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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기타
이란여성들의 화려한 변화는 어디까지···경제제재 해제 이후
플로랑스 보제 Florence Beaugé / 르몽드  |  media@economy21.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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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04.14  16:4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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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이 핵확산방지조약을 준수함에 따라, 서서히 이란의 경제제재도 풀리고 있다. 교역 개방과 그에 따른 정치적 파급 효과는 2월말로 예정된 총선에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차츰 사회적 입지가 커지고 있는 이란 여성들은 이러한 변화의 상황을 예의주시하면서 앞으로의 향방에 대한 고민을 이어간다.

중고생 나이로 보이는 한 무리의 소녀들이 웃으며 전철에 올라선다. 빈 좌석이 안 보이자, 이들은 스스럼없이 바닥에 주저앉는다. 전철이 덜컹거릴 때마다 소녀들의 히잡(이슬람 머릿수건)이 어깨 위로 흘러내리면서 머리카락이 드러났다. 하지만 개의치 않는다. 이 칸에는 여성승객 밖에 없기 때문이다. 1990년대 말부터 운행에 들어간 테헤란 지하철은 열차의 맨 앞 칸과 끝 칸이 여성 전용 칸으로 배정돼 있다. 여성들은 ‘마음 편히’ 지하철을 이용하기 위해 이 칸에 탄다고 했다. 때문에 열차 안의 분위기는 상당히 편안했다. 그 외 다른 칸들은 남녀 공용이었는데, 젊은 연인들이 손을 잡고 있더라도 별 문제가 되지 않았다.

깨끗한 현대식의 테헤란 전철은 교통체증과 대기오염을 피할 수 있는 유일한 교통수단이다. 현재 5개 노선이 운행 중이며, 차창 밖으로 빠르게 지나가는 역명은 이란-이라크 전쟁(1980~1988) 당시 ‘순교자’들의 이름을 딴 것이었다. 거의 50만 명의 사망자를 낸 이 전쟁이 끝난 지도 27년이 지났건만, 이란 정권은 여전히 그 때의 기억을 되살리려 애썼다.

전철 안에서는 양분된 이란의 단면이 잘 드러났다. 한 쪽에는 강렬한 색상의 옷을 잘 차려입은 멋쟁이들이 모여 있는 반면, 대단히 수수한 옷차림을 한 사람들도 보인다. 전체적으로 보면, 관공서 풍의 검은 색 차도르를 걸친 여성이 다섯, 색상이 화려한 히잡을 쓴 여성이 둘. 그러나 눈만 드러낸 채 얼굴을 완전히 가리는 니캅이나 눈을 포함한 신체 모든 부분을 가리는 부르카 차림의 여성은 보이지 않았다. 이어 뜻밖의 장면이 펼쳐졌다. 전철 안에서 브래지어나 팬티, 핸드백을 들고 다니며 파는 상인들이 나타났던 것이다. 

이란 경제제재 해제 이후 변화된 모습들 

1979년 왕정을 무너뜨리고 이슬람 원리주의에 입각한 공화국을 세웠던 이란혁명이 일어난 지 37년이 흘렀다. 현재 여성에게 법적으로 부여된 권한은 남성의 권리보다는 적지만 이란 내에서 여성의 역할은 꽤 큰 편이다. 고위 행정직으로의 진출은 여전히 막혀있지만, 그 외 다른 모든 영역에서는 여성의 지위가 부상하고 있다. 코란의 내용을 엄밀히 해석하면 여성은 그 자체로 독립된 존재가 될 수 없다. 그리고 설혹 시아파 최고위 성직자인 아야톨라의 자리에 올라도 경전을 해석할 권리는 없다. 하지만 건축가나 기업가, 장관이 될 권리는 있다. 이란 의회에는 비록 모두 보수파이긴 하나, 총 9명의 여성 의원이 있다. 2015년에는 마르지에 아프함이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에서 최초의 해외 주재 이란 대사로 임명됐다. 물론 이 모든 것은 쉽게 얻어진 것은 아니다. 여성들이 권리를 인정받으려면 힘겨운 투쟁이 필요하다. 특히 이란은 모든 분야에서 여성이 차별을 겪고 있는 나라다.

