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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가보고 싶은 나라 네팔
다시 가보고 싶은 나라 네팔
  • 원송현 여행전문칼럼리스트
  • 승인 2015.12.23 14:1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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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여행 중 우연히 만난 현지인의 칭찬일색에 가게 된 곳, 네팔.

몇 년 전 우연히 케이블 방송에서 ‘나인, 아홉 번의 시간여행’이라는 기획방송을 떠올리며 방송에 비춰지던 드넓은 설원, 포카라의 태양, 반짝이던 호수를 생각하며 걱정 반, 호기심 반으로 무작정 네팔로 출발했습니다.

인도에서 가방을 잃어버린 탓에 짐이라고는 입고 있는 옷과 조그만 가방에 있던 카메라, 휴대전화, 여권, 현금이 전부였습니다.

네팔을 어떻게 가야하나 고민하던 찰나에 인도 여행 중 알게 된 친구의 도움으로 같이 국경을 넘을 여행객들을 섭외했습니다.

기차를 타고 이동했지만 도착예정시간보다 서너시간 늦게 도착해 국경에 도착할 때는 이른 새벽이었습니다.

국경에 다다르자 서부영화에서나 보던 ‘걸어서 넘어가는 국경’이 눈앞에 펼쳐졌습니다. 우리나라에선 상상만으로 존재하던, 간단한 일을 우리는 하지 못하는 현실이 아쉬웠죠.

조그만 구멍가게처럼 자리잡고 있는 국경에 있는 인도출입국사무소에 들러 출입국 신고를 하고, 근처에 있는 네팔 출입국사무소에서 비자를 받았습니다.

TIP 1. 네팔비자

인도비자는 한국에서 준비했지만 네팔비자는 준비되지 않은 탓에 국경을 넘을 때 받아야 했습니다.

네팔 비자는 15일, 30일, 90일 일정으로 단기 비자를 발급하고 있고 네팔출입국 사무소에서 소정의 돈과 사진, 서류를 제출하면 바로 비자를 발급받을 수 있습니다.

해외여행을 할 때는 비자나 여권 복사본을 챙기는 것이 좋습니다. 여권이나 비자에 사용한 사진도 챙겨두면 여권을 분실하거나 다른 준비서류가 필요할 때 쓰임새가 있습니다.

네팔 국경을 넘을 때 인도 루피를 다량 소지하면 벌금을 물을 수 있다고 들었는데 그렇지 않았습니다. 돈은 네팔국경 환전소에서 네팔 루피로 바꾸면 됩니다.

필자는 여행할 때 민간 환전소보다 은행을 이용합니다. 환전수수료가 제각각인 민간 환전소보다 은행은 고시환율이면서 수수료도 낮은 탓에 은행을 애용합니다.

네팔국경을 넘어 버스를 타고 부처님이 태어나신 룸비니로 이동했습니다.

버스라고 해서 포장도로의 안락한 의자는 어디에도 없었습니다.

덜컹덜컹, 흙먼지 흩날리며 달리는 버스지만 밖엔 넓은 땅과 노란 유채꽃이 가득했습니다. 열심히 일하는 농부와 집을 짓는 노동자들이 낯설지만은 않았습니다.

몇 시간 달려 도착한 룸비니에서 저는 세계 각국에서 지은 사찰들 중 우리나라 대성석가사에서 하루 묵기로 했습니다.

TIP 2. 룸비니 사찰

룸비니엔 여러 나라의 사찰이 있으며 대성석가사는 한국 사찰입니다.

한국 여행객들이나 한국 스님들을 위해 숙식을 제공하죠

룸비니 지역은 숙박시설이 변변치 않기 때문에 대성석가사에서 하룻밤 신세지는 것도 재미죠. 맛좋은 음식과 포근한 숙박을 생각하시면 오산입니다. 배를 채우고 몸을 누일 수 있는 것만으로도 감사해야합니다.

