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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스토텔레스, 집단지성으로 군주정을 넘어서다
아리스토텔레스, 집단지성으로 군주정을 넘어서다
  • 박이택 본지 편집기획위원, 고려대 연구교수
  • 승인 2015.05.11 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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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과 친애의 정치&경제학: <니코마코스 윤리학>과 <정치학>(1)

<동서양 고전으로 읽는 경제사상사>

부국과 빈국으로 양분되는 대분기(Great divergence)의 시대는 지속될 것인가? <빈곤의 경제학(원제 The Bottom Billion)>의 저자로 유명한 폴 콜리어는 바야흐로 세계는 잘 사는 나라 20%와 못 사는 나라 80%로 구성된 세계에서 잘 사는 나라 80%와 못 사는 나라 20%로 구성된 세계가 될 것이라 예측한다. 이제 하위 20%의 나라를 제외하고는 모든 국가들이 잘 사는 나라가 되어 대분기의 시대는 종언을 고할 것이라 본 것이다. 그런데 왜 하위 20% 나라는 잘 살 수 없는 것일까? 그것은 내전 때문이다. 즉 내전의 문제만 해결될 수 있다면, 80%의 나라가 아니라 100%의 나라가 모두 잘 사는 나라가 될 것이다. 그래서 이제 개발경제학자들이 추구하는 가장 중요한 연구과제는 어떻게 하면 내전을 종식하고, 국가가 공동선을 추구할 수 있게 할 것인가이다. 그런데, 이 문제는 사실 기축시대의 사상가들이 직면하였던 문제이기도 하였다. 그런 점에서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는 여전히 고대 기축시대의 사유가로부터 배울 바가 있는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도시국가적 사유

어떤 국가가 공동선을 추구하는 국가이며, 그러한 국가를 어떻게 만들 수 있을까? 동양의 맹자는 그 답으로 왕도정치를 제시하였다.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라면 어떤 답을 제시하였을까?

맹자와 거의 동일한 시대에 고대 그리스에 살았던 철학자로 아리스토텔레스가 있었다. 어찌 보면 그도 고대인이었다. 그리스인에 대한 인종우월주의를 가지고 있었으며, 노예제도를 자연스러운 제도로 인정하였으며, 못 생긴 사람은 행복하게 사는 데 원초적 결격 사유를 가진 사람으로 보았다는 점 등 당대의 문명적 오만과 편견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였다. 그렇지만 그는 고대 그리스 철학의 위대한 종합자로 평가받고 있다. 그와 같은 평가를 받는 데에는 고대 그리스의 도시국가적 발전을 ‘윤리학’과 ‘정치학’이라는 실천철학적 체계 속에 담아내는데 성공한 것도 한 몫 했다.

고대 문명이 발전하였던 그리스는 그 지형적 특성에서 남다른 점이 있었다. 잘 알려져 있듯이 그리스는 바다 위의 섬이거나 산맥들이 가로 막힌 육지의 섬들로 구성되어 있어서, 인간의 자유로운 이동도 어렵고, 광역적인 정치공동체가 출현하기도 어려웠다. 그래서 기껏 만들어질 수 있는 국가란 것이 도시국가였다. 그렇지만 잔잔한 호수와 같은 지중해는 조선기술이나 해운기술이 별로 발전하지 않은 상태에서도 지중해 권역의 다양한 물산들이 원활하게 교역될 수 있도록 허용하였다. 지중해적 통합은 도시국가들이 파편화된 점들이 아니라 정치공동체로서 국가간 경쟁이 가능하도록 만들었으며, 국가의 규모가 상대적으로 작음에도 불구하고 수준 높은 문명이 발전할 수 있도록 하는데 일조했다. 상대적으로 작은 규모의 국가. 사실 그것은 한계이자 또한 새로운 가능성이었다. 그것은 그리스 문명의 특징으로서 참여 민주주의적 정치체제를 가능하게 하는 것이었다. <정치학>을 보자.