결혼이나 여행, 취업은 물론 은행계좌 개설이나 재산 상속에 있어서도 여성은 편파적인 법 적용을 받으며, 모든 것은 가장의 뜻에 달려 있다. 가령 이혼을 할 때도 여성은 남성과 달리 판사 앞에서 일일이 이혼 사유와 동기를 밝혀야 하고, 판사의 허가가 떨어질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자녀 또한 남아의 경우 만2세까지, 여아는 만7세까지만 어머니와 함께 지낼 수 있다. 이후에는 아버지가 자녀들의 양육을 거부하지 않는 한, 아이들에 대한 모든 양육권이 아버지에게로 귀속된다. 친권 소유자도 아버지이며, 아이들이 어머니와 함께 살아도 친권은 아버지가 갖는다. 정치사회학 여교수 아자데흐 키안의 말을 빌리자면, 이란에서는 “법적으로는 남자가 왕이다”.

여성 노동과 관련한 통계수치도 상당히 저평가돼있다. 전체 여성의 14%만이 일을 하는 것으로 집계된다. 하지만 여성의 약 20~30%가 농업 분야나 불법노동 시장에서 고정적으로 경제활동에 참여하고 있다. 또한, 노동시장 진입에 대한 여성들의 요구는 점점 빠른 속도로 높아지고 있다. 전체 대학생의 60%가 여성이다. 인류학자 아미르 닉페이는 “학사와 석사 학위를 힘겹게 받은 여성들이 이어서 박사 학위를 거머쥐게 될 것”이라고 전망한다. 그는 현재 이란사회에서 여성들의 지위가 대략 1940~50년대 프랑스 여성들과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공공부문 도처에서 활동을 하고 있지만, 일부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면 실질적인 영향력을 행사하지는 못한다. 대개는 최하위 경제 부문에 종사하고 있는 현실이다.

그러나 여성들은 계속해서 새로운 고지를 점령해 가고 있다. 키안은 “여성 엔지니어를 가장 많이 배출하는 나라가 바로 이란”이라고 강조한다. 그는 2014년 수학계의 노벨상인 필즈 메달을 수상한 인물도 이란여성 마리암 미르자카니라는 점을 상기시켰다. 경제학자 티에리 코빌의 설명에 따르면 “발루치스탄을 비롯해 수니파 강성인 이란 남부 지방에서는, 보다 남성우월적인 아랍문화가 주를 이룬다(참고로 이란은 전체 국민의 90%가 시아파다). 이곳에서는 일부다처제인 경우도 많다. 하지만 이란의 그 외 지역은 대부분 일부일처제를 채택한다. 이렇듯 남성 우월주의가 강한 지역에서도 여성의 역할이 더욱 커지고 있다. 이는 사회 전체적인 변화 양상으로 봐도 무방하다. 아자데흐 키안도 “이란에서 가장 두드러진 변화는 독립을 앞당길 수 있는 수단으로서 교육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이 높아지고 있는 점”이라고 이야기한다.

흔히들 간과하는 여학생 취학률은 분명 1979년 이란혁명의 주요 성과 중 하나다. “역설적이게도 전통적인 가정에서조차 여학생의 취학을 용인했다. 그 이유는 이제 ‘이란 이슬람 공화국’이 됐기 때문이었다. 낙후된 지역에서 조차 사람들은 내게 “아야톨라 호메이니가 여성을 전선에 내보내고 소녀들을 학교에 보냈듯, 나도 그렇게 할 것”이라고 말했다. 테헤란 대학에서 강의하는 종교 사회학자 사라 샤리아티의 설명이다.
   
