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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민주화와 동반성장동반성장은 저성장의 늪에서 벗어날 수 있는 새로운 성장동력
정운찬 동반성장연구소 이사장(전 국무총리)  |  media@economy21.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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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12.26  15:3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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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미21>은 동반성장연구소와 함께 ‘동반성장의 길’을 모색하는 기획연재를 게재하고 있습니다. 이번 호는 제23회 동반성장포럼에서 모두 발표를 한 정운천 동반성장연구소 이사장(전 국무총리)의 연설 내용을 싣습니다. - 편집자 주

제가 정부에서 일하던 2010년 봄 어느 날 평소 잘 알고 지내던 한 중소기업인이 날 찾아와 하소연 하며 이민을 가고 싶다고 했습니다. 그의 사업이 잘 번창하고 있다고 생각했던 나는 그의 하소연을 듣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재벌 횡포가 날이 갈수록 심해져 견딜 수가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건실하다는 평을 듣는 회사 대표가 이런 하소연을 하리라고는 생각조차 할 수 없었습니다. 납품단가를 후려치고 기술과 인력을 빼앗는 재벌 대기업의 해묵은 관행을 몰랐던 것은 아니지만 피해 당사자의 경험담을 직접 듣고 나니 엄청난 분노를 느끼게 되었습니다.

나는 문제의 심각성을 대통령에게 보고하고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고 제안했습니다. 그래서 그 해 말 나온 것이 동반성장위원회입니다. 하지만 성과는 만족스럽지 못했습니다. 대기업은 못마땅해 했고, 정부도 비협조적이었으며, 집권여당도 소극적이었습니다. 그러나 문제가 풀리지 않은 채 오랜 시간 아무 것도 안하고 지낼 수는 없었습니다. 2012년 대선을 계기로 동반성장과 경제민주화 논의가 재점화되었습니다. 

경제민주화란 무엇인가? 

2012년 대선 당시 ‘경제민주화’는 뜨거운 키워드 중 하나였습니다. 요즘 많이 쓰이는 검색 창에 ‘경제민주화’를 입력해 보면 다음과 같은 정의가 나옵니다 - “대기업에 쏠린 부의 편중 현상을 법으로 완화해야 한다는 주장을 통칭하는 말.” 학생들에게 경제민주화가 무엇인 것 같은가 물었더니 “복지를 늘리는 것” 이라고 답하기도 했습니다. 여당 야당 할 것 없이 경제민주화를 외쳤지만 선뜻 그것이 무엇이라고 정의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아 보입니다. 과연 경제민주화란 무엇일까요?

경제민주화는 경제사회가 민주주의적으로 변화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경제민주화라는 용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민주주의란 무엇인지, 경제사회란 무엇인지, 그리고 경제사회가 민주적으로 변화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지 나누어 생각해야 합니다.

우선 민주주의가 무엇인지 살펴봅시다. 민주주의란 ‘누가 통치를 하여야만 하는가’란 문제에 대한 답을 제시합니다. 대한민국 헌법 1조 2항은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라고 하여 국가의 최고 의사결정권이 국민에게 있음을 선언했습니다.

포퍼(Karl Popper)는 「열린 사회와 그 적들」에서 보다 단순하고 이해하기 쉽게 민주주의를 정의했습니다. 기존의 민주주의에 관한 논의가 ‘누가 통치하여야만 하는가’에 대한 것이라면 포퍼는 민주주의를 ‘유혈과 폭력 없이 악한 지배자를 제거할 수 있도록 하려면 국가는 어떻게 조직되어야 하는가?’ 라는 질문으로 민주주의를 접근합니다. 포퍼의 접근방식은 기존의 논의와 배타적인 관계에 있지 않으면서 최악의 선택, 즉 독재를 배제할 수 있는 기준을 제공해 준다는 측면에서 보다 구체적이고 실용적입니다.

다음으로 경제사회는 무엇인지 알아봅시다. 경제사회는 한마디로 말하기 어렵지만 대체로 하나의 커다란 교환체제 즉 ‘당신이 나에게 어떤 것을 해주면 나도 당신에게 무엇인가 해주겠다’는 식의 공생공존체제입니다.

