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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경제 “문제는 제도개혁이야”
한국경제 “문제는 제도개혁이야”
  • 박이택 본지 편집기획위원/고려대학교 연구교수
  • 승인 2015.05.12 13:4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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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시경제적 안정성으로 경기활성화정책보다 구조개혁이 초점이 돼야…제도개혁의 근원적 힘은 허술한 제도에 대한 수치심과 분노감을 느끼는 사회적 역량

<2015년 세계&한국경제 전망⑥-한국경제에 대한 비판적 전망>

역사든 경제든 어떤 세계가 만들어질 것이라고 생각하는가에 따라 만들어질 미래는 달라진다. 그런 의미에서 전망은 중요하다. 수동적인 전망은 현실을 재생산할 것이고, 비판적인 전망은 현실의 불확실을 증폭시키기는 하겠지만, 그런 만큼 현재와는 다른 미래를 만들 수 있는 힘도 내장한다. 2015년 한국은 비판적인 전망이 대세를 이룰 것이다. 한국경제의 대외의존도는 매우 높기 때문에, 세계경제의 변동을 예의 주시하고 민첩하게 대응하여야 하겠지만, 한국경제 70년의 역사에서 볼 때 한국의 거시경제적인 안정성이 가장 높은 때는 2015년 바로 현재이다. 거시경제적 안정성으로 단기적인 경기대책은 큰 관심을 끌기 어렵다. 대신, 미래권력으로의 중국의 부상과 아베노믹스로 대변되는 일본의 현실이 보여주듯 지난 70여년을 지탱해 온 동아시아 성장체계의 질적 전환이 급진전될 것이며, 인구학적 배당(population bonus)의 시대에서 인구학적 부담(population onus)의 시대로의 한국경제의 전환도 임박했기 때문에, 지속가능한 경제체제 구축에 대한 논의가 보다 활발하게 이루어질 것이다. 선택의 기로에 선 한국은 미래 70년을 위해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

2015년 한국경제와 2060년 한국경제

새해 벽두부터 새로운 변화의 조짐들이 출현하고 있다. 첫 번째 조짐은 세월호 참사로 위축되었던 민간수요가 2014년 하반기부터 역동적으로 살아날 것이라 생각했지만, 사실 그렇지 못해 성장 전망을 하향 조정해야 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것이다. 민간 수요의 성장이 2015년 전반기에도 탄력을 받지 못하면, 한국의 정부부채는 양호한 수준이기 때문에, 정부는 보다 강한 경기활성화 정책들을 마련하려고 시도하겠지만, 민간 수요의 성장을 옥죄는 구조적 요인들에 대한 사회적 논의들도 활발하게 진행될 것이다.

두 번째 조짐은 국제유가의 하락이다. 가격의 하락은 공급의 증가에 의해 일어날 수도 있지만, 수요의 감소에 의해 일어날 수도 있는데, 실제로는 양자가 복합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2000년대는 신흥경제국의 시대였다. 신흥경제국의 역동적인 성장은 석유를 비롯한 국제 원자재 가격의 상승을 주도했는데, 최근 신흥경제국의 성장동력은 상당히 약화됐다. 이것은 에너지 절약적 기술의 발전과 석유 대체 에너지원의 발전과 더불어 유가하락을 견인하는 수요측 요인이라 할 수 있다. 이를 배경으로 시장 주도권을 장악하기 위한 석유 공급 메이저 국가간의 치킨 경쟁이 진행되고 있는데 이것이 유가하락을 견인하는 공급요인이라 할 수 있다. 아직은 잔물결이지만, 세계 경제에 디플레 압력을 강화시키거나, 경제의 영역을 넘어 그 효과가 민족주의의 득세나 세계의 지전략적(Geostrategic) 변화 등 정치적 영역으로 증폭된다면, 보다 심각한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 이와 같은 변화 때문에, 2014년 11월에 행한 OECD의 2015-16년 경제전망은 벌써 철지난 것으로 생각될 수도 있지만, 한국경제의 거시경제적 동태를 전망하는 데는 아직 유효하다.

