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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바 혁명수호위원회의 ‘내부 혁명’
쿠바 혁명수호위원회의 ‘내부 혁명’
  • 마리옹 지랄두 Marion Giraldou/ 르몽드 디
  • 승인 2017.12.22 0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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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과의 수교이후

쿠바 혁명수호위원회는 오랫동안 주민들을 감시하는 임무를 맡아 왔다. 쿠바가 외교적‧경제적 고립에서 서서히 벗어나면서 혁명수호위원회의 기능과 역할에 나타난 변화는 쿠바 국민들이 새로운 상황에 적응하는 방식을 보여준다.

“제국주의의 공격에 맞서, 우리는 혁명을 위한 공동감시 체제를 도입할 것이다. 한 블록 내에 사는 사람들은 서로 누가 무엇을 하는지, 권력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 알 수 있다.”

쿠바혁명 이후 1960년 9월 28일, 피델 카스트로는 한 건물이나 블록 내에서 구성되는 기본 조직인 혁명수호위원회 설립을 공표했다. 혁명수호위원회의 설립 목적은 미국 중앙정보국(CIA)의 지원과 자금을 받는 반혁명 세력의 침공 가능성으로부터 쿠바혁명을 수호하고 도움을 주기 위함이었다. 1961년, 미국이 쿠바 피그만을 침공하자 혁명수호위원회는 전투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그러나 외부 침략에 대한 저항세력이 형성되면서 쿠바인들은 순식간에 일상생활을 관리 받게 됐다. 혁명수호위원회 내부에서 테러나 스파이 행위가 의심되는 사람을 고발할 수 있도록 각자 자신의 이웃에 대해 알 의무가 있었다.

혁명수호위원회의 초기 임무는 방해 공작과 침략을 경계하고 민중을 감시하는 것이었다. 여기에 혁명의 근간을 지지하기 위해 총선과 지방선거 후보자 명단 작성, 문맹퇴치 운동, 예방접종 실시, 태풍 피해자 지원 등의 임무가 추가됐다. 따라서 혁명수호위원회는 중개자의 형태를 띠게 됐다. 혁명수호위원회는 정부의 요구와 지시사항을 국민들에게 전달하고 반대로 국민에 대한 정보는 상부에 알리는 역할을 한다. ‘구역’, 읍, 지방의 한 블록에서부터 국가 전체에 이르기까지 약 8백만 명의 시민(14세 이상)으로 이루어진 13만여 개의 소집단이 오늘날에도 여전히 존재하고 있다. 이는 거의 쿠바 인구 전체에 달하는 수치이며, 이 비율은 혁명수호위원회 설립 이래로 계속 유지돼 왔다.

그러나 알타아바나 구역의 혁명수호위원회 대표인 엘로이나(1)가 강조했듯, 혁명수호위원회 가입은 의무사항이 아니다. 공산당 당원이 아니어도 혁명수호위원회 대표직을 맡을 수 있으며 엘로이나는 거의 10년 간 이웃들의 지지를 받아 매년 임기를 연장해왔다. 높은 평가를 받는 혁명수호위원회 대표직은 무보수이며, 대표 재출마를 금하는 법적 장치도 없기 때문에 엘로이나는 앞으로도 계속 대표직을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 그녀가 사는 건물 안의 14세 이상 거주자, 즉 아파트 24세대에 살고 있는 40명의 주민들이 모두 혁명수호위원회 회원인 이유를 그녀는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이 질문에 그녀는 “혁명수호위원회는 주민들을 보호하기 위해 존재하는데, 가입하지 않을 이유가 있을까요?”라며 당황해 했다.

아마도 혁명수호위원회에 가입하는 이유는 다른 곳에 있는 듯하다. 30세 이상의 쿠바인 대부분은 혁명수호위원회에서 “너무나 혁명적이지 않다”는 평가를 받았다는 이유로 학업을 중단하거나 직장을 그만둔 사람을 주변에서 본 적이 있다. 2001년, 관광업에 종사하며 관련 분야의 학업을 계속하던 빌마라는 한 젊은 여성은 5월 1일에 열리는 전통적인 시위에 참여했다는 것을 증명해야 했다. 어느 누구도 빌마에게 참여를 강요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만약 시위에 나가지 않으면 직장 생활에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그녀는 잘 알고 있었다.