기업은 노동자를 고용하여 재화 또는 서비스를 생산하고 이를 소비자 또는 다른 기업에게 내놓습니다. 그러면 소비자 또는 다른 기업은 자기들의 필요에 따라 제품을 고르고 그에 대한 대가를 기업에게 지불합니다. 이때 기업과 노동자는, 그들의 제품을 구매하는 소비자나 다른 기업과의 교환을 전제로, 노동의 수요와 공급을 내용으로 하는 교환관계를 맺습니다.

이와 같이 현대경제의 생산과 소비체제는 각 구성원들이 상호간에 크고 작은 다수의 교환관계를 맺고 있는 커다란 교환체제인 것입니다. 일단 교환체제가 확립되면 각 개인은 독립적으로는 존립할 수 없으며, 하나의 사회 구성원으로서만 의미를 갖게 됩니다. 그리고 이러한 상호의존성•상호관련성은 대부분의 생산이 우회적인 성격을 갖는 현대 경제에서는 더욱 강화됩니다. 특히 과학기술이 급속도로 발전하여 생산의 우회도가 더욱 높아질 뿐만 아니라 생산물의 종류도 더욱 다양해집니다. 그 결과 생산자와 소비자, 생산과정에 참여하는 노동자와 기업가 및 한 기업과 다른 기업간의 교환체제는 그물처럼 복잡하게 얽혀있습니다.

이러한 경제사회에 포퍼식 민주주의의 정의를 적용해봅시다. 경제사회를 하나의 커다란 교환체제로 볼 때, 포퍼식 경제민주주의란 경제사회의 구성원간에 이해가 상충될 때 각자가 별 손해 없이 다른 구성원과의 교환을 거부할 수 있는 장치를 의미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100만 원의 가치를 갖는 노동을 제공할 수 있는 노동자가 있다고 합시다. 그 노동자가 100만 원 이하의 보수를 제공하는 고용주의 고용 제의를 손해 없이 거절하고 다른 고용주를 찾아 나설 수 있다면 그 노동자가 속한 사회는 경제적으로 민주적인 사회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교환체제가 불완전하여 사람들이 자신이 갖고 있는 재화 또는 노동서비스의 제값을 받지 못하면서도 교환을 할 수밖에 없다면 그것은 경제사회가 비민주적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다시 말해 경제사회 구성원들 사이에 형평이 이루어져, 한 구성원이 다른 구성원들을 압도하지 못하고 각자가 자기에게 불리하다고 생각하면 언제든지 자유롭게 교환을 거부할 수 있을 때 경제민주주의가 정착되었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나에게 하소연 하던 중소기업 사장이 털어놓은 재벌의 횡포는 우리 사회가 경제적으로 민주 적이지 못함을 보여주는 직접적인 증거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나를 찾아온 그 중소기업 사장 과 재벌 대기업의 관계는 형평을 잃었고, 결과적으로 중소기업 사장은 자신에게 불리하다고 느끼면서도 교환을 거부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KBS 뉴스(2014. 10. 24)에 보도된 취재파일K 기사를 보면 대기업의 횡포가 얼마나 극심한 지 고스란히 드러납니다. 이 기사에 나오는 배씨는 특허기술을 보유한 전자부품 업체의 대표였습니다. 배씨의 회사가 A사에 납품하는 물건의 원가는 인건비와 관리비 등을 포함해 820원으로 계산되었는데 A사와의 협상에서 그 단가는 683원으로 줄어들었습니다. 원가의 80% 선으로 단가가 떨어진 것입니다. 이렇게 떨어진 단가에라도 납품하기 위해 배씨는 물량을 준비하였는데, A사 측은 전량 공급받겠다던 계약을 어기고 주문 물량을 줄여 배씨는 결국 회사 문을 닫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내게 찾아왔던 중소기업의 사장과 마찬가지로 배씨는 대기업의 부당한 제안을 거절할 수 없 었습니다. 배씨는 대기업이 후려친 납품가격을 거절할 수도 없었고 구두주문의 피해까지 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결과 회사문은 닫혔습니다. 우리사회의 교환체계 즉 경제사회는 이토록 비민주적입니다.

그러면 우리 경제사회는 어떻게 민주적으로 변화할 수 있을까요? 

