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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세논의 포함 합리적 대안 모색해야
증세논의 포함 합리적 대안 모색해야
  • 정태희 선임기자
  • 승인 2015.03.28 14:4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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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무원연금개혁①-논의 과정과 논쟁점> 재정적자 심화와 개혁 불가피성은 큰 이견없어…하후상박만으로 해결될 수 없고 사회적대타협 필요해

2014년 11월 1일 서울 여의도 문화마당 앞 광장. 공무원연금 개혁안에 반대하는 전·현직 공무원과 그들의 가족 등 12만 명이 참가한 공무원 집회 사상 유례없는 대규모 집회가 열렸다. 집회가 열리면 통상 보수와 진보 간 맞불 작전으로 현장 갈등이 빚어지곤 하는데, 이날 만큼은 진보와 보수 모두 똘똘 뭉쳤다. 공무원 노조를 비롯 전국의 50여개 공무원 단체가 참여해 공동투쟁본부를 결성하고 ‘연금환원’이라는 피켓시위와 함께 ‘공무원연금 개악 결사저지’를 한 목소리로 외쳤다.

왜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일까? 삭발투쟁을 강행하고 박근혜 정부 불신임투표를 선언할 정도로 그들을 열(?)받게 한 이유는 무엇일까?

그 배경엔 공무원연금개혁안이 있다. 집회 일주일 전인 10월25일 여당인 새누리당이 공무원연금개혁안을 당 대표발의로 국회에 제출했기 때문이다. 새누리당은 이 개혁안을 안전행정위에 상정해 이번 정기국회 기간 내에 통과시키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피력하였으나 야당인 새정치민주연합(새정연)의 반대에 부딪쳐 상정 자체가 무산되었고, 곧바로 공무원사회의 극한 반발로 이어진 것이다. 겉으로 보면 정부여당의 정책발표에 이은 야당과 노조의 반발, 어찌보면 식상하다, 예상된 시나리오 같다는 느낌도 든다. 그러나 이번은 좀 다르다. 그 이유는 사용자인 정부와 피사용자인 공무원간의 이해관계가 어느 때보다 날카롭게 부딪치고 있어서다.

늘 그래왔듯이 공무원연금개혁은 '뜨거운 감자‘다. 워낙 뜨거워 쉽게 입에 넣을 수 없다. 그래서 역대 어느 정부도 성공한 적이 없다. 실패의 쓰라린 경험만 있을 뿐이다. 그렇다고 박근혜정부로서는 뒷짐 지고 마냥 바라보고 있을 수만은 없는 상황이다. 슬그머니 다음 정부로 떠넘기기엔 명분도 없고 3년이라는 시간도 남아있다. 주요 공약사항 중의 하나로 임기 내 관철시켜야 하는 숙제이기도 하다.

재원은 이미 바닥난 지 오래다. 문제는 재원을 어떻게 마련하느냐다. 증세논의를 본격 시작해야 할 때다. 기획재정부와 한국연금학회의 보고에 따르면 2011년 1조3천억원, 2012년 1조7천억원, 2013년 2조원에 이어 올해엔 2조5천억원의 적자가 예상된다. 더욱 심각한 것은 그 이후의 일이다. 8년 뒤인 2022년엔 누적적자폭이 46조원에 이를 전망이다. 이대로 가다간 미래세대에 천문학적인 빚을 떠넘겨야할 처지다. 정부여당으로서는 정치적 부담이 큰 게 사실이다. 그래서 박근혜 정부는 정치적 논란을 뒤로 한 채 대수술을 위한 칼을 빼어든 것이다.

야당이 이에 동의해줄 리 만무다. 새정연은 기다렸다는 듯 즉각적인 반박에 나섰다. 새정연은 “개혁의 필요성은 인정하지만 군사 작전하듯 절차를 무시한 일방적 추진은 불가하다”며 “여야와 정부, 노조, 학계, 시민 등이 참여하는 사회적 대타협협의회를 통해 다양한 의견을 수렴한 뒤 사회적 합의를 바탕으로 추진해도 늦지 않다”는 입장이다. 칼자루를 오히려 야당인 쥔 듯 느긋한 형국이다.

공무원노조를 중심으로 한 공무원 집단은 자신들과 가족들의 미래가 걸린 문제이기 때문에 자신들의 주장이 관철되기 전에는 한 발도 물러서지 않겠다는 기세다. 현직 공무원들을 대상으로 찬반 투표도 실시했다. 그 결과는 불보듯 뻔했다. 98.64%가 새누리당의 개혁안 반대했다. 밥그릇 싸움엔 보수 진보도 없다. 압도적인 거부의사가 확인된 셈이다.

