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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렉시트는 유럽연합 해체의 서막인가?영국인들은 왜 브렉시트를 선택했으며, 유럽연합은 이제 어떻게 바뀔 것인가?
박이택 본지 편집기획위원, 고려대 연구교수  |  media@economy21.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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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6.09.22  23:2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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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렉시트① 브렉시트 의미와 영향>

브렉시트는 세계경제를 어떻게 바꿀 것인가?

2016년 6월 23일 영국이 유럽연합의 일원으로 남아야 하는가 아니면 유럽연합을 떠나야 하는가?(Should the United Kingdom remain a member of the European Union or leave the European Union?)라는 물음이 영국인들에게 던져졌고, 영국인의 다수는 유럽연합을 떠나는 것을 선택했다.

2014년 현재 EU의 순국민소득은 경상 달러로 15조 3913억 달러이어서, 세계 순국민소득의 23.6%를 차지하고 있어, 미국에 비해 3% 더 크며, 중국에 비해 76% 더 크다. 그렇지만, 세계 경제에서 그 존재감은 미국이나 중국에 미치지 못한다. 사람들은 통상 G2를 미국과 중국을 지칭하기 위해 쓸 뿐, 유럽연합을 G1으로도 G2로도 보지 않는다. 그리고 유럽연합도 그것에 대해 크게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2014년 현재 영국의 순국민소득은 경상 달러로 2조 5204억 달러이어서, EU의 16.4%를 차지하여, 영국을 뺀 나머지 유럽 연합 27개국의 순국민소득에 훨씬 미치지 못한다. 

브렉시트는 영국과 유럽연합에게는 매우 큰 사건이지만, 세계 경제에 미칠 영향은 생각보다 클 것 같지는 않다. 2007∼8년의 미국발 금융위기도, 그리고 그에 뒤이은 유럽의 재정위기도 아직 완전히 해결되지 않은 여진 속에 살고 있지만, 이 충격들이 세계 경제에 끼친 영향은 크지 않았는데, 우리는 현재 생각보다 다극화된 세계 속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브렉시트는 2007∼8년 미국발 금융위기보다는 훨씬 작은 충격일 뿐이다. 

그렇다고 브렉시트가 찻잔 속의 태풍에 머무르는 것은 아니다. 브렉시트는 장기적으로 세계경제의 중력장을 바꾸어 놓을 것이다. 영국을 제외한 유럽 연합 27개국의 2014년 순국민소득은 세계 순국민소득의 19.7%로 줄어들고, 이제 미국보다 14% 더 적어진다. 세계 경제에서 유럽연합의 존재감은 더 적어질 것이며, 경제의 무게 중심은 북미와 아시아로 더 이동할 것이다. 영국은 유럽 내의 금융거래의 중심으로 기능하였기 때문에, 유럽으로부터 분리될 때 그 충격은 상당히 클 수 있는데, 그 충격파는 이미 예상하는 바이기 때문에 잘 관리될 것이지만, 이후 The City of London의 위용을 유지할 수 있을 것 같지는 않다. 그렇다면 The City의 위용이 줄어든 영국의 미래를 구상하여야 하지만, 그 미래를 설계하기는 쉽지 않다. 그래서 브렉시트는 영국과 유럽의 미래를 더 암울하게 만들었다. 그렇지만, 우리는 이미 상당히 다극화된 세계 속에 살고 있기 때문에, 영국과 유럽의 미래가 암울하다고 세계 경제가 암울해 질 것이라 전망할 필요는 없다. 

영국인들은 왜 브렉시트를 택했는가?

브렉시트가 세계인의 이목을 끌었던 것은 그것이 미칠 세계적인 파장이라기보다는 그 선택이 내포한 비(非)경제성이었다. 영국은 1973년 EC에 가맹했으며, 1975년에는 이에 대한 논란을 종식시키기 위해 영국이 유럽 공동체에 머물러야 한다고 생각하는가?(Do you think the UK should stay in the European Community (Common Market)?)라는 질문을 영국인에게 던졌고 당시 영국인들은 유럽 공동체에 잔류하자는 쪽에 몰표를 던졌다. 