<그림 1> OECD 2014년 11월 경제전망: GDP 증가율 (단위: %)

▲ 출처: http://www.oecd.org/statistics

2006년 이후 한국 GDP 성장률은 세계 GDP 성장률의 바로미터였다. 2008년 세계 금융위기의 시기를 제외하면, 한국 GDP 성장률은 세계 GDP 성장률과 0.2% 포인트 차이도 나지 않을 정도로 거의 같은 추세를 보이고 있으며, OECD는 2015년과 2016년에도 그럴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세계 GDP 성장률은 2016년에 4%대로 복귀할 것인데, 한국 경제도 그렇게 될 것이라 전망된다. 한국의 GDP 성장률이 세계 GDP 성장률과 높은 동조성을 보이는 것은 한국의 높은 대외 의존도와 무관하지 않은데, 최근 EU, 미국, 캐나다, 오스트레일리아, 중국, 뉴질랜드 등과 자유무역 협정이 체결되어 한국의 대외의존도는 더 강화될 것이다. 수출의 국내경제 기여도가 줄어들었고, 수출보다 내수에 기반한 성장체계를 갖추어야 한다는 논의들이 분분하지만, 올해도 여전히 내수의 성장률보다는 수출의 성장률이 더 높을 전망이며, 올해 12월이 되면, 무역의 규모에 신기록이 달성되었다는 내용의 무역의 날 행사 대통령 축사를 듣게 될 가능성이 높다.

<그림 2> OECD 2014년 5월 장기 경제전망: GDP 증가율 (단위: %)

▲ 출처: http://www.oecd.org/statistics

그러나 한국이 계속 세계 GDP 성장률의 바로미터 국가의 역할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현재 OECD의 가장 최신의 장기 경제 전망은 2014년 5월에 이루어진 것인데, <그림 2>가 그것이다. 2010년대 후반부터는 한국의 GDP 성장률은 세계 GDP 성장률로부터 이탈하여 저성장 궤도에 진입하게 될 것인데, 2034년에는 성장률이 2% 이하로 하락할 것이며, 2060년에는 1.29% 정도에 머무를 전망이다. 그런 점에서 2015년과 2016년은 한국이 세계 GDP 성장률의 바로미터 국가 역할을 하는 마지막 해들이 될지 모른다.

한국경제의 현주소 : 일류 제조업을 가진 삼류 시장경제

2015년은 20세기 후반 세계의 가장 역동적인 성장국가였던 한국이 저성장 국가로 바뀌는 전환점이 될 수도 있는데, 이것은 정해진 운명이라기보다 현재 상태가 지속된다면 이루어질 미래라 할 수 있다. 한국 경제의 정해진 진로를 바꿀 묘수는 없는가?

현재 한국 경제를 압축적으로 표현한다면 “일류 제조업을 가진 삼류 시장경제”라 할 수 있다. Global Agenda Councils on the Future of Manufacturing(2014)에 의하면, 한국의 공업 경쟁력은 1990년에 17위였는데, 지속적으로 상승하여 2010년에는 4위로 상승했다. 1,2,3위는 동기간 동안 독일, 일본, 미국이 차지했다. 한국의 지위는 제조업 3대 메이저 국가를 제외한 나머지 국가 중의 1위로 도약했다는 점에서 그 놀라운 성취에 자부심을 가져도 될 것이다. 그런데 현재 한국의 지위를 넘보는 국가가 출현하고 있다는 점도 놓쳐서는 안된다. 1990년 중국의 순위는 32위였지만, 2012년에는 한국 바로 아래인 5위를 차지하고 있다. 제조업 역량에 있어 중국이 한국을 추월하는 것은 시간문제일지 모른다. 한국은 중국의 추격을 따돌릴 수 있을까?

<표 1> 공업 성과의 경쟁력의 국가별 순위

국 가

1990

1995

2000

2005

2010

2012

독 일

1

2

2

1

1

1

일 본

2

1

1

2

2

2

미 국

3

3

3

3

3

3

한 국

17

13

11

6

4

4

중 국

32

26

22

18

7

5

...