고용센터에서는 미래의 직원에 대해 기술한 혁명수호위원회의 추천서를 대부분 요구하고 있다. 엘로이나는 이 추천서가 쿠바인들의 일상생활에서 혁명수호위원회의 역할을 보여준다고 말하면서 “저는 혁명수호위원회 대표로서 한 건물에 사는 사람들을 잘 압니다. 우리는 대가족입니다”고 말했다. 따라서 그녀는 체제의 논리에 따라 도덕성, 성실성, 근면함 등 지원자의 자질에 대한 판단을 내린다. 따라서 혁명수호위원회에서 건물 앞 풀베기, 외벽 페인트칠하기, 전자제품 배달 시 배급소인 보데가(2) 앞에서 보초서기 등의 ‘자원봉사’ 활동을 벌일 때 이 구역의 청소년, 호세는 의문스러웠다. 의무적으로 참여해야 하는데 왜 자원봉사라고 하는 걸까? 2015년 8월 풀을 베러 가야 하는 날 아침, 호세는 일어나지 않았다. 15년 전에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대담한 행동이었다.

이제 혁명수호위원회는 2001년 빌마에게 했던 식의 협박을 행사하지는 않는다. 엘로이나가 정기적으로 작성하는 도덕성에 대한 추천서는 여전히 존재한다. 하지만 혁명과 관련된 부분은 더 이상 예전과 같은 의미를 갖지 않는다. 그래서 호세가 공항 경비대에 들어가고자 했을 때 엘로이나와 혁명수호위원회 회원들은 추천서에 그의 성실성과 정확성을 높이 평가하고 혁명수호위원회에 대한 기여도가 낮다는 점은 언급하지 않았다. 몇 년 전만 해도 호세의 태도는 엘로이나와 혁명수호위원회 회원들에게 ‘반혁명’의 사례가 됐을 것이나, 이제는 그렇지 않은 듯하다.

민중 감시에서 일상적 문제로 역할 확대

미국과 경제적, 외교적으로 화해하면서 미국의 위협이 점차 약화되자 혁명수호위원회의 역할은 확대됐다. 혁명수호위원회 지도자의 선택에 따라 지방마다 변화가 나타났다. 블록의 안전 보장을 중요시하는 지도자는 야간 순찰대를 운영하고 교육에 관심이 있는 지도자는 과제에 도움을 줄 방안을 모색했다. 엘로이나는 노인, 당뇨병 환자, 임산부 등 취약계층 보호에 특히 관심을 가지고 있다고 했다. 예를 들어 사고가 발생해서 혈액이 필요한 경우, 보건복지부의 요청에 빠르게 대응할 수 있도록 그녀는 ‘헌혈이 가능한 사람들’의 혈액형과 예방접종 여부를 확인하고 있다.

혁명수호위원회는 또한 주민들이 일상생활에서 겪는 어려움에 대처하고 있다. 교통, 주택 문제처럼 수도 공급은 아바나에서 일상적인 문제다. 몇몇 구역에서 수도 공급은 주민들의 불만과 때로는 분노까지 야기하는 골칫거리다. 그러나 거리에서 시위가 벌어지지는 않는다. 주민들은 항의보다 관례를 선택한다. 혁명수호위원회는 구역의 대표들에게 문제가 발생했음을 알린다. 예를 들어, 태풍 피해 등 공동체 전체에 영향을 미치는 심각한 위기가 발생하면 대표들은 문제 해결을 위해 시 정부에 이를 알린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에는 혁명수호위원회 스스로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 알타아바나에서 수돗물은 불규칙적으로 공급되기 때문에 대부분의 건물은 물이 공급될 때 저장할 수 있는 물탱크를 갖추고 있다. 불가피하게 단수가 발생하면 주민들은 물탱크에 있는 물을 퍼 올려서 아파트에 공급할 수 있도록 모터펌프를 작동시킨다. 모터펌프는 보통 오후 5시부터 작동한다. 퇴근 후 집에 돌아왔을 때 모든 사람들이 물을 사용할 수 있게 하기 위함이다.

