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0-11-23 22:03 (월)
황종희, 군주가 백성을 자기 몸처럼 아끼는 방법을 제시하다
황종희, 군주가 백성을 자기 몸처럼 아끼는 방법을 제시하다
  • 박이택 본지 편집기획위원, 고려대 연구교수
  • 승인 2014.12.24 15:5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동서양 고전으로 읽는 경제사상사> 유교적 공의(共議)의 정치경제학:<명이대방록(明夷待訪錄)>(1)-명나라 멸망 이유 황제가 백성 아닌 사복(私腹) 채우는 존재 되었기 때문

<동서양 고전으로 읽는 경제사상사>

황종희는 왜 <명이대방록(明夷待訪錄)>을 썼는가

명나라가 망했다. 양명학 우파의 거두였던 나의 사부 유종주(劉宗周)는 두 왕조를 섬길 수 없다하여 굶어죽는 길을 택했다. 나도 사부의 길을 따라야 하는가? 나의 아버지는 동림당의 명사 황존소(黃尊素, 1585-1626). 내 나이 17세였던 1626년에 환관 위충현(魏忠賢) 일파의 탄압을 받고 옥사했다. 그 후 18년 동안 나는 모든 것을 포기하고 환관의 횡포에 투쟁하면서, 나의 아버지의 명예를 회복하기 위해 살아왔다. 나의 가족사로 보면, 명나라는 망해야 하는 나라였다. 망해야 하는 나라가 망했을 뿐이다. 어쩌면, 나는 나의 사부보다 생을 스스로 마감해야 할 또 하나의 이유를 가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바로 나의 원수들이 모두 죽지 않았는가? 그러나 이제 14살 된 나의 큰 아들 황백약(黃百藥)과 이제 1살된 나의 둘째 아들 황백학(黃百學)은 어떻게 살아야 하나? 바로 이것이 명말 청초의 대학자 황종희(黃宗羲, 1960-1695)가 명이 망한 후에 <명이대방록(明夷待訪錄)>을 쓴 이유이다.

이제 한족은 만주족의 지배 아래 살아갈 것이다. 그러나 영원한 것은 없다. 언제가 만주족의 나라도 망할 것이다. 그러면 다시 한족이 자신들의 나라를 세울 기회가 올 것이다. 그 때는 나와 같이 나라를 원망하면서 살아가는 한족이 없는 한족의 나라가 만들어져야 한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일은 명나라가 왜 그와 같은 부패의 나라가 되었는가를 분석해서, 그와 같은 부패에 견딜 수 있는 국가적 모델을 만드는 것이다. 그러면 언제가 나의 후예들이 그러한 나라를 만들 것이다.

문제는 전제적 황제지배체제

황종희가 보기에 명확한 것은 황제가 백성을 위하는 존재가 아니라 자신의 사복을 채우는 존재가 되었다는 것이다. <명이대방록>의 ‘군주’를 보자.

옛날에는 천하의 백성이 주인이고, 군주가 객이 되어, 무릇 군주가 일생 동안 경영하였던 것은 천하를 위하기 때문이었다. 지금은 군주가 주인이고, 천하 백성이 객이 되어서 무릇 천하의 어느 곳도 평안하지 못한 것은 군주만을 위하기 때문이다. …그런즉 천하의 큰 해가 되는 것은 군주뿐이다. 이전에 군주가 없었을 때에는 사람들이 각기 자사와 자리를 얻을 수 있었다.”

바로 군주가 천하의 큰 해(害)라 선언한 것이다. 이른바 반군론(反君論)이다. 그러나 군주제가 항시 나빴던 것은 아니었다. 백성이 주인이고 군주가 객이었던 옛날의 군주제는 이상적인 모델이었다. 어떻게 그런 이상적인 군주제도가 가능했을까?