▲ 2015년 4월 2일, 스위스에서 열린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과 독일(P5+1)의 이란 핵협상에서 각국 대표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출처=U.S. Department of State | Public Domain

여성들의 높은 취학률은 우선 여성의 결혼 연령을 늦춘다. 출산율 또한 줄어, 여성 1명 당 평균 2명 밖에 낳지 않는다. 이란혁명 초기, 출산 장려책이 두드러졌던 시기에 여성 1명 당 7명의 자녀를 낳았던 것과는 대조적이다. 정부에서는 현재의 7,800만 인구보다 1억 인구가 바람직하다는 말을 수시로 흘리지만 여성들은 이를 귀담아 듣지 않는 듯하다.

여성지 <자난 엠루즈>의 편집장 샤흘라 셰르카트는 농담처럼 말한다. “아마디네자드(1) 집권 시절에도 우리는 후퇴하지 않았다. 우리는 한밤중에 헤드라이트도 켜지 않은 채 달리는 자동차처럼 계속 나아갔다.” 이 여성지는 동거라는 ‘핫’한 이슈를 게재했다가 6개월 간 발행 중지를 당한다. 현재 테헤란에서 동거 중인 커플은 수만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동거는 시아파 교리에서 허용하는 한시적 ‘계약결혼’과 다소 차이가 있다. 쌍방의 합의 하에 한시적으로 이뤄지는 계약결혼의 경우, 계약기간을 1시간에서 99년까지 임의로 정할 수 있어 성매매로 악용될 소지가 있다. 따라서 세간의 인식도 좋지 않고 실제로 많이 행해지지도 않는다. 샤흘라 셰르카트는 “우리가 낸 기사에선 일체의 가치 판단을 배제했으며, 우리는 결코 동거를 부추기지 않았다. 외려 우리는 기사에서 동거의 위험성을 경고했다”며 항변한다. 하지만 보수 진영에서 이의를 제기하자 이 잡지는 결국 제재를 받는다. 

그 무엇도 이란여성들을 막을 순 없다 

법정에 소환된 샤흘라 셰르카트는 ‘페미니스트’라는 오명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이란에서 페미니스트는 일종의 모욕으로 간주된다. 그는 잡지의 기사가 이란 사회의 “현실을 반영했을 뿐”이라는 변론을 펼쳤지만 소용없었다. 샤흘라 셰르카트는 “여성들이 자신의 권리를 내세우면 제도권 기관이나 남자들은 여자들이 어머니와 아내로서의 역할을 등한시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며 현재 이란의 문제점을 토로했다.

‘아트 업 맨’은 테헤란 시내에 있는 브런치 카페다. 테헤란 시내에는 젊은이들의 핫 플레이스가 상당히 많다. 한 법대 여학생이 담배를 꺼내들며 말한다. “그런 곳에 가서 해방 본능을 마음껏 발산한다”는 것이다. 카페 안에서는 작은 테이블 앞에 둘러앉은 젊은 남녀들이 이야기를 주고받거나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린다. 배경으로는 엘비스 프레슬리의 노래가 흘러나온다. 빨간 립스틱에 블랙 컬러 네일을 한 예가네 K.는 미생물학을 전공하는 여대생이다. 그는 현 정권은 “신뢰할 만하지 못하다. 일단 ‘이슬람 공화국’이라는 명칭부터 모든 것을 바꿔야 한다”고 소리 높여 주장했다. 예가네 K.는 오는 2월 26일에 두 가지 선거가 함께 치러질 총선에 대해서도 별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그는 “다른 곳에서는 자신의 대표를 선택할 수 있지만 여긴 그렇지 않다. 늘 누군가가 나와서는 모든 통제권을 쥐고 우리를 지도하려 든다. 이곳은 북한이나 다름없다”며 불평을 토로했다.