당시 영국은 유럽의 병자였는데, 43년이 지난 현재, 영국은 비록 19세기의 위용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병자의 신세에서 벗어나 상당한 존재감을 가지게 되었다. 영국의 유명한 경제사가 Crafts는 이와 같은 영국의 변신에 유럽 공동체의 일원이었다는 것이 기여했다고 평가한다(Nicholas Crafts. 2016. “West European economic integration since 1950.” Harald Badinger and Volker Nitsch eds., Routledge Handbook of the Economics of European Integration). 뿐만 아니라, EU에 머무는 것과 떠나는 것 중 어느 것이 영국의 경제성장에 좋은가를 분석한 연구들도 대체로 EU에 머무는 것이 이득이라는 결과를 얻는다. 적어도 경제적인 측면만을 본다면, 유럽연합에 남는 것이 영국인에게 현명한 선택으로 보인다. 그러나 영국인들은 브렉시트를 선택했다. 왜 영국인들은 브렉시트를 선택한 것인가?

영국인에게 주권의 가치란 무엇인가?

영국인들은 유럽연합의 일원으로 있음으로써 얻게 되는 경제적 이득 이외에 유럽연합에 의해 제약당한 주권의 가치도 평가했다. 영국인들이 주권의 가치를 높게 평가하게 되는 정치적 기각 변동은 이미 2010년 이전부터 진행되고 있었다. 

영국은 보수당과 노동당 양당 정치체제였는데, 2010년 총선거에서 이 구도가 붕괴되었다. 자유민주당과 영국독립당이 선전을 한 것이다. 보수당은 단독으로는 과반을 확립할 수 없어서, 자유민주당과 연립정권을 수립해야만 했다. 영국독립당은 EU이탈을 정강으로 한 정당인데, 2014년 5월 유럽의회선거에서는 26.8%를 얻어 영국에서 제1당으로 약진했다. 비록 2015년 총선거에는 보수당이 과반을 획득하여 단독 정부를 수립하기는 하였지만, 보수당 내의 EU회의파 세력도 무시할 수 없었다.

캐머런 총리는 이미 2013년 1월에 브렉시트를 묻는 국민투표를 하겠다고 선언했는데, 2015년 11월 10일에는 브렉시트 국민투표를 배수진으로 하여 EU와의 개혁 교섭을 개시하여, 2016년 2월 19일 합의에 도달했다. 캐머런은 EU로부터 얻어낸 성과를 잘 선전하여 국민들로부터 EU 잔류에 대한 지지를 얻어내면, 제3 정당들이나 보수당 내 EU회의파의 존재 속에서 자신의 리더십을 확립할 수 있다고 보았다. 그러나 캐머런 총리의 뜻은 이루어지지 않았고, 국민투표는 그의 사임으로 연결되었으며, 브렉시트를 추진할 새로운 리더쉽으로 EU 잔류파였던 메이가 총리에 취임했다. 

캐머런의 의도는 왜 실현되지 않았는가? 여기에는 민주주의의 셈법이 존재한다. 문제는 유럽연합에 남아 얻게 되는 이득이 떠나서 얻게 되는 이득보다 큰가가 아니라, 유럽연합에 남는 것이 더 낮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유럽연합을 떠나는 것이 더 낮다고 생각하는 사람보다 더 많은가이다. 성장의 이득을 다수가 향유되는 세계에서 두 질문의 답은 같아지겠지만, 성장의 이득을 소수가 독점하는 세계에서 두 질문의 답은 달라질 수 있다. 

양극화 시대 이탈할 수 없는 사람들이 주권을 호출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브렉시트에서 호출된 주권은 유럽연합의 전체주의로부터 영국의 가치들을 지키는 측면도 있지만, 신고립주의라는 어두운 그림자를 동반한 것이라 보아야 할 것이다. 

유럽연합은 왜 영국인의 주권은 제약하였는가?

그러나 브렉시트에 대한 비난의 화살은 오로지 영국을 향해야만 하는가? 유럽에게는 영국이 브렉시트를 대상으로 투표를 하게 한 책임은 없는지 물어볼 필요가 있는데, 이것은 브렉시트 이후 유럽연합의 난제를 풀어나갈 리더십이 유럽연합에 있는가, 그리고 영국을 뒤이은 이탈자들이 추가로 나와 유럽연합의 해체로 이어질 수 있는 사태를 관리할 능력이 있는가라는 문제와 결합되어 있기 때문이다. 

사실 변화한 것은 영국만이 아니었다. 영국이 가입했을 당시의 유럽공동체(EC)와 비교할 때 현재 유럽연합(EU)는 매우 달라졌다. 따라서 이번 브렉시트에 대한 투표의 핵심 주제는 유럽연합에 대한 영국의 변심이 아니라, 변화된 유럽연합을 영국인들이 수용할 것인가였다. 

