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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장률 보다 성장 패턴에 관심 가져야
성장률 보다 성장 패턴에 관심 가져야
  • 우석훈 민주정책연구원 부원장
  • 승인 2015.02.13 15:3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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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케티 논쟁 - 성장률과 성장 패턴> 수도권 집중 문제 등이 전형적인 성장 패턴의 문제…단기적 성과 있지만, 장기적으로 지방경제 붕괴 일으켜

경제학자로서, 나도 제대로 시도해보지 못한 것들에 대해서 글을 쓰려고 하니까 갑자기 막막함이 느껴지기도 한다. 축적, 발전, 성장, 이런 단어들이 시대에 따라서 더 많이 쓰이거나 덜 쓰이기도 한다. 축적은 보통은 자본이라는 단어와 결합되어 자본 축적이라는 형태로 사용된다. 로자 룩셈부르크가 경제학자로 활동하는 19세기 후반, 그녀의 대표적 저서는 <자본 축적론>이었다. 20세기 초반을 지나면서, 축적이라는 단어보다는 발전 혹은 성장과 같은 단어가 사용되기 시작한다. 구조 변화에 대한 약간의 이해의 차이에 의해서 두 단어의 용법이 갈린다. 어쨌든 기본적으로는 ‘사이즈’ 즉 경제 시스템의 크기에 관한 것이다.

주류 경제학이든 혹은 맑스 계열의 비주류 경제학이든 아니면 발전경제학에 가깝든, 이 사이즈에 대해서는 대체적으로 유사한 관념을 가지고 있다. “사이즈가 클수록 좋다.” 마르크스가 자본론 3권에서 자본주의의 붕괴에 대해서 얘기한 ‘이윤율의 경향적 저하의 법칙’도 자세히 살펴보면 어쨌든 자본의 사이즈가 더 이상 커질 수 없는 순간이 온다는 것 아닌가? 그렇다면 이 사이즈가 계속해서 커질 수 있다면? 최소한 시스템 내부의 이유로 자본주의가 붕괴할 이유는 없다.

이러한 관념은 다분히 고전 물리학적 형상이다. 달까지 가는 로켓을 상상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로켓이 출발하기 위해서는 추진력을 만들어낼 연료가 필요하다. 이 최초의 출발을 마르크스는 ‘자본의 본원적 축적’이라고 불렀다. 발전경제학에서는 도약기라고 부르기도 한다. 좋든 싫든, 한국 경제에서의 도약기는 박정희 시절로 설정된다. 이렇게 일단 출발에 성공한 로켓이 계속해서 날아가기 위해서는 추진력이 필요하다. 이걸 정치경제학에서는 ‘이윤’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이 이윤의 원칙이 살아있는 노동 즉 노동자들의 생산에 대한 기여라고 보면 맑스주의 경제학자이다. 그렇게 노동만 생산에 기여하는 것이 아니라 자본도 수익에 기여한다고 하면 표준적인 경제원론의 세계로 들어가게 된다. 여기에서 로켓의 추진 원료가 되는 것은 부가가치이다. 성장론에서 미분방정식으로 형상화된 성장 모델은 로켓이 날아갈 수 있는 거리와 탄도 같은 것을 계산하는 것과 마찬가지 일이다. 이 로켓은 영원히 날아갈까? 그리고 그 속도는 어떻게 될 것인가? 많은 성장론과 성장률에 관한 얘기들은, 고전 물리학의 세계에서 로켓이 날아가는 것을 계산하는 방식과 크게 다르지 않다.

80~90년대 내생 성장론의 유행 이후, 로켓을 추진하게 하는 연료가 조금 더 다양하게 인식되기 시작하였다. 인간의 노동과 물질적 자본 혹은 기계만으로 형성되는 논의에서, 사람의 지식, 교육, 연구훈련 혹은 사회적 제도 등 좀 더 복합적인 요소로 확장되기 시작한다. IMF 경제위기 이후에 전격적으로 논의되기 시작한 인적 자본에 관한 얘기나 최근 박근혜 정권이 핵심 기조로 잡고 있는 ‘창조 경제’ 역시 넓은 관점에서 보면 내생 성장론의 연장선 위에 있다. 노동시간 즉 제품을 만드는 데 들어간 노동량만이 아니라 지식이나 창의성, 이런 것들이 로켓을 더 먼 곳으로 날리기 위한 연료로 이해된다. 성장률에 영향을 주는 변수가 좀 더 다양해지기는 했지만, 기본적으로는 고전 물리학의 세계관과 크게 다르지는 않다.