헌법이 제시하는 우리나라 경제사회의 모습 

경제학에서 한 걸음 뒤로 물러나 헌법을 참고하면 경제민주화를 어떻게 접근할 것인가에 대 한 힌트를 얻을 수 있습니다.

우선 대한민국 헌법 119조 1항은 “대한민국의 경제질서는 개인과 기업의 경제상의 자유와 창의를 존중함을 기본으로 한다”라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헌법재판소는 이 규정을 시장경제 원리에 입각한 경제체제임을 천명한 것으로 해석하였으며 더 나아가 국가의 공권력은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이에 대한 불개입을 원칙으로 한다는 뜻이라고 했습니다. 즉 헌법 119조 1항은 개인의 경제적 자유와 시장경제 질서를 천명하고 있습니다. 또한 헌법은 126조에서 국방상 또는 국민경제상 간절한 필요에 따라 법률이 정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사영기업을 국유 또는 공유로 이전하거나 그 경영을 통제 또는 관리할 수 없다고 규정하여 사영기업의 경영권에 대한 불간섭의 원칙을 보다 구체적으로 밝히고 있습니다. 즉 헌법 119조1항은 개인의 경제적 자유와 시장경제질서를 천명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자유시장경제질서는 완벽한 체계가 아닙니다. 언제나 불공정한 거래가 일어날 수 있 으며, 독점의 위험 및 폐단은 자명합니다. 우리 헌법은 자유시장경제질서가 완벽하지 않다는 점을 이해하고 있고 이에 대한 대비책을 헌법 119조 2항에 제시하고 있습니다. 헌법 119조 2항은 “국가는 균형 있는 국민경제의 성장 및 안정과 적정한 소득의 분배를 유지하고, 시장의 지배와 경제력의 남용을 방지하며, 경제주체간의 조화를 통한 경제의 민주화를 위하여 경제에 관한 규제와 조정을 할 수 있다”라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우리 헌법은 자본주의적 자유시장경제질서의 결함과 단점을 제거 또는 시정하기 위하여 경제에 대한 규제와 조정을 허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 '동반성장과 경제민주화 어떻게 실현할 것인가?라는 주제로 열린 제23회 동반성장포럼에서 발표자, 토론자들의 모습. 출처=동반성장연구소 제공

헌법 119조 2항의 내용을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봅시다. 헌법 119조 2항에서 천명하고 있 는 “시장의 지배와 경제력의 남용방지”를 위해 우리 법 체계는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을 제정하여 독점 또는 과점을 규제․조정하고 있습니다. 즉 자유경쟁을 왜곡시키는 기업 결합행위를 규제 또는 제한하고 시장지배적 지위에 있는 이가 그 지배력을 남용하여 경쟁제한행위를 하는 것을 규제 또는 제한함으로써 공정한 자유경쟁을 보장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헌법 119조 2항의 나머지 부분, 즉 “균형 있는 국민경제의 성장 및 안정과 적정한 소득의 분배 유지, 경제주체간의 조화를 통한 경제의 민주화”는 어떻게 보장되고 있을까요? 헌법재판소는 헌법 119조 2항에 규정된 경제주체간의 조화를 통한 경제민주화의 이념도 경제영역에서 정의로운 사회질서를 형성하기 위하여 추구할 수 있는 국가목표로서 개인의 기본권을 제한하는 국가행위를 정당화하는 헌법규범이라고 할 뿐 구체적으로 어떻게 경제민주화를 이루어 낼 것인가에 대한 방법은 제시하지 않고 있습니다.

분명한 것은 우리 헌법이 자유시장경제 체제를 천명하면서도 그 결함과 단점을 보완하기 위 해 수정을 가하고 있으며, 이러한 수정은 시장경제체제를 건전하고 굳건하게 하여 정상적으 로 기능하게 하는 필수불가결한 요소인 것입니다. 다만 문제는 시장의 지배와 경제력의 남용 방지를 위한 대책이 구체적으로 마련되어 있지 않다는 점입니다. 