그렇다면 유럽연합은 어떻게 달라진 것인가? EU는 제1차 세계대전과 제2차 세계대전을 경험한 후 미국과 소련이라는 양대 강국 속에 부흥조차 기대하기 어려웠던 시절 유럽이 꾸었던 꿈이었으며, 그 기원은 1952년 유럽석탄철강공동체(ECSC)까지 거슬러 올라가지만, 직접적으로는 1993년 마스트리히트조약에 의해 출범했다. 유럽 연합의 꿈의 기원이 1914년이고 그것이 실현된 시점이 1993년이라는 점에서 유럽연합은 단기 20세기(1914년-1991년)의 말에 이루어진 온전히 단기 20세기적 꿈이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러나 그 꿈이 이루어진 시기는 그것을 꿈꾸었던 시기와는 달라졌다. 유럽은 더 이상 부흥을 타진하는 상태가 아니었으며, 세계는 더 이상 동서 냉전의 구조를 가지고 있지 않았다. 유럽연합은 유럽의 변화된 정치 지도를 배경으로 냉전 시에 잃어버린 동유럽도 다시 품에 않고 새롭게 재구축되었다. 그러나 이것은 단순히 구성원 수의 증가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다. 기존 가입국은 서유럽국가였지만, 2004년 이후 새롭게 가입한 국가들은 동유럽 국가들이다. 동유럽 국가들도 체제 이행 이후에는 다른 후발공업국과 같이 고도성장을 구가하고 있었기 때문에, 역동적으로 성장하고 있는 지역을 품에 안았다는 긍정적인 측면도 있지만, 유럽연합은 단순한 공동시장이 아니었기 때문에 그와 같은 평가로 충분한 것은 아니다. 

동유럽을 품에 안은 유럽연합은 이제 비슷한 발전 수준을 가진 국가들 간의 수평적 결합이라는 성격보다는 상당한 정도의 발전 수준 차이를 가지는 국가들로 구성된 수직적 결합으로 변화된 것이다. 이와 같은 수직적 결합을 어떻게 동일한 시민권의 구조 속에 안착시킬 수 있을 것인가라는 문제는 아직 유럽연합이 걸어보지 않은 새로운 길이었으며, 수평적 결합을 전제로 구상된 유럽연합의 기본적 구조도 손보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동일한 시민권의 체계 속에 다양한 국가들을 끌어안기 위해서는 표준화가 필요하며, 그와 같은 표준화는 새로운 규제권력의 창출로 연결된다. 그에 의거하여 유럽연합 의회는 입법발의권을 갖고 유럽연합은 사실상의 초국가적인 법적 실체가 되는 방향으로 변해가고 있다. 유럽통화연맹(EMU)의 창설과 그 이후 유로존의 위기 등도 이를 추동하는 힘으로 작용하였다. 

이와 같은 변화를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 영국인들이 주권을 요구한 것은 이와 같은 변화를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측도 많아졌음을 의미한다. 그러나 브렉시트를 결정할 때 이것은 중요한 고려사항이었지만, 유일한 고려사항은 아니었다. 2013년 1월 23일 영국의 캐머런 총리는 유럽연합이 해결해야 될 3가지 과제를 제시하였는데, 그 중 ‘민주적인 설명책임의 결여’가 이와 관련된다고 할 수 있다. 캐머런은 이외에 ‘최근 20년 동안 세계경제에서 유럽의 지위 저하’와 ‘유로의 위기’도 들고 있다. 이제 이 두 가지 점에 대해서도 살펴보자. 

유럽연합은 통합의 이익을 낳고 있는가?

유럽연합이 순국민소득의 규모에 맞게 G1의 지위를 확보하고, 세계 경제의 선도자로의 비전을 제시하고 그 길을 가고 있다면 영국민들의 선택은 달라졌을 것이다. 유럽연합은 이와 같은 비전을 제시해 줄 수 있는가? 

제2차 세계대전의 폐허 속에서 유럽 각국은 하나의 공동체를 구성하여 규모의 경제를 구현하면 미국을 추급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했다. 이와 같은 목표가 관철되었는가를 알아보기 위해, 미국의 1인당 GDP에 비한 유럽연합이나 유로존 국가들의 1인당 GDP(2005년 고정 US$)의 추이를 살펴보자. 