그러자 다른 두 친구들이 펄쩍 뛰었다. 펑크 헤어스타일의 라힐 H.은 “절대 그렇지 않다. 정부의 감찰이 있긴 하지만, 이란 국민들은 자유롭게 살아간다. 발언의 자유와 복장의 자유는 다소 제재를 받지만 그 밖에는 하고 싶은 것을 하며 살고 있다”며 반박한다. 그러자 히잡에 선글라스를 고정시킨 소로쉬 T.가 끼어들며 말했다. “그런 금지 조치들이 그리 달갑지는 않다. 외출할 때면 부모님은 내게 늘 조신하게 다니라며 입버릇처럼 말하신다. 사회제도에 동의해서가 아니라 늘 그렇게 살아오셨기 때문이다.” 이 젊은 친구에게 있어 가장 거슬리는 것은 “이 나라에선 사람들의 일거수일투족을 다 지켜보고 있다”는 점이다. 히잡의 착용 여부는 이란 여성들의 주된 관심사가 아니었다. 그들의 말에 따르면 히잡은 “그냥 쓰면 그만이다. 별 대수롭지 않은 일로 문제를 복잡하게 만들 필요는 없다”고 단언했다. 이들에게 더 큰 관심사는 실업, 인플레이션, 대학 입학 등의 문제였다.

예가네 K.는 매일같이 친구들과 술래잡기라도 하듯이 금지된 규정들을 어기는 재미를 만끽한다. 여름에는 다리와 발목이 다 드러나는 샌들을 신고, 손톱에는 짙은 색을 칠하고 돌아다닌다. 모두 엄격히 금지된 것들이다. 겨울에는 ‘사포르’란 두꺼운 스타킹을 신고 미니 스커트를 입는다. 여기에 롱부츠까지 신으면, 부유한 젊은이들이 몰리는 테헤란 북부의 상업지구와 주요 교차로를 순찰하는 풍기 단속 경찰에게 붙들릴 위험이 크다. 예가네 K.는 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 “한 번은 경찰서에 끌려갔는데, 내 사진을 찍고 신원조회를 하더니 경고했다. 두 달 안에 또 걸리면 그때는 블랙리스트에 올라갈 줄 알라고.” 그리고는 이 숨 막히는 곳에서 벗어나고 싶다면서, 기회만 닿는다면 유럽이나 미국으로 떠날 거라고 했다.

베나즈 샤피의 경우는 이란에 “남아서 행동”하기로 결심한다. 작고 가녀린 체구에 여성스러움이 물씬 풍기는 베나즈는 히잡을 쓰고 있었지만, 짙은 화장이 눈에 띄었다. 올해 스물여섯인 그는 이란에서 최초로 전문 오토바이 레이싱 허가를 받은 여성이다. 일반 여성들은 남자들이 경기를 하는 축구 경기장에 참관 목적이라도 들어갈 수 없지만 베나즈는 예외다. 그는 테헤란 아자디 경기장에서 1천cc 오토바이로 훈련할 수 있는 권한이 있기 때문이다. 지난 가을, 밀라노에서 개최된 오토바이 국제 친선 대회에서 귀빈으로 참석했던 베나즈가 귀국하자, 한 보수 언론에서는 ‘세계를 홀린 베나즈’라는 타이틀을 내걸기도 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달라질 게 없다는 것을 베나즈 자신도 알고 있다. 그가 남자들의 세계에서 남자처럼 오토바이를 모는 것을, 내일 당장 어느 보수 종교인이 나서서 중지하라고 요구할지 모른다. 다만 그 전까지 베나즈 샤피는 묵묵히 법적인 테두리 안에서 “여성들을 위한 길을 열 것”이다. 그는 “내가 이란여성인 게 자랑스럽다”고 덧붙였다. 테헤란 교외 지역 카라지에서 살고 있는 베나즈 샤피는 자기 동네에서도 오토바이를 몰고 다닐 수 있다. 그가 여자임을 알아챈 남자들은 경적을 울리며 반갑게 맞기도 하고, “집에 가서 세탁기나 돌리라”며 고함을 치기도 한다.

