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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헌이 돌파구가 되려면?
개헌이 돌파구가 되려면?
  • 김선택 고려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 승인 2016.12.13 1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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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민주주의를 간신히 견인해온 여러 제도적·문화적 요소들 한계에 도달해…국민참여 보장되는 개헌절차 마련돼야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국회의 탄핵 가결 이후 향후 정치지형에 대한 논의가 다양하게 분출하고 있습니다. 특히 제왕적 대통령에 대한 비판 여론에 근거해 개헌을 주장하는 목소리가 커지는 양상입니다. <이코노미21>은 개헌 논의에 관한 단초를 제공하고자, 김선택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의 원고를 싣습니다. <이코노미21>은 동반성장연구소와 함께 ‘동반성장의 길’을 모색하는 기획연재를 게재하고 있으며, 이번 글은 제23회 동반성장포럼에서 주제 발표를 한 내용입니다. - 편집자 주

거시적인 관점으로부터

21세기의 시대적 분위기는 우울하다. 세계도, 한국도. 우선, 전쟁과 광기로 가득했던 20세기를 보내면서 고대해왔던 새로운 천년왕국이 뜻밖에도 ‘서구문명의 심장부에서 발생한 미증유의 테러’로 시작되었다. ‘문명의 충돌’에 대한 예언이 현실로 나타난 것처럼 규모에 있어서나 성격에 있어서나 유례가 없었던 테러였다. 이에 놀란 서구 국가들은 “제2의 테러공격 이후”는 없을지도 모른다는 실존 자체에 대한 두려움에 휩싸였다. “테러와의 전쟁”은 실제의 전쟁으로 확대되었고 이 시간까지도 전쟁이 테러를, 다시 테러가 전쟁을 낳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 테러의 직접적인 대상이 된 경험이 별로 없는 한국도 북한의 단속적인 (무력)도발 앞에서 실존적인 두려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두려움은 존재의 근원에 맞닿아있기 때문에 이성을 마비시키고 본능에 가까운 조건반사적인 반응을 야기한다. 21세기가 이성이 지배하는 세기가 되려면 이러한 두려움에서 비롯된 몰이성이야말로 현대문명국가가 극복해내야 하는 과제라는 것을 진지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다음으로, 20세기 후반기 내내 (정확히는 1974년부터 시작된) “민주화의 제3의 물결”이 세계의 대부분의 국가에 (최소한도 선거)민주주의를 가져왔고, 결국 “역사는 종말을 고하고” 21세기는 민주주의의 세기가 될 것이라는 점에 대하여 아무도 의문을 갖지 않게 되었었다. 그러나 오늘날 ‘권위주의로부터 민주주의로’라는 “이행의 패러다임”은 권위주의와 민주주의의 “하이브리드 체제의 일반화”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전환되고 있다. 심지어 “민주주의의 종말의 시작”을 목격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까지 제기되고 있다. 1987년 민주화에로의 이행에 성공한 한국도 민주주의가 공고화되는 단계에 이르지 못하고 있고, “민주주의의 후퇴” 과정에 있는 것이 아닌가 의심받기에 이르렀다. 민주주의가 더 이상의 발전 없이 침체에 빠진 것과 더불어 하이브리드 체제를 정상적 체제의 하나로 간주하게 된 것은 21세기가 민주주의를 당연히 전제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과제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미시적인 관점으로부터

한국의 경우, 고대로부터 20세기 초까지의 전제왕조체제, 다시 20세기 중반까지의 식민지체제, 또다시 광복 이후 독재체제와 군사정부체제로 이어져와 국민들이 민주주의체제를 체화할 기회를 얻지 못하였다. 1960년 4월부터 1961년 5월까지의 짧은 민주헌정의 경험을 제외하면, 1987년 6월의 민주항쟁으로 성립된 현행헌법체제가 존속해온 지난 28년간이 한반도에서 민주주의를 실시한 전 기간이다.

그런데 이 짧은 기간의 민주주의체제마저도 명실상부한 민주주의체제였는가 하고 묻는다면, 누구도 자신있게 그렇다고 말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국민직선으로 집권자를 정기적으로 교체함으로써 ‘최소(한의) 민주주의’ 내지 ‘선거민주주의’라는 카테고리에는 들어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국민이 주권자로서 국정의 주인이 되고 대통령을 비롯한 국가기관들이 공복(公僕)으로서 “국민을 섬기는” 실질적인 민주주의와는 거리가 있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이렇게 된 까닭은 형식적·제도적 측면에서 최소한의 민주적 장치만을 두고 있었을 뿐, 민주주의가 제대로 제도화되지도 못하였고, 민주주의의 실질적 운영을 비로소 가능하게 할 문화적 토양을 가꾸지도 못하였기 때문이다.