1960년 현재 유로존 국가들의 1인당 GDP(2005년 고정 US$, 이하 모두 세계은행 자료임)는 미국의 60% 수준이었고, 현재 유럽연합 국가들의 1인당 GDP는 미국의 58%였다. 유로존 국가들의 소득은 유럽연합 국가들보다 높은데, 그것은 과거에도 그랬고, 현재에도 그렇다. 1960년에 유럽연합 국가들은 1인당 GDP 면에서 미국과 상당한 차이가 있었던 셈인데, 이와 같은 소득 격차는 후발성의 이득을 낳는다. 이후 유럽이 미국과의 격차를 줄인 것은 이와 같은 캐치업 효과가 발생하였기 때문이었다. 문제는 이와 같은 캐치업 효과가 1980년대 들어 소멸하였다는 점이다. 

유럽연합 국가들의 1인당 GDP는 1982년에는 미국의 68%까지 추격하였지만, 그 이후에는 다시 그 수준에 도달하지 못했으며, 2014년 현재에는 미국의 65%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 유로존 국가들의 1인당 GDP도 1982년에 79% 수준에 도달하고, 1991년에 78%라는 비근한 수준에 도달해 본 이후 계속 미국과의 격차는 더 벌어져서 2014년에는 70%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 1990년대 이후의 성과는 1993년 유럽연합의 출범이나 1999년 유럽통화연맹의 출범이 통합의 이득을 산출하였는지 의심하게 만든다. 왜 유럽연합이나 유럽통화연맹은 통합의 효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는가? 그것은 규모의 경제 이외의 다른 요인을 필요로 하며, 이와 같은 요인을 갖출 유럽의 리더십이 있는지 묻게 된다. 

   
▲ <그림 1> 유럽의 1인당 GDP/미국의 1인당 GDP의 추이

유럽연합 국가들간에 수렴 현상은 일어나고 있는가?

유로존 위기의 문제는 이질적인 국가들을 품에 안은 통화통합의 체계가 유지할 수 있는가라는 문제와 연결되어 있는데, 이를 본격적으로 다루기 이전에 우선 통화통합의 이득에 대해 살펴보자. 

통화통합의 이득은 명백하다. 우선 각국 간에 거래를 할 때 동일한 화폐를 사용하기 때문에 환전수수료가 들지 않고, 환율이 변동하지 않기 때문에 환위험이 없고, 외화수요에 대응하기 위해 가지고 있어야 할 외환보유고의 부담이 사라지고, 금융시장이 통합되어 규모의 경제를 향유할 수 있다는 점 등을 들 수 있다. 

그러나 통화통합에는 이득만이 있는 것은 아니다. 통화통합으로 각국은 자국의 상황에 걸맞는 통화정책을 독립적으로 수행할 수 없다. 즉 통화정책은 통화동맹에 가입한 모든 국가의 상황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긴축이나 팽창정책을 일률적으로 수행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각국에게 상이한 충격을 가져오는 비대칭적 충격이 발생했을 때 어떻게 대응하여야 하는가가 문제로 된다.

따라서 통화통합은 이와 같은 비대칭적 충격을 극복할 수 있는 지역에 한정하여 이루어지는 것이 바람직한데, 이와 같은 비대칭적 충격을 극복할 수 있는 지역인가를 판정하는 기준이 최적통화지역기준이다. 최적통화지역기준으로는 Mundell이 제안한 노동 이동성, Kenen이 제안한 다변화된 생산과 유사한 무역구조, McKinnon이 제안한 무역 개방성 등 다양한 기준들이 있는데, 이와 같은 기준들이 충족된다면 이것은 모두 지역 간 소득 수렴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작용할 것이다. 따라서 유럽연합 국가들 간에 소득 수렴이 진전되고 있었는가를 살펴보자. 

   
▲ <그림 2> 1인당 GDP에서 유럽연합 국가들 간의 변동계수

유럽연합의 구성원은 1995년 이전에 가입한 15개국(이하 EU15)과 2004년 이후에 가입한 13개국은 성격이 상당히 다르기 때문에, EU15와 EU28(현재 EU에 가입한 28개국)를 나누어 살펴보자. EU15 국가만을 보면, 1인당 GDP의 차이가 별로 크지 않아 낮은 변동계수(표준편차를 평균으로 나눈 값으로 어느 만큼 불평등하게 분포되어 있는가를 측정하는 지표)를 보이고 있는데, 1995년부터 증가하고 있다. 즉 EU15 국가 간에서는 소득의 발산이 일어나고 있는 셈이다. 한편, EU28 국가를 보면 변동계수는 더 크지만, 2000년대에 상당히 감소하고, 2008년 이후에는 별로 감소하지 않음을 보여준다. 새로 추가된 국가들은 2004년 이후에 신규로 가입하였기 때문에, EU 가입이 수렴을 강화하는 특성을 가지고 있는지는 잘 알기 어렵다는 점이다. 