▲ 쿠바 수도 아바나(Havana) 시내에 있는 구 의사당 건물. 출처=위키백과/Michael Oswald

2015년 8월, 엘로이나가 대표로 있는 혁명수호위원회의 모터펌프 담당자가 이사를 갔다. 엘로이나는 혁명수호위원회 회원들을 소집했다. 대개의 경우 소집은 입에서 입으로 전달된다. 엘로이나가 마리셀에게 “일요일에 건물 앞 화단을 청소하는 자원봉사 활동이 있어요”라고 창문에서 외친다. 잠시 후, 이웃인 아나와 현관 계단에서 이야기를 하던 마리셀은 메르세데스와 마주치고 엘로이나의 말을 전한다. 이런 방식으로 계속해서 소식은 전해진다. 2시간도 채 되지 않아 40명의 주민들은 이 소식을 알게 되지만 모두가 참석한다는 보장은 없다. 청소하고 땅을 일구고, 페인트칠을 하기 위해 일요일 아침에 일어나는 사람은 10명이 되기 어렵다. 엘로이나는 “노인들, 어린 자녀를 둔 부모들, 토요일 저녁에 외출하는 젊은이들”의 참여는 기대하지 말아야 한다고 말한다. 모든 주민들이 참석해야할 때는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참여해달라고 설득하는 편이 낫다.

“사람들이 혁명수호위원회와 자신은 무관하지 않다고 느낄 수 있도록 왜 결속해야하는지 설명해줘야 합니다. 혁명수호위원회 대표의 업무는 이렇게 교육적이기도 합니다.”

수도 공급이라는 난제에 대한 회의가 열렸다. 직장에서 근무 중이거나, 그 밖의 사정으로 각 세대에서 거의 한 명씩, 17명이 참석했다. 회의는 정원에서 열렸다. 오후 6시가 되자 사람들이 다 모였다. 그러나 회의 시작은 지연되고 있었고 모두 담소를 즐기고 있었다. 식전주만 없을 뿐, ‘부드러운 햇살 아래 이웃과의 식사’라는 그림이 완성됐다. 엘로이나는 사람들에게 회의를 상기시켰다.

먼저 엘로이나는 사람들에게 특히 단수가 됐을 때 수도꼭지를 잘 잠글 것을 당부했다. 며칠 전 단수가 됐을 때 마르셀로가 수도꼭지를 잠그지 않아서 물난리가 났던 것을 모두들 기억하고 있었다. 물이 다시 나왔을 때 메르세데스의 발코니는 수영장이 돼 있었다. 여기저기서 사람들이 농담을 했고 마르셀로는 불평 없이 이를 받아들였다. 그 후 엘로이나는 마침내 오늘 회의의 주제로 들어갔다. 모터펌프를 담당할 사람을 뽑는 것이었다. 이는 힘든 임무였고 마리오가 단독 출마했다. 거수투표를 통해 만장일치로 마리오가 당선됐다.

그러나 몇몇 혁명수호위원회는 무엇보다도 ‘제국주의’의 침략에 대응하는 임무를 계승하고 있다. 따라서 민중을 감시하는 것은 그들의 사명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하지만 상황은 변하고 있다. 라울 카스트로가 정권을 물려받으면서 제국주의에 대한 거친 투쟁은 더 이상 ‘훌륭한 혁명가’의 조건이 되지 않았다. 반대로, 국민들은 미국과 화해하면 금수조치가 해제되고 관광산업이 성장하는 긍정적인 측면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새로운 정책을 받아들이기 위해 오랜 적의 나쁜 이미지를 지운 것이다. 하지만 미국과의 화해는 몇몇 혁명수호위원회 대표들의 태도에서도 볼 수 있듯 일부 국민들의 불신을 야기했다.