이에 새누리당은 야당은 ‘반대를 위한 반대’를 하지 말고 당론을 내놓으라고 압박하면서 공무원노조에도 이해당사자를 협상테이블에 앉힐 수 없다는 주장을 고수하고 있다. 국민의 세금으로 연금 부족분을 메꾸어 오면서 혜택을 누려 온 공무원들이 자기들끼리 찬반투표를 한다는 것은 시험을 보는 학생들이 투표로 정답을 결정하자고 하는 논리만큼이나 자가당착이라며 인정하지 않는 분위기다. 그리고 대통령은 공무원들끼리 뽑은 게 아니라 전 국민이 선거를 통해 뽑은 국가의 지도자인데, 불신임투표 운운하는 것은 억지라는 게 당 안팍의 중론이다.

이에 대한 국민들의 반응은 대체로 냉담한 편이다. 가뜩이나 불경기로 먹고살기가 어려운 판에 정치적 이해관계로 이른바 ‘그들만의 리그’를 벌이고 있다는 불만이 일부에서 제기되고 있다. 국민연금과 비교할 때 수혜 폭이 지나치다며 형평성 문제를 제기하는 이들도 있다. 사실 공무원사회에 대한 국민들의 불신은 여전히 높다. 공복으로서 경제성장의 한 축을 담당하며 희생을 자처해온 입장을 이해하지만 최근 공무원 사회가 보여준 일그러진 행태에 대해 신랄하게 비판한다. 국민행복을 위해 누구보다 앞장서야 하는 사람들이 복지부동하고 ‘갑질’의 대표적 집단으로 변질된 것을 질타한다.

▲ 정홍원 국무총리가 2014년 11월 6일 서울 세종로 정부서울청사 정부합동브리핑실에서 공무원 연금 개혁 관련 담화문을 발표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공적 연금의 재정 불안을 해소하기 위한 개혁은 불가피해 보인다. 정부와 여야는 물론 공무원사회도 이 점은 부인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이해당사자인 공무원들의 공감을 얻어내는 동시에 사회적 합의를 바탕으로 한 현실적이고 효율적인 공무원 연금개혁은 불가능한 것인가?

정치는 타협이다. 이해가 첨예하게 대립하는 것을 최종적으로 조정하고 해결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문제의 본질을 정확하게 인식하고 있어야 한다. 그래야 좀더 나은 해결책을 이끌어낼 수 있다. 공무원연금이 왜 개혁의 대상이어야 하는 지, 정부여당의 개혁안은 어떤 문제를 안고 있는지를 꼼꼼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런 관점에서 공무원연금의 도입배경과 그동안 개혁논의가 어떻게 전개되어 왔는지를 살펴보는 것도 의미가 있겠다.

연금 수령자 늘면서 ‘연금재정적자’는 필연적 문제

우리나라의 공무원연금제도는 1960년에 도입되었다. 당시에는 퇴직금이라는 게 없어 공무원들의 노후를 보장하자는 것이 도입취지중의 하나였다. 더불어 우수한 인재를 유치하기 위한 인사 정책 역할도 했다고 한다. 보수가 적다보니 후불임금의 성격이 강했고, 공무원들의 노동기본권이나 정치참여권 등을 제한하다 보니 회유의 성격을 지니기도 했다. 정부에 대한 강한 충성심을 유지할 필요와 낮은 임금에 대한 반대급부, 즉 보상이 있어야 했다. 이러한 것들이 공무원연금이 비교적 일찍 도입된 배경이다.

연금이란 사전적 의미로 소득상실이나 상당한 소득저하 등 향후 발생할 수 있는 생활상의 위기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는 소득보장수단이다. 경제활동기간 중 소정의 기여금을 납부하고 노령에 접어들거나 퇴직, 재해, 사망 등이 발생했을 때 일정기간마다 계속 지급받는 급여를 가리키는 말이다. 연금은 크게 국가 또는 법률로 정한 특수법인이 운영주체가 되는 공적연금과 기업이나 개인이 운영주체가 되는 사적연금(기업연금, 협약연금, 개인연금 등)으로 나눌 수 있다. 공적연금은 가입과 탈퇴가 자유로운 사적연금과 달리 해당자의 가입이 강제되는 특징을 가진 일종의 사회보험이다.