더 큰 문제는 그동안 – 최소한의 민주주의로서나마 – 한국 민주주의를 간신히 견인해온 여러 제도적·문화적 요소들이 이제는 한계에 도달한 것으로 보인다는 점이다. 유교문화와 군사문화의 기묘한 결합을 추동력으로 한 국가발전이 민주주의를 가능케 했다고 보는 견해(산업화가 민주화의 선행조건이 되었다는 견해)도 있으나, 어쨌든 그러한 수직적·위계적 문화와 이러한 문화를 지탱하는 제도적 장치들이 민주주의와 끝까지 함께 갈 수는 없는 일이다. 정치적 의사결정권력이 중앙으로 정부로, 경제적 의사결정권력이 재벌로 대기업으로 집중되고, 그러한 결정권자의 의사에 나머지 행위자들이 종속하는 방식은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시기에는 효율적일 수 있을지 모르나, 어느 정도 볼륨을 갖춘 정치·경제시스템에서는 민주적이기는 고사하고 효율성도 없는 방식이다.

분권(power sharing)과 협치(public governance)의 시대

한국 민주주의의 정치‘시장’도 경제‘시장’도 1인 내지 특정 세력이 독점하여 운영할만한 수준의 볼륨을 넘어선지 오래되었다. 뿐만 아니라 국민들이 세계최고의 교육열 속에서 성장하였고, 인터넷으로 대표되는 SNS의 활용수준도 세계최고라는 점도 한국 민주주의의 새로운 차원을 예비하고 있다. 이제는 선거를 통하여 다수의 지지를 획득하기만 하면 그러한 대표자가 이른바 (절대적인) 자유위임의 사상 하에 임의대로 결정하고 집행해도 되는 시대가 아니다. 또한 대표자가 대표되는 국민의 눈치를 보아 어느 정도 비위를 맞추어가면서, 실제로는 자신의 이익을 도모하는 방식의 정치로 일관해도 되는 시대가 아니다.

한국 민주주의는 3권분립을 핵심원리로 규정한 헌법 하에서도 이른바 제왕적 대통령이 군림하고, 그 아래에 정부와 여당이 – 심지어 사법부까지도 – 일사불란하게 종속하는 기형적 체제로 변질되어 왔으면서도 이를 효과적으로 통제할 방법을 알지 못해왔다. 제왕적 대통령제는 이미 “관습헌법”의 지위를 얻었다고 혹 주장하는 자가 있다 하더라도 반박하기 어려울 지경이다. 또한 지방자치제도를 20년 넘게 시행하여 오면서도 실질적인 지방자치가 구현되기보다는 여전히 중앙정부에의 종속이 지속되고 있다. 이는 분권국가를 지향하는 세계적 추세에 역행하는 것이다. 이처럼 중앙정부 자체도 수직적·위계적으로 조직·운영되고 있고, 중앙과 지방 사이에도 수직적·위계적 질서가 불식되지 않고 있는 것은 시급히 개선되어야 한다.

이와 같은 정부의 제도화와 운영에 있어서의 비민주성보다도 더 심각한 문제는 정부를 비로소 만들어내는 주권자인 국민의 정치적 참여의 기회가 극히 제한적으로만 인정되고 있다는 점이다. 민주주의체제의 본질은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부”라고 요약되곤 한다. 국민의(Of the People) 정부라 함은, 주권의 소재가 국민임을 말한다. 국민에 의한(By the People) 정부라 함은, 국민의 직접적인 참여 또는 국민에 의해 선출된 대표자에 의한 국민의 간접적인 참여에 의하여 정부가 운영되어야 함을 말한다. 국민을 위한(For the People) 정부라 함은, 정부의 모든 국정행위가 (전체) 국민의 복리에 지향되어야 함을 말한다. 문제는 ‘국민의 정부’, ‘국민에 의한 정부’, ‘국민을 위한 정부’ 각각의 ‘국민(the People)’의 범주가 다르게 인식되는 경우이다. 주권이 국민에게 있으되, 정부의 운영이 국민의 의사와 무관하게 된다든지, 전체 국민이 아니라 일부 국민의 이익에만 지향되어 있는 경우, 이를 민주주의라 할 수 없는 것이다. 한국의 경우 언론·출판의 자유, 집회의 자유, 결사의 자유와 같은 표현의 자유는 물론이고 정당의 자유, 선거권과 피선거권, 국민투표권과 주민투표권 등 참정의 기회가 상당한 정도로 제한됨으로써 ‘국민에 의한 정부’라는 민주주의의 중요한 징표가 잠식되고 있다. 또한 누구를 위한 정책인가 즉, 정책수혜자의 범위를 둘러싼 논란이 거듭되고 있어 ‘국민을 위한 정부’라는 징표도 제대로 충족시키고 있는지 묻게 된다.