“인구는 국가가 자급자족적인 기능을 수행하기에 적합한 규모여야 한다. 국가도 배와 마찬가지로 기능을 수행하기에 너무 커서도 안되고, 너무 작아서도 안 된다. 국가가 업무를 적절히 수행하기 위해서는 시민들이 서로의 탁월함을 알 수 있어야 한다. 따라서 최적 인구는 자급자족적인 삶을 가능하게 해주되 시민들이 서로의 탁월함을 알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최대 다수라고 정의할 수 있다”(<정치학> 374면)

시민들이 서로의 탁월함을 알 수 있는 범위로 국가의 규모는 제한되어야 한다. 이것은 인정을 베풀면 국가의 규모가 커진다는 ‘발에 의한 투표론’에 입각하고 있는 춘추전국시대 중국의 국가론과는 상당히 다르다. 중국은 광활한 대지에 자연적인 경계가 별로 없기 때문에, 인간의 지역간 이동과 국가간의 이합집산이 잦아 ‘평천하’라는 제국적 사유가 득세하였다. 반면, 고대 그리스에서는 동양의 제국적 사유와는 구분되는 도시국가적 사유가 발전하고 있었다.

폴리스적 동물로서의 인간과 그들이 만든 정치체제의 다양성

고대 그리스인에게 도시국가란 무엇이었을까? 아리스토텔레스에게 도시국가는 인간이 인간으로서 살 수 있도록 한 문명 그것이었다. 그래서 그는 인간을 폴리스적 동물이라 표현한 것이다. <정치학>을 다시 보자.

“공동체에 대한 이런 본능은 모든 인간에게 내재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맨 처음으로 국가를 만든 사람은 인류에게 최대 은인이다. 인간은 완성되었을 때는 가장 훌륭한 동물이지만, 법(nomos)과 정의(dikê)에서 이탈했을 때는 가장 사악한 동물이다. 무장한 불의(不義)는 가장 다루기 어렵다, 인간은 지혜와 탁월함을 위해 쓰도록 무기들을 갖고 태어나지만, 이런 무기들은 너무나 쉽게 정반대의 목적을 위해서도 쓰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탁월함(aretê)이 없으면 인간은 가장 불경하고 가장 야만적이며, 색욕과 식욕을 가장 밝히는 것이다. 하지만 정의는 국가 공동체의 특징 중 하나다. 정의는 국가 공동체의 질서를 유지해주고, 정의감은 무엇이 옳은지 판별해주기 때문이다.”(<정치학> 22면)

인간을 사악한 동물로부터 가장 훌륭한 동물로 변화하게 만들어 준 것은 바로 국가였다. 그런 의미에서 국가는 야만과 문명을 가르는 경계였다. 그렇다면 가장 완전한 도시국가는 어떤 형태일까? 아리스토텔레스의 사부인 플라톤이 추구하였던 문제였다. 현존하는 모든 도시국가들은 불완전한 것일 뿐이다. 그것에 감추어진 국가의 완전한 형태, 그것을 이상국가라 불렀다. 이 이상국가는 현존하는 도시국가들을 불완전하게 하는 요인들을 교정함으로써 얻어질 것인 바, 가족과 사유재산의 폐지도 그의 교정의 목록에 포함되어 있었다. 잘 알려진 데로, 아리스토텔레스는 자신의 사부인 플라톤을 사랑했지만, 그보다 더 진리를 사랑했다. 아리스토텔레스에게 도시국가란 모름지기 탁월성을 추구하는 인간들의 삶의 다양성을 담아내는 그릇으로서, 다양한 인간들의 자족적인 삶을 가능하게 하는 공동체인 것이지, 모든 인간을 몇 가지 완전한 형태의 인간 유형으로 찍어내는 공장은 아니었다. 그런 점에서 도시국가의 다양성은 폐기되어야 할 것이 아니라, 이해되어야 할 것이었고, 이상국가는 이데아로서 현실에 구현되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국가의 존립을 기초 짓는 다양한 조건에 따라 시시각각 달라질 수 있는 것이어야 했다. <정치학>을 다시 보자.