대성석가사는 시주나 후원으로 운영됩니다. 한때는 숙식 모두 무료였다고 하나 지금은 약 200루피 정도의 시주를 받고 있습니다.

대성석가사는 아직 완성된 사찰이 아니라 건설 중인 사찰입니다.

부처님 탄생지 주변은 공원이 많습니다.

입구에 매표소와 소지품/신발보관소가 있으면 네팔인과 스님들을 제외하고는 입장료를 받습니다. 그리고 신발을 벗고 들어가야 합니다.

각국에서 온 승려들이 염주를 돌리며 수행하시는 숙연함에 저도 차분해지더군요.

부처님께서 태어나셨다는 마이데비 사원 성지는 사진촬영이 금지되어있고 내부에는 기도 중이신 승려들과 관광객들이 조용한 가운데 섞여 있었습니다.

저도 경건한 마음으로 부처님께 삼배를 올렸습니다.

숙소로 들어가려던 찰나에 한국에서 오신 스님을 우연히 만나 남은 여행일정을 함께하기로 했습니다.

룸비니에서 하룻밤을 보낸 뒤 버스를 타려고 정류장을 찾았지만 보이지 않았습니다. 차를 타고 몇 시간을 이동해야해 버스를 타려고 했지만 도로에는 표지판이나 매표소가 없었습니다.

네팔의 버스는 1950년대 우리나라 버스를 떠올리게 하는데, 버스 지붕위에 짐을 한아름 싣고, 사람들이 그 위에 올라타고 창문틀을 손잡이 삼아 매달려 타는 스릴감은 경험해보지 않고는 말로 표현하기 힘들 정도였습니다.

저는 다행히도 네팔 현지인들의 배려덕분에 자리에 앉아서 올 수 있었지만 괜히 자리를 뺏은 것 같아 미안해지더군요.

자리를 비켜주던 네팔사람들은 그저 외국사람을 신기하게 바라보며 웃어주는 모습을 보고 ‘이 사람들, 엄청 순수하구나’라고 느꼈습니다.

몇 시간의 이동거리를 달렸을까, 중간에 휴게소는커녕 제대로 된 화장실도 없었습니다. 버스가 잠깐 쉬는 시간에 요령껏 볼일을 후다닥 해치워야했죠

이윽고 늦은 밤이 돼서야 포카라에 도착했습니다. 배낭을 멘 낯선이의 방문에 흥정하려 모여드는 릭샤꾼들과 한바탕 실랑이를 하다가 일단 씻고 쉬어야겠다는 생각에 호숫가 근처 숙소를 잡고 들어갔습니다.

이른 새벽 포카라 새벽녘 포카라호수로 나가보니 사진으로만 보던 풍경이 제 눈앞에 펼쳐??있었습니다.

페와호수를 둘러싸고 도로와 주택, 상가가 형성되다 보니 아름다움은 이루 말할 수 없었습니다. 주위를 둘러보니 한 켠에 자전거를 빌려주는 청년이 있기에 한 시간을 빌려 포카라를 둘러봤습니다. 햇빛을 한 몸에 받으며 걷는 걸음도 좋겠지만 따듯한 햇살과 살랑 피부를 어루만져주는 바람에 “아 이런게 행복이구나”라는 느낌마저 들었습니다.

TIP 3. 볼만한 것들

네팔은 천해의 자연이 머무는 곳이다 보니 풍광을 즐길 수 있는 레포츠와 체험할 것들이 많이 있답니다. 경비행기. 패러글라이딩 등 세계 3대 패러글라이딩의 명소이기도 합니다.

가장 추천할만한 숙소는 아보카도 호텔. 네팔인이 운영하시는 숙소. 사장님이 한국에서 근로자로 몇 년 지낸 덕에 한국말이 아주 유창하십니다. 한국음식도 판매합니다.

또한 이곳은 경비행기 조종사들이 잘 묵는 곳이어서 저녁이면 조촐한 술판이 벌어지기도 합니다. 한국인 배낭객들에게 아주 유명한 숙소입니다.