 

 

 

 

 

 

부루키나 파소

139

141

135

140

N/A

N/A

출처: Global Agenda Councils on the Future of Manufacturing(2014, pp.19-20)

한 나라의 경쟁력과 그 변동을 결정하는 것은 무엇일까? 그것을 지표화하려는 시도 중 현재 가장 성공한 것은 세계경제포럼이 작성하고 있는 세계경쟁력 지표이다. 2014~2015년 세계경쟁력 지표를 보면, 한국은 26위에 랭킹되어 있고, 중국은 28위에 랭킹되어 있다. 세계경쟁력 지표에 있어서도 중국이 한국의 바로 턱밑까지 쫓아온 셈인데, 그 내역을 보면, 약간 의외인 점이 있다. 중국이 좀더 우위를 차지하고 있는 부문이 있는데, 시장규모야 당연한 것이지만, 제도적 요인, 노동시장 효율성, 금융시장 성숙도라는 점에서 중국에 현격하게 뒤쳐져 있다는 점은 약간 의외이다. 한국은 사회간접 자본, 인적 자본, 기업의 역량이라는 점에서 중국을 앞서고 있지만, 시장경제의 제도적 측면에서는 중국에 못미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세계 전체적으로 보았을 때도 높은 순위가 아니다.

<표 2> 2014-2015 세계경쟁력 지표 (단위: 국가의 순위)

 

한국

중국

일본

미국

전체 순위

26

28

6

3

기본요인

종합 순위

20

28

25

33

제도적 요인

82

47

11

30

인프라(전력, 항만 등)

14

46

6

12

거시경제 안정성

7

10

127

113

보건 및 초등교육

27

46

6

49

효율성 증진

종합 순위

25

30

7

1

고등 교육 및 직업훈련

23

65

21

7

상품시장 효율성

33

56

12

16

노동시장 효율성

86

37

22

4

금융시장 성숙도

80

54

16

9

기술수용 적극성

25

83

20

16

시장규모

11

2

4

1

기술 혁신 및 성숙도

종합 순위

22

33

2

5

기업활동 성숙도

27

43

1

4

기업혁신

17

32

4

5

출처: Klaus Schwab(2014)

제도적 요인만을 약간 더 세부적으로 살펴보면, 21개 세부항목 중 비정상적인 지급 및 뇌물, 경찰 서비스 신뢰성, 투자자 보호의 강도라는 세 가지 지표에서만 한국이 중국을 앞설 뿐, 나머지 18개 지표에서는 중국이 앞서고 있다. 이와 같은 삼류 시장경제 위에 일류 제조업이 꽃 피울 수 있었다는 것은 기적이다. 어떻게 이런 기적은 가능했을까?

<표 3> 2014-2015 세계경제력 지표 중 제도적 요인 세부 평가 (단위: 국가의 순위)

 

한국

중국

일본

미국

제도적 요인 종합 순위

82

47

11

30

1) 재산권 보호

64

50

11

40

2) 지적 재산권 보호

68

53

7

44

3) 공공자금의 전용

67

45

14

21

4) 정치인에 대한 공공의 신뢰

97

26

21

20

5) 비정상적인 지급 및 뇌물

52

66

11

24

6) 사법부 독립성

82

60

8

21

7) 공무원 의사결정의 편파성

82

22

7

31

8) 정부 지출 낭비정도

68

24

22

104

9) 정부 규제 부담

96

19

64

84

10) 법체계의 효율성(논쟁 해결 측면)

82

49

18

50

11) 법체계의 효율성(규제 개혁 측면)

113

47

19

40

12) 정책결정의 투명성

133

33

11

27

13) 테러에 따른 기업비용

115

85

80

4

14) 범죄 및 폭력에 따른 기업비용

76

52

33

100

15) 조직범죄

93

70

52

21

16) 경찰 서비스 신뢰성

48

61

17

73

17) 기업 경영윤리

95

55

7

31

18) 회계감사 및 공시기준의 강도

84

82

11

46

19) 기업 이사회의 유효성

126

78

18

70

20) 소수 주주의 이익 보호

119

67

14

37

21) 투자자 보호의 강도

45

83

16

83

출처: Klaus Schwab(2014)

지난 70년의 성장동력 (1) : 수출주도 공업화와 제조업 역량 강화

1970년대 중반 미국 경제학자들에게 초미의 관심사는 현재 미국을 위협할 정도로 경제력을 강화하고 있는 유럽과 일본의 성장동력은 어디에서 오는 것이고, 또 언제까지 지속할 것인가였다. 위대한 역사적 GDP 추계가였던 매디슨이 구축한 선진 17개국의 역사적 GDP를 경제사가와 경제학자들이 분석하여 캐치업 효과를 발견한 것은 이러한 시대적 조류를 배경으로 한 것이었다.