일반 국민에 의한 정치적 참여의 기회를 확장하는데서 나아가 시민사회가 직접 정부에 참여하여 국정운영을 분담하기까지 하는 것이 오늘날 선진적인 민주국가의 모습이다. 전통적인 거번먼트(government·통치)로부터 새로운 형태의 국정운영체제인 거버넌스(governance·협치)로 민주주의체제가 진화되고 있다. 이제는 통치하는 거번먼트의 제한 내지 통제가 문제되는 것이 아니라 거버넌스의 조직과 그 내부에서의 시민사회의 책임이 문제되고 있다. 정치권력이 국가내적으로만이 아니라 넓은 의미의 사회의 영역에서 분산되는 시대이다. 한국에서도 지방자치단체 차원에서 일부 실험이 이루어진 적은 있으나 이러한 방향으로의 발전은 아직 요원한 실정이다.

한국 민주주의의 슬럼프와 개헌문제

한국 민주주의는 세계 민주주의의 발전상과 비교할 때, 후발민주주의라는 시간상의 핸디캡을 고려한다 하더라도, 매우 지체되고 있다. 그동안 국가의 성장에 어느 정도 기여하였던 것으로 평가되는 권위적인, 즉 위계적·수직적인, 국정운영방식은 이미 한계점에 도달하였고, 이는 정치‘시장’에 대하여도 경제‘시장’에 대하여도 마찬가지로 말할 수 있다. 이러한 사정인데도 이를 타파할 개혁프로그램이 제대로 추진되지 못한 채 답보상태에 있음으로 말미암아 한국 민주주의는 슬럼프에 빠지게 되었다. 민주주의가 공고하게 발전하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민주주의가 역진하여 권위주의로 회귀하는 것도 아닌, “그저 그렇고 그런” 상태로 어정쩡하게 시간만 낭비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런 상태가 계속되면 한국 민주주의는 민주화 이행 후 도로 권위주의화한 나라들의 전철을 밟게 되거나, 아니면 민주주의와 권위주의의 복합적 변형체인 하이브리드체제로 퇴행하여 고착되어버릴 수도 있다. 아니 벌써 그러한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슬럼프에 빠진 한국 민주주의를 위한 돌파구가 필요하다. 이 점에 대하여는 한국인이라면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을 것이다. 또한 내용상으로는 분권과 협치라는 시대적 요청을 수용하여 국정의 제도적 구조와 운영방식을 개선하는 방향으로 가는 것 외에는 대안이 없을 것이다. 따라서 문제는 ‘어떻게’ 이를 이루어낼 것이냐 라고 하겠다.

많은 분들이 거의 일정한 주기로 헌법을 개정하자는 제안을 반복하여 제기하고 있다. 두 가지 방향에서인데, 하나는 대통령임기(5년)와 국회의원임기(4년)가 불일치하여 여소야대 현상이 발생하고 이로 인하여 정부의 국정운영이 곤란하게 되는 경우가 많으니, 이를 일치시키되 대통령임기가 4년은 좀 짧은 듯 하니 중임을 인정하는 개헌을 하자는 이른바 원포인트 개헌론이다. 다른 하나는 대통령의 제왕화현상을 원천적으로 방지하기 위하여 정부형태를 구조적으로 변경하자는 것인데, 현행 대통령제를 의원내각제나 이른바 분권형 대통령제(학술상의 정식 용어로는 반[半]-대통령제)로 바꾸자는 정부형태변경 개헌론이다. 이 두 입장에 더하여, 경성헌법체제 하에서 헌법을 개정하는 것이 매우 어렵기 때문에 기왕 헌법을 개정하는 기회에 시대의 변화 내지 발전상을 반영하여 여러 헌법조항을 시대에 맞게 수정하자는 주장들이 뒤따르고 있다.