선거 직전의 이 도시에는 다소 무거운 분위기가 감돈다. 이란의 최고 지도자는 거의 매일 저녁 TV에 나와 국민들에게 지령을 전한다. “서구의 문화에 물들지 않도록 조심하라”며 국민들에게 당부하는 것이다. 아야톨라 하메네이 이란 최고 지도자는 “외국인과의 접촉을 피하라”고 조언한다. 핵 협상이 타결된 후에는 하메네이와 강경파 세력의 경계수준이 더욱 높아졌는데, 이는 제재가 풀리고 개방이 이뤄질 경우, 타국과의 접촉이 불가피함을 저들이 우려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몇 달 전 아야톨라 아마드 자나티 혁명헌법수호위원회 위원장은 핵협상 타결로 인해 다른 요구사항에 물꼬를 터주면 안 된다고 경고했다. 88세의 완고한 아야톨라인 그는 “차제에 여성문제 및 양성평등 문제가 제기되지 않게 주의하라”고 당부했다.

파리다 하쉬트루디는 앉아서 당할 여성이 아니다. 유명작가인 그는(2) “도발할 의도는 없지만, 내 생각 정도는 큰 소리로 말하고 있다. 나도 이 땅의 미친 DNA를 갖고 있다”고 말한다. 초등학교 때부터 이주해 살아온 프랑스와, 고향인 이란을 오가며 활동하는 파리다 하쉬트루디는 정치를 단념하고 펜으로써 저항활동을 벌이기로 결심한다. 고향에 돌아갈 때마다 그는 이란여성들이 조금씩 영역을 넓혀가고 있음을 확인한다. 파리다 하쉬트루디는 “발루치스탄이라는 마을의 시의회는 남성만으로 구성돼 있었는데, 얼마 전 여성 시장이 탄생했다. 이런 사례는 이란 도처에서 나타난다”며 기뻐했다.

사람들의 반발 속에 2009년 아마디네자드가 대통령으로 당선됐을 때 일어난 ‘녹색 운동’은 극심한 탄압의 대상이었다. 그렇다면 이러한 탄압정책이 다수의 생각처럼 이란의 사회운동을 무력화시킨 것일까? 파리다 하쉬트루디는 고개를 젓는다. “여성들이 여전히 최전선에서 자리를 지키고 있다. 그리고 반발에 굴하지 않고 지금도 계속 싸우고 있다. 여성들은 결코 물러서지 않는다.” 그는 이렇게 말하며 여성들 스스로 조직한 비정부기구가 각지에서 늘고 있다고 강조한다. 이에 따라 테헤란 교외에서도 거리의 부랑아 아이들이나 에이즈 환자를 위한 돌봄의 집이 생겨나고, 알코올 중독 환자 치료소도 마련됐다. 정부 동의하에 설립된 이 시설들은 하나의 전환점이 되고 있다. 이전에는 정부에서 에이즈나 알코올 중독 같은 문제들을 부인해왔던 것이다.

여성들의 투쟁이 지속되고 있기는 하나, 여성운동 조직이 탄탄하게 유지되는 것은 아니다. 개인 사정으로 흔들리는 경우도 종종 생긴다. 일상에서 벗어나는 것에 대한 염려가 큰 이란여성들은 투쟁의 최전방에서 싸웠던 인물들의 존재를 망각하는 경우가 많다. 시시각각 감시를 당하는 반체제 변호사 나스린 소투데나 영화감독 라흐샨 바니에테마드, ‘반체제 선전’을 했다는 이유로 8년형에 처해진 인권운동가 나르게스 모감마디 같은 인물들의 활약을 잊고 사는 것이다.

마흔 살의 가정주부 파라는 “사람들은 우리가 행복하지 않은 이유를 설명 못한다”며 한숨을 내쉰다. “문제는 공기가 편치 않다는 것이다. 우리는 조국을 사랑하지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그저 편히 숨 쉴 공기뿐이다.” 그의 아들이 다니는 엘모소나트 과학기술대학에서는 매일 확성기에서 쿠란의 경구와 교훈적 지침이 흘러나온다. 학생들은 전쟁 애도 주간, 바씨드지(이란 정부 민병대) 애도 주간, ‘학살’ 애도 주간 등 온갖 기념 주간을 다 챙겨야 한다. 파라는 “거의 세뇌 수준이다. 지긋지긋하다”며 학을 뗀다.