또한 각종 레포츠며 관광안내나 예약 등산정보 등을 쉽게 얻을 수 있습니다.

추천음식점은 산촌다람쥐. 한국인이 운영하는 한식당.

그저 딱 중년의 욕심 없는 한국 아저씨 모습으로 한국 배낭객에게 밥을 팝니다. 각종 정보와 함께 여러 가지를 잘 챙겨주는 것도 모자라 고산병 약까지 다 내어줍니다. 거기서 먹었던 닭백숙과 닭죽은 잊을 수가 없네요.

소비따네. 네팔인 운영 한국음식점. 한국인 배낭객에게 유명한 맛집입니다. 음식값이 상당히 저렴합니다. 한국 배낭객들이 손으로 적은 메뉴판도 인상적입니다. 네팔식 막걸리가 있어서 신기했던 곳입니다.

등산용품을 준비하지 못한 배낭객에겐 렌탈도 해줍니다.

아침에 산촌다람쥐에 입산할 일행이 모여 인원에 맞게 준비된 택시에 나누어 타고 하늘과 맞닿은 그곳을 향해 달려갔습니다.

항상 다큐에서 볼 수 있었던 풍경이지만 그들의 모습이 참 낯설었습니다.

운동과 담을 쌓았던 저는 처음부터 숨이 차올랐습니다.

TIP 4. 히말라야산 등정

히말라야산은 우리네 동네 뒷산, 설악산, 지리산 등과는 전혀 다릅니다.

산세도 험하고 눈도 적지 않습니다. 고산병 위험도 있으니 산행은 준비를 잘 해야합니다. 그래서 가이드나 포터가 필요합니다.

가이드는 길만 안내하고 짐을 들어주지 않습니다.

대신 포터가 짐꾼의 역할을 합니다. 높은 곳이라면 가이드와 포터가 필요합니다.

가이드를 구하신다면 네팔정부의 가이드라이센스를 확인해야 합니다.

▲ 푼힐전망대에서 바라본 일출 모습

필자는 푼힐전망대 3210m 고지로 향해 발걸음을 옮깁니다.

필자, 스님, 여학생 두 명, 이렇게 우리는 일행삼아 함께 등산여정을 시작합니다.

처음 시작은 흙먼지 풀풀 날리는 언덕길을 오릅니다.

이제 4,5살 남짓한 고사리 손으로 망치를 잡고 쪼개는 모습을 보노라니 가슴이 아픕니다. 주머니에 있던 사탕을 주고 다시 길을 떠납니다.

중간중간 등반객들을 위한 휴게소와 식당이 준비가 되어있고 식사나 간식으로 지친 몸을 달래며 다시금 떠나봅니다.

가벼웠던 가방이 왜 그리도 천근만근이 되는지,

산은 언제나 일찍 해가 떨어짐을 감안하여 움직여야 합니다.

자칫 어둠속에 미아가 되지 않도록.

중턱즈음에 산장이 많이 있는데 거의 대부분 가이드나 포터가 추천을 하기 마련입니다.

아마 일정금액 소개금액을 받기도 하는 듯 했습니다. 잘 살피고 선택하세요^^

Tip 네팔의 전기

네팔은 아직 개발이나 발전이 되지 않은 거의 자연의 모습 그대로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그렇다보니 전력은 거의 상상할 수 없으며 전력수급이 원활하지 못하므로 공장의 가동이 불가능 합니다. 그에 따라 공산품의 금액이 상상이상으로 비쌉니다.

기본적인 전기가 원활치 않다보니 난방이나 냉방은 생각하기 어렵습니다.

하물며 핸드폰 충전마저도 어려운 실정입니다.

산장에서 맞이하는 아침은 그 어떤 그림도 비유할 수 없는 아름다움이었습니다.

시시각각 부는 바람에 풍경이 바뀌고. 구름 그림자의 모양도 변하니 ‘움직이는 그림같은 사진’이라는 말이 떠올랐습니다.

