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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가 산재를 안 해준데요
회사가 산재를 안 해준데요
  • 원종욱 본지 편집기획위원, 연대 의대 교수
  • 승인 2015.03.28 15:4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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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가 산재 보험 청구에 동의하지 않아도 산재 보상 받을 수 있어

35세 김00씨는 핸드폰 부품 조립 공장에서 일하고 있다. 최근에 경기가 좋지 않지만 이 회사는 잘 나가는 대기업의 하청을 받아서 일이 많다. 더욱이 최근에 신제품이 개발되었고, 이 제품이 많이 나가는 바람에 눈코뜰새 없이 바쁘게 일했다.

최근 1주일 동안 하루 12시간씩 일해서 피곤한데다가 사고가 나기 전날 밤에는 아이가 갑자기 아파서 응급실 데리고 갔다 오느라 2시간 밖에 잠을 자지 못했다. 결국 일하다가 졸아서 기계에 손가락이 말려들어가면서 왼쪽 2번째 손가락이 절단되었다. 즉시 병원에 가서 2번 수술을 받으면서 치료했지만 결국 그 손가락을 잃어버렸다.

문제는 회사에서 김씨가 졸면서 일을 해서 다친 것이니 산재 처리를 해줄 수 없다면서, 김씨 잘못으로 사고가 났기 때문에 산재 청구해 봐야 보상을 받지 못한다고 했다. 그리고 산재 청구를 하지 않으면 위로금을 줄 테니 합의하고 끝내자고 하였다.

김씨는 자기 잘못으로 산재를 당했기 때문에 산재 보상을 받을 수 없을까?

결론부터 말하면 김씨는 산재 보상을 받을 수 있다. 회사에서 산재 보험 청구에 동의하지 않아도 김씨가 단독으로 산재 보상 청구를 할 수 있고, 산재 보상도 받을 수 있다.

이제 산재 보상의 원칙에 대해서 알아보자.

산재보험이 도입되기 이전에는 산재가 발생했을 때 보상을 받기 위해서는 사업주가 자발적으로 보상하지 않으면 법에 소송을 해야만 했다. 이때 적용되는 법은 민법이기 때문에 사업주의 과실이 있는 것만큼 보상을 받는다. 즉, 근로자가 산재를 당하는 과정에서 사업주의 과실이 있어야 보상을 받을 수 있다. 물론 이 과실이라는 것이 사업주의 명백한 잘못만을 말하는 것은 아니고, 사업주가 근로자를 보호할 주의 의무를 다하지 않은 경우도 포함될 수 있다. 그러나 김씨와 같이 자신의 과실로 발생하였고, 이 과정에서 사업주의 과실이 없는 경우에는 보상을 받을 수 없었다.

▲ 원종욱 연대 의대 교수

근로자의 과실이 없다고 해도 사업주의 과실을 증명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사업주는 근로자들에 비해서 일반적으로 지식이 더 높고, 해당 공장의 상황이나 작업 공정이나 기계에 대해 더 많이 알고 있다. 그 뿐만 아니라 경제적으로도 더 여유가 있어서 좋은 변호사를 선임할 수 있다. 더욱이 동료 근로자들의 증언이 매우 중요한데, 피해 근로자를 위해서 증언해 줄 근로자 보다는 사업주를 위해서 증언할 근로자를 구하기가 더 쉽다.

결국 근로자가 사업주를 상대로 재판을 이길 수 있는 가능성은 매우 낮다.

산재 보험이 도입되기 이전에 사업주를 상대로 한 재판에서 이기기가 더 어려운 이유는 소송에서 다음과 같은 사업주의 방어 논리가 인정되어 노동자들이 더욱 승소하기 힘들었다.