마부베 자비드 푸르의 경우, 끊임없는 애도의 분위기에 대한 불만은 없다. 그는 과거 아야톨라 호메이니가 창설한 ‘바씨드지’ 대원이다. 문자 그대로 해석하면 바씨드지는 ‘저항운동 세력대원’을 말한다. 이 자원 부대는 혁명헌법수호위원들의 보충병 격에 해당한다. 그 수는 천만 명에 이를 것으로 추정되며, 바씨드지라는 이유만으로도 상당한 이점이 제공된다. 주식이나 일자리에서의 특혜는 물론 대학입학 특혜까지 주어지기 때문이다. 국민들에게 이들은 두려움과 혐오의 대상이며, 상류층에게는 경멸의 대상이다.

테헤란의 이맘 레자 사원 관리국 직원인 자비드 푸르는 이동할 때 차도르를 단단히 여미고 돌아다닌다. 이 때문에 그의 외양에선 원장수녀 이미지도 풍긴다. 54세의 이 여성은 세 아이의 엄마로서, 자신이 바씨드지라는 사실을 자랑스러워한다. 바씨드지로서 하는 일이 곧 이슬람의 율법을 적용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는 이란의 핵협상 타결에 대해 불만은 없지만, 미국과 관련해서는 경계를 늦추지 않는다. 미국이 계속해서 암암리에 이란을 중상모략하는 공작을 펼칠 것이기 때문이다. 그는 감사의 마음을 담아 말한다. “다행히 우리의 교육수준은 상당히 높아졌고, 미국의 공작에 저항할 수 있는 역량을 많이 축적했다. 게다가 최고 지도자께서 계시니, 그가 우리의 앞길을 밝혀주고 우리에게 길을 열어주실 것이다.” 

아름다움에 대한 이란 여성들의 강박관념 

역설적이게도, 이란 여성들의 현실 부정은 높은 성형수술 빈도로 나타난다. 코, 입, 보조개, 쌍꺼풀 등의 성형수술을 받으려는 여성들이 상당히 많기 때문이다. 대학 입학시험에 합격한 18세 소녀가 부모에게 입학선물로 코 성형수술을 받게 해달라는 일도 있다. 테헤란에서는 바비 인형 같은 얼굴, 화려하게 화장한 얼굴들이 히잡 위로 부각된다. 간혹 도를 넘어서는 경우도 눈에 띈다. 최근 5~6년 간 사회의 모든 계층에서 폭발적으로 나타나는 이 현상의 원인은 대체 무엇일까? 누구도 이에 대한 정확한 설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머리카락과 신체를 감추게 하는 문화 속에서, 여성들의 얼굴에 대한 강박관념이 그런 식으로 표출되는 것일까?

이란의 성지인 쿰은 테헤란보다 숨쉬기가 한결 나은 편이다. 사막 한 가운데 있기 때문에 대기 오염은 없지만, 숨통이 막힐 듯한 여름 더위에 기후도 건조하다. 쿰은 테헤란 남서부로 150km 가량 떨어진 인구 1백만 명 규모의 도시다. 중요한 순례지이자 신학교육 중심지로, 5천 명의 여성들이 쿰에서 종교를 공부한다.

시아파의 8번째 이맘 레자의 누이 파테마 마수메가 묻힌 크고 근사한 영묘도 이곳에 있다. 건물의 파사드에는 아야톨라 호메이니를 나타내는 거대한 프레스코화가 몇 개 있어, 이란혁명의 선구자가 오랜 기간 쿰에 살았음을 알려준다. 이곳에서는 여성들 모두 예외 없이 차도르를 두른다. 여성들은 대개 스쿠터로 이동을 하는데, 운전은 남편이 하고 여성들은 남편 뒤에 붙어 앉아 간다. 밖에서 히잡을 착용하는 것은 기본이다.