어디선가 어렴풋이 들려오는 노랫소리를 따라 스님과 그곳을 찾아갔습니다.

노래가 들려오던 곳은 낡은 건물로 된 학교였습니다

스님이 제안하시더군요. 여유 있으면 아이들 연필살 돈 좀 후원하라구요.

큰 돈은 아니지만 건네고 나니 왠지 뿌듯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고양이 세수를 하고 다시 산을 오르는데 이젠 풍경은 눈에 들어오지 않고 발끝만 보입니다. 한참 올라가니 설산이 나왔습니다. 그곳에서 아무데서나 맛볼 수 없는 청량한 히말라야의 눈 녹은 물을 먹고 왔습니다.

전망대오르기 직전 마지막 산장은 7성급 호텔보다도 아름다운 장소입니다.

그날 밤 산장에서 처음 맛본 네팔맥주. 지금 생각해봐도 어떤 맥주보다 깨끗하고 맛있었습니다. 기회가 되신다면 에베레스트 맥주를 꼭 드셔보시길 권해봅니다.

그렇게 하루하루 3박을 하고 마지막 고지 푼힐 전망대를 향하는 이른 새벽.

일출시간에 맞춰 일어나 나갈 채비를 했습니다.

▲ 히말리야 만년설 모습

각각의 산장에서 올라오는 여행객들의 랜턴 불빛이 줄을 잇고 그 불빛을 따라 마지막 산행을 시작합니다. 두어시간쯤 올라가자 몇 일전까지만 해도 없었다던 전망대 매표소가 나왔습니다. 더욱 웃긴 것은 일출을 보고 내려오니 철수를 했습니다. 사기꾼들이었던 거죠

그렇게 맞이한 하늘아래 첫 땅 네팔에서 3,210m 전망대에 올라서야 내가 어디에 와있는지 실감이 났습니다. 세상에 주인공이 된 기분이었습니다.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아! 이 느낌에 산악인들이 더 높은 곳을 향해 발걸음을 옮기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셀카를 찍어대자 스님께 혼이 났습니다.

스님은 “세상 그 어떤 카메라보다 좋은 눈과 마음으로 담으셔야지 그 사진이 나중에 시간이 지나서 남을 것이라고 생각하시나요”라고 말씀해 괜히 숙연해졌습니다.

하산할 땐 봄을 재촉하는 눈과 얼음이 제 발을 밀어내더군요.

내려오는 길에 산장에 하루 더 몸을 뉘이고 급하게 내려와 택시를 잡아타고 그동안 함께한 포터들과 인사를 나눴습니다.

산에 사는 사람들은 산소도 부족하고 고산병에 시달리다보니 평균수명이 짧다고 합니다. 45세에서 50세 정도가 평균수명이고 또 눈에 반사된 빛에 피부가 많이 상하기 때문에 훨씬 나이 들어보이고 병도 많다고 합니다.

네팔을 찾는다면 그들에게 친절히 대해 주길 바랍니다.

다음날 아침 비행기를 타기 위해 네팔의 수도 카트만두로 이동했습니다. 카트만두에 짐을 풀고 시내 구경을 했습니다. 카트만두는 네팔의 수도로 다른 도시들보다 개발이 잘 되어 있었다.

개발이라고 해봐야 상점과 숙박 편의시설들이 더 잘 발달해 있다는 정도.

1시간 정도의 비행이 마무리 되고 네팔음식을 먹었는데 느끼하지도 않았고 면요리와 모모(만두)도 참 맛있었습니다.

갑자기 변경된 여행일정이라 항공권을 바꾸지 못해 다시 인도로 돌아가야 했습니다.

다시 육로로 가기엔 시간이 너무 걸려 비행기로 이동을 하였습니다.

또 네팔에서 특이한 점이 있었는데, 비행기 탑승 시, 남자와 여자가 따로 줄을 서서 소지품 검사를 하고 탑승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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