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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사고, 다른 보상
같은 사고, 다른 보상
  • 원종욱 본지 편집기획위원, 연대의대 교수
  • 승인 2015.12.23 13:3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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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근 길 사고 산재 보상, 공무원은 보상돼지만 일반인은 안돼…통근 버스에서 사고나면 일반인도 산재 보상

김공무씨와 박민간씨는 52세로 동갑이다. 김씨는 5급공무원이고, 박씨는 중견기업의 부장이다. 두 사람은 같은 아파트에 살아 출근 시간에 자주 만난다.

이들이 사는 아파트는 가파른 언덕 위에 있다. 그날도 폭설로 언덕이 상당히 미끄러웠다. 김씨가 미끄러지면서 크게 엉덩방아를 찧었다. 뒤에서 내려가던 박씨가 김씨를 부축하려다 같이 넘어지면서 10여 미터를 굴렀다. 둘은 움직일 수가 없었고, 결국 119에 실려서 인근 병원에 입원하였다.

두 사람은 똑같이 허리뼈가 무너지는 압박골절이 있었고, 추가적으로 김씨는 우측 손목이, 박씨는 좌측 갈비뼈가 부러졌다. 같은 병실에 입원한 두 사람은 서로 이것저것 걱정을 하면서 많은 이야기를 했다. 그런데 이야기를 하던 중 둘의 처지가 너무 달랐다.

똑같이 출근길에 다쳤지만 공무원 김씨는 공무상질병으로 처리되어 치료비와 급여가 모두 나오는 반면에 민간인 박씨는 회사에서 치료비 지원은 없고, 월급만 3개월 동안 기본급의 60%를 받는다는 것이다. 박씨가 다니는 회사는 나름 괜찮은 중견기업이라 자부심이 있었는데, 이번에 회사의 병가 규정을 알고는 크게 실망했다.

박씨는 출근 길에 다친 것이니까 자기도 공무원 김씨처럼 산재로 보상 받기를 원했지만 규정상 그럴 수 없다는 말을 들었다.

박씨는 참 억울하다. 똑같이 출근 길에 다쳤는데, 공무원인 김씨는 산재로 보상을 받고, 민간인인 자신은 산재 보상을 받지 못하는 것이 참 이상하고, 억울하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박민간씨가 산재로 보상 받을 수는 없다. 참으로 안타깝고 분한 일이지만 현재 법체계에서는 불가능하다.

그러면 공무원 김씨는 어떻게 산재보상을 받을 수 있었을까?

우리나라 산재보험법은 박씨처럼 출근 길에 다친 것을 산재로 보상하지 않는다. 반면에 공무원은 산재보험법 대신 공무원연금법을 적용 받는데, 여기서는 출퇴근 시에 다친 것을 공무상재해로 인정하여 보상한다. 공무원 뿐 아니라 군인이나 사립학교 교직원의 경우도 출퇴근 시 다친 것을 공무상재해로 보상 받을 수 있다.

통근 재해가 왜 산재로 인정받지 못하는 것일까?

▲ 원종욱 연대의대 교수

산재 보상은 사업주의 지배관리 하에 있을 때 발생한 것을 기본적인 전제로 하고 있다. 이 말은 사업주가 근로자를 관리할 책임이 있을 때 발생한 재해를 보상한다는 의미다. 그런데 출퇴근 중에 교통 수단이나 경로 등은 전적으로 개인적인 선택에 달려 있다. 사업주가 관리하는 영역이 아니다. 걷거나 자전거를 타고, 대중교통을 이용하거나 자가용으로 출근하는 것을 모두 자기 마음대로 결정할 수 있다. 회사에서 이래라 저래라 할 수 없다. 이 과정은 사업주가 근로자를 관리할 수도 없고, 관리할 책임도 없기 때문에 산재 보상 대상이 아니다.

회사에서 통근 버스를 운영하면 어떤가? 이 버스를 타고 난 이후 버스 운행은 전적으로 회사의 책임이다. 버스를 타고 있는 근로자들에 대한 안전도 회사 책임이다. 그래서 회사에서 제공한 통근 버스를 타고 가던 중 사고가 나면 산재로 보상 받을 수 있다.

회사에서 일하기 위해서는 출근하고 퇴근하는 것은 반드시 필요하다. 그렇기 때문에 많은 전문가들이 출퇴근 시 발생하는 재해도 산재로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실제로 OECD 국가들 가운데 다수의 국가에서 통근 재해를 산재로 인정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통근 재해를 산재로 인정하지 않는 현실적 문제는 무엇인가? 사업주의 지배관리 하에 있지 않다는 이유 외에도 통근 재해를 산재로 인정하지 못하는 현실적인 문제들 중 가장 큰 이유는 재정 문제이다.

2010년 전체 산재 중에서 통근재해가 차지하는 비중이 독일은 22.5%이며, 일본 10.3%이다. 우리나라는 전체 교통사고 중 출퇴근 길에 발생하는 것의 비중이 약 38%로 독일이나 일본보다 낮다. 하지만 전체 교통사고 발생이 높기 때문에 출퇴근 중 발생하는 사고 자체는 독일이나 일본보다 더 높을 것이다. 독일이나 일본의 예를 보면 전체 산재의 10% 내지 20%가 통근 재해이기 때문에 우리나라에서도 이 정도의 재정부담이 필요할 것으로 보고 있다. 재정 부담이 어렵다고 해도 꼭 필요한 일은 해야 한다.

대부분 출퇴근 사고는 자동차 사고와 관련이 있기 때문에 자동차보험과 보상 관계를 잘 정리하면 재정 부담이 줄어들 수 있다. 또한 우리나라 산재 발생률이 점차 감소하고 있어서 산재보험의 지출도 감소할 것으로 추정된다. 통근 재해를 산재로 인정하면 산재보험 재정 부담이 증가하지만 감당하지 못할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공무원이나 군인, 사립학교 교직원뿐만 아니라 통근버스를 제공받는 대기업 근로자들은 출퇴근 시에 발생하는 사고를 산재로 보상 받을 수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중소기업 근로자들은 출퇴근 중에 다쳐도 산재 보상을 받지 못한다. 사회 경제적으로 더 돌보아야 할 사람들은 통근 재해에 대해 보상을 받지 못하고, 상대적으로 우월한 위치에 있는 사람들만 보상을 받는 것이 우리나라의 현실이다.

다행이 통근 재해에 대해서 산재 보상을 인정하자는 목소리가 점차 커지고 있다. 2013년에는 통근재해를 인정하지 않는 산재보험법이 위헌이라는 소송에 대해서 헌법재판관 9명 중 5명이 위헌 판정을 했다. 대법관 6명 이상이 찬성해야 위헌으로 판결된다. 위헌 판결에 한 명의 대법관이 부족하다. 단 한 명의 대법관만 의견을 달리하면 판결이 바뀔 수 있다.

올해 초 고용노동부는 대통령 업무보고에서 출퇴근시 발생하는 사고를 산재로 보상하는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했다. 실제 실시하기까지 여러 어려움이 있겠지만 반드시 해야만 하는 일이다. 사회복지를 중요시하는 시대적 흐름을 고려할 때 이는 당연한 결정이라고 생각한다.

공무원과 대기업 근로자는 보상 받고, 중소기업 근로자들은 보상 받지 못하는 차별을 언제까지 보고 있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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