동반성장을 통한 경제민주화

나는 ‘동반성장’이 바로 우리 헌법이 천명하는 ‘경제민주화’의 이념적 목표를 달성하는데 가장 적합한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나라뿐 아니라 시장경제제도를 채택하고 있는 대부분의 나라에서는 부가 편중되고 있습니다. ‘Occupy Wall Street’의 구호를 통해 나타난 성난 대중의 모습을 기억할 것입니다. 시장 경제의 결함이 드러난 것입니다. 동반성장은 헌법 119조 2항에 근거하여 시장 경제의 결함을 바로잡아줄 등불인 것입니다.

동반성장은 ‘부자들의 것을 빼앗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주자’라는 것이 아닙니다. 동반성장은 ‘더불어 같이 성장하자’는 뜻입니다. 즉 ‘더불어’ 살기 위해 네 것을 좀 줄여서 나한테 달라는 것이 아니라 ‘같이 성장하자’는 것입니다. 일정하게 정해진 파이를 두고 한쪽이 더 가짐으로써 다른 한쪽이 덜 가지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 파이를 더 크게 하고 분배도 공정하게 함으로써 모두가 함께 더 가질 수 있게 하자는 것입니다. 성장을 해치지 않으면서 분배도 공정하게 해서 모두가 함께 더불어 잘살자는 것이 동반성장입니다.

이러한 동반성장은 경제 성장의 촉진과 분배의 공정을 토대로 헌법 119조 2항에서 말하는 균형 있는 국민경제의 성장 및 안정과 적정한 소득의 분배 유지, 경제주체간의 조화를 통한 경제의 민주화를 이루어낼 수 있는 방법인 것입니다.

동반성장을 현실화할 수 있는 하나의 제도가 바로 ‘초과이익공유제’입니다. 초과이익공유제는 2011년 초 발표된 동반성장위원회의 첫 작품이었는데 세상에 알려짐과 동시에 곳곳에서 거세게 반발했습니다. 너나 할 것 없이 반대의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숲을 보지 않고 나무만 보는 근시안에서 나오는 비난이었습니다. 국가의 미래, 중소기업의 생존, 국민의 삶이 흔들리는 줄 알면서도 그 대안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기는커녕 꼬투리나 잡고 있었습니다.

초과이익공유제를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은 대기업들이 협력중소기업들과의 관계를 ‘협 력’ 관계가 아닌 비용절감의 대상으로 설정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재화와 서비스를 주고받는 관계라고 하여 대기업-협력중소기업의 관계를 일반적인 판매자-구매자 관계로 보는 것은 잘못된 시각입니다. 대기업과 협력중소기업은 판매자-구매자와 같은 대립적 관계에 있는 것이 아니라 동일한 소비자를 상대하는 하나의 큰 주체의 각 부분인 것입니다. 즉 [협력 중소기업 ↔ 대기업 ↔ 소비자]의 관계가 아닌 [(협력중소기업 + 대기업) ↔ 소비자]의 관계인 것입니다.

쉬운 예를 들어 동종의 TV를 판매하는 삼성과 LG에게 서로 초과이익을 공유하라고 한다면 이는 시장경제논리에 반하는 논리로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관계는 이러한 경쟁의 관계가 아닙니다. 대기업이 만드는 제품의 부품을 납품하는 업체는 그 대기업과 경쟁하는 업체가 아니며 협력중소기업들은 실질적으로 대기업의 수족이 되어 한 부서의 역할을 해내고 있습니다. 적어도 그 제품을 만들어내는 과정에서는 협력업체로서 대기업과 함께 일하는 것입니다.

대기업에서 초과이익이 발생했을 때 이를 위해 일한 직원들에게 성과급을 지급하는 것은 반 사회적 혹은 반 시장경제적이기는커녕 당연한 일로 여겨집니다. 그렇다면 대기업과 함께 협력하여 성과를 이룬 중소기업에게 그 기여도에 따라 초과이익을 공유하고 배분하는 것 또한 반 시장경제적 행위라고 볼 수 없습니다. 오히려 초과이익공유제는 경제주체 간의 공정한 이익 분배를 가능케 하여 시장경제의 병폐를 치료하는 데 도움을 줄 것입니다.