자, 이제 조금은 로켓과는 조금은 다른 은유를 생각해보자. 많은 경제학자들이 경제 시스템을 크기 즉 사이즈의 문제로 생각을 했다. 그렇다면 또 다른 시스템의 하나인 자연에 대해서 우리는 어떻게 생각을 했을까? 자연을 생태계(eco-system)라는 개념을 사용해서 분석하기 시작한 것이 그렇게 오래 되지 않는다. 피식자와 포식자의 관계를 미분방정식으로 정형화한 로테카-볼테라 방정식이 등장한 것은 1925년의 일이다. 식물 시스템 전체가 다른 형태로 이동하는 천이(succession)와 같은 시스템의 변화(evolution) 과정에 대한 진지한 연구가 생겨난 것도 그렇게 오래된 일은 아니다. 이러한 일련의 변화들을 하나의 수리 모델 속에서 유형화시키는 수리생태학의 발전은 훨씬 더디게 이루어졌다. 생태학만이 아니라 공학 등의 수리 모델에서 주로 사용되던 시스템 다이나믹스와 수리 생태학의 결합은, 물리학 등 기초 과학에서의 모델링 작업에 비하면 정말 뒤늦다고 할 수밖에 없다.

▲ 이제는 경제성장보다 균형적 경제발전이 필요한 시점이다. 심화되는 경제양극화 해소 문제는 한국 사회가 해결해야 할 주요 과제 중 하나이다. 7월 16일 서울 여의도 중소기업중앙회에서 산업통상자원부와 중소기업청 주최로 열린 ‘2014년 제1회 동반성장 포럼’에서 곽수근 서울대 교수가 경제양극화 해소를 위한 동반성장의 역할이란 주제로 발표를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현재 경제학자들이 연간 성장률을 계산하기 위해서 사용하는 기본 모델은 기본적으로는 CGE(Computational General Equilibrium)이라고 불리는 것을 사용한다. 모델에 따라 수 천개 이상의 방정식을 사용하고, 매우 개별적이고 복합적인 DB를 연동시키지만, 기본적인 모델의 골격은 선형 방정식이다. 동일하거나 유사한 경제 구조가 계속된다고 하는 단기 내에서는 나름대로 유용한 예측을 제공하지만, 10년 이상의 장기적 기간에 경제 내부의 구조가 변하는 상황에서 아주 유기적인 변화를 포착하기에 최적의 모델은 아니다. 한계가 있는 것을 알고는 있지만, 단기적 유용성 때문에 이 CGE 모델을 다양하게 변형시켜서 사용한다. 크게 보면, 아주 복잡하게 로켓을 발사하는 것과 같은 방식으로 국민경제를 예측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아주 간단한 생태계, 예를 들면 호소 생태계나 습지 생태계 혹은 자그마한 숲의 장기적 변화를 살펴보는 모델을 만든다고 할 때에도 경제학에서 흔히 쓰는 방식은 무용지물이 된다. 포식자와 피식자가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복잡계의 성격을 갖는 경우가 종종 있다. 1차 생산자인 풀, 소비자인 토끼 그리고 포식자인 여우라는 간단한 요소만을 가지고도 얼마든지 복잡한 상황이 전개될 수 있다. 현실의 생태계는 이보다 훨씬 더 복잡하다. 얼마나 많은 종들이 분포되어 있는가, 이런 요소들을 아직도 수리 생태학 모델에서 충분히 다루기가 어렵다.

우리가 자연에 대해서 아는 지식이 여전히 충분치 못하다. 고래 한 가지만 놓고 보더라도, 해양 생태계에서 고래 개체수와 관련해서 아직 우리는 충분히 알고 있지 못하다. 최상위 포식자 중의 하나인 돌고래 수가 줄어들 때 나머지 해양 생태계에서 어떤 변화가 벌어질 것인가? 정확하게 알고 있지 못하다. 그리고 그런 것을 알고 있다고 하더라도, 제대로 된 종합적 모델링을 할 정도의 기법도 충분히 발달해있지 못하다.

그런 이유로, 수리 생태학에서 종종 사용하는 시스템 다이나믹스 모델을 경제의 운동 특히 성장과 관련해서 분석할 정도로 우리가 아는 지식이 발달해있지는 않다. 내가 한참 연구실에서 분석하고 모델 작업할 때, 정말로 해보고 싶었던 평생의 일이 이런 것이었다. 물론 나도 실험적인 몇 개의 알고리즘을 만드는 것 이상으로 정말로 진지하게 체계적으로 접근할 기회를 갖지는 못했다.