첫째, 위험인수. 산재를 당한 근로자가 위험에 대해 사전에 인지하고 있었으며, 근로계약 시에 이 위험 부담을 승낙 하였기 때문에 사고에 대한 사업주의 책임이 없다는 주장이다. 둘째, 기여과실. 산재 사고의 대부분은 근로자의 크고 작은 부주의나 과실로 인해 발생하는데, 이런 근로자의 과실로 인해 산재가 발생했기 때문에 사업주에게 책임이 없다는 논리가 법정에서 받아들여 졌다. 셋째, 공동자 원칙. 제3의 노동자에 의해 산재가 발생하였다면 배상의 책임이 산재를 유발한 제3의 노동자에게 있다고 하여 사업주의 책임을 회피한 논리. 이런 세 가지 논리가 예전의 법정에서는 인정되었지만 지금은 전혀 인정되지 않고 있다.

즉, 산업혁명과 더불어 시민혁명을 거치면서 서양사회의 한 축으로 성장한 노동자 계급은 노동자들의 권익을 찾기 위한 여러 가지 노력을 하였다. 이 과정에서 산재소송에서 사업주의 3가지 방어 논리의 사용을 제한하고, 산재에 대한 사업주의 책임을 강조하는 ‘고용주책임법’이 제정되었고, 이어서 사업주의 책임을 더욱 강조한 ‘무과실 책임’ 원칙에 입각한 산재보험이 도입되었다.

‘무과실 책임’ 원칙에 따라 근로자의 사소한 실수나 과실로 인한 재해도 보상

그럼 산재보험의 ‘무과실 책임’ 원칙은 무엇인가?

본래 민법상으로는 자신이 잘못한 부분에 대한 책임을 지도록 한다. 이를 산재에 적용하면 산재 발생에 있어서 사업주가 잘못한 부분이 있어야 책임을 진다는 것이다. 그러나 ‘무과실 책임’은 사업주의 잘못이 없었어도 근로자의 업무상 재해에 대해서 책임을 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사업주가 산재 예방을 위해서 최선의 노력을 다했다고 하더라도 산재가 발생하는 경우에 사업주에게 보상책임이 있다. 물론 이 보상 책임은 산재보험에서 정한 범위 안에서의 보상 책임을 의미한다. 즉, 자동차 사고와 같이 정신적 위자료 등은 보상의 범위에 포함되지 않는다.

현재 사업주의 ‘무과실 책임’ 원칙은 조금 더 확대되어 근로자의 사소한 실수나 과실로 인한 재해도 보상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근로자의 고의나 범죄, 중대한 과실이 있는 경우만 보상을 하지 않는다. 사실 근로자의 중대한 과실이 있다고 하더라도 사업주가 근로자의 중대한 과실을 입증해서 노동위원회의 인정을 받아야 산재 보상 책임을 면할 수 있다. 따라서 대부분의 산재 근로자는 다소의 과실이 있다고 하더라도 고의나 범죄 행위가 아닌 한 보상을 받을 수 있다.

결론적으로 김00씨의 실수로 사고가 발생했지만, 이 사고는 김씨의 고의나 중대한 과실로 볼 수 없기 때문에 김씨는 근로복지공단에 산재보험 요양 신청을 하면 산재 보상을 받을 수 있다.

여기서 한 가지 확인하고 넘어가야 할 사항이 있다. 산재보험 요양 신청서에는 사업주의 확인을 받아야 하는데, 김씨와 같이 사업주가 산재 보상을 부정하는 경우에는 이 사업주 확인을 받기 어렵다. 이런 경우 사업주 확인이 없어도 요양신청서를 제출할 수 있다. 다만 이런 경우 사실 관계 확인을 위하여 근로복지공단에서 사업주에게 통보한다. 요양급여 신청서는 재해 상황과 사실 관계만 정확히 기입하면 되기 때문에 누구나 손쉽게 작성할 수 있다. 또한 요양 급여 및 휴업급여 신청은 치료 받는 의료기관에 청구를 위임할 수도 있다.

다시 한번 강조하는데 산재보험은 사업주의 무과실 책임 원칙에 따르기 때문에 사업주의 과실이 없는 것은 물론이고, 근로자의 사소한 잘못이 있다고 하더라도 보상을 받을 수 있다. 또한 사업주가 산재 사실을 확인해 주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요양 신청을 통해서 사실 관계를 확인한 후 보상을 받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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