캐치업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 새롭게 출현한 현상이었고, 최초의 캐치업은 유럽과 일본이 미국을 캐치업한 것이었다. 일본에 의한 미국의 캐치업과 미국에 의한 일본의 견제는 동아시아의 성장 지형을 바꾸어 놓고 있었다. 1960년대부터 일본은 미국의 견제에서 벗어나기 위해 노동집약적 산업의 동아시아적 재편을 기도하고 있었는데, 동아시아 NIEs의 부상은 이를 배경으로 한 것이었다.

한국은 미국–일본–동아시아 NIEs로 연결되는 캐치업 사다리에 올라타 1960년대에는 노동집약적 산업을 발전시켰으며, 1970년대부터는 규모와 범위의 경제가 있는 중화학공업을 발전시켰고, 1990년대부터는 생산의 기술적 역량을 강화할 혁신체계를 만들어나갔으며, 2000년대부터는 글로벌 가치사슬에서 제조업과 관련된 고부가가치 영역인 제품 설계 및 디자인, 브랜드와 서비스 등에서 역량을 강화하였다. 즉 값싸고 능력있는 노동력이라는 요소부존의 이점을 활용하는 단계에서 제조업 비용 경쟁력을 강화하는 단계를 거쳐, 가치 창출 역량을 마련하는 단계로 순차적으로 제조업을 업그레이드한 것에 성공함으로써 현재 일류 제조업을 가진 상태에 이르게 된 것이다.

▲ 노사정은 진정한 사회적합의를 이끌어낼 수 있을까? 9일 서울 용산구 한국폴리텍대학 서울 정수 캠퍼스에서 열린 2015 노사정 신년인사회에서 김대환(왼쪽 다섯번째) 노사정 위원장을 비롯한 참석자들이 떡케익을 자르고 있다. 사진=뉴시스

한국의 제조업의 성장을 관통한 것은 동아시아 성장체계 속에서 수출지향공업화를 추구하였다는 것이다. 한국의 경제성장을 설명하는 요인으로 수출경쟁에서의 승리를 지표로 자원을 배분하는 체계를 만들었다는 점을 드는데, 그것은 국내에는 공정한 경쟁질서가 형성되지 않았지만, 수출경쟁을 기준으로 국가적 지원을 하였기 때문에 관치경제였지만 나름의 효율성이 작동할 수 있었다고 본 것이다. 즉 공정한 경쟁질서 없이도 제조업의 역량 강화가 이루어질 수 있었던 한국형 기적은 수출경쟁력을 기준으로 한 지원과 보호의 체계였다. 이 점에서 중국과 좋은 대조를 이룬다. 중국에서도 산업정책을 실시하였는데, 그것은 수출경쟁을 기초로 한 것이 아니라 국내경쟁을 기초로 한 것이었다. 한국과 중국 제조업체 형성의 역사적 과정에서의 이와 같은 차이는 제조업 역량은 한국이 강하지만 공정한 경쟁 질서는 중국에서 더 잘 형성된 현재로 드러나고 있다.

지난 70년의 성장동력 (2) : 포용적 성장체계

성장체제를 위협하는 것은 분배적 갈등이다. 이를 잘 해결하지 못해 성장이 좌초된 사례를 역사 속에서 발견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한국은 어떻게 이 문제를 극복했을까? 한국에서 기회의 배분은 공정한 것이었다고 할 수는 없지만, 성장의 기회가 폭넓게 대중에게 열려있었다는 점에서 포용적 성장을 했다고 할 수 있다.

지난 70년 동안 한국에서 전개된 포용적 성장체계를 특징짓는 것은 공정한 성장의 사다리가 아니라 성장의 폭넓은 기회였다. 이 성장의 기회는 다양한 형태의 동아줄로 국민들에게 제공되었는데, 크게 세 가지 종류의 동아줄이 중요했다고 생각된다.