헌법개정이 한국 민주주의를 슬럼프로부터 구제할 돌파구가 될 수 있는가? 필자의 입장에서는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우선 원포인트 개헌론에서 말하는 대통령 임기조항 개정이 근본적인 수술책이 아닐 것임은 두말할 나위도 없을 것이다. 대통령과 국회의원 임기가 동일하여 반드시 같은 시기에 시작하고 끝나야만 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 여소야대 현상이 부정적이기만 한 것은 아니라는 점, 대통령임기를 단임 4년으로 하는 나라도 다수 있고 5년 단임으로 하는 나라도 다수 있는데 이런 나라들의 공통점은 대통령독재체제를 겪고 나서 이를 예방하기 위하여 단임제를 채택한 것이라는 점에서 한국도 예외가 될 수 없다는 점 외에도, 근본적으로 한국에서 4년 중임의 대통령제를 운영해본 결과 예외없이 대통령독재로 변질되어버렸다는 역사적 경험을 결코 도외시할 수 없다.

▲ ‘개헌과 동반성장’이라는 주제로 열린 제18회 동반성장포럼 필자가 주제 발표를 하고 있다. 사진=동반성장연구소 제공

다음으로 제왕적 대통령제를 방지하기 위한 목적의 정부형태변경 개헌론이다. 한국에서 오늘날까지도 ‘왕정적 정치문화’가 여전히 기승을 부리고 있고, 사회 전반에 수직적·위계적인 유교문화·군사문화가 만연하여 있음을 본다. 이러한 상황에서 헌법상의 정부형태를 변경하는 것만으로 일조일석에 집권자의 제왕화현상이 사리지기를 기대하는 것은 너무 단순한 희망이 아닌가 한다. 의원내각제야 말로 국회와 정부가 하나로 융합하는 것이 제도적으로 보장되는 정부형태인데, 집권자에게 강력한 권한집중이 용이할 것이고, 연임제한을 보통 할 수 없는 관계로 장기집권도 얼마든지 가능한 정부형태이다. 분권형 대통령제의 경우, 대통령과 총리가 동일한 정당에 소속되어 있을 경우 총리가 대통령에 예속되기 십상이고, 두 사람이 각기 다른 정당에 소속되어 있을 경우 수시로 충돌하여 국정운영에 장애상태가 발생할 수 있다. 러시아의 사례에서 보았던 것처럼, 강력한 실권자가 자신의 의지대로 대통령직과 총리직을 오가면서 국정을 장기간 장악할 수도 있다. 결국 헌법상의 정부형태를 변경하는 것만으로는 특정인에로의 권력집중 현상을 예방하기 어려울 것이다.

이렇게 보면 개헌이 그 자체만으로써는 한국 민주주의를 슬럼프에서 구제할 방안이 될 수 없을 것 같다. 그러나, 개헌을 통하여 단순히 헌법을 개정하는 이상의 효과를, 즉 분권과 협치, 국민참여를 촉진하는 방향으로 보다 근본적인 성과를 지향하고 이를 달성할 수 있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개헌이 한국 민주주의를 공고화하는 돌파구가 되려면

개헌이, 정체된 내지 교착상태에 빠진 한국 민주주의의 돌파구가 되려면, 국민참여가 보장되는 개헌절차가 마련되어야 하고, 개헌과 동반하여 정치관련법률이 개정됨으로써 국민의 정치‘시장’ 진입이 광범하게 가능하게 되어야 한다고 본다(후자의 문제는 다음 기회로 미루고 이번에는 전자의 문제에 국한하여 이야기하기로 한다).

과거에는 헌법의 제정 또는 개정을 일정한 – 비상한 – 역사적 상황에서의 이벤트성 사건 또는 그 결과물로서 이해하였던데 비하여, 오늘날에는 여러 단계로 이루어진 일련의 과정·절차 또는 대등한 자격을 갖춘 참여자들간의 이성적인 헌법적 대화로 이해하는 경향이 있다. 즉 개헌을 권력자가 비상의 시기에 내리는 결단으로서가 아니라, 오히려 헌법의 주인인 국민들이 주체로서 참여하여 대화와 토론을 통하여 자신의 공동체의 ‘있어야 할 모습’에 관하여 합의를 도출해내는 과정·절차로서 이해하게 된 것이다. 갈등과 분열, 반목이 심한 과거사를 지닌 나라들의 경우 이러한 헌법 제·개정 절차야 말로 통합된 새로운 국민(New Nation)·새로운 나라(New State)를 비로소 창출해내는 과정일 수 있다는 점에서 결정적으로 중요하다고 하겠다.