‘동반성장’은 그 어디에서도 들어보지 못한 말이라는 비판도 들립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위 에서도 언급했듯 전 세계는 빈익빈 부익부라는 시장경제의 문제점 때문에 고통스러워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그에 대한 대응책도 많습니다. 나는 예로부터 서로 도우며 상생하는 우리 민족의 전통을 살려 시장경제의 문제점을 수정할 창의적인 방법으로 동반성장을 제시했습니다. 우리가 동반성장을 통해 시장경제의 정상화를 이뤄내는 선례를 만들어낸다면 세계는 우리의 방식에 주목하고 우리의 제도를 배우려 할 것입니다. 이러한 태도로 동반성장을 연구하는 것 이 대한민국이 세계의 리더로 발돋움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 믿습니다. 

동반성장은 새로운 성장의 동력

과거 한국의 경제성장에서 정부는 기본성장전략을 세워 이를 집행했고, 기업가는 여러 가지 불확실한 환경 속에서도 자본과 노동을 동원하여 생산을 조직했으며, 노동자는 일하려는 강 한 욕구, 규율, 그리고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잠재능력을 보여주며 쉬지 않고 일했습니다. 한국의 경제성장은 바로 이들이 협력하여 제 몫을 다하는 과정에서 이루어진 것입니다. 이들이 협력을 못했다면, 또 이들 가운데 어느 한 그룹이라도 자신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다면 한국의 경제성장은 훨씬 더디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지난날의 경제성장을 가능케 했던 협력체제는 권위주의체제에서의 억압적인 성격의 것이었습니다. 정부는 성장우선의 목표를 내세우고 ‘경제하려는 의지’를 일깨우기 위해서 이 데올로기적 선전을 했습니다. 또한 인플레이션을 통한 강제저축 및 외자도입에 의해 성장의 엔진을 가동시키는 데 필요한 자본을 동원했고, 적극적인 경제정책의 수립․집행을 통해 한정 된 자원을 효율적으로 사용하여 성장을 극대화시키려는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그 과정에서 수출경쟁력과 이윤의 확보를 위해 저임금이 강요되었고, 규모의 경제 실현이라 는 이름으로 경제력은 집중되었으며, 정치적 자유는 억압되고 유보되었습니다. 이 같은 억압적 체제에서도 경제성장을 위한 국민적 협력이 가능했던 것은 절대적 빈곤의 해소가 다른 어떤 것보다도 시급하였으며, 또한 요소투입 확대에 의한 경제성장이 계획적 경제운용을 통해 대체로 성공을 거두었기 때문입니다.

정부는, 저개발상태에서 시장불완전성이 만연되어 있고 특히 금융시장이 낙후되어 있으며 발전에 필요한 경제적 의지와 정보가 부족한 상태에서, 제도를 정비하고 자원을 동원하고 배분했습니다. 이러한 정부주도 성장방식이 1970년대의 과잉․중복 중화학공업 투자를 낳는 등 낭비와 왜곡을 초래하기도 하였지만, 60년대의 대외지향적 성장전략은 적절한 것이었습니다. 전자․조선 부문 등에 대한 투자가 70년대에는 과잉이고 비효율적이었으나 80년대의 수출과 성장의 기반을 형성했습니다. 그 결과 적어도 거시적․양적 지표로 볼 때 정부 주도에 의한 성장전략은 성공적이었으며, 1인당 국민소득은 빠르게 증가했습니다.

그러나 경제성장을 이끌어 오던 이같은 억압적․권위주의적 협력체제는 붕괴과정에 들어갔 습니다. 절대적 빈곤으로부터 벗어난 국민들은 밥벌이를 위해 더 이상 자신의 권리와 자유를 쉽사리 포기하지 않고 다양한 가치를 추구하기 시작하였으며, 급속한 산업화 과정에서 자기 이익의 보호와 추구가 스스로의 손에 달려 있다는 정치적 자의식을 형성해 왔습니다. 이같은 변화는 물론 성장제일주의로부터 누적되어 온 불평등 및 여러 모순들에 의해 촉진되었습니다. 나누어 먹을 파이를 우선 키워야 한다는 이름으로 진행된 소득과 부의 불공평한 분배의 심화, 경제력의 집중에 대한 의문과 반발은 더욱 거세지고 있습니다. 성장의 지속을 위해서는 노동자, 농민 등 지금까지의 성장과정에서 고난을 감수하고 불이익을 받아온 계층들의 자발적 협력과 적극적 참여가 여전히 필수불가결합니다. 그런데 이러한 사회구성원의 협력과 참여는 사회구성원 각자가 사회에 기여한 만큼 적정하게 보상받고 있다는 사회적 보상체계에 대한 신뢰의 회복 없이는 불가능한 시점에 다다른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동반성장은 저성장의 늪에서 허우적거리는 우리 경제에 새로운 성장동력을 불어넣어 줄 수 있습니다. 마이클 포터 교수는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에 게재한 ‘공유가치 창출’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이제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 즉 CSR(Corporate Social Responsibility)이 아니라 공유가치창출, 즉 CSV(Creating Shared Value)다.”