첫 번째 동아줄은 국가형성이라는 동아줄이었다. 잘 알려져 있듯이 1910년부터 일본 제국은 한국에 지배의 상층은 일본인이 차지하고, 하층은 한국인 차지하는 식민지적 지배체제를 만들었다. 이 식민지적 지배체제는 1945년 해체되었고, 일본인이 지배의 상층으로부터 축출됨으로써, 지배의 상층이 텅빈 공간으로 변하였다. 이후 국가형성은 이 지배의 상층이 채워지는 과정이었다는 점에서 사회 계층의 상승 기류를 만들어 냈다.

두 번째 동아줄은 공업화라는 동아줄이었다. 1945년 한국은 여전히 농업국가였다. 한국이 가지고 있는 부존자원이 인구밖에 없기 때문에 우선은 저임의 노동력을 이용하는 노동집약적인 발전을 수행하였지만, 이후 숙련 노동에 기초한 제조업으로 발전하였고, 이후 연구개발 인력에 기초한 제조업으로 발전하였다. 인적 자본의 고도화와 더불어 고도성장에 따른 노동부족 경제로의 전환은 노동조건의 개선을 가져왔는데, 이것은 인적 자본 형성을 중심으로 한 사회 계층의 상승 기류를 만들어 냈다.

세 번째 동아줄은 자산형성이라는 동아줄이다. 미래의 소득은 자본화되며, 그것은 자산형성이라는 형태로 구현되는데, 20세기 후반 한국에서도 급속하게 자산이 형성되었다. 거의 모든 선진국가에서 20세기 자산 형성의 큰 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토지와 건물자산이며,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한국의 주택시장을 상징하는 것은 주택 사다리였다. 조그만 월세방을 마련해서 결혼하고, 조금씩 돈을 모아 전셋집으로 옮기고, 작은 평형의 주택을 장만하고, 이후 보다 큰 평형의 주택으로 갈아타는 주택 사다리는 고도성장기 한국인의 삶을 특징짓는 현상이었다. 이와 같은 주택 사다리와 연계된 토지 및 주택 자산 형성도 사회 계층의 상승 기류를 만들었다.

국가형성, 공업화, 자산형성이라는 세 가지 상승기류는 공정하게 관리되지도 또 분배되지도 않았지만, 그것이 폭넓게 제공되었다는 점에서 계층 상승이라는 사회적 역동성을 형성하였으며, 이와 같은 역동성이 분배적 불공정에도 불구하고 성장체계를 존속할 수 있게 하였다.

어떤 지속가능한 성장체계를 만들 것인가?

제조업의 역량강화는 국내에 공정한 경쟁 질서를 확립하는 것과 결합하여 진행된 것이 아니었고, 포용적 성장도 공정한 기회배분을 담보할 수 있는 제도적 체계에 바탕한 것이 아니었다. 제조업 역량강화와 포용적 성장이라는 성과에도 불구하고 한국경제를 상징하는 것은 정실주의(cronyism)이었다. 다양한 형태의 연줄과 무분별하게 주어진 동아줄은 상승의 기회가 폭넓게 존재할 때 사회 계층의 상승 기류를 조장하는 유효한 수단으로 작용할 수 있지만, 연줄이나 동아줄이 폭넓은 상승 기회를 만들어낸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연줄이나 동아줄은 잘 설계된 사회 계층의 성장 사다리의 형성 기회를 배제하였다는 점에서 역사적 후과는 컸다. 삼류 시장경제와 그 한계를 들어낸 IMF 위기가 바로 그것이었다.

IMF위기 이후 한국에서는 정실주의를 청산하고 공정한 경쟁질서와 공정한 기회배분의 체계를 만들어내는 데 성공했는가? 굳이 세계경제력 지표를 언급할 필요도 없이, 세월호 참사, 정윤회 문서 유출 사건, 조현아 땅콩 회항 사건들은 오늘 한국이 처한 민낯을 여실히 보여준다. IMF 위기와 2008년 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한국은 대외경제의 변동성에 대응할 수 있는 체계의 구축 즉 거시경제적 안정성을 확보하는 데에는 괄목할 만한 성과를 보였지만, 공정한 경쟁질서와 공정한 기회배분의 체계를 만드는 데는 성공하지 못하였다.