한국의 헌법사를 돌아보면, 대한민국 최초헌법이라고 할 수 있는 1919년 건국헌법의 경우 민족 전체가 주체였던 3.1운동이 계기가 되었지만 상해의 임시의정원 의원들이 제정한 것이고, (1945년 광복 후 1948년 제정된 대한민국 재건국헌법의 경우도 국회에서 제정한 것이고,) 1960년 헌법의 경우 학생들이 주체였던 4.19혁명이 계기가 되었지만 여전히 과거 자유당 국회의원들이 다수였던 국회에서 제정한 것이고, 1987년 현행 헌법의 경우도 시민들이 주체였던 6월 시민항쟁이 계기가 되었지만 여야간 정치회담과 당시 국회에서 만들어 국민투표를 거쳤을 뿐이다. 여기에서 알 수 있는 것은 민주혁명의 주체는 국민이었으되, 그 과실(果實)로서의 헌법제·개정에는 국민이 배제되는 역사가 반복되었다는 점이다. 현행 1987년 헌법의 경우 “국민이 국민투표절차에 참여하여 헌법을 확정하지 않았는가”하고 주장할 수 있겠지만, 실제로는 이미 다 결정된 헌법개정안에 대하여 오로지 찬반만을 표시하는 마치 고무도장(rubber stamp) 역할을 하는 것이 전부였다. 입법과정에 실효성있는 국민참여가 없었다는 점에서 그 과정을 통하여 탄생한 헌법을 진정 민주헌법이라고 할 수 있는지, 국민이 그러한 헌법에 대하여 얼마나 알 것이며 얼마나 애정을 갖고 준수하려고 할지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다. 현행 헌법이 역대 그 어느 헌법보다도 장수하면서 정권의 교체와 통제의 기능을 어느 정도 수행하여 왔음에도 불구하고 계속하여 개정이야기가 나오고 국민들이 이에 대하여 특별한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는 것은 이러한 개헌과정에 연유한 것이라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헌법개정과정에 국민의 참여를 실질화해야 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우리 헌법전문에서 말하는 “우리 대한국민”은 주권자로서 국가운영의 기본 메뉴얼이라고 할 수 있는 헌법의 제·개정권력의 주체이기도 하므로, 국민이 가능한 한 광범하게 참여하여 그들의 의사가 왜곡없이 반영되어야 헌법이 정당성(legitimacy)을 획득할 수 있다. 둘째, 국민들이 헌법개정과정에 직접 참여하여 헌법적 이슈들을 토론하여봄으로써 ‘헌법이란 무엇인지’, ‘헌법은 어떠한 가치를 가지는지’, ‘헌법은 어떠한 것들을 내용으로 하는지’, ‘헌법을 통하여 어떻게 권력의 오·남용을 통제할 수 있는지’, ‘헌법이 자신에게 어떠한 권리들을 보장해주고 있고 그러한 권리가 침해될 경우 어떻게 방어할 수 있는지’, ‘헌법을 근거로 국가에 요구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등등을 인식하게 되는 교육적 효과를 거둘 수 있다. 셋째, 헌법개정과정에 참여한 국민은 개정헌법을 자신의 것이라고 인식(ownership)하거나 자기가 만든 것이라고 인식(authorship)하게 되어 국민의 헌법준수의지 및 헌법수호의지를 제고할 수 있다. 넷째, 광범한 국민이 참여하는 경우, 소수의 정치엘리트들과 전문가들만 참여하는 경우보다 다양한 정보와 이질적인 견해를 가진 사람들의 참여가 가능해져서 참신한 아이디어의 통로가 될 수도 있다. 이는 헌법개정이 다양한 쟁점의 수용 내지 혁신적인 방향성을 가지게 할 수도 있다. 다섯째, 헌법개정에 국민이 참여하게 되면, 갈등과 분열, 반목의 역사를 지닌 국민에게 치유(healing)와 통합의 장 내지 계기가 될 수 있다.

▲ 김선택 고려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주제 발표를 하고 있다.

