과 의례가 되었다. "다른 사람들도 너만큼 힘들어", "이 정도는 참아야지". 다들 ‘쉴 틈 없이’ 청소년기를 보내니 이제는 다들 그러려니 한다. 뭐 다들 그렇게 사니까, 하면서 말이다.

하지만 이제는 바뀌어야 한다. 쉴 틈 없이 바쁜 교육은 아무것도 남기지 않는다. 남기는 게 있다면 수면 부족으로 인한 만성 스트레스 정도일 뿐. 대학에 가야 한다는 부담감이 없도록 학력주의를 타파하고, 부당한 차별이 없도록 대학 서열도 평준화해야 한다. 더 나아가, 암기 위주의 죽은 교육이 아닌, 주체적으로 생각하고 문제 해결을 하는데 도움을 주는 새로운 교육을 상상해야 한다.

본 기사는 월간지 <이코노미21> 7월호에 게재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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