1960년대 이래 제조업 성장의 결실인 일류 제조 기업들은 IMF 위기 속에서 그것을 극복할 방안으로 글로벌 기업으로의 변신을 기획하였는데, 바로 이 시기가 신흥경제국이 역동적으로 발전한 시기였으며, 한국의 제조업은 이 신흥경제국의 발전에 올라타 글로벌 기업으로 변신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천운(天運)도 따랐다. 그러나 천운이라고 대가가 없는 것은 아니다. 천운으로 IMF 위기를 극복하였기 때문에 공정한 경쟁질서와 공정한 기회배분의 체계를 만들 기회를 놓친 것이다.

낙후된 제도에 대한 수치심과 분노감, 그것이 한국의 미래를 열 힘이다.

이제 변화할 수밖에 없다. 중국발 도전이 거세다. 그 파고를 넘기 위해서는 공정한 경쟁 질서를 마련하여 한국을 제조업 역량 강화가 지속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는 진지로 만들지 않으면 안된다. 이제 폭넓은 성장의 기회로 기회배분의 불공정성을 무마할 수 있는 시대는 종언을 고했다. 사회 어디에나 상층은 가득 찼다. 성장의 사다리는 없고, 있더라도 올라갈 자리가 너무 부족하다. 이대로 가면 저성장을 배경으로 한 사회적 갈등의 증폭이 폭넓은 성장의 기회를 대신할 것이다. 해법은 공정한 기회배분을 기초로 한 새로운 포용적 성장체계를 구축하는 수밖에 없다.

청와대발 다양한 제도개혁론이 나오고는 있지만, 그것은 본질적 한계를 갖는다. 한국의 제도적 취약점의 핵심은 관치경제이기 때문이며, 그것의 현존형태는 다양한 관피아들이다. 어떻게 제도개혁은 가능할 것인가? 다행인 점은 한국은 이와 같은 취약한 제도에 걸맞지 않는 일류 제조업 역량과 탁월한 인재들이 있다. 사실 세월호 참사, 정윤회 문서 유출 사건, 조현아 땅콩 회항 사건 등이 한국 사회를 충격 속에 몰아넣을 수 있었던 것은 일류 제조업 역량과 탁월한 인재에도 불구하고 이 정도 수준의 허술한 제도적 체계가 온존하고 있다는 점에 대한 수치심과 분노감 때문이다.

바로 이 때문에 한국의 제도개혁은 가능하다. 제도개혁의 근원적 힘은 청와대발 다양한 제도개혁론이 아니라, 바로 허술한 제도에 대해 수치심과 분노감을 느끼는 사회적 역량이다. 그리고 이 수치심과 분노감을 조직적 힘으로 바꿀 수 있는 새로운 소통의 창으로서 사회 미디어관계망이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다. 이와 같은 변화에 관치경제와 그것의 현존형태인 다양한 관피아들이 저항하거나 문제의 본질을 왜곡한다면, 그것은 이제 대의적 민주주의의 위기와 리더십의 위기로 증폭될 것이다.

이제 공정하지 않은 경쟁질서와 공정하지 않은 기회배분의 체계를 당연시 하지 않으면, 한국 경제의 많은 치부들이 들어날 것이다. 세월호 참사, 정윤회 문서 유출 사건, 조현아 땅콩 회항 사건 등은 이러한 치부들에 대한 사회적 자각체계를 만들었다. 이 치부를 외면하지 않고 직시하며, 그 속에서 수치심이 생기고, 분노감을 느끼고, 그것을 극복하기 위한 새로운 소통의 창을 만들고, 그 힘으로 제도변화를 일으킨다면, 한국의 새로운 30년이 시작될 것이다. 공정한 경쟁질서와 공정한 기회배분의 체계 속에서 일류 제조업 역량을 가진 기업들과 탁월한 인재들이 자신의 역량을 맘껏 뽐내는 세계를 생각해 보자. 바로 그 속에 한국의 도약이 있고 한국의 미래가 있다. 그렇게 하기 위해 우선 하여야 할 것은 공정하지 않은 경쟁질서와 공정하지 않은 기회배분의 체계를 찾아내고 고발하고 사회문제화하는 선량한 감시자로서 한국사람들이 다시 태어나는 것이다. 2015년이 바로 그런 사회로 한국이 변화되는 한 해가 되기를 기대해 본다.

본 기사는 월간지 <이코노미21> 1월호에 게재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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