공적연금제도는 국가에 따라 그 종류와 내용이 다른데, 한국의 경우 흔히 ‘4대 연금’이라 불리는 국민연금, 공무원연금, 군인연금, 사립학교교직원연금(사학연금)이 공적연금에 해당된다. 1988년에 도입된 국민연금은 건강보험과 함께 한국 사회보장제도의 주축을 이루는 대표적 공적연금으로 일반국민을 대상으로 하며, 공무원연금, 군인연금(1963년 도입), 사립학교교직원연금(1975년 도입)은 특수직종사자를 대상으로 하며, 퇴직, 사망, 재해가 발생할 때 급여를 제공한다.

또한 공적연금은 법률(국민연금법, 공무원연금법, 군인연금법, 사립학교교직원연금법)에 의거해 해당자는 의무적으로 가입하도록 되어 있으며, 정부 및 산하기관이 독점적으로 관리하는 공적관리 체제로 운영된다. 즉, 공적연금은 “국가의 책임 아래 운영”하는 것이 중요한 기본원칙인 것이다.

공적연금은 연금가입자와 사용자(또는 정부)가 월급의 일정비율을 부담해 연금수요를 충당하는 방식이다. 이런 방식은 연금제도 초기에는 내는 돈이 타가는 돈보다 많기 때문에 문제가 없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연금을 받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필연적으로 ‘연금재정적자’라는 문제를 일으킬 수밖에 없다. 개혁이 필요한 이유다.

공무원연금은 도입초기인 1960년엔 재직기간 급여의 50%를 보전해 주는 것으로 시작했다. 그러나 전두환 정권 시절인 1981년 공무원의 우대 분위기 속에 재직기간 33년을 기준으로 소득대체율(가입자의 소득대비 지급받는 연금액 비율)이 76%까지 올랐다. 이때까지만 해도 큰 문제는 없었다.

제도의 성숙과 더불어 재정적자문제가 불거진 것은 1990년대에 와서다. 이 때문에 95년 이후 3차례의 개혁이 이루어졌는데, 그 방향은 공무원들에게 납입금(기여금)을 더 내게 하고 연금수령액은 적게 받는 이른바 ‘더 내고 덜 받는’ 쪽으로 진행돼 왔다. 이번의 새누리당 개혁안도 큰 틀에서 보면 ‘더 내고 덜 받는’ 형식을 취하고 있지만 구체적인 추진내용들이 종전 조치들에 비해 너무 과격하다는 평이고, 그러다 보니 공무원들의 불만이 극에 달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렇다면 이번 공무원연금 개혁안은 무엇이 문제인가. 주요 쟁점을 중심으로 살펴보자.

첫째는 직접적 이해당사자인 공무원이 빠진 개혁안이라는 점이다. 국민연금과의 형평성을 맞추기 위해 추진한 2009년의 개정안은 결과적으로 그 격차만 벌여놓았다는 지적이 많았다. 이런 황당한 개혁은 공무원이 개혁을 주도한 데 원인이 있다고 보는 것이 현 정부의 시각이다. 노조대표가 다수 참여해 기득권 보호가 지나치게 강조되었다는 것인데 5년 만에 다시 강도 높은 개혁을 추진하게 된 배경이기도 하다. 정부여당은 이번에 개혁의 전면에 나서면서 공무원과의 대화 없이 소외시키는 바람에 공무원들의 격한 반대에 직면했다. 공무원측은 이해당사자가 참여하는 사회적 합의기구를 통해 합리적 절차를 거쳐 개혁을 추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개혁 필요성은 인정하지만 정부의 일방적이고 권위적인 논의방식은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국민연금 ‘소득재분형’, 공무원연금 ‘소득비례형’ 구조로 설계돼 있어

두 번째는 국민연금과의 형평성 논란이다. ‘국민 대 공무원간 갈등’이 빚어질 공산이 크다. 지난해 공무원 1인당 월평균 수령액은 219만원인 반면 국민연금의 그것은 84만원에 불과했다. 공무원이 일반 국민에 비해 연금을 2.6배나 더 받는 셈이다. 연금총액과 보험료를 나눈 수익비로 보면 공무원연금은 수익비가 2.3배를 넘지만 국민연금은 1.5배에 그친다. 이 때문에 세간에서는 공무원연금을 두고 ‘신의 연금’, 국민연금을 ‘용돈연금’으로 부르기도 한다. 이에 대해 공무원측은 “공무원연금이 국민연금보다 부담률이 높고 퇴직금이 민간기업에 비해 적은데 연금 급여액 차이만을 비교하는 것은 불합리하다”고 반박한다. 연금급여액은 ‘얼마씩 몇 년간 냈는지’에 따라 큰 차이가 나는데 두 연금을 단순 비교하는 것 자체가 무리라는 것이다. 수급자의 납입기간을 보면 공무원연금의 최장납부기간은 33년이나 1988년에 도입된 국민연금은 지금까지 가장 오래된 사람이 25년이다. 납입액도 공무원연금은 7%, 국민연금은 4.5%로 차이가 많기 나는 것도 사실이다. 수급액에서 있어서 차이가 나는 또 하나의 이유는 설계구조 때문이다.