주례(周禮)는 포르노일 뿐, 잘못 설계된 군주제 모델

군주제가 이상적으로 작동하는 것을 설명하는 이론 중에 하나는 시경에도 있듯이 하늘 아래 모든 땅이 왕의 땅이고, 땅 위의 모든 사람들이 왕의 신하이기 때문에(普天之下, 莫非王土, 率土之濱, 莫非王臣.), 모든 것의 소유주인 군주는 모든 땅과 사람들을 적재적소에 잘 배분할 것이라는 점이다. 그러나 군주제는 타락한다. 왜냐면, 군주의 생명은 유한하기 때문이다. 점차 나이가 먹으면, 국가의 천년 대계를 생각하지 않고, 자신이 앞으로 살 몇 년을 위해 국가를 운영하는 폐단을 낳기 때문이다. 만약 군주가 영생을 한다면, 이와 같은 폐단은 없어질 것이다. 그래서 만들어진 방안이 왕위의 계승이고, 왕의 후사가 끊이지 않도록 하는 조치이다. 비록 왕은 죽지만, 왕가는 지속한다. 이제 왕은 종묘와 사직의 영속을 지키는 파수꾼이 되는 셈이다. 바로 이렇게 설계된 것이 주례(周禮)였다. <명이대방록>의 ‘환관’을 보자.

“후세의 군주에게 또한 무엇을 책망하겠는가? 정현(鄭玄, 127-200)이 주석한 <<주례>>에 “여어(女御)는 여든한 사람이 9일간의 밤을 맡고, 세부(世婦)는 스물일곱 사람이 3일간의 밤을 감당하고, 구빈(九嬪)은 아홉 사람이 하룻밤을 담당하고, 삼부인(三夫人)은 하룻밤을 책임지고, 후(后)는 하룻밤을 맡아 한다”고 하였다. 이것은 과거의 어진 군주와 후세의 군주가 다르지 않다.

이같은 <<주례>>는 음란을 가르치는 서적이 된다.

…만일 정현의 말대로라면 왕의 비(妃)는 120명이고, 비의 아래 또한 시종이 있으니, 환관으로 그들을 지키는 자는 그 세력이 수천 명에 달할 것이다.

…내 생각에 군주는 삼궁(三宮: 皇帝․太后․皇后) 이외에는 일체를 없애야 한다. 이렇게 된다면 심부름하는 환관은 불과 수십 명이면 족할 것이다. 어떤 사람은 군주의 자손이 번창하지 못할 것을 염려한다. 천하에 어찌 그러한 경우가 있으리요!

내가 천하를 다스릴 수 없으면 오히려 그것을 피하려고 하는데, 하물며 자손에게서랴! 훗날 천하를 다스리는 자가 그 자손에서 나오지 않을 것을 두려워하며 떠는 것은 세상의 돈 많은 늙은이의 견해이다. 그러므로 요순(堯舜)은 자식이 있어도 오히려 천하를 (그에게) 전하지 않았다. 송나라 휘종(徽宗, 1101~25)은 일찍이 자식이 많지 않은 것이 아니었고, 단지 금나라 사람들에게 잡혀 죽었을 따름이다.”

▲ 중국 샤먼도 고랑서 (鼓浪嶼)의 용두산 정상. 고랑서는 샤먼도에서 남서쪽 바다로 약 700m 정도 간 곳에 있는 작은 섬이다. 이곳에는 명나라 말에 청에 대해 저항한 정성공을 기리는 정성공기념관(鄭成功記念館)이 있다. 샤먼(중국)=뉴시스

주례에 왕의 비는 120명이다. 이렇게 많은 비를 두는 이유는 군주의 대가 끊길 것을 걱정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렇게 많은 왕의 비를 두니, 그들을 서비스하는 환관이 많을 수밖에 없다. 왕의 대가 끊이지는 않겠지만, 이제 왕의 나라가 아니라 환관의 나라가 되는 것이다. 문제가 해결된 것이 아니라, 다른 문제로 바뀌었을 뿐이다. 왕에게 필요한 것은 왕의 대가 끊이지 않도록 하는 비(妃)들이 아니라, 왕이 자신의 주인인 천하의 백성을 잘 모시도록 하는 책무를 몸으로 알도록 하는 것이다.