프랑스에 거주하는 프랑스계 쿠바인 블라디미르는 3년 전부터 알타아바나에서 거리미술 축제를 열고 있다. 2014년까지 블라디미르는 혁명수호위원회 대표의 허가만 받으면 프레스코 벽화를 그릴 수 있고, 아이들과 함께 그림을 그리며 음악회와 공연을 할 수 있었다. 축제는 매번 큰 성공을 거뒀다. 그 성공은 그 지역의 예술가들 외에도 아이들, 주민들까지 불러 모았다.

블라디미르와 또 다른 예술가인 랑셀은 이미 여러 차례 다양한 건물에 벽화를 그린 경험이 있었다. 그들은 2015년 8월, “너 뭐할 거니?”라는 문구와 함께 우스꽝스러운 표정의 개를 그리기로 했다. 몇 분도 되지 않아 동네 아이들이 모여 들었다. 아이들은 저마다 자신의 의견을 내놓았다. 곧 거대한 작품이 탄생할 것이며 그림을 완성하려면 얼마간의 시간이 걸릴 듯했다. 구경꾼들은 자리를 잡고 맥주와 투콜라(쿠바의 탄산음료)를 마셨다. 그런데 이제 막 스케치를 끝내고 글자를 쓰고 있을 때, 혁명수호위원회 대표가 경찰을 불렀고 블라디미르와 랑셀에게 떠날 것을 요구했다. 혁명수호위원회 대표의 눈에 이 그림은 반혁명적이며 미국과 쿠바의 관계가 정상화되는 과정을 비난하는 것으로 보였다. 이 이상한 말다툼을 목격한 사람들은 블라디미르와 랑셀의 편을 들었고 혁명수호위원회 대표에게 그의 판단이 잘못됐다고 설득하려 했다. 현장에 도착한 경찰도 왜 자신들을 불렀는지 의아해했다. 오후의 열기 속에서 분위기는 고조됐고 목소리가 점점 높아졌다. 블라디미르와 랑셀은 그림 그리기를 단념하고 더 높은 책임자인 이 구역 대표의 의견을 묻기로 했다.(3) 사람들의 야유 속에, 혁명수호위원회 대표는 쿠바인들이 너무나 잘 알고 있는 ‘7월 26일, 영원히’라는 혁명 구호를 서둘러 벽에 다시 칠하려 했다.(4)

혁명수호위원회 지도자가 선택하는 길이 다양하다는 점은 혁명수호위원회가 더 이상 경직된 정치적 집단이 될 수 없음을 보여준다. 반대로, 혁명수호위원회를 구성하는 사람들, 특히 대표들은 혁명수호위원회의 선택과 역할에 과거보다 훨씬 더 큰 영향을 미친다. 오랜 세월동안 쿠바의 체제 속에서 가장 억압적인 면을 상징했던 혁명수호위원회가 민중을 대변하는 첫 실험장이 될 수 있을까?

 

글·마리옹 지랄두 Marion Giraldou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특파원, 역사학 박사

번역·이하임 haimleee@gmail.com

한국외국어대 통번역대학원 졸업

<이코노미21>은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한국어판과 기사제휴를 맺고 주요 글로벌 기사를 게재합니다.

(1) 가명임.

(2) 배급수첩(리브레타)으로 제품을 구입할 수 있는 가게의 이름.

(3) 구역 대표는 2년 6개월마다 선출하며, 혁명수호위원회 뿐만 아니라 공동체 전체에 영향을 미치는 문제에 대해 지역 주민과 시 정부 간의 중개자 역할을 한다.

(4) 7월 26일은 쿠바에서 가장 중요한 기념일 중 하나로 1953년, 피델 카스트로의 혁명군이 산티아고데쿠바 몬카다 병영을 습격한 날을 기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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