국민연금의 경우 소득이 많은 가입자의 납입액을 저소득층에게 나눠주는 ‘소득재분형’ 구조를 띠고 있는 반면 공무원연금은 내는 만큼 가져가는 ‘소득비례형’ 구조로 설계되어 있다.

이에 대해 공무원측은 “공무원은 민간기업의 직원보다 급여가 적지 않느냐”고 반문하면서 “공무원연금은 재직시 적은 보수에 대한 보상으로 정부가 퇴직후 노후를 보장하는 후불임금의 성격이 강하다”고 주장한다.

▲ 2014년 12월 10일 강원 춘천시 강원도청 앞 공원에서 전국공무원노동조합 강원지역본부 주최로 공무원연금 개혁안 관련 새누리당 규탄대회가 열리고 있다. 사진=뉴시스

공무원연금 운영의 책임을 지고 있는 안전행정부의 공무원 보수실태조사에 따르면 공무원의 평균 급여는 지난해 6월 기준 100인 이상 기업의 77.6%로 나타났다. 즉 민간기업의 직원이 100만원을 받는다면 공무원은 77만6천원을 받는다는 뜻이다.

여기에 정치활동 자유 제한과 노동3권 중 단결권 상당수, 단체행동권은 아예 없는 사회권제약, 파면시 연금의 절반만 주는 성실근무 보상 성격, 산재보험, 상호부조금 등 종합사회복지제도적 성격, 연금수급 요건이 국민연금의(10년)의 배 이상인 점 등을 보지 않고 국민연금과 소득대체율만 단순 비교하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는 주장이다. 국민연금과 동일한 수준으로 하향평준화를 시도하는 것에 대해 경계해야한다는 지적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셋째는 지금의 연금재정 악화가 누구의 탓인가라는 논란이다. 한국연금학회 조사에 따르면 현재의 방식이 유지될 경우 올해 2조4천억원인 공무원연금의 연간 적자액이 내년 3조원을 시작으로 오는 21년에는 7조원을 돌파하고 2030년 14조5천억원, 2040년 20조원에 육박한다. 앞으로 10년간 누적적자액만 53조원에 달한다. 현재의 방식은 지속불가능하다는 얘기다.

이번 개혁안을 반대하는 진영에서도 재정적자 부분에는 큰 이견이 없다. 다만, 공무원연금의 재정이 악화된 것은 정부의 책임이 크다는 것이다. 개혁을 한다 해도 재정 위기의 원인은 정부가 기금운영 잘 하지 못한 결과로 봐야지 그 원인이 공무원들에게 있는 것처럼 호도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저출산, 고령화, 저성장 등 인구학적, 사회경제적 변화로 인한 구조적인 문제로 접근하는 것은 옳으나 일부 언론에서 공무원이 마치 세금도둑으로 몰아가는 보도행태는 용납할 수 없다는 주장이다.

하위직 공무원들의 피해와 충격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개혁 이루어져야

네 번째는 공무원 내의 갈등요소다. 사실 하위직 공무원과 고위직 공무원의 임금격차는 매우 심각하며, 이 임금격차는 연금 격차로 그대로 이어진다. 현재 월 400만원 이상의 연금을 받는 퇴직공무원은 1800명이라고 한다. 이중 최고 수령자는 700만원이 넘는다. 이처럼 고액 수령자가 있는 것은 앞서 언급한대로 공무원연금이 소득비례형인 것에 기인한다. 고위직 공무원은 재직 시에도 월급을 많이 받고 퇴직 후에도 두둑한 연금을 챙기는 셈이다. 따라서 공무원연금은 무엇보다 하위직 공무원들의 피해와 충격을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개혁이 이루어져야 한다. 이번 새누리당 개혁안은 하후상박의 기준을 적용하고 있긴 하지만 2016년 신규 가입 공무원의 기여율, 지급율, 소득대체율이 국민연금과 똑같은 수준이다. 이래선 곤란하다는 지적이다.