수렴테스트는 초기 소득 수준과 이후 성장률간에 역상관관계가 있는가를 통해서도 고찰해 볼 수 있는데, 1995∼2014년에 대해 수렴테스트를 하면, EU28 국가는 소득이 더 낮을수록 성장률이 더 높아 수렴성을 보이지만, EU15 국가에 한정해서 보면, 그와 같은 수렴성은 보이지 않는다. 수렴의 동향은 2007∼8년 미국의 금융위기 이전과 이후에 양상이 달라졌을 수 있기 때문에, 두 기간으로 나누어 살펴본다. 

   
▲ <그림 3> 유럽연합 내의 수렴테스트: 1995∼2014년

1995∼2007년을 대상으로 하여 보면, 이후 가입할 동구권의 국가들도 다른 후발국과 마찬가지로 상당히 양호한 성장률을 보이고 있어서 이들을 포함한 EU28을 보면 수렴 현상이 보이지만, EU15개 국가에 한정해서 보면, 수렴 현상이 보이지 않는다. 유럽연합은 유로존을 만들 때 초기에는 최적통화지역기준을 만족하지 않더라도 통화통합이 이루어지면, 사후적으로 이와 같은 조건이 갖추어질 것이라는 내생성 이론에 부합하는 현상이 출현할 것이라 기대하고 있었지만, 이와 같은 현상은 발생하지 않은 것이다. 

   
▲ <그림 4> 유럽연합 내의 수렴테스트: 1995∼2007년

2007∼8년 미국의 금융위기는 최적통화지역기준을 만족하지 못하는 아니 오히려 최적통화지역기준에서 더 멀어지고 있던 유로존 국가들에게 비대칭적 충격으로 다가왔다. 그 결과 2007∼2014년 동안 EU15 국가들은 더욱 심하게 발산하게 된 셈이다. 남유럽 국가들에서의 재정위기와 독일의 나름의 강건한 경제 유지는 이와 같은 발산을 선명하게 보여주는 바였다. 물론 2004년 이후 새로 가입한 국가들을 포함한 EU28 국가를 보면 수렴의 경향이 보이지만, 새로 가입한 국가들의 성장률도 이전 시기에 비하여 상당히 떨어졌다. 

   
▲ <그림 5> 유럽연합 내의 수렴테스트: 2007∼2014년

유로존 국가들은 2007∼8년 금융위기를 이은 유럽의 재정위기를 거치며 비대칭적 충격에 더 취약한 상태로 남아 있게 된 셈이다. 그렇다면 이것을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은 무엇인가? 역사가 보여주는바 국가 간의 소득 수렴에 가장 큰 효과를 갖는 것은 자본이동이나 상품이동이 아니라 노동이동이었다. 따라서 노동시장의 통합을 보다 강화하는 조치를 취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노동시장의 통합으로 소득 수렴이 충분히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상품과 자본과 노동의 이동으로 해소되지 않는 비대칭적 충격을 해소할 최종적 수단은 재정적 재분배이다. 

유럽연합 국가들은 재정적 재분배라는 해법을 수용할 수 있는가?

유럽연합에 포함된 발전 수준이 다른 그리고 상이한 충격에 노출되어 있는 국가들을 동일한 통화권 아래, 그리고 동일한 시민권의 구조 아래 포섭하기 위해서는 재정적 재분배의 체계를 활용할 수 있는데, 과연 유럽연합의 국가들이 이와 같은 재정적 재분배의 체계를 수용할 자세가 되어 있는지, 그리고 이를 관철시킬 유럽적 리더십이 있는지가 문제이다. 

영국의 브렉시트에 대한 논의는 재정적 재분배 체계에 대한 순부담국의 반감을 드러낸 것이라 할 수 있는데, 이후 프랑스나 네덜란드, 덴마크에서도 영국과 같은 결과가 나오지 않는다고 단언하기는 어렵다. 이 나라들은 유럽연합을 지탱하는 핵심국가들이라는 점에서, 이들의 이탈은 유럽연합의 해체로 귀결될 수도 있다. 바로 이점 때문에, 우리는 유럽연합이 어떤 비전과 리더십을 가지고 이 난국에 대처해나가는지 주목해 보아야 한다. 

브렉시트의 역사적 파장은 이제 유럽연합에서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셈이다. 지난 세월 동안 유럽연합은 위기를 강화와 확대의 기회로 활용하여 왔는데, 유럽 연합은 이번에도 더욱 밀접해 진 연합으로 발전할 수 있는 새로운 카드를 제시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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