맹자에서 길을 찾다. 여민동락(與民同樂)이 답이며, 핵심은 소통

옛날 성군의 시대에 왕들은 어떻게 하여 천하의 백성들을 위한 통치를 하게 되었는가? 그 핵심은 왕이 자신의 백성을 자신의 몸처럼 아꼈다는 점이다. 바로 몸의 확장이다. 어느 고을에 사는 나의 백성이 다치면, 나의 손가락이 잘려나가는 듯 고통을 느끼고, 어느 고을에 사는 나의 백성이 좋은 아낙을 만나 기뻐하는 것을 보면, 절로 춤을 추게 된다면, 그 왕은 자신의 백성들을 위해 통치하게 될 것이다. 맹자는 이를 여민동락(與民同樂)이라 했다. <맹자>의 ‘만장 상’을 보자.

“왕은 ‘과인에게는 결점이 있으니, 과인은 재물을 좋아합니다.’고 했다. 맹자가 대답했다. ‘옛날 공유(公劉)라는 현자가 재물을 좋아했습니다. 그런데 『시경』에서 공유에 대해 ‘양식을 노적가리에 쌓고 창고에 저장하고 말린 양식을 싸서 전대와 자루에 넣었도다…’. 즉 공유는 남은 사람들에게는 노적가리와 창고에 곡식을 마련해주고, 길 떠나는 사람들에게는 양식을 싼 전대와 자루를 마련해 준 후에 행군을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왕께서 재물을 좋아하더라도 백성들과 함께 한다면 왕도정치를 실행하는 데 무슨 문제가 있겠습니까?‘

왕이 ‘과인에게는 또 다른 결점이 있으니, 과인은 여색을 좋아합니다’고 하자, 맹자가 대답했다.

‘옛날 대왕(大王)은 여색을 좋아해 왕비를 사랑했습니다. …대왕이 다스릴 당시 안으로는 남편이 없어 원망하는 여자가 없었고, 밖으로는 아내가 없어 외로운 사내가 없었습니다. 왕께서 여색을 좋아하더라도 백성들과 함께 한다면 왕도정치를 실행하는 데 무슨 문제가 있겠습니까?’“

여민동락의 출발은 왕이 자신을 욕망을 억누르는 것이 아니라, 백성도 나와 같은 욕망을 가지고 있음을 아는 것이다. 그래야 왕은 자신 뿐 아니라 백성들의 욕망도 충족시킬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게 되는 것이다. 왕이 백성들을 위한 통치를 하면 어떻게 될까? 그렇게 한다면, 백성들도 이에 화답할 것이다. <맹자>의 ‘양혜왕 상’을 보자.

“백성들의 즐거움을 자신의 즐거움으로 여기면 백성들도 임금의 즐거움을 자신들의 즐거움으로 여길 것입니다. 백성들의 근심을 자신의 근심으로 여기면 백성들도 임금의 근심을 자신들의 근심으로 여길 것입니다. 천하 사람들과 즐거움을 함께 하고 천하 사람들과 근심을 함께 하고서도 통일된 천하의 왕이 되지 못할 사람은 없습니다.”