문제는 헌법개정과정에 국민참여를 어떠한 범위에서 어떠한 방식으로 실현할 것인가인데, 헌법개정과정의 개시를 위한 어젠다설정(agenda-setting)단계, 초안작성 이전단계와 초안작성 단계에서의 국민의 자문적 참여, 국회에서의 심의단계, 국회에서의 채택단계, 국민투표에 의한 승인단계로 나누어, 각 단계에서 국민참여의 방식과 피드백 방식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국민참여를 실효성있게 하려면 무엇보다도 헌법초안 작성에 앞서서 헌법개정의 주체인 국민에게 일종의 워밍업이라고 할 헌법교육 내지 시민교육(Civic Education)이 선행되어야 하는데, 이는 국가의 정치적․경제적 사정이라든가 국민의 헌정사적 경험, 교육수준 등을 고려하여 구체적으로 결정할 문제로서, 우리의 경우 그 중요성이 적지 않을 것이라고 본다.

이러한 국민참여절차는 현행 헌법에 규정된 헌법개정절차의 틀을 유지하면서 구체화되어야 하는데, 국회가 중심이 되어 현재의 불완전하기 짝이 없는 국민투표법으로부터 분리하여 별도의 ‘헌법개정절차에 관한 법률’을 제정할 것을 제안한다. ‘헌법개정절차에 관한 법률’은 국회(또는 대통령)제안, 국회의결, 국민투표라는 헌법상의 절차를 전제로 하여 구성하되, 제안 이전 단계, 즉 헌법초안의 작성을 전후한 단계에서 국민참여가 활발하게 이루어질 수 있도록 하고, 국민투표도 국민의 활발한 찬반논의를 보장하여야 하며, 무엇보다도 서둘지 말고 충분한 기간을 투입할 수 있도록 헌법개정절차를 구성하여 입법하여야 한다.

또한 이러한 국민참여과정을 총괄할 수 있는 기구가 만들어져야 할 것이다. 명칭은 여하간에 큰 문제가 없겠으나, 내용상 조직을 어디에 속하는 것으로 할 지, 구성에 있어서 대통령과 국회의 의사를 어떻게 반영할 지, 예산․인력․시설 등을 어떻게 조달할 지 등 여러 가지 결정할 문제가 있으나 가장 중요한 것은 구성원의 자격과 구체적인 충원방식, 업무추진방식이라고 하겠다. 특히 시민사회 및 미디어와 협력할 소통기구를 산하에 두는 기구구성방식이 필요하다고 본다.

‘개헌제헌’에서 ‘제헌개헌’으로

국민들의 피와 눈물과 땀의 결정체인 한국 민주주의가 슬럼프에 빠져있다. 세계적으로도 테러와의 전쟁으로 어수선하고, 민주화의 물결은 밀물에서 썰물로 바뀌어 있다. 이러한 어려운 환경에서 한국 민주주의에 돌파구를 마련한다는 관점에서 개헌이 그에 걸맞은 의미를 가지려면 과거처럼 정치엘리트들 간의 정치적 담합에 의하여 개헌이 이루어져서는 안될 것이다. 과거 우리나라의 헌법제정·개정과정이 ‘개헌제헌’(개헌을 명목으로 하면서 내용상으로는 제헌에 가까운 헌법입법을 한 것)이었다면 이번에는 ‘제헌개헌’(역시 헌법상의 개헌절차를 준수하지만 실제로는 별도의 법률을 만들어 제헌에 준하는 절차를 통하여 개헌을 하는 헌법입법을 하는 것)을 하는 방향의 모색이 필요하다고 본다. 국민일반을 헌법개정과정에 광범하게 참여시켜서 헌법제정에 준하는 절차를 밟아보자는 것이다. 우리 역사상 처음으로 국민이 논의의 주체가 되는 헌법개정을 한 번 해보자는 것이다. ‘헌법개정절차에 관한 법률’을 제정하여 신중하게 잘 짜여진 질서 속에서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헌법적 대화’를 전 국민적 기반 위에서 해보자는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모든 국민이 헌법의 주인이라는 의식을 갖게 되고 헌법적 가치들을 내면화함으로써, 그러한 헌법에 기초하여 구성되고 운영되는 대한민국이라는 공동체 속에서 진정한 의미에서의 국민통합이 이루어질 것이고, 그때에야 비로소 “우리들과 우리들 자손의 안전과 자유와 행복”(헌법전문)에 대한 책임을 지는 주체로서 “우리 대한국민”이 주권자로서 바로 서게 될 것이고, 한국 민주주의가 한 차원 높아지는 발전의 바탕이 만들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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