신학교육을 받은 8만 명의 이 여성들은 이란 내에 신의 가르침을 전파한다. 가장 높은 수준의 신학교육을 받은 파리바 알라스반드는 가정 및 여성 연구소에서 남녀 학생들을 가르친다. “이란여성들은 다른 아랍지역 여성들과 많이 다르다. 우리는 자유에 상당한 비중을 두며, 이는 이란 특유의 문화와 시아파 교리에 기인한다.” 그는 종종 이런 식으로 말문을 연다. 히잡의 의무 착용에 대해서는 잠시 주저하는 모습을 보였다. 짐짓 순진한 척 던지는 질문들에 이미 익숙해져있을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코란의 한 경구에서는 ‘히잡을 착용하라’는 말이 나온다. 히잡은 여성들을 보호해준다. 우리가 이 이슬람의 규율 하나를 버리면, 이어 우리는 다른 규율들도 버리게 될 것이다.”

60여 년 간 한 가정의 보수적인 어머니로 살아온 그에게도 종교학회 참석 차 유럽이나 미국에 다녀올 기회는 있었다. 그때마다 그는 “서구인들의 부정적인 시선”을 느끼고 다른 이란 여성들처럼 마음 아파했다. 파리바 알라스반드는 이란 여성들에 대한 왜곡된 이미지가 확산된 데에는 언론의 책임이 크다고 생각한다. 그가 제일 우려하는 바는 “최고 지도자가 원했건 국민들이 원했건” 상관없이 이란의 제재 조치 해제로 인해 이란이 예속상태에 빠지지는 않을까하는 것이다. 파리바 알라스반드는 “서구권에서는 이란으로 유입해 들어오길 바라면서도 이란이 서구권으로 유입돼 들어가는 것은 원치 않는다”며 유감을 표했다. 그의 바람은 이란이 자국의 특수성을 보존하는 것이다. “우리의 종교는 우리에게 하나의 문화를 선사해주었고, 일정한 선도 그어주었다. 우리의 자유는 쿠란이 허용하는 범위 내에서 행사돼야 한다.”

파리바 알라스반드보다는 젊지만, 원칙을 중시하는 자라 아민마지드 또한 이슬람법으로 학위를 받고 쿰에서 학생들을 가르친다. 자연스러운 미소 속에 매력이 풍겨 나오는 그는 “기독교와 이슬람 사이에는 공통점이 상당히 많다. 서방에서 이슬람과 이슬람 여성에 대해 부정적 인식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안타깝다”고 말한다. 그의 가장 큰 고민은 무엇일까? 이란 사람들이 원하는 서구식 소비사회의 도래다. “제재가 풀리기를 기다리는 것보다는, 좀 더 열심히 일하는 편이 낫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청바지에 킬힐을 신고 하늘하늘한 스카프를 한 사나즈 미나이는 대표적인 ‘성공한 여성’이다. 이란의 국제무대 복귀로 여러 가지 긍정적 효과가 기대되지만, 사나즈 미나이가 특히 기대하는 것이 있다. 바로 “이란의 이미지와 그간의 낮은 평가가 회복되는 것”이다. 그는 이란의 요리와 문화에 관한 도서를 20권 이상 펴냈으며, 접객 매너와 관련된 학교 ‘Culinary Club’을 열고 요리 전문지 가운데 판매 순위 톱을 달리는 <사나즈사니아>를 창간했다. 이란의 제재 조치 해제로 그에게는 무한한 가능성이 열렸다. 이에 사나즈 미나이는 이란을 ‘요리의 거점’이자, ‘패션과 유행의 거점’으로 만들고자 한다.