성장패턴은 경제 내부의 주요 요소들의 변화를 장기적으로 분석하는 것

21세기의 이공계 전공자에게는 너무나 당연할지도 모르는 복잡계에서 종종 벌어지는 기본적인 현상을, 경제학에서는 아직도 거시경제의 움직임에 대해서 접목시키고 있지는 못하다. 우리의 사유는 여전히 단선적이고, 기계론적이다. 만약 일정한 성장률을 유지하기 위해서 경제 내부의 중요한 요소들을 무너뜨렸다면 과연 장기적으로 어떻게 될 것인가? 이런 것을 ‘성장 패턴’의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오랫동안 한국에서 문제가 된 수도권 집중의 문제, 이런 것들이 전형적인 성장 패턴의 문제이다. 단기적으로는 성과가 나는 것 같지만, 장기적으로는 지방경제의 붕괴로 문제가 일어나게 된다. 토건경제라는 용어로 일본 경제를 설명할 때에도, 이것 역시 특정한 성장 패턴의 문제라고 할 수 있다. ‘격차 사회’라는 용어가 겨냥하는 중산층 붕괴 현상, 이 또한 성장 패턴의 한 양상이다.

피케티의 <21세기 자본>이 지적하는 문제는 부의 분배, 즉 신자유주의라고 흔히 부르는 특정한 경제 운용이 지속된 후, 부자와 가난한 사람들 사이에 부가 어떻게 나누어졌는가라는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성장률 자체의 문제라기 보다는, 그 성장을 이끄는 메카니즘이 어떤 패턴을 가지고 있는 것인가, 그런 문제 의식의 연장선 위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이 분석을 너무 이념적으로만 보면, 성장이냐 분배냐, 그런 고전적인 얘기가 다시 한 번 반복되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조금 더 방법론적으로 본다면, 특정 시점, 성장에 따른 패턴의 등장과 같은 새로운 시각의 분석이라고 할 수도 있다. 케인즈의 경제가 효과를 보였던 전후 30년 동안의 시기와, 신자유주의라는 소위 정글 법칙 만능주의가 작동하는 시기에 관찰된 소득간 부의 편차는 일종의 성장 패턴에 관한 연구이기도 하다.

21세기, 아담 스미스의 <국부론>이 스코틀랜드 한 쪽 구석에서 처음 등장한 시기나 마르크스의 <자본론> 혹은 케인즈의 <일반 이론>이 등장한 시기에 비해서 모든 것이 복잡해졌다. 산업과 서비스의 경계가 더 모호해졌고, 국가간 금융 이동은 그 어떤 이론으로도 포착하기 어려울 정도로 규모도 늘고, 빈번해졌다. 여전히 우리는 성장률을 중심으로 사유하고, 심지어는 목표로 정해놓은 성장률로부터 역산해서 정책을 조율하기도 한다. 그리고 선거 특히 대선과 같은 큰 선거가 오면 후보간에 서로 높은 경제 성장률을 제시하는 것이 득표전략이 된다. 그러나 과연 성장률이라는 단일 변수 그리고 그걸 억지로라도 맞추기 위한 재정정책과 금융정책이 여전히 유효한 것인지, 다시 한 번 생각해보아야 할 것 같다. 이제는 성장 패턴에 대해서 더 많이 생각해보고, 생태계 등 시스템이 갖는 특징이라는 시각에서 국민경제를 보아야 할 것 같다.

내수가 버티지 못하고, 이로 인하여 수출과 연계되지 못한 산업들이 위기 국면으로 들어가는 한국 경제에서 패턴과 구조에 관한 논의는 좀 더 유용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연령·성별 등 사회경제적 범주에 따른 서로 다른 조건에 관한 분석 역시 장기적으로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과연 우리는 어떤 성장 패턴을 가지고 있고, 어떤 형태로 나아가야 하는가, 이런 세밀하면서도 구조에 관한 얘기들이 우리에게는 성장률보다 훨씬 더 필요하지 않는가? 이런 걸 무시하고 그냥 전통적인 거시 경제의 성장률 논리만 들이댄다면, 황금알을 낳는 거위의 배를 가르는 것과 같은 후회스러운 일을 하게 될지도 모른다. ‘부채 주도형 성장’이라는 용어가 유의미하게 다가오는 요즘, 성장 패턴에 대한 얘기를 우리가 더 많이 해야하는 것 아닌가?

본 기사는 월간지 <이코노미21> 10월호에 게재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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