“정체가 여러 가지인 것은 모든 국가가 여러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보다시피 첫째, 모든 국가는 가족들로 구성되어 있고, 둘째, 이들 가족의 집합체는 부자, 빈민층, 중산계급으로 나뉘게 마련이며, 부자는 중무장보병으로 무장할 능력이 있고 빈민은 그럴 능력이 없다. 셋째, 보다시피 민중(dêmos)은 농민, 상인, 직공으로 나뉜다. 넷째, 상류층도 부와 재산의 규모에 따라 서로 구분이 된다. 예컨대 말의 사육 등은 부자가 아니면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래서 이전에 기병대가 주력을 이루는 국가들에서는 과두정체가 시행되었던 것이다. 이들 국가들은 이웃 나라와의 전쟁에서 기병대를 이용하곤 했는데, 예컨대 에레트리아인들과 칼키스인들과 마이안드로스 강변의 마그네시아인들과 아시아의 수많은 민족이 그랬었다. 상류층에서는 부의 차이 외에도 다른 차이가 있는데, 가문과 개인적인 탁월함의 차이와 그 밖에 우리가 귀족정체에 관해 논하며 한 국가의 필수 요소를 열거할 때 국가의 ‘부분’이라고 말한 바 있는 다른 유사한 요소에서의 차이가 그것이다.” (<정치학> 203-204면)

도시국가는 이해관계가 다르고 그렇기 때문에 가치체계가 다를 수밖에 없는 다양한 계급으로 구성되며, 각 계급의 내부구성도 달랐다. 도시국가에서는 이와 같은 이질적인 시민들이 자신들의 가치를 유일한 가치라 주장하며 권력을 다툰다. 이상적인 도시국가의 모색이란, 이와 같은 다툼 속에서 이들이 모두 공정하다고 생각할 수 있는 정부기구와 분배적 정의를 찾아내는 것이다. 변화하는 계급구성과 가치체계 속에서 적절한 정부기구와 분배적 정의를 찾아내는 것은 정치학의 일이다. 이 일에 성공하지 못하면, 정치체제는 타락하고, 정변이 일어난다.

정의로운 정체의 3가지 형태와 그것의 타락한 3가지 형태

아리스토텔레스 시대에 그리스에는 150여개가 넘는 정치체제가 있었지만, 크게 보면, 세 가지 범주로 분류할 수 있다. 군주정과 귀족정과 제헌정이 그것이다. 군주정이 일원적 의사결정의 효율성에 바탕한 것이라면, 귀족정은 전문적 능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간의 분업적 협력의 체계의 효율성에 바탕한 것이고, 제헌정은 동등한 사람들 간의 참여기회의 동등성이라는 평등적 가치에 바탕한 것이다. 이 모두는 가족 관계의 한 부분을 범형으로 한 것인데, 군주정은 부자관계를 범형으로 하는 정치체제이며, 귀족정은 부부관계를, 제헌정은 형제관계를 범형으로 하는 정치체제이다. 물론, 현실에서는 이것들의 다양한 결합도 가능하다. 이 세 가지 정치체제는 모두 정의로운 정치체제이다. 이 각각에는 또 타락한 정치형태들이 있었는데, 군주정의 타락한 형태가 참주정이었고, 귀족정의 타락한 형태가 과두정이었고, 제헌정의 타락한 형태가 민주정이었다. 무엇이 도시국가의 정치체제를 정의로운 것과 타락한 것으로 나뉘게 하는 것일까? <니코마코스 윤리학>을 보자.