마지막으로 공무원연금법상 공무원연금적자와 관련한 ‘국가보전’조항 삭제 논란이다. 새누리당이 이번에 개혁안을 당론으로 발의하는 과정에서 ‘국가의 적자보전의무’를 명시한 조항을 슬그머니 삭제한 것으로 알려졌다. 새누리당은 정부부담금과 보전금을 정부의 몫으로 규정한 69조2항에 대한 개정안에서 보전금 부분을 삭제하고 정부부담금 부분만 남겨 두었다고 한다. 대신 공무원연금 재원(공무원 납입액+정부 부담금)에 재정 지원을 합친 ‘책임준비금’ 적립 근거를 신설하면서 적립금 산정방식은 하위법령인 대통령령에 위임했다는 것이다.

‘재정적자’문제의 해결방식이 연금가입자에게 불리한 방식(더 내고 덜 받는)으로 추진되면서, 공무원연금의 경우 가장 중요한 기본원칙인 “국가의 책임”이 사라지고 가입자인 공무원의 희생을 강요하고 있다는 게 공무원측의 시각이다. 정부가 책임지지 않는다면 공적 연금의 기능이 보장될 수 없고 의미도 없다는 것.

이와 관련 노무현 정부시절 보건복지부장관을 지낸 유시민 전 의원의 최근 발언이 눈길을 끈다. 그는 최근 방송인터뷰에서 새누리당의 개혁안을 지지하고 나섰다.

대표적 친노(親盧) 인사로 당시 공무원연금개혁을 주도했던 그는 “국가는 흙 파서 돈 만드는 거 아니다”라며 새누리당의 ‘더 내고 덜 받는’ 공무원연금 개혁안에 대해 “이건 2008년에 제가 낸 개정안보다 좀 더 급진적인 안”이라며 지지 의사를 나타냈다.

그는 이어 “(공무원연금 적자는) 앞으로 10~15년 정도는 감당할 수 있다. 그런데 지금 개혁하지 않으면 (연금) 수급권이 계속 쌓이기 때문에 10년, 15년 후에는 문제가 더 심각해진다. 그래서 지금 (개혁)하자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공무원들이 무슨 잘못을 해서 벌 주려고 개혁하는 게 아니다. 우리 사회의 인구구조가 저출산, 초고령 사회로 가기 때문에 진보·보수를 떠나 누가 살림을 하더라도 이건 돈 문제니까 다른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반면 그는 새정연의 ‘더 내고 더 받는’ 연금개정안에 대해선 부정적 평가를 내놨다. “현재의 인구고령화 추세를 볼 때 아주 많이 더 내면, 예컨대 지금 14% 내는 걸 2배 이상 더 낸다거나 하면 조금 더 받을 수 있지만 어지간히 올려서는 더 받는 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독일은 소득의 21%를 (보험료로) 낸다. 우리는 적게 내기 때문에 많이 줄 수가 없다. 국가는 어디 흙 파서 돈 만드는 게 아니다”라고 했다 .

새누리당의 개정안대로라면 현 정권(2016~2017년) 임기 중에 6조3천억원, 차기 정권(2018~2022년) 집권 기간에는 5년간 19조7천억원의 국민 세금이 절감될 수 있다고 한다.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서도 고민의 흔적이 묻어나는 부분도 적지 않다. 국민의 입장에서 보면 대체로 수긍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정부나 여당에서 내놓은 개혁안이라도 그것이 최고의 대안이라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다. 시간이 없다고 절차를 무시한다면 졸속으로 더 큰 피해를 가져다 줄 수 있다. 더욱이 공적연금의 운영책임이 정부에 있다고 해서 칼자루를 마구 휘둘러서는 오히려 적대감만 쌓일 뿐, 결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여당도 반대만 할 게 아니라 여당 안에 비견할만한 대안을 내놓아야 한다. 공무원사회는 자신들의 집단이기주의에서 벗어나 전 국민의 입장에서 개혁이 이루어지도록 중심을 잡아야 한다.

다행스러운 것은 지난 12월10일 여야 원내총무 2+2 회의에서 공무원연금개혁에 대한 대체적인 여야합의가 이루어졌다는 소식이다. 공무원연금개혁에 대해선 연내에 국회특위를 구성하고 국회 밖에는 공무원노조가 참여하는 ‘국민 대타협 기구'를 만들기로 한 것이다. 자원외교 국조특위도 연내 구성하기로 합의했다. 원칙에는 합의했지만 구체적인 실행계획에는 여전히 이견을 보이고 있긴 하다. 그러나 합리적인 재조정이 필요하다는 인식을 공유했다는 점에서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앞으로 해야 할 일은 다름아니다. 이해당사자간 싸움을 지양하고 차분하게 대화를 진행하면서 증세논의를 포함해 가장 현실적이고 합리적인 대안을 하루속히 만들어 내야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본 기사는 월간지 <이코노미21> 12월호에 게재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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