어떻게 하면, 왕이 자신들의 백성을 자신의 몸처럼 생각하게 될까? 두 가지 방법이 있다. 첫째 방법은 모든 사람들을 자신의 몸처럼 생각하며 통치를 할 수 있는 DNA를 가진 사람을 찾는 것이다. 바로 성인이다. 탁월한 공감능력과 빛나는 예지를 겸비한 사람이다. 선거제도란 무릇 이런 사람을 뽑는 것이어야 한다. 그러나 이와 같은 DNA를 가진 사람을 찾는 것은 매우 어렵다. 인간의 DNA는 우리 편과 우리의 적을 가르고, 우리의 적으로부터 우리들을 지키기 위해 설계되어 있다. 외부의 적이 없을 때에는 우리 안에 우리의 적을 만들어 경쟁한다. 완전히 자신의 한 몸만을 생각하는 이기적인 인간이 출현하지는 않겠지만, 항상 나의 편과 그렇지 않은 것을 구분하고 차별하는 전략을 버리지 않는데, 그것이 경쟁에서 살아남기에 좋은 전략이기 때문이다. 그런 전략을 구사하는 DNA를 가진 사람들이 많이 살아남았을 것이기 때문에, 모든 백성을 나의 몸처럼 생각할 수 있는 DNA를 가진 사람은 매우 희귀하게 된다. 왕의 계승의 체계가 출현하는 것도 이와 같은 DNA를 가진 사람이 희소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성인의 DNA가 유전되기는 하지만, 완전히 복제되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둘째 방법은 인간이 파블로프의 개를 훈련시키듯, 백성이 왕을 훈련시키는 것이다. 왕이 백성들을 잘 돌보는 정치를 하면 칭찬을 해주고, 백성들을 해치는 정치를 하면 질책을 하는 체계를 만들어 계속 반복하면, 왕은 백성들을 행복하게 하면 쾌감을 느끼고, 백성을 불행하게 하면 불쾌감을 느끼는 생리학적 신호 체계를 가진 인간이 된다. 황종희가 주목한 것은 바로 이것이다. 왕의 정치적 행위를 끊임없이 평가해서, 좋은지 나쁜지에 따라 당근과 채찍을 주는 유교적 공의의 체계를 만들어 왕을 훈련하는 것이다. 왕을 훈련시키는 공의의 장소가 바로 학교이다. 황종희에게 있어 학교는 다면적 가치를 가지는 곳인데, 군주제와 관련해서만 보면, 군주가 온 백성을 자신의 몸처럼 생각하도록 몸을 확장시키는 신호체계를 갖도록 훈련시키는 장소인 셈이다.

오륜(五倫)을 취하고 삼강(三綱)을 버려라

제도적 혁신을 어렵게 하는 것은 이미 있는 제도에 사람들이 길들어져 있기 때문이다. 현재의 제도가 나쁜 제도일지 모르지만, 많은 사람들은 이 제도 속에 잘 살기 위한 많은 정보와 기술을 습득하고 있다. 만약, 명나라가 망하지 않았다면, 황종희는 이와 같은 제도적 혁신을 추구하는 책을 쓰지는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명나라가 망함으로써 제도 특수적인 자산들을 무시하고, 새로운 세계를 설계할 수 있었던 셈이다.

그러나 제도의 혁신을 어렵게 하는 것은 제도 특수적인 자산만은 아니었다. 제도의 혁신을 어렵게 하는 또 하나의 장벽은 이성적 반성의 너머에 있는 윤리학적 공리의 체계이다. “신하는 군주의 말을 따라야 한다.”라는 너무나 당연한 것처럼 여겨지는 윤리학적 공리, 바로 이것을 깨지 않고는 반군론(反君論)의 체계를 만들 수 없다. 그 윤리학적 공리가 바로 삼강(三綱)이었다. 송대 이후의 삼강은 사실 유교의 옷을 입고 있는 법가적 통치술이었다. 그것이 예초에 법가의 통치술이었음을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은 <한비자>의 ‘충효’에 있는 다음의 구절이다.

“내가 들은 바로는 말하기를 ‘신하가 군주를 섬기고, 자식이 아버지를 섬기고, 처가 지아비를 섬긴다. 세 가지가 순조로우면 천하가 다스려지고, 세 가지 것이 거슬리면 천하가 어지러워진다’고 한다. 이것이 천하의 상도(常道)다. 명군 현신이라도 바꾸지 못한다. 그렇다면 군주가 비록 못나더라도 신하가 감히 넘보지 못한다. 지금 도대체 현자를 높이고 지자에게 맡기기를 덧없이 함은 역도(逆道)이나 천하 사람들은 언제나 다스리는 것이라고 여긴다.”