“그런데 친애는 폴리스들도 결속시키는 것처럼 보인다. 입법자들도 정의를 [구현하기 위해] 애쓰는 것보다 친애를 [구현하기 위해] 더 애쓰는 것 같다. 입법자들은 무엇보다도 친애와 비슷한 것으로 보이는 화합(homonoia)을 추구하며, 무엇보다도 [폴리스에] 해악을 끼치는 분열을 몰아내기 때문이다. 또 서로 친구인 사람들 사이에서는 친애가 추가적으로 필요하고, 정의의 최상의 형태는 [서로를 향한] ‘친애의 태도’(philikon)처럼 보인다.

그런데 친애는 필요한 것일 뿐만 아니라 고귀한 것이기도 하다. 우리들은 친구들을 사랑하는 사람들을 칭찬하고, 친구가 많은 것은 고귀한 것들 중 하나로 보이니까, 더 나아가 사람들은 좋은 사람과 친구를 동일하게 생각한다. “ (<니코마코스 윤리학> 278-279면)

폴리스의 결속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친애였다. 친애란 타인을 자신의 몸처럼 아끼게 되는 몸의 확장이다. 경제학자들에게 익숙한 용어로 말하면, 나의 효용함수에 다른 사람들의 효용이 들어오는, 즉 다른 사람의 만족감의 증대가 나의 만족감도 높여주는, 이타주의적 효용함수가 형성되는 것이다. 시민 공동체의 모든 사람들이 자신의 효용함수 속에 다른 모든 시민들의 효용을 담는 이타주의적 효용함수를 가지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 탁월한 사람들이 더불어 잘 사는 세계가 되지 않을까? 만약 친애가 하나도 없는 상태가 되면 어떻게 될까? 모두가 자신만을 생각하는 세계. 바로 그것이 타락한 정치체제이다. <니코마코스 윤리학>을 다시보자.

“타락한 정치체제에서는 정의가 조금만 존재하듯이 친애 또한 조금만 존재하며, 최악의 정치체제에서 가장 적게 존재한다. 참주정에서는 친애가 없거나 아주 조금만 존재한다. 다스리는 사람과 다스림을 받는 사람들 사이에 공통의 것이 전혀 없는 경우에 있어서도, 정의도 없고 친애 또한 없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장인이 도구에 대해 가지는 [관계나] 영혼이 육체에 대해 가지는 관계, 또 주인이 노예에 대해서 가지는 관계처럼 말이다.” (<니코마코스 윤리학> 303면)

정치체제는 도시공동체의 신분구성과 친애의 정도에 따라 달라지는데, 한 도시공동체의 신분구성과 친애의 정도도 변화하기 때문에, 한 도시공동체의 정치체제도 변화한다. 그와 같은 변화의 한 단면을 <정치학>의 다음 구절이 잘 보여준다.

“옛날에 왕정이 일반화된 이유는 당시에는 더더구나 국가의 규모가 작아 탁월함에서 걸출한 인물들을 충분히 구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들은 은혜를 베푼 까닭에 왕으로 임명되었는데, 은혜는 훌륭한 사람들만이 베풀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 뒤 탁월함에서 대등한 자의 수가 점점 늘어나자 사람들은 더 이상 한 사람의 통치를 용납하지 않고 공동의 정부를 갖고자 입헌 국가를 세웠다. 그러나 그 뒤 지배계급이 타락하여 공공의 재산으로 축재(蓄財)를 하자 거기서 자연스럽게 과두정체가 생겨났다. 그들은 부를 존경스러운 것으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나중에 과두정체가 참주정체로 바뀌었다가, 참주정체가 민주정체로 바뀌었다. 왜냐하면 탐욕 때문에 지배계급의 수가 점점 줄어들자 득세한 대중이 지배계급을 공격하여 민주정체 외의 다른 정체가 생겨나기가 거의 불가능할 것이다.” (<정치학> 184-185면)

아리스토텔레스는 군주정(=왕정)에서 민주정에 이르는 일련의 정치체제의 변화를 탁월한 사람의 증가, 친애의 변화, 부와 대중의 변화 등에 입각하여 설명한다. 이렇듯 이상적인 국가는 한 나라 안에서도 변화하는 것인데, 한 나라가 항상 이상적인 형태에 머무는 것도 아니었다. 때로는 타락한 정치체제도 등장한다. 맹자가 말한 바 일치일란(一治一亂)의 변형된 모습을 보는 듯하다.