포터 교수는 우리가 자본주의, 시장, 기업의 가치 사슬 (Value Chain)에 대한 협소한 시야에 갇혀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는 기업의 이익과 사회적 이익이 상호 배치되는 상황에서 이 양자를 두고 갈등하는 구도는 끝났다고 했습니다. 기술 발달과 새로운 혁신을 통해 기업 이 이익을 추구하면서도 사회적 공유가치를 창조하는 선순환이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이러한 사례가 많이 생겨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세계적인 식품회사 네슬레는 ‘네스프레소’라는 프리미엄 커피 사업을 추진하기 위해 양질의 원료를 안정적으로 공급받아야 합니다. 하지만 아프리카와 남미 지역의 영세한 생산농가들은 생산성이 낮아서 품질이 높은 원료를 안정적으로 공급하기 어렵습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네슬레는 생산농가들이 더 높은 생산성을 갖출 수 있도록 적극적인 지원정책을 펼치고 있습니다. 생산농가에 대한 금융지원, 안정적인 구매계약은 물론이고 그 지역에 필요한 설비․기술․유통 등 여러 요소를 같이 개선해나갑니다. 이 과정에서 NGO들이 교육과 품질인증에 같이 참여하기도 합니다.

포터 교수는 이러한 공유가치창출을 통해 기업들이 단기적 이윤을 추구하는 근시안적인 방 식에서 벗어나 장기적 마인드를 갖게 될 것이고, 사회가 필요로 하는 요소들을 충족시켜줌으로써 시장의 성장․효율증대․새로운 기회창출이라는 효과를 얻을 수 있다고 합니다. 이러한 점에서 동반성장은 우리 사회에 새로운 기회를 창출하고 시장의 크기를 키움으로써 한국의 경제 성장에 활기를 불어넣을 것으로 기대됩니다.

우리 사회가 병을 앓고 있는 것은 분명합니다. 빈익빈 부익부 현상으로 가지지 못한 자들의 박탈감은 위험한 수준으로 치닫고 있습니다. 우리 헌법은 시장경제주의를 채택하면서도 그 병폐에 대한 치료가 가능하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동반성장은 과거 급속한 성장의 심각한 후유증을 앓고 있는 대한민국 시장경제의 치료약과도 같습니다. 헌법에서 제시하는 이념적 목표인 경제민주화는 동반성장을 통해 이룰 수 있으며 경제가 민주적으로 될수록 동반성장의 속도도 가속화되어 한국경제의 선순환을 통한 새로운 성장동력을 제공할 것입니다.

쇼펜하우어는 “모든 진리는 첫째 단계에서 조롱당하고, 둘째 단계에서는 심한 반대에 부딪치며, 셋째 단계에서야 비로소 자명한 것으로 인정받는다”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나는 우리 사회에서 동반성장론이 지난 수년간 쇼펜하우어의 첫째와 둘째 단계를 거쳐 이제는 셋째 단계로 접근하고 있는 중이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우리 사회 각 경제주체들이 상호 공존하기 위해 특별한 노력과 정성을 기울이지 않 는다면 동반성장은 영영 이상으로만 남게 될 것입니다. 특히, 정부의 강력한 정책 의지 위에 대기업의 선도적 변화와 중소기업의 자조가 어우러진 삼위일체가 동반성장의 핵심 동력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본고는 제23회 동반성장포럼-'동반성장과 경제민주화 어떻게 실현할 것인가?'에서 필자의 모두 연설문입니다. 본 기사는 월간지 <이코노미21> 434호에 게재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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