삼강의 첫 번째는 군위신강(君爲臣綱)으로서, 부위자강(父爲子綱)보다 앞에 두고 있다. 즉 군신관계를 부자관계보다 상위에 두고 있는 셈이며, 이것으로 알 수 있는 것은 군주가 신하보다 위에 있으며, 아버지가 아들보다 위에 있다는 서열관계일 뿐이다. 반면, 오륜의 첫 번째는 부자유친(父子有親)으로서, 군신유의(君臣有義) 보다 앞에 나온다. 뿐만 아니라, 부자와 군신간의 관계는 친함과 의로움을 지켜야 함을 명확하게 하고 있다. 군신의 관계는 친애의 확장이어야 하고, 의로움을 지켜야 한다는 것이 오륜의 정신이지만, 이와 같은 정신은 삼강에는 없다. 군위신강은 신하가 군주를 넘보면 역적이 됨을 선언하고 있는 것이다. 재상권이란 바로 이 삼강을 부정한 위에 성립할 수 있는 것이었다. <명이대방록>의 ‘재상’을 보자.

“본래 군주를 세운 까닭은 천하를 다스리기 위해서였다. 천하는 한 사람이 다스릴 수 없었으므로, 관(官)을 설치하고 다스리게 했다. 이 관이라고 하는 것은 군주의 분신이다.

맹자는 말했다. ‘천자가 하나의 지위요, 공(公)이 하나의 지위요, 후(侯)가 하나의 지위요, 백(伯)이 하나의 지위요, 자(子)와 남(南)이 함께 하나의 지위로 모두 다섯 등급이다. 군주가 하나의 지위요, 경(卿)이 하나의 지위요, 대부(大夫)가 하나의 지위요, 상사(上士)가 하나의 지위요, 중사(中士)가 하나의 지위요, 하사(下士)가 하나의 지위로 모두 여섯 등급이다.’

외적으로 말하자면 천자는 공과의 간격이 공․후․백․자․남의 순차적인 거리와 같다. 내적으로 말하자면 군은 경과의 간격이 경․대부․사의 순차적인 거리와 같다. 유독 천자에 이르러서만 마침내 칼로 베어내 듯 등급이 없다.”

천자는 신하가 넘볼 수 없는 자리가 아니라, 관직을 가진 사람 중에 약간 상위에 있는 사람일 뿐이라고 선언한 것이다. 이렇게 되면 천자는 전제군주가 아니라 관리들과 더불어 백성을 위하는 정치를 행해야 하는 내각의 수반인 총리 정도가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 총리가 제대로 정치를 잘하고 있는지 그렇지 않는지는 백성들에게 매번 평가를 받아야 한다. <명이대방록>의 ‘학교’를 보자.

“태학의 학장[祭酒]은 당대 최고의 학자를 추천하여 선택한다. 그 비중은 재상과 같으며, 혹 재상이 물러나 이것을 맡게 해도 좋다. 매월 초하루 천자가 태학을 방문[臨幸]할 때에는 재상․육경(六卿)․간의(諫議)가 모두 수행한다. 학장은 남쪽을 향해[南面] 학문을 강의하며, 천자 또한 학생의 열에 끼인다. 정치에 결함이 있으면 학장은 진언을 꺼리지 않는다.”

매달 한번, 천자는 태학이라는 최고 학교에 참석해야 하고, 학생의 반열에 앉아 학습을 하는데, 재상의 반열인 태학의 학장은 천자가 정치를 잘못하면 진언을 한다. 학교를 통해 백성들의 즐거움과 근심을 천자가 느껴지도록 훈련하는 것이다. 천자에게 필요한 것은 권위가 아니라 백성들이 즐거워하면 쾌감을 느끼고, 백성들이 괴로워하면 고통을 느끼는 생리학적 공감체계로서의 확장된 몸(body)이다.

너무 정치 이야기만 했다는 느낌이다. 다음에는 황종희의 <명이대방록>에 담긴 경제개혁의 구상을 살펴보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