군주정에 대한 사유의 체계를 넘어서다.

압도적으로 탁월한 한 사람이 전권을 장악하고 모든 시민들의 행복을 증진하기 위해 통치하는 군주정을 아리스토텔레스는 가장 이상적인 정치체제로 평가했지만, 그와 같은 정치체제가 항상 성립하는 것은 아니었다. 모든 시민들을 위해 선정을 베풀 수 있는 압도적으로 탁월한 사람의 부재. 정치학자들은 이와 같은 왕의 부재의 상태에 대한 대안도 가지고 있어야 했다. 그래야 상황에 맞는 정치체제를 추천할 수 있는 것이다. 사실, 군주정을 구현할 왕이 현존하는 시기는 오히려 예외적인 것이었기 때문에, 정치학자들의 정치체제 추천 목록에는 군주정과는 다른 정치체제들이 많이 존재했다.

중국 춘주전국시대의 사상가의 저술에는 군주정을 넘어선 다른 정치체제에 대한 모색이 매우 빈약하였지만, 왜 아리스토텔레스의 텍스트에는 풍부하게 존재하는 것일까? 그 답은 맹자에는 없고 아리스토텔레스에는 있는 것, 그 무엇을 찾는 것이다. 그것은 바로 집단지성에 대한 강한 신뢰였다. <정치학>을 다시 보자.

“그러나 법이 전혀 결정할 수 없거나 잘 결정할 수 없을 때는 최선의 한 사람이 지배해야 하는가 아니면 모두가 지배해야 하는가? 지금도 사람들이 함께 모여 재판하고 심의하고 결정하는데, 이런 결정들은 모두 개별 업무에 관련되기에 하는 말이다. 이러한 모임의 개별 구성원은 아마 최선의 한 사람보다 열등할 것이다. 그러나 국가는 수많은 개인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리고 추렴 잔치가 단 한 사람이 준비한 잔치보다 낫듯이, 군중(ochlos)은 많은 업무를 그 어떤 개인보다 더 훌륭하게 결정한다.

게다가 다수자는 소수자보다 덜 부패한다. 그것은 마치 많은 물이 적은 물보다 덜 오염되는 것과 같다. 한 사람은 분노나 그와 비슷한 다른 감정에 압도될 경우 그의 판단은 왜곡되기 마련이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모두 동시에 화가 나 일을 그르치기는 어렵다. 이들 대중이 자유민들이고, 결코 법을 어기는 일이 없으며, 법이 불충분할 수밖에 없는 사안에만 개입한다면 말이다.“ (<정치학> 183-184면)

열등한 다수가 우월한 한 사람을 능가할 수도 있다. 물론 이것은 아직은 보완적인 체제에 머물러 있지만, 이와 같은 의사결정의 체계가 발전한다면, 그리고 열등한 다수의 탁월성의 정도가 높아진다면, 민주정은 군주정을 능가할지도 모른다. 성군의 부재. 맹자는 군자가 그것을 보완할 수 있다고 본 반면, 아리스토텔레스는 집단지성이 그것을 보완할 수 있다고 보았다. 동서양의 사유체계의 분기를 야기한 다양한 지점이 있겠지만, 이것도 그 중의 하나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제까지는 정치체제를 중심으로 아리스토텔레스의 실천철학의 내용을 살펴보았다. 그러나 국가가 존립하기 위해서는 시민들의 물질적인 삶, 그리고 정치나 군사에 전념하는 사람들의 경제문제 등도 풀지 않으면 안 된다. 이것이 다음 호의 과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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