또 다른 성공한 여성, 파라나크 아스카리의 질주 또한 그 무엇으로도 막을 수 없을 듯하다. 런던에서 자라 줄곧 그곳에서 지내던 그는 2013년 6월, 이란으로 오라던 하산 로하니 신임 대통령의 호소를 듣는다. 그로부터 두 달 후, 파라나크 아스카리는 테헤란으로 돌아와 VIP 여행객과 사업가를 대상으로 하는 서비스 업체 ‘투 이란(To Iran)’을 차린다. 이와 더불어 이란의 50개 도시에 관한 모든 정보를 총망라한 인터넷 사이트도 개설했다. 배낭여행 가이드북으로 유명한 ‘기드 뒤 루타르’의 온라인 버전 같은 형태다. 이 사이트가 즉각적인 성공을 거두었음은 물론이다.
   
▲ 이란 여자축구선수들 모습

2015년 7월 14일 이란 핵 협상이 타결된 이후 ‘투이란’은 매달 예약이 2배씩 늘어났다. 고객은 주로 유럽인들이었다. 아스카리에게 있어 시급한 일은 금융제재가 풀리는 것이다. 이란에 대한 경제제재로 지난 몇 년 간 금지돼 있던 이란 및 해외 국가 사이의 금융거래가 하루 빨리 재개돼야 하기 때문이다. ‘투 이란’은 이란의 다른 기업들과 마찬가지로 모든 수입을 일단 두바이로 끌어모은다. “현금이 부족한 상황인데, 이를 타개하려면 현물 교환을 하는 수밖에 없다. 언제까지 이럴 수는 없기에 투자금을 유치해야 한다.”

솔직하기로 유명한 샤힌도크흐트 몰라베르디는 거리낌 없이 서구권 기자들을 만난다. 하지만 최근에는 형식적인 인사만 나누고 있다. 현재 그의 자리가 그리 편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2년 전 로하니 대통령이 여성 및 가정 담당 부통령으로 임명한 몰라베르디는 40여 년 경력의 법률학자로, 현재 열심히 자리보전을 하고 있다. 그는 “의회에 보다 많은 여성들이 있어야 한다. 모든 권력 계층에 여성들을 투입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공공연히 눈에 띄는 주장을 펴지는 않고 있다. 상황을 보면 이해가 된다. 2월 26일 총선은 다가오는데, 차제에 경제제재 조치가 해제될 예정이다. 이런 상황에서 사우디아라비아와의 위기도 고조되고 있기에, 현재로서는 약간의 틈도 보일 수 없기 때문이다. 여성해방운동가 및 개혁파와 가까운 인물로 간주되는 몰라베르디에 대한 강경 보수 진영의 반감은 상당히 높은 편이다.

오늘날 이란에서는 분명 여성이 주요 쟁점으로 부상하고 있다. 한 익명의 대학 관계자는 “정부가 여성 세력을 두려워하고 있다. 현 정권에 있어 여성은 상당한 위협이 되고 있다. 지금의 이란 정부는 여성들과 뭘 어떻게 할지 전혀 모른다. 이들과 어찌 싸울지, 끊임없이 새로운 물꼬를 트는 여성들을 막을 방법을 전혀 알지 못한다.” 히잡 착용과 관련한 문제는, 그 자체로서는 별 심각한 문제가 아닐지 몰라도, 이런 현재 상황을 잘 보여준다. 쿰의 신학자들이 말하듯이 “이걸 내려놓으면 나머지도 내려놓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

 

글·플로랑스 보제 Florence Beaugé

언론인. 아랍 전문 기자로 진보매체 등에 기고하고 있다. 

번역·배영란 runaway44@ilemonde.com

한국외국어대 통역대학원 졸업. <22세기 세계: 내일을 위한 유토피아> 등의 역서가 있다. 

(1) 마무드 아마디네자드 Mahmoud Ahmadinejad, 2005~2013 이란 이슬람 공화국 대통령

(2) 주요 저서로 <피의 연안, 이란 Iran, Les rives du sang>(Seuil, Paris, 2001) 및 <이란으로의 귀국 A mon retour d’Iran>(Seuil, 2008) 등이 있다. 

<이코노미21>은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한국어판과 기사제휴를 맺고 주요 